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긴 설명을 들어주신 마녀 님의 표정은 구름이 가득 낀 하늘과도 같았어요. 제가 마석에 대해서 겪었던 걸 말하였듯이 마녀 님께서 말씀 해주시는 옛날 이야기는 저의 이목을 사로잡을 만큼 대단했어요. 저는 마녀 님의 그런 표정과는 달리 조금씩 흥이 오르면서 경청했어요
그러던 마녀 님이 거기에 더 힘을 내보이시자 저는 마석으로부터 비명과도 같은 소리가 울리며 조금씩 그 사이사이가 갈라지는 마석을 향해서 신기하게 바라보았어요. 보통의 마석처럼 마력 자체가 한 점으로 계속 뭉치고 마치 돌처럼 굳어서는 만질 수 있는 덩어리가 되었을 뿐이 아니었던 거에요. 그렇다면 이런 광경도 일어나지 않겠지요. 마석과 비슷하지만 그 실체는 다른 무언가 있었다는 거에요
이렇게나 기이한 사연에 묶여 있는 물건이라면 뭔가에 사용하는데 아무래도 어렵겠네요. 이렇게 직접 경고가 담긴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제가 했었던 그런 기대는 접어두고 마석에 관해서는 이대로 하지 않고 그대로 놔두는 것이 좋겠어요
그렇지만, 이렇게나 특이한 물건이라면 간단하게 가질 수 있고 대량으로 사람들 사이에 돌아다니게 되었던 그 자체가 이상하지요? 이 돌들이 만들어지고 세상에 퍼져나간 원인이 있을 거에요. 그저 악마들의 짓이라고 넘어가기 그 이전에 관련된 무언가가 있을 거에요. 비록 그 옛날에 마녀 님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셨겠으나 이렇게 다시 나타난 이상 다른 뭔가 있다고 지금은 지금대로 새롭게 의심해 보아야 할 거에요. 그래서 마녀 님께서 이렇게 심각하신 거겠지요. 하지만, 어찌 되었든 저는 이번에도 마녀 님께서 이에 대해서 수습하시고자 하신다면 다 잘 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어요. 거기에 이번에는 저도 함께 있으니 조금이라도 좋을 거에요!
"이는 지옥이 지옥이라고 불리게 된 이유에도 포함 될 수 있었겠네요"
그렇게 마녀 님이 마지막으로 지맥을 강조하시며 설명을 끝내시듯이 보였던 저는 그렇게 중얼거리듯이 말했어요. 구분 짓고 갈라놓는 세상의 벽은 옅어지고 그렇게 해서 세상에 이곳저곳에 난 구멍으로부터 악의에 찬 존재들의 손길이 닿아 세상을 어지럽혔겠지요. 그럼에도 그들은 결국 실패하였어요. 이번에도 다시 그렇게 되어야 할 거에요
>>849 엘리는 언니를 따라 수많은 박쥐의 형태로 변해 날아갑니다. 두 발에 매여 있던 몸은 수백 수천 박쥐의 날개로 중력을 거스르고, 어두운 수로 속에서 수천쌍의 눈동자들이 마치 하나의 눈처럼, 원래 그랬던 것처럼 엘리에게 자연스럽게 초광각 시야를 제공하고, 엘리는 자신이 날아오를 곳을 선택해 그곳으로 날아갑니다... 끼긱, 끼기긱, 쇠를 긁는 듯한 소리들이 울려퍼졌다 되돌아오며, 청각임에도 시각처럼 가깝게 다가옵니다. 날아오른 박쥐들이 도시의 밤에 으스스함을 더하며 사냥의 시작을 알리고, 엘리는 하늘을 찌를세라 솟아오른 호르뮈셰의 종탑에 앉아 달빛을 쐬고 있는 언니를 따라가더니 다시 합쳐져 형태가 됩니다. 호르뮈셰의 축축한 지하에 있었지만, 햇빛이 사라진 지금 그녀는... 언니 류드밀라와 함께, 보통 사람들은 올라갈 생각도 못 할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수많은 학부 건물들과 기숙사들은 푸르고 희미한 빛 아래서 창백하게 보입니다.
"티호미르한테 전해듣기로, 1시간 내내 도망쳐도 어디선가 계속 튀어나오는게... 위겔 교수의 학부 근처에 철저히 매복했거나, 그 근처에 거점을 세웠거나 둘 중 하나라고."
류드밀라는 나직이 이야기하고, 엘리에게 방향을 정해달라고 청합니다.
"이 도시에서 여기만큼 높은 곳은 없어서... 소리를 내서 돌아오는 소리를 계산하는 것만으로도 쉽게 올라올 수 있었어. 하지만 저 밑은 아니야.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너한테 맡길게. 먼저 내려가. 그리고... 널 그 자리에서 죽이지 않은 걸 후회하게 만들자."
>>850 이 마석의 출처를 묻는 질문에, 앨리스는 "아 씨, 그 시절 생각하기 싫다니까..."라고 투정을 부리면서도, 어쨌든 이 마석을 설명하려면 기원도 설명할 수밖에 없으니 결국은 답해줍니다.
"5백년 전에는 '마도 교류회'라는 단체가 찾아와서 우리한테 이걸 건넸어. 이걸 '은총석'이라고 부르면서 평범한 마석이랑은 비교를 거부했어. 게다가 이게 돌멩이 같은 쓸데없는 것도 오랫동안 노출시키면 이거랑 비슷하게 변하는 효과가 있어서.... 잘 썼는데, 사건이 터지고 나서 마도 교류회가 어디서 왔는지 파보니까... '송곳니 교단'이라고, 아무튼 미친 년놈들이 우글대는 곳의 끄나풀이더라고. 거기가 자세히 어딘지는 지금 설명할 것까진 없고, 그냥 악마를 이 세상에 진짜로 강림시키려는 미친 놈들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정리한 앨리스는, 다시 가말라시엘이 깃든 지팡이를 바라보며 이야기합니다.
"네가 그 곰을 끌어들인 것도, 그 마석이 눈알에 박혀 있으니까 그 존재를 눈치채서 그런 것 같은데... 가말라시엘. 제대로 얘기 안 하면 재미 없다."
그러자, 가말라시엘은 베스니를 비웃고 넬루에게 기억을 지우고 싶을 정도의 트라우마를 안겨줬을 때와는 다르게, 공손하게 대답합니다.
'느끼기는 몇 달 전부터 느꼈습니다. 설마하니 그거겠나 했지만... 눈 먼 줄 알았던 불곰이 다가오니... 확실히 알겠더군요. 그래도 그 작은 마석 하나로 우리 사도님께 큰 영향은 없을 거라 판단해서, 그곳으로 불러들였죠.'
저의 그 물음에 불쾌해 하시면서도 잘 설명하여 주시는 마녀 님의 모습 조금 안심이 되었어요. 들은 이야기는 이러해요. 세상에는 어떠하든 사연이 있기 마련이고 거기에는 기이한 욕망에 이끌리듯 이를 이뤄내기 위해서 거침없이 무엇이든 하는 이들이 있지요. 그렇게나 오래되었지만 사라지지 않았어요
뒤이어 마녀 님께서 그리 지적하시자 가말라시엘 님은 영향이 없다고 하셨고 그 말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여러모로 영향을 받았어요. 넬루가 겪게 된 끔찍한 일과 기억이라는 가시를 빼내어 제거하고, 가말라시엘 님에게 저의 피를 드리면 이를 취하여 그 모습을 달리하고 봐서는 안되는 힘을 부리셨고, 그리하여 이렇게 잊혔어야 할 기이한 사연에서 넘어온 마석을 찾아내어 얻게 되었고 마녀 님부터 옛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그리고 앞으로 무엇이 있게 되겠나요? 그러니까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거에요
"제가 무엇을 하시길 바라시나요? 말씀해 주세요"
마녀 님의 그 물음과 함께 저의 손을 잡으시면 저도 그 손을 저는 마주 잡아보았어요. 저는 그 다음에 이어질 말에 대해서 짐작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마녀 님이 말하신 '큰 일'이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맞는지 확실히 하고 싶었던 저는 반쯤 눈을 감고는 나지막이 그렇게 물어보았어요
>>853 "가말라시엘 이 새ㄲ... 아니, 이 모자란 지팡이 때문에 반억지로 한 감이 있지만 인신공양을 한 경험도 있고, 마력을 끌어모아서 괴물을 조진 경험도 있고... 나랑 같이 있으면서 이것저것 배웠고... 뭐, 다 됐네."
몇 가지를 따져본 앨리스는 아앨라나를 다시 바라봅니다. 지금까지 아앨라나는... 앨리스에게 있어 반쯤 딸이자 반쯤 제자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시선에 조금 다른 관점을 섞을 때가 되었습니다. 앨리스는 미소를 잃지 않은 채로, 자신이 그동안 자신의 후계자와 추종자들에게 맡겼던 잔인한 임무들 중 하나를, 이제 아앨라나한테도 맡기고자 함을... 참 담담하게 이야기합니다.
"너도 이제 다 컸으니까, 솔직히 말할게. 두 가지 말이야. 첫째로, 나는 그렇게 대단하지 않아. 이 문제투성이에 점점 문제가 늘어나는 검은 숲을 어떻게든 유지할 수 있는 게, 아주 불행하게도 나밖에 없는 것 뿐이야. 둘째로, 그래서 날 도우려 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끝이 안 좋았어. 객사했거나 차라리 죽느니만 못한 꼴이 되었지..."
아! 하면서 뭔가 떠올렸다는 듯 앨리스는 아앨라나에게 이야기합니다.
"아, 솔직히 말할 게 세가지였다. 마지막으로, 너가 그... 객사했거나 죽느니만 못한 꼴이었던 애들이 해야 했던 일을 해야겠어. 500년 전에 이 지옥의 매개체를 뿌린 건 송곳니 교단이었어. 그런데 이번에는... 솔직한 말로, 내가 검은 숲 바깥에는 신경을 끄고 사니까 모르겠다. 그러니까, 안나. 바깥으로 나가서... 정보를 찾아. 그리고... 나한테 알려."
엘리의 머리카락은 본디 머리카락만 홀로 있었다면 유유히 하늘에서 깃털처럼 바람을 파도 삼아 타다가 내려왔겠지만, 훨씬 무거운 물과 뼈와 살로 이뤄진 주인의 몸에 매달렸기에 끌려가듯 아래롤 떨어집니다. 다행히도 치마가 딸린 옷은 갖다 버린... 것은 아니고, 에레야의 자매던 베르야에게 받은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덕에 날아가는 와중에 언니한테 망측하네 뭐네 아이마냥 꾸중 들을 일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차가운 밤바람을 느끼며...
끼이이익!!!!!
수백마리 박쥐로 변한 엘리는 류드밀라를 위해, 사람들에게는 끔찍하게 들릴 쇳소리를 내면서 자신이 습격당했던 장소로 날아갑니다. 낮에는 그렇게 무섭고 두렵고, 도망칠 땐 너무 길면서도 숨을 때는 너무 탁 트였던 곳이 이제는 제 손바닥 안에 들어온 것 같습니다. 엘리는 류드밀라와 함께 본래의 형태로 변하고, 류드밀라는 킁킁거리더니 손가락으로 어떤 방향을 가리킵니다.
마녀 님께서는 가말라시엘 님에 대해서 욕하시려다 말았는지 말을 흐리며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요약하며 말하시는 마녀 님을 저는 계속 부드럽게 바라보고 있었어요. 마녀 님이 시선을 저에게 돌리시면 저와 그 눈이 마주쳤다고 느꼈어요. 이후 미소와 함께 이어지는 마녀 님의 말은 이를 계기로 저의 대해서 뭔가 결정하셨고 그래서 이렇게 말해 주시는 거겠지요
"그래도 저에게 있어서는 앨리스 님이 매우 큰 존재감을 지니셨다는 걸 아실거에요. 그리고 그분들은 어떠한 과정과 결과를 맞이하셨기에 그렇게 되셨을까요. 이는 알아도, 몰라도 문제가 될 수 있으려나요"
마녀 님께서는 저에게 스스로를 대단하지 않다고 말하시며 겸허하게 낮추시고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저는 마녀 님이 훌륭하신 분이라는 걸 알아요. 남다른 큰 힘을 가졌지만 이 숲과 그 속에 든 다른 모든 이들을 돕는데 사용하시고 있지요. 저는 마녀 님의 곁에 줄곧 오랜 세월을 살아가며 많이 알아가고 할 수 있게 되었었어요. 솔직한 마음으로는 마녀 님께서 이렇게 직업 말하시니까 무섭거나 불안하기도 한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저는 마녀 님과 스스로를 해낼 수 있다고 믿음을 갖고는 하기에 이렇게 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라 믿고 싶어요. 그렇게 제가 느끼는 그러한 감정들을 다스리고 미래에 대해서 도움이 되겠지요
"위험을 경고하시고 이제 숲의 밖의 세상을 알아가며 마녀 님을 도우시라고 말씀하고 계시지요?"
마녀 님의 말씀처럼 줄곧 그 자리를 고고하게 홀로 지켜오고 있으셨다면 이제 제가 함께 있어야 할 순간이 오게 되는 거겠지요? 이제는 그저 마녀 님에 아래에서 비호를 받으며 자라나는 아이일 뿐이 아니라는 거에요
앨리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는데, 그녀의 복잡한 표정은 이 한숨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만약 한탄이라면, 언제나 그랬듯 얼마나 무시무시한 소리를 해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아앨라나에게 미안함을 느껴서 한탄했을 겁니다. 만약 안도라면, 여전히 안나가 그녀에게 딸이긴 해도 더 이상 앨리스가 무조건 보호해줘야 하는 존재는 아니게 되었음에 안도했겠죠. 어느 쪽이건 간에, 앨리스는 아앨라나를 바라보고 이야기합니다.
"가능성은 두 가지야. 이 끔찍한 마석이 외부에 쭉 퍼졌거나, 아니면 누군가 나 엿먹어보라고 이걸 어디서 구해서... 검은 숲에 심었거나. 둘 다 정말 더럽게 끔찍한 일이지. 전자라면, 이런 끔찍한 걸 못 퍼뜨리게 막으려 들었을 종교쟁이들을 견제해가면서 이걸 뿌릴 정도로 대단한 놈들이란 거고, 후자라 치면... 나한테 그 짓 할 정도로 간 큰 놈이면, 너 하나 정도는... 알지?"
앨리스는 주머니에서 무언가 뒤적거리더니 아앨라나 앞에 목걸이를 던집니다. 목걸이의 끈은 평범하게 새끼를 꼰 밧줄이지만, 그 밧줄로 꿴 마석은... 아까 전까지 앨리스가 보면서 한탄했던 그 붉은 불길한 마석이 아니라, 검은 숲이 꿈꿨고 앞으로도 꿈꿀 신록(新綠)의 색깔로 빛나는 마석입니다.
"다 좋은 애들이었는데, 알아서 잘 하겠거니 하고 진짜 알아서 하게 내버려뒀다가... 너무 많이 죽어서, 너부터는 그런 실수를 안 하려고. 자, 안나. 한번 써보겠니?"
지성체의 상황판단에서 최소 70%의 비중을 차지하는 시각이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엘리의 언니가 지팡이나 하인의 도움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끌, 끌, 끌... 혀를 차는 것 같기도 하고 주변을 울리는 것 같기도 한 소리가 류드밀라의 입에서 나오는데... 옆에서 따라가는 엘리 입장에는 정말로 개미 우는 소리마냥 작고, 그러면서도... 마치 고막을 박박 긁는 듯한 고음이군요. 평소의 류드밀라가 소리를 내서 반사되는 소리는 인간도 들을 수 있을 수준이었지만... 엘리는 문득 기억합니다. 뱀파이어 일족의 아이들이 엄격한 인간 집사장과 주방장 몰래 이야기를 나눌 때... 목을 긁어가면서 이렇게 소통했죠. 이건, 인간이라면 들을 수 없습니다.
"..."
류드밀라는 계단을 걸어 내려갑니다. 하지만, 반향정위가 완벽한 건 아니라서,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류드밀라는 발을 몇 번 저었다가 디디면서 한 발 한 발 조심히 내딛다가, 순간 발을 헛디뎌 아래로 굴러떨어지려는 걸...
푸드덕! 푸드득!
...수백마리 박쥐로 변해서 난데없이 날아올랐다가, 다시 그 자리에 뱀파이어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으로 막습니다. 류드밀라는 쯧, 하고 한숨을 쉬더니 엘리가 있을 법한 쪽으로 손을 뻗으며 말합니다.
마치 옆에 사람 놔두고 왜 묻냐는 듯, 그 사람은 이름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크론을 턱 붙잡습니다. 그러더니, 희번득한 눈으로 크론을 똑바로 보고는, 자신의 이름을 이야기하는데... 마치, 이 좋은 날에 자기 혼자 전쟁통에 와 있는 것마냥 절박하게, 모두가 알아야 하는 것처럼, 크론에게 쏟아붓습니다.
"내 이름은 제펠 3세! 로자옙스크 사건을 지금까지 조사하는 유일한 사람이지! 사람들이 전부 다 날 미쳤다고 생각할 테지만, 그래, 내가 미쳤어도 이건 기억해! 나는 제펠 3세고, 로자옙스크에서는 검은 송곳니가... 송곳니가... 송곳니가..."
발작을 일으킨 듯 거친 숨소리로 크론을 붙잡고 탈탈 흔들던 제펠 3세, 는 송곳니...를 이야기하려다가 다시 눈이 흐려집니다. 그리고는, 그 미친놈의 발작을 피하려고 슬금슬금 옆으로 가버린 이들을 따라 조용히 털레털레 걸어갑니다. 미친 소리와 함께 말입니다.
"...가슴에는 사랑이 있고 열대 과일은 북극에서 열려서 사람들을 하늘에 고정하고 내 눈알의 수납장에서..." //오랜만이야... 정말 미안해 ㅜㅜㅜ
저는 마녀 님이 그 한마디와 함께 한 숨을 내쉬는 모습에서 엿보이는 의미에 대해서 제대로 헤아리지는 못하더라도 그 이유를 대략적이나마 파악하려 할 수는 있었어요. 그 숨결은 한 순간이었겠지만 그 안에는 온갖 생각들이 이리저리 뒤엉켜 있을 거에요. 저와 마녀 님 그리고 이렇게 되었던 상황에 대해서요
"저는 펴져나갔다고 하더라도 오래되지 않았고 이번에는 누구나 돌을 알아 볼 수 있는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어요. 두 번째에 대해서는 아마도 그럴 거에요"
저는 마녀 님의 '끔찍하다'라는 대목에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깐 앞의 쪽에 대해 생각해보며 저는 손가락을 저의 입가에 가져다대고 고개를 비스듬히 갸웃하며 그렇게 말했어요. 과거에는 평범하게 사람들이 보통의 물건을 거래하듯이 해서 실패 했다고 여기고는 먼 옛날의 악을 다시 들추고 가져오려는 자들은 감추고 퍼져나가게 사용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요. 암시장 같은 곳에서 팔리고 있다던가요? 숲 밖의 국가와 도시들 그리고 사람들의 생활에 대해서 여러가지 지식이 담긴 책에서 읽었어요, 나쁜 물건을 거래하기 위해서 쓰이는 이상한 장소라고 했었지요
"와아~ 소중하게 간직하겠어요. 감사드려요 앨리스 님!"
마녀 님께서 그리 말하며 저에게 건네주신 물건은 다름이 아니라 숲과 이를 받치고 있는 대지가 품고 있으며 흐르는 힘과 은혜를 담아내어 그 자체의 일부가 실체를 갖게 된 것으로 보이는 은은하게 그 빛을 내는 숲의 눈동자와 같은 돌 이였어요. 저는 기쁨에 마음에 복받쳐 들떠서는 환하게 웃음을 지어 보이며 그렇게 말했어요. 그리고 마녀 님의 말대로 바로 살며시 목걸이를 양손에 쥐고 올려서는 저의 목에 걸어보았어요
// >>859 괜찮아요~ 일과 생활은 중요하니까 집중하다보면, 기력이 부족해져서 생각했던 대로 하려고 싶어도 안될 수도 있어요
>>865 아앨라나는 목걸이를 착용합니다. 딱히 별 생각 없이 착용했던 겁니다. 해봤자, 대자연의 축복이 깃들 줄이나 알았지... 목걸이를 쓰자마자 마치 가슴을 누군가 퍽! 치는 듯한 느낌과 함께 그녀의 정신이 의자 등받이 뒤로 붕 떠버리고, 아앨라나 자신의 몸의 뒤통수를 보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무언가 이상해서 앞을 보면... 앨리스의 두 눈동자가 마석의 색깔처럼 생생한 초록색으로 변하더니, 일어납니다. 그리고 동시에 아앨라나의 몸도 일어나서 아앨라나...? 의 정신? 을 바라보는군요.
"문어는 여덟 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지만, 마치 우리가 두 손 두 발을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쓰듯 한단다. 그러니까 나도... 한번에 두 몸을 못 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서 연습해봤지. 네가 충분히 오래 산다면... 가르쳐줄 수도 있겠네."
그리고 앨리스는, 아앨라나의 몸과 가위바위보를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앨리스가 주먹, 아앨라나의 몸이 바위를 내서 아앨라나의 몸이 이기고... 앨리스가 바위, 아앨라나의 몸이 가위를 내서 앨리스가 이깁니다... 그리고 아앨라나는, 이 과정에서 자신의 의사는 완전히 배제된 상태로 자신의 몸이 움직이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그렇습니다. 아앨라나의 몸은, 지금 앨리스가 통제하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이건 꽤 짜증나는데다가, 너나 나한테나 오래 쓰면 좋지는 않거든? 그러니까 짧게 설명할게. 이 목걸이를 착용하면 내가 네 몸에 깃들어서, 상황을 정리해줄 수 있어. 하지만 내가 갑자기 네 몸에 빙의하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고, 네가 위험하다고만 생각하겠지? 그래서 내가 판단하기에 안전해보이는 곳까지 네 몸을 억지로 끌고 갈 거고, 그 과정에서 방해하는 건 다 터뜨리고 다 죽여버릴 거야. 그러니까... 생각 잘 하고 쓰라고."
...라고 '아앨라나의 몸'을 빌려, '아앨라나의 목소리'로 하늘에 붕붕 떠 있는 아앨라나의 혼에게 말합니다. 그리고 아앨라나의 몸은 손을 뻗어 자신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빼내고, 그러자마자 마치 자석 만난 쇠처럼 아앨라나가 다시 자신의 몸으로 훅 빨려들어가서, 제정신을 차립니다.
저는 마녀 님께서 선물해 주신 목걸이를 목에 걸어보았어요. 그 순간 저에게 큰 변화를 바로 느끼어 알아차릴 수 있었어요. 저의 시야에는 평소에는 보이는 것 자체가 어렵고 드물지만 그럼에도 확실히 알 수 있는 모습, 저 자신의 그 자체의 뒤편을 보게 된 거에요.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랐지만 그렇게 당황하지는 않았어요
이는 마녀 님의 모습과 말씀으로부터 마녀 님께서 부리시는 신비한 능력임을 저는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지금의 저는 마치 유령 같은 존재가 된 것만 같았고 이어지는 그 광경을 저는 지켜보았어요. 그건 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본뜬 인형과 함께 마녀 님이 놀이하는 시늉을 하며 보여 주시는 인형극과도 같이 보였어요. 저도 오랫동안 힘과 수련을 함으로써 배움을 쌓으며 키워나간다면 할 수 있게 되는 걸까요? 그렇다면 정말 기대되네요!
그리고 저의 입으로부터 그 목소리로 계속되는 마녀 님의 말씀을 듣게 되는 건 정말 색다르게 다가왔어요. 곧 저의 몸이 마녀 님에 뜻을 따라서 목걸이를 그 목에 벗겨내는 순간 저의 시야는 다시 평소와도 같이 돌아왔어요. 이는 지금도 생생하게 그 감각이 여운으로서 남아있는 듯 했어요. 그래서 들려주신 말씀을 정리하자면 제가 받은 '선물'은 긴급 상황에나 사용하게 될 쓰이지 않아야 더 좋을 도구가 되었음을 뜻 했어요. 그래도 저에게 마녀 님이 줄곧 곁에서 함께 해주시는 느낌이 나는 부적이라고 여길 수 있었어요. 평소에 걸고 다니지 못하더라도 그저 가지고 다닐 뿐이라도 괜찮아요. 이는 마녀 님에게 받은 소중한 물건 이니까요
"대단했어요! 신비하고 놀라운 경험 이였어요! 제가 때가 되었을 되었다면 제게도 배우고 일깨울 수 있도록 해주세요~"
언니는 그렇게 말하고, 동생의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아마 엘리가 느낄 뻔했던 따뜻함은 분명 착각일 겁니다. 대부분의 뱀파이어가 인간에게 냉혈한이나 다름 없고, 특히 피는 진짜로 '냉혈'이나 다름없는 이들이니까요. 하지만 류드밀라가 엘리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따진다면... 뭐, 그 따뜻함이 아주 착각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엘리도 맡을 수 있을 정도로, 공기 중에 혈향이 스며들고... 류드밀라는 우뚝 멈춰서더니 잡은 손을 갑자기 풀고는 이야기합니다.
"엘리, 아주 가까이에 있어. 방법은 두 가지야. 첫째는... 조용히, 은밀하게 죽일 수 있을 만큼 죽이는 거야."
류드밀라는 엄지를 제 목 쪽에 가져다 대고, 가로로 긋는 시늉을 합니다. 그 다음으로...
"둘째는... 다짜고짜 기습해서, 요란하게 다 박살내고 나오는 거."
...라 말할 때는, 류드밀라의 송곳니가 곧 일어날지도 모르는 살육의 현장을 기대하듯 더 삐죽삐죽 솟아나오는군요. 어느 쪽을 선택하건, 이번만큼은, 그녀는 제 동생의 뜻을 존중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엘리의 원대한 꿈이 아니라 이런 데서나 뜻을 존중한다는 게 조금 그렇긴 하지만...
살아남는다면... 이라고 흐리는 말꼬리 뒤에는 많은 뜻이 숨어있습니다. 앨리스에게 아앨라나는 처음이 아니었고, 마지막도 아닐 겁니다. 앨리스가 그동안 이 숲에서 살아온 세월이 얼마나 긴데, 그간 그녀의 곁에서 무언가 제대로 배울 정도로 오래 붙어있던 사람들은 몇 없었음이, 저 씁쓸할 정도로 흐리는 말끝에서 느껴집니다. 하지만 감상에 젖을 시간은 없습니다. 앨리스는 당장 일어나더니, 집안에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만큼 당장 없어져야 되는... '손님'을 깨우러 손님용 다락방으로 올라가면서 아앨라나에게 이야기합니다.
"아무튼, 지금은 먼 나중 얘기 그만 하고 일 준비를 해야 하니까... 네가 손님 짐 좀 대신 싸고 있으렴."
그리고, 앨리스는 가끔씩 들려오는 숨소리만 빼면 시체라고 오인할 정도로 곤히 자는 넬루의 침대에 무릎을 꿇고 앉더니, 그녀의 이마에 손을 대고 눈을 감고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웁니다. 그러자 넬루가 끙끙거리더니, 잠을 설치는 듯 꿈틀대다가 간신히 눈을 뜨는데, 참 말똥말똥해진 눈으로 앨리스를 바라봅니다.
"죄송합니다. 위대하신 마녀님... 저도 모르게 그만..."
"...원래 우리 집에 오는 사람들이 가끔 그러더라고. 한 300년 전부터 자주 본 광경이라 익숙해. 그나저나, 이제 슬슬 돌아가줄 수 있을까? 아앨라나가 짐 싸는 걸 돕고 있을 거야."
"그렇다면 지켜봐 주세요, 저는 살아가겠어요. 노력해서 불로장생의 비법을 익혀 장생자가 되는 것으로 목표로서 하겠습니다"
저는 마녀 님의 흐려지게 잇는 말씀에,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고는 양 손바닥을 겹쳐 살며시 비비듯 시늉하며 그렇게 말했어요. 마녀 님의 그 말씀에는 수많은 감정이 녹아들어 있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어요. 제가 죽었더라도 마치 살아있듯이 그대로 여전히 생전과 같이 움직일 수 있다면 괜찮겠지만 저는 그렇지 않아요. 마녀 님께서 살아오셨던 길고 긴 세월에 비하면 저와의 한 때는 그리 얼마 되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시간 그 자체 보다는 가능한 제가 할 수 있고 원하던 바를 이루기 위해서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떻든 저와 마녀 님과 함께 만들어온 그간의 추억은 언제 까지고 간직되는 진실인 거에요
"네~ 그렇게 하겠어요~"
그리고 이어지는 마녀 님의 말에 저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말했어요. 이로서 저희 둘 만의 대화를 마무리 짓고 넘어가요. 그럼, 넬루에게 시선을 돌려야 하는 때가 왔어요. 그녀를 이곳에 이대로 계속 잠들어 있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녀는 돌아갈 곳이 있고 머지 않아 돌아가야 할 거에요. 저는 마녀 님이 넬루에게 건 마법을 푸는 모습을 보면서 마치 덫에 걸려 움직이지 못하던 동물이 다시 풀려나듯이 일어나는 그녀를 잠시 보았다가 뒤로 하고는 그녀를 위해서 짐을 꾸리기로 했어요
앨리스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말투에는 농담이 가득합니다. 아무튼 넬루는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내려오고는, 얼굴을 붉힙니다.
"마을 경비를 설 때 이렇게 깊게 잔 적이 없었는데... 부끄럽네요. 마을에서 이랬으면 바로 거꾸로 묶여서 1분 동안 늪지에 머리를 담구는 걸 10번 하는 형벌을 받았을 거에요."
...그나저나 뒤에 나오는 말은 얼굴 붉히면서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말입니다. 아무튼 넬루는 짐을 다 싸고 나서,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가기 전에 아앨라나를 바라봅니다.
"그... 괴물을 죽여주신 건,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로요."
기억이 지워진 와중에, 아무튼 아앨라나가 자기 마을을 위협하던 괴물을 죽였다는 건 특히 믿기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걸 바라보는 앨리스는 그저 웃을 뿐입니다. 돌아가서 그 문어 어떻게 됐냐고 한번 물어보기만 하면 다 검증될 일이니까요. 넬루는 다시 플라베르흐 방향으로, 깊은 숲 속으로 사라지고, 앨리스는 아앨라나에게 묻습니다.
"자... 이제 일 얘기 하자. 그 전에 질문. 악마를 죽이고 싶니, 사람을 죽이고 싶니?"
"그럼, 이룰 수 있는 힘과 능력만 갖추고는 내가 이렇게나 할 수 있구나 하고 실제로는 하지 않는 방법도 있겠네요~ "
마녀 님의 그 말씀에 저도 장난스럽게 말했어요. 곧 그 얼굴을 보이는 넬루의 모습으로 향해서 저의 시선은 바뀌었어요
"그건 너무 과한 처벌이 아닌가요?"
거기에서 그녀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면서 말했어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 수준에는 악의를 가지고 어촌과 그 주민들을 해하여 잡힌 사람에게나 맞을 거에요. 단순히 물에 들어가도 큰 일이 날 수 있는 걸 늪 속에서 한다면 어찌 되겠나요?
"그건 모두의 도움이 있었기에 비로소 가능했어요. 저는 플라베르흐에 있는 모두를 돕고자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했을 뿐이에요"
이제 어촌을 향해서 떠나가는 그녀가 저에게 그렇게 작별의 감사 인사를 건네주었어요. 그래서 저는 이에 고개를 한번 약간 숙이며 답해주었지요
"이는 시험인가요...? 많은 사람들이 단어만 본다면 악마 쪽 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거에요. 함께하며 사람들을 지켜야 하니까요.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거에요. 그 선택에서는 간단하지 않으니까요"
"세상에는 흔히 악마라 칭할 존재와 그다지 차이가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있어요. 그리고 이 반대 역시 될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보며 생각하고 결정을 해야 할 거에요. 광경은 같더라도 사람들과 제에게 보이는 것은 서로 다를 수 있으니까요"
넬루가 떠나가고 다시금 저와 마녀 님만이 남았을 때 마녀님 께서 갑작스럽지만 그렇게 물어보셨어요. 저는 이는 무언가 시험이지 않을까 했어요. 그래서 저의 생각을 마녀 님께 말해드렸어요. 세상 일은 개미들이 만드는 집처럼 복잡하게 이어져 있다고들 했었지요. 누군가와 저 자신을 위해서 이로운 행동을 하는 건 분명 좋은 일이지만 이는 그저 선의만으로는 부족하거나 심지어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결과가 잘못 될 수도 있어요. 멀리 갈 필요는 없어요. 제가 어촌을 구한 건 사실이지만 제가 그렇게 하기 위해서 했던 말과 행동을 본 주민에게는 어땠을까요? 제가 미래에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 몰라요
줄여서 답정너란 말입니다. 하지만 답정너가, 보통 질문자(류드밀라)가 들을 답을 정해두는 것과 달리, 이건 이미 답변자(엘리)의 대답이 무엇일지를 알고 물은 것에 가깝습니다. 엘리가 인간과의 '불필요한' 무력 충돌과 학살을 벌이는 것은 뱀파이어들 중에서도 온건파를 넘어 특이할 정도로 싫어했지만, '필요한' 무력 충돌로 따지면 그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집니다. 당장 세스타우에서도, 엘리는 자신을 잡아먹으려던 식인귀들에게 상대를 잘못 골라도 한참 잘못 골랐음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까.
류드밀라는 뚜둑, 뚜두둑, 하고 손깍지를 껴서 손 마디를 풀고, 목을 좌우로 부엉이마냥 꺾으며, 경추가 부서지지는 않나 걱정될 정도로 풀은 후에 먼저 앞서 나가면서 한가지 부탁을 합니다.
"뭐, 너는 나랑 다르게 눈이 달려있으니 알겠지만... 난 웃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눈이 없잖아? 여기는 우리가 죽여도 되는 놈들만 가득하겠지만... 만약 경비병이나, 술 취한 머저리나, 아무튼 제3자가 끼어들면 그땐 하던 거 다 멈추고 나부터 말려. 안 그러면..."
쌔액!!!! 꽝!!!!!!!!!!
"커얽! 끄으읅... 윽..."
벽을 뚫고 들어가버린 류드밀라는, 무너진 벽 너머에서 세상 모르고 경전이나 읽고 있던 누군가의 목을 꿰뚫었습니다. 눈이 없어서 말로 들으면 안 믿고, 눈이 있어서 직접 봐도 믿기 힘들 정도로 세밀한 다섯 개의 손톱은, 살갗과 뼈를 젤리처럼 부드럽게 파고들고, 그 사이로 피가 흘러나오는 소리는 급작스런 전투에 예민해진 엘리의 고막에 들려옵니다.
피슛, 피슛...
"비상! 비상! 모두 일어나!"
"적습이다!"
"무슨 일이야, 씨발?!"
안뜰로 달려나오는 그슬린 이단심문관이 달빛에 빛날 때, 어두운 실내에 숨은 류드밀라의 형체는 너무나도 무섭게 비칩니다. 그리고 그 수많은 비명과 고함 속에서, 류드밀라가 살인 병기로 돌변하기 전 남긴 말이 생생히 박힙니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엘리의 밤눈이 주변을 바라봅니다. 횃대를 하나하나 넘어뜨리며 불을 꺼뜨리고 어둠을 퍼뜨려 인간의 눈을 가리고, 곧이어 숨통을 끊는 류드밀라의 서늘한 공격은 너무도 빠른 나머지 비명을 지를 트조차 주지 않고, 그들에게 밤의 일족들에게 밤까지 살아남을 기회를 준 오직 하나의 대가... '죽음'으로 보답합니다. 그슬린 병사들은 횃불을 들고 나와 휘두르며 주변을 밝히고, 그들의 눈에 죽여야 할 엘리의 모습이 잠깐 비춰지지만... 미지의 적을 이제 알았다고 해서 공포가 사라지진 않습니다. 엘리자베스 바토리 블라드 체페슈, 그들이 죽여야 했지만 못 죽인 년이... 지금 거기 서 있으니까.
"저, 저, 저...!"
엘리는 수많은 병사들을 제낍니다. 막는 놈은 밀치고, 찌르면서, 이단심문관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퍽!
이단심문관이 휘두른 망치머리 안으로 파고들어가고, 망치가 아닌 자루가 관자놀이를 치지만 관자놀이는 백날 맞아봤자 아프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엘리는 손톱을 이단심문관의 목에 푹 찔러넣고, 너무 쉽게 죽어서 재미없다 생각하는 순간...
>>878 앨리스는 잠자코 아앨라나의 말을 듣다가 고개를 젓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자신이 말한 바를 자세히 설명합니다.
"그래. 네 말이 맞긴 한데, 난 진지해. 비유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인간을 죽이겠냐, 악마를 죽이겠냐야."
앨리스는 손가락을 두드리더니, 딱 튕겨 인간의 형상을 마나로 이뤄냅니다. 로브를 입고 후드를 뒤집어써 모습이 잘 보이진 않습니다.
"일단 인간. 그 때도 그렇고 요즘도 그렇고, 맨땅에서 악마가 뿅 하고 튀어나오진 않고, 그 끔찍한 마석도 다 매개체가 있어서 유통된 거야. 그리고 그 매개체는, 악마의 속삭임을 들을 지성이 있는 지성체들이었어. 천년 전에는 엘프, 오백년 전에는 고블린이었나? 하여간... 이 마석을 유통한 인간들을 하나하나 죽이고 파헤쳐서, 검은 숲에 손을 뻗으려는 세포 조직을 죽이고 싶냐, 아니면..."
딱, 한번 더 손가락을 튕기자 인간의 형상은... 수십개의 촉수와 눈이 달린, 여튼 끔찍하고 보기 싫은 형상으로 변합니다.
"그 인간들이 대악마의 명령을 더 구체적으로 들으려고 소환하는, 그 전령 악마가 있어... 악마니까 강하긴 한데, 대악마랑은 다르게 너도 목숨을 걸면... 아니면..."
흘깃, 가말라시엘을 바라보는군요.
"저놈 죽는다 치면 안될것도 없지. 다만 이건 더 힘들 거야. 이제 다 설명했지? 뭘 할래?"
이는 시험이라 하지는 않지만 말하시고자 하는 뜻에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마녀 님께서 제가 말했던 대답에 다시 돌아오듯 답하시며 마법으로 만들어낸 듯한 형상과 함께 설명하여 주셨어요. 이에 저는 가만히 지켜 보면서 들었어요. 거기에서 처음에는 모습을 가린 사람이었어요. 부르는 이름과 모습이 다르더라도 먼 세월이 흐르더라도 이들에게는 같은 점이 있었어요. 그 다음에 이어지는 악의에 찬 끔찍한 존재와 이어져 있다는 거에요
"이제 알겠어요, 이들은 이물 숭배에 당해버린 거에요. 이 기괴한 존재의 손과 발이 되어버린 이들 부터 처단하겠어요"
"마녀 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듣고 생각해본다면 우선은 그 사람들이 되겠지만 이는 순서의 차이가 될 뿐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결국에는 둘 다 될 거에요. 종족은 이 일을 하는데 상관없어요. 여기에서 저에게 필요한 것은 올바른 결정을 내리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저에게 있기를 바라는 거에요"
이들은 인간이지만 동시에 인간이 아니기도 해요. 기괴한 외부의 존재에게 그 정체성을 끔찍하게 뒤틀리고 더럽혀졌기 때문이지요. 광기와 공포를 퍼트리는 수족에 지나지 않는 비참한 말로에요. 이정도가 된다면 오히려 죽음이 그들에게는 구제가 될 수도 있어요. 해방을 위해서는 이들에게 남겨진 발자취와 사연들을 들쳐보아야 할지도 몰라요
앨리스는 탁자에 기대어진 막대기를 보고 이죽거리는 것으로 운을 뗍니다. 아무래도 악마를 직접 상대하는 것에 비하면 난이도는 몰라도 목숨을 걸어야 할 위험은 훨씬 덜하다는 걸 바로 눈치챌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대단한 마법 대신에 곰팡내나는 오래된 지도를 꺼내들어서 펼치는데, 검은 숲이 지도 중심에 자리잡고 기준이 되어 주변을 아우르고 있습니다. 마녀의 나이만큼은 아니지만, 재질이나 노후 상태나 최소 일백년은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 고지도로서의 역사학적 가치가 아니라 정보 제공 목적의 본기능은 가치가 있을까 의심이 아앨라나 머릿속에서 피어오릅니다.
"네 나이보다 오래됐지만 그래도 최신이야. 물론 마을 이름이 바뀌거나 없던 다리가 생겼을순 있겠지만, 설마 성을 장난으로 쌓은것도 아니고 백년만에 무너졌겠어?"
말인즉슨, 세세한 오솔길의 생김과 사라짐은 몰라도 성처럼 작정하고 지었거나 마을처럼 수백년 전부터 알음알음 있었던 것들이 아예 사라졌겠냐는 겁니다. 그리고 없던 다리나 길이 생겨났다면 뭐... 편하니 좋은 일이죠?
"아무튼, 검은 숲 북쪽에 교회랑 마탑이 세력을 놓고 대치하는 큰 도시가 있어. 거기서부터 시작해봐. 지난번 그... 지랄도 그때부터였거든."
마녀는 입을 다물고 가만히 앞서가다가, 크론이 이름을 물어보자 한참 우물쭈물합니다. 아까 전에도 과하게 소심하다 뿐이지 말을 알아듣고 상황에 맞게 적절한 답변을 하는 능력은 전혀 문제없는 것 같은데... 이름을 잘 못 말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어떤 사람의 이름에는 특별한 힘이 있다고 믿는 걸수도 있고(적어도 크론이 쓰레기장에서 본 그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종교사기꾼이나 미친놈이었지만) 아니면 그냥 이름에 관해서는 그녀의 대인기피증과 소심한 성향이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걸수도 있겠지요...
"그우웅..."
아무튼 크론의 의견에 안타르크티스와 솔러가 동의한 관계로 일행은 구내식당에 빠르게 자리를 잡습니다. 첫 날인데도 불구하고 다들 다른 돈 내고 먹는 식당을 가서 그런지 생각보다 한적하고, 그래서 식사도 자유 배식으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시범을 보이려는 듯 마녀가, 그 다음에는 (본인 주장) '제펠 3세'가 그릇을 드는데... 마녀는 음식을 가져와서 자기가 먹는 대신 안타르크티스 앞에 두고, 그 다음으로 솔러에게 한 그릇, 그 다음으로 크론에게 한 그릇을 퍼주면서 묻습니다...
"...이름... 안 놀려...?"
...음, "어떻게 이름이 OOO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같은 류의 조롱에 시달린 걸까요?
저는 이번에는 마녀 님으로부터 오래된 지도를 건네 받았어요. 곧바로 저는 그 지도를 살펴보았어요. 지도 자체는 그 지나간 세월의 흔적을 저에게 뚜렷하게 말해주는 듯 했어요. 그렇지만 이렇게 제가 거기에 있는 그림과 함께 쓰여져 있는 내용을 여전히 알 수 있을 정도로 괜찮아 보였어요. 이는 마녀 님께서 잘 간직하고 있으셨기 때문에 그랬을 거에요
"앞으로의 가야 할 길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걸 알 수 있다면 좋을 거에요. 말씀하신 것처럼 바뀌었을지도 모르지만 또 한 편으로는 여전히 그 모습을 지키고 있을 거에요"
오래되었다고 해도 지도는 지도에요. 아무런 지식 없이 길을 걷기 보다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이 지도에 비해서 얼마나 바뀌었는지 비교해볼 수 있겠네요. 차이점을 수첩에 쓰고 표시해두는 거에요. 다르게 생각하자면 저는 이 지도가 품은 기억을 들여다 보아서 먼 옛날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큰 도시의 모습을 제 눈으로 직접 본다면 어떠할까요, 뭔가 기대감이 생겨나네요.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요. 이제 북쪽으로 향한 길에 오르기 위한 준비를 해야겠네요"
그렇게 마녀 님께서 제가 앞으로 가야 할 길과 거기에 무엇이 있을지 말해 주시면 저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며 그리 말했어요. 마녀 님의 말씀대로는 거기가 옛 일이 시작된 곳이라고 하네요. 지금의 그곳은 어떠할까요? 도시를 돌아보면서 알아가야겠어요
>>891 앨리스는 아앨라나의 짐을 싸줍니다. 큰 가방에 이것저것 넣어주는 손길은 그녀의 이름이 널리널리 퍼지게 만든 마법이 아니라, 아앨라나를 가르치고 혼내고 이끌던 그 손에서 나옵니다. 갈아서 가루를 타먹는 뻑뻑한 육포, 부싯깃으로 쓸 관솔 자루 하나, 텐트용 천막, 말린 버섯, 마석 따위입니다. 앨리스는 가방을 다 채우고도 혹여나 빠진 것, 빠져야 할 건이 없나 여러번 확인하고 난 후에야, 아앨라나에게 가방을 내밉니다.
"안나. 잘 자녀와야 해. 넌 죽지 말고."
죽을 곳에 알면서도 보내긴 했지만, 자식같은 이를 사지로 보내는 마음은 분명 편치 않을 겁니다. 아앨라나 개인에게만 관련된 문제로는 웃음 한 번 잃은 적 없는 앨리스가, 오늘은 정말 진지하고... 슬퍼보입니다.
>>892 핏, 핏, 목에서 찍찍 뿜던 핏줄기 끝이 불로 변해 공중을 밝혔다가 사라지고, 이내 엘리가 찔러서 생겼던 경부의 상처도 불타며 아물어버리고... 그 자리에 또다른 '그슬린' 흔적을 만듭니다. 어둠 속 엘리의 밤눈이 이 모든 것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이단심문관은 엘리가 사라졌던 방향을 보고는 크게 외칩니다.
"영원한 세례의 불이여!!!!!!"
화아아아아악!
그와 함께 거대한 불꽃이 이단심문관의 입 안에서 튀어나옵니다. 엘리는 그 광경을 보고 말을 잃어, 옆에서 비명을 지르며 달려오는 적병의 존재도 무시한 채 서 있다가...
써걱
...그 적병의 상반신 절반이, 사선으로 잘리면서 얼굴에 묻는 혈향과, 언니의 차가운 목소리가 정신을 차리게 돕습니다.
저는 마녀 님께서 손수 제가 가져가야 할 물건들을 꾸려주시는 모습에 포근함 마음에 들었어요. 저는 이대로 지켜보기 보다는 곁에서 같이 저에게 필요하거나 갖고 가고 싶은 것들을 고르고 넣기로 했어요. 나침반이나 등불, 약초 등등 여행에 쓸만한 도구들도 추가로 챙기기로 했어요. 거짐 마녀 님께서 해주셨고 저는 가방을 받았지만 아직 등에 매지는 않았어요
"괜찮을 거에요. 안나는 앨리스 님의 곁에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걸 받았어요. 다른 이들이 앨리스 님의 곁을 지키지 못했더라도 오히려 그렇기에 그만큼 저는 그 곁에 줄곧 함께 있고 싶어요. 그러니까 죽음이 방문하려 해도 돌아가도록 할 거에요. 대신에 죽음에게 그 곁에서 사라지게 만들었던 이들에게 가도록 회유 할 거에요"
제가 가는 길과 앞으로 하게 될 일들의 계기나 목적이 마냥 좋다고 할 수는 없었기에 그랬을까요. 마녀 님의 그 모습은 유독 슬퍼 보이셨어요. 저는 마녀 님의 앞으로 다가가서는 한번 껴안아 보이도록 하면서도 동시에 싱긋 미소 지어 보이며 부드럽게 말해보았어요
"자고 가고 싶어요"
그리고 이어지는 마녀 님의 그 물음에 저는 바로 출발하지 않고 하루 밤을 집에서 보내기로 했어요
죽음이 온다면, 자신이 아닌 이전의 제자들을 죽였던 그 사교도 놈들에게 토스하겠다는 아앨라나의 약속은 그녀의 목소리가 언제나 그렇듯 나긋나긋하게 나오지만 그 말에 서린 결기만큼은 결코 나긋나긋하지 않습니다. 앨리스는 자고 가겠다는 아앨라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녀를 껴안은 그대로 속삭입니다.
"그래, 그래. 잠자리를 준비해 줄게. 앞으로 자고 싶어도,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자고 싶어도 못 자는 순간이 좀 많을 테니까..."
앨리스가 속삭이자마자, 아앨라나는 정말로 여러번 겪었지만 절대 익숙해질 수 없는 그 졸림을 느낍니다. 아앨라나는 이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주 어릴 적, 책을 읽느라 자는 시간도 아까워 몰래 책을 읽을 때, 앨리스는 좋은 말로 해서 안 되니까 아앨라나에게 한 마디 말을 속삭이는 것만으로 재웠습니다. 얼마나 깊이 잠들었는지... 아앨라나는 그 다음 날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깨어날 수 있었습니다. 몸이 개운하다 못해, 팔다리가 아예 안 느껴지고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은 최상의 컨디션으로 회복되었음을 깨달은 채 말입니다.
아앨라나는 마치 넬루가 그랬던 것처럼, 휘청거리다가 바닥으로 쓰러집니다. 하지만 뒤통수가 깨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고... 아앨라나가 항상 깔고 자던 이불이 그녀의 방에서 날아오더니, 마치 마법의 양탄자처럼 그녀를 위에 얹고는 다시 방으로 날아갑니다... 쏟아지는 잠의 무게에도 어떻게든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보려던 아앨라나의 눈에는 앨리스의 웃는 모습이 보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푹 쉬렴. 우리 아이. 일어나면... 행운을 빌어."
...쉬이잇, 잠들려무나.
마지막 한 마디와 함께 아앨라나의 의식이 암전하고... 단 한 조각의 꿈도 없는 편안한 수면 속에서, 아앨라나의 정신은 점점 현실로 떠오릅니다.
쉬이이이이이, 바람이 풀을 스치는 소리가 온 세상을 메우고, 눈을 감은 시야는 온통 붉어서 눈을 뜨면 눈이 멀 정도로 아픈 태양빛이 기다리고 있을 것임을 알려줍니다. 바람이 귀를 간질이다 이내 피부까지 스치자, 아앨라나는 슬쩍 눈을 뜨고 벌떡 일어나 주변을 둘러봅니다... 그녀가 알던 검은 숲의 거대한 나무들이 아닌, 아앨라나의 허리 높이까지 오는 수풀이 무성한 대초원에, 아앨라나는 이불을 덮은 채 자고 있었습니다. 주변을 더 둘러보면, 뒤쪽 지평선에... '검은 숲'인지 아니면 다른 숲인지로 추정되는 나무들이 가득한 곳이 보입니다.
...앨리스가, 아앨라나를 위해 준비한 마지막 배려인가 봅니다. 적어도 발은 아프지 말라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