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건 간에 어떤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그 작품(혹은 불특정다수의 많은 작품과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가상의 작품)의 수준이 자기 입맛에 안 맞는다는 이유로 그 작품의 의의를 따지지도 않고 무논리로 잘한다 못한다를 따지고 앉아있는 사람은 두들겨 팬다는 철학이 있음. 자, 그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하나 있음.
내가 언젠가 어떤 작품은 토사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을 했음. 작가가 자기 속에 있는 걸 비워내려고 쏟아낸 것을 다른 사람에게 억지로 먹이려고 하면 그렇다는 이야기임. 모든 작품은 존재 자체로 존중받을 자격이 있지만 작가 본인부터가 내 작품이 똥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좋아해주길 바란다면 그건 말이 안 되는 거잖음. 양심 없는 것도 적당히 해야지 귀엽지. 나는 그걸 토사물이라고 하는 거임. 내가 봐도 싫은데 남이 보면 얼마나 역겹겠음? 나는 이런 걸 보고 '잘해도 잘했다고 해 주면 안 되는 작품'이라고 하는 거임.
아무튼 기본적으로, 모든 작품은 존재 자체로 의의가 있고 모두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 핵심임.
하나 더 있다. 더 나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습작이면 수준을 따지지 않아도 되겠지만 일단 남에게 보여주려고 했다면 잘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거임. 근데 또 먹는 사람이 먹을만하다 하면 굳이 먹는걸 뺏을 필요는 없다는 거지.
이래서 수준 운운하는 놈들은 들입다 팬다는 거임. 그런 애들은 지가 창작을 하고싶은 생각이 티끌만큼이라도 있으면 다른 사람한테 작가의식이 있네 마네, 프로네 아마네 이러고 있으면 안됨. 들어줘봤자 뭐 대단한 말 하지도 못하고, 지가 대단한 사람인 것도 아니고, 나중에 그렇게 되지도 못하고, 하다못해 한 사람에게만이라도 긍정적인 영향 미칠 수 있나? 아니잖아. 나는 강경파라서, 온이든 오프든 누가 보든 말든 그 어디에서도 예비 창작자가 이런 말을 지껄이는 것을 봐주면 안된다고 생각함. 이건 어디에서도 하면 안되는 말임.
존중. 존중이 기본이야. 존중 못하겠으면 논리라도 챙겨야지. 남의 작품 까고는 싶은데 논리 챙길 능력은 없어? 그럼 맞아야지.
자기 속을 시원하게 비워냈으면 작가 스스로 그것이 남에게 보여줄 것은 못 된다는 걸 인지했더라도 내가 개운해진 것으로 기능을 다했으니 잘 한 것임. 정말 깨끗하게 비워냈다면 거기서 한 단계 성장했을 거고, 조금 모자랐더라도 자기 속을 비워내는 방법을 알았으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근데 이게 예술이라고 착각해버린 것도 모자라서 남에게 보여줘놓고 '너 왜 내가 혼을 갈아넣은 작품 안 좋아해줌? 님 예술 모름?' 이러면 벽돌 날아온다 이말임.
그니까 일단 창작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면 작품을 세상에 내보내는 게 먼저고, 앞서 말한 대로 잘 하는 것은 당연한 거임. 작가는 작품을 내보내고 나면 닥치고 있는 게 맞는 것 같음. 나도 어렸을 때에는 '왜 작품 해설 안 해줌??' 했지만 나이 들어보니 없는 쪽이 더 낫더라.
심플하게 작품 대 작품으로, 가치 대 가치로 논쟁을 하자는 거지 누가 육두문자 섞어가며 남의 작품 욕하랬어? 장난하나.
왠지 누군가는 "그래서 내 속 비워내는 게 나쁘다는 거요?" 할 것 같아서 덧붙이는 부분.
나는 작가가 목표한 작품을 쓰기 전에 속을 충분히 비우는 작업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만큼, 내 속을 게워내는 단계를 중요하게 생각함. 뱉어낸 것이 얼마나 왜곡되었거나 썩어있든, 일단 뱉어내는 데에 성공했다면 자기 실력에 조금은 확신을 가져도 된다고 봄. 예술이 주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한 거고, 예술의 순기능을 체득한 것임. 그리고 자기가 뱉어낸 것을 제3자의 눈으로 보게 됐으니까, 메타인지 능력도 좋아지셨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