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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2 22:13:53 - 2024-04-02 22: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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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2 (FIRE!) 22: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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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5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8:20:45

건강한 자기애를 키우는 것 또한 심리적 공허를 해결해 나가는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이 들어요. 자기애가 부족하면 다른 사람들만 대단해 보이고, 또 자기애가 너무 과하면 안하무인의 태도를 보이거나 거대화된 허상의 자기에 빠져 스스로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기소외의 상태가 되기도 합니다. 타인이나 사회의 욕구보다는 내가 원하는 것을 명확히 알고 나를 귀하게 여기고 대접할 수 있는 힘, 이것이 건강한 자기애를 가진 상태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심리적 공허가 자신의 내적인 측면의 반영이라고 말씀드렸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 자기애 역시 나 자신과의 관계의 토대가 됩니다. 건강한 자기애의 자리가 커지면 심리적 공허의 자리는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됩니다.

666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8:21:02

쉽게는 눈에 보이는 것부터 실천해 보세요. 바쁘고 귀찮다고 매 끼니를 컵라면과 삼각김밥으로 때우시지 말고 5분만 시간을 투자해서 신선한 야채를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나를 귀하게 여기고 좋은 것을 스스로에게 대접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당장의 필요가 없더라도 나를 위해 원하고 좋아하는 것을 하세요. '나는 취업도 못 하고 있는데 취미 생활을 갖는건 사치야!'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당연히 계실 겁니다.

667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8:21:49

그러나 제가 말씀드리는 건 꼭 거창한 무엇일 필요는 없고요. 예를 들면,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는 것, 잠깐 동네 한 바퀴 산책하는 것과 같이 소소한 활동이라도 나를 위한 활동을 하시라는 의미입니다. 즉, 나를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 관심을 가지고 관여하는 것이 건강한 자기애를 갖고 공허함을 줄여나가는 방식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668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8:22:00

우리의 감정은 저절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몸의 건강을 관리하듯 우리의 감정도 적절히 관리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12월 31일과 1월 1일은 똑같은 하루예요. 오늘까지는 흘려보내고 내일부터 잘한다는 건 사실 스스로를 속이는 거죠! 새해로 모든 것을 미루시면서 12월을 공허로 흘려보내지 마시고 새로운 경험 속으로 적극적으로 뛰어드시고 나 자신을 친절하게 대하고 대접할 수 있는 올해의 마무리 되시면 좋겠습니다.

669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8:23:14

http://psytimes.co.kr/m/view.php?idx=5276&mcode=

670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8:23:40

https://m.blog.naver.com/nowbe3/222908922720

671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8:28:25

http://www.psychiatric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11978

672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8:30:03

http://www.psychiatric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35190

673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8:34:01

https://www.jungto.org/pomnyun/view/84760?p=1&k=

674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8:34:38

질문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생각은 자유니까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좋다면 그리 생각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괴롭다면 달리 생각하면 됩니다. 사실 시간은 빠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습니다. 그냥 변화할 뿐입니다.

675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8:34:49

슬픈 일을 왜 자꾸 생각해요? 질문자는 괴롭게 살고 싶은가요? 괴롭게 살고 싶다면 슬픈 생각을 자꾸 하면 됩니다. 그러나 괴롭게 살고 싶지 않다면 그 생각을 떨쳐내야 합니다. 영화를 본다든지 운동장에 나가 뛴다든지 해서 생각을 떨쳐내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676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8:35:03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질문자한테 선물을 줬다고 합시다. 질문자가 기쁜 마음으로 선물을 풀어봤더니, 쓰레기가 들어 있었어요. 그럼 질문자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677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8:35:21

버리겠다고 말하면서 질문자는 왜 쓰레기를 매일 가지고 다니면서 열어보고 또 열어보고 합니까? 잊을만하면 열어보고 ‘어떻게 나한테 쓰레기를 줄 수가 있어?’ 하면서 자신을 괴롭히고 있잖아요. 상대방이 쓰레기와 같은 선물을 주면 ‘아, 쓰레기구나’ 하고 쓰레기통에 버리면 그만입니다. 질문자가 과거를 붙잡고 살고 싶으면 그렇게 살아도 돼요. 어떻게 살지는 각자의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질문자처럼 사는 것은 어리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바로 지금, 여기에 깨어있으라는 겁니다.

678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8:41:32

https://www.jungto.org/pomnyun/view/84643?p=10&k=

679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8:55:10

https://www.jungto.org/pomnyun/view/84510?p=20&k=

680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8:56:30

https://www.jungto.org/pomnyun/view/84508?p=20&k=

681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8:57:51

일부러 게으름을 피울 필요는 없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를 세워서 가슴 졸이고 애를 태우며 살 필요가 있을까요? 목표와 기대를 조금 낮추면 조금만 노력해도 남한테 뒤처지지 않고 여유롭게 살 수 있잖아요. 우리들의 열등의식은 다 상대적인 겁니다. ‘열등하다’, ‘우등하다’ 하는 것은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에요. 모든 존재는 다 존엄합니다. 비교를 하다 보니 ‘누구보다 못하다’, ‘누구보다 낫다’ 하는 분별이 생기는 겁니다.

682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8:59:32

공부는 직접 사회에 나가서 하는 공부가 제일 효율적이에요. 여러분들이 하는 공부는 다 시험을 치기 위해서 하는 공부입니다. 꼭 일회용과 같습니다. 지식을 시험칠 때만 일회용으로 사용하고 쓰레기통에 넣어버리거든요. 여러분들은 그냥 시험을 잘 봐야 하기 때문에 외우는 공부를 합니다. 그래서 현실에 적용할 가치가 별로 없는 것들을 공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중학생 수준의 과학이나 수학을 물어봐도 대부분이 몰라요. 학교 다니면서 배운 것이 생활에 활용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683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00:38

질문자는 지금 아무런 사건이 없으니까 '무슨 사건이 좀 생겨야 하는데, 왜 나는 사고가 안 생기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겁니다. 질문자는 지금 화를 부르는 기도를 하고 있는 거예요. 편안한 것을 오히려 지루하다고 느끼면 곧 화가 닥칠 겁니다. 그래서 그 일을 수습한다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다 보면 생기가 돌고, 선택하기 싫어도 선택을 하게 됩니다. ‘무슨 선택을 할까’ 이런 걱정을 한다는 것은 질문자가 지금 편안한 처지에 놓여 있다는 얘기예요.

684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00:45

편안한 것에 대해 감사할 줄 알아야 되는데, 오히려 편안한 것을 문제로 삼으니 곧 무슨 재앙이 좀 닥쳐야 문제가 해결되는 겁니다. 그래야 생기가 돌게 되니까요.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정신없이 바빠져야 사람은 생기가 돕니다. 그래서 지금 질문자의 생각은 썩 바람직한 생각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685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01:45

꼭 하고 싶은 게 있어야 될 필요가 없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하고, 안 생기면 안 하고, 그러면 되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지금 왜 새삼스럽게 나이 50이 넘어서 새로 선택을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할 일 없이 빈둥빈둥 노는 게 제일 좋습니다. 그래서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686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02:23

심사숙고를 하니까 그런 일이 생긴 거예요. 심사숙고할 필요 없이 되는 대로 그냥 선택하면 돼요. 되는 대로 인연 따라 지내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687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04:05

이전의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어서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는 것에 불과한데 어릴 때 늘 붙어 다닐 때처럼 친밀하기를 바라고 있는 겁니다. 지금 질문자는 과거에 집착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아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688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04:19

사람 간의 관계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가끔 만날 때는 사이가 좋다가도 막상 같이 여행이라도 하면서 붙어 지내다 보면 취향이나 성격이 안 맞아서 틀어지는 경우가 생깁니다. 연애를 몇 년간 길게 해도 막상 결혼해서 함께 살아보면 1년도 못 살고 헤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떨어져서 가끔 만나는 사이와 같이 살면서 속속들이 아는 사이하고는 그만큼 차이가 있습니다.

689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04:26

사이가 데면데면한데 며칠 같이 지내보면서 더 친해지는 경우가 있고, 반대로 친한데 붙어 지내니까 멀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먼저 데면데면한 사이인데 더 친해지는 경우는, 기대가 없었는데 막상 가까이서 지켜보니까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아서 친해지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친한 관계일 때는 서로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에 막상 가까이서 지켜보면 실망할 일이 많아져서 관계가 멀어지는 겁니다.

690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04:51

이것은 인생사의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런데 자연스러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릴 때 생각에 사로잡혀서 늘 관계에 변함이 없기를 고집한다면 어린아이와 같은 생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질문자는 자연스러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과거의 생각에 빠져서 ‘늘 우리는 우정이 있어야 한다’ 하고 고집하는 것입니다.

691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05:20

사람은 대부분 자기 일에 더 집중하고 살아갑니다. 친구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자기 일에 집중하게 되면 그 이외의 일에는 시간 배정을 덜 하게 되고 마음을 덜 쓰게 됩니다. 그래서 각자 본인에게 필요한 다른 사람을 찾게 되는 겁니다.

692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05:44

나중에 만났을 때 서로 ‘반갑다!’ 해도 그때 말뿐이고, 악수할 때뿐이고, 포옹할 때뿐입니다. 각자 자기 생활이 있으니까 돌아가면 그걸로 끝이에요. 그저 1년에 한두 번 만나면 ‘반갑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니?’ 하고 그걸로 끝이죠. 왜냐하면 옛날 친구들은 현재 나의 일상생활에 들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693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06:10

친구는 어떻게 지내야 한다고 정해진 건 없습니다. 친구라는 말뜻이 친한 사람이라는 뜻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웃 사람이라도 오랜 시간을 가까이에서 친하게 지내다 보면 혈연적으로 맺어진 사촌보다 낫다고 해서 ‘이웃사촌’이라고 하잖아요. 옛날 시골에서는 사촌도 가족이니까 가까이 지냅니다. 그런데 성장하면 서로 멀어져요. 그러나 비록 남이지만 이웃에 있는 사람은 늘 가까이 지내게 되니까 당연히 이웃이 사촌보다 낫게 느껴지죠. 혈연 때문에 친한 게 아니라 가까이 있으면 친해지는 것입니다. 멀어지면 소원해지는 것이고요. 형제나 친척은 어릴 때 가까이 있어서 친해진 것이고, 성장하면 각자의 길을 가니까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혈연관계가 없지만 학교에 같이 다닌다든지 이웃집에 살면 가까이 지내니까 친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하는 말이 있잖아요. ‘이웃사촌’이라는 말은 옛날 사람들이 살았던 환경에서 나온 속담입니다. 누구든지 가까이에서 서로의 생활을 같이 나누면 친해지는 것이지 혈연 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설령 형제라 하더라도 멀리 떨어지게 되면 서로 소원해지는 것입니다.

694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06:27

질문자가 의미를 부여하고 질문까지 하는 것을 보면, 질문자는 아직 어릴 때의 생각에 젖어 있다는 반증입니다. 과거의 기억에 늘 집착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번뇌가 생긴 거예요. 내가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내려놓게 되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질문자 문제이지 친구들의 문제는 전혀 아닙니다.”

695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06:39

그 친구들도 질문자에게 집착을 했을 수가 있죠. 그 친구들이 나에게 집착을 했든 안 했든 그것은 그 친구들의 문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질문자가 그 친구들에게 집착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질문자에게 고뇌가 생긴 것이라는 점입니다.

696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12:31

https://www.jungto.org/pomnyun/view/84366?p=30&k=

697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14:30

인간의 심리 현상은 +100이 되면 나중에 -100이 되고, +30이 되면 나중에 -30이 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에요. 예를 들어, 아들이 태어나서 +100이 되었다면 그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으면 거의 혼을 잃어버려서 -100이 됩니다. ‘나는 우리 부모님이 있어서 행복하다’ 하면서 +50이 되면,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너무 슬퍼서 -50이 됩니다.

698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14:39

마음이 +100이 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일이 이루어져서 마음이 들뜨게 되면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그만큼 아래로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좋아도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지금 기분이 좋구나’ 이런 정도로 좋아하고 말아야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좋아하면 나중에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괴로워집니다. 질문자가 괴로움 없이 즐거움만 가질 수 있다면 그렇게 해도 됩니다.

699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14:53

평균적으로 그렇다는 겁니다. 늘 전깃불을 켜놓고 살던 사람은 갑자기 전깃불이 안 들어오면 원래 전깃불 없이 살던 사람보다 더 큰 불편함을 느낍니다. 똑같이 어두운 상황이지만 불편함을 느끼는 정도는 서로 다릅니다. 늘 문화생활을 즐기던 사람은 지구환경 위기가 도래해서 문화생활을 즐기지 못하게 되면 원래 문화생활 없이 살던 사람보다 더 큰 불편함을 느낍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문화생활을 못 즐긴 사람보다 오랫동안 문화생활을 즐겼던 사람이 더 좋은 조건에 놓여 있잖아요. 그런데 왜 더 힘들까요? 그래도 옛날에 한 번 즐겨봤으니 아예 못 즐긴 사람보다 불만이 적어야 하잖아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700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15:17

예를 들어, 선풍기가 없다가 새로 생기면 선풍기만 있어도 만족합니다. 그런데 늘 에어컨만 틀다가 선풍기를 틀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불편해집니다. 똑같이 선풍기를 틀고 있는 상황인데도 불편함의 정도가 이렇게 서로 다릅니다.

701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15:31

그래서 물질적으로 풍족해지는 만큼 계속 행복해진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마실 물이 없고, 치료할 약이 없고, 먹을 음식이 없을 때는 물질적 개선과 함께 행복도 역시 함께 올라갑니다. 그러다가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면 물질적 개선이 되어도 행복도가 더 이상 올라가지 않습니다. 보통은 물질적 소비 수준이 올라가면서 행복도가 함께 올라가는데, 소비에 중독이 되면 아무리 물질적 개선이 이뤄져도 오히려 행복도가 떨어집니다.

702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15:42

마약도 그렇습니다. 마약을 한 번 먹는다고 중독성이 생기는 건 아니에요. 처음에 한 번 먹었을 때는 기분 좋음이 100이에요. 그러나 같은 양의 마약을 두 번째 먹으면 기분 좋음이 100보다 낮아집니다. 기분 좋음이 두 번째 먹어도 100이고, 세 번째 먹어도 100이고, 열 번째 먹어도 100이라면 마약에 중독되지 않습니다. 첫 번째 먹었을 때 기분 좋음이 100이라면, 두 번째 먹었을 때는 기분 좋음이 90이 되고, 세 번째 먹었을 때는 80이 되고, 네 번째 먹었을 때는 70이 됩니다. 그래서 처음 느낀 100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먹는 양을 점점 늘려야 합니다. 처음에는 1g을 먹었다면, 두 번째는 1.5g을 먹어야 하고, 세 번째는 2g을 먹어야 하고, 이렇게 양을 점점 늘려가야 같은 기분이 유지되기 때문에 중독 현상이 일어나고 몸을 해치게 되는 겁니다. 처음 미량으로 먹었을 때는 몸이 나빠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갈수록 사용량을 늘려야 하기 때문에 몸이 망가지게 되는 겁니다.

703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15:53

이런 심리 작용을 잘 알아서 감정을 적절히 조절할 수 있으면 큰 고통을 겪지 않고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갈 수 있게 됩니다. 기분 좋은 감정을 억눌러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기분 좋음이 지나치게 크면 같은 높이로 아래쪽으로도 떨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는 겁니다. 이런 원리를 미리 알고 있으면 고통이 오더라도 ‘옛날에 즐겼으니까 이 정도 과보는 당연히 받아야지!’ 하고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에 그만큼 고통이 감소하게 됩니다.

704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17:37

https://www.jungto.org/pomnyun/view/84367?p=30&k=

705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18:06

사람마다 행동하는 기준이 다릅니다. 누가 옳고 그른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서 생겨는 불편한 마음을 없애려면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상대를 존중한다는 것은 ‘당신이 훌륭합니다’ 하고 말해 주는 게 아니에요. 상대는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존중입니다. ‘상대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하는 것이 이해입니다. 사랑은 이해입니다. 이해 없는 사랑은 폭력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비심이란 곧 이해심을 뜻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본인이 주고 싶은 것을 주는 것을 갖고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욕망입니다. 자비심이란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아니에요. 그의 처지에서 그를 이해하는 마음이 자비심입니다.

706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18:59

질문자는 지금 나와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도 않고 있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사랑도 없고, 자비심도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직 내 식대로만 상대방을 보고 있는 거예요. 자기 성질대로 상대방한테 말 한마디 툭 뱉어놓고 ‘내가 너를 위해서 하는 이야기니까 너는 내 말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고 생각하는 겁니다.

707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19:31

이해 없는 사랑은 폭력과 같습니다. 어떤 남자가 자기 좋다고 상대 여자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고 껴안으면 성추행을 범하게 되는 거잖아요. 꼭 성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인간관계가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대방은 원하지도 않는 말을 해놓고 ‘나는 상대방에게 바른말을 했다’ 하고 생각하는 거죠. 충고는 상대가 원했을 때 해줘야 충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충고와 비슷한 것으로 ‘자자(自恣)’라는 것을 합니다. 자자는 내가 상대방에게 ‘당신이 보기에 내가 무엇이 문제인지 저를 위해서 이야기해 주십시오’ 하고 자발적으로 요청할 때 성립이 됩니다. 이런 방식으로 이뤄질 때 진정한 충고라고 할 수 있어요. 상대가 원하지도 않는데 내가 그를 위해서 충고를 해주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를 바탕에 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가 받아들일 수도 있고, 못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질문자는 상대의 요청에 의해 충고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꾸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그럴 때는 상대방이 충고로 못 받아들이고 비난으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708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20:02

기본적으로 나와 다른 상대를 인정하는 자세가 바탕에 깔려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이해하는 마음 없이는 108배가 아니라 3000배를 해도 해결이 안 됩니다. 이 문제는 기도를 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자동차가 고장이 났으면 고장 난 부분을 고쳐야 해결이 되지, 자동차 앞에 떡을 갖다 놓고 절을 한다고 해서 고쳐지는 게 아닌 것과 같습니다.

709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20:20

상대방은 나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바르게 아는 것이 먼저입니다. 사실을 바르게 인지한 후에도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사실을 깜빡 놓칠 수가 있습니다. 상대는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는지만 일상에서는 깜빡 놓친다면 그럴 때는 자각을 하기 위해서 기도문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치를 모르는 상태에서 기도문을 주문처럼 중얼중얼 외우는 방식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종교이지 수행이 아니에요.

710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20:33

질문자는 상대가 오해를 했다고 말하는데, 상대가 내 생각대로 안 따르면 무조건 오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오해라는 것은 없습니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듯이 그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지 오해한 것이 아니에요. 오해라는 말속에는 상대가 틀렸다는 뜻이 들어있는 겁니다. ‘상대는 나와 생각이 다르구나’ 이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진실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네가 오해한 거야’ 하는 말속에는 ‘네가 잘못 이해했어’ 하는 뜻이 포함되어 있어요. 나와 다른 상대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자세를 바탕에 깔고 그 위에 대화를 통해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

711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21:18

기도문이란 내가 놓치는 것을 자각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이뤄주는 비밀스러운 주문이 아니에요. ‘기도문을 외우면 병도 낫고 부부관계도 좋아질까?’ 이런 마음으로 기도문을 달라고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그냥 주문을 외우는 것과 똑같은 겁니다. 그것은 수행이 아니라 신비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712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21:36

나와 다른 상대를 인정한다는 말은 상대가 옳다는 뜻이 아닙니다. 상대를 존중한다는 말은 상대가 옳고 내가 틀렸다는 뜻이 아닙니다. 나와 다른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나와 다른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우선 나한테 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괴로움을 없애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상대를 높이느냐 낮추느냐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713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21:56

‘저 사람은 나와 믿음이 다르구나’

‘저 사람은 나와 생각이 틀리네’

‘저 사람은 관점이 나와 다르네’

714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22:14

이렇게 생각하면 화가 날 리가 없습니다. ‘그 말은 틀렸어’, ‘그것을 말이라고 해?’ 이렇게 받아들이니까 짜증이 확 일어나는 겁니다. 나와 다른 상대를 인정하는 것이 수행의 핵심입니다. ‘상대는 나와 다르다’ 하고 인정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가면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이해하게 됩니다.

715 이름 없음 (56bPZciTuI)

2024-05-04 (파란날) 09:23:09

살다 보면 ‘야, 너 그러면 안 된다!’ 하고 내가 잔소리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 입장에서는 반발을 하겠지요. 그럴 때 그 반발을 내가 받아들이면 됩니다. 어떤 행위를 하든지 반드시 거기에는 반작용이 생깁니다. 칭찬이든 비난이든 다시 나에게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칭찬만 돌아오기를 바라죠. 그것은 과보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세입니다. 그런 자세를 갖고 있다는 자체가 벌써 상대가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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