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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은 퉁명스럽게 대답해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냥 즐거운 듯이 희미하게 헤실헤실 웃었다. 론을 좀 더 품 안에 꼬옥 끌어안은 채.
지금 자신이 걷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비나리. 다솜의 벚꽃나무 숲도 정말로 아름다워서 좋았지만, 대체로 집 안에 있는 일이 많은 론을 위하여 새로운 풍경들도 오랜만에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론을 설득하여 데리고 나온 것이었다. 벚꽃잎들이 떨어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와는 다르게 좀 더 북적이는 듯한 활발한 분위기의 비나리를 천천히 두리번두리번거리며 앞으로 걸어가던 중, 문득 저 앞에서 익숙한 '신' 님께서 보이시자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백호 님...?"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천천히 발걸음을 앞으로 내딛으며 백호 님께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허리를 꾸벅 숙여 백호 님께 인사를 공손히 올렸다.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리스의 목소리에 내 두 귀가 쫑긋 세워졌다. 자연스럽게 목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리스의 모습이 보였다. 나에게 다가오면서 허리까지 숙여 인사를 하는 그 모습에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두 손을 휘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허리까지 숙여서 인사를 하는 모습을 바라보면 조금 애매하단 말이야. 내가 그렇게 높은....신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고위신은 아니니까 말이야. 아무튼 이어 나 역시 가볍게 손을 휘저으면서 리스에게 인사를 전했다.
"안녕! 오랜만이라면 오랜만이네! 사는 곳이 다르니까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야! 잘 지냈어? 가온이에게 들었어! 봉사하는 단체를 만들었다며? 프리허그 한다고 들은 것 같기도 한데..."
이어 나는 두 팔을 활짝 벌렸다. 그러니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허그를 할 수 있는 그 자세. 그거야 프리허그를 해준다고 하니까 거절할 필요는 없잖아? 난 개인적으로 누군가가 품에 안기는 것도 좋아하니까. 리스 같은 귀여운 여자애라면 더더욱 환영이고. 그렇기에 웃으면서 나는 리스를 바라보면서 윙크를 날리면서 이야기했다.
"산책이라기보다는 그냥 비나리에서 먹을거나 먹을까 해서 온 거야. 아무튼 프리허그! 나도 해줄거지?"
어서 오라는 듯이 리스를 바라보면서 나는 미소를 지었다. 오지 않는다면 내가 가면 될 일이었다. 나는 기다리기보다는 먼저 다가가는 여우니까.
//확실히 생각해보면...그도 그런 것 같군요! 이벤트때도 백호를 엄청나게 만났었죠? 아마?
...귀여운 리스... 백호 님의 그 말씀에 한 박자 늦게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제가... 귀여워요? 왠지 조금 부끄러우면서도 기분이 좋아 손가락을 작게 꼼지락꼼지락거리다가 백호 님께서 두 손을 휘저으시자 다시금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그리고는 한 박자 늦게 천천히 저 역시도 백호 님의 동작을 똑같이 따라하기 시작했다. 조금은 엉성하고 서툰 동작으로, 두 손을 어색하게 휘저으며. ...백호 님께서는 이렇게 해드리길 원하셨던 걸까요?
"...네, 전 잘 지냈답니다. 물어봐주셔서 정말로 감사해요, 백호 님. ...백호 님께서는 잘 지내셨나요?"
희미하게 헤실헤실 웃으면서 백호 님께 여쭤보다가 백호 님께서 두 팔을 활짝 벌리시자 놀란 듯이 멍한 두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졌다. 깜빡깜빡, 두 눈동자를 천천히 깜빡이며 백호 님을 올려다보고 있자, 백호 님께서는 프리허그를 언급하셨고, 그에 몇 박자나 늦게서야 ...핫, 정신을 차리고는 황급히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끄덕였다.
"네, 네...! 물론이예요, 백호 님! ...백호 님께서 원하신다면 100번도 더 해드릴 수 있는 걸요...!"
진심이었다. 두 눈동자를 의지로 반짝반짝 빛내다가 이내 천천히, 조심스럽게 백호 님께 다가갔다. 그리고는 론을 한 손에 조심스럽게 들고 그대로 두 팔을 벌려 백호 님을 조심스럽게, 아주아주 조심스럽게 살짝 안아드리려고 했다.
"나? 보다시피 살이 조금 쪘잖아? 볼살이라던가? 그런 것을 보면 못 지낸 것은 아니지 않을까? 실제로도 잘 지냈지만!"
손으로 절로 만져지는 포동포동한 볼살을 손으로 만지면서 나는 웃으면서 리스의 말에 대답했다. 적어도 나 같은 여우 수인 신이 포동포동 살이 찔 정도면 잘 지냈다는 것의 반증이 아닐까? 적어도 잘 못 지내는데 살이 찌는 경우는 잘 없을테니까. 물론 예외도 있겠지만? 아무튼 내 스스로는 정말로 잘 지낸다고 생각하기에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프리허그를 이야기하는 모습이 놀라웠던 것일까? 리스의 두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지는 것이 보였다. 저런 모습이 엄청 귀엽단 말이야. 100번도 해줄 수 있다는 표현도 귀엽고. 하지만 난 한 번이면 족한데. 아니면 단순히 리스가 누군가에게 안기거나 안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가만히 리스를 바라보니 리스는 나에게로 천천히 다가와서 나를 안아주었다.
"응. 응. 프리허그 잘 받았어! 그럼 이번엔 나도!"
이어 나는 벌린 팔을 좁히면서 리스를 꼬옥 안아주려고 했다. 적어도 리스가 피하지 않으면 내 품에 꼬옥 안기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리스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거리를 두며 떨어지면서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그러고 보니 나 말이야. 신과 찹쌀떡을 먹으려고 생각 중이거든. 리스도 먹을래? 먹는다고 한다면 바로 저기서 파니까 2인분 사올게! 1인분에 4개니까 아마 4개씩 먹으면 충분할거야."
그 달콤하고 쫄깃한 맛을 생각만 해도 절로 침이 꿀꺽 삼켜지는 것은 나도 모르게 신과에 중독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많이 먹는다고 해서 큰일 나는 것도 아니니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런가요? ...저는... 백호 님께서 조금 더 건강해지신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백호 님꼐서 손으로 볼살을 만지시자 고개를 갸웃했다. 이내 곧 희미하게 헤실헤실 웃었지만. 물론 다른 '신' 님들께서 보신다면 포동포동하게 살이 쪘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씀하실 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봤을 때에는 건강해보이실 뿐이었으니까. 잘 먹는다는 것은 생존과도 직결된 아주 중요한 일이기도 했고...
잠시 마른 자신의 다리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이내 이어지는 백호 님의 프리허그 요청에 한 박자 늦게 정신을 차렸다. 자신이 과연 '신' 님을 안아드려도 될까, 싶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 님께서 직접 원하시는 것이었으니까. ...그렇다면 반드시 해드리고 싶어요.
그렇기에 조금은 조심스럽게, 하지만 살짝 백호 님을 꼬옥 안아드리자, 이내 백호 님께서도 자신을 안아주었다. ...지, 지금 백호 님께서도 저를 안아주고 계세요...! 그 따스한 온기가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슬프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선명하게 배시시 웃어보였다. 마찬가지로 백호 님을 조금 더 꼬옥 끌어안으며.
그러다 백호 님께 맞춰서 자신 역시도 천천히 팔을 떼고 떨어지자 백호 님의 또다른 제안이 들려왔다. ...신과 찹쌀떡... 애초에 그다지 많이 먹는 자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4개까지는 못 먹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맛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한 박자 늦게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백호 님. 정말 맛있을 것 같아요. ...제가 다녀올게요. 백호 님께 부탁드리기에는... 너무 죄송스러워서..."
물론 리스가 그런 의도로 하는 말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괜히 그렇게 말을 하면서 나는 소리내어 웃었다. 정말 귀엽고 착한 애란 말이야. 우리 라온하제에 정말로 잘 어울리는 아이라고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슬슬 자신이 신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것도 조금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지만 그것만큼은 내가 어떻게 강요할 수 없으니까. 은호님도 그냥 시간이 되면 받아들이게 될테니 내버려두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했었고.. 가온이와 누리님도 비슷한 의견이니 여기서는 내가 물러나도록 할까?
아무튼 내 제안을 들은 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신이 다녀오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이런 점은 조금 줄이는 것도 좋을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노. 노. 이런 것은 제안을 한 이가 다녀오는 거야. 그러니까 얌전히 기다리기야. 알았지?"
어디로 가면 안 나눠준다고 엄포를 놓듯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가게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리스가 가기 전에 빨리. 저 애는 받는 것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기에 조금 강하게 이야기를 한 것도 어느 정도 존재했다. 아무튼 가게에 들어간 후에 나는 재빠르게 찹쌀떡 2인분을 구입했다. 어차피 돈이야 많기도 하고...
하얗고 맛있어보이는 찹쌀떡을 바라보니 절로 군침이 꿀꺽 넘어가는 것은 절대로 기분 탓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맛있어보였으니까. 아무튼 리스에게 다시 돌아오면서 나는 리스에게 찹쌀떡을 내밀었다.
"...네...?! 아, 아니예요, 백호 님! 그... 그런 건 절대로 아니예요! 저... 저는 그냥...! 그냥...!"
백호 님의 말씀에 깜짝 놀라 두 손을 마구 휘저었다. 멍했던 두 눈동자도 동그랗게 떠진 채. 정말로 당황했는지 두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면서 괜히 론만 꼬옥 끌어안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물론 백호 님께서 진심으로 그렇게 말씀하신 건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죄송스러운 마음에 자신이 신과 찹쌀떡을 사오겠다고 말씀 드렸지만, 백호 님께서는 곧바로 안 된다는 식으로 대답해오셨다. 그에 자신이 가겠다고 더 말할 수도 없어, 그저 멀어지는 백호 님의 뒷모습만을 바라보면서 제자리에서 안절부절 못했다. 백호 님을 뒤따라갈까, 도 생각했지만 얌전히 기다리라는 말씀이 있었으니까 그러지도 못 하고.
"...론. 어쩌지요...?"
그저 론에게 물어보면서 백호 님을 기다리고 있자, 이내 곧 백호 님께서는 자신이 있는 쪽으로 돌아오셨고, 백호 님의 이름을 부르려던 그 순간, 찹쌀떡이 내밀어지자 동그래진 눈으로 찹쌀떡과 백호 님을 천천히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천천히 찹쌀떡 하나를 집어들었다. 그러나... 그 찹쌀떡이 향한 곳은 자신의 입 속이 아니었다. 그렇게 집어 들은 찹쌀떡 하나를 조심스럽게 백호 님의 입가 쪽으로 가져가며, 희미하게 배시시 웃어보였다.
신과 찹쌀떡을 리스에게 건네주자 리스는 놀랐는지 동그래진 눈으로 나와 찹쌀떡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렇게 사주는 것이 그렇게 의외일까? 전에도 사주지 않았던가? 나? 아닌가? 기억이 조금 애매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을 하면서 난 리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리스는 하나는 집어들더니 먹지 않고 내 입가로 가져갔다. 그리고 내가 먼저 먹었으면 좋겠다고 표현을 했다. 가끔 뭔가를 바랬으면 하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런 것을 바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기에 가만히 보고 웃다가 나는 입을 벌려 찹쌀떡을 먹으면서 천천히 그것을 씹었다.
"역시 쫄깃해! 달콤해! 완전 좋아!"
쫄깃한 달콤함. 이것은 도저히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었다. 절로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리는 그런 맛이었기에 미소가 지어지고 감탄만이 흘러나왔다. 너무 좋아. 너무 좋아. 그렇게 생각을 하며 더욱 빠르게 꼬리를 살랑살랑. 그렇게 흔들다가 겨우 진정을 하며 나는 다시 꼬리를 멈추었다. 그리고 나는 내 몫의 찹쌀떡 중 하나를 집어들고 리스에게 내밀었다.
"자. 그럼 리스도 아~"
리스가 나에게 먹여줬으니 나 역시 리스에게 먹여주는 것이 좋겠지?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웃으면서 나는 리스를 바라보았다. 이것도 놀라서 당황할까?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하며 나는 리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비록 찹쌀떡 하나를 집어들긴 했지만 자신이 먼저 먹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애초에 이것은 백호 님께서 직접 다녀와서 사주신 것이기도 했으니까. 그렇기에 천천히 집어 든 그 찹쌀떡을 백호 님의 입가 가까이 가져가며, 먼저 드셨으면 좋겠다는 자신의 작은 소원을 부탁드렸다.
...싫어하실... 까요...? 조금은 불안한 마음을 안고 백호 님을 바라보고 있자, 백호 님께서는 이내 웃으면서 찹쌀떡을 받아먹어주셨다. 그에 기쁜듯이 표정이 환해졌다가 행복해보이는 백호 님의 모습을 지켜보며 작게 배시시 웃어보였다. 빠르게 흔들리는 백호 님의 꼬리. 그것을 지켜보며 저 역시도 '행복'하게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자, 이내 자신에게도 찹쌀떡 하나가 가까이 다가왔다.
"...네...?"
그에 살짝 놀란 듯이 두 눈을 깜빡깜빡이며 찹쌀떡과 백호 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민하듯이 머뭇머뭇거리다가 이내 큰 용기를 내어, 두 눈을 꽈악 감고 입을 벌렸다. ...냠, 조심스럽게 찹쌀떡을 받아먹고 우물우물 씹기 시작했다. 입이 작아서 찹쌀떡 가루가 입 주변에 가득 묻긴 했지만.
"...! 맛있어요, 백호 님...!"
그러나 느껴지는 달콤하면서도 쫀득쫀득한 식감에 순수하게 감탄의 뜻을 표현하며, 두 눈을 뜨고 환하게 웃었다.
"신과 씨의 맛도 나면서 쫄깃해요! 와아... 처음 먹어봤는데 너무 맛있어요...! 사주셔서 정말로 감사해요, 백호 님."
물론 나 혼자 있으면 당연히 이것을 누군가에게 나눠주는 일 없이 혼자 냠냠 다 먹겠지만, 지금은 리스에게도 사준 것이니까 당연히 리스에게도 주는 것이 맞지 않을까? 애초에 리스는 맨 처음에 자신이 먹지 않고 나에게 이렇게 나눠주기도 했으니까. 그렇기에 리스가 먹는 것을 나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리스가 눈을 꽈악 잠고 입을 벌리자 나는 찹쌀떡을 조심스럽게 리스의 입 속으로 쏘옥 넣어주었다. 자. 자. 과연 어떤 반응을 보여줄까? 물론 귀여운 반응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그냥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주기만 해도 난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곧 리스는 환하게 웃으면서 맛있다고 표현해왔다. 신과의 맛도 나고 쫄깃한 그 맛. 그것을 제대로 느낀 것 같아서 나는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다음에는 이런 것도 사 먹고 그래봐. 세상에는 맛있는 것이 한가득인데 이것저것 다 먹어야 하지 않겠어? 그래서 나도 맛있게 먹고 먹고 또 먹는거야. 안 먹으면 아까운 것이 많으니까. 얼마나 맛있는 것이 많은데. 냠."
이어 나는 내 찹쌀떡을 하나 집어서 입에 천천히 넣은 후에 그것을 씹었다. 역시 쫄깃하고 달콤한 맛이 입 속에 퍼지자 절로 기분이 좋아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다른 것은 몰라도 찹쌀떡은 신과 찹쌀떡만큼 맛있는 것이 없단 말이야. 그렇게 천천히 먹는 도중 리스의 입가에 찹쌀떡 가루가 묻은 것이 보여 나는 손을 올려 리스의 입가를 털어주려고 했다.
"...그... 그래도... 먹이를 받는 건, 먹여줌을 받는 건 거의 경험해본 적이 없어서..."
그것은 라온하제에 오기 전부터도 마찬가지였으니. 어미에게서 먹이를 받기는 커녕 버림을 받으며 살아왔던 자신이었으니까. 괜히 어색하고 마음 한 구석이 슬퍼지는 느낌에 손가락만 꼼지락꼼지락 움직이다가, 이내 큰 용기를 내어 백호 님께서 주시는 찹쌀떡을 받아먹었다. 찹쌀떡을 처음 먹어봤기에 입가에 가루가 다 묻었지만.
그래도 생전 처음 먹어보는 맛있고 독특한 찹쌀떡의 맛에 순수하게 감탄하고 있자, 백호 님의 말씀이 들려왔다. 그에 한 박자 늦게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이 세상에는... 정말로 맛있는 음식 씨들이 가득하신 것 같아요. ...잘 몰랐는데..."
살아남는 데 바빠서 제대로 알 수조차 없었지만. 정말로 멍한 눈빛으로 찹쌀떡을 내려다보다가, 다시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백호 님을 바라보았다.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될 지 잘 모르겠지만... 백호 님의 방금 말씀, 왠지 모르게 은호 님이 떠올랐어요. 은호 님께도 예전에 비슷한 말씀을 들었던 적이 있어서..."
헤실헤실, 희미하게 웃어보이다가, 백호 님께서 자신의 입가에 묻은 가루를 털어주자 한 박자 늦게 깜짝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부끄러움에 살짝 양 볼을 빨갛게 물들이며 고개를 아래로 푸욱 숙였다. 괜히 론만 더 꼬옥 끌어안으며, 고개를 작게 끄덕끄덕였다.
"......가, 감사합니다, 백호 님... 저... 이, 이런 떡 씨는 처음 먹어봐서..."
"여기에 오기 전에 무슨 삶을 살았는지는 아무래도 좋아. 그렇게 따지자면 나도, 은호님도 그렇게 좋은 신 출신은 아니었으니까. 중요한 것은 지금이야."
갑자기 어느 순간, 신으로서 태어나... 여우 악신들만 모여있는 곳에서 지내고 우리들도 자연스럽게 악신으로서 살아왔지만... 은호님의 힘을 두려워하던 이들에 의해서 은호님이 크게 다쳤을 때... 은호님은 인간계에 있는 인간의 도움을 받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우리들은 악신의 자리를 벗어던졌지. 그때를 떠올리니 절로 미소가 흘러나왔다. 참으로 오래전... 그러니까 옛날 일이구나 싶어서.. 나도 모르게 추억이 떠오르는 것 같아서 미소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치? 그치? 그러니까 앞으로 리스도 이것저것 다양하게 먹어봐. 맛있어보이는 것이 있으면 용기를 내서 도전해보는거야! 지금 이 찹쌀떡 처럼 말이야. 그리고 은호님이 그렇게 이야기했었어? 이러니저러니 해도 은호님과 나는 같이 산 세월이 기니까."
태어날 때부터 함께이기도 했고... 그렇게 따지자면 은호님은 나의 언니 같은 존재일까? 아니면 내가 언니일까? 아무래도 좋았다. 나와 은호님 사이에 그런 것을 따져서 무엇하겠어? 그저 둘 사이에 맺은 그 맹세만 영원하면 되는거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리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그럼 앞으로는 기억해두면 되는 거야. 그러면 되는 거 아니겠어? 안 그래? 아. 다음에 혹시 맛있는 거 먹게 되면 꼭 나에게도 소개해줘. 알았지?"
혹시 내가 모르는 맛있는 것을 먹으면 소개해달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찹쌀떡 하나를 또 다시 먹었다. 어느새 팍 줄어버린 찹쌀떡의 양. 당연히 나에게 남은 것은 한 개 뿐이었다. 이 한 개는 좀 아껴먹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나는 입가에 묻었을 가루를 털어내면서 미소를 지었다.
조용히 백호 님의 말씀을 따라서 중얼거려보았다. ...중요한 것은 지금. 그렇다는 것은... ...과거는 중요하지 않은 걸까요? 제가 살아왔던 그 과거들은, 그 기억들은... 그렇다면 지금은... 지금 저는... '신' 님께서는... 이 곳은... 이 라온하제는... [그만. '리스'. 멈춰.] "......"
이내 곧 들려오는 백호 님의 목소리에, 점점 더 멍해지던 표정을 멈추었다. 그리고 멍한 눈빛으로 백호 님을 바라보다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백호 님.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볼게요. ...그리고... 네, 그렇게 말씀하셨었어요. ...은호 님과 백호 님, 두 분 다 엄청 높으신 분들이시기도 하시니까... 뭔가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느낌이예요. 그래도 두 분 다 정말로 대단하시고 멋지신 '신' 님들이시라는 점은 똑같지만요."
...같이 산 세월이 길다면, 그렇게 되는 걸까요? ...그렇다면... 저도 좀 더 오랫동안 '가족'들 속에 있었다면, 그랬다면... 비슷하게 되었을까요. 론을 꼬옥 끌어안으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러면서도 이내 곧 들려오는 백호 님의 말씀을 가만히 들었다. 그리고 몇 박자 늦게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술을 열었다.
"...네, 백호 님. 저는 그렇게 다양한 것들을 먹어보진 않았지만... 그래도 정말로 맛있는 음식 씨를 발견한다면 꼭 바로 백호 님께 알려드릴게요."
한 박자 늦게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백호 님께서는 특별히 더 좋아하시는 음식 씨가 있나요?"
예를 들어 자신은 과일을 좋아한다거나 그랬으니까. 백호 님의 취향을 알게 된다면 어떤 음식을 소개해드리면 좋을 지, 감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은호님처럼 고위신은 아니니까 그 정도는 아니지만 말이야. 그래. 어떻게 보면 가족같은 이일지도 모르겠어. 정말로 오랫동안 함께 했거든."
그건 아마 이 귀여운 홍학 수인 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긴 시간이 아니었을까? 어느 정도 세다가 그만둬버린 그 길고 긴 시간을 떠올리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길고 긴 인연이라고 생각을 하니... 그리고 앞으로도 가능하면 쭈욱 그렇게 있다고 생각을 하니. 언젠가 내가 고위신으로서 각성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나는 은호님의 근처에 있고 싶기에...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뭔가 저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그저 미소만이 흘러나왔다. 애초에 우리 신들에게는 나이가 없는데 말이야. 나이 같은 거 그다지 의미가 없기도 하고...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 리스의 질문이 들려왔다. 특별히 더 좋아하는 음식이라. 잠시 생각을 하다가 나는 두 어깨를 으쓱하면서 리스의 말에 대답했다.
"글쎄? 나는 특별히 크게 가리는 것은 없지만...요즘은 토마토가 들어간 음식이 조금 끌려. 토마토 파스타라던가 그런 음식도 있거든. 다음에는 그걸 먹으러 가볼까 생각중이야. 아. 신과 파스타 같은 것도 맛있긴 하지만..."
그렇게 음식을 이야기하니 절로 군침이 꿀꺽 도는 것이 느껴졌다. 아. 갑자기 또 먹고 싶어지잖아. 결국 참지 못하고 찹쌀떡을 한 입에 꿀꺽. 그렇게 먹으면서 나는 리스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그럼 귀여운 홍학 아가씨. 나는 다시 가던 길을 갈게. 다음에는 꼭 내가 사주지 않더라도 맛있는 거 먹기다. 알았지? 후훗."
그렇게 웃으면서 나는 가볍게 손을 흔들면서 가던 길을 가기로 했다. 다음에는 또 뭘 먹을까.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해도 괜찮지 않겠어? 그렇게 생각을 하며 그저 앞으로 천천히 걸어나갔다.
//조금 짧긴 하지만...이벤트 시작 전에 조금 휴식이 필요할 듯 해서... 일단 이 일상은 슬슬 끝을 내도록 할게요! 막레를 써주셔도 좋고 막레로 받으셔도 괜찮습니다!
이번에 그들이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가을의 기운이 흐르고 있는 지역, 가리였다. 정확히는 가리의 명소인 서쪽 끝에 위치하고 있는 산 속이었다. 평소라면 붉은 낙엽들이 가득 떨어지고 있었겠지만 역시나 이곳도 생명력이 끊어졌는지 주변 나무들은 시들어가고 있었고 수많은 낙엽들은 말라 비틀어가며 죽어가고 있었다.
"......."
그 모습을 바라보며 참으로 안쓰러운지 누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면 애써 고개를 돌리고 있는 것일까?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었지만 곧 리스는 마음을 굳게 먹고 모두를 바라보았다.
"앞으로 두 곳만 더 열심히 하자! 가리와 미리내! 일단... 했던 것처럼 이곳을 수호하던 신인 백호...그러니까 백호 언니가 아니야! 아무튼 백호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자."
"알겠습니다! 반드시 찾아서 수복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아라 지역에서 청호가 나왔던 것이 조금 신경 쓰여. 어쩌면... 누군가가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더욱 조심해. 알았지?"
누리는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우선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온 역시 킁킁 냄새를 맡으면서 찾아보려고 하고 있었다. 다른 이들 또한 슬슬 움직이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순간, 저 편에서 뭔가 맛있는 냄새가 풍겨오고 있었다. 그 냄새를 찾아가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냄새를 따라서 걸어간 리스는 머지 않아 산에 있는 동굴 부근에서 열심히 요리를 하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서벌 수인 신, 샤베르. 요리사 모자를 쓰고 있는 그는 그 근처에 모여있는 작은 수인 신들과 화인 신들에게 스프를 떠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 스프도 그렇게 양이 많지 않은지 샤베르는 정말로 크게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샤베르가 고개를 위로 올렸고 다른 이들의 모습을 발견했는지 그는 크게 손을 흔들었다.
"아. 아. 오랜만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도 지금 배가 고파서 여기로 온 겁니까? 아아. 하지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이 샤베르. 이곳에서 미처 대피하지 못한 이 신들을 위해서 도망치지 않고..그나마 가지고 있는 식재료들을 이용해서 요리를 만들었습니다만..이제 슬슬 재료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곤란합니다. 정말로 곤란합니다."
크게 한숨을 내쉬면서 샤베르는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었다. 그리고 냄비에 남아있는 스프를 바라보더니 그것을 떠서 그들에게 각각 나눠주었다. 버섯으로 끓인 스프인걸까? 스프에는 버섯이 담겨있었다.
"송이 버섯을 이용해서 만든 송이버섯 스프입니다. 저는 조금 굶어도 되니까 여러분들이 드셨으면 합니다. 전의 일도 있고 하니 말입니다. 그건 그렇고 여러분들, 가리에 사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어쩌다가 이곳에..."
냄새를 따라가보니 만난 것은 바로 샤베르 님. 샤베르 님께서는 모두에게 스프를 나눠드리고 있는 듯 했다. 그것을 도와드리려 앞으로 걸어가려다가 얼떨결에 자신 역시도 스프를 받아들었다. 그러나 스프와 샤베르 님을 번갈아 바라보고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자신 몫의 스프를 다시 샤베르 님께 돌려드리려고 했다.
[...저는 괜찮아요, 샤베르 님. 그러니 제 몫까지 샤베르 님께서 드시거나, 아니면 다른 '신' 님께 더 나눠주셨으면 좋겠어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자연스럽게 텔레파시로 말을 걸며.
[...저희는 라온하제를 구하러 왔답니다. ...샤베르 님. 혹시 이만한 구슬을 끼울 수 있는 구멍이 있는 곳을 알고 계시나요? ...라온하제를 구하기 위해서는 누리 님께서 그런 홈에 구슬을 끼워서 잠들어 계신 백호 님을 깨워야한다고 하셨거든요.]
"안녕 샤베르. 미안하지만 딱히 입맛이 돌지는 않아." 뭔가 그 시커먼스에서 잠수를 좀 했더니. 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고는 샤베르가 잘 먹어야지 정화되고 나서 여기 있는 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줄 거 아니야? 라고 말하려 합니다.
"내 물음도 리스랑 비슷해. 그리고.. 여기 있는 존재들을 좀 보호해야 할 것 같아." 아라를 정화할 때 머리에 든 게 먼지보다도 못할 정도로 빈 것들이 우리를 방해했거든. 이라고 말하며 여기에도 올 수 있으니까. 라고 말하려 합니다. 뻘겅이일지 퍼랭이일지 시커먼스일지는 모르겠지만.. 아니면 절연당한 백호라던가?
가리라. 그럼 이번 일이 끝나면 결국 미리내의 차례가 온다는 이야기겠네요. 그 애는 가리의 시들어버린 붉은 단풍잎들을 차분하고도 고요한 그 푸른 눈으로 둘러보면서 생각했습니다. 그 애는 가을의 더위에 금방이라도 벗어버릴 듯 얇은 반팔을 몇 번이나 팔랑팔랑하며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곳에서 옷을 벗어버리면 곤란하겠지요? 그 애는 끈기있는 참을성으로 인내하며 배 부분의 하얀 천을 잡고 팔락 팔락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애로선 최대한 자제하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애는 차분히 누리님의 이야기를 듣다가 맛있는 냄새에 코를 킁킁거렸습니다. 그 애의 앙증맞고 작은 코가 몇 번 움직이고 비로소 움직임이 멈추었습니다. 그러나 그 애는 향긋한 음식 냄새에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애는 음식에 그다지 흥미가 없었으니까요. 그러니까 그 애는 누리님이 말한 '백호님을 찾는다' 와 '청호를 조심한다' 라는 것 이외엔 관심이 없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이 모두 음식 냄새를 따라 이동하는데 그 애 혼자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는 모양새도 조금은 이상해 보일 것이었습니다. 그 애는 작은 키의 탓인지, 혹은 그저 피곤해서 인지 그 큰 눈을 끔뻑거리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 애의 작은 발은 점점 더 느릿느릿해졌지만 어찌저찌 목적지에 도착한 모양이었습니다. 앞에 있던 누군가의 등허리 부근에 그 애의 둥그런 이마가 콩 하고 부딪힌 것 같았거든요.
"음..."
얼떨결에 샤베르님의 요리를 받긴 했습니다만, 안 그래도 더운 가을 날씨에 이렇게 용암처럼 타오르는 송이버섯 수프를 먹긴 힘들 것 같았습니다. 지금 이렇게 수프 그릇을 잡고 있는 그 애의 작은 손도 조금 위태로워 보였습니다. 그 애는 커다란 파란 눈으로 주변을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샤베르님에게 수프 그릇을 건네주려 했습니다. 어차피 그 애는 지금 배가 고프지 않았고, 더 맛있게 먹어줄 누군가가 굶는 건 싫었습니다.
"누리님..."
아마 말 못하는 부끄럼쟁이인 그 애 보다는 누리님이나 다른 분들의 설명이 이해하기 쉬울 것 같았습니다. 그 애는 조심스럽게 관망하기로 했습니다. 한 발짝,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모두가 스프를 먹지 않고 돌려주자 샤베르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조금 충격을 먹은 것일까? 하지만 곧 이해한다는 듯이 샤베르는 고개를 크게 여러 번 끄덕이기 시작했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굳이 먹고 싶지 않다면 어쩔 수 없지요! 이 스프는 다른 신들에게 좀 더 나눠주도록 하겠습니다. 네. 네. 아무튼... 여기에 있는 존재들은 보호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여기에 남은 이유기도 하니까요. 가리에서 살아가는 요리사인 저 샤베르. 그게 사명이기도 하고...아무튼..."
이어 샤베르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리스 쪽으로 향했다. 왜 텔레파시로 말을 하냐는 듯이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곧 그는 잠시 생각하는 모습에 빠졌다. 두 손으로 마치 칼질을 하듯이 리듬을 타면서 생각을 하던 샤베르는 이어 대답을 했다.
"구슬을 끼울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 가지 사실은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산의 정상에 성스러운 석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석상이 마치 호랑이를 닮았다는 말도 있고요. 물론 전 요리사라서 거기까지 간 적은 없습니다만.. 아무튼 그런 말을 들은 적은 있습니다. 네. 네."
자신이 아는 것을 알려주면서 샤베르는 곧 저 위, 산의 정상 부분을 가리켰다. 그곳은 확실히 높은 곳이었고, 걸어서 올라가기에는 조금 힘들어보일지도 모르는 높이였다.
"혹시 산으로 올라간다고 한다면...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그러니까...아..여기에 있군!"
이어 샤베르는 연한 녹색 물이 담겨있는 통을 모두에게 건네주면서 이야기를 했다.
"쑥을 달인 물입니다. 이걸 먹으면 나름대로 스테미너가 좀 더 붙고 그럴 겁니다. 네. 네. 등산 하려면 시원한 것이 최고지요. 하지만..조심하셔야 합니다. 네. 네. 산의 정상을 보면 알겠지만..검은 먹구름이 있지 않습니까? 번개가 떨어질지도 모릅니다. 네. 네."
샤베르 님께서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아도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저 흐릿한 눈빛으로 희미하게, 금방이라도 사라져버릴 듯한 미소만 지어보일 뿐.
아무튼 샤베르 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가리의 구슬을 끼울 수 있는 곳은 산의 정상에 있는 듯 했다. ...그 곳에 백호 님께서 잠들어 계신 걸까요. 잠시 산의 정상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며, 어떻게 저 곳까지 도달할 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날아가다가 금방 지쳐버릴 것 같아요. 어쩌면 좋을까요...
그러다 샤베르 님께서 연한 녹색 물이 담겨있는 통을 주시자 고개를 갸웃하면서 그것을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들였다. ...이것을 마시면... 저의 약한 몸도 괜찮아질까요? ...아니, 괜찮지 않다 하더라도 가야만 했다. 그렇기에 각오를 다지며 통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샤베르 님.]
다시금 텔레파시로 감사 인사를 전하고는 샤베르 님께 허리를 꾸벅, 숙이며. 희미하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아사 님의 물음에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역시 아사 님께서는 현명하세요. 어쨌거나 구슬을 끼워 백호 님을 깨우실 수 있는 분은 바로 누리 님이시기도 하니까. 아무튼 다시 천천히 샤베르 님을 바라보았다.
산 정상에 성스러운 조각상이 있다는 샤베르님의 말이 들려왔습니다. 그 애의 맑은 푸른 눈이 샤베르님의 손가락을 지나 산 정상을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어쨌든 그 애는 빠르기라면 둘째가 라도 서러울 눈표범이었으니, 원한다면 단숨에 그곳까지 갈 수 있을 터였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그 애 혼자만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혼자 단독으로 행동하는 중이었다면 아무 생각 없이 바로 달려갔을 텐데, 모두와 같이 있는 이곳에서 단독 행동을 할 순 없을 것 같았습니다. 거기다 이렇다 할 설명도 못 하는 그 애가 갑자기 사라지기라도 한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일이 커질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
그 애는 갑자기 그 애의 작은 손에 들린 초록빛 물에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습니다. 이게 뭐예요? 하는 물음이 왠지 공중에 떠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그 애는 샤베르의 설명을 듣고도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스테미너가 뭐예요? 그게 떨어지는 거였던가?
"먹구름... 번개..."
아무튼 조심하라는 대상을 인지한 그 애는 샤베르에게 꾸벅 인사해 감사함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이어 아사님이 의견을 구하는 듯 이쪽을 바라보자 그 애는 작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우린... 산 정상으로 가야겠... 죠...? 혹시... 산 정상까지 올라가기 힘드시면 제가... 옮겨 드릴게요."
그 애는 수줍은 듯 목소리를 웅얼웅얼 거리며 말했습니다. 힘이라면 쓰고 써도 남았으니까요.
"그러니까 왜 텔레파시로 이야기를 하는 겁니까? 아무튼 누리님과 가온 씨 말입니까? 네. 네. 그렇고 말고요. 나눠주겠습니다! 어딘가에 있다는 이야기겠죠? 일단 여유분이야 더 있으니까요! 여기!"
뒤이어 샤베르는 리스에게 물병 2개를 더 나눠주었다. 이 물병이 있으면 일단 누리와 가온에게도 줄 수 있는 것일까. 아무튼 누리와 가온에게 연락을 한다면 텔레파시를 이용해도 좋을테고, 물병을 나눠주는 것도 신통술을 이용하면 간단하게 전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확실한 것은 이제는 산으로 올라가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이대로 올라가도 좋은 것일까? 위험하지 않을까? 하늘 위에 끼여있는 먹구름은 그만큼 불길한 느낌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정상으로 올라가지 않으면 그 석상을 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올라간다고 한다면... 모두 각자의 방법, 혹은 협력을 통해서 올라가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자...그럼 이제 올라가도록 합시다..! 산 정상까지! 날아서 가도 되고, 뛰어서 가도 되고, 아니면 각자의 방법으로 가도 되는 겁니다! 9시 50분까지 받겠습니다!
"태워줄 수는 있지만.. 피탄 면적이 넓어." 아니면 걸어서 올라가도 상관없지만 오물덩어리들이 산 정상에 죽치고 있지만 않으면 좋은데. 라고 디스합니다.
"입맛 떨어지게시리." "자기들은 쓰레기더미에서도 멀쩡하게 식사를 할 수 있다면 비위가 참 좋은 것 같네." 맹금류가 낼 법한 휘익하는 날카로운 소리를 짧게 내고는 같이 올라가자고. 체력이 약하면 올려 줄 테니까. 라고 말하면서 음. 업히면 너무 접촉 면적이 넓나? 라고 말하네요. 응.. 그런 만도 합니다.. 등이 다 드러나 있다이기도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