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 나열한 특성이 다 나쁘다는 건 아님. 맞는 말 해도 공감해주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고, 희망적으로 생각하자고 말했더니 받아들이는 사람이 순진하다 느꼈을 수도 있고, 그냥 말하면 재미 없으니까 일부러 현실과 유리된 느낌을 주려고 할 수도 있다.
나는 책 한 권은 단지 책 한 권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함. 작품은 작가의 고민이 실체를 갖게 된 모습인만큼 고민에 좀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함. 소설 속 세상에 들어와서 체험해보는 경험을 선사하지는 못하더라도 이 이야기의 인물들이 무언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제대로 들려야 한다고 생각함.
한국 자체가 워낙... 문인들이 할 말이 딱 정해져 있었으니까 일제강점기->슬픔, 독립 해방->혼란, 반전주의 산업화->불평등, 황금만능주의 독재->민주주의, 자유 이렇게 그동안 문인이 할 말이 거의 확실한 사회였는데, 이젠 작가마다 자기만의 주제를 창조해야 하는 상황이라 공백기가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니까 별로 공감도 안되면서 퀴어 집어넣고 그러지.
여담으로 전공 OT에서, 신입생들 대상으로 교수님이 "한국적 소설이란 뭘까요? 한국 고유의 정서가 뭐죠?" 해서 학생이 한이라고 말하는걸 보고 좀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솔직히 한이라는거 별로 와닿지 않는데, 현대 한국의 정서라고 하면 경쟁과 도태에 대한 공포와 천민자본주의가 좀더 맞지 않나.
한국이 되게 특수한 환경이라는 이유그 있음. 그 .. 전해듣는 것이라는 게 있잖아? 내가 살아보지 않아도 다른 사람의 삶을 듣잖아. 너무 왜곡된 사실로만 자기 세계를 구성하니까, 책을 읽기 어려울 정도로 현실과 동떨어지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 있다고 생각함.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은 그걸 듣는 일인 거잖아. 어떤 사람은 이렇게도 살더라~ 라는. 그러면 듣고 음~ 하거나 오~ 하거나 추임새 넣어가면서 공감하는 척이라도 하잖아? 책 읽을 때에도 그렇게 하라는 거지. 좀만 입맛에 안 맞다 싶으면 팍팍 덮어버리지 말고.
아니, 잘 모르는 거 괜찮다 이거야. 하다못해 작품 속 세상을 경험하는 순간만이라도 다른 거 전부 잊고 빠져들 수 있으면 말이야.
어떤 미술가가 뭔가를 만들기 위해서 물감과 캔버스를 사용하든 금속을 사용하든, 혹은 비디오테이프를 사용하든 간에, 그리고 그 결과물이 빌딩만큼 거대하든, 혹은 육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작든 간에, 그리고 그것이 갤러리나 도심 공원에 있든, 혹은 컴퓨터 스크린 속에 있든 간에, 그 물체는(그것을 "물체"라고 하기 힘들더라도) 여전히 "작품"이라고 불릴 수 있다.
1단계. '낯가죽이 성벽처럼 두껍고 속마음은 숯덩이처럼 시꺼먼' 단계로서, 다른 사람의 공격에 쉽게 파괴되는 초보적인 수준을 말한다. 2단계. '낯가죽은 두꺼우면서도 딱딱하고 속마음이 검으면서도 맑은' 단계로서, 이 단계에 이르면 다른 사람의 공격에도 미동도 하지 않으며 후흑의 자취를 나타내는 형체와 색체가 서서히 드러난다. 3단계. '낯가죽이 두꺼우면서도 형체가 없고 속마음이 시꺼먼데도 색체가 없는' 단계다. 이 단계에 이르면 하늘은 물론 사람들까지도 후흑과 정반대의 불후불흑(不厚不黑)의 인물로 여기게 된다. 이런 경지의 인물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