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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2 22:13:53 - 2024-04-02 22: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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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2 (FIRE!) 22: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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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7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06:26

깨달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그 말에 걸려 들어서 ‘무엇을 깨달아야 하지?’ 이렇게 생각한다면 남의 말에 현혹된 거예요.

748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06:36

이런 사람을 보고 귀가 얇다고 표현하는 겁니다. 질문자는 이 사람이 말하면 여기에 끌려가고, 저 사람이 말하면 저기에 끌려가는 사람이에요. 별로 좋은 태도는 아니에요. 어떤 사람이 ‘깨달으면 어떻다’ 이렇게 얘기하면 그 사람이야 뭐라고 그러든 그것은 그 사람의 얘기입니다. 그 말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에요? 그것은 그냥 길 가는 사람의 얘기일 뿐이에요. 나한테 정말 필요해서 물어보고, 안 후에 직접 해봐야 딱 내 것이 됩니다.

749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07:40

우리가 일상에서도 수도 없이 보잖아요. 이 사람은 이렇게 주장하고, 저 사람은 저렇게 주장하고, 이 사람은 이런 물건을 갖다 놓고 사라고 하고, 저 사람은 저런 물건을 갖다 놓고 사라고 합니다. 나는 그중에서 내가 필요한 걸 선택하면 됩니다. 일일이 따라다니면서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깨달음이 무엇인지를 말하기 전에 일단 그걸 먼저 지적하고 싶어요.

750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07:52

깨달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얘기를 하는 순간 깨달음과는 거리가 먼 깨달음에 대한 지식을 얘기하게 됩니다. 오히려 ‘저에게는 이런 고뇌가 있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질문자의 인생에 도움이 되지, 깨달음이 무엇인지 아는 게 뭐가 중요해요? 지식에 불과한 것을 안다고 해서 인생 문제가 풀리는 것이 아닙니다.

751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09:03

그렇다면 왜 사람들이 ‘깨닫는다’ 하는 말을 썼을까요? 눈을 감은 상태에서는 앞이 안 보입니다. 눈을 뜨면 환히 보입니다. 눈을 감고 있으면 바로 옆에 있는 물건도 찾을 수 없고, 눈을 뜨면 금방 찾을 수 있어요. 깜깜하면 눈을 떠도 못 찾고, 불을 탁 켜고 보면 물건이 어디 있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깨닫는다’ 하는 말은 ‘눈을 뜬다’, ‘불을 밝힌다’ 하는 개념입니다. 반대로 ‘눈을 감았다’, ‘어둡다’ 이런 표현은 무지(無知), 어리석음을 비유하는 표현입니다. 내가 뭘 모르니까 두렵고 괴로운 겁니다. 그것은 마치 눈을 감은 것과 같은 상태이고, 깜깜한 밤과 같은 상태입니다. 그런데 내가 눈을 뜨고 불을 밝혀서 보면 문제를 해결하기가 굉장히 쉬워집니다.

752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09:31

깨달음을 표현하는 다른 말로는 ‘꿈에서 깬다’ 하는 표현도 있습니다. 꿈속에서 강도에게 쫓기고 있다고 합시다. 꿈속에서는 아무리 도망을 가도 그 강도가 계속 따라옵니다. 그런데 눈을 딱 뜨면 해결이 돼요. 눈을 감은 상태, 즉 꿈속에서는 강도로부터 도망가거나 누군가가 강도를 막아주는 것이 해결책입니다. 그러나 내가 눈을 뜨면 아무런 해결책이 필요 없어요. 원래 강도가 없었습니다. 누가 나를 구해줬다고 해도 원래 나를 구해준 사람이 없었어요. 문제가 해결됐다고 해도 원래 해결할 문제가 없었어요. 눈을 뜬다는 것은 본래 문제가 없는 줄을 아는 거예요. ‘꿈에서 깬다’ 하는 표현처럼 여러분들이 어떤 고뇌로부터 벗어나게 되면 ‘괴로워할 일이 아니었구나!’ 하고 알게 됩니다.

753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09:56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한문 용어로 표현하면 ‘실상(實相)’이라고 합니다. ‘제법실상(諸法實相)’이라고 하잖아요. 깨달음은 사실을 사실대로 아는 거예요. 사실을 사실대로 보지 못하는 인식상의 오류가 발생하면 번뇌가 생기는 것입니다.

754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10:39

https://www.jungto.org/pomnyun/view/84229?p=40&k=

755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14:32

그걸 왜 노력을 해요? 자기가 죄를 지었다는 생각이 별로 없으니까 자꾸 애를 쓰고 노력을 하게 되는 거예요. 마음속에서 정말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면 애쓰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기꺼이 하게 됩니다. 지금 노력하고 있다는 말은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한다는 말이거든요. 노력하지 말고 기꺼이 하세요. 애쓰지 말고 기꺼이 하세요.

756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15:18

죄를 지었다고 생각한다면 기꺼이 갚겠다고 마음을 내버려야 죄가 다 없어져버립니다. 기꺼이 갚겠다는데 죄가 어디에 있겠어요? 돈을 빌린 사람이 돈을 안 갚으려고 하니까 죄인이 되지, 자기가 빌린 돈을 형편이 되는대로 기꺼이 갚겠다고 하면 설령 살면서 다 못 갚는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죄가 되지 않습니다. 그냥 죽는 것보다는 몇 푼이라도 갚고 죽는 게 낫다는 자세를 탁 취하면 죄의식도 없어져요.

757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16:02

https://www.jungto.org/pomnyun/view/84216?p=41&k=

758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20:41

명상을 하기 위해 가만히 앉아 있으면 번뇌가 엄청나게 일어납니다. 아주 어릴 때 생각까지 다 일어납니다. 명상은 그런 생각에 끌려가지 않는 것입니다. 생각을 하지 않는 상태로 가야 하는데 엄청나게 생각이 많이 일어납니다. 다리가 아프고, 가렵고, 졸리고, 도저히 명상을 지속하지 못할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명상하지?’ 이런 마음이 일어나기도 해요.

759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20:50

그러나 비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고, 폭풍이 일어나더라도 꿈쩍 안 하고 그걸 이겨내고 길을 가듯이 온갖 망상에 끌려가지 않아야 합니다. 온갖 망상은 내면에 쌓인 것들입니다. 가만히 앉아 있는데 밖에서 그런 망상들이 찾아올 일이 없잖아요. 단지 자기 내면에 있던 것들이 일어나서 휘몰아치고 나가는 것입니다. 대부분 그런 장애가 일어나면 명상을 그만두게 됩니다. 그러나 망상의 폭풍이 스쳐 지나가야 마음의 고요함이 뒤따라옵니다.

760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21:02

폭풍이 지나갈 때는 ‘명상은 너무 힘들어서 죽어도 못 하겠다’ 하는 생각이 일어나고, 다시 잔잔함이 오면 ‘이런 맛으로 명상을 하는구나’ 하며 재미를 붙이고, 그러면 그다음 폭풍이 또 찾아와서 ‘명상이 안 되네! 원래대로 되돌아 가버렸나?’ 하고 실망을 합니다. 그렇게 우리의 내면에 쌓인 것들이 양파껍질처럼 수도 없이 벗겨나갑니다. 다음 껍질이 벗겨지면, 또 다음 껍질이 나타나고, 이렇게 순차적으로 마음에 쌓여 있던 것들이 하나씩 벗겨져 나가는 거예요. 최근의 일이거나 강한 상처부터 먼저 일어난 후 그다음에는 무의식 세계에 깊이 잠재된 것들이 조금씩 일어나고 지나갑니다. 그때 ‘아! 이런 것이 있었구나’ 하고 알아차릴 뿐 거기에 의미 부여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과거의 생각에 억울해 하면서 울거나 욕을 하면서 거기에 자꾸 빠져들게 되죠. 그럴 때는 밖에서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를 그냥 흘러 보내듯이 그냥 내버려 두어야 합니다.

761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21:23

그래서 최소 10일 명상은 해야 합니다. 그래야 폭풍이 몇 번은 지나갑니다. 집에서 하루에 삼십 분을 하든, 한 시간을 하든 그런 정도는 10일 명상 후 원래대로 되돌아가지 않도록 유지하는 방책이지, 명상이 더 깊어지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집에서 혼자 명상을 할 때는 폭풍이 몰아치면 그만두어 버리기가 쉽습니다. 처음 명상을 하면 원점에서 출발해서 100까지 갔다가 집에 와서 하지 않으면 20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10일 명상을 하면 20에서 출발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몇 차례 하게 되면 명상이 향상되기 때문에 10일 명상 프로그램을 몇 차례 먼저 한 후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혼자서라도 꾸준히 하면 되돌아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100퍼센트 막아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감소하는 양을 줄여서 어느 정도라도 유지해 놓기 위해서 매일 명상을 하는 것입니다.

762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21:41

명상을 통해 격렬한 장애가 지나가는 것을 겪어야 하는데, 일상적으로 명상을 30분 정도 하는 것은 그냥 마음이 좀 편안해지는 자기만족일 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나아요. 그러나 업식이라고 하는 까르마를 변화시키려면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엄청난 저항을 겪어야 해요. 담배를 끊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 며칠 담배를 안 피우면 죽을 것 같죠. 그럴 때 마음속에서는 ‘이렇게 고통을 받으면서까지 오래 살 필요가 있나? 담배 좀 피우다 죽으면 되지’ 하는 생각이 내부에서 일어나요. 그런 저항을 극복하면 마음이 조금 더 고요해집니다. 그러다가 다시 격랑이 일어나고, 또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다시 마음이 잔잔해지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우리의 마음은 점점 평정심을 유지해 가는 겁니다.

763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22:16

각오하고 용을 쓰면서 하는 것은 명상이 아니에요. 잘했다 잘못했다로 평가하는 것도 명상이 아닙니다. 명상은 모든 긴장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잘하겠다는 의도를 내려놓고 하는 것이 명상입니다. ‘이렇게 하면 잘 된다, 안 된다’ 하는 생각을 내려놓고, 다만 알아차리기만 하면 됩니다. 명상을 하다가 어떤 것이 일어나도 그냥 ‘이런 일이 일어나는구나’ 하고 알아차릴 뿐이에요. 아프면 ‘아프구나’ 하고 알아차려야지 ‘다리를 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생각에 빠져서 이를 악물고 참는 것은 명상이 아닙니다. 그건 명상이 아니라 극기 훈련이에요. 이를 악물고 명상을 하면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명상이 하기 싫은 거예요. 명상은 그냥 쉬는 겁니다. 어떤 의도를 갖지 않고, 잘했다 못했다는 평가도 하지 않고 그냥 쉬듯이 하는 것이 명상입니다.

764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22:57

오래 앉아 있는 것이 좋은 명상이라고 평가를 해서는 안 됩니다. ‘명상을 해보니 이런 증상이 있더라’ 하는 관점을 가지고 명상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수행을 마치 세속에서 일하듯이 욕심으로 하고 있어요. 돈에 대해 욕심을 내다가 지금은 도(道)에 대해 욕심을 내는 겁니다. 수행은 욕심을 내려놓는 데서 시작됩니다. 욕심으로 하는 것은 수행이 아니에요. 욕심의 대상이 돈에서 수행으로 바뀐 것일 뿐이라는 관점을 가져야 됩니다.

765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23:11

스님이 이렇게 여러분들과 대화를 하는 효과는 무엇일까요? 스님과의 대화를 통해 여러분의 마음속에 ‘어, 별거 아니네’ 하는 생각이 들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어떤 것도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풀 한 포기로 살다가 죽는 것이나 인간으로 태어나서 살다 죽는 것이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인생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살기 때문에 삶이 피곤한 거예요. 인생이 별 것 아닌 줄 알고 살면 아무런 힘이 들지 않습니다. 스님이 너무 수준 높은 이야기를 한 건 아니겠죠? 이런 관점을 갖고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766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35:24

https://www.jungto.org/pomnyun/view/84083?p=51&k=

767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37:46

https://www.jungto.org/pomnyun/view/84079?p=51&k=

768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38:11

못 받는 게 왜 억울해요? 사람은 다 다릅니다. 다른 사람이 비싼 선물을 받은 것은 누군가 그 사람을 좋아해서 그런 거죠.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쟤는 공부를 잘하는데 나는 못 한다’, ‘쟤는 부모가 훌륭한데 우리 부모님은 안 그렇다’, ‘쟤는 남자친구가 있는데 나는 없다’ 이렇게 비교할 일은 아닙니다. 그렇게 자꾸 비교하면 사람이 살 수 없습니다. 그건 그 사람의 일이고, 나는 나의 삶을 살아야죠.

769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38:21

남의 도움을 받으면 그때는 좋지만 받은 만큼 숙이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베풀면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내가 주도권을 가지고 살 수 있어요. 상대방의 도움을 받으면, 그 사람만 쳐다보면서 그 사람의 관심이 다른 사람에게 갈까 봐 노심초사해야 하고, 그 사람에게 매달리는 종속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마치 노예를 해방시켜 줬는데 어떻게 살지 몰라서 주인집에 다시 찾아오는 것과 같은 생각을 질문자도 지금 하고 있어요.

770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42:45

https://www.jungto.org/pomnyun/view/84080?p=51&k=

771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45:35

가장 좋은 공부는 그 사람은 본래 불쌍한 사람도 아니고, 존경할 만한 사람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거예요. 그냥 사람일 뿐입니다. 이 사람도 사람일 뿐이고, 저 사람도 사람일 뿐이에요. 이렇게 상을 짓지 않는 게 가장 좋은 공부입니다.

772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45:43

그다음으로 좋은 공부는 설령 상을 지어서 ‘이 사람은 불쌍하구나’, ‘저 사람은 존경할 만하구나’ 하고 상을 지었더라도 그 상에 집착을 하지 않는 겁니다.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을 두고 생각에 머무르지 않는다고 하여 ‘무주(無住)’라고 표현합니다.

773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45:52

가장 좋은 공부는 ‘무념(無念)’입니다. 즉 아무 생각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에요. 그다음 공부는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상을 짓지 않는 ‘무상(無相)’입니다. 그다음 공부는 상을 짓더라도 그 상에 머무르거나 집착하지 않는 ‘무주(無住)’예요. 우리가 경전을 통해 계속 배우는 것이 바로 무념, 무상, 무주입니다. 금강경의 가르침도 무념(無念)으로 종(宗)을 삼고, 무상(無相)으로 체(體)를 삼고, 무주(無住)로 본(本)을 삼는다고 요약할 수 있어요.

774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46:23

이것을 실제 생활에 적용하면 한마디로 좋고 싫음에 끌려 다니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좋은 수행은 ‘좋다’, ‘싫다’ 하는 마음 자체를 내지 않는 거예요. 그렇지만 현실적으로는 느낌이 이미 일어나 버리기 때문에 설령 그런 느낌이 일어나더라도 ‘기분이 좋다’, ‘기분이 나쁘다’ 하는 상을 짓지 않아야 합니다. 상을 짓지 않는다는 것은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을 뜻해요. 즉, 수(受)라는 느낌은 일어나지만 그것에 대해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거죠. 느낌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을 바로 알아차려서 감정까지 확대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 그런데 만약 그것도 놓쳐서 감정까지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그 감정을 따라서 행동을 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만약 행동도 해버렸다면, 그때는 참회를 해야 합니다. 화나는 감정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말과 행동으로 옮기지는 말아야 하는데, 만약 화를 내버렸다면 ‘아, 내가 놓쳤구나’하고 참회를 해야 해요.

775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47:25

오늘은 내가 그 사람의 좋은 면만 보고, 내일은 나쁜 면만 볼 뿐인 거예요. 이것은 마치 오늘은 화장한 얼굴을 보고 내일은 화장을 지운 얼굴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화장을 한 때나 안 한 때나 똑같은 사람입니다.

776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47:34

내가 그 사람의 오늘 모습을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더라도 그 사람 자체가 아름답다고 할 수가 없고, 내가 내일의 모습을 보고 추하다고 생각하더라도 그 사람 자체가 추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내가 오늘의 모습을 보고 ‘저 사람은 아름답다’ 하고 상을 지을 뿐이고, 내일의 모습을 보고 ‘저 사람은 추하다’ 하고 상을 지을 뿐인 거죠.

777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47:59

설령 아름답다는 상을 지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말은 ‘저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하고 정하지는 말라는 뜻입니다.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상은 지은 거예요. 그렇지만 상에 집착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말은 내가 생각한 게 맞다고 정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상을 짓더라도 집착은 하지 않는 건 어찌 보면 가장 늦게라도 괴로움을 막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것보다 앞 단계에서 해결하려면 ‘지금 좋은 일을 하시는구나’ 이렇게만 볼 뿐이지 ‘저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다’ 이렇게 상을 짓지 않는 거예요.

778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48:27

꽃을 봤을 때 ‘나한테 아름답게 보이는구나’ 하고 말아야지 ‘이 꽃은 아름다운 거야’라고 정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러다가 꽃이 시들면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은 시드는 꽃 때문이 아니라 내가 지은 상으로 인해 생기는 겁니다. 그러니 지금 꽃이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건 내가 꽃을 아름답게 보기 때문이고, 누군가 훌륭하게 느껴지는 것도 내가 그 사람을 훌륭하다고 느끼기 때문이고, 누군가 불쌍하게 느끼는 것도 내가 그 사람이 불쌍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 사람이 훌륭한지 아닌지, 불쌍한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어요. 다만 지금 내가 그렇게 느낄 뿐이죠.

779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49:13

다만 내가 그렇게 인지할 뿐입니다. 그 사람이 진짜 나쁜 사람인지 좋은 사람인지, 무언가가 진짜로 아름다운 건지 추한 건지, 그건 알 수가 없어요. 상을 짓는다는 건 나에게 인식되는 걸 논하는 게 아니라 ‘내가 이렇게 인식했으니 이건 이런 거야’라고 객관화 하는 걸 말합니다.

780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49:29

태양을 볼 때도 ‘내 눈에 태양이 동쪽에서 뜨고 서쪽에서 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말을 해야지, ‘태양은 동쪽에서 뜨고 서쪽에서 지는 거야’라고 객관화 시키면 그게 바로 상을 짓는 거예요. 실제로 태양은 지는 것도 아니고 뜨는 것도 아니잖아요. 지구가 자전을 하는데 내가 지구 위에 서있으니까 내 눈에 태양이 보이기 시작하면 태양이 뜬다고 말하고, 태양이 안 보이기 시작하면 태양이 진다고 말하는 거예요. 나에게 그렇게 인식될 뿐이기 때문에 실제인 것으로 객관화시키면 안 된다는 겁니다. 나에게 인지되는 것을 객관화시키는 것을 두고 상을 짓는다고 하는 겁니다.

781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49:43

내가 인지하는 걸 객관적인 것으로 착각을 하면 그것에 집착하게 됩니다. 내가 그렇게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마치 사실인 것처럼 착각하니까 집착을 하게 되는 거예요. ‘내 말이 사실이잖아’라고 할 때는 이미 집착을 하고 있는 거죠. 그러니 단정하지 말고 ‘나는 이렇게 봤어’, ‘나는 그렇게 느꼈어’, ‘나는 이렇게 생각했어’ 이렇게 말하는 연습이 필요해요.

782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50:09

상대방에 대해서도 ‘당신이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기분이 나빠’ 이렇게 말하기가 쉬운데, 상대방이 원인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당신이 나쁜 짓을 해서 나를 기분 나쁘게 했다’ 하고 말할 게 아니라 ‘당신의 어떤 말을 듣거나 행동을 볼 때 내 마음이 기분 나쁘게 반응하더라’ 이렇게 말하는 것이 사실 그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783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50:37

상을 지으면 집착하는 부작용이 생기고, 집착하게 되면 반드시 괴로움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상을 짓는 것까지는 막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집착하지는 않아야 합니다. 지금 누군가가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제행무상(諸行無常)이기 때문에 늘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내가 지은 생각에 집착하게 되면 그 사람이 나쁜 짓을 했다고 하는데도 ‘아니야, 그 사람은 착한 사람이야’ 이렇게 고집하게 될 수 있고, 또는 그 이야기를 듣고 금방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이구나’ 하고 다른 상을 지을 수 있어요. 그런데 상에 집착하지 않으면 나는 좋게 생각했는데 나쁘다는 이야기가 들리니까 ‘내가 조금 더 알아봐야겠다’ 이렇게 볼 수 있게 됩니다. 즉, 누가 좋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들어도 금방 좋다고 결정하지 말고, 누가 나쁘더라 하는 이야기를 해도 금방 나쁘다고 결정하지 말고, ‘지금까지는 내가 좋게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내가 나쁘게 생각했다’ 이렇게 바라봐야 합니다. 정말 좋은지 나쁜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784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52:10

불쌍한 마음이 들어도 괜찮아요. 다만, 불쌍한 마음이 들 때 ‘그들을 보고 내 마음에서 불쌍함이 일어나는 것이지 실제로 그 사람이 불쌍한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다’ 이렇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사람들을 보니 딱한 마음이 들어서 지원을 해도 되고, 그 사람들한테 이게 필요하구나 해서 지원을 해도 됩니다. 그런데 가능하면 불쌍해 보여서 돕기보다는 그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는 게 좋습니다. 불쌍함을 느끼는 건 내 문제이지만 ‘이게 필요하구나’ 해서 돕는 건 그들의 문제 해결을 돕기 위한 거예요. 그래서 그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줄 때는 꼭 그들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식량이 필요합니까?’ 하고 물어봐서 필요하다고 하면 지원을 하고, ‘옷이 필요합니까?’ 하고 물어봐서 필요하다고 하면 지원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불쌍한 마음이 들어서 도와줄 때는 묻지도 않고 그냥 내가 주고 싶은 걸 줘버립니다. 그 사람이 필요로 하는지 안 하는지 관계없이 그냥 내 마음대로 주는 거예요.

785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0:53:59

https://www.jungto.org/pomnyun/view/83978?p=60&k=

786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1:23:35

https://www.youtube.com/watch?v=SItsZw9t07s

787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11:28:34

https://www.vegannews.co.kr/news/article.html?no=13929

788 이름 없음 (zEGij8C3pU)

2024-05-05 (내일 월요일) 00:29:47

구름많음 현재 온도18.9°
어제보다 4.9° 높아요 구름많음

789 이름 없음 (zEGij8C3pU)

2024-05-05 (내일 월요일) 00:32:36

호흡과 동작의 알아차림은 집중이 안 되고 산란할 때 산란심을 극복하는 수행법입니다. 앉았을 때는 모든 동작을 멈추었기 때문에 몸에서는 호흡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호흡을 온전하게 느끼라는 겁니다. 그러나 머릿속에서 여러 생각이 일어나면서 자꾸 관심이 밖으로 흩어집니다. 그것에 끌려가지 말고 다만 들숨과 날숨에 집중합니다. 그러면 집중력이 매우 높아집니다. 선불교에서도 집중력은 매우 중요합니다. 선불교에서는 화두에 집중하라고 가르치는데, 오직 화두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위빠사나와 선불교 모두 집중이 매우 중요합니다.

790 이름 없음 (zEGij8C3pU)

2024-05-05 (내일 월요일) 00:32:47

그런데 일어나서 움직이게 되면 집중이 흐트러집니다. 움직일 때는 동작에 알아차림을 유지해야 합니다. 단순히 일어나고 앉고 오고 가고 하는 것만을 알아차려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음식을 먹거나 대소변을 보거나 할 때도 그 상태를 알아차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선불교에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791 이름 없음 (zEGij8C3pU)

2024-05-05 (내일 월요일) 00:32:56

‘똥을 눌 때는 똥만 누고, 밥을 먹을 때는 밥만 먹어라’

792 이름 없음 (zEGij8C3pU)

2024-05-05 (내일 월요일) 00:33:04

그런데 산만한 사람들은 밥을 먹으면서 다른 생각을 하고, 뚱을 누면서 다른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명상이든 포행이든 모두 지금 여기에 깨어있는 연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793 이름 없음 (zEGij8C3pU)

2024-05-05 (내일 월요일) 00:33:19

동작과 자세에 깨어있다는 것은 감각에 깨어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호흡에 깨어있다는 것도 엄격하게는 감각에 깨어있는 것입니다. 느낌이라는 것은 감각이 일어날 때 발생합니다. 내가 가진 카르마와 감각이 부딪칠 때 기분 좋고, 기분 나쁜, 느낌이 일어납니다. 느낌이 일어나면 욕망이 따라 일어납니다. 욕망이 일어나면 행위를 하게 됩니다. 행위를 하게 되면 다시 습관이 생겨납니다. 이것이 계속 반복되면 카르마가 형성됩니다. 그래서 욕망이 일어나더라도 행위를 멈춰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행위를 하게 되면 불이익과 손실이 크기 때문입니다. 모든 행위를 멈추라는 것이 아니라 손실이 큰 행위를 멈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계율입니다.

794 이름 없음 (zEGij8C3pU)

2024-05-05 (내일 월요일) 00:33:28

그러나 감각이 일어나고, 느낌이 일어나고, 욕망까지 일어나면, 계율을 지키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계율을 지키더라도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결국 계율을 어기게 됩니다. 계율은 마치 저수지 뚝과 같습니다. 그러나 물의 압력이 세면 뚝은 터지게 됩니다. 그래서 욕망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관찰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느낌에서 연유합니다. 느낌이 일어날 때 바로 알아차리게 되면 느낌이 욕망으로 바뀌는 것을 차단할 수 있습니다.

795 이름 없음 (zEGij8C3pU)

2024-05-05 (내일 월요일) 00:33:46

그런데 느낌은 과거에 지은 업식으로부터 일어나기 때문에 결심과 각오로는 제어하기가 어렵습니다. 마치 두 개의 부싯돌이 부딪쳤을 때 불꽃이 일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옆에 솜이 있으면 곧바로 옮겨 붙습니다. 불이 옮겨 붙은 것이 바로 욕망입니다. 불이 작을 때는 쉽게 끌 수 있지만, 불이 점점 커지면 불이 났는지 알아도 불을 끄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욕망이 일어나자마자 초기에 알아차림을 유지하면 훨씬 제어하기가 쉽습니다. 만약 욕망이 일어나기 전 단계인 느낌을 알아차리면 불꽃이 옮겨 붙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부싯돌에서 불꽃은 늘 일어나지만, 옮겨 붙을 것이 없기 때문에 일어났다가 꺼져버립니다. 이렇게 되려면 느낌을 온전히 알아차려야 합니다. 느낌은 알아차림의 힘이 아주 강하지 않으면 놓치기가 쉽습니다.

796 이름 없음 (zEGij8C3pU)

2024-05-05 (내일 월요일) 00:34:15

그러나 감각에 기초해서 느낌이 일어나기 때문에 감각을 알아차리면 느낌을 알아차리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우선 감각을 알아차리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호흡을 알아차리거나 동작과 자세를 알아차리는 것은 모두 감각을 알아차리는 것에 속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가장 먼저 호흡과 동작, 자세를 알아차리라고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797 이름 없음 (zEGij8C3pU)

2024-05-05 (내일 월요일) 00:34:23

호흡에 깨어있는 것은 곧 감각에 깨어있는 것이고, 감각에 깨어있는 것은 곧 느낌에 깨어있는 것이고, 느낌에 깨어있는 것은 곧 감정이 일어나기 전에 제어할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미 일어난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불이 붙은 것을 끄는 것이 아니라 불이 붙지 않도록 하는 것과 같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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