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덱이 왜 이러냐... 이상한 거 나도 아는데... 일단 우정 트레이닝 빨리 터뜨리려고 돌 많은 거, 초기 우정도 높은 거 위주로 넣으려고 하다보니 문득 전판에 스탯이 너무 안 찍힌 게 화가 나는거임. 그래서 에라이 국영수로 가자! 하고 슾슽파를 두 개씩 넣었읍니다... 실제로 턴낭비가 많아서 스탯이 잘 안 찍혔고, 25턴 중에 한 반정도는 휴식으로 버린 것 같음...
쫓기는 꿈이라고 하면 개인마다 쫓기는 것일 수도 있고, 잡히고 싶은 것일 수도 있고, 나나 다른 사람의 경솔함이나 스트레스의 표현일 수도 있다는 거임... 이게 정답도 없고 사람마다 의미가 다르다 하는게 괜찮은 접근인 것 같음. 개인적으로 꿈해몽 타로도 여러번 해봤는데 융의 방법이 훨 나음. 그리고 하고나면 훨씬 마음이 편해짐.
그리고 자기 전에 불평 하나 하고싶음. 나 천원샵 엄청 유행할 때 든 생각이 뭐였냐면 '왜 사람들한테 싸고 안 좋은 물건을 쓰게 하는 거지?' 라는 거였음. 물건은 길들여서 오래오래 아껴 쓰는 게 좋은 건데, 쓰고 휙 버리는 거면 누가 물건을 아껴? 그게 처음부터 이해가 안 됐음. 그리고 지금 다이소가 제일 좋다는 사람들 보명 '왜 안 좋은 물건을 좋아하는 거지?' 라는 거임. 내가 얼마나 구시대적인 인간인지 나조차도 감이 오지 않는다...
급발진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원래 물건을 아껴서 오래오래 써야 함. 기분따라 바꾸고 그런 게 아니다 이말이지.
관계도, 내 몸도, 물건도 아무렇게나 막 바꿀 수 있는 지금의 시대가 뭘 보여준다고 생각하느냐면... 그 무엇도 소중하지 않은 시대라고 생각함. 이게 '님들이 쓰레기 막 버리니까 환경이 파괴된다구욧!' 이런 말이 아님. 뭘 아낄 줄 모르는 게 문제라는 거야. 나를 아낄 줄 모르니까 내가 사는 환경도 아낄 줄 모른다고. 아껴서 조금씩 오래 쓰는 감각을 아는 사람이 너무나 적어졌다.
자, 타노스가 전 우주의 인구를 딱 반으로 줄였다고 치자. 그게 옳든 그르든 일단 벌어졌다 치자고. 그럼 여기서부터 질문.
1) 남겨진 사람들은 자원과 환경을 사랑하고 아껴서 오래오래 써야겠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상실을 위로하고 잃어버린 것을 복구하기 위해서 자원을 더 쓰려고 할까? 2) 남겨질 사람들을 랜덤으로 정하는 건 공정성을 위한 거라고 하는데 오히려 지혜로운 사람을 많이 남겨야 자원을 더 아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예를 들어, 어린이가 더 많이 남은 행성은 어쩌지?
극한의 이기주의를 한 방에 해결해주는 게 타노스잖아. 아니야? 제딴에는 우주를 위한 대업이네 어쩌네... 역사 시간에 조금만 신경을 썼더라면 모든 문명에서 가장 많은 자원을 투자해서 가장 많은 자원을 파괴하는 게 전쟁이라는 걸 모를 수가 없는데 어떻게 타노스가 옳다는 말이 나오느냐고.
이거는 심각한 문제임. 환경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말하는 영상에 '타노스가 옳았네요' 이러고 있는 사람들, 만약에 당신들 대졸자면 난 웃음도 안 나올 것 같다...
타노스는 말이다, 백인들 특유의 과잉된 의식-"개도국"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으니 그냥 때려부수고 해결한 셈 치자는, 스스로 도덕적으로 우월하다 착각할 뿐인 폭력-을 비웃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면, 지금의 오락문화가 어디로 얼마나 잘못가고 있는지 증명하는 캐릭터라고 생각함. 사람들 선동하는 꼴 좀 봐라. 이게 MCU를 완성하고 자시고의 문제가 아냐. 책임이 없잖아. 재미있으면 다야? 돈 많이 쓰고 돈 많이 벌면 다야? 정말?
나는 사람들이 타노스를 비난할 줄 알았어. 영화 보고나서 '환경문제 해결 못하면 쓸모없는 사람들 없애버립시다' 하고 있으면 가서 멍청한 소리 한다고 비난할 줄 알았어.
인구는 어느 기점을 지나면서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음. 인구 증가에 크게 기여한 건 녹색혁명이었고, 당시에 인구론을 주장한 맬서스는 크게 비난받았음. 근데 지금 봐라. 늘어난 식량을 어찌할 줄 모르고 또 부족하다지.
그냥 절반으로 줄인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줄여봤자 다시 늘어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거야. 뭔 대업이야. 대업을 핑계로 대량학살 하고싶었을 뿐이잖아. 차라리 돌아가신 아부지가 꿈에 나와서 '아들아, 전 우주의 인구를 딱 반으로 줄이렴' 했다고 하면 좀 더 설득력 있었겠다.
뭐건 간에 어떤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그 작품(혹은 불특정다수의 많은 작품과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가상의 작품)의 수준이 자기 입맛에 안 맞는다는 이유로 그 작품의 의의를 따지지도 않고 무논리로 잘한다 못한다를 따지고 앉아있는 사람은 두들겨 팬다는 철학이 있음. 자, 그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하나 있음.
내가 언젠가 어떤 작품은 토사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을 했음. 작가가 자기 속에 있는 걸 비워내려고 쏟아낸 것을 다른 사람에게 억지로 먹이려고 하면 그렇다는 이야기임. 모든 작품은 존재 자체로 존중받을 자격이 있지만 작가 본인부터가 내 작품이 똥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좋아해주길 바란다면 그건 말이 안 되는 거잖음. 양심 없는 것도 적당히 해야지 귀엽지. 나는 그걸 토사물이라고 하는 거임. 내가 봐도 싫은데 남이 보면 얼마나 역겹겠음? 나는 이런 걸 보고 '잘해도 잘했다고 해 주면 안 되는 작품'이라고 하는 거임.
아무튼 기본적으로, 모든 작품은 존재 자체로 의의가 있고 모두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 핵심임.
하나 더 있다. 더 나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습작이면 수준을 따지지 않아도 되겠지만 일단 남에게 보여주려고 했다면 잘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거임. 근데 또 먹는 사람이 먹을만하다 하면 굳이 먹는걸 뺏을 필요는 없다는 거지.
이래서 수준 운운하는 놈들은 들입다 팬다는 거임. 그런 애들은 지가 창작을 하고싶은 생각이 티끌만큼이라도 있으면 다른 사람한테 작가의식이 있네 마네, 프로네 아마네 이러고 있으면 안됨. 들어줘봤자 뭐 대단한 말 하지도 못하고, 지가 대단한 사람인 것도 아니고, 나중에 그렇게 되지도 못하고, 하다못해 한 사람에게만이라도 긍정적인 영향 미칠 수 있나? 아니잖아. 나는 강경파라서, 온이든 오프든 누가 보든 말든 그 어디에서도 예비 창작자가 이런 말을 지껄이는 것을 봐주면 안된다고 생각함. 이건 어디에서도 하면 안되는 말임.
존중. 존중이 기본이야. 존중 못하겠으면 논리라도 챙겨야지. 남의 작품 까고는 싶은데 논리 챙길 능력은 없어? 그럼 맞아야지.
자기 속을 시원하게 비워냈으면 작가 스스로 그것이 남에게 보여줄 것은 못 된다는 걸 인지했더라도 내가 개운해진 것으로 기능을 다했으니 잘 한 것임. 정말 깨끗하게 비워냈다면 거기서 한 단계 성장했을 거고, 조금 모자랐더라도 자기 속을 비워내는 방법을 알았으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근데 이게 예술이라고 착각해버린 것도 모자라서 남에게 보여줘놓고 '너 왜 내가 혼을 갈아넣은 작품 안 좋아해줌? 님 예술 모름?' 이러면 벽돌 날아온다 이말임.
그니까 일단 창작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면 작품을 세상에 내보내는 게 먼저고, 앞서 말한 대로 잘 하는 것은 당연한 거임. 작가는 작품을 내보내고 나면 닥치고 있는 게 맞는 것 같음. 나도 어렸을 때에는 '왜 작품 해설 안 해줌??' 했지만 나이 들어보니 없는 쪽이 더 낫더라.
심플하게 작품 대 작품으로, 가치 대 가치로 논쟁을 하자는 거지 누가 육두문자 섞어가며 남의 작품 욕하랬어? 장난하나.
왠지 누군가는 "그래서 내 속 비워내는 게 나쁘다는 거요?" 할 것 같아서 덧붙이는 부분.
나는 작가가 목표한 작품을 쓰기 전에 속을 충분히 비우는 작업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만큼, 내 속을 게워내는 단계를 중요하게 생각함. 뱉어낸 것이 얼마나 왜곡되었거나 썩어있든, 일단 뱉어내는 데에 성공했다면 자기 실력에 조금은 확신을 가져도 된다고 봄. 예술이 주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한 거고, 예술의 순기능을 체득한 것임. 그리고 자기가 뱉어낸 것을 제3자의 눈으로 보게 됐으니까, 메타인지 능력도 좋아지셨겠군요?
중2병 걸리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음. 중2병에 걸려서 만든 것도 나쁘지 않음. 그런데 만년 중2병(에서 홍대병으로 진화한) 환자인 것과 중2병 걸린 채로 만든 것을 남에게 들이밀면서 좋아해달라고 하면 그건 잘못된 일임. 언제까지 ASK로 살거냐고... 중2병 졸업하라고.
우울한 건 축축 처져서 얼마나 안 좋냐. 특히 그림이랑 음악이랑 소설은 그런 걸 지양해야 함. 읽는 사람한테도 전염된다고. 그것도 사고회로 엄청 깊숙한 곳까지 빠르게 침투한다고. 거기서 부정적인 사고로 자리를 틀고 앉아서 죽어도 안 나감. 차라리 분노에 찬 게 낫다. 그냥 화르륵 불타버리는 건 개운하기라도 하지... 우울한거는 어유, 말도 말아야지. 바다 깊은 곳에 가라앉는데 죽지도 않는다고. 그냥 거기 갇히는 거임.
그런 의미에서 사회적 약자를 다루는 소설을 축축 처지게 막 고통받는 사람들의 모습만 줄창 보여주는 건 읽는 입장에서는 오히려 '지능적인 안티인가? 그냥 그들을 엿먹이려고 쓴 건가?' 그런 생각이 많이 듦. 차별은 차별이고, 고통받는 삶은 또 별개고, 거기서 행복한 날이 있냐 없냐는 또 별개라고. 왜 그걸 뭉개서 하나로 만듦? 차별이 차별받는 사람들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들어서 행복한 날은 하루도 없다는 식으로 글을 쓰느냐고. 이게 대놓고 비하하는 사람들이 하는 거보다 한 백배는 더 나쁜 프레임임. 주인공이 맨날천날 자기 상처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그걸 중심으로만 사건을 해석하고, 거기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데 이게 프레임이 아니면 뭐임. 뭘 보여주고 싶었던 거임?
그리고 A받은 아그네스 타키온이 레전드 레이스 이겨줬다!! 추입 주저의 매력을 제대로 봤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추입주저 터지자마자 후방에 있는 애들이 사아아악 뒤로 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 그럴 줄 알았어. 앞에서 사고 나면 뒤에 있는 애들도 영향 받을거라고 생각했지...
공략 보지말고 즐겜하자였는데 팀레는 재밌어서 요새 팀레 노하우는 좀 보려고 함. 이제 4패 당해서 30만포 받고 지는 것도 모자라서 스킬이 잘 안 터지는지 25만포? 를? 받을 때가 잇?음... 팀레의 매력이라면... 1, 2, 3착 다 먹고 퍼펙트로 이길 때의 쾌감...? 킹이 진짜 실전에 강함. ura 성적은 그닥이었는데 팀레 보내니까 엄청 잘달리네.
요즘 애들이 노엘 갤러거 인터뷰 태도 왜이러냐고 욕하는거 보면 그냥 너무 귀엽고 웃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거 엄청 점잖아진 건데... 애초에 훌리건 출신인데... 걍 노엘이 누군지도 모르고 욕하는 것 같음
J : 청새치씨는 종교 안다녀요? 연말에 뭐 그런거 안가나? 나 : 네... 어렸을 때 주일학교가서 쫓겨난 뒤로 흥미가 없어졌네요... J : 아니, 왜?! 나 : 예수님 안 믿으면 지옥간다잖아요. 그래서 산골짜기 살아서 예수님 몰라가지고 못 믿은 착한 사람도 지옥가냐고 했더니 무조건 예수님 믿어야 천국간다고, 안그럼 지옥가는 거라고 그랬거든요. 제가 그건 말이 안 된다고 했더니 선교사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해지더니 나가라고 그랬어요. J : 와... 그거 주입식 교육의 폐해다... 나 : 그게 초등학교 5학년이었으니까 더 웃기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J : 아니 그런 사람한테 설명을 잘해줘야지! 나 : 그러니까 말이에요!
그럼 왜 덤볐느냐. 무논리인 것도 열받는데 무조건 지옥을 가네, 무슨 벌을 받네 하면서 강압적으로 말하는 게 꼴받아서 덤빈거임. 근데 그 사람도 배운 대로 말했겠지. 배운대로만 수업하니까 뭐 산골짜기의 순박한 농부가 예수님 몰라서 천국에 갔든 지옥에 갔든 그런거 생각이나 해봤겠어? 그래서 주입식 교육의 폐해인 것도 맞고, 그래서 나같은 놈들한테 그냥 지는 거임.
생각해보면 나는 교회에 대한 좋은 경험이 없어서 좋은 인식도 없는 것 같음. 차라리 그런 문답에는 스님들이 훨 강했음. 그야 당연하겠지. 그 사람들 수행방법부터가 그런 식이니까. 나이를 먹었으면 나잇값이라는 걸 좀 해야하니까... 종교인 괴롭히는 건 그만 둔지 오래다. 그냥 그렇군요~ 하면서 넘어감.
내쪽은 상대를 무시하고 있는 셈인데 이걸 상대는 존중받는다고 느끼니까... 이걸 친한 셈 치자고 대충 넘어가버리면 벽 같은 게 생겨버린다. 이해하는 척, 존중하는 척 하는 게 언젠가는 들키거든. '우리 친구지?' 하고 가까이 오려고 하는데 벽에 쾅 박고 나면 서로 어리둥절 하게 되는 것임. 호환성 이슈로...
>>147-149 (찬) 어차피 이정도로 성질내지 않으면 알아듣지 못하니 좋은 말보다 효과적이다.
진상이 왜 진상인가. 그들은 떼를 쓰는 방법 밖에 모른다는 것이다. 혹은 다른 방법보다 떼를 쓰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을 체득한 사람들임. 사람들은 쉽고 편한 길을 원하고 나만 특혜를 얻을 수 있다면 더욱 그것을 원한다. 예를 들면 카페에서 다른 사람들은 정수기나 물통에서 직접 물을 따라 마시지만 나는 카운터에 가서 따뜻한 물을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식이다. 다른 예도 있다. 영화가 시작되었어도 매니저 나오라고 하고 떼를 쓰면 환불을 받거나 관람권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아버린 경우도 있었다. 당연하지만 대개 단골들이 이런 짓을 한다. 해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강경하게 안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수밖에 없다. 그들은 경험으로 알게 된 것이니까, 이쪽도 진상으로 나가서 전혀 대화가 통하지 않으며 불쾌하다고까지 느낄 정도가 되면 포기할 수밖에 없다. 우습게도 진상은 몰려다니는 경우보다 혼자 다니는 경우가 많으니, 손님 잘못은 손님 잘못이라고 대놓고 말해버리는 편이 낫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진상들은 자기가 진상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일부러 만만한 곳으로 가서 진상을 부리기 때문이다.
진상들이 난동을 부린다고 해서 이쪽도 난동을 부리는 것은 단지 소동을 더 키우기만 할 뿐이다. 폭언을 들었다고 해서 폭언으로 상대하거나, 과한 요구를 들었다고 해서 손님을 하대하거나 하는 방법은 올바른 방법이 아니며 매번 종류가 다른 진상에게 그런 식으로 대응해봐야 내 정신력만 일찍 소모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대개 그렇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많은 경우에 진상들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물어봐주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들어주면 진정되기도 한다. 그럴 때 적당한 설명을 해주면 납득하고 돌아가기도 한다. 이런 평화적인 해결을 추구하는 것이 모두에게 좋은 길이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는 없어도, 말이 통하지 않는 진상이라면 친절하면서도 단호하게 거절로만 일관해야 한다. 심각한 진상들은 범죄자로 진화하는 경우도 더러 있기 때문에, 이쪽도 진상이 되어버리는 것보다는 정도를 지키는 편이 일을 키우지 않는다. 만의 하나를 고려하여 신사적인 거절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다.
다른 예시. 옆에서 서비스 더 달라고 난리치고 있으면 나는 '서비스는 보통 어떻게 나와요? 금액대별로 나가는 건가요? 아니면 프로모션 기간이 따로 있나요? 써보고 싶은 제품 있었는데 혹시 그거 받을 수 있나 해서요~' 이렇게 함. 그럴 때 말도 나긋나긋하게 하고 천천히 물어봄. 아 진짜요~? 정말요~? 저는 괜찮아요~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이런 거 하면 알아서 아닥함 ㅇㅇ
진상한테 가서 '거 예의바르게 하쇼' 이런거 할 필요 없음. '어우 시끄러워' 이러는 것도 걍 시비붙이는거임. 도움 안 됨.
아니면 계산대에서 그러고 있는거면 '아 저 혹시 죄송한데... 저 결제만 하면 되는데 저 먼저 하면 안될까요...? 제가 버스타야돼서... 아이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러고 계산만 얼른 하고 나오든지 자신 있으면 포인트 적립까지 해가면서 시간을 좀 끌어주든지... 이게 성질내다 끊기면 이어서 화내기가 좀 그렇거든 ㅋ
>>151 지나가던 현직 목사님 딸래미임 이제는 답을 들었을지 아니면 아직일지는 모르겠으나 그냥 아는 주제라서 풀어봄.
산골짜기에 살아서 기독교에 대해 모르던 사람도 죽으면 지옥가느냐? -> yes
그 이유를 이해하려면 기독교에서 죄가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함. 많은 비 기독교인들이(그리고 많은 기독교인도...)오해하는것중 하나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어서 인간이 지옥에 간다는것임. 하지만 실제로 기독교 교리에서는 그렇지 않음. 선악과를 따먹은건 그냥 최초의 죄이자 인간 세상에 죄를 들여온 원인임. 너네 조상이 선악과 먹었으니 너도 연좌제로 지옥가라 이게 아닌거지. 저 사건으로 인해 인간세상에는 죄라는 개념이 생김. 세상에 단 한번도 거짓말 한적이 없고 남을 미워한적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거임. 저 사건을 계기로 죄라는 개념이 생기고 인간이 죄를 지을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
그런데 이제 그 죄라는게 선행으로 상쇄되는것이 아님. 별개로 쌓이는거지...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있음. 기독교의 신, 즉 하나님은 죄와 상극인거임. 그러니까 죄를 짓게된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할수 없는 존재가 됨. 천국은 하나님의 집이고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할수 없으니 천국에도 못감.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했으므로 천국에 들어갈수 있는 방법을 알려줌. 죄를 짓지 않은 순결한 짐승에게 네 죗값을 대신 치르도록 하라. 이게 구약시대의 제사임.
시간이 흘러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남. 이것은 신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인간세계에 내려온 것임. 그리고 선언함. 너희 인간의 과거와 미래의 모든 죗값을 내가 대신 지겠다. 그렇게 십자가형을 받고 죽고, 3일만에 부활함.
그렇게 인간들은 구약시대의 제사를 짓지 않고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는 구원받았다고 믿고 선언하는것만으로 천국에 갈수 있게 됨.
이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지옥에 갈수밖에 없는 이유임. 그래서 하나님은 또 이야기함. 나를 믿는 너희가 세계 곳곳을 다니며 아무도 억울하게 지옥에 가지 않도록, 예수의 구원을 알려 모르는자가 없게 하라
이게 기독교 교리가 비종교인한테는 썩 납득이 안 되는 게 치명적인듯. 예수님 안 믿으면 무조건 지옥이라고 우기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언뜻 듣기에 억까라고 생각됐는데 오히려 그 반대군. 동시에 '예수님은 사랑입니다'도 이해됨ㅋㅋㅋㅋㅋㅋㅋㅋ 예수님이 대가를 이미 치렀기 때문에 개인은 그걸 인식하는 것만으로 천국에 갈 수 있다 이건가...
그간 기독교는 선행이나 해탈 등 개인의 실천이나 깨우침에는 무관심하다고 생각해오긴 했었음. 신의 절대적인 사랑이 있으므로 개인이 혼자 머리 싸매면서 수행할 필요를 강조하진 않는 거군...
>>171 아 일단 다른 질문하기 전에 내가 이해한 게 맞는지부터 물어보고 싶은데... 예수님을 믿는다=천국행 이라는 것은 천국으로 가는 길에 진입장벽 따위 없으니 예수님을 믿고 교리를 실천해라~ 라는 것이 맞음? 이건 진짜 power 요약본을 읽고 한 생각이니까 대충 뉘앙스만 맞았는지! 궁금함
ㅇㅖ 질문 받을수는 있는데 내가 신학 전공이 아니다보니 저도 몰?루가 다수 나올수 있는 점을 감안을...
진입장벽은 기독교 내에서도 좀 의견이 다른것같아. 많은 교회에서는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간다고 가르치지. 하지만 한쪽에선 그냥 믿기만 하는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기도하고 회개하면서 예수님,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져야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해. 개인적으로는 후자가 맞말이라고 생각하는게, "뭐? 신이 내 죗값을 대신 치렀다고? 그럼 난 죗값 없이 개 막살아도 천국간다는 뜻이지? 겔겔겔" <- 이건 좀;; 근데 개인이 뭔가 수양을 해서 어떤 경지에 다다라야한다 그런 종류의 입구컷은 없어.
선행에 대해서는 좀 천국 입구컷때문에 해야한다보다는 신이 우리를 사랑하여 우리가 구원받았는데 우리도 마땅히 타인을 사랑해야하지 않겠는가 느낌이 강해. 성경 말씀(= 하나님 뜻)에서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등등 사랑을 강조하는 구절이 많이 나오긴 하는데 이거 안하면 너네 천국 입구컷이에용 수고 같은 느낌은 아니었고...
>>175 후자가 맞는 말이지. 인간은 피차 서로 죄인이긴 매한가지고,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 말곤 없다... 라는 하는 건데 설마 그 실천이 일회성일 리가! 음 그건 당연히 아니지. 아 그리고 내가 하는 질문은 다 '기독교는 어떤 삶의.태도를 가르치는가' 이당. 신학적이고 디테일한 질문... 저도 몰?루이기 때문에 그런 건 없을 예정.
암튼 질문입니당. 이 모든 것을 사랑으로 극복하라고 하나? 하나님과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이거 하나로 악마가 유혹하든, 악한 이웃이 나를 괴롭히든, 모종의 이유로 내 인내심이 시험받는 모든 때를 버텨야 한다... 고 하나요...?! 아니면 다른 것도 필요하지만 사랑이 핵심이다! 인건가. 왜냐믄 살아가는 데에는 사랑 말고 다른 것도 좀 많이 필요하더란 말이지. 흠... 그런 다양한 가치를 대천사나 성인들이 맡고 있는 거임?
>>177 왠지 이 모든 것에 대한 답이 예수님 설교에 답이 다 나와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든다... 이게 내가 줄곧 궁금했던 부분이기도 한데... 내가 얘기한 '사랑으로 모든 것을 버틸 수는 없다' 라는 건 가치나 신념으로서의 사랑을 끊임없이 제련하는 데에는 엄청난 고찰과 정신적 수행이 필요하잖음? 그런데도 개인의 노력은 그렇게 강조되는 느낌이 없었음. 개인의 노력을 완전 배제하면 >>175의 예수님만 믿으면 천국이 보장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의견임. 그래서 이 모든 것을 사랑으로만 버티나? 라고 질문하게 되엇읍니다.
아, 혹시 이것도 그런 정신적인 깨달음까지도 예수님이 대신했으니까 니네는 정신력 그렇게까지 안 써도 된다라는 거면... 오... 좀 놀라울지도.
믿기만 하면 천국간다는게 아마 이제 막 들어온 아무것도 모르는 새신자한테 복잡한 이야기 하기 힘드니까 그냥 간단하게 이야기하는거라고 생각함. 근데 이제 믿는다는게 지식으로서만 알고있는게 아니라 그 사랑이 무엇인지, 어째서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것인지 제대로 납득하고 받아들여야 진정한 믿음인거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후자가 따라오는게 아닌가 싶어.
인내심이 시험받아도 버텨야하느냐 -> 버텨보긴 해야함.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 네가 오른뺨을 맞는다면 왼뺨도 내어줘라 하는 말씀이 있거든. 방향이 반대인가 헷갈리는데 아무튼. 남들이 옅같이 굴어도 같이 엿같이 굴지 말고 용서하라는 뜻임. 아무리 주변에서 지랄을 하든 엿같이 굴든 그마저도 용서하고 사랑하도록 노력하라는게 기본이야. 하지만 노력한다고 다 되면 그게 인간인가 신이지. 기본적으로 그러려고 하는 노력은 놓지 말되, 결국 실패하고 죄를 짓고 넘어지더라도 다시 신 앞에 나와서 회개하면 용서하겠다는것.
설교 단골 썰중에 이런게 있어.
일생을 신실하게 살던 남자가 죽어서 하나님 앞에 갔다. 거기서 남자는 자신이 걸어온 인생의 발자국을 보았다. 거의 모든 순간에서 발자국은 두 사람의 것이었지만 남자가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만큼은 발자국이 한 사람의 것 뿐이었다. 남자는 화가나서 하나님에게 말했다. "저걸 보세요. 제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던 때에 발자국이 한개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저를 떠나신게 아닙니까?" 하나님은 대답했다. "아니다. 저 자리는 내가 너를 업고 걸어간 자리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의미로 자주 쓰이는 이야기인데 삶의 태도와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 신과 인간이 같이 노력해야 한다는 거지. 인간이 기도도 안하고 회개도 안하고 범죄 저지르고 막나가도 아무튼 기독교인이니 천국행 시켜주는건 아니다. 그렇다고 인간 혼자서 모든것을 버텨나가야 하는것도 아니다. 인간은 인간이기에 죄를 지을수밖에 없고 누군가를 미워하기도 하고 인내심이 바닥날수도 있다. 언제든 다시 일어나기만 해라.
하지만 사랑 외의 가치를 말하지 않는건 아니야. 솔로몬은 유명하니까 아마 알거야.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네가 바라는 한가지를 주겠다고 했고 솔로몬이 지혜를 달라고 청해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다더라 하는거. 사랑이 가장 중요하긴 하지만 사랑만이 전부라면 지혜로 유명한 솔로몬이 성경에 실리진 않았을걸? 지혜도 중요한 가치라고 여겨지기에 솔로몬이 성인으로서 성경에 등장하게 된거지. 지혜 말고도 성경에서는 여러 가치를 제시하고 있어. 전부 나열하기는 귀찮기도 하고 거의 하루종일 떠들어야할수도 있어서 생략
또 무조건 호구같이 당하고 살아라도 아닌게, 적그리스도에 대해서 가차없는 심판이 내려지는 부분도 상당수 존재하거든. 소돔과 고모라의 멸멍이라던가. 또는 구약시대 이스라엘과 타국에 전쟁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승리로 이끄신다던가.
하긴, 나도 말하고 나니까 신자들을 수행하라고 채찍질 할 것 같았으면 이거는 신자를 키우는 게 아니라 메시아를 양성하는 거겠다 싶긴 했음. 기독교... 보기보다 진입장벽 낮거나 거의 없게 설정이 되어있군. 일단 (올바른)신자이기만 하면 무조건 해야하는 것도 없고 걍 니 능력 닿는 데까지 해라~ 라는 점이 상당히 관대한 부분이군용?
자 그러면 ㄹㅇ 마지막 질문입니당. 그런 삶의 태도를 다루는 부분 큼직한 갈래에서 한 두 군데 짚어본다면 어디를 추천하겠음? 일단 그 부분만이라도 읽어보려고 함.
흠... 추천이라... 이건 좀 생각해봐야할듯. 성경이라는게 좀 예언서적인 경향이 전체적으로 깔려있단말이지. 구약은 신약에서의 예수님의 등장을 예언하는 빌드업이라거나 하는 식으로. 서로 다른 시대가 유기적으로 엮여있으니 한 부분만이 아니라 여러 부분을 같이 봐야 제대로 이해할수 있는게 꽤 많아. 그래서 단독으로 봤을때 괜찮을만한 부분을 추리려면 나도 좀 다시 훑어봐야할것같은데
왜 애가 사라졌어. 말 떨어지기 무섭게 벌써 찾으러 떠난 것임...? 장문의 레스가 올 것만 같은 이 불길한 늑김 뭐야... 잠시만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깐... 잠깐만!!!!!!! 돌아와!!!!!!!! 그냥 인상적이었던 부분만 대충 기억나는 대로 말해줘도 됐다곸ㅋ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사랑으로 채워진 풍족한 삶과 절대적인 은혜에 기대는 안정을 모를지라도 나에게는 비참하지 않은 하루를 선택할 권리와 내 손으로 내 삶을 망치지 않을 힘과 불행에 안주하지 않을 용기가 있다. 사실 살아있는 데에 너무 많은 정신을 쓰기 때문에 행복할 여유는 없는 것이 아닌가 싶기는 해. 그걸 부정할 수 없을 때쯤 어디든 종교에 귀의하게 될까? 흠.
그간 기독교인들을 좀 귀찮게 한 이유를 나도 몰랐는데, 대학와서 동양사상 수업 듣다가 알았음. 한반도는 주로 기복신앙임. 음... 겁나 쉽게 사적인 복을 빈다는 말임.
기복신앙이랑 기독교가 섞여서 천국에 가려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특이한 형태가 된 거라고, 외국에서 한국만 보이는 특이한 기독교 형태에 관해서 연구도 한다고 들었지... 내생각에 기독교가 박해를 받아서 섞이지 않았을까 싶다. 선교사들이 숨어지내는 동안 현지화가 되어버린 거임. 원래 교회를 제대로 세워서 교회의 시스템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현지인들이 이해하는 형태로 약간 변한 거지. 어... 약간보다는 좀 많은가?
거기 데리고 갔던 애가 계속 같이 가자고 해서 '나는 내가 알아서 살거니까 교회는 너나 다녀라' 했더니 타락했네 어쩌네 사탄이네 뭐네 해서 오... 기왕이면 용이라고 해주지 않겠니... 이러고 입을 턴 것이 레전드임.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에게 자유의지 주셨는데 왜 내가 니네 교회를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니~' 로 시작해서 걔를 한참이나 괴롭히고 있었다는 괴담이야... 나는 어떻게 이런 모욕적인 말만 골라서 쓸까. 아주 고민이야 고민...
문장도 옛날 번역이라 어렵게 되어있고 비유도 많고 읽기 쉬운 글은 아니지. 간단한 일화도 막 두세번씩 곱씹어야 뭔말인지 이해할수 있거든. 어떻게 해석하는건지 예를 들어주면 조금 도움이 되려나 싶어서 하나만 가져와볼게.
한 장을 통째로 가져오는건 글자수를 너무 많이 먹으니까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고 대신 위치를 알려줄게.
대충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이 사마리아 지방을 지나가다가 우물가에서 쉬게 돼. 그때가 6시 쯤이었는데 한 여인이 우물에 물을 길러 나와. 오래 걸어와서 지쳐있던 예수님은 여인에게 물을 조금 나눠달라고 해. 하지만 그때 당시에 유대인은 사마리아를 천시했거든. 그래서 원래 유대인들은 우리를 상종도 안하더니 목마르니까 물달라그러네? 하고 거절당하지. 중간 문답은 대충 생략하고, 예수님은 여인에게 말해. 너는 오히려 내게 물을 달라고 구해야 한다. 이 우물의 물은 마시면 다시 목마르지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여인은 물동이를 내려두고 마을 사람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지.
자 여기서 마시면 목마르지 않은 물이 복음을 의미한다는건 추측하기 쉬워. 하지만 그걸 알아도 좀 이상하잖아? 복음을 들으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거라고 말은 해도 기독교인이라고 물을 마시지 않고 살수 있는건 아닌데. 아무리 들어도 뜬구름잡는 소리같은데 그걸 듣고서 여인이 갑자기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됐다고?
사실 여기서 핵심은 다른데 있어. 이 일화에서는 여인이 재혼을 6번 한 사람이라는게 나오거든. 그런데 현대에도 이혼하고 재혼하는게 쉬운 일이 아닌데 그때 그 시절이면 어떻겠어. 자세한걸 알수는 없지만 여인이 계속 자신의 진정한 '남편'을 찾고자 재혼을 반복해왔다는건 추측할수 있지. 인간관계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는거야. 예수님은 그 부분을 지적한거지. 너 지금 아무리 재혼을 반복해도 목마를 뿐이지 않냐.
사실 여인은 예수님한테 남편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았어. 그도 그럴게 외부인이고, 초면이고, 심지어 유대인인데 자기 사정을 줄줄 말할리가 없지. 오히려 남편이 없다고 말했거든. 그런데 예수님이, 이전에 남편이 다섯이 있었고 지금 남편도 남편으로 생각하지 않는구나? 하니까 놀란거지. 말도 안했는데 정확하게 맞춘거잖아.
이때 마을로 먹을걸 구하러 떠나있던 제자들이 돌아와. 제자들은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는걸 보고도 왜 이방 사람과 대화하세요? 이러지 않았단말이야. 비록 속으로는 이상하게 여겼어도. 그런데 아까도 말했듯이 당시 유대인은 사마리아인을 천시했단말이야. 그게 여인에게 알려준거지. 이들의 신은 우리가 이방인이라고 차별을 두지 않네?
그 모든게 맞물려서 여인으로 하여금 예수님은 선지자고 그들의 신은 진짜구나 하고 생각하게 만든거지.
자 이렇게 간단한 일화를 하나 해석해봤는데 청새치씨가 성경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네. 좀 어렵지... 많이 어렵지...
뭐 경전이니까 그런게 아닐까. 해설서가 아니잖어. 성경은 그 시대에 쓰인걸 보존하고 번역만 해서 내놓은건데 해설은 후대에 이뤄지는거니까. 또 성경은 예언서적인 면모가 있다고 했잖아? 기독교의 역사가 긴 만큼 많은 연구가 있었기에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해석도 많지만 예언서기에 한가지 해석으로 단정할수 없는 부분도 분명히 있고.
오늘 심심하고 할짓 없는 시간에 좀 생각해봤거든. 지금의 청새치씨한테 추천해줄수 있을만한 책이 하나 있는데 한번 고려해보면 어떨까 싶어.
소개할 책은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라는 소설이야. 아니 갑자기 왜 소설? 그 이유는 이 책이 악마인 스크루테이프가 인간들을 현혹하는 방법에 대해 조카에게 편지로 조언을 해주는 내용을 담고 있거든. 악마의 입장에서 서술된 만큼 상당히 악마적인 내용이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살아야할지에 대해 아주 잘 담고있지. 반대로 하면 되니까!
청새치씨가 궁금해하는게 기독교의 구원이 다른 종교에 비해서 너무 쉬워보이는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에 대한 궁금증이라고 이해했거든. 내가 이해한게 맞다면 이 책은 아주 좋은 대답이 될수 있을거라고 생각해. 악마가 기독교인을 유혹하는 내용이라면 기독교인이 살면서 겪는 어려움이 그대로 들어있지 않겠어? 또 소설책인 만큼 성경에 비해 이해하기 쉽게 쓰여있지.
하지만 조금 추천해주기 망설여지는 부분도 있어. 이 책은 이걸 읽는 독자가 성경 내용을 알알고있을것을전제로 쓰여진 책이란거야. 이 책만 먼저 읽었을 때는 그게 뭔데? 싶을 부분이 없지 않거든. 그리고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거꾸로 뒤집는건 해야 할 행동의 일부이지 전부가 아니라는것도 있어. 너무 단편적인게 아닌가 싶은거지. 앞의 단점과 일맥상통하는거야. 독자가 성경을 알고있다는걸 전제로 쓰였다...
이러한 우려사항이 있음에도 상술한대로 이 책은 꽤 괜찮은 책이거든. 장단점이 있으니 청새치씨가 판단해봐. 이걸 읽을지, 성경을 읽을지, 이걸 읽고 성경을 읽을지, 성경을 읽고 이걸 읽을지, 그리고 기타 등등.
내 생각엔 기독교의 구원이 쉽다기보단... 뭐, 당연한 이야기지만 구원은 쉬운 길일 수가 없다는 거 알잖냐?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고... 성경이 신자들에게 말하는 걸 보면 과정지향적이라기보다는 목표지향적이랄까? 일단 나는 그렇게 이해가 됐음. 내가 지금 잠언을 한 30% 정도 읽어가는데 어떤 주제를 설명할 때 취하는 기본적인 구조는 '뭐는 되고, 뭐는 안 된다' 이거고, 매 장마다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하면서 삶의 방식을 엄청 조금씩 가르치는 것 같단 말이지.
분노를 다루는 것만 봐도 잠언 14장 17절에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라 하고, 15장 1절에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하면서 분노와 관련된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라고 나는 이해했는데, 그 왜, 배우는 과정에서 다들 그렇듯이 '들으면 그렇구나 하는데 막상 닥치면 잘 모르는' 상태가 되는데 성경이 이걸 도와주진 않더라고. 그래서 아까 설교를 듣는다는 것이 전제되냐고 물어본거임. 아니면 해설서를 같이 보는 게 좋다던가?
무튼 기독교의 구원이나 성경이 쉽다고 생각하진 않고요... 위의 이유로 진의를 오해하기 쉽다고는 생각함.
이런 생각이 왜 들었나 생각해보면 내가 동서양의 경전을 골고루 손대서 이것저것 비교가 되니까 그런 것 같음. 일단 주역이랑 불교 경전을 보면 한 가지의 사고 흐름을 쭉 보여줌. 주제보다도 흐름을 더 중요시한다는 느낌이랄까... 특히 불교의 경전은 생각하는 법을 기르고, 질문하도록 한다면 성경은 한 줄 한 줄이 세세한 행동 강령이라 신자가 고민할 부분을 줄이는 방향으로 보임. 요구사항이 적다고 말한 건 이런 부분 ㅇㅇ
예수님 믿으면 천국 가는 거긴 하지만 당장 천국 갈 건 아니니까 행동하는 건 이러이러하게 하거라~~~ 저런 건 안 된다~~~~ 그러면 천국 갈 수 있으니 딴생각 말거라~~~~~~ 라는 느낌.
분노가 나쁘다는건 알겠는데 실제로 닥쳤을때 어떻게 해야하는지 실전 노하우를 알려주진 않는것같다는거지? 일단 대답하기 전에 이건 내가 아는 부분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라는거 밝혀둘게. 왜냐면 기독교는 교파가 상당히 많거든. 근데 난 다른 교파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까 내가 모르는 부분을 일반화할수는 없어서.
난 가족이 전부 침례교고, 침례교 교회 위주로 다녔고, 친구도 침례교야. 그런 내가 겪은 침례교 교회의 분위기는 '그런거 안알려준다'야. 침례교가 스스로 깨닫는걸 중시하는 경향이 있거든. 여기는 공식적으로 못박아진 교리도 없어. 물론 성경에 기반하여 기독교의 핵심이 되는 부분은 당연하게 모든 기독교가 공유하는거고. 교리가 없다는건 기독교인은 술을 마셔도 되느냐 마느냐같은 실천적인 부분 말하는거야. 자기 자신이 성경을 읽고, 기도해서 얻은 답을 따르는걸 기본으로 해. 남이 시키는걸 마냥 따라가는건 진정한 자의가 아니라는거야. 자기 스스로 결단하고 행해야 가치있다는거지. 물론 한국에서 교회는 담임목사 한명이 자기 교회를 맡아서 운영하기때문에 같은 교단이라도 성향이 좀 달라지는 경우가 있어. 그래서 신천지같은 사이비가 우리 기독교에용 하고 속이기도 쉬운거고... 뭐 이건 옆길로 새는거고 아무튼 모든 케이스를 일반화할수는 없다는 이야기야. 경향성을 따졌을때 침례교는 자율적으로 두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이해하면 될거야.
내가 작품 감상할 때 주가 되는 것들 다음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주변 인물이다. 헤어질 결심 왜 칭찬하냐... 주연 둘에 조연 여섯. 주연 하나에 조연 셋씩 달아서 딱 양 쪽의 사연이 어떤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정도로 적당해서 좋았다.
주변인물을 잘 설정해야 주인공이 잘 드러나는 것 같음. 그래서 한국 드라마는 재미가 없어. 조연들이 영혼이 없거든. 그냥 사건으로만 스쳐지나가지, 그들도 어떤 욕구가 있는 인물로 다루지 않는다. 혹은 또 조연들의 욕구를 너무 존중한 나머지 이야기가 산으로 가버리기도 함.
한국에서 작품하는 사람들... 특히 대중문화산업에 기여하는 사람들은 주인공이 이야기 끝까지 가지고 갈 가치나 특성을 쥐어준다고 생각함. 그래서 밋밋하고 재미가 없는 거 아닐까? 주연들과 조연들 사이의 관계도 상호작용도 너무 약한거임. 어쩌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은 게 아닐까? 그런 게 피곤하니까 작품으로도 보고싶어하지도 않는 건 아닐까?
생각해보면 진짜 웃기고 괜찮았던 드라마 영화들은 다 인물들이 엄청난 변화를 겪었음. 여기서 변화란 캐릭터의 속성이 아예 변해버렸다는 거임.
<38사기동대> 백성일은 청렴한 세금징수원이었는데 EQ 쩌는 사기꾼이 다 됐고, <극한직업> 팀원들은 치킨집 경력이 생겼고, <정직한 후보> 주상숙은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음. 한국 코미디만 봐도 일단 이 정도. 계속 칭찬하는 <헤어질 결심>은 무엇이든 해냈던 인물들이 사랑 앞에 좌절했지.
<그린 북>의 주연 두 명은 절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서로와 가장 친한 친구가 됐고, <멘체스터 바이 더 씨>의 주인공은 흔한 멍청이들처럼 편하게 살다가 사고 이후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혼자 짊어져야만 했다. <아이, 로봇>의 주인공은 안드로이드를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졌음.
>>249 레나는 연애도 해야되고, 제국의 만행을 알려야 하고, 자기 존재도 인정받아야 하고, 근데 인성쓰레기 애비는 잘 죽지도 않고, 제국 공작들이랑 수 싸움도 해야되고, 유니랑 꽁냥꽁냥하고 귀여운 모습도 보여줘야 하고... 다재다능해서 대리만족은 됐는데 그 과정에서 캐릭터가 영 어색해졌단 말이죠. <필리아로제>는 어리광쟁이 약탈자가 자기 운명을 받아들이고 지혜로운 예언자로 거듭났는데 <레지나레나>에서 제일 많이 변한 인물은 아마 이우라 동생맨이 아닐지. 나머지는 원래 그런 인간이었거나(동부공, 남부공), 그런 인간으로 돌아왔거나(황제 남매, 이우라), 약간 성장했거나(엔지, 유니) 하는 식임.
그런 의미에서 아예 19금 걸고 잔인한 묘사 다 해가면서 시리어스물로 개조해줘야 한다는 것을 강력히 주장하는 바이다.
같은 이유로 로보토미의 앤젤라가 라오루에서 한 선택이 논란이 되었던 것이 아닐까... 로보토미에서 억겁같은 세월을 보낸 인공지능이 사람과 같은 정신과 욕구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놀라웠지만, 이미 그렇다는 것을 알고 진행한 라오루에서 인간처럼 이기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이 그렇게 놀랍진 않았던 거지.
나는 앤젤라가 이기적인 선택을 한 게 이상하다곤 생각하진 않는데, 놀라울 것은 없었다고 생각함. 그럼 앤젤라가 도시 사람들의 정신을 모으는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크게 성장해서 어떤... 메시아까지는 아니라도 그렇게 될만한 것이 되었다고, 모두를 풀어주는 선택을 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플레이어를 충분히 설득했어야 했는데 그건 잘 안 됐다고 봄. 롤랑 인생이 얼마나 망했는지만 보여줬잖아. 어찌됐건 라오루라는 무대의 진행자는 롤랑이랑 앤젤라인데 앤젤라의 변화가 좀 미미했음. 일단 나는 결말에서 모두를 해방시킨다는 선택지가 마치 '에잇, 나도 모르겠다!' 하고 지르는 것처럼 느껴졌음. 오히려 풀어주지 않는다 쪽이 그간 앤젤라가 보여줬던 행보에 더 어울렸다고 생각함. 그러니까 둘 다 놀라운 선택은 아니었다는 거지.
또 이걸로 비슷한 거를 다루자면 <조커>가 있다. 이건 논란을 일으키려고 작정하고 만든 작품 같음.
조커가 사회 밑바닥 출신이 아니었다면~ 하는 가정부터 조커의 흑화는 필연적이라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그 무엇도 깔끔하게 납득되는 것이 없어. 다 조금씩 모자란 거임. 사회문제란 다 그런 거니까. 서로의 의견이 다를 뿐인거지 이미 발발한 문제를 어찌할 수는 없는 거니까. 내 생각엔 이게 감독의 의도임. 폭력이 싫은 사람들은 이 영화를 '폭력이 왜 생기는지 고민해볼까요?' 가 아니라, '이제 우리는 조커와 그 폭도들에 맞서 싸워야 해요' 라고 읽는 것이 가장 정확하리라고 생각함. 폭력만이 문제의 해결법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감독은 '당신들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배트맨이 생긴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지 않냐. 일단 난 호아킨 피닉스가 영화보는 눈이 괜찮다는 걸 믿는다. <her>도 아주 충격적이었거든.
아니, 어디서 봤는진 잘 기억나진 않지만 동양 고전에 어떤 청년이 '늙은 아버지가 자신을 때리며 야단치실 때 피하지 않고 맞는다. 그게 아버지의 뜻이고, 그 뜻에 따르니 나는 효자다' 이러는데 어떤 어른이 그 말을 듣고 '그걸 다 맞아서 아버지가 그 나이 되도록 아들을 때리는 패륜을 저지르게 두었느냐, 너는 불효자다' 하는 일화가 있음.
같은 이유로 나는 나에게 어떤 안 좋은 일이 생기게 두면 안된다고 생각함. 누가 나를 때리려고 들면 적극적으로 나를 보호해야 사태가 커지지 않음. 물론 그 과정에서 상대방이 반쯤 죽어버리는 건 있긴 한데요...
>>265 이거는 힘 없으면 도망칠 줄이라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로 이어짐. 근데 내가 보니까 당하고만 사는 사람들은 꼭 주변에 하나정도는 누가 나서서 도와줌. 그래서 뭐... 생각보다 피해가 그렇게 크시지 않더라고요... 개인적으로 대놓고 나쁜 짓 하는 사람보다 이런 사람들 건드려서 돌아오는 후환이 더 무섭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이 책 진짜 물건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종교에 대해서, 특히 좋은 종교란 어떤 것이며 올바른 실천을 이어나가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필독임. 그리고 한 번쯤은 생각해봤을만한 사소한 버릇이나 잘못부터 꽤나 중대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것들까지 나오는데, 다행스럽게도 이 모든 것은 악마의 유혹이니 이겨내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나는 솔직히... 작품 감상을 많이 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함. "작품을 감상할 줄 안다"는 것은 작품으로 들어가서 감상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자기 입맛에 맞는 작품을 수없이 많이 찾아낸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통찰은 지식에서 나오지 않는다. 인생 책, 인생 음악, 인생 영화, 뭐든 좋으니까 하나만이라도 마음에 새길 수 있으면 매주 미술관에 가서 빈 마음으로 돌아오는 사람보다 낫다고 믿는다.
모든 사람과 잘 어울릴 수 없듯, 모든 작품과 "친구"가 될 수 없다. 그런 욕망을 가져 봐야 어차피 성취할 수 없다는 것만을 깨닫게 되니 굳이 먼 길 돌아갈 필요가 없다.
모든 작품과 친밀한 관계를 가질 수 없다는 말은 곧 내 눈에 들어온 작품들을 잘 눈여겨봐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사람들을 스쳐지나가기만 하면서 왜 내 곁에는 좋은 사람이 없을까, 하는 것은 작품으로 바꿔 말해도 같다. 다 흘려보내면서 이건 못했네, 저건 못했네 평가질만 해대는데 어떻게 좋은 작품이 눈에 들어오겠음?
>>265 안심하십쇼 그 말씀은 남이 뭔 난리를 치고 안좋은 길로 가고 ●랄을 하던 걍 당하기만 하고 냅둬라가 아니라 남이 ●랄한다고 너도 같이 ○랄하지 말고, 미워하지 말고 용서해라입니다. 사실 미워하지 말라가 핵심인듯. 이제 그렇게 엇나가는 사람을 미워하고 같이 싸워봐야 뭐가 되겠냐는거지. 그런 사람도 포용하고서 옳은 길로 갈수 있도록 도와줘야한다는 느낌.
>>283 대답하자면, 전제부터 틀렸다! 더 나쁜놈 덜 나쁜놈 애매한놈 하는 구분은 인간적인 기준이잖아? 하나님 앞에서는 그런 구분 없이 다 똑같은 죄인일 뿐... 물론 우린 하나님이 아닌 한낱 인간일 뿐이라 저새기는 글러먹은것 같은데요? 저인간은 어떻게 대해야할지 잘 모르겠어요. 싶을수 있어. 당연한 일이지. 사실 난 이런 때에 어떻게 하는게 '정답'인지는 몰라. 그냥 매 순간 내 앞에 놓인 최선을 다하는것만이 방법이라고는 생각해도 지키지 못할 때가 많고. 문제가 생기면 내 눈 앞에서만 치워두는걸로 임시적 해결을 보려고 할 때도 있지. 아 몰라 아ㅏ 하나님 알아서 하세요. 해버린다거나...
사실 이건 사람 혼자서 자력으로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에 생기는 오류인데, 무교 입장에서 어떻게 보일진 모르겠지만 난 종교적 경험을 꽤 많이 하는 편이거든. 살다 보면 하나님 알아서 하세요... 하고 징징댈 때 "네가 해라." 하는 메시지를 깨달을 때가 가끔 있어. 그럼 뭐... 해야지. 신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을 시키진 않는다는거야. 정확히는 진정한 의미의 "네가 해라." 가 아니라 "진짜 일은 내가 할테니 넌 행동만 해라." 인거거든.
용서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뭔가 어떤 행동을 해야 용서인게 아니라 상대방이 자기 행동을 고치고 바른 길로 나아가게 되기를 진심으로 자랄수 있는 상태가 아닐까 싶어.
현직 ISTJ의 입장에서 감정 중심인 NF의 설명은 도중에 이해가 안 돼서 어느순간 대화를 따라가지 못하게 된다면, 자기 흥미 위주로만 설명하는 NT의 설명은 더 요점을 알기가 어렵다... 전자는 감정 중심의 사고를 하기 때문에 눈치는 더럽게 빨라서 '니 말도 맞고 내 말도 맞다' 이렇게 정리하면 자존심상해하지만, 후자는 다행히 눈치는 안 좋아서 대충 수긍한다는 것이다...
친구 : 내가 '어쩌라고' 이렇게 말하면 눈치 챙겨라는 느낌인데 니가 '어쩌라고' 이렇게 말하면 '우리 관계는 파탄이 났고, 당신은 더이상 내 앞에서 발언할 자격이 없습니다' 라는 느낌이지... 나 : 그래요... 바로 그거에요... 어쩌라는 거냐는 말만 해도 사람이 죽어버린단 말이에요... 난 시작도 안했는데 왜 벌써 죽어버리냔 말이야? 친구 : 질문 속애 답이 있는 것 같아요... 나 : 아...
장애 자체는 이해할 필요가 없다. 다수의 인간들이랑 달라서 불편한 점이 뭔지 이해하는 건 필요하겠지만, 마치 장애라는 게 어디서 생기는지 알아내면 이 세상에서 장애가 없어진다고 믿는 사람마냥 '쟤는 다리가 왜 저럴까...' 이딴 생각은 애초에 할 필요가 없다고. 심지어 쓸모도 없다.
어차피 장애는 그냥 이미 생겨버린 거라 뭐가 잘못돼서 이러는 건지 이해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의사가 아닌 사람들은 어차피 머리 써 봐야 소용 없다는 말이기도 함. 막말로 남의 사정인데 알아서 뭐함? 그리고 장애도 일종의 사회적 합의임. 안경 점자 그딴거 없던 조선시대에 녹내장이 일찍 온 사람이었어봐라. 그냥 짐짝임. 근데 요즘엔 점자도 있고, 다니기 좋으라고 전용 보도블럭도 깔잖아.
이게 존엄성이라니까? 인간이기만 하면 어떤 형태로 태어났든 살 수 있게 다 같이 의무를 지고 그렇게 해서 지켜지는 게 존엄성이라고.
걔 : 쟤 완전 장애인 같다. 혼자만 저러고 다니는 거 보기 안 좋은데 엘리베이터 타지. 어차피 다른 애들은 엘리베이터 못쓰는데. 나 : 너도 혼자만 안경 썼으면 그런 취급이었을걸. 다른 사람들도 다 안경쓰고 다니니까 너는 남들에 비해서 모자라다는 생각이 안 들지? 뚫린 입이라고 말이 막 아무렇게나 나오냐? 걔 : 으애앵... 8ㅁ8
왁푸 포럼 보면 포럼 불타는 시기가 딱 있었음. 자기가 하던 클래스가 떡락하잖아? 그럼 그때만 잠깐 이거 맞냐고 글이 꽤 올라오는데 그마저도 다른 클래스 유저들이 넘어와서 '아 ㅋㅋ 다른거 하셈 ㅋㅋ' 이러면 그냥 버리고 넘어가나봄. 한 2주 지나면 언제 불탔냐는 듯이 공략글 한두개 올라오고 뉴비들이 밥 달라고 떼쓰고 하는 평소 모습으로 돌아감.
사실 나는 비혼 자체는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살다보니까 '정신적으로 불임'인 사람이라는 게 있더라. 공동체에서 벗어나거나, 공동체에 머물러도 구성원을 괴롭히거나, 공동체가 성장하고 구성원이 독립하고 그들이 새로운 공동체를 꾸리는 것 자체를 상상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혼을 안 해야 한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사람들은 결혼을 할 수 없는 몸이다. 자식을 낳아도 자식으로 기르지 못하는데 무슨 결혼이네 출산이네... 이런 게 사회적으로 숙제처럼 여겨진다고 해도 말이지. 숙제를 베끼면 무슨 의미가 있어?
그런데 짚고 넘어거야 할 게 있음. 결혼을 안 하겠다는 핑계로 자기가 가정적이지 못한 사람이라는 걸 포장해버리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나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ㄹㅇ로 현실 사람들한테 진지충 노잼포 발사도 덜함. 여기서 혼자 하니까 밖에 나가서 굳이 안함. 원래는 하고싶은 말 못해서 약간 답답했는데 그런 것도 없어졌고... 결정적으로 내가 하는 생각을 내가 실시간으로 보니까 뭔가 생각을 내가 조절할 수 있게 된 느낌임. 욕도 아예 안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사실 힙합은 상스럽지 않다고 해도 감상자로 하여금 긍정적인 경험을 하도록 하지 않으면 쓸모가 있나 싶다. 뭐 멜로디나 가사가 기막히게 좋기를 해, 뭐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뛰어나기를 해... 그래, 최소한 문화적 시대적 요소를 반영하고 있다고 억지로 쉴드칠 수는 있겠다...
재벌집 막내아들 엔딩에 화났다는 사람들 많은데 나는 애초에 그럴줄 알았다. 드라마가 하고싶은 말이 너무 많음. 대기업은 이랬어야 한다는 대체역사인지, 통쾌한 풍자인지, 조사력을 뽐내는 고증인지... 뭘 말하고싶은 건지 잘 모르겠더라고. 그러니 용두사미는 정해진 결말이었던 거임.
근데 그거 아냐. 작품을 제대로 완성하지 못했다는 건 결국 하고싶은 말이 뚜렷하지 않았다는 얘기라는 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소신발언 함. "못 견딜 정도로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주제는 아예 질문 설계 자체가 안됨. 없으면 그냥 그 스프레드가 무효임. 모든 사실이 정리된 상탸에서 예측 돌려보는 건데 전제에서 펑크가 나면 안되잖음. 근데 이게 제너럴? 이다? 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새해부터 그런 쓰레기영상 보지 말라고 올려본다. 봐도 뭐 여름에 보든가(??)
전에도 언급했지만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로 본다고 해도 말이야... 그 사람이 순수하게 연애하고 싶은 마음으로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순수하게 연애까지"만" 하고 싶은 마음으로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하루이틀 엔조이만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건지 구별이 잘 안 됨. why냐? 타로는 그 사람 마음을 읽어내는 게 아니기 때문임. 상대방 행동 예측하는 것도 대개 틀린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책 안 읽겠다는 사람들은 자기가 틀렸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이라고 간주해도 될 것 같다. 책 한 권으로 펴낼 수 있을 만큼의 경험조차 쌓지 못한 내가 감히 나보다 먼저 살았고 더 많이 배웠던 사람들보다 낫다고 큰소리치는 게 아니면 뭐지? 아니면 내가 틀렸다는 것조차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그릇이 작다는 사실을 확인하기가 두려운 건가?
털실 구매 가이드라고 할 건 없지만 기억해두면 좋은 것들 ~폭탄편~ 일단 목도리나 니트가 기준임.
1) 아크릴 : 은근히 거칠다. 아크릴 혼방도 잘 나온 건 괜찮지만 의류로 떴을 때 아주 만족스럽기는 어렵다. 대신에 약간 저렴하고 세탁에 잘 견디며 실이 다양하게 나오는 것은 장점. 안에 무언가 받쳐입는다면 니트로는 ok
2) 로빙사 : 실 굵기가 일정하지 않은 게 컨셉이라 아무리 잘 떠도 어글리하게 된다. 일정하게 뜨기를 연습중이라면 로빙이라고 된 건 다 거르면 된다. 일정하게 못 뜨니까 어글리한 게 실수를 커버해줄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연습이 안 되는 건 당연하고, 실수가 아닌 것도 실수한 것처럼 보이게 해버림. 장점이라면 꽤 부드럽고, 뽀얀 색으로 장갑 같은 소품을 뜨면 제법 귀엽긴 하다.
3) 면 : 차갑고 거칠고 무겁고 신축성 없음. 설명 끝. 발매트나 튼튼한 가방을 뜰 때 사용한다.
4) 면 혼방 : 차갑고 무거움. 뭐랑 섞였느냐에 따라서 부드럽고 신축성이 개선된 것도 있다. 의류로 뜨기에는 좀 무겁다고 생각함.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은 면 혼방으로 목도리를 뜨면 좋음.
5) 울, 캐시미어 등등 : 뜰 땐 부드러워서 기분 좋은데 옷으로 만들어놓으면 관리가 좀 어렵다. 드라이 해야 함.
1) 슈퍼워시100% : 세탁기에 돌리라고 나온 실임! 적게 수축한다고는 하지만 스와치 뜨고나서 세탁은 해야 함. 수축률은 체감상 3%정도 되는듯.
2) 베이비 : 이름에 베이비가 들어가거나 실 설명에 "아기 옷 뜨셔도 됩니다"는 매우 부드럽고 피부에 트러블도 적게 일으키는 실이라는 뜻임. 가볍고 따뜻하고 부드럽다! 와! 단점이라면 비싸고, 실 종류에 따라서는 길이가 짧아서 성인용 니트를 뜰 땐 여러볼을 사야 하는 경우가 있음. 색이 너무 애기스럽다는 것도 약간 단점이다...
3) "의류로 적합하고 소품 뜨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 실이 가볍다는 뜻이다. 이렇게 적혀있으면 아마 가을에서 초겨울까지 입는 니트를 뜰 수 있음.
1) 혼방 비율 : 아크릴 혼방이 거칠다고 했는데, 아크릴 비율이 40%를 넘어가면 이런 경향이 심해짐. 아크릴 비중이 70%에 육박하는 실은 테스트용으로 사는 게 아니라면 별로 추천하진 않음. 아크릴 30%, 면 40%, 30% 이면 차갑고 부드러운 실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아마도 세탁기에 돌려도 되는 실일 거고, 면 비중이 높아서 무거운 실이기 때문에 목도리나 담요를 뜰 수 있음.
2) 실 설명 : 의류와 소품 모두에 적합하다는 것도 있고, 의류로만 사용하라는 것도 있고, 겨울 의류에 적합한 것도 있고, 사계절 이너로 적합한 것도 있음. 추천하는 건 의류 전용인 실을 사는 것임. 의류와 소품 모두 적합한 경우는 모자나 가디건을 뜨면 좋다. 실이 약간 힘있는 경우가 있어서... 여름실은 매끈하고 차가운 특징이 있고, 겨울실은 보온성이 좋아짐. 실 설명에 담요 뜨기 좋다는 말이 들어가는 경우는 의류로 적합하지 않을 가능성이 상당히 있다고 본다.
그래서 사용후기에 사람들이 뭘 많이 떴는지 보면 좋음. 주로 가방을 많이 뜨고 의류 뜬 사람이 별로 없다면 걸려야됨. 옷 떠서 애기 줬다는 사람 있으면 생각보다 부드러운 실인 것임!!
3) 실 종류 : 실이 한 방향으로만 꼬인 것이 일반적인데 실이 가닥으로 합사만 된 것이 있고, 땋아진 것도 있다. -한 방향으로 꼬인 실은 푸르시오 하면 실이 라면처럼 되는데 이대로 뜨면 편물이 울퉁불퉁해지고 난리가 난다. 세탁하면 약간 개선되지만... 가능하면 풀지 않는 것이 정신에 이롭다. -합사만 된 실은 방향이 없어서 푸르시오를 제법 견디지만 바늘이 실을 통과하는 경우가 있어서 뜨는 도중에 눈을 떼면 안 된다. 그렇다. 유튜브나 넷플릭스와 함께하기가 어렵다. - 땋아진 실은 써보진 않았지만 한 번 떴다가 풀면 굉장해진다는 괴담만 들었음. 쓰기 어렵다고 한다...
4) 신축성 : 신축성 있다는 실도 써보진 않았는데 대개 의류로는 쓰지 않는 것 같다. 나중에 테스트해보고 싶기는 함. 주로 양말에 많이 쓰이는 것 같음. 장갑 뜨는 영상 찾다보니 신축성 있는 실이 일반적인 실보다 더 빡빡하게 떠진다는 사람도 있었다.
5) 관리법 : 일반적으로 많이들 사는 실을 사는 게 좋은 방법이기도 하지만, 세탁기에 돌려도 되는 실이라면 세탁망에 두 번 넣어서 돌리면 대체로 괜찮았음. 한 계절 입고 겨울 끝날 때 드라이 한 번 하겠다는 마인드라면 울 100%으로 사도 될듯. 어차피 니트는 자주 빨면 금방 망가진다... 게이지 많이 세탁해보십쇼... 세탁기에 얼마나 버티는지도 알아야 함...
예술을 낯설고 어렵다는 이유로 감상하기를 거부하면 삶의 모든 순간이 낯설고 어려울 것이다.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기로, 아무것도 배우지 않기로 했으니 당연한 결과다. 다른 사람이 시간을 써서 내보인 것을 외면하는 사람은 자기 노력도 그렇게 외면하게 된다. 노력을 들이는 마음을 존중하지 않으니까 예의없이 작품을 곁눈질하고 지나친 주제에 잘했네 못했네 평가질이나 해대지. 작품 앞에서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대할 때에도 그렇게 할 것이다.
서점에서 본 책 중에 상당히 흥미로웠던 책... 제목이 잘 기억나지 않는데 인공지능처럼 생각하기였던가...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빌려준 여러 사고기법을 다시 인간이 가져와서 쓰는 식이어서 괜찮다고 생각했음. 추상적인 사고 흐름을 선호하는 NT나 NF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지만, 정제된 사고와 명확한 아웃풋을 원하는 ST는 상당히 좋아할 수 있다고 본다. 인공지능을 빌드해본 사람이라면 재미용으라도 읽어볼만하다고 생각함.
지금 밖이라 사진이 없는데 나중에 집가면 책 찍어놓은 거 있으니까 앵커로 정보 추가하겠음.
자유의 적은 구속이나 통제가 아니라고 생각함. 단지 자유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일 뿐이지, 많은 희생을 치러서라도 넘고야 만다는 걸 오랜 역사가 증명해주잖아. 중독이야말로 자유의 적이다. 그게 술이나 담배처럼 흔하든, 자극적인 매체처럼 하찮든 상관없다. 중독은 그 종류와 상관없이 중독이다.
솔직히 말해서 뭘 혐오하든간에, 그것을 혐오하겠다고 마음먹은 시점에 확실해지는 것 하나는 내가 더는 이 문제의 해결따위는 바라지도 않고 내가 혐오할 명분이 충분히 제공되는 현재의 상황을 마음에 들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안됐지만 남을 당당하게 혐오하면서 깨시민인 척 명언을 뱉으려고 해 봐야 결국 남의 사정에 침 뱉는 꼴이고, 그딴 마인드로는 아무 도움이 안 된다는 뜻이다.
중독 얘기하다가 갑자기 이 말이 왜 나왔느냐... 마약 관련 다큐를 보는데 '저렇게 중독된 사람들 갱생시켜주려면 돈 들텐데 불태워서 싸그리 없애버리고 새로 시작하면 안 되는 거냐' 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는 게 너무 놀라워서... 선생, 자본주의에 너무 찌든 것이 아닙니까? 다 불태우자뇨...
내가 이거 그... 말하고 싶은 욕구를 어떻게 영상으로 좀 채워보려고 사운드 꽉꽉 차는 채널을 몇 가지 찾아놨는데 말많은소녀도 장난없지만 그 중에 탑은 궤도야. 말 겁내 많아. 진짜로... 업로드 된 영상은 다 편집된 영상이라는 거 아냐. 이 사람 말이 뭔 청산유수야. 편집을 해서 이 정도라고? 와... 귀에서 피 날 것 같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약의 역사를 유머있게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애? 안 된다구. 재미가 없으면 들으려고도 안 하는 게 문제라고. 언제까지 어린애로 살 거냐고!!!!!!! 이거봐. 듣기 싫어하니까 생각하려고도 안 하고, 그러니까 해결방법도 안 찾는거야. 그냥 시니컬한 척 하는거야. 여기에서 혐오가 나오는거지.
타인을 존중했을 경우) 내가 그의 의견이나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더라도 눈높이를 맞춰 정보를 교환하는 경험을 통해 서로의 교양 수준이 상식적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음.
타인을 혐오했을 경우 i) 그가 혐오의 대상이었을 경우, 최소한 폭언이 오가며 우리 관계는 파탄이 남. ii) 불특정 다수가 혐오의 대상이었을 경우, 나의 혐오는 단지 잠시동안 사람들 머릿속에 박제될 뿐이며 그 어떤 사고 확장에도 기여하지 못함. iii) 모든 사람이 혐오의 대상이었을 경우, 결국 나 자신을 극도로 혐오하고 있다는 사실만을 확인하게 됨. 그리고 내 자의식과 앞으로의 여생은 파탄이 남.
추가. 타인이 내 혐오에 동조했을 경우) 동조하는 게 끝임. 뭔가 더 해봤자 더 심한 혐오를 할 뿐이며 합리적이거나 상생을 추구하는 문제 해결 방안을 도출할 수 없음.
사실 좀 더 생각하고 말하려고 아깐 안 적었는데... 아까 술 마시는데 들어온 손님들이 그런 얘기 하더라고. 누가 커밍아웃을 했는데 게이가 세상을 어쨌고 저쨌고... 머리가 하얗게 센 아저씨들이었는데 그 나이에도 커밍아웃(아웃팅이었을 수도 있지만)이 있었다는 게 신기하긴 했음. 뭘 보고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까지는 모르겠더라. 하지만 새해 둘째날부터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욕지거리 해야 했을까?
흠... 왜 이런게 꼭 내 귀에 들릴까? 이런 걸 보면 세상이 나에게 이런 걸 배우라고 요구하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함.
나는 감시와 범죄와 ●랄을 좀 더 인생 실전편으로 다뤄보고 싶은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랄하는 사람과 범죄성향이 있는 사람을 헷갈리곤 함. 예를 들어보겠음. 미국 사람들이 에고가 겁나 강한 것도 있고 교육 방식이 그런 걸 원하기도 하지만, 걔네들은 테러랑 같이 살다보니 구석탱이에 가만히 앉아서 공부만 하는 애들을 더 이상하게 생각하잖아. 근데 우리나라는 구석탱이에 가만히 앉아서 공부만 하는 애들은 공부 기계라고 좋아하잖음.
지난번에 소심한 사람들이 싸가지없는 사람이 되는 경위에 대해서 살짝 짚어본 적이 있었음. 멀쩡한 애들도 혼자만의 세계에 고이면 엿같은 사람이 되는데 범죄성향이 그렇게 방해 없이 길러졌다고 생각해보라고.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나부터가 부지불식간에 그런 범죄에 기여(대부분 방관으로)하고 있기도 하고, 범죄에 노출된 애들은 또 끼리끼리 놀기 마련이라... 악질적인 범죄는 상상 이상으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음. 집단 괴롭힘만 봐도 '오늘은 뭐 하고 괴롭힐까'가 범죄에 이르기까지는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에 잡혀들어간 남존여비 빡빡이만 해도 '나는 슈퍼카 33대나 보유한 자산가다 음 하 하 하 하' 하잖아. 성범죄는 거세 이런 쪽으로 접근하면 안돼. 그냥 재산 몰수해서 아무한테도 갑질 못하게 만들어야 진짜 처벌이 된다고 생각함. 스마트폰 하나 겨우 쓰면 폰푸어 될 정도로 그지쉑을 만들어야 함.
화실에 연세 많으신 분은 할머니가 되신 분도 있는데, 여섯살 먹은 손녀랑 같이 그림 그린다고 하시더라. 멋지지 않냐. 할머니랑 같은 취미 가질 수 있다니. 누군진 몰라도 그 꼬맹이 좀 부럽더라. 할머니가 지금도 학원에서 유화 배우고 계신다고 말하면 누구라도 부러워할 거임.
남을 차별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나도 당연히 차별받을 수 있고 그런 게 좋으면 이런건 아무래도 상관이 없겠지만), 차별하지 않는 걸 넘어서 그들을 존중하는 이유는 성 정체성으로 고민하든 장애로 고민하든 자기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정상"이라거나 "평균"이라고 알고 아무런 고민 없이 편리하게 사는 사람들과는 삶의 밀도부터가 다른 것이지. 내가 남을 차별하는지 어쩐지도 모르고 자기가 입은 피해만 피해라고 생각하는 삶은 꿈꿔본 적도 없는, 삶의 모든 부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정직한 인생임. 여기에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못할망정 알지도 못하면서 손가락질을 하려면 손가락이 꺾여도 괜찮을 각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까지 살아온대로 앞으로도 살 수 있다는 순진한 믿음이 모든 걸 망쳐왔잖아. 이성애자들의 결혼생활에서 벌어지는 많은 문제가 있었음에도 일체의 개선 없이 앞으로도 그렇게 하자는 말이 어떤 판단에 의한 것이리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다. 근거가 없는데 어떻게 판단을 해?
아니 그냥 고아들부터 보라고. 걔네들은 누가 버렸는데. 이성애자 부부 아냐? 동성애자 부부들이 눈물 흘리면서 애를 가지고 싶어할동안 이성애자 부부들은 지원금 받겠다고 애를 장난으로 낳아서 학대하다 죽이는데 왜 이성애를 끊임없이 고집하는 거야. 걍 하다보면 나아진다 이런 마인드냐고.
문득 든 생각인데 T가 생각하는 팩트와 F가 생각하는 팩트는 조금 다른 것 같음. F기준 팩트는 '진실한 내 감정'인 것 아닐까? 아무튼 내가 듣기엔 팩트가 아닌 것임. 흠... 물론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 그정도는 찰떡같이 알아먹고 있지만 역시 좀 납득이 안 되는 거임.
내가 생각하는 사실이란 내 기분에 전혀 좌우되지 않는, 모로 보나 변하지 않는 것을 사실임. 가령 누군가 대회에서 입상했다면 그것이 아무리 더럽고 치사하거나 아니꼬울지라도 상을 탔다는 것만은 사실인 것임. 내가 잘못 이해한 건가 싶은 생각이 여전히 들지만 내가 여태까지 들은 바로 F가 말하는 팩트란 '내가 그것을 더럽고 치사하고 아니꼽게 "느꼈다"'라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해봅니다...
극F인 친구가 애인이랑 헤어지면서 '너 나한테 맨날 힘들다고만 하고 나한테 하나도 신경을 안써서 속상했다' 라고 했다는데 팩트로 두들겨팼다고 자기가 그랬거든. 제삼자인 걸 고려해도 내가 듣기엔 '맨날 힘들다고만 말했다'만 팩트라고 생각이 된단 말이지... 감정 코어를 제대로 돌리기엔 아직도 갈 길이 멀군...
근데 나름 괜찮은 기준 아니냐?? 구체적인 날짜나 장소 중 하나라도 없으면 예의상 하는 말로 들어도 되더라고. 어차피 목표만 있고 계획이 없다는 얘기잖아. 그럼 당장이 아니란 건데 예의상 하는 말이랑 크게 다를 바가 없음. 급한 약속이 아니니까 미뤄도 데미지 없는 거 아님? 구체적인 날짜랑 장소를 지정하면 목표랑 계획 둘 다 있다는 뜻이니까 그때는 일정을 조정하든지 해서 시간 맞추는 거고.
나는 그냥 어디 가자고만 말하면 흘려들음. 어 그래 그런걸 좋아하는구나~ 함. 아니면 뭐 나더러 알아서 플랜 짜오라는 말이란 얘긴데 좀 흘려들어도 괜찮지. 양심없는거 본인도 알잖아 ㅋ
오히려 내 성 지향성을 극복하고 가정을 꾸려서 나라에 기여했다고 생각하는 편이 맞는 거 아니야? 그게 왜 부끄럽냐. 가정을 꾸리고도 여전히 내 정체성으로부터 원래의 생김새에 충실하기를 요구받지만 거기에 저항하고 있다는 건 생각 안하나? 동성애를 걍 문란한 것으로 치부하는 이 멍청함, 이걸 드라마 설정이니까 봐달라고 하는 이 나태함, 이대로 괜찮냐 이거야.
아니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를 핑계로 가진 사람들한테 방탕한 인간이라는 프레임 씌우는 것도 적당히 해야지. 가진 애들은 쓸데없는 생각 잘 안 해. 잘 사는 집 앤데 집안이 상당히 난장판이다, 그러면 대개 부모가 졸부였음. 대대로 잘 살았던 애들은 오히려 처신 잘함 ㅋㅋㅋㅋ 또 아예 없는 애들도 상황 파악 잘 함. 없는 형편에 이것까지 뺏기면 답 없는거 알아서.
잘 사는 애들을 질투하는 약간 잘 사는 애들이 방탕해지기 쉽다. 적어도 내 경험으론 그랬음.
학교폭력도 그런 애들이 잘 했음. 공부는 잘 하지만 약간 애매한, 집안 나쁘지 않지만 잘 산다기엔 약간 딸리는, 예쁘긴 하지만 보면 또 나쁘진 않은 정도인 애들. 그래서 열등감과 질투심이 모든 생각과 감정을 대체해버린 좀비들이 무지성으로 폭력을 저지르는 것들을 봐 왔는데, 왜 꼭 부자들이 저지른다고 드라마는 말할까?
>>737 사람들이 실제로 이런 드라마를 보고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생각함? 그 왜 그렇게들 말하잖아. '자극적이니까 드라마를 보고 감정이 해소된다'고. 그런 순기능이 있다고 봄? 이런 게 궁금한 이유는 내 눈엔 하등 쓸모없는 데이터 쓰레기로만 보이거든. 서로 미워하고 서로 헐뜯는 이 꼬라지를 드라마에서까지 봐야되나 싶어서 그렇게 꼴뵈기 싫을 수가 없음. 솔직히 말해서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에 이입하는 거잖아. 가해자가 되고싶은 욕망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있나? 될 수 없는 존재라서 부자의 이미지를 비틀어버린 게 아니라고 할 수 있나. 내가 볼 땐 그래. 신 포도잖아, 이거.
내가 스로그 몇판째였나 도롱이의 결말을 가지고 나홀로 토론을 했을 때에도 모두가 파멸하는 엔딩이 감상자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를 두고 임의의 의견으로 대치해봤지만, 현실에서도 그렇고 작품에서도 그렇고 파멸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 끝에 아무것도 안 남으니까. 관계를 무너뜨리고 나면 인간은 파멸하고, 파멸한 뒤에는 심연에 영원히 매몰될 뿐임. 그래서 공허해지기를 원하나? 공허에서 찰나라도 버틸 자신이 있어서 그러는 건가?
>>738 국문씨는 마음속에 내재된 피해의식을 사람들이 해소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대부분은 이렇게 생각하고 산다는거지. "난 선량해! 내가 좀 사소한 잘못을 하고 살 수는 있지. 그치만 난 누구에게 피해를 주지 않잖아? 내가 입는 피해는 어떤 나쁜놈들이 저지르는 짓이다!" 그러니까 늘 대중에서 씹는 대상이 정치인, 약자, 재벌 등등으로 대표되는 왠지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원인인 집단들인 것이고, 반성이란걸 해본적 없는 삶이니 복수극을 보면 후련할 수밖에 없지. 왜냐면 난 저기 주인공처럼 피해만 입고 사는 선량한 사람이거든. 내가 가해자였을 거라는 생각은 해본적도 없고 앞으로도 안할거거든.
주인공이 파멸에 이르는 복수를 이루면 그게 더 문제다. 모방범죄 가능성 생각 안하냐고... 사람들이 원하면 다야? 마치 그게 드라마 작가의 천명인 것인 양 그래도 돼? 그렇게 할 거면 유튜버들이 슬라임 만지면서 막장 라디오 드라마 하는 것도 괜찮다고 해야지. 안 그래? 기자들부터가 엠바고 개나줘버리고 취재하고 파파라치보다 더하게 사람들 괴롭혀놓고 유튜버가 태풍보러 바닷가에 가는 건 꼴뵈기 싫어? 방송국 인간들은 좀 각성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복수극은 또 하나의 점에서 아주 명료함. '복수 이후의 세계'는 결코 보여주지 않음. 성관계가 끝나면 포르노가 끝나듯 복수극은 피해의식을 해소하는 역할을 다하면 이후는 절대 알려주지 않음. 성관계 이후 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집으로 가 무엇을 먹을지 등을 보여주지 않듯 복수극도 그래서 이후 주인공이 어떤 삶을 이어갈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는거임. 그러니 속이 불편하지 않음. 복수라는 이름의 폭력이 낳은 새로운 사건들은 눈에 안 보이니까.
>>744 대 히트작인 <언더테일>이 주인공의 절대적인 폭력 앞에 무참히 희생된다는 것을 게임의 주 컨셉으로 잡아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것과는 참으로 대조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언더테일>에도 몰살루트가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폭력적인 드라마에는 역시 끝이 없다는 것이 맞음.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처럼 '주인공은 복수를 이뤘답니다'의 뒤도 없는 거임...
생각하는 작품을 쓰지 못하는 건 작가의 역량 부족일까? 일단 나부터가 그런 작품 못 쓰니까. 많이 배운 작가들도 그런 작품 안 쓰는 걸까? 대중이 원하지 않으면... 영영 가망이 없을까? 나는 그럼에도 포기해선 안 되는 것이 있다고 믿고있음.
"악역 미화하냐"운운하는 사람들 심리도 비슷한게 아닐지... 대충... 주인공이 하는 짓까진 나같아서 이해되니 그건 상관없는데 그래도 악역 미화는 좀 너무한거 아님? 암튼 내가 피해를 입었는데 걔를 왜 이해해줌? 물론 또 나는 커피 마시려고 제3세계 아동노동 착취하고 인도네시아 여자애가 14시간 노동해서 만든 옷은 입고 살지만 그게 내 잘못은 아니잖음? ㅎ
>>759 제가 아직 성경을 찍먹하는 중이라 쉴드도 까도 못하겠는데요, 그게 극단적으로 요약하면 모순이 있는듯하지만 일단 성경에서는 꾸준히 '너부터 잘해라' 고 하고 있긴 합니다... 남을 배척해도 된다라고 직접적으로 하진 않는 것이, '인간이 스스로 머리를 쓰지 말고 신의 뜻을 따라야 한다'고 하고있는 거임. 저 사람은 뭐가 잘못이지, 그러면 무슨 벌을 받아야지 하고 머리굴리는 것부터가 잘못이라는 거임. 근데 집필자가 여러명인데다 오해를 사기 쉬운 부분도 분명히 있기는 함.
솔로몬 편도 이교도의 여자라든가 창녀라든가 그런 표현이 많아서 그러는데, 종교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더 우선하는 원칙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함. 그런 몇몇 표현이 잘못되었다고 종교 자체가 글렀다고 말할 순 없는듯.
뭐여?! 님 헤결 그렇게 칭찬하더니 왜 이제와서 갑자기 뱉는 거임?! 하면 <헤어질 결심>은 여전히 한국영화에서는 탑티어라고 생각함. 그런데 이걸 다른사람이랑 같이 보니까 약간... 나 혼자 재밌게 보던 애니를 다른 사람 보여준 느낌이라 해야하나? 왜 그 유튭 영상도 막상 공유하면 노잼이고 그렇잖아. 그런 느낌으로다가 느낌이 팍 없더라고. 극장뽕 빼고 다시 보니까 남는게 그닥 없어. 박해일 영화를 이번 걸로 처음 보는데 집에서 헤결 자시보니까 연기가 그렇게... 어... 음...
좋아하던 영화의 딸린 면을 보고 고민이 많아진 찰나에 또 생각없는 막장 드라마가 인기라는 말에 아니꼬움 2000% 충전됐다 이거임. 그래요! 더럽고 치사하고 아니꼽다 이거에요!! 그 드라마가 뭐가 잘낫냐고요!! 시청률 디지게 뽑으려고 미성년자 배우들한테 음담패설 시키니 좋드나!!!! 이 바보 멍청이들아!!!!!!
근데 남들이 안 들어주기도 하고 구태여 귀찮다는데 나도 귀찮게 하기 싫으니까 여기서 이런 얘기 하는 거임. 일기장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건 그냥 이런 생각의 근원을 찾아내서... 약간 해체하면? 이런 생각도 조금은 흩어질까 싶어서. 그래 그냥 없어졌으면 좋겠다 이거야.
내가 드라마 영화 몇 개 깐다고 나를 우습게 여기는 인간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이다. 나는 중고등학생 시절부터 성적으로 줄 세우는 건 애들한테 악영향을 준다고 말해왔을 뿐 아니라 성적으로 줄을 세우는 현 시스템을 부정하지 않더라도 이게 다가 아니라고 가르쳐야 옳다고 말해왔는데 그때마다 애고 어른이고 뭐라고 했는 지 아냐.
"니가 일등이 아니니까 그런 말을 하지." "일등 하고나서 그런 말 해." "공부나 해. 한가하지?" "공부하기 싫으니까 똑똑한 척을 하네."
나는 내가 옳다는 거 알아. 이렇게 입 다물고 살면 혼자 깨달은 척 남의 불행을 구경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것도 알아. 요즘애들 하도 싸가지없게, 하도 경우없게 구니까 난 가만히만 있어도 어른들이 예뻐해줘. 입만 벌리면 먹을 게 줄줄이 들어온다니까? 얻어먹은거 잘 먹기만 해도 칭찬받는 삶이 뭔지나 아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 계속 그렇게 살 수 있어.
근데도 나 다른 애들이 예절을 배울 기회가 없어서 그렇다. 다음 번에는 한 번만 눈높이를 낮춰 주시라. 몰라서 무례를 저지르는 거다. 그렇게 말해. 굳이 그럴 필요 없는데도.
그래 뭐 내 인생은 꼬였다 쳐. 그럼 남은 인생이나 즐겁게 살아야지 복수극이나 보면서 이 빡빡 갈면 진짜 나락이야. 이래도 막장드라마가 세상을 망친다는 생각이 안 드냐. '사람들 누구나 한 번쯤 누군가를 파멸로 몰고가고 싶은 생각 하잖아요...' 이런 핑계 그만 대고, 그런 드라마는 이제 적당히 하자 ㄹㅇ로다가.
글고 나는 청소년들(아역이 성인이라고 해도)이 범죄를 저지르는 드라마 계속 나오는거에 반대임. 걍 뭐를 잘하고 알잘딱 한다해도 전ㅡ적으로 반대임. 옛날부터 영화 드라마 이런거 할때 강아지랑 애들은 건드리지 말랬어!!? 이건 청소년혐오가 맞고, 그걸 조장하고 있는 것 같음. 웹툰 드라마화도 이제 그만해야됨.
보석의 나라를 이제 봤다. 12화까지 본 감상으론... 애들 자세 골반 전방경사 너무 심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고... 돌땡이라 성별 그런거 없다지만 누가봐도 여자애처럼 생겼고 성우도 여자같은데 형!!!!!!!! 이렇게 부르는 거 보고 갑자기 정신이 확 들더라. 나도 모르게 오토코노코 먹고있었어... 우욱...
한때 오타쿠들 사이에서 가슴이랑 엉덩이가 한 샷에 같이 들어오는 건 작화 삐꾸난거라고 논란이 있었는데 애들을 극한까지 마르게 해서 기어이 그걸 해내고야 말았다는 생각밖에 안 듦. 3d 잘 써서 좋긴 했는데 솔직히 멀미났음.
아프면 병원 가야지. 맞는데, 옛날에 아팠던 거고 지금은 그냥저냥 괜찮은 걸 가지고 병원 가냐고. 그땐 신경도 잘리고 큰 상처였겠지만 어찌저찌 나아서 가끔 이유없이 욱씬거리는 걸 피가 나는 거로 생각하면 어떡하냐 이거지. 내가 병원에 가야겠는지는 옛날 말고 지금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게 상식 아냐?
왜 열받았냐면 '내가 병원 가봤더니 별 거 아니던데' 하는 인간들이랑 병원 가지도 않고 중증 우울증이요 하는 인간들 때문임. 아이고.
물건도 돈 아낀다면서 어디서 이상한 싸구려 사가지고 결국 또 사게 만들고 버리기는 싫어해서 잡동사니 늘어나고, 청소도 귀찮아해서 아무렇게나 던져서 어질러놓고 집안 꼬라지가 어쩌네 저쩌네 불평만 하고 결국 치우는 건 나고, 둘이 맨날 얼토당토 않은 걸로 싸워서 아침부터 언생 높여도 해결하는 건 나고, 정작 어른들끼리 해결해야 할 건 해결 못해서 나한테 스트레스 풀고.
내가 현생이 힘든 건 아닌데 즐겁지도 않은 게 사실임. 불평불만 한다고 스로그 만들어서 왕창 쓰고 있지만 근원에 바짝 붙어있는 한은 스트레스 완전 해소! 는 기대할 수 없는 모양.
나는 솔직히 의사랑 상담하면서 '그런데 대화가 너무 쓸데없네' 이 생각밖에 안 들어서 병원 안 가게 됐음. 딱히 도움되는 말 못 들은 거야 당연히 몇 번 상담하는 정도로 남의 인생에 쓸모있는 말 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 의사 탓이 아니지만 뭔가 시간낭비 돈 낭비 체력낭비 하고있다는 감상이 더 커져서 안 가게 됨. 역시... 나도 남의 말 안 듣는 인간이라 어쩔 수 없는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