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금을 모티브로 하고있지만 잘 모르셔도 상관없습니다. ※상황극판의 기본 규칙과 매너를 따릅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먼저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집시다. 모니터 너머의 이용자도 당신처럼 '즐겁고 싶기에' 상황극판을 찾았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오고 가는 이에게 인사를 하는 자세를 가집시다. ※상대를 지적할때에는 너무 날카롭게 이야기하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아' 다르고 '어' 다릅니다. ※15세 이용가이며 그 이상의 높은 수위나 드립은 일체 금지합니다. ※특별한 공지가 없다면 스토리는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7시 30분~8시쯤부터 진행합니다. 이벤트나 스토리가 없거나 미뤄지는 경우는 그 전에 공지를 드리겠습니다. ※이벤트 도중 반응레스가 필요한 경우 >>0 을 달고 레스를 달아주세요. ※계수를 깎을 수 있는 훈련레스는 1일 1회로, 개인이 정산해서 뱅크에 반영하도록 합니다. 훈련레스는 >>0을 달고 적어주세요! 소수점은 버립니다. ※7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 경우 동결, 14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경우 해당시트 하차됩니다. 설사 연플이나 우플 등이 있어도 예외는 아닙니다. ※기존 모카고 시리즈와는 다른 흐름으로 흘러갑니다. 따라서 기존 시리즈에서 이런 설정이 있고 이런 학교가 있었다고 해서 여기서도 똑같이 그 설정이 적용되거나 하진 않습니다. R1과도 다른 스토리로 흘러갑니다. ※개인 이벤트는 일상 5회를 했다는 가정하에 챕터2부터 개방됩니다. 개인 이벤트를 열고자 하는 이는 사전에 웹박수를 이용해서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벤트를 진행하는 이는 계수 10%, 참여하는 이에겐 5%를 제공합니다.
비록 약의 후유증으로 목에서부터 전신으로 퍼지는 붉고 푸른 핏발들에 퀭한 눈매와 눈밑에 드리운 짙은 다크서클에 시체인양 희멀건한 낯빛이 애처로웠으나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양 밝은 표정을 지었다. 셋이 함께하던 어릴 때처럼 해맑게 웃으며 그녀를 데려가는 태오에게 어리광을 부렸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에는, 다같이 외출도 하구..."
마냥 그러기에는 고갈된 체력 탓에 몇 마디 못 하고 기절해버렸지만은.
눈 감고 축 늘어진 그녀에게 그 언젠가처럼 위태로운 호흡은 없었다. 단지 밀린 잠을 자듯, 몹시 깊고도 편안하게 잠들었을 뿐이었다.
누굴 닮았는지, 호흡이 얕아 숨 쉬는게 맞나 싶어도 손에 옷깃 닿거든 움켜쥐고 익숙한 체향과 온기 느껴지면 그리로 고개 기울였다.
그럼에도 보는 이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앓음도, 뒤척임도 없이 거진 반나절을 자고서야 겨우 눈을 떴을 터였다.
"...느에... 뭐야, 나 언제 잠들었어...? 우으으... 춥다... 오빠야..."
졸린 눈 끔뻑이며 이리저리 돌아보고 태연히 춥다며 품에 파고들기나 하며 어쩌면 묘하게, 보는 이로 하여금 불안을 느끼게 했을지 모르겠다.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죽을 때가 가까워진 것이라는 옛 말이 있지 않은가.
어쩌면 그런게 아닐까 하고.
역시나 그런 마음 아는지 모르는지 자고 일어난 후에도 그녀는 마냥 해맑았다.
"오빠- 나 머리 빗질해 줘- 희야는 내가 해줄게, 여기 앉아 여기. 내 무릎 말랑말랑하다? 히히."
눈만 마주쳐도 생글생글 웃고 온종일 옆에 붙어 관심과 손길을 보채고 이제는 셋이 닮아버린 희디 흰 머리카락을 만지며 즐거워하고
"으, 망할 후유증... 다리가 꼼짝도 안 해... 팔도 저려... 오빠 나 아파아..."
약의 후유증에 시달릴 땐 우는 소리를 내며 품을 찾았고 아픔이 가셔도 괜히 더 붙어 어리광을 피웠다.
언뜻, 어린아이로 돌아간 듯이 보여도 그녀의 남매들은 알 수 있을 것이었다.
"어? 이거 봐, 크리스마스에 눈 올 거래.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겠네! 많이 쌓이면, 우리 간만에 눈싸움이나 해볼까?"
그녀의 그런 모습은, 어릴 적과도 다른 것이란 것을. 다시금 버려질까, 멀어질까, 전전긍긍하던 그 때와 달리 지금의 그녀는, 몹시도 조용한 심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결핍이 쌓이면 불만이 되더라. 어떻게 알았냐고? 나도 알고 싶지 않았어." "알았어야 했지만."
크리스마스 이브.
그녀는 4학구 미술관장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직접 초대를 받은 건 아니었지만 초대 받은 태오와 동행하게 되었다.
"오빠 오빠- 나 옷 이상하지 않아? 화장 괜찮아? 으음, 나아 가도 괜찮나아. 내가 초대 받은 것도 아닌데에."
말끔히 올려 장식을 꽂은 머리에 창백함을 가려줄 화장을 하고 하늘색 원피스와 연회색 반코트를 걸치고 굽 낮은 메리제인 구두로 치장한 그녀는 생전 처음인 자리가 어색해서인지 내내 약간 안절부절하는 모습을 보였다.
막상 식장에 도착해 인사를 하게 되자 원피스 자락을 예쁘게 잡으며 흠 잡을 곳 없는 인사를 했지만서도.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관장님. 부디 오래도록 행복하시길 바라요."
그녀가 저렇게 웃을 줄도 알았나 싶을 만큼 환히 웃음이었다.
그 뒤로 그녀는 내내 태오의 옆에 붙어다녔다. 접착제로 붙인 양 따라다니던 그녀가 유일하게 떨어진 때는, 본식이 시작되고 조금 지나서였다.
환한 조명 아래, 오늘의 주인공인 부부가 입장하고 주례가 이어지고, 그러던 중에,
"...나, 좀 답답해서, 나가 있을래."
작게 소곤소곤 말하고, 잡을 틈도 주지 않았다. 조용히 미끄러지듯 식장을 빠져나간 그녀는 찬바람 쌩한 바깥으로 나갔다.
그 바깥에서, 특별히 무언가를 한 건 아니었다. 내일의 눈발을 벌써부터 준비하고 있는 듯 엷은 잿빛 하늘을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식장의 떠들썩함에서 멀어지듯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하늘을 보던 그녀는 혼잣말이거나 혹은, 행동의 이유인 듯 한 마디 중얼거렸다.
"부럽다. 응. 부러워."
잿빛 하늘 아래, 그녀는 눈을 감았다. 찬바람에 눈가가 식고 뺨도 차게 식을 무렵에서야 식장으로 돌아갔을 터였다.
그 날 밤은 조금 뒤척이며 잠들지 못 했음을 누가 보고, 누가 알았을까.
"누가 인정하고 싶겠어. 자신이 그런 하자 투성이라는 걸." "아니래도 어쩔 수 없는 거야. 결국 이해할 수 없었어." "진작 이랬어야 했는데 말야."
대망의 크리스마스.
전날부터 우중충하던 하늘에서 아침부터 하얀 눈발이 흩날렸다.
"오빠! 희야! 이것 봐, 눈 와!"
그녀는 생애 눈 처음 보는 사람처럼 들떠서 아침인데도 어서 밖에 나가자며 채근했다. 엊그제의 난리통으로 인해 거리든 어디든 예년 같은 분위기가 아닐 텐데도 같이면 뭐든 좋지 않겠냐며, 신이 나 있었다.
"열린 카페가 있으려나? 빵집은- 음- 크리스마스니까 케이크 있어야지, 케이크! 아, 있지, 나가서 가장 먼저 보이는 가게의 케이크를 사는 건 어때? 무조건 제일 큰 거 사기!"
핏발과 창백함이 조금 가신 얼굴에 피어나는 미소는 때 이른 꽃마냥 밝았다. 이른 봄의 아지랑이 같기도 했다.
"와아- 눈이다 눈-!"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눈은 하루 종일 내렸다.
바깥에 나왔을 때도 여전히 퐁퐁 내리는 함박눈에 그녀는 맨손으로 눈송이를 잡아보며, 즐거워했다. 어쩌다 눈썹에, 머리카락 끝에 눈송이가 걸리거든 이것 보라며 손을 파닥였다.
"아, 눈 쌓였다!"
물 대신 눈이 소복히 담긴 분수대를 보곤 한웅큼 잡아올려 꾹꾹 뭉치더니 팔뚝을 향해 휙 던지고, 깔깔 웃었다. 그리고 되맞지 않으려는 듯 분수대를 빙 돌아 도망쳤다가 제자리로 돌아와 와악! 하고 달려들기도 했다.
"후후, 아하하-"
연신 울리는 웃음소리와 소리 없이 내리는 눈과 함께 한없이 평화로운 하루를 보냈을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덧 날이 저물어 찾아온 저녁, 온종일 노는 것에 피곤해졌는지 저녁을 먹자마자 그만 까무룩 잠들었다. 졸리다며 보챌 틈도 없이 소파에 앉아 머리를 대자마자 잠든 그녀는 여전히 낮고 가는 호흡으로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크리스마스가 넘어가려나 싶을 쯤...
- 똑똑똑
그 때를 기다린 듯,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듣고 문을 열었을 때는 그 밖에 아무도 없었다.
다만, 자그마한 선물상자가 짙은 녹색과 연한 노랑색 포장지에 푸른 리본이 꽃처럼 묶인 상자 두 개가 문에 걸리지 않게 놓여 있었다.
당연하게도 진녹색은 태오의 것이며 연노랑은 희야의 것이었고 발신인은, 안에서 잠들어 있을 그녀였다.
그 부드러운 포장지와 각진 상자 안에 든 것은 친히 자필로 쓴 편지와, 마음이 담겼을 선물이었다.
[ 친애하는 태오에게.
안녕, 오빠. 이렇게 직접 편지를 써보는게 얼마만이더라. 7년만이던가? 농담 농담 ^^*
음. 이 편지가 제대로 전해질려나. 알다시피 큰 일을 앞두고 있으니까.
만약 오빠가 이 편지를 보고 있을 쯤이면 나는 나로 존재하고 있을까. 아마도 곧 있을 결전에서 무리하게 될 것 같거든. 도망치지 않고 여기까지 왔으니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 않겠어.
그 끝에 결국 내가 없어진다면 오빠는 슬퍼할까, 후련해할까. 궁금하네.
오빠, 저번 일이 있기 전에 나한테 보냈던 문자 기억해? 내 부름에 응하는 걸로 내게 속죄하겠다던 문자.
나 그거 보고 정말 어이없었어. 대체 무슨 속죄를 하겠다는 건가 하고.
난 이미 오빠를 용서했는 걸. 그 골목길에서, 모든 걸 들은 날. 전부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그간 나의 외로움이 오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 만은 이해하고, 용서했어.
오빠의 과거로 인해 일어났던 일들도 몹시 힘들고 지켜보는 것조차 괴로웠지만 그 일 자체가, 오빠의 잘못은 아니잖아.
그러니 내게 속죄한다느니 하지 말아. 속죄를 마치면, 그 마음이 홀가분해지면 떠날 것 같은 말은 그런 말을 할 바에는, 그냥 조용히 멀어져 줘.
나는 오빠에게 어떤 잘못도 없다고 생각하니까 속죄니, 참회니, 그런 거 할 필요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러니 그런 마음 갖지 말고, 오빠 현태오로써 있어 줘.
내가 찾지 않아도 오빠가 먼저 나 찾아주고 그 사람들만큼은 아니어도, 남들보다는 조금 더 생각해주면 그거면 돼. 나는.
내가 온전할 때에나 가능한 얘기겠지만은. 아무튼.
올 겨울은 유난히 싸늘한 듯 해서, 없는 실력으로나마 만들어봤어. 별 건 아니지만 오빠에게 요긴했으면 좋겠다.
태오. 늘 고마워. 많이 사랑해.
이만 줄일게.
하나 뿐인 동생, 혜우가. ]
위 편지와 함께, 진초록색 포장지의 상자 안엔 흰색 바탕에 벚꽃색 털실로 비늘무늬가 수놓인 니트 숄과 연녹색 털실로 짜여져 양 끝에 보들한 테슬 장식이 달린 목도리가 들어 있었다. 태오의 신장에 맞춰진 긴 숄과 낙낙한 길이의 목도리는, 두르는 것만으로도 온기가 전해지는 듯 했으며 가장 많은 시간을 들였을 것이 분명한 선물들이었다.
[ 애정하는 희야에게.
안녕, 희야. 어디에서 이걸 보고 있으려나. 제대로 전달은 됐으려나
이걸 보고 있을 때, 아파하고 있지 않으면 좋겠다. 어쩌면 내가 더이상 만나러 갈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
희야. 그거 알아? 나 어릴 때, 희야에게 조금 질투했어. 희야가 부럽기도 했어.
승환 삼촌은 언제나 희야가 제일 우선이었잖아. 그래서 나한테 잘해주는 희야가 좋으면서도 조금은 미웠어. 나도 희야처럼 되고 싶었어.
그래도 많이 미워하진 않았어. 삼촌은 그랬어도 희야는 아니었으니까. 아직도 작은 희야가 더 작은 나를 안아준 기억이 선명한 걸.
희야가 혼자 무서운 일을 겪으면서도 나를 기억하고 지켜주려 한 걸 이제는 아는 걸.
희야, 고마워. 그 시절의 나를 기억해줘서. 그리고 미안해. 오래도록 혼자 아프게 해서.
이 편지의 다음이 있다면 더는 희야가 아프지도 외롭지도 않게 해줄게. 떨어져 지냈던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희야와 함께 해줄게.
사실 내가 그러고 싶은 거지만 그렇다고 하면, 그래줄래?
소중한 작은 오빠, 희야.
언젠가 자유로이 나갈 수 있는 날이 오면 꼭 첫 외출은 희야랑 같이 나가고 싶어.
담은 건 마음에 들려나. 희야를 생각하며 만들었어. 부디 희야에게 잘 어울렸으면 좋겠다.
이만 줄일게.
희야의 동생, 혜우가. ]
위 편지가 들어있던 연노랑 선물박스엔 크림색 눈여우귀 털모자와 벙어리장갑, 하얀 방울장식의 복슬한 털목도리가 들어 있었다. 엷게 노란빛이 도는 모자와 촘촘히 땋은 털실로 연결된 벙어리 장갑은 지금의 희야의 손과 머리에 딱 맞았고 털목도리 또한, 매우 보드랍게 목을 감싸는 소재였으며 어느 것 하나, 희야와 어울리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당일, 아직 해가 서쪽 하늘을 지나고 있을 무렵이었다. 2학구의 연구소, 데 마레에 뜻밖의 방문객이 찾아왔다.
검은 정장에 짙은 회색 코트를 입은 남성이 크고 작은 상자 여럿을 들고 데 마레의 로비를 가로질러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음, 선물 배달 왔답니다?"
선물 배달이라고 용건을 밝힌 그는 세 개의 포장된 상자를 로비 데스크에 올렸다. 그리고 태연하게, 발신인을 대었고 누가 붙잡기도 전에 돌아섰다.
"천혜우 양으로부터 안승환 씨, 백한결 씨, 윤성훈 군 앞으로 보내는 선물이랍니다. 영락의 파나케이아, 라고 대는게 조금 더 신뢰가 갈까요? 어쨌건 저는 전달했으니, 받을지 아닐지는 본인들이 정하시길 바란답니다. 그럼, 메리 크리스마스."
그가 두고 간 상자는 각각 연회색, 검정빨강 체크무늬, 밤갈색 포장지였으며 역시나, 푸른 리본이 꽃을 연상케 하는 장식을 하고 있었다. 각각의 상자에는 마찬가지로 편지와 선물이 들어있었으니...
[ 안성훈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선생님. 이 편지가 전해질 쯤, 별 일 없으실지요. 도시의 위기를 넘긴 후일 테니 데 마레에 큰 일은 없었길 바라요.
선생님께는 무슨 말을 먼저 올려야 할지 참 많은 고민을 했어요. 하고 싶은 말이 많기도 하고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기도 했거든요.
그렇지만 모처럼 쓰는 편지고,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만큼 하나 하나 가감없이 써보려 해요.
선생님. 일전, 태오에게 불미스러운 의혹이 생겼던 때에 선생님께 손을 올리는 행동을 하여 죄송합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선생님께 그랬던 것은 명백히 잘못된 행동이었어요. 머리를 식히고 이성적으로 행동했어야 했는데 선생님께 애꿎은 책임을 떠넘긴 듯 해 죄송했어요.
그렇지만 선생님. 어릴 적, 저희를 공평히 대해주시지는 못 해도 같은 아이로서 봐주실 줄 알았어요. 저보다도 태오보다도 희야를 우선하신 만큼 적어도 아직 어린 아이로서 신경 써주실 줄 알았어요. 다른 선생님들은 몰라도, 적어도 선생님 만큼은요.
하지만 아니셨죠. 결국 선생님은 희야 뿐이었어요.
저, 그 시절부터 어른들의 기분을 살피는 눈치만큼은 좋았거든요. 선생님은 제가 태어나 처음으로 겨우 마음을 기댈 수 있게 된 어른이어서 조금만 더 봐주길 바랐고, 손길이 고팠고, 무섭고 아픈 날엔 울며 안기고 싶었지만 선생님은 저보다 희야 얘기에 발길을 돌리는 날이 더 많았어요. 몇 번이고 하얀 옷자락을 잡고 싶었지만 다시 버림 받고 싶지 않으니 그저 조용할 수 밖에 없었죠.
후에 제가 데 마레를 떠난 후에도 선생님은 저를 찾아주지 않으셨어요. 작았던 관심마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요.
많이 원망스러웠어요. 많이 서운하고, 섭섭했어요.
그랬지만, 무작정 원망만 들진 않았어요.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선생님이 저를 받아주셨고, 덕분에 희야와 태오를 만날 수 있었으니까요. 그것이 조건에 의한 의무였다 할 지라도 데 마레가 있고 선생님이 계셨기에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산 송장이나 다름없던 저를 받아 사람으로 길러주셔서 소중한 인연을 만들어주셔서 제게 세상과 사람을 알려준 첫 어른이 되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승환 삼촌.
길러주신 노력에 부응하지 못 하고 이렇게 못난 아이로 커서 죄송해요.
하지만요. 삼촌. 만약 다음이 있다면 이 편지가 전해진 후에 다시 뵐 수 있다면 그 때엔
아버지 라고 불러도 될까요?
딱 한 번이어도 좋으니 선생님도 삼촌도 아닌 제 아버지가 되어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제게 생명을 준 친부모보다도 지금도 공주님이라 불러주시는 삼촌이 더...
비록 이렇게 커버렸지만 선생님이자 삼촌을 반기는 마음은 여전하니까요.
다사다난한 겨울이 될 듯 하여, 조금이라도 춥지 않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했어요.
오래오래, 건강하셔야 해요.
이만 줄일게요.
혜우 올림. ]
위 편지가 동봉된 상자는 연회색 포장지의 상자였다. 리본 장식에 [안승환 귀하]라는 태그가 달린 것으로 구분되었다. 상자 안에는 진회색 목도리가 들어 있었는데 선명한 꽈배기 무늬로 촘촘히 뜨여진 것이, 품이 제법 들었겠구나 싶고 사용된 털실은 보풀이 잘 나지 않는 것으로 바쁜 와중에 어떻게 써도 손질할 일이 적게끔 만들었구나, 싶은 선물이었다.
[ 윤성훈에게.
잘 살아 있냐? 이거 보고 있으면 잘 살아 있는 거겠지 뭐.
너 그거 알아? 처음에 네 인상 완전 별로였어. 세상에 레이브를 사칭하는 놈이 있다니 완전 어이가 없었다니까.
거기다 내 소중한 오빠한테 감히 형님이라니. 뒤질라구 그냥.
그래도 네가 남들한테서 나 감싸주고 저번에 챙겨줬을 때는 고마웠어. 나는 못 하는 얘기, 오빠랑 하는 것도 그렇고.
앵간히 귀찮게 굴었는데 그거 다 받아준 것도. 나름 마음에 드는 별명 붙여준 것도.
그렇지만 슬그머니 데 마레로 들어간 건 살짝 열받네. 너 다음에 정강이 조심해라.
다음이 있다면 말이지만. 아무튼.
만들다가 실이 남아 네 것도 대충 하나 했다. 쓰던지 말던지. 필요 없으면 버려.
감기 걸리면 격리 시켜버릴거니까 아프지 마라. 윤바보야.
이만 줄인다.
혜우가. ]
이 짤막한 편지는 푸른 리본에 [윤성훈 귀하]라는 태그가 달린 밤갈색 포장지의 상자에 들어 있었다. 잘 포장되어 있던 둥근 상자 안에는 진갈색과 연갈색의 체크무늬 목도리가 편지와 함께였다. 남는 실로 대충 만들었다던 편지의 내용과 달리, 무늬가 선명하도록 실을 잘 교차해서 짠 수고와 주변 선물들에는 전혀 쓰이지 않은 색의 털실이라, 고심해서 별도로 준비했구나 싶은 선물이었다.
[ 큰 형부, 작은 형부께.
춥고 고단한 겨울. 무탈히 지내고 계시온지요. 이 편지 받으실 적, 심신 무탈하시길 바라요.
어느 분께나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적합하겠으나 당돌히 처제 대접 받고 싶으니, 두 형부님들의 넓은 아량으로 봐주시어요.
몇 자 적어볼까 해 이리 펜을 들고 보니 세상사 참으로 기구하다 싶네요.
여태 살아 오빠가 둘이나 생길 줄은 몰랐는데 설마하니 형부가, 그것도 둘이나 생길 줄이야.
이렇게 서스럼없이 형부 형부 하지만 아직도 어딘가 낯설고 어색한 것은 있네요.
제 기준으로는 형부님들이 썩 마음에 차지 않아 그런가봐요. 어째서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잘 아시리라 믿어요.
하여 형부님들이 좋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싫은 것도 아니에요.
어찌됐든 형부님들이시니까. 오빠가 사랑한다 하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러니 이제는 저 떼어놓을 생각일랑 깨끗이 접어넣으시고 가끔은 다같이 모여 식사도 같이 하고 해요.
물론! 오빠 옆자리는 제 것이지만요.
올 겨울은 유난히 춥고도 매서울 것 같네요. 동봉한 물건이 부디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 다음이 있다면 그 때에 뵈어요.
하나 뿐인 처제, 혜우 올림. ]
마지막 검은색과 빨간색 체크무늬 상자엔 역시나 리본 장식에 [백한결 귀하]라는 태그가 달려있었으나 내용물은 두 사람 분이 들어 있었다. 하나는 버건디 컬러의 골지 목도리이며 하나는 완벽한 검정색 골지 목도리였다. 그러나 두 목도리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으니 어딘가에 쓰였던 벚꽃색 털실로 비늘 무늬가 섬세하게 표현된 것이었다. 그 색과 무늬가 어디에도 있을지는, 조금 나중에 알게 될 일이었다.
"하나 하나 만들고, 쓰고 나서, 새삼 깨달은게 있었어." "나는 아직 생애 첫 발도 제대로 못 떼었구나." "뒤로 가거나, 혹은 제자리 걸음만 너무 오래 했구나." "이 편지가, 이 선물이, 제대로 전해질 지는 몰라. 그 때에도 내가 아직 있을 지는 몰라." "그렇지만 모두에게 전해지게 된다면, 그 다음이 있다면," "내 인생은 비로소 그 때부터 시작 될 거야." "그런 기분이 들어."
뜻밖의 선물이 하나 둘 전달되었을 올해의 크리스마스는 그렇게 저물어갔다.
온종일 내린 눈이 차가운 아스팔트에, 메마른 나뭇가지에, 불빛 켜지는 창틀과 베란다에 소복히 쌓였다.
숨소리마저 쌓인 눈송이에 스며들어 쥐죽은 듯 고요하면서도, 쓸쓸하진 않은 그런 밤이었지 않을까. 그 해의 크리스마스는.
이벤트 기간이네요. 선택할 거리라.... 일상 소재용일까요? 극장판 예고편에 25주년은 20주년 아닌가 했는데 바로 아래서 혜우주께서 짚으셨군요ㅎㅎ 월이의 후일담은 회사에 묻혀 있고(파헤치지 않으면 묻혀서 전설이 된다?!) 혜우의 후일담은 올라왔네요:D 태오 선배랑 희야 몫 말고도 여러 사람을 챙겼었네요. 혜우가 자기강박에서 벗어난 덕인진 몰라도 앞으론 잘 지낼 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 내용이었어요~☆
@철현주 situplay>1597054393>95에선 선배 말 들으면 목놓아 울어버릴 거랬는데 울음 좀 수습하는 대로 반발(???)도 할 거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ㅎㅎ 서연 : (눈물 닦)(훌쩍) 그러게. 제정신 아니었네 서연 : 선배만큼 꿋꿋하고 따듯하고 똑똑한 사람 어딨다고!!(입 삐죽) 서연 : 내가 반한 사람인데!!!(말해 놓고 제풀에 빨개짐) ....나, 나 눈 높다구우우~~ 서연 : 그때 편 못 들어줬으니까... 이제부턴 편 많이 들어 줘 서연 : 또 셀프 구박해 봐. 싸울 거야!! 선배라도 싸울 거야ㅠㅠㅠㅠㅠㅠㅠ
일상으로 돌아왔단 실감이 가장 찐하게 난 건 알바 날이었다. 물론 학교가 공사 중이라선지 쿼츠의 배달 내역을 실시간으로 정리할 수 있을 만큼 월루 모드지만, 유니온이 미쳐 날뛸 땐 아예 셔터 내리고 간판 불까지 껐던 점포가 어쨌건 운영은 하니, 그 난리 통은 완전 쫑났다는 게 훅 와닿는 것이었다.
3학년 때도 계속할 수 있으려나? 저지먼트 그만뒀으니 펑크 낼 일 없고 알바 날도 3일이니 나름 할 만할 거 같은데. 5렙 지원금이 어마무지하다지만 몇 달은 대출 갚는 데 올인해야 하고, 학교 운동장이며 수도관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것도 찔리긴 찔린다. 그거 물어내라면 빼박이라구;;;;; (저지먼트 활동 중에 박살난 시설이나 기물 따위는 여태 부장이 사비로 물어 줬었단 얘기도 어찌어찌 전해들었다... 근데 인제 부장은 저지먼트 졸업했으니;;;;;;)
그런저런 돈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웬 손님이 왔다. 걸음에서부터 취한 티가 나는 게 나랑 언니의 데인저 센스 없이 봐도 쎄하다. (이런 감이 바로바로 오는 건 '진상 센스'라는 초능력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곱게 가지 않겠단 체념 반 후딱 살 거 사고 나가 줬으면 하는 희망 반으로 어서 오시라 인사하고 대기 타려니, 이 손님이 음료칸에서 망부석이라도 될 기세다. 뭘 찾는대?
::어, 씨, 무슨 편의점에, 쏘주도 읎어?!? ::어이!! 쏘주 없어?!
" ............ "
아, 글고 보니 소주 다 나갔었다. 학교 앞이라 원래도 많이 안 받는데 유니온 난리 통에 물류도 좀 꼬여서 재입고를 미처 못했다던가. 그런 사정을 적당히 안내하고 치워도 됐으련만 혀 꼬인 소리가, 뭉개진 발음이 거슬려서였을까. 평소라면 억지로라도 갖췄을 점원 모드가 와장창되고 말았다.
" 학교 앞에서 어디 술 타령이야!!!!! " " 없어!! 나가!!!!!! "
나 미쳤나@ㅁ@;;;;;;;;;;; 저쪽이 행패 부리면 어쩔?!?! 인제 나 저지먼트도 아니고 저쪽이 작정하고 덤비면 제압도 못하는데??!? 안티스킬로 신고되는 버튼을 눌러야 할까? 아님 전에 사 둔 모형 총이라도 겨눠?? 험악한 시선에 가슴이 뻐근하게 떨리고 다리도 후들거렸지만, 꾹 참고 마주 노려봤다. 머리 위에 엎드렸던 토실이가 같이 싸우겠다는 듯 일어서는 것도 느껴졌다. 에라, 모르겠다.
" 안 나가?!! "
::어, 씨, 미친X!!!
욕설이었으나 앞서에 비해선 기가 확 죽은 소리. 뒤이어 진상은 가래 끓는 소리를 거하게 내고서 바닥에 가래침을 뱉었으나, 그 이상 행패 부리진 않고 나갔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가래침은 더럽다만 이걸로 끝난 게 어디냐. 저런 하찮은 진상이 설치고 다니는 것도 유니온 난리가 쫑난 덕이겠지ㅎㅎㅎ....
중간에 진상이 나타나긴 했어도 별일 없이 하루 넘어가려니 했는데, 불쑥 폰이 울렸다. 정이의 톡이 뜨는가 싶더니 태인이의 톡도 왔다. 뭔 일인가 보니 둘이 똑같은 소릴 한다. 저지먼트 부원들이 1억씩 받는다나?? 뭔 소리래? 만우절은 멀었구만.
그러나 뉴스를 확인하자마자 입이 떡 벌어지고 만 서연이었다. 이왜진??! @ㅁ@;;;;;;;;;;; 1억이면 어, 그, 빚 바로 갚을 수 있네? 학교 운동장이랑 수도관 수리 비용도 댈 수 있겠네?? 당장이라도 만세 삼창이 나올 거 같았으나 다음 순간, 양심통이 왔다.
받아도 되나?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다. 돈을, 것도 1억이나 되는 돈을 왜 안 받아?! 하지만 께름칙했다. 내가 받을 자격이 있나? 멋대로 꼈다가 폐만 됐는데. 그래 놓고 저 큰 돈을 낼롬 처먹으면 양심 수박이잖아...;;;;;;; 동시에 우스워지기도 한다. 내가 5렙이 되지 않았다면, 그걸로 지원금이 어마무지하게 늘어날 걸 몰랐다면, 지금 내 양심을 따졌을까? 퍽이나! 새봄이한테도 빚 갚을 만큼은 받고 싶다고 툴툴댔는걸. 그러니 양심 타령 해 봤자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 싸는 꼴이지. 더구나 내가 안 받는대서 뭐 달라지나? 누가(일테면 거기서 죽을 뻔한 퍼클들이) 돈을 더 받기라도 해? 그렇지 않다면 어차피 눈 먼 돈, 감사합니다 하면 그만 아냐?
명쾌하다면 명쾌한 결론이 나왔는데도 속이 안 후련하다. 스불재도 이런 스불재가 없다. 착잡함에 한숨을 푹푹 내쉬는 서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