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은 평소에 그랬듯이 백과사전 정령의 TMI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낸다. 아무래도 서재 내에 있는 요리책이라도 독파했던 모양이라고 생각하면서.
식탁 위에 음식이 차려지는데 미리 이야기를 하지 않은 탓에 음식의 수준이 널을 뛰듯하다. 헬렌은 눈치를 보는 페로를 보고는 이마를 짚었다.
“미안. 내가 너무 피곤해서 말도 안 해두고 잠들어 버리는 바람에 손님을 곤란하게 했네. 진짜 편하게 먹어도 되니까. 어차피 나 혼자 다 못 먹는 양이기도 하고.”
헬렌은 백과사전 정령이 정보를 퍼붓던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던 닭 구이 요리를 페로의 앞접시에 덜어준다. 그리고 사슴 구이를 자신의 앞에 던 다음 한입 먹는다. 음식을 나눠먹는다는 것은 친교의 의미니까. 그리고 앞으로 여행을 하며 호사만 누릴 수 없을 테니 귀족적인 수준의 음식 외의 음식도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아, 동굴 안에서 마법사를 어떻게 해치웠는지 좀 얘기해줘. 물론 그 직후에 내가 광역 공격을 하는 바람에 엄청 화났었겠지만........ 아, 그 때 그 쪽에 정령사도 한 명 있는 것 같았었는데.”
헬렌은 자신의 시야 밖에 있었던 일에 대해 궁금해하며 묻는다. 눈빛이 반짝였을지도 모른다. 헬렌은 영 근접전엔 재능이 없었으니까. 물론 호신 정도는 배우긴 했으나 그 이상으로는 나아가지 못했다. 물론 손도 야물지 못해 신부 수업도 영 잼병이었고. 아무래도 정령술에 재능이 몰빵된 것일지도.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웃기다 ㅋㅋㅋㅋㅋㅋ 요리는 정말 심오한 세계이지... ㅋㅋㅋㅋ 캡 오늘 진행도 고생했서~
>>711 "뭐어...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불쌍한 곰돌이. 눈이 멀더니 어디서 기이한 마석이 박힌 모양이군요!"
가말라시엘은 껄껄 웃으며 언제나 그렇듯 남 일인양 대답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알 수 없는 사악함이 감돕니다. 뭔가... 뭔가 불길하고 가까이하면 안될 것 같은 검은 기운, 그런 익숙하지만 적응은 안 되는 징조입니다. 아앨라나가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넬루는 창을 붙잡고 몸을 낮춘 채 창끝을 겨누는데, 후읍... 하아... 후읍, 하아... 숨소리와 함께 공황을 막아보려 하지만 잘 안 되는 모양입니다.
"그르르륵..."
불곰이 점점 다가오고, 넬루도 물러나지 않고 이를 악뭅니다. 아무래도, 넬루가 죽는 꼴을 보기 싫으면 아앨라나가 뭔가 해야 할 때입니다.
>>713 페로는 자기 몫이라 생각했던 사슴 한 덩이가 헬렌의 접시에, 이름도 기이한 풀레 퓌슬린지 풀에 피흘린 놈인지 아무튼 닭 요리가 자기 접시 위에 올라가자 헬렌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조심스레 포크와 니이프를 잡고, 그녀가 아는 귀족의 예절... 아니, 최소한 귀족에게 무례하지 않은 예절을 떠듬떠듬 떠올려가며 알면 아는대로, 모르면 되는대로 닭고기를 썰어 입 안에 넣습니다.
"웅냥냥... 움...?"
고양이가 낼법한 음미하는 소리를 내며 음식을 한 입 삼킨 페로는, 헬렌의 질문에 귀를 쫑긋거리더니 곰곰이 고민하다가 대답합니다.
"...그냥 기어 들어가서 잘 숨었다가 뒤에서 목 땄는데요? 제일 번쩍거리고 좋은 옷 입은 놈. 원래 마법사들은 구별하기 쉽거든요."
음. 헬렌으로 치면 정령술 비결을 물었더니만 그냥 정령한테 가서 공손하게 잘 부탁하면 된다고 대답한 꼴입니다. 스스로도 아니다 여겼는지 뭐라 덧붙이려는데 잘 안 됩니다.
@@>>716 헬렌은 무례해 보일까봐 참고 있었지만 페로의 쫑긋거리는 귀도 팔랑거리는 꼬리도 귀엽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웅냥냥하면서 먹는다니 너무 귀엽다......라고 생각해버린다. 그래서 맛있는 음식을 그 앞접시에 마구 덜어주려 한다. 자신이 먹은 사슴 고기도 사슴 고기에서 원래 이런 맛이 났나? 싶은 느낌이었지만 그려려니 하고 먹는 것을 보면 그렇게 먹는 것에 까탈스러운 아가씨는 아닌 모양이다.
“설명이 어려우면 괜찮아. 혹시 거기에 정령사가 있지는 않았어?”
암허슈트가 이야기하기로는 정령사가 있다고 했으니까. 그것에 대해서 궁금하기도 했다. 원래 정령사라는 것이 귀하기도 했고 헬렌은 자신이 아닌 다른 정령사를 본 적이 없기도 했다. 왜냐하면 아무리 로렌스가가 정령술로 유명했다고 한들 선선대에서 그 맥이 끊겼으니 찾아오는 정령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티호미르의 설명은 아리송함과 신비함만을 더합니다. 논까사, 뭔가 전혀 연상되는 구석이라곤 없는 게 더더욱 비밀결사의 암호명처럼 다가오죠. 그런 엘리의 환상을 깨주겠다는 듯 초췌한 사내가 악수하자고 손을 내밀고 환하게 웃으며 우수수 떨어진 치열을 드러내더니, 뒤에 있던 이들과 그들을 둘러싼 무더기들을 가리키며 논까사의 뜻을 친절하게 설명해줍니다.
"여기 친절한 후원자님께서 설명하신대로, 저희는 논까사, 논문 까인 사람들입니다. 학술의 도시라고 연구예산이 무제한은 아닌지라... 그, 조금 주류에서 벗어나거나, 실용성이 없다거나 하는 학문을 포기하지 않은 이들이나, 학문의 분야와 별개로 연구가 진척이 없는데도 포기하지 않은 그... 어... 음... 학문의 투사라 할 수 있죠!"
한참 동안이나 말을 고르던 사내도 스스로의 꼴을 보면 영 자신이 없어집니다. 티호미르는 그 사내의 어깨에 손을 얹습니다.
"일이나 하자고."
그의 말대로, 사내는 엘리를 안으로 안내합니다. 안에는 습기를 막으려는 듯 온갖 흡습재에 덮인 책과 문서 더미들이 있고, 로브 쓴 이들은 몇십년 전 것일지도 모를 전공서적을 베개 대신 받치고 자고 금 가서 못 쓰는 연금술 실험용 플라스크를 주전자로 쓰고 있습니다. 어디서 매캐한 탄내가 나기에 고개를 돌려보면, 한 명은 말린 물이끼를 뭉쳐 태우고, 한 명은 태운 재를 모아 물에 개어 잉크를 만들고 있습니다... 짠내 나는 광경이군요. 사내는 엘리와 티호미르를 이곳에서 가장 '멀쩡한' 숙소로 안내합니다. 왠지 감옥으로 쓰다 버려진 느낌이지만... 그래도 개인실입니다.
티호미르가 이야기하는군요.
"일단 이곳에서 낮 동안 계시죠. 해가 지는 대로 류드밀라 아가씨...아니, 집행관님께 보고하겠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저 존재가 해당하지 않는다고 할 수 없겠네요. 그것이 저희를 나쁘게 대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지요"
저는 저 야수를 불쌍하지는 않아요. 그렇다고 해서 따로 나쁜 감정을 품고 있는 것도 아니에요. 가말라시엘 님이 실제로는 저 야수를 그렇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고 유추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이 습격을 막고 다시 한번 저 야수를 쫓아내거나... 이번에는 그 행동이 마지막이 되도록 하게 되겠지요
지금 이 상황에서 저 야수의 위협과는 또 다른 곳으로 제가 느끼고 있는 은 익숙하다면 익숙한 것이에요. 그렇지만 이번에는 이상하다고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유독 강하게 서리는 것이 이였어요
"넬루 씨, 조심해주세요! 저는 주변의 바위를 사용해서 공격해보겠어요"
넬루가 저 위험한 야수와 대치하면서 시선을 끌어주는 동안 저는 주변을 둘러보아서 적당히 크고 단단해 보이는 바위 몇 개를 마법으로 뽑아내서 공중으로 들어올려 던지는 것을 시도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저는 그렇게 그녀를 향하여 너무 크지 않게 외쳐보았어요. 그녀가 저 야수와 대치하고 있는 만큼 혹시 이 공격으로 그녀까지 잘못되지 않도록 행동한 이후 그 틈을 노리도록 해야겠지요
귀를 쫑긋쫑긋, 하다가, 고민하면서 맥주를 홀짝홀짝 들이키던 그녀의 귀가 위로 바짝 솟고 페로는 기억났다는 듯 손가락을 딱 튕깁니다.
"그... 정령사라고 부르기는 뭐하고 그 좀 미쳐보이는 사람은 있더라고요. 이상한 근육질 노인이 천장을 흔들고 있고, 큰 박쥐가 박쥐떼한테 물려 나가고 있다고 막 똥오줌 싸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굳이 죽일 필요도 없이 자기가 자기 목에 칼 찔러서 죽던데요?"
무슨 느낌인지 헬렌은 감이 탁 오고, 옆에 있던 로지가 헬렌에게 당연한 사실을 주지시킵니다.
"아시죠, 아가씨? 아가씨처럼 그냥 말만 떼면 바로 정령사 해도 되는 수준의 적성은 극도로 드물고, 대부분은 정령을 사역할 수 있거나 정령을 보거나 둘 중 하나만 해도 일단은 정령사 취급 받는거.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정령사들이 다 아가씨 수준이거나 둘 다 조금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 그게 인지 편향이에요."
"그리고 백과사전의 정령과 로지의 문제는 저 아는 척이지요."
"저 노인네 또 지랄이야."
암허슈트가 끼어들자 로지는 또 도끼눈을 하지만, 암허슈트는 로지의 입을 텁 막더니 "하던 얘기 계속하십시오. 아가씨"라고 말합니다. 뭐, 뻔할 뻔자입니다. 그냥 가만히 구경이나 하거나, 아니면 눈에 보이지도 않았을 광석의 정령 수사닌이 갑자기 나타나 천장을 흔들면서 죽이려 들고, 배시가 박쥐들한테 끌려나가고, 정령의 사역에 보탤 수 있을 정도로 발달한 버섯 군체들이 전부 자기를 죽이려 하는 꼴을 보면 공포스럽겠죠. 그래서 공포를 못 이겨 자살한 듯합니다. 아무튼 그건 그거고, 이번에는 페로가 묻습니다.
"그런데 아가씨는 이런 험한 데는 왜 오신 거에요? 그란 투리스모라면 더 좋은 데도 많을 텐데."
'그란 투리스모: 귀족 자제들이 견문을 쌓기 위해 세계 각지의 다양한 지역을 돌아다니며 전투, 상업, 경기, 항해, 모험, 교육, 교류, 친교 등 다양한 경험을 쌓기 위해 떠나는 여정을 의미합니다.'
>>719 아앨라나는 지팡이에 남은 마력으로 바위를 들어올립니다. 바위를 감싸안은 땅이 쩌저적 금이 가면서 천천히 바위가 딸려나오지만, 민물 크라켄을 죽일 때에 비하면 속도가 너무나도 부족합니다. 마력이 부족한 걸까요? 아니, 아닙니다... 아앨라나는 마력 전달이 미친 듯이 느려진 느낌을 받습니다... 그리고, 저 불곰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아니, 정확히는 저 불곰의 눈에 박힌 마석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느려집니다. 넬루는 창을 앞으로 내지르면서, 플라베르흐 어촌 특유의 전투 함성을 큰 소리로 내지르며 곰을 위협합니다.
"호수는 기억한다! 호수는 이어진다!"
그리고, 가말라시엘은 천천히 아앨라나에게 말하는군요.
"그냥... 저한테 조금만 더 '재량권'을 주시면 됩니다. 잠시, 저도 바깥 바람 조금만 쐬게... 그 힘을 쓰도록 지팡이에 피를 조금만 흘려넣으면, 그러면 그 보답으로 저 곰을 그대로 가죽과 곰 고기로 해체해드리죠."
...가말라시엘은 아앨라나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뭔가 상황이 아앨라나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 같다면 ㅈㅅ. 가말라시엘의 든든하지만 뭔가 뒤가 구린 이미지를 좀 더 강화하기 위해 인신공양 이후 이벤트로 하나 추가해본거.
@@>>720 헬렌은 페로의 설명에 차마 그 사람이 정령사라고 말할 수 없었다. 같은 사람 취급이고 싶지 않아.........
‘이 정도 일줄은 몰랐어......’
확실히 헬렌은 우물 안 개구리, 온실 속 화초처럼 살아오긴 했다. 어쨌든 암허슈트가 로지의 입을 막아버린다. 그리고 이번엔 페로가 묻는다.
헬렌은 일단 잠시 고민한다. 아니, 집안에 돈이 없어서 그란 투리스모를 할 형편이 안 된다고 말하기에는 부끄럽다. 그럼에도 헬렌은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어머니가 불치병으로 아프셔서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고 있거든. 나라도 어떻게든 해서 돈을 벌거나 어머니를 낫게 할 방법을 찾아보려고 일단 나온 거야.”
어쨌든 그런 귀한 돈을 페로가 훔쳐갈 뻔한 것이긴 했다. 뭐, 어머니가 아프다는 사실은 로렌스가에서 수 많은 의사와 치료사를 불러들이고 온갖 효과가 있다는 약재들을 사들이면서 소문이란 소문은 다 났기에 숨길 것도 없겠지만.
“사실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할지 계획도 없어. 일단 수도 쪽으로 향하곤 있는데... 나는 할 줄 아는 게 제대로 배우지 못한 정령술 밖에 없고. 오늘 뼈져리게 느꼈지만 혼자서는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게다가 네가 오늘 함께 싸워주고 치료도 하는 걸 보면서.....”
헬렌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말한다.
”혹시 다른 일이 있는 게 아니라면, 나랑 같이 다니지 않을래? 그, 동료 제안 같은 거야.”
저의 시도는 자체는 정상적으로 된 것처럼 보였지만 그 과정에 있어서는 달랐어요. 어쩐지 이번에 바위를 움직이는데 뭔가 잘못된 것이 있었어요. 그래도 할 수는 있으니 어떻게 해서 피하더라도 크기가 되는 만큼 움직임을 방해하거나 부수적인 피해를 주는 것은 할 수 있겠지요
저는 이 현상이 저 돌의 눈을 품은 야수의 마력을 띈 불길한 돌, 마석 사이에 마력 간섭으로 흐름의 충돌이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것이 저 마석의 유별난 점이겠지요. 야수가 다가올 수록 마력의 흐름이 예전과는 다르게 느껴져요
"넬루 씨, 가능하다면 저 야수의 힘을 줄이기 위해서는 그 눈에 자리하고 있는 돌을 우선적으로 치는 것이 좋을 거에요. 뿐만이 아니라 제가 마법을 쓰는데 방해가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다시 그녀에게 그렇게 외쳤어요. 마석이란 마력이 응집되어 끌어내고 머금은 돌과 같아요. 그렇다면 드레인 능력을 최대한 사용해서 마석으로부터 마력을 강제로 누출해서 뺏어오는 것을 해볼 수도 있을 거에요. 마석에 깃든 마력이 줄어들 수록 간섭은 줄어들고 저에게는 이득이 되겠지요. 아직은 확신이 들지는 않지만 제가 추측한 것이 맞다면 이에 맞춰서 행동한다면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말씀은 즉, 봉해진 모습에 대해 말하시는 것이지요? 그 필요하신 피는 몇 방울이면 충분한가요? 지금 바로 얻을 수 있는 것이라 한다면 한가지가 떠오르네요"
거기에서 첨언하는 가말라시엘 님의 말에 그렇게 물어보며 말했어요. 그 말에서 유추해 본다면 가말라시엘 님은 지팡이 속에 감춰진 일면을 들어내고자 힘을 쓰려는 것일 거에요. 그때 이후로 좀더 적극적이시라고 해야할까요. 다만, 그 결과는 빠르고 확실할 거에요. 그럼, 그것을 실현하고자 한다면 제 자신의 손가락에서 째서 조금 피를 몇 방울 떨어내면 될 것 같았어요.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해도 될지는 모르겠네요
페로는 눈을 끔뻑이고 자기가 들은 말이 맞나 다시 확인합니다. 분명, 헬렌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같이 다니자고... 같이 다니면서 일 좀 해보자는 이야깁니다. 별 기대 없이 대답이나 하면서 젯밥이나 주워먹던 페로는, 헬렌을 바라보더니 잠시 고민합니다. 고민 끝에 고개를 푹 떨군 페로는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다시 헬렌을 올려다봅니다. 그 페로의 눈망울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새어나올 것처럼 벙글벙글합니다. 페로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이야기합니다.
"다, 다른 곳에서는 다 안 됐는데... 상단에서는 딱 봐도 도둑 고양이라 그러고... 경비대도 범죄자는 안 받는다 그러고... 베르누 수색대도 탈락했는데... 나... 나..."
페로는 헬렌의 손을 탁 붙잡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저도... 비슷한 느낌이에요. 원래 살던 혈족이 쫓겨나면서 어떻게 살지 고민하다가... 각자 방법을 찾아서 뿔뿔이 흩어졌거든요. 그런데... 백작가 영애의 부하로 들어간다면..."
수인들은 쉽게 차별의 희생양이 되고, 개중에서도 특히 이미지가 안 좋은 펠리네 수인이라면 뭐... 말할 것도 없을 겁니다. 페로는 헬렌의 제안에 더 말할 것도 없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723 '그렇게 많을 필요가 없습니다. 중요한 건 피의 양이 아니라, 그 피를 흘리는 이의 마음입니다. 바라지 않는 자의 피로 이룬 바다보다, 바라는 자의 피 한 방울이 더 좋은 법.'
가말라시엘의 이야기는 그렇습니다. 아앨라나가 가말라시엘의 현현(顯現)을 마음 속으로 허락하고, 그 마음을 전하는 의미로 지팡이에 피를 한 방울이라도 흘려 넣으면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지팡이를 정당히 소유한 이가 잠시 봉인을 풀게 되기에, 뭐 아무튼 그렇게 해서 가말라시엘이 풀려날 수 있다... 가말라시엘이 아앨라나의 머릿속에 갑작스럽게 주입하려 든 지식들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그러합니다. 하지만 아앨라나는 그 지식들을 옆으로 치워놨습니다. 지금은 그딴 걸 생각하기에는 너무 상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큰 곰을 저더러 어떻게... 하아..."
곰의 눈에 박힌 마석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라는 말에, 넬루는 원망하듯 아앨라나를 돌아봤다가 이내 자기가 싸워야 할 상대를 돌아봅니다. 어쩌겠습니까. 마법사는 아앨라나고, 넬루는 비마법사고, 앞에서 목숨 걸고 창칼로 싸우는 게 다른 플라베르흐 촌민들처럼 넬루가 살아온 방식인 것을. 넬루는 아앨라나의 말대로 창을 내지르며 곰을 도발하다가, 곰이 갑자기 몸을 앞으로 쑥 빼자 크게 소리를 지르면서 마석 쪽으로 창을 내지릅니다.
"이야아아악!!!!"
캉!
창이 마석을 내리치자, 곰은 고통스러운 듯 움찔거립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입장을 바꿔서 눈에 웬 돌덩이가 박혔는데 그걸 누가 때렸다면 끔찍하지 않겠습니까? 그 틈에, 아앨라나는 드레인으로 마석의 기이한 힘을 흡수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아앨라나는 눈을 부릅뜹니다. 우물로 비유하자면, 해봤자 빨래 하고 밥이나 짓자고 우물을 판다는 게 제방을 무너뜨린 것마냥, 엄청나게 거대한 마력의 파도가 아앨라나의 흉곽을 금방이라도 부수고 들어오려는 것 같습니다. 마력이 정제가 되지 않았건, 마력을 무식한 방식으로 압축했건... 아앨라나는 다시 한번 선택의 기로에 빠집니다.
가말라시엘의 제안을 받아들일지. 아니면 이 정신나간 마력 파동을 통제할 시간을 벌 다른 방법을 생각해볼지.
>>726 "냉정히 말해, 이 사람들은... 버려졌습니다. 아무도 관심이 없죠. 저 위의 호르뮈셰 행정부도 그렇고, 방금 엘리자베스 아가씨를 죽이려 한 이들도 그렇고요. 그래도 이들이 지하수로에 죽치고 있는 게 고블린이나 랫킨보다야 훨씬 나으니 그냥 여기 살게 내버려두고 영원히 신경 끈 것 같습니다. 아마 여기서 30년 일한 경비병이란 놈들보다 여기 온 지 사흘도 안 된 제가 이 지하 수로 돌아가는 사정은 훨씬 더 잘 알 겁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일이 이렇게 될 걸 대비해서, 아가씨께서 알아서 처리하라고 명령하신 닭들은 이 친구들한테 넘기고, 대신 아가씨 몫으로 닭 피만 대신 빼서 어디다 보관해두라고 했습니다."
티호미르는 엘리에게 속삭입니다. 버려진 이들, 이라고 하는군요. 행색을 보면 척 봐도 그렇습니다. 돈 안 되는 연구, 주류에서 밀려난 연구, 말이 좋아 연구지 연구를 다른 것으로 바꾸면 인간사 어디라도 다 적용될 이야기입니다. 다만 여기는 학문에 대한 열의, 호르뮈셰라는 학술도시 특성상 '학술'에 재활용할 수 있는 쓰레기를 많이 주울 수 있는 환경, 그리고 외부인에게 딱히 적대적이지 않은 연구자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특수하게 이 집단이 유지되고 있는 거겠죠. 엘리는 티호미르가 떠난 뒤에, 주변을 둘러봅니다...
"어디보자, 이번 발광이끼는 지난번 117번 실험 표본에 비해 120%나 밝아..."
"뭐라고? 그럼 그걸 얘기를 했어야지! 내 버섯 실험 조건의 동일성이 엉망이 됐잖아!"
지하수로 천장에는 세스타우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한 발광이끼가 들러붙었는데 훨씬 거대한 군체를 이루고 있고, 그 아래에는 허름한 복장의 연구자들이 모여서 각자의 연구를 하거나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마침 엘리가 티호미르한테 떠넘겼던 닭들을 탕탕 썰어서 가마솥에 집어넣고 끓이고 있는 이들이 보입니다. 그들의 뱃속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로 합창단도 꾸릴 기셉니다.
"헤헤, 고기다. 고기!"
"그나저나 뱀파이어 하수인이라던데 괜찮을까? 요즘 위에 이단심문관들이 극성이란 말이 있던데."
"뭐 어때. 아무튼 오랜만에 이거도 연구 예산이라고 들어왔는데."
그리고... 아무리 살기 위해서라지만, 엘리가 보기에는 좀 눈살 찌푸려지는 광경도 나옵니다.
"야, 잠깐만!"
누군가 지하수로에서 사는 미꾸라지인지 물뱀인지를 잔뜩 집어넣고, 옆에서 가재를 집어넣고, 누군가는 귀한 거라며 생선대가리를 집어넣는데, 앞의 둘이야 그렇다쳐도 마지막에서는 엘리가 살기 위해 이런 짓까지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아무튼 그건 그거라 생각하는데, 누군가 엘리를 부르는군요.
"그렇겠네요, 존재를 얾매는 힘이란... 담아내도록 만들어진 것은 본디 그러한 것이겠지요"
저는 가말라시엘 님의 그 말에 그렇게 대답하여 말했어요. 예전부터 방법은 가까이 있었다는 거에요. 단지 그것을 바라보지 않았을 뿐이겠지요. 그것을 제가 실현한다면 지금까지 와는 얼마나 다르게 될까요? 무엇을 볼 수 있게 될까요? 여기서 저에게 드는 것은 새로운 것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것이었어요
제가 외치고 이에 그녀가 저에게 보이는 표정에 조금은 잘못한 감정이 들기는 했지만 저는 그녀의 도움이 필요했어요. 그리고 그녀는 제가 부탁한 것을 정말로 해낼 수 있을 정도로 강인하고 숙련된 사람이에요. 그녀가 보여주었던 것으로 제가 믿었던 것처럼 그녀의 우렁찬 외침과 함께 창끝에 서린 일격은 마석에 닿았어요
저는 그때를 놓치지 않았어요. 그대로 제가 마석에 드레인을 사용하는 것 자체는 좋았어요. 다만, 그것에서 제가 생각했었던 것보다 훨씬 다른 것이었어요 그 강렬한 마력의 격류와 큰 반동에 저는 얼굴을 약간 찡그렸어요. 이 정도의 마력이 응축되어 이끌림이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마력의 흐름이 이상했던 것도 이제는 이해가 되요
어떻게든 하기 위해서는 이번에는 저는 선택을 해야만 했어요. 그래서 저는 저의 몸, 옷가지를 더듬거리며 그 안에서 작고 짧은 칼집이 있는 은빛 칼을 찾아서는 손에 쥐었어요. 그것은 평소에 제가 약초나 버섯 같은 것을 따낼 때 사용하던 것이었어요
"지금부터는 안전하게 떨어져 있어 주세요, 이제 있게 될 일에 휘말리게 된다면 안되니까요...!"
혹시 몰라서 저는 또 다시 이번에도 그녀에게 외쳤어요. 저는 다른 손으로 칼날의 손잡이를 쥐고 그 칼집으로 칼날을 부터 꺼내 들어서는 저의 손가락 끝에 향해 살짝 찔러내고 따끔한 통각에 순간 주춤하면서도 손가락에서 피어오르는 붉은 방울을 지팡이에 흘러내 보았어요. 파도에 저항하며 나아가는 배가 되는 것인지 순풍을 받은 배와 같이 되는지 그것은 거기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하겠지요
부하 되는 이야기. 라고 운을 붙입니다. 아무래도 쫓겨다니는 씨족의 일원에게 그렇게 시간이 많지 않을 테니, 기회가 딘다 싶을 떄 강한 사람에게 붙어서 제대로 일을 시작하려 한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페로의 입장에서 헬렌은 정말로 좋은 상대였을 겁니다. 페로는 왜 헬렌과 함께 일하고 싶었는지 조목조목 이야기합니다.
"백작 영애, 그러니까 귀족도 보통 귀족이 아니라 어지간히 심한 일이 아니면 적당히 넘어갈 수 있지, 하는김에 저도 아가씨 수행원으로 올라가서 그 이름값으로 적당히 묻어갈 수 있지, 게다가 백작의 이름값이 있으니까 당연히 더 큰 건수도 많이 들어올 테지..."
맞는 말입니다. 로렌스 백작가의 권위와 정령사로서의 명성이 아니었다면 광산 공략은 아예 받지도 못했거나, 오히려 죽으러 들어간다며 다들 앞장서서 뜯어말렸을 일이니까요. 페로는 잘 됐다는 생각에 고기를 잔뜩 뜯어먹으며 귀를 살랑살랑 흔듭니다. 잘 안 풀리던 취업 문제가 이제 해결됐으니, 지금 당장은 또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페로는 자기 앞의 접시를 한번 더 비운 후, 헬렌에게 묻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어디로 갈 거에요? 진짜 돈만 생각한다면, 동쪽 숲의 제재소 쪽에서 우드 엘프들 상대로 소탕전을 벌이고 있는데 거기가 잘 될 거고... 좀 더러워도 된다면 서쪽에는 늪지대가 있구요. 요즘 거기 트롤, 고블린들이 많이 나와서 다들 고생한대요."
소녀는 물끄러미 크론을 바라봅니다. 한참 동안 크론을 바라보다가, 크론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는 뭔가 깨달은 듯 눈동자를 밝게 비춥니다. 그녀는 바로 휘파람을 불더니, 북극곰의 목에 걸려있던 형형색색의 알록달록한 밧줄을 붙잡고, 북극곰을 분수대 안으로 당깁니다. 북극곰은 영문도 모른 채로 어리버리하다가 일단 소녀가 시키는 대로 들어가더니, 그대로 안에 풍덩 빠져버립니다. 풍덩! 유레카를 외친 한 고대 학자가 생각나는 광경, 문자 그대로 작은 오두막만한 북극곰이 분수 속에 그대로 드러누워버리자 분수대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전부 물 세례를 맞지만... 그래도 다들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추레한 마녀는 흘깃 북극곰을 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바닥에 방금 먹은 물을 뱉고 다시 앞을 바라보고, 정신 나간 남자는 놀랍게도...
"행복한 무덤. 그런데 머리가 어디를 보고 있지? 가슴은 왜 무릎뼈를 사랑하는 걸까? 돼지는 햇빛으로 구워..."
...방금 물을 쳐맞아놓고도,, 그의 아무 말이나 막 뱉어대는 출력에는 물과 관련된 내요이 하나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거 아무래도 입력 자체가 고장났거나, 입력은 됐더라도 그게 출력과 제대로 연결이 안 되는 모양입니다. 아무튼 북극곰은 물 속에 통째로 들어가자,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 일단 '버틸 수는 있는' 수준으로 있게 되었습니다. 한숨 소리도 한결 편해보이는군요.
많은 피를 바치는 건 아니었어도, 몇 방울의 피를 흘리는 정도의 의식은 마녀들이라면 다 배우고 집전하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렇기에 아앨라나는 여러 용도 중 의식 용도도 있는 작은 칼로 손바닥에 상처를 내, 가말라시엘의 지팡이에 그 핏방울을 흘려 넣었습니다.
뚝
가말라시엘이 그토록 부르짖던 '바라는 자의 피' 한 방울.
가말라시엘이 누군지도 모르는 이들이나 가말라시엘을 증오하는 이들의 피로 이룬 강과 바다보다,몇백배 몇억배는 더 귀중한 성물(聖物).
'드디어.'
아앨라나의 시야가 암전하고 눈 앞은 형체를 구별할 수 없는 암흑만이 자리잡습니다. 그곳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소용돌이치듯 하다가, 사악하게 웃는 인간의 얼굴로 변한 회색 악마입니다. 악마는 자신을 그동안 믿고, 자신의 현현을 도와준 '사도님'의 머리를 한번 가볍게 쓰다듬고는... 자신의 충실한 사도에게 정중히 부탁합니다.
"무슨 소리가 들리더라도 눈을 뜨지 마십시오. 명령은 아니고 부탁입니다만, 아마 제가 눈을 떠도 된다고 하기 전에 눈을 뜨신다면... 차라리 명령하지 그랬냐고 절 원망하실지도 모릅니다."
...라고 말하고는, 아앨라나의 눈을 자신의 거대한 손으로 감긴 채 아앨라나의 시야에서 악의 어둠을 거둡니다. 아앨라나는 본능적으로 눈을 뜨면 앞을 볼 수 있겠다는 걸 깨닫지만... 앞에서 끔찍한 소리가 들립니다. 아앨라나의 눈은 가려도 넬루의 눈은 가리지 않았는지...
"어어... 저거... 저거 뭐야?!"
"끄억?! 쿠어워어어어어얽!"
철퍽! 푸쟉! 빠각! 팍! 싸운다기보다는, 마치 푸줏간에서 고기를 도살하는 듯한 소리와, 못 볼 걸 본 듯한 넬루의 비명소리가 들립니다...
@@>>731 물론 부하, 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아무래도 동료라는 말이 페로에게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헬렌은 생각이 들었다. 신분차라는 것이 원래 그런 법이니까. 뭐어. 어쨌든 파티의 리더 격은 자신일테니 잠시간은 그렇게 생각해도 상관 없나, 싶기도 했고.
어쨌든 페로가 이어서 말하는 것은 확실히 맞는 말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어쨌든 잘 먹는 모습을 보니 기분은 좋다. 헬렌도 음식을 먹으면서 배를 채운다.
“음....... 아직은 대인전으로 정령을 쓰긴 미숙하고 부담스러워서. 좀 더럽더라도 서쪽으로 가는 편이 괜찮지 않을까 싶어.”
헬렌은 용병들을 제압하려다가 반 죽음으로 만들어 놨던 것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게다가 제재소와 우드 엘프가 싸우고 있다고 한다면 확실히 벌목 문제이겠지... 자연으로부터 수익을 얻고 그것들을 보살피며 살아가는 로렌스가의 사람으로 어느 쪽 편을 들기 남감한 느낌일 것 같아 돈만 보고 당장 가기에는 조금 염려스럽다. 헬렌의 성격 상 몸이 더 고생하는 편이 낫다고 보는 모양이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엘리의 은빛 머리카락은 붉은색과 초록색의 녹에 색색이 잡아먹힌 가위에 서걱 하고 한 움큼 잘려나갑니다. 찔려서 피 나는 것고다도 덧나는 것과 파상풍이 더 두려운 무시무시한 가위를 한손에 든 그녀는 헤실헤실 웃으며 감사를 표합니다.
"감사합니다! 뱀파이어님!"
어느새 손톱을 보면 엘리의 손톱도 끝단이 잘려 깔끔하게 다듬어져 있습니다. 생살을 찢어발기는 손톱을 자르기는 쉽지 않을텐데 마모가 진행된 끝단이고 그리 많이 자른 것도 아니기에 가능했던 것 같지만... 그래도 소름돋는건 어쩔수 없습니다. 그래도 소름돋지 말라고 당장 뱀파이어 당사자인 엘리자벅스 바토리 블라드 체페슈가 들으면 코웃음을 칠만한 헛소리를 늘어놓습니다.
"자, 이제 이걸 빻아볼까...아니면 심어볼까..."
아무튼 엘리가 돌아서면, 이번에는 책가방을 멘 이가 동전이 든 모자를 든 채 엘리에게 구걸 바가지 내미는 거지마냥 내밉니다.
"이번에 전공서적 공동구매를 진행하는데 돈이 부족해서요... 학술 발전을 위해 염치 불구하고 한 푼 부탁드릴수 있을까요? 내키지 않으신다면..."
>>735 쫑긋쫑긋, 페로의 고양이귀가 헬렌의 이야기를 듣고 파닥거리더니 고개도 귀를 따라 파닥거립니다. 페로는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주워들은 지식과, 그래도 용병 일을 먼저 시작하면서 주워들은 경험을 바탕으로 서쪽 늪지에 대한 정보를 이야기해줍니다.
"네에. 아가씨. 서쪽 늪지는 그... 진주 늪지라고 해서 냇가진주가 서식하는 데거든요. 그, 저 멀리 검은 숲의 냇가진주보다는 조금 못해도 돈이 되는데... 최근에 여기에서 식인게랑 고블린 같은게 갑자기 준동해서 여길 소유한 바르부트 부인이 조사단을 꾸리고 있대요. 그래서, 아가씨는 특이한 재능이 있으니 돈은 좀 못해도 대접은 잘 받을 거에요. 그리고, 그..."
페로는 헬렌이 쓰는 특등실의 방음 성능도 못미더워 조용히 속삭입니다. 그럴 만한 내용입니다: 바르부트 부인은 어지간한 귀족도 찍어누를 떼돈을 벌었는데 계급이 못 따라가는 요즘말로 '자본가' 나쁜말로 '졸부' 냉정한말로 '평민'이라 귀족과 식사하는 등 격식을 높일 기회를 동경한다네요.
"...그러니까 뭔 말인지 아시죠? 천탈러어치 면죄부를 말 한마디로 갚는다는 말이 있잖아요. 아가씨라면 사교도 배웠으니까 잘 할 거에요. 그런데..."
...쫑긋쫑긋, 페로의 귀가 낮게 깔리고 페로는 신발 속에 숨겨놨던 주머니칼을 꺼내 펼칩니다. 그새 세로로 쭉 째진 그녀의 눈동자는 문 너머를 노려보다 이내 문 쪽으로 달려가 문 경첩 방향, 즉 문이 열리면 자연스레 침입자의 사각이 되는 쪽에 몸을 숨기고 주머니칼을 위로 겨눠 언제라도 성인 남성의 목에 휘둘러 찌를 수 있게 준비합니다. 암허슈트도 헬렌의 어깨에 손을 얹어 등골을 전율로 절여버립니다.
@@>>738 확실히 페로의 말을 들어보니 그곳으로 가는 게 나아보이긴 한다. 식인게랑 고블린 같은 거라면 정령이 말을 이해하지 못해 학살이 된다고 한들 문제가 될 것 같지도 않고. 바르부트 부인과의 친교를 통해 이득을 취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물론 귀족의 체면이라는 것도 있겠지만 사실 돈 앞에서 체면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렇게 페로와 대화를 하며 다음 목적지를 구상하고 있는데 페로, 그리고 암허슈트의 반응이 날카로워진다. 등골에 전율이 흐르며 헬렌은 몸을 딱딱히 긴장시키고 허리와 어깨를 더 편다.
“밖에 누군가요. 할 말이 있다면 들어와서 얘기하시죠.”
다행히 등허리에는 단검 하나를 차고 있었다. 페로와 암허슈트를 믿고 문 너머의 사람에게 존재를 알고 있음을 알린다. 암허슈트가 있으니 기습을 당할 염려는 하지 않는다. 헬렌이 눈이 날카롭게 문 너머를 향한다.
저의 그러한 동작이 이어져 맺어졌을 때, 저의 피가 지팡이에 떨어지는 그 순간에 저의 시야의 모든 것은, 몰려오는 폭풍과도 같은 어둠에 그 자체에 삼켜지듯이 감싸여 가려졌지만 일순간의 정적에서 저는 거기서 보았어요. 그 속에서 회색을 띈 빛이 아닌 빛을 지닌 존재가 있어요 위협적인 가시로 덮인 회색의 장미 꽃. 신비롭다고도 할 수 있을 그 모습에 어쩐지 저의 마음은 이끌림 자아내었어요
"그 모습을 저의 눈에 담게 되었네요, 저를 생각하고 위해서 하는 말씀이시니 그렇게 해야 하겠지요"
저는 머리의 쓰다듬을 그대로 받으면서 동시에 제 앞의 그 얼굴을 향하여 양 팔을 들어올려 손길을 뻗어 보이며 닿아보려 하면서도 곧이어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희미한 미소가 섞인 채로 저는 담담히 눈을 감아 보았어요
그리고 들여오는 그 소리는 사냥한 짐승을 먹기 위해서는 거쳐야만 하는 과정으로 그 육체를 해체하는 과정을 연상하게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아요. 왜냐면 실제로 손질은 이렇게나 선명하고 과장되게 울리는 소리를 만들어 내지는 않으니까요. 회색을 품은 존재는 분명 소리조차 속여볼 수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이겠이요. 지금부터 할 것에 비하면 그것에 소모할 힘 같은 것은 낭비와 무의미한 행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니까요
어둠 넘어에서 넬루의 비명소리가 들려왔어요. 그녀에게는 미안하게 되었네요. 그래도, 다행인 점이 있다고 한다면 그녀는 충격을 이겨낼 만큼 강한 마음이 있을 것이라는 정도이겠지요
>>740 똑, 똑, 똑... 문을 세번 노크하고 문 너머의 상대가 조심스레 문을 엽니다. 문을 열면... 헬렌이 무엇을 예상했건 간에 정말로 예상과는 다른 이가 문 너머에 보입니다. 화려하고 멋들어진 옷을 입고 그 위에 흉갑을 걸친 신사가 안을 슬쩍 보더니 옆으로 비켜서고, 옆으로 비켜서면 단정하게 차려입은 척 봐도 높은 직위의 행정관이나 입는 옷을 입은 젊은 여성과, 그 여성 뒤에 있는 경비병들이 눈에 띕니다. 신사는 레이피어를 차고 있고, 경비병들 역시 칼과 철퇴 등 다양한 무기로 무장하고 있으니 암허슈트의 경고가 틀린 건 아니었습니다. 젊은 여성은 앞으로 나오더니 고개를 꾸벅 숙입니다.
"무례에 사과드립니다. 헬렌 이블린 로렌스 백작 영애님. 저는 은광과 그 주변 마을 관리를 모렐 남작님께 위임받은 서기관 예멜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런, 은광을 이야기하는 걸 보니 설마 따지러 온 걸까요?
"...최근 영애님의 탐사를 통해 해당 은광맥에서 유황 광맥과 수맥이 존재함이 입증됨에 따라, 사정청취 후 발견자에 대한 포상 등 적절한 조치를 밟고자 방문케 되었습니다. 곧 떠날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들어서. 모렐 남작님께서 직접 찾아뵙고자 하셨으나, 현재 남작부인께서 난산을 겪으신 후라 경황이 없으신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다행히도 아니군요. 다만 페로한테는 다행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영애님께서는 백작가 규수이신만큼 온건하고 이성적인 대화와 사교의 예를 아실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으나... 현재 동행하고 있는 이 펠리네 수인 시종도 그러할지는 심각하게 의문이 듭니다. 그러므로, 조사가 진행될 동안만 저 시종의 무장 해제를 명할 것을 요청드립니다."
서기관은 그렇게 말하고, 옆에 서 있던 신사는 당연하다는 듯 문간에 숨어있던 페로에게 손바닥을 탁 펼쳐 페로에게 무기를 내놓으라고 하는군요... 다른 사람이라도 이랬을지, 아니면 페로가 펠리네 수인이라 이 모양인지.
>>741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을까요. 아니면 얼마 지나지 않았을까요? 곰의 비명은 힘없이 잦아들다가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들리지 않았고, 넬루의 공포에 질린 숨소리만 가끔씩 들려옵니다. 아앨라나의 귀를 가득 채운 것은 철퍽, 철퍽, 하는 고기를 발골하고 ㅓㅇ형하는, 인간이 곰 앞에서 듣기는 힘든 소리들뿐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가말라시엘은 아앨라나에게 눈을 떠도 된다고 허락합니다.
"이제 눈을 뜨셔도 됩니다. 사도님."
그리고 어둠 속을 헤매던 아앨라나의 시선이 다시 빛을 맞이하면... 빛은 아앨라나에게 붉은색으로 물든 숲을 보여줍니다. 분명 곰이 있었을 자리는 웬 핏덩이가 좀 걸린 커다란 갈비뼈 하나만 떨어져있고, 그 갈비뼈를 중심으로 사방의 나무와 수풀에 피가 잔뜩 묻어있습니다. 그 나무에는 노란색의 지방이 엉겨붙어 있거나... 힘줄이 있거나... 그나마 알아볼 수 있는 건 눈알 정도군요... 그리고 다른 쪽을 보면, 허어억, 흐으윽, 하면서 벌벌 떨고 있는 넬루가 보입니다. 넬루는 창을 꼭 껴안은 채 전의를 상실해서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아앨라나가 다시 앞을 보면...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도님."
...얼굴도, 피부도, 눈도, 코도, 귀도, 입도 없이, 오직 검은색의 연기로만 이루어진 기이한 형체가... 아앨라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것에는 어떤 실체도 없지만... 그녀는 그 흐름에서 본능적으로 얼굴을, 표정을, 감정을 읽어내고, 가말라시엘이 자신을 치하하고 있음을 눈치챕니다.
"옛날에는 굳이 이럴 필요도 없이 자유롭게 바깥을 돌아다녔는데! 그러다가 너무 나댄 놈이 있으면 이렇게 손도 좀 봐주고 말입니다. 뭐어, 그래도 절 믿고 도와주신 사도님의 뒤통수를 칠 순 없으니 이제 들어가야겠지요. 하지만... 다음 번에는 좀 더 부탁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하더니, 가말라시엘은 아앨라나의 눈 앞에서 형체를 잃고는 지팡이 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744 페로는 신사의 펼친 손바닥을 탁 쳐내더니, 경비병들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와 헬렌 뒤에 섭니다. 그리고 특유의 유연한 온 몸을 흐느적거리며 해파리마냥 나풀거리더니 베ㅡ하고 혀를 내밀며 남작의 부하들을 도발합니다. 이 사회는 냉혹한 계급과 인종차별이 엄존하는 페로는 그걸 피할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들도 다르지 않죠. 행정관은 옷매무새를 다듬더니 일단 사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식사 시간을 방해한 것은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동행한 고양이... 아니, 부하분도 역시 영애님의 높은 안목으로 잘 뽑으셨을 텐데 감히 의심한 점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희에 대한 첫 인상이 좋지 않으신 것과 별개로, 여기 왔으니 해야 할 일을 하겠습니다."
...뭐... 그렇다네요.
"헬렌 영애님께서 은광을 점거한 도적을 소탕하기 위해 몸소 나서주신 용단은 감사드리고, 그 과정에서 새 수원과 유황 광맥을 발견하신 공로 역시 감사드리나... 그 과정에서 은광이 최소 1년 이상의 복구 공사를 요하는 수준으로 파괴된 것에 대해 남작님께서 깊은 유감을 표하셨고, 이에 대해 적법한 절차에 따라 배상을 탄원하는 바입니다."
야수가 울부짖는 소리는 얼마가지 않아서 줄어들면서 곧 사라졌어요. 거기서 들려오는 소리라고 한다면 넬루의 목소리가 그녀가 내쉬는 가냘픈 숨소리와 마치 살덩이들을 일부러 과격하게 소리를 내며 찢는 듯한 것이었어요. 토끼 같은 것을 손질하는 것과 다르게 고기를 썰어내는 것에도 이렇게까지 들려오는 것은 묘하네요
그래서 저는 가말라시엘 님의 그 말에 감았던 두 눈을 서서히 떠 세상을 바라보기로 했어요. 그러면 숲은 붉게 물들어 있었어요. 주위를 둘러보면 독특한 취향이 없는 이상 불쾌하다고 할 수 있을 거에요. 저에게는 그 뿐이네요. 이 색들은 빗방울이 씻겨 줄 것이고 남겨진 부스러기들도 숲의 생물들이 가져가 줄 거에요. 그렇게 하면 희미한 흔적만 남겨지게 되고 이후에는 그 조차 남지 않을 거에요
넬루의 상태가 너무 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녀에게 거리를 좀 두라고 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아무것도 보지 말라고 부탁해야 했어요. 아! 문뜩 떠오른 생각이 있어요. 그녀가 끔찍한 기억으로 고통 받는다면 그 기억을 지워주는 걸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녀의 상태를 좀 더 지켜보아야겠어요
"서로 돕기로 했으니까요. 저는 듣게 되었고 상황도 그렇게 되었으니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해보았어요"
저는 가말라시엘 님이 저에게 그렇게 말해주시는 것에 저는 눈웃음을 지어보이고는 그리 대답해주었어요. 어둠으로 채워진 안개와도 같은 그 형상으로도 저는 알 수 있었어요. 전부터 함께 함에 있어 얼굴은 없었기에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니에요. 다른 때보다도 기뻐하고 있음을 느껴지고 알 수 있다는 것이에요
"서로를 향해서 믿어주고 그에 맞는 행동을 이어간 것처럼 이후에도 그리해야겠지요"
이어지는 가말라시엘 님의 그 말에 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리 말했어요. 과거에는 이런 상황이 몇 번이고 있게 되었던 것일까요?
그렇게 해서 이제 저는 한 때 흉포한 야수가 있었을 자리에 남겨진 피의 웅덩이에 다가가 보았어요. 야수의 눈을 차지하고 있었던 그 묘한 마석도 같이 파괴된 것일까요? 좀 더 둘러보거나 아니면 가말라시엘 님에게 물어볼 수도 있을 거에요
>>746 '항상 감사합니다. 사도님. 그동안 저를 주웠던... 아니, 저를 만났던 많은 사도들 중에 아앨라나님이 가장 친절하고... 가장 이성적입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아앨라나는 울고 있는 넬루를 뒤로 한 채 곰...이었던 피웅덩이에 가까이 가봅니다. 가말라시엘이 개박살냈을 그 곰에게서 유일하게 남은 것은... 불길하게 빛나던 그 마석뿐입니다. 그리고 그 마석은 닿는 것들을 사라지게 만드는 건지, 아니면 뜨거워서 핏방울을 증발시키는 것인지, 덩그러니 놓여진 갈비뼈 위에 맺힌 핏방울이 뚝뚝 떨어질 때마다 치이이이... 하는 소리를 냅니다. 그리고 앨리스의 아래에서 수학한 아앨라나는 이 마석이 품고 있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정말로 불길한 기운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이미 드레인을 시도할 때부터 정말로 보통 마석이 아니란 건 이미 감지했지만 말입니다. 일단 눈으로 보아서는 이 정도가 한계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욱... 욱... 우웨에에에엑..."
숨 넘어가는 소리에 뒤를 바라보면, 공포와 역겨움을 참지 못한 넬루가 구토를 하고 있습니다. 만약 아앨라나가 세상사에 좀 덜 '초탈했다면' 가말라시엘에게 대체 뭔 짓을 했길래 애가 저 꼴이 났냐고 따졌을 수도 있을 정도로 심한 꼴입니다. 넬루는 어떻게든 제정신머리를 유지하려고 하지만 잘 안 되는 모양입니다. 가말라시엘은 흠... 하면서 그답잖게 눈치를 보더니 말합니다.
"베스니, 그 말 많은 음유시인이랑은 다르게 저건 기억을 지워주는 게 예의 같은데 말이죠." // 미안혀 어제 기절잠했다...
@@>>745 들어와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했더니 역시 제게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하러 온 것이 맞았다. 하긴 그러니까 저렇게 완전 무장을 한 채로 무기를 빼앗으려 했겠지. 내가 수틀려서 공격할 것을 대비했던 것일지도 모르고.
이런 상황에서 정령들이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것에 헬렌은 그래도 안도감을 느낀다. 게다가 바바 페흐까지 나타났으니 그 도움을 받는 것도 좋겠지만....... 어쨌든 두려움이나 공포심으로 쫓아낸다고 하더라도 다시 찾아와 귀찮게 할 것이 뻔한 느낌이라 헬렌은 로지의 도움을 받아 논리로 박살내서 내보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뇌를 과하게 주물러 과부하가 오는 느낌은 정말 싫지만.........
“후....... 실례할게요.”
빡침이 느껴지는 한숨을 내쉬며 헬렌은 파이를 씹어 삼키고 꿀을 마셨다. 그리곤 로지의 도움을 받고자 한다.
>>748 처음 파이를 먹었을 때는, 그리 달콤하다는 생각은 안 듭니다. 통밀을 거칠게 갈아 만든 밀가루에서는 껍질의 거친 입자가 씹히고, 호밀을 많이 넣었는지 시큼한 맛이 납니다. 그 거침과 시큼함을, 위에 뿌려진 약간의 설탕과 알알이 박힌 건포도가 혀에 닿으며 느껴지는 달달한 느낌이 보완해줍니다. 이건 싸움을 위해 먹는 것이고, 헬렌은 백작령 가장 후미진 마을의 마굿간에 묶인 개돼지 앞에서 격식을 차리면 차렸지 저 쌍놈들한테 보여줄 격식 따위는 없다는 생각으로 우격다짐으로 씹어 삼킵니다. 그냥 먹어도 딱히 나쁘지 않을 맛이었고, 싸우기 위해 먹는 것치고는 꽤 괜찮은 맛이군요.
'음, 좋아. 좋아...'
'로지. 아가씨 머리는 차분기관이 아닙니다. 그것만 알아두십쇼.'
'암허슈트 할배는 노망이라던지, 치매라던지 그런거 안 걸려요?'
그리고 헬렌은 옆에 놓여있던 꿀과 시럽의 뚜껑을 땁니다. 그리고는 그 걸쭉한 꿀과 시럽을 한번에 들이마십니다. 과유불급, 그 달달함에 혀가 얼얼해지다 그 얼얼함이 머리까지 올라오고, 목구멍에서 토기가 올라올 것 같지만 헬렌은 무시하고 우격다짐으로 삼킵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행정관이나 페로나 갑작스런 돌발행동에 당황하고, 페로는 헬렌의 몸에 손을 댈 수도 없는데 그대로 내버려둘 수도 없어 우왕좌왕합니다.
"아, 대장님... 아가씨... 아, 뭐라 해야 돼... 아무튼 그거 그렇게 먹으면 토해요!"
토하라죠. 헬렌은 그렇게 마시고 나서... 로지를 돌아보고, 로지는 웃으면서 앞으로 나섭니다. 그리고, 잠시 헬렌의 뇌를 빌립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로지가 헬렌에게 이야기하는군요. 로지는 논리의 정령이므로, 논리의 허점을 찾아줄 순 있지만 싸우는 건 헬렌이 해야 한다는 것 같습니다.
'광산에서처럼 제가 다 하려고 들면, 아마 아가씨께서 논쟁하다가 중간에 쓰러지실 거에요. 그리고 저는, '논리'의 정령이지 '언쟁'의 달인이 아니고요. 상대방의 말에 섞인 허점과 오류를 집어줄 테니까, 아가씨는 그걸 활용만 하시면 되요. 일단... 백과사전의 정령. 너 나랑 일 같이 해야 돼.'
로지가 꿀을 다 마시고 탁자에 올린 헬렌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개자, 팟! 하고 헬렌의 머릿속에서 여러가지 허점들이 스칩니다.
'1년 이상의 복구 공사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면 분명 설계를 마쳤다는 것인데, 어떻게 하루도 지나지 않아 조사와 설계 및 공사비 산정을 마쳤는지?'
'만약 헬렌이 광산을 파괴한 것에 대해 복구비를 부담한다면, 헬렌이 발견한 유황 광맥이나 신규 수원에 대해서는 헬렌의 지분을 인정할 것인지?'
그 외 기타 등등... 논리의 정령이 도와주고 있으니, 한번 싸워봅시다... 아마 쉬울 겁니다.
저는 가말라시엘 님에게 그렇게 듣자 약간 우쭐해진 기분으로 되묻듯이 말했어요. 그 말에서 처럼 여럿 사람들을 거쳐오면서도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좀처럼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럼, 그 제가 알지 못하는 과거는 얼마나 많은 세월을 보내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저는 피의 웅덩이에서 제가 원하던 것을 찾게 되었어요. 마석은 파괴되지 않았어요. 그런 일이 있었지만 거기에 남겨져 있었어요. 지금 이렇게 보이는 것도 그렇고 이대로 줍는 것은 좋은 선택은 아니겠지요. 그러니까 뭔가 다른 방법이 있을 거에요. 이런 독특한 마석이라면 계속 살펴보면서 이리저리 연구도 해보고 제대로 가공도 해서 사용해보고 싶어져요. 마녀 님께도 보여주고 싶어요. 저에게 무엇을 말해 주실까요? 기대되네요~
"이것을 안전하게 가져가기 위해서 괜찮은 방법이 있을까요?"
저는 피를 머금은 마석을 내려다 보면서 가말라시엘 님에게 물어보았어요. 지금 생각나는 방법이라고는 다른 물체로 대신 감싸서 직접 접촉을 최대한 피하면서 옮기는 것 정도겠네요. 보아서는 어쩌면 피에 담그는 것이 괜찮을까요? 아니면 나쁜가요?
"그래요, 그녀가 크게 괴로워 보이니 도와주어야겠어요"
곧이어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이번에는 넬루가 구토까지 하고 있었어요. 제가 그녀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는 전사로서 다양한 경험을 했을 거에요. 그런데도 이것은 그 정도로 심하다는 거겠지요. 저는 거들어 말하시는 가말라시엘 님의 말에 맞춰 저는 그렇게 대답했어요
>>750 "상황이 긴급함에 따라 건축 길드의 마스터를 초빙하여 대강의 견적을 산출했습니다. 자신의 견적이 배상금 추산에 쓰일 수 있다는 것을 고지받자, 길드 마스터는 극히 '보수적'으로, 즉 영애님께 매우 유리하게 공사비용과 공사 기간을 계산했습니다."
'만약 본고를 읽고 있는 귀하가 농노가 끌고 가던 당나귀를 죽였다면, 간단하게 마굿간에서 당나귀 한 마리를 꺼내 그 평민에게 주거나 당나귀 한 마리를 살 돈을 주면 될 일이고, 귀족이 평민에게 입힌 손해에 관하여는 굳이 글을 쓰고 읽을 필요도 없다. 역설적으로, 농노는 가진 것이 없기에 입을 피해도 없는 이들이니. 그러나 귀족인 귀하가 다른 귀족의 재산을 손괴했거나, 또는 반대로 다른 귀족이 귀하의 재산을 손괴했다면 그 때부터는 먼저 침착해야 한다. 파손된 재산의 성질을 파악하고, 파손된 재산과 관련된 전문가를 양측이 고용해 그 파손의 정도를 정밀히 검토한 후, 양측의 검토 결과에 따라 구체적인 배상액을 제시할 수 있다. 이때, 손해액 감정을 위해 전문가를 초빙한 비용은 관례상 피해를 가한 쪽이 부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출처: 명예로운 귀족을 위한 제국 손해배상 실무'
백과사전의 정령이 그답지 않게 타이밍 좋게 거들고, 굳이 로지가 뭐라 말을 얹을 것도 없이 헬렌은 행정관의 말을 받아칩니다. 헬렌에게 유리하게 계산하는 것은 헬렌이 고용할 손해사정 전문가, 즉 헬렌이 부를 광업 전문가나 건축 전문가가 해야 할 일이지 그 쪽이 해야 할 일이 아니며, 즉 헬렌은 남작이 실제로는 대규모의 금액을 부풀린 다음 헬렌에게 유리하게 계산했다는 속된 말로 '시장 장사치' 같은 속임수를 썼다고 의심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헬렌 영애님께서 소유하신 땅에서 누군가 금괴를 캐낸다면, 그것의 소유권은 헬렌 영애님께 있지 그 사람에게 있는 건 아니지 않겠습니까?"
이 부분은 로지가 나섭니다. 논리를 대변하는 정령이 '개'논리를 들이대는 것은 좀 고통스럽다지만... 지금의 헬렌은 '언쟁'을 하고 있는 것이지, 자로 잰 듯한 철저한 논리학 수업 시간을 듣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로지는 개논리도 논리고 무논리도 논리라는 심정으로 헬렌에게 이야기하려다 머뭇거리는데, 암허슈트가 옆에서 나타나 거듭니다.
'하지만 영애님처럼 명예를 아는 귀족이시라면, 그 발견자에게 금괴를 전부 다 주지는 않더라도 그 노고를 공치사 몇 마디로 끝내지 않고 금괴 10개를 발견하면 한두개 정도는 떼어주는 식으로 갚겠지요. 하지만... 상대가 모시는 남작이란 인간은 그렇지가 않은... 돼지인가 보군요?'
그러자 로지는 씩 웃으며 이야기합니다.
'저 노인네 쓸데가 다 있네. 그리고 한 가지 더... 비유는 상황을 똑바로 맞추고 하라고 그래요. 남의 땅에서 땅을 막 파제낀 거랑, 은광에 자리잡은 도적들을 몰아내고 마을에 평화를 가져오겠다고 들어갔던 헬렌 아가씨의 행동이 어떻게 똑같은 것으로 비유가 되는 건데요?'
“제가 해야할 일을 대신 해주셨다니, 과연 그 결과를 제가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이렇게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건 없다고 생각되는데. 지금 짧은 시간에 날림으로 처리해 저를 곤혹스럽게 만들려는 것 같은데요. 게다가 제가 고의로 한 것도 아니고 남작님의 ‘영지민들’을 위해 사기꾼들을 몰아내고 괴물을 죽이기 위한 과정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말예요.”
헬렌은 손가락으로 뺨을 두드리며 여유롭게 서기관의 말에 답한다.
“비유가 잘못 되었네요. 아무것도 없는 땅인 줄 안 곳에서 누군가가 금이 있다는 것을 알렸다면 그 사람에게도 지분이 있는 것이고, 그 금을 캐는데 누군가가 돈을 투자했다면 그 사람에게도 지분이 있는 것이겠죠. 이번 상황에서는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는 들개 무리를 몰아내는 과정에서 우연찮게 파헤쳐져 금이 드러났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지요.”
헬렌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쨌든 이렇게 말싸움을 하는 것도 지겹네요. 좋은 일 하려다 죽을 뻔 했는데, 이렇게 위험한 광산을 방치한 남작님이 오히려 저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했다며 아버지께 편지를 붙여야겠어요. 그 광산이 폭발 위험성이 있는 곳인줄 알았다면 들어갈 일도 없었을테고 로렌스가의 장녀이자 소중한 정령사인 제가 죽을 뻔하고 이렇게 다칠 일도 없었을텐데... 저는 이에 대해 좋게 넘어가려고 했지만 원하시는 게 서로의 손해를 따지고 들자는 것이라면 그렇게 하도록 해요.”
>>751 아앨라나는 마석을 헝겊으로 감쌉니다. 그러니 그 불길하던 기운도... 고작 이 헝겊만으로 가려지는 느낌입니다. 적어도 느낌은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마 아앨라나는 다른 장소에서, 맨눈과 맨손보다 좀 더 적절한 도구와 숲속보다 좀 더 나은 조사환경 등이 갖춰지면 아앨라나 스스로 이 마석의 성질과 정체를 조사해볼 수 있을 겁니다. 아니면, 곧 마녀님의 집으로 돌아가니 그곳으로 가서, 앨리스 님에게 물어보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불치하문이라 하여 모르는 것을 물을 때는 아랫것한테 물어도 부끄럼이 없어야 군자라는데, 하물며 앨리스님에게 아앨라나가 물어보는 것에 무슨 거리낌이 있을까요. 아마 인신공양에 대한 좋은 설명을 준비한 뒤의 이야기겠지만 말입니다.
"...우욱... 우으으... 기억을... 지워요?"
넬루는 아앨라나를 빤히 바라봅니다. 눈동자는 흔들리고, 인상은 완전히 구겨졌고, 그녀의 두 눈은 의심으로 떨립니다. 혹시 기억을 지워주겠다는 뉘앙스의 말이 좀 이상하게 들렸나 싶지만, 이내 나오는 말은 전혀 다른 핀트를 짚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그게... 되는 거에요?"
넬루는 잊을 수만 있다면야 잊고 싶습니다. 누구 말마따나 안 본 뇌, 안 본 눈 사고 싶은 거죠. 하지만 이 세상 상인 누구도 안 본 뇌와 안 본 눈알을 넬루에게 팔아서 갖다 박아줄 수가 없는데, 아앨라나는 그래도 그 마녀의 제자라니 가능할 것 같기도 하고 아무리 그래도 너무 나간 것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753 결국 언쟁은 기세 싸움이고, 헬렌은 자신이 멋모르고 뛰쳐나온 아가씨가 아니라, 어느 정도 머리에 뭘 넣고 나온 아가씨임을 증명한 이상 상대는 고작 남작의 대리를 받는 평민의 신분으로 로렌스 가의 백작 영애라는 신분을 찍어누를 수도 없으니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젊은 행정관의 표정은 헬렌이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또박또박 반박하고, 그렇다면 직접 계산해보자, 바로 백작령에 편지 보내보겠다면서 당당하게 나오자 한숨을 쉽니다. 한숨을 다 내쉬자 하하 웃으면서 말을 꺼냅니다.
"역시, 한 마디도 안 지시는군요. 그러셔야죠. 그러셔야..."
잠깐, 이 행정관이랑 병사들. 뭔가 이상합니다. 아무리 백작가의 영애가 정식 백작 취급은 아니라지만,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기가 죽는 기색이 없습니다. 오히려, 더 당당하게 나오니 뭔가 무섭습니다. 헬렌의 허리에 타고 오르는, 계급이고 뭐고 죽음을 각오하고 덤벼드는 아랫것의 하극상에 대한 공포가 밀려오는 것을, 암허슈트가 헛기침 소리로 안심시키면서, 그녀를 포함한 모두의 시간이 참 느리게 흐릅니다.
'아가씨. 생각하신 게 맞습니다. 이 녀석들, 연기 학원을 다녀왔는지 지금까지 잘도 아가씨를...'
행정관이 뒤로 몇 걸음 물러나자, 신사가 레이피어를 찬 검집에 손을 뻗어 손잡이를 당기고, 그 가늘고 긴 은빛의 비밀을 드러내는 순간, 헬렌의 뒤에 숨었던 페로가 어느새 빠져나와 탁자를 온 힘을 다해 밀어뜨리고, 헬렌을 위한 포도주 잔과 페로를 위한 맥주잔이 공중을 빙글빙글 돌며 붉은색과 검은색의 일렁이는 파도가 되어 하늘을 칠합니다. 탁자에 뒤덮이는 헬렌의 시야 앞에 보이는 건 본색을 드러낸 경비병들의 고함치는 표정과, 신사의 절제된 살의로 가득찬 표정, 그리고 피처럼 붉은 포도주를 꿰뚫고 날아오는...
"이 영지 아주 지랄이네!!!!!!!!!!!!!!"
...레이피어 끝을, 암허슈트가 헬렌과 무도회를 하듯 그녀의 한쪽 팔을 잡고 허리를 감아 피해내며 어깨를 꿰뚫었을 레이피어 끝단이 손가락만 스치고 나가게 만듭니다. 식탁이 넘어가며 와장창 하는 소리와 함께 달려들던 경비병들의 기세가 잠시 무너진 틈을 타 페로는 주머니칼을 다시 꺼내들어 달려들고... 어느새 헬렌을 위한 특등실은 수많은 이들이 뒤엉킨 싸움판이 됩니다!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페로는 상대들이 적이란 건 확인하고는, 한 경비병이 제 목을 베려는 것을 몸을 낮춰 피하고는, 몸을 낮추자 얼굴에 지르는 무릎을 껴안고는 넓적다리를 주머니칼로 푹푹 찌릅니다. 끔찍한 비명에 경비병들의 이목이 쏠려 페로를 죽이려고 하지만, 페로는 그것마저도 요리조리 피하고는 되려 같은 편의 무릎을 철퇴로 박살내서 주저앉히고 페로의 머리통에 꽂으려던 도끼가 경비병의 관자놀이를 파고들게 만들어 서로 죽이게 만듭니다. 페로는 주저앉은 상태로 무력화된 경비병을 헬렌 쪽으로 걷어차, 레이피어를 피하며 엎어진 헬렌을 피 묻은 경비병으로 덮어버립니다.
"끄읅... 끅, 끄으으으윽..."
머리에 도끼가 박히고, 대동맥이 지나는 허벅지에 세 번이 넘는 깊은 자상을 입고, 무릎이 박살난 경비병은 아마 생각이란 걸 할 수 없을 테지만, 그 두 눈으로 자신이 엎고 넘어진 헬렌을 똑바로 쳐다보다가, 조금씩 조금씩 인간의 숨소리가 아닌 망자의 피 끓는 소리를 내면서 눈빛에 힘이 죽어갑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이 없어진 그 눈빛은 헬렌을 계속해서 바라봅니다.
한 푼, 두 푼 정도를 예상했던 구걸꾼은, 한 푼 두 푼을 넘어 열 푼 넘는 돈이, 그것도 동화의 칙칙한 흙빛이 아니라 어두운 하늘에 뜬 달처럼 밝은 은빛을 보고 눈을 크게 뜹니다. 기껏해야 동전 여럿밖에 없던 동냥바가지에 은화가 섭섭잖게 차고, 구걸꾼은 행여 자신이 잘못 보았나 구걸 바가지에 들어잇던 은화 하나를 올려 지하수로 천장에 붙은 발광 버섯에 가까이 대봅니다... 이건 분명합니다. 은색입니다.
"어떻게... 이런..."
구걸꾼은 피를 팔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의 자선을 베푸는 것을 보고는, 감사하다는 생각보다도 다른 생각이 더 앞섭니다.
"그러면, 제 피를 드시면 금화도 주시는 겁니까? 제가 죽을 정도로는 못 드리지만, 그래도 한 사흘 앓아누울 정도는 괜찮습니다...! 아니, 이게 아니지..."
하지만, 엘리의 표정에서 그냥 딱해서 주는 것임을 읽은 구걸꾼은 머쓱해하더니 고개를 꾸벅 숙입니다.
"감사합니다. 아가씨... 호르뮈셰를 가호하는, 심지어 우리 같은 머저리들도 가호하는 미네르바 정령님께서 아가씨를 기억하시길."
정령사라고 편지를 3초만에 배달하지는 못하니 그냥 허세일 뿐이지만 좀 먹힐 줄 알았는데. 결과론적으로 이들이 본색을 드러내자 헬렌은 이제야 전말을 알겠다 싶었다! 왠지 광산에 도적들이 점거해도 대책없이 방치되어 있더라니! 남작이 허수아비거나 눈이 가려졌거나 한 거 아니냐고.
결국 죽이려드는 놈들이 달려들고 레이피어에 손끝이 베이며 넘어진다. 동굴에서 보지 못했던 페로의 전투 실력을 엎어진채로 구경하다 결국 경비병이 자신의 쪽으로 넘어지는 것에 깔려버린다.
“로렌스가의 자비에 감사하렴.”
헬렌은 자신의 앞에 엎어져 죽어가는 남성의 숨통을 허리에서 빼낸 단검으로 푹 찔러 거둬준다. 아무리 곱게 자랐다고 하더라도 저를 죽이려고 했던 상대를 돌봐줄 정도로 착하진 않다. 이 시대에는 질병, 기아, 전쟁, 살육 등으로 인해 죽음이 가까운 곳이니까. 사람을 직접 죽인 건 처음이나 뭔가 대단한 느낌이 드는 것도 아니다.
제가 조심스럽게 그리 해보았더니 마석으로 부터 감도는 그 기운이 줄어드는 것만 같았어요. 거기에 당장은 큰 문제는 없어 보였고 어렵지 않게 되었으니 다행이네요. 그래도 이것만으로는 어딘지 부족해 보였기 때문에 가지고 다니기 좀 더 쉽게 해보기 위해서 저는 주변을 다시 살펴보고는 거기에서 적당해 보이는 덩쿨 줄기를 찾아보았어요. 그것을 칼로 끊어다가 천으로 감싼 마석에 둘러서 묶어보기로 할 생각 이었지요
"넬루 씨의 태도를 저는 이해해요, 세상의 어떠한 것이라도 완전하게 '그렇다' 라고 말할 수는 없을 거에요. 그렇지만 저는 그것을 해볼 수는 있어요"
그래서 제가 했었던 말에 그녀가 저에게 보여주는 시선과 행동에서 그 안에 담겨 있는 불안과 의심이 묻어나오는 그 물어보는 말에 저는 그렇게 대답해주었어요. 지금 그녀가 저를 향한 믿음이 어느 한 쪽으로 기울기 어렵듯이 저도 그녀에게 어떤 것도 확답을 할 수 없고 하지도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달라요. 저는 그녀의 머리 속을 휘젓는 나쁜 기억을 없애주고 싶고 그것을 시도할 능력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