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얼 들고 와도 당신이 반응해주지를 않는데. 하다못해 인사 한 번도 변변히 해주질 않는데. 이젠 뭘 가져와야 당신과 이야기를 나눠보기는커녕 하다못해 당신에게 한두 마디 정도라도 들어낼 수 있는지를 모르겠는데. 짜낼 걸 다 짜냈는데. 말했잖아. 나는 출퇴근을 해야 하는걸. 조만간 치러야 할 시험도 있단 말이야. 공부까지 해야 돼. 그 남은 시간 쪼개어서 준비하고 써내려간 그것들이 내가 당신을 위해 짜낸 전부였다고. 전부. 전부. 전부란 말이야. 뭔가 다른 데 정신팔기는커녕 기존에 하던 다른 일들 정리까지 해가면서 시간을 만든 거란 말이야.
그걸 더러 나를 보고 내가 게을렀단다. 내가 소홀했단다. 자기를 버려뒀단다.
날 먼저 꿔다놓은 보릿자루 취급한 건 당신이잖아. 당신은 항상 다른 곳만 바라보았잖아. 나한테 해주는 건 내가 이렇게까지 해주었다고 무언가 성가신 일이라도 치른 것마냥 생색내고, 다른 사람에게 해주는 건 당신이 좋아서 기꺼이 먼저 해주었지. 내가 내게 장단을 맞춰달라고 하면 내가 이해해달라 참으라 하면서 나를 찍어눌렀고, 그 사람의 장단에는 신나게 노닐었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게 제대로 된 관계였는지도 모르겠어... 결국 그걸 보고 다른 사람들이 했던 말 기억해? 당신이 거기에 딱히 부정을 안하는 게 정말 명치에 칼이 꽂힌 듯 아프더라.
충분히 소중하다며. 그런데 나한테 왜 그랬어.
나 당신에게 가는 게 두렵고 힘들었어. 오늘은 또 어떤 방식으로 내 가슴을 찢어놓을까. 오늘은 당신의 눈에 띄기 위해 어떤 광대짓을 해야 하는 걸까. 결코 나한테 돌아오지 않을 당신 눈을 위해서 내가 뭘 더 머리에서 짜내고, 밤잠을 설치고, 현생 수면패턴까지 망쳐야 하는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순간 충분히 당신과 같이 있고 싶었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어. 분명히 당신과 보냈던 즐거운 순간들이 있었고 그게 되돌아올 거라 믿었어. 하지만 당신은 나를 싸늘하게 외면하기만 했어. 마치 내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방해라는 듯이. 그래서 나는 그렇지 않다는 걸 확인하고 싶어서, 당신이 관심가질 만한 것을 짜내고 싶어서 그렇잖아도 모자란 시간을 투자했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바보짓들. 그 모든 소용없는 일들. 그것들 모두가... 당신과 함께 보냈던 그 얼마 안 되는 행복했던 시간들이 진짜로 행복했었기에. 그래서 다시 그 순간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어서, 그래서 그렇게 궁상맞게 미련을 부리고, 뭐라도 해보려고 했는데.
당신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쉽고 간단하게 사람을 아파서 견디지 못할 지경으로 내몰아놓고는, 지독할 정도로 자기 섭섭한 것만 중요하더라. 섭섭한 게 있거든 말하라며. 그래서 말했잖아. 그리고 이렇게 됐네. 이제 알겠어? 내가 왜 말을 못하고 있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들이 너무도 소중했는데. 당신과 함께 소소한 행복이라던가 하는 것들 다시 나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리석은 사람은 평생 어리석은 사람으로 살라는 거야?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해도 사람인 이상 죄악감은 가지고 있고 어떻게든 자신의 잘못을 속죄하고 싶어하는 법이야. 그럼에도 너는 나를 평생 떠나보내고 싶은 거라면... 그래, 내가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는지 잘 지켜보라고. 이게 정말 네가 나한테서 원하는 거였었다면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