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단계. '낯가죽이 성벽처럼 두껍고 속마음은 숯덩이처럼 시꺼먼' 단계로서, 다른 사람의 공격에 쉽게 파괴되는 초보적인 수준을 말한다. 2단계. '낯가죽은 두꺼우면서도 딱딱하고 속마음이 검으면서도 맑은' 단계로서, 이 단계에 이르면 다른 사람의 공격에도 미동도 하지 않으며 후흑의 자취를 나타내는 형체와 색체가 서서히 드러난다. 3단계. '낯가죽이 두꺼우면서도 형체가 없고 속마음이 시꺼먼데도 색체가 없는' 단계다. 이 단계에 이르면 하늘은 물론 사람들까지도 후흑과 정반대의 불후불흑(不厚不黑)의 인물로 여기게 된다. 이런 경지의 인물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77 ... 데이비드가 수긍했다. 그의 생각도 그랬다. "힐다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알겠어요.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이해가 돼요." 힐다는 날이 갈수록 자신을 꼭 닮아가던 여자아이의 목을 비틀어 죽여 버렸다. "나도." 월트는 데이비드가 들어오자 구석으로 밀어 두었던 공책을 다시 끄집어냈다. "나와 똑같이 생겼눈데 나이는 제각기 다른 사람들 사이를 지나자면 도깨비라도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되지. 정말 자기들끼리 착 들러붙어 있더라."
읽었다는 책들을 보니 사실적이고 인간성을 다루는 작품을 즐겨 본듯 해서 후루룩 읽히는 거 하나 골라봤음. 취향은 아닐수도 있겠다 싶지만...? 일단 이거 읽어보면 다른 소설 집어들기가 쉬워질 것 같다는 판단임. 일단 하나 해치우고 나면 어떤 거 보고싶다는 생각이 더 명확해지지 않냐? 나만 그런거면 ㅈㅅ
안녕하세요 청새치님. 추천해주신 프랑켄슈타인 잘 읽어봤어요. 사실 누군가랑 책에관해서 이야기하는게 너무 오랜만이라(초딩때 이후로 안한거같은데) 조금 두서없을지도 몰라요.
어쩌면 이 책은 공포보다는 과학 윤리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왜냐하면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은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뿐인데 자신의 흉측한 외모로 인해 세상 사람들의 멸시를 받게 되었으니까요.
게다가 피조물을 만들어낸 프랑켄슈타인은 창조자로서의 의무(피조물에게 자상함을 베푼다던가, 조금 더 애정을 준다거나)를 다하지 않아서 이런 비극이 만들어진게 아닐까 싶습니다. 만일 프랑켄슈타인이 그의 외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만든 피조물에 책임을 다 하였다면 피조물도 마음을 고쳐먹고 다른 생활을 했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프랑켄슈타인과 피조물의 갈등은 극에 달해, 결국 서로의 죽음을 갈망하는 상태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에는 결국 둘 다 죽음으로서 이야기가 끝나지요.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한 생명을 창조해내는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만일 창조했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더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이 이상 쓰면 주제가 다른 길로 샐것 같아 이상 글을 마칩니다. 좋은 책 추천해줘서 고마워요!!!!
과학과 윤리라... 통상적인 접근이지만 창조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건 맞는 말임. 그걸 깨달았다면 일단 책에서 얻어야 하는 굵직한 수확물은 다 건졌다고 봐도 되니까... 하지만 기왕 독후활동을 시작한 거, 좀 더 깊게 들어가보거나 시각을 비틀어보는 건 어떨까?
오래된 책이지만 1회차 완독해야 의미 있는 내용이라 스포처리함 일단 <프랑켄슈타인>이 과학과 윤리를 다루고 있고 그 중요성에 대해서 말하는 건 동의. 내가 보기엔 그것만으로는 이 책을 설명하기에, 혹은 이 책을 소개하기에 조금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이 있었음. 등골이 오싹해지는 소설을 읽고 과학과 윤리를 말한다니, 조금 어색하지 않나.
이걸 생각한 부분은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괴물의 짝을 만들다가 '과연 괴물이 내 생각대로 살아줄까? 둘이 평생 살라는 보장이 어디 있지? 내가 인류에 피해를 끼치는 건 아닐까?' 하고 고민하는 부분임. 이 소설을 읽고 박사에게 '애정을 줬어야죠!' 하고 싶을 수 있겠지만 그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애초에 이 인간은 피조물에게 책임을 다할 능력이 있었느냐" 라는 것임. 박사는 자기 피조물을 창조하자마자 혐오하고 유기하는 사람이었던 거라고 생각해보면 어때? 그러면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진짜 공포가 드러나지 않아? 박사는 괴물 둘이서 살다가도 언젠가 "아름다운 인간"을 탐할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이 소설에서 가장 추한 건 박사 자신 아닌가? 이게 이 소설이 여전히 공포로 여겨지는 이유라고 생각함. 인간은 애초에 추한 존재인데, 아름다운 껍데기 뒤에 숨어서 남을 혐오하는 주제에 '우리는 추하지 않다'고 착각하며 살아간다는 게 말이야.
내 생각에 <프랑켄슈타인>은 자기 존재에 대한 회의와 인간의 추한 모습을 다룬 소설이고, 작가가 그런 고민을 과학 윤리와 결합시켜서 유의미한 메세지를 던지고 있는 것 같음. 애초에 인간부터가 괴물과 박사처럼 사는데 무슨 복제인간이며 인공지능이냐! 라고 하는 것 같지 않아?
이건 tmi지만, 작가인 메리 셸리 본인이 괴물이라고 생각하고 글을 쓰지 않았을까 싶음. 2회차 완독을 할진 모르겠지만 3회차를 시작할 땐 자기혐오라는 키워드를 생각하면서 읽으면 소설의 깊이가 아주 굉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