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씨 추천...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신랄한 블랙코미디를 좋아한다면 재밌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 물 티슈를 싼 봉지가 소금•후추•설탕 봉지와 잘 구별이 안 된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샐러드에 소금 대신 설탕이 뿌려지고, 설탕 대신 종이 수건이 커피에 들어간다. ...비즈니스 클래스에서는 스튜어디스가 직접 승객의 배에 커피를 엎지르고는 세계 공용어로 사과하는 일도 생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그들은 승객이 할리우드 영화의 어떤 장면들을 마음속에 담고 있을 것으로 상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컨대 네로 황제가 수염과 망토를 적셔 가면서 커다란 잔으로 술을 들이켜는 장면이라든가, 중세의 봉건 영주가 레이스 달린 셔츠에 국물을 튀겨 가면서 멧돼지의 허벅살을 뜯고 유녀와 포옹을 하는 장면 말이다."
문득 든 생각인데, 국내도서를 읽으면서 어쩐지 감정적으로나 사건의 플롯이나 그런 게 단조롭다고 여기게 되는 것은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특수한 환경이라서가 아닐까? 차별을 다루는 소설이 있다고 치면 거기에 공감을 못하는 사람들도 많고, 작가도 순진하게 차별을 극복하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나온다든가, 사건도 흔히 볼 수 있는 사건이라 마음이 답답해지는 것이 아니고 그냥 정말 어딘가에 있을까 말까 한 일을 일상처럼 다루는 것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든가...
위에서 나열한 특성이 다 나쁘다는 건 아님. 맞는 말 해도 공감해주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고, 희망적으로 생각하자고 말했더니 받아들이는 사람이 순진하다 느꼈을 수도 있고, 그냥 말하면 재미 없으니까 일부러 현실과 유리된 느낌을 주려고 할 수도 있다.
나는 책 한 권은 단지 책 한 권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함. 작품은 작가의 고민이 실체를 갖게 된 모습인만큼 고민에 좀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함. 소설 속 세상에 들어와서 체험해보는 경험을 선사하지는 못하더라도 이 이야기의 인물들이 무언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제대로 들려야 한다고 생각함.
한국 자체가 워낙... 문인들이 할 말이 딱 정해져 있었으니까 일제강점기->슬픔, 독립 해방->혼란, 반전주의 산업화->불평등, 황금만능주의 독재->민주주의, 자유 이렇게 그동안 문인이 할 말이 거의 확실한 사회였는데, 이젠 작가마다 자기만의 주제를 창조해야 하는 상황이라 공백기가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니까 별로 공감도 안되면서 퀴어 집어넣고 그러지.
여담으로 전공 OT에서, 신입생들 대상으로 교수님이 "한국적 소설이란 뭘까요? 한국 고유의 정서가 뭐죠?" 해서 학생이 한이라고 말하는걸 보고 좀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솔직히 한이라는거 별로 와닿지 않는데, 현대 한국의 정서라고 하면 경쟁과 도태에 대한 공포와 천민자본주의가 좀더 맞지 않나.
한국이 되게 특수한 환경이라는 이유그 있음. 그 .. 전해듣는 것이라는 게 있잖아? 내가 살아보지 않아도 다른 사람의 삶을 듣잖아. 너무 왜곡된 사실로만 자기 세계를 구성하니까, 책을 읽기 어려울 정도로 현실과 동떨어지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 있다고 생각함.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은 그걸 듣는 일인 거잖아. 어떤 사람은 이렇게도 살더라~ 라는. 그러면 듣고 음~ 하거나 오~ 하거나 추임새 넣어가면서 공감하는 척이라도 하잖아? 책 읽을 때에도 그렇게 하라는 거지. 좀만 입맛에 안 맞다 싶으면 팍팍 덮어버리지 말고.
아니, 잘 모르는 거 괜찮다 이거야. 하다못해 작품 속 세상을 경험하는 순간만이라도 다른 거 전부 잊고 빠져들 수 있으면 말이야.
어떤 미술가가 뭔가를 만들기 위해서 물감과 캔버스를 사용하든 금속을 사용하든, 혹은 비디오테이프를 사용하든 간에, 그리고 그 결과물이 빌딩만큼 거대하든, 혹은 육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작든 간에, 그리고 그것이 갤러리나 도심 공원에 있든, 혹은 컴퓨터 스크린 속에 있든 간에, 그 물체는(그것을 "물체"라고 하기 힘들더라도) 여전히 "작품"이라고 불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