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차 안에 들어가서 카메라의 밖에 나갔던 이들이 다시 나타났을때 이렇게 껴안고 있다면 아마 시청자들의 지나친 상상에 의해 엄청난 방송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보여주기식으로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엄연히 차이가 있는 법이다. 거기에 해인의 유명세를 생각해보면 그 파장은 정말 어마무시할 것이기에 해인은 일단 내리기 전엔 아무렇지도 않았던척을 할 생각이었다.
" 세나가 데뷔만 하면 나 같은건 바로 앞지를껄. "
자신은 그저 기타리스트일뿐이고 세나는 아이돌로 데뷔하는 것이니 스포트라이트 수준부터 다를 것이다. 자신은 음악방송에도 나가본적없고 세나는 수많은 방송에 출연하게 될테니 향후 유명세를 따져보면 역시 세나가 더욱 우위에 설 것이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어쩌면 만날 수 있는 시간도 점점 더 줄어들지 않을까.
" 조심해야지. "
품 안에서 얼굴을 부비적대는 세나를 바라본 해인은 한번 꼭 끌어안고선 세나를 놓아주었다. 마침 관람차도 정상을 찍고 다시 내려가고 있었기에 더 오래 안고 있기에도 좀 불안한 것도 있었다. 카메라는 계속 관람차를 주시하고 있을테니 조금 각도가 나오면 보일지도 몰랐다. 따뜻했던 품 안이 좀 허전해지긴 했지만 해인은 조금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등받이에 기대 앉았다.
" 아 맞다, 나 다음주에 공연 있다. "
정말 오랜만에 하는 공연이었다. 한동안 공연을 하고 있지 않던 그가 어째서 갑작스럽게 공연 일정을 잡았는지는 같은 밴드 멤버들도 알지 못했다. 다만 그 의견을 알린 것이 이 프로그램을 시작할때쯤과 비슷하긴 했다.
자신이 해인을 앞지른다는 것을 그녀는 그다지 상상해본 적이 없다. 물론 자신도 인기는 누릴 수 있을 거라고 자부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인기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역시 이럴 때는 공평하게 인기가 있는 것으로 하는 것이 제일 좋지 않나 싶어 그녀는 그렇게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자신만이 아니라 해인도. 해인만이 아니라 자신도. 각자의 위치에서 지금보다 좀 더 좋은 방향으로, 좀 더 윗쪽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조심해야한다는 그의 말에 공감하듯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해인이 자신을 놓아주자 그녀 역시 자연스럽게 그에게서 떨어졌다. 관람차가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으니 자신도 더 이어갈 생각은 없었다. 지금 이 시간은 어디까지나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짧은 둘만의 시간. 이 정도면 충분히 즐기지 않았던가. 이 이상 더 요구하고 노리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었다. 그것을 알기에 그녀는 아주 살짝 그에게서 떨어졌다. 너무 떨어지지도 않았지만, 너무 붙지도 않을 정도. 자신의 주먹 하나가 쏙 들어갈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그녀는 살며시 고개를 돌려 주변을 바라봤다.
"네? 다음주요?"
그러는 와중 그에게서 이야기가 나오자 그녀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해인을 바라봤다. 다음주에 공연이라니. 이거 엄청 오랜만에 하는 거 아닌가? 그가 하는 공연은 시간이 되면 보러 갔었으니 참으로 오랜만에 하는 공연이라는 것도 그녀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와줬으면 좋겠다는 말에 그녀는 빤히 그를 바라보다 오른손으로 입을 막고 소리없이 웃었다.
"와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왜 시선을 피하는 거예요. 오빠. 후훗. 갈게요. 정말 급한 볼일이 있는 것이 아니면, 어떻게든 시간 내서 갈게요."
이어 그녀는 살며시 손을 올려, 그의 손바닥 위에 제 손을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몸을 옆으로 틀어 그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기대할게요. 오빠 공연. 맨 앞자리에서 지켜보도록 노력할게요."
맨 앞자리를 사수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노력을 해보리라. 그렇게 다짐하며 그녀는 이내 손을 내리고 쭈욱 기지개를 켜면서 이야기했다.
"아. 벌써 내려가네요. 바로 저기가 도착점이고. 괜히 아쉬워요. 조금만 더 느긋하고 느리게 가지. 진짜 눈치없는 관람차야. 이거."
너무 갑작스럽게 말한건가 싶어 해인은 살짝 멋쩍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사실 정해져있던 것은 아니고 오롯이 해인의 변덕으로만 행해지는 공연이었기에 장소도 날짜도 급하게 정해진 감이 있었다. 물론 그동안 해인이 공연을 기피하고 있었기에 세션 멤버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하며 일사천리로 진행시켰지만 말이다. 어쩐 일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했냐면서 신기해했던 멤버도 있었다.
" 미리 말해두면 되니까 자리 걱정은 안해도 괜찮아. "
세나의 외모는 말해두면 절대 헷갈리지 않을테니 미리 말해두면 알아서 지정된 좌석으로 안내해줄 것이라 생각했다. 해인이 공연을 진행하기로 갑작스럽게 결정한 이유도 당연히 이 눈앞의 소녀가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물론 해인은 그런 사실을 멤버들에게 얘기하진 않았다. 그런걸 곧잘 얘기하는 타입도 아니니까 말이다.
" 밖에서 봤을때는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데 말이야. "
해인도 세나의 말에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까는 멀어지던 풍경이 이젠 다시금 가까워지고 있었다. 중학생때의 세나와는 잠시 멀어졌었던 해인은 지금처럼 다시 가까워질수 있을까, 하고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길지 않았다. 그때의 해인은 지금과는 다르니까. 오히려 지금이 그때보다 더 나은 사람이니까 말이다. 잠시 빼두었던 마이크를 다시 착용한 해인은 내릴 준비를 하며 말했다.
" 그럼 내려갈까요, 공주님? "
마치 무도회에서 공주를 에스코트하듯 조금 과장된 몸짓으로 세나에게 손을 건넨 해인은 평소와는 다르게 좀 더 활짝 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관람차가 지상에 도착하자 조심스럽게 세나부터 내려주고 따라 내린 해인은 기지개를 펴고선 말했다.
"어머. 그래요? 후훗. 다른 사람들이 알면 치사하다고 할 것 같지만, 그래도 거절하진 않을게요."
공연에는 초대석이 있기 마련인데 그런 자리를 하나 주겠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자신이 정당하지 않게 앞자리에 앉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 호의는 고맙게 받겠다고 이야기를 하며 세나는 해인을 바라보며 눈웃음을 지으며 고맙다고 인사했다.
어쨌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이었다. 관람차 역시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점점 지면이 가까워지자 그녀는 그가 그러고 있듯이 자신도 마이크를 찼다. 제대로 마이크가 작동하는 것을 확인하며, 그녀는 이어 내릴 준비를 했다. 그러다 해인의 입에서 공주님이라는 말이 나오자 세나는 작게 웃으면서 그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부탁할게요. 왕자님."
오른쪽 눈을 감고 윙크를 보내며, 그녀는 그의 안내를 받아 조심스럽게 지면에 내려왔다. 아마 이 모습은 카메라에 제대로 잡히겠지. 그렇게 생각을 하며 그녀는 살며시 그의 손을 푼 후에, 놀이공원에 맨 처음 들어왔던 것처럼 그의 팔을 자신의 두 팔로 안으면서 찰싹 달라붙었다.
"바로 돌아가진 말고... 천천히 둘러봐요. 모처럼의 데이트인데."
우리 2주 못 봤었잖아요. 그렇죠? 가볍게 웃으면서 그녀는 앞장서서 그를 이끌듯이 걷기 시작했다. 목적지가 정해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지금은 이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을 뿐이었기에.
아마 관람차 안에서 그렇게 이야기를 한다면 세나는 두 눈을 멀뚱멀뚱 뜨다가 웃으면서 침묵을 지켰을 것 같아. 그러다가 가만히 손을 잡고, 답을 하고 싶지만 지금 답을 하면 나나 오빠나 충동적으로 말하는 것 같아서 싫으니까 지금은 아무런 답도 못하고 차후에 답을 해주겠다고 할 것 같아. 얼굴은 새빨갛게 물들어서는 애써 웃으면서 그렇게 제가 좋아요? 오빠? 후훗. 그렇게 장난스럽게 분위기 전환도 시도해보려고 할 것 같고!
물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세나는 거절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아마 그대로 해인이를 유혹하는 느낌이 조금 더 강했을 거라는거야. 그 고백 철회 못하게! ㅋㅋㅋㅋㅋ 물론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방송을 하다보면 마음이 갑자기 바뀔 수도 있는 거니까. 물론 해인이는 진심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그것을 세나가 알 방도는 없으니까.
역시 그게 좋을지도! 공연을 굳이 이야기한 것을 보면 해인주도 하고 싶은 상황이 있었던 것 같으니 말이야. 방송에도 안 나오는 사적인 만남이라. 방송에서 보면 한번씩 나오는 휴식시간 느낌이로구나! 딱 좋을지도 모르겠네! 역시 방송 상황이 아닌 두 사람의 모습도 보고 싶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