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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2 (FIRE!) 22: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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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6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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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7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14:30

인간의 심리 현상은 +100이 되면 나중에 -100이 되고, +30이 되면 나중에 -30이 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에요. 예를 들어, 아들이 태어나서 +100이 되었다면 그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으면 거의 혼을 잃어버려서 -100이 됩니다. ‘나는 우리 부모님이 있어서 행복하다’ 하면서 +50이 되면,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너무 슬퍼서 -50이 됩니다.

698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14:39

마음이 +100이 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일이 이루어져서 마음이 들뜨게 되면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그만큼 아래로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좋아도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지금 기분이 좋구나’ 이런 정도로 좋아하고 말아야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좋아하면 나중에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괴로워집니다. 질문자가 괴로움 없이 즐거움만 가질 수 있다면 그렇게 해도 됩니다.

699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14:53

평균적으로 그렇다는 겁니다. 늘 전깃불을 켜놓고 살던 사람은 갑자기 전깃불이 안 들어오면 원래 전깃불 없이 살던 사람보다 더 큰 불편함을 느낍니다. 똑같이 어두운 상황이지만 불편함을 느끼는 정도는 서로 다릅니다. 늘 문화생활을 즐기던 사람은 지구환경 위기가 도래해서 문화생활을 즐기지 못하게 되면 원래 문화생활 없이 살던 사람보다 더 큰 불편함을 느낍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문화생활을 못 즐긴 사람보다 오랫동안 문화생활을 즐겼던 사람이 더 좋은 조건에 놓여 있잖아요. 그런데 왜 더 힘들까요? 그래도 옛날에 한 번 즐겨봤으니 아예 못 즐긴 사람보다 불만이 적어야 하잖아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700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15:17

예를 들어, 선풍기가 없다가 새로 생기면 선풍기만 있어도 만족합니다. 그런데 늘 에어컨만 틀다가 선풍기를 틀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불편해집니다. 똑같이 선풍기를 틀고 있는 상황인데도 불편함의 정도가 이렇게 서로 다릅니다.

701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15:31

그래서 물질적으로 풍족해지는 만큼 계속 행복해진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마실 물이 없고, 치료할 약이 없고, 먹을 음식이 없을 때는 물질적 개선과 함께 행복도 역시 함께 올라갑니다. 그러다가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면 물질적 개선이 되어도 행복도가 더 이상 올라가지 않습니다. 보통은 물질적 소비 수준이 올라가면서 행복도가 함께 올라가는데, 소비에 중독이 되면 아무리 물질적 개선이 이뤄져도 오히려 행복도가 떨어집니다.

702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15:42

마약도 그렇습니다. 마약을 한 번 먹는다고 중독성이 생기는 건 아니에요. 처음에 한 번 먹었을 때는 기분 좋음이 100이에요. 그러나 같은 양의 마약을 두 번째 먹으면 기분 좋음이 100보다 낮아집니다. 기분 좋음이 두 번째 먹어도 100이고, 세 번째 먹어도 100이고, 열 번째 먹어도 100이라면 마약에 중독되지 않습니다. 첫 번째 먹었을 때 기분 좋음이 100이라면, 두 번째 먹었을 때는 기분 좋음이 90이 되고, 세 번째 먹었을 때는 80이 되고, 네 번째 먹었을 때는 70이 됩니다. 그래서 처음 느낀 100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먹는 양을 점점 늘려야 합니다. 처음에는 1g을 먹었다면, 두 번째는 1.5g을 먹어야 하고, 세 번째는 2g을 먹어야 하고, 이렇게 양을 점점 늘려가야 같은 기분이 유지되기 때문에 중독 현상이 일어나고 몸을 해치게 되는 겁니다. 처음 미량으로 먹었을 때는 몸이 나빠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갈수록 사용량을 늘려야 하기 때문에 몸이 망가지게 되는 겁니다.

703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15:53

이런 심리 작용을 잘 알아서 감정을 적절히 조절할 수 있으면 큰 고통을 겪지 않고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갈 수 있게 됩니다. 기분 좋은 감정을 억눌러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기분 좋음이 지나치게 크면 같은 높이로 아래쪽으로도 떨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는 겁니다. 이런 원리를 미리 알고 있으면 고통이 오더라도 ‘옛날에 즐겼으니까 이 정도 과보는 당연히 받아야지!’ 하고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에 그만큼 고통이 감소하게 됩니다.

704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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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5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18:06

사람마다 행동하는 기준이 다릅니다. 누가 옳고 그른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서 생겨는 불편한 마음을 없애려면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상대를 존중한다는 것은 ‘당신이 훌륭합니다’ 하고 말해 주는 게 아니에요. 상대는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존중입니다. ‘상대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하는 것이 이해입니다. 사랑은 이해입니다. 이해 없는 사랑은 폭력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비심이란 곧 이해심을 뜻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본인이 주고 싶은 것을 주는 것을 갖고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욕망입니다. 자비심이란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아니에요. 그의 처지에서 그를 이해하는 마음이 자비심입니다.

706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18:59

질문자는 지금 나와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도 않고 있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사랑도 없고, 자비심도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직 내 식대로만 상대방을 보고 있는 거예요. 자기 성질대로 상대방한테 말 한마디 툭 뱉어놓고 ‘내가 너를 위해서 하는 이야기니까 너는 내 말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고 생각하는 겁니다.

707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19:31

이해 없는 사랑은 폭력과 같습니다. 어떤 남자가 자기 좋다고 상대 여자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고 껴안으면 성추행을 범하게 되는 거잖아요. 꼭 성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인간관계가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대방은 원하지도 않는 말을 해놓고 ‘나는 상대방에게 바른말을 했다’ 하고 생각하는 거죠. 충고는 상대가 원했을 때 해줘야 충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충고와 비슷한 것으로 ‘자자(自恣)’라는 것을 합니다. 자자는 내가 상대방에게 ‘당신이 보기에 내가 무엇이 문제인지 저를 위해서 이야기해 주십시오’ 하고 자발적으로 요청할 때 성립이 됩니다. 이런 방식으로 이뤄질 때 진정한 충고라고 할 수 있어요. 상대가 원하지도 않는데 내가 그를 위해서 충고를 해주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를 바탕에 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가 받아들일 수도 있고, 못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질문자는 상대의 요청에 의해 충고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꾸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그럴 때는 상대방이 충고로 못 받아들이고 비난으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708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20:02

기본적으로 나와 다른 상대를 인정하는 자세가 바탕에 깔려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이해하는 마음 없이는 108배가 아니라 3000배를 해도 해결이 안 됩니다. 이 문제는 기도를 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자동차가 고장이 났으면 고장 난 부분을 고쳐야 해결이 되지, 자동차 앞에 떡을 갖다 놓고 절을 한다고 해서 고쳐지는 게 아닌 것과 같습니다.

709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20:20

상대방은 나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바르게 아는 것이 먼저입니다. 사실을 바르게 인지한 후에도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사실을 깜빡 놓칠 수가 있습니다. 상대는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는지만 일상에서는 깜빡 놓친다면 그럴 때는 자각을 하기 위해서 기도문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치를 모르는 상태에서 기도문을 주문처럼 중얼중얼 외우는 방식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종교이지 수행이 아니에요.

710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20:33

질문자는 상대가 오해를 했다고 말하는데, 상대가 내 생각대로 안 따르면 무조건 오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오해라는 것은 없습니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듯이 그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지 오해한 것이 아니에요. 오해라는 말속에는 상대가 틀렸다는 뜻이 들어있는 겁니다. ‘상대는 나와 생각이 다르구나’ 이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진실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네가 오해한 거야’ 하는 말속에는 ‘네가 잘못 이해했어’ 하는 뜻이 포함되어 있어요. 나와 다른 상대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자세를 바탕에 깔고 그 위에 대화를 통해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

711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21:18

기도문이란 내가 놓치는 것을 자각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이뤄주는 비밀스러운 주문이 아니에요. ‘기도문을 외우면 병도 낫고 부부관계도 좋아질까?’ 이런 마음으로 기도문을 달라고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그냥 주문을 외우는 것과 똑같은 겁니다. 그것은 수행이 아니라 신비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712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21:36

나와 다른 상대를 인정한다는 말은 상대가 옳다는 뜻이 아닙니다. 상대를 존중한다는 말은 상대가 옳고 내가 틀렸다는 뜻이 아닙니다. 나와 다른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나와 다른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우선 나한테 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괴로움을 없애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상대를 높이느냐 낮추느냐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713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21:56

‘저 사람은 나와 믿음이 다르구나’

‘저 사람은 나와 생각이 틀리네’

‘저 사람은 관점이 나와 다르네’

714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22:14

이렇게 생각하면 화가 날 리가 없습니다. ‘그 말은 틀렸어’, ‘그것을 말이라고 해?’ 이렇게 받아들이니까 짜증이 확 일어나는 겁니다. 나와 다른 상대를 인정하는 것이 수행의 핵심입니다. ‘상대는 나와 다르다’ 하고 인정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가면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이해하게 됩니다.

715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23:09

살다 보면 ‘야, 너 그러면 안 된다!’ 하고 내가 잔소리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 입장에서는 반발을 하겠지요. 그럴 때 그 반발을 내가 받아들이면 됩니다. 어떤 행위를 하든지 반드시 거기에는 반작용이 생깁니다. 칭찬이든 비난이든 다시 나에게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칭찬만 돌아오기를 바라죠. 그것은 과보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세입니다. 그런 자세를 갖고 있다는 자체가 벌써 상대가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716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23:56

부처님께서는 내가 괴로움 없이 살아가는 방법을 이야기해 주신 겁니다. 나와 다른 상대를 인정하라는 말은 상대를 위해서 그렇게 하라는 말이 아니에요. 그렇게 했을 때 나의 괴로움이 없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런 후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는 내가 선택하면 됩니다. 상대에게 충고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본인이 선택을 하고 그 과보를 받으면 됩니다.

717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2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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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8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25:33

빨리빨리 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마음이 조급한 것은 문제예요. 동작이 빠른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마음이 늘 쫓기듯이 바쁘다면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은 동작이 빠른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욕심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동작보다 앞서가기 때문에 마음에 여유가 없어지는 겁니다. 선불교에서는 ‘조고각하(照顧脚下)’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자신의 발밑을 살피라는 뜻입니다. 절에서는 항상 자신의 발밑을 살펴서 신발을 가지런히 벗도록 되어 있습니다. 신발을 벗을 때 발의 동작에 깨어있어야 신발을 가지런하게 벗어 놓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발을 벗는 동작에 깨어있지 못하고 몸보다 마음이 먼저 방안에 가버리면 신발이 흐트러지게 됩니다. 사람들이 벗어 놓은 신발을 누군가가 모양이 좋게 가지런하게 놓는 것이 절의 규칙이 아닙니다. 신발을 벗을 때 발의 동작에 깨어있는 것이 핵심입니다.

719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25:45

정리 정돈을 하는 일도 마찬가지예요. 누군가가 모양이 좋게 물건을 배치하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물건을 쓰고 제자리에 가져다 놓을 때 깨어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걸레를 사용했으면 빨아서 원래의 자리에 가져다 놓는 것이 중요해요. 항상 자신의 삶에 깨어있는 것이 수행입니다. 그런데 마음이 조급하면 깨어있지 못하게 됩니다. 마음이 조급해지는 이유는 욕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720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26:31

동작을 빨리빨리 하면서도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으면 됩니다. 꼭 천천히 행동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에요. 빨리빨리 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조급하다면 마음을 살피라는 겁니다. 또한 질문자가 빠르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느리다고 짜증을 내서는 안 됩니다. 질문자가 천천히 여유 있게 살기를 원한다면 그렇게 살면 됩니다.

721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26:56

모든 걸 쉬어버리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명상이에요. 7월 말에 정토회에서 진행하는 명상수련이 있으니까 신청하셔서 명상을 한 번 해보세요. 4박 5일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수련 프로그램입니다. 그런데 막상 명상을 해보면 지금까지 살아온 습관 때문에 계속 몸이 꼼지락꼼지락 움직이고, 자꾸 이 생각 저 생각이 일어납니다. 목표는 생각도 안 하고 움직이지도 않는 것인데, 현실은 계속 생각이 일어나고 움직임이 생깁니다. 그걸 경험하면 ‘내가 그동안 조급하게 살았구나’ 하고 알게 됩니다. 5일 동안 아무리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이지 않고, 온갖 생각이 일어나도 그것에 의미 부여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 보는 겁니다. 이런 연습을 자꾸 하면, 일이 있으면 있어서 좋고, 일이 없으면 없어서 좋은 경지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일이 없으면 심심하다고 불평하고, 일이 많으면 바쁘다고 불평하잖아요. 일이 있으면 운동 삼아 일해서 좋고, 일이 없으면 한가하게 놀수 있어서 좋습니다.

722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27:47

질문자는 놀 줄 모른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노래하고 춤추고 술 마시는 것을 뜻한다면 그런 것은 안 하는 게 건강에 더 좋습니다. 굳이 그렇게 놀 필요는 없어요. 그 말이 혹시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면 가만히 있는 연습을 좀 해봐야 됩니다.

723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28:21

소가 목장에서 풀을 뜯을 때 바쁘게 풀을 뜯습니까? 천천히 풀을 뜯습니다. 소는 풀을 다 먹고 나면 배가 불러서 풀밭에 떠억 누워 있습니다. 파리가 날아오면 꼬리로 파리를 쫓으면서 한가하게 앉아있죠. 소가 게을러서 그런 겁니까? 소가 심심해 하고 있는 겁니까? 아니에요. 소는 아무리 누워있어도 심심하지 않습니다. 소는 풀을 뜯어도 바쁘지 않고, 누워있어도 게으르지도 않고, 그냥 배가 고프면 풀을 뜯고, 배가 부르면 누워있는 겁니다. 풀을 뜯을 때도 한가하고, 누워있을 때도 한가해요. 우리도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724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28:58

이런저런 일이 많이 닥쳐도 마음은 한가해야 합니다. 동작은 빠르더라도 마음은 쫓기지 않고 한가해야 돼요. 아무 할 일이 없어도 지루하지 않아야 합니다. 물론 지금 당장은 잘 안 될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는 것을 목표로 한 번 지내보세요.

725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29:51

자꾸 일을 만들면 안 돼요. 일이 쉬어지지 않는다면 쉬는 연습을 자꾸 해봐야 합니다. 안 쉬어지면 안 쉬어지는 대로 계속 일을 해도 되지만, 대신에 일을 하고 나서 힘들다는 불평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726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33:18

https://www.jungto.org/pomnyun/view/84361?p=30&k=

727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33:33

자신의 능력으로는 갈 수가 없는데 꼭 가겠다고 욕심을 부리기 때문에 콤플렉스를 느끼게 되는 거예요. 콤플렉스라는 게 본래 있는 게 아닙니다. 욕심을 내기 때문에 콤플렉스가 생기는 겁니다.

728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34:15

그런 방식은 다 욕심의 소산이에요. 마음이 허전하고 속이 비어 있을수록 자꾸 외모로 문제를 풀려고 하거나, 보석을 장식해서 문제를 풀려고 하거나,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서 문제를 풀려고 하거나, 학벌로 문제를 풀려고 합니다. 자기가 자기에게 떳떳하지 못하고 자존감이 떨어질 때 이런 현상이 생깁니다. 자꾸 좋은 옷을 입으려고 하는 것도 옷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커버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보석을 치장하고, 돈이 많은 것을 자랑하고, 지위가 높다고 자랑하고, 내 친구가 장관이라는 얘기를 자꾸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외부적인 요소로 자신의 부족함을 덮으려고 애를 쓰는 겁니다.

729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35:15

그런데 수행을 해서 지금 이대로 아무런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면 그런 외부적인 치장에 마음을 덜 뺏기게 되고, 자신의 삶에 더욱 충실하게 될 수가 있습니다. 콤플렉스는 욕심으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욕심을 버리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학벌을 돈 주고 사고 박사 학위를 따도 해결이 안 됩니다. 그 조건에서 또다시 더 좋은 조건을 가진 남과 비교하면 콤플렉스가 또 생깁니다.

730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35:36

이런 문제는 비교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욕심을 버리지 않는 이상 영원히 해결이 안 됩니다. 아무리 허전함을 채워도 일시적일 뿐입니다. 그러니 내 능력 밖의 일을 하겠다는 지나친 욕심을 내려놓으면 ‘지금 이대로도 좋다’ 하는 관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질문자는 아직 젊으니까 좀 더 자유롭게 사고하고, 자존감을 높이는 게 좋겠습니다.

731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36:22

사람들이 보기에 아주 못 생긴 사람이 성형을 많이 할까요? 예쁘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성형을 많이 할까요? 보통은 못생겼다는 사람이 성형을 많이 할 것 같죠? 그렇지 않습니다. 어릴 때부터 예쁘다는 소리를 많이 들은 사람이 오히려 성형을 많이 하게 됩니다. 본인이 예쁘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어느 날 어떤 배우와 비교해 보니까 본인이 더 못한 거예요. 그래서 코만 조금 높이면 더 예뻐지겠다 싶어서 코를 높입니다. 코를 높이고 나면 그에 맞게 턱을 약간 깎아야 하고, 턱을 깎고 나면 눈이 약간 더 동그랗게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 또 생깁니다. 이렇게 해서 성형중독에 빠지는 겁니다. 성형은 원래 외모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나온 게 아니에요. 화상을 입거나 심하게 외상을 입은 사람이 흉터를 제거하고 원래의 모습을 보존하려고 나온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성형술이 미용술이 됐죠.

732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37:38

이런 현상은 모두 욕심에서 빚어지는 일입니다. 제가 보기에 질문자는 정신적인 치료가 좀 필요해 보여요. 행복학교에 다니면서 관계편도 듣고 심화과정도 공부해서 내가 지금 모습 그대로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말씀하셨어요.

733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37:49

‘나는 천하의 누구 하고도 바꿀 수 없는 존엄한 존재이다’

이런 사실을 자각하면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734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4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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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5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43:28

https://www.jungto.org/pomnyun/view/84355?p=31&k=

736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5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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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7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58:05

https://www.jungto.org/pomnyun/view/84230?p=40&k=

738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58:18

어떤 일이 나한테 이익이 많이 되거나 손해가 많다면 스님한테 와서 이렇게 묻지 않아요. 상대방이 문제가 좀 있지만 그래도 이익이 많다면 스님한테 와서 안 묻습니다. 스스로 생각해봤을 때 손해가 많다면 역시 스님한테 물으러 오지 않고 본인이 스스로 이혼을 합니다. 스님을 찾아와서 어떻게 할지 물을 때는 이익과 손해가 반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신의 머리로는 어떤 게 조금이라도 나을지 판단이 안 되니까 스님한테 묻는 거예요. 아주 작은 손익이라도 더 이익이 되는 것을 선택하기 위해서 스님한테 질문하는 겁니다. 그런데 스님이 생각할 때는 그 나물에 그 밥이에요. 49 대 51이면 어떻고, 51 대 49이면 어떻고, 52 대 48이면 어때요? 어떻게 하든 대동소이합니다. 그래서 제가 답을 아무렇게나 하는 거예요. (웃음)

739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01:14

https://www.jungto.org/pomnyun/view/84232?p=40&k=

740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01:25

나이가 들면 들수록,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자기가 옳다는 생각이 자꾸 강해집니다. 초보자일 때는 설령 내가 옳다고 해도 ‘혹시 내가 잘못했나?’ 이런 생각도 드는데, 경험이 많이 쌓이고 나이를 먹고 또 지위도 높아지면 ‘내가 100퍼센트 옳아. 한두 번 해본 일이 아니잖아’ 이렇게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이런 생각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100번 내 생각이 옳아도 101번째에는 틀릴 수가 있어요. 그런데도 자기 확신에 차버리기 때문에 큰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741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03:32

어디를 가든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습니다. 그게 남자와 여자의 관계인지, 결혼의 관계인지, 애인의 관계인지, 선생과 제자의 관계인지, 이런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인간과 인간의 심리 흐름이라는 큰 틀에서는 똑같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조금의 차이가 미세하게 있는 겁니다. 부처님의 지혜는 큰 차원에서 감정의 흐름을 꿰뚫어 아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찰지’라고 해요. 그리고 또 아주 세세한 감정의 차이를 디테일하게 아는 것을 ‘분별지’라고 합니다. 우선 통찰지가 먼저 있어야 해요. 통찰지가 있으면 괴로움이 없어집니다. 대신에 통찰지만 있으면 대중을 교화하지는 못합니다. 대중의 괴로움을 풀어주려면 분별지가 있어야 해요. 작은 차이까지 세세하게 알아야 소통을 할 수가 있습니다.

742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03:44

불교를 너무 신비하게 생각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물질의 작용에도 원리가 있듯이 마음의 작용에도 원리가 있습니다. 마음이 괴로운 이유도 균형이 깨져서 그렇습니다. 몸이 아픈 것도 신진대사의 균형이 안 맞아서 그렇기 때문에 그걸 좀 조절하면 병이 낫듯이 심리도 똑같습니다.

743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03:57

여러분이 무슨 종교를 믿든, 어떤 정치적 이념을 갖든, 그런 것은 헌법에 보장된 여러분들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작용에 대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관찰하는 연습을 조금만 하면 누구나 다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굳이 책을 안 봐도 됩니다.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좀 관찰하면 됩니다.

744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04:20

여러분들은 밤하늘의 별을 관찰하거나 음식이 맛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것은 아주 잘 관찰하면서 정작 자신의 마음에 대한 관찰은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저 사람이 말할 때 내 마음이 이렇게 움직이는구나’ 하는 것에 대해서도 관찰을 한번 해보세요. 그것을 연구하면 마음이 외부의 자극에 대해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반응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 형성된 거예요.

745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04:51

첫째, 내가 화가 많다는 사실을 알기만 해도 대응을 할 수가 있습니다. 둘째, 꼭 필요하면 화내는 습관을 고칠 수도 있습니다. 안 고쳐도 괜찮아요. 화가 많이 난다고 해서 못 사는 건 아닙니다. 내가 화가 많은 줄을 알기만 해도 사는 데에 지장이 없어요. 화를 벌컥 냈다면 곧바로 고개를 숙이고 ‘미안합니다. 제가 성질이 많이 더럽죠. 한 번만 봐주세요’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면 같이 살 만해요. 화를 벌컥 내고도 자기가 잘났다고 계속 고집을 하니까 같이 못 사는 겁니다. ‘화를 내니까 손실이 크구나’ 하고 깨달았다면 꾸준히 노력해서 개선을 하면 됩니다. 이렇게 관점을 잡으시고 공부를 해나가면 될 것 같아요.

746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06:08

https://www.jungto.org/pomnyun/view/84226?p=40&k=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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