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쾌한 발걸음으로 저먼저 얼마 없는 인파 속을 해치며 나아간다. 생각보다도 앞서는 토끼의 행동력에 미처 따라가지 못한 소녀는 그런 시로우사를 보며 작게 소리내었다. 그리고는 얼마있지 않아 소녀도 그 뒤를 따른다. 토끼의 걸음과는 달리 바닥을 밀며 걷는듯한 느릿한 걸음이었다.
"..."
활기찬 뜀걸음의 거대토끼와, 그 뒤를 졸졸따르는 유령같은 소녀― 구라하마의 하늘은 노을빛으로 적셔져있었고, 상점가는 저녁 특유의 향취가 흐른다. 거기에 있는 그 둘의 존재는, 이 거리에 묘한 대비를 일으키고 있었다.
"다들 이쪽을 바라보네요..."
시선을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듯이 소녀가 시로우사의 등 뒤로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정확히는, 거리의 사람들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눈치는 아니었다고는 하나, 같은 방 안에 있던 사람마저도 놀라게만드는 은닉의 저주가 있는 알리나에게 있어서는 사람들의 이목들이 한곳으로 집중 되고 있는 이 상황 자체가 꽤 드문 것일 터였다.
○○ 플라자는 그녀에게도 연이 있는 장소였다. 공연을 했다기 보다는 퇴근 길에 간단히 들릴만한 상가가 루트 상에는 거기 밖에 없었기에. 아이를 태운 차는 조용하게 달린다. 어느새 꺼버린 오디오는 정적을 유지하고 베이시스트는 구태여 말을 하지 않았으니, 민들레는 그저 자리에 앉아 있었을까. 창 밖으로는 도시의 풍경이 휙휙 지나갔다. 한창 봄이 되어가는 계절이었지만 콘크리트로 세워진 숲에는 계절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아 무겁게 내린 우울만이 봉우리 가득 맺혀 있었다.
그것에 삼켜진 듯 정적이 길었다. 투둑, 투둑. 차창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마치 웅대한 오케스트라처럼 차안을 가득 채웠지만 별 의미는 없이, 빗소리를 듣고 싶을 때도 있는 법이다. 적막에 쌓인 채로 그 우울한 인상을 드러내는 도시는 저물어가는 태양빛을 가리고 내 우울함도 가린다. 비가 온다. 정적이 조금 더 길어지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오늘은 혼자네. 늘 같이 왔던 그 시끄러운 녀석은 어쩐거야?”
싸움이라도 한 거야? 하는 뒷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그런 이야기까지 할만한 사이는 아니었지. 그저 동네 라이브 하우스의 아르바이트생과 자주 오는 손님 정도의 관계였다. 그 채도가 높은 녀석과는 이런저런 싸움을 하기는 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친한 사이인가? 하면 단연코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다른 사람. 완전한 타인. 격리 되어 있다고 할지 나에게는 과하게 시끄럽게 느껴졌다. 그렇기 때문에 괜히 더 날이 선 태도를 취했던 걸지도. 그에 반해서 이 여자애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 작고, 하얗다. 그냥 그뿐. 어쩐지 조금 조용하네 했던 인상은 있었지만 그마저도 드럼을 치는 모습을 보고 난 이후에는 묘한 이미지였다. 확실히 말해서, 그렇게 까지 강렬하지는 않았다. 훌륭한 테크닉이라고 생각이야 했지만 드러머로서는 선천적으로 불리한 위치를 가질 수 밖에 없는 아이. 그 정도 실력이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을까. 나에게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기에.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천재인 나는 다른 사람과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는 것 같아서, 누군가의 실력을 보았을 때 ‘헤에, 열심히 했네’이상의 표현을 하는 것이 서투르다. 어린 시절에는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런 말을 한다면 조금 건방지게 보일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천재란 것은 고독한 법이니까. 어쩔 수 없지. 묘하게 상냥한 말투인 것은 상대가 초등학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따라오는 것을 보자, 조금은 중년스러운 발라드 음정으로 흥얼거리며 주변 바닥을 둘러보며 속도를 그 교복차림의 살짝 느지막한 그녀의 발에 살짜금 맞추는 시로우사.
"어떤 생김샌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색감이나 재질같은것, 그리고 특징도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끄덕이면서 물어보는 타이밍, 조금 늦지 않나 싶기는 하지만. 그것은 시로우사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 떨어진 지갑을 두세번 주워 맞는지 확인하고 경찰서에 가져다 주기 위해 챙겨두거나, 그 옆에서 왠지 흐뭇한 표정으로 자신 것이라 이야기하는 아주머니에게 돌려준 이후에야 물어본것은 지나가도 괜찮으리라. 응, 괜찮을것이다.
"아, 제가 워낙에 이 시장에서 알려진 쪽인지라- 월묘떡집! 다음에 시간 나실때 들러서 맛있는 모찌가 만들어지는 장면을 구경해주시길!"
시로우사의 좀 더 근본적인 물음은 소녀가 시선을 허공에 두고 곰곰스레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이내 지갑의 특징들을 말해주기 시작하는데,
"갈색에... 주름이 많고... 네모에요." "크기는 이 정도..." "만지면 느낌이 좋아요. 파파가 저에게 선물해 준 거예요... 그리고, 음..." "...네모에요..."
하나같이 '도움이 되는' 정보라기에는 터무니 없을 정도로 사적이고 보편적인 것들 뿐. 아니, 도음이 된다기 보다는 오히려 혼란에 빠트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런 소녀의 얼굴 만큼은 진정 순진에 가까운 근심빛이 감돌고 있어서― 이제와서 따지는 것도 의미가 없어보였다. 그것이 그녀에겐 최선의 대답이었다는 것일까.
"월묘떡집..."
알리나는 시로우사의 말을 되뇌이듯이 입 안에 담고 중얼거린다. 아직 허공에 뜬 채인 그 시선은 시로우사― 정확히는 우이가 토끼의 탈 안 에 든채로 찹쌀떡을 만드는 모습을 멋대로 그려보며 공상에 빠져있었다.
이해못했다. 아무리 페이스를 잘 유지하는 시로우사라도 저 네모네모한 대답에는 잠시 페이스가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음. 네모. 지갑은 어째서 네모일까. 그것에 들어가는 지폐와 카드가 네모나서인가. 그러면 동전지갑은 같은 의미에서 동그란것일까. 아니, 집중, 집중. 저렇게 표정이 안 좋은 숙녀분께 더 생각할 걸 주면 안될거야, 아마. 아마.
"음음, 그러면 저희가 하던 대로 하는 수밖에 없겠군요. 혹시 숙녀분께서 말씀하시던 시계탑이 이 시계탑인가요?"
어느새 시로우사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인파들을 지나가 교회쪽에 다다른 시로우사는 뒤를 돌아보면서 질문을 한다. 고풍스러운 교회, 그리고 그 위에 돌아가고 있는 조금 오래되어보이는 시계. 노을은 이미 지나가서 어두워지려 하는 상황, 그야 그럴것이, 숙녀분의 느지막한 걸음에 맞추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이기에.
크아학 나도 잠깐 앉아서 2시간이나 졸았던 걸 보면 상태가 거시기하긴 하네에... 시로우사 모드로 만날 거야, 아니면 우이 모드로 만날 거야?(꽤 중요) 1년 전 시점에서 음악하는 중학생 보이면 "꼭 요아케사카고 들어와! 우리 밴드에 자리 비어!!" 하고 영업했을 거 같은데...
시로우사 모드면 중학생인 걸 모를테니까 와아 작다 토끼 귀여워 하면서 본능에 모든 것을 내맡기고 꼬옥 안아 버리는 전개(?) 아니면 아예 발상을 전환해서 초등학생 시절 피아노 콩쿠르에 히나타가 관객이나 경쟁자로 있었다는 거 어때?? 그때면 히나타가 중1인가 초6인가...??
토끼의 혼란과 그의 인도속에서 소녀는 마치 또 다른 앨리스처럼, 그저 얼떨결에 시계탑아래에 도달하고만다. 그렇게 마주한 장소. 교회 특유의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포용이 느껴지는 건물양식과 물든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시계탑은, 그 이름부터가 어둠의 만을 상징하는 구라하마의 하늘에도 퍽 낭만적인 그림을 그려내고 있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끼의 물음에 소녀는 고개를 조용히 가로로 젓는다.
"오늘은 처음 보는 시계네요..."
라고 말하며, 시계탑을 올려본다. 시간은 어느덧 6시를 지나서 7시― 어쩌면 8시까지도. 이미 땅거미가 지고있는 터라 귀가를 하기에는 한참이나 늦은 시간인 것이다. 사람이란 밤하늘 아래에서 한없이 나약해지는 존재. 둘 또한 거기서 벗어날 수 없기때문에 그 사실을 먼저 알아차린 토끼가 소녀에게 물었다.
"괜찮아요." "굉장한 것, 들어있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소녀는 그저 쉬이 말한다. 지갑은 포기해도 좋은 것이라고. 여기까지 소리없는 걸음을 하며, 거의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있었지만서도 내심 초면임에도 이 동행에 함께 해주는 토끼가 신경쓰이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것과는 별개로, 지갑을 포기한다는 그 발상은 희생이라 해야할지, 무모라고 해야할지. 아무튼 현대인으로서는 상식적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돌아가도록 해요..." "너무 늦으면 파파에게 걱정을 안겨드려버려요."
이러나저러나 헛걸음이었지만. 시로우사가 무어라 대꾸하기도 전에, 먼저 그렇게 운을 튼 소녀가 걸음을 밀며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목적지는 상점가. 떡 빚는 달토끼의 제 2의 고향이자, 그들이 이 짧은 수색을 시작했던 곳. 포기 빠른 소녀는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