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레는 레이스에 도전하겠다 말했던 때부터 여러 코치와 전문가들의 지도를 받아 왔다. 트레센에 들어갈 준비를 하기엔 조금은 늦고 빠듯했던 시기, 최소한의 실력과 신체 조건을 맞추기 위해 한동안은 모든 생활과 일정을 체계화된 계획 하에 보냈던 기억이 있다. 그때에 비하자면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분명 마음 편한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렇게 해도 될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렇게 시간을 낭비해도 괜찮은 걸까. 이렇게 헤맬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효율적인 단련을 해야만 하는데, 누구라도 좋으니 명쾌한 지시를 내려 주었으면 좋겠다⋯⋯. 몸을 움직이지 않는 때엔 그런 생각이 하릴없이 들어 오곤 한다. 어쩌면 트레이너가 말한 ‘성찰’의 범주엔 이런 초조감이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불안과 고민은 여전히 늘어진 해 질 녘 그림자처럼 달라붙어 있지만 에니그마로부터 비슷한 고민을 엿본 것만은 기뻤다. 늘 완벽하다고만 생각했던 에니그마에게도 어려운 것이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다른 이유에서도. 에니그마도 자신도 그 감이란 걸 모르면서도, 달려나가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노도와 같은 기세로 앞질러가는 모습을 보자 단 하나의 생각 외엔 모든 것이 흐려졌다. 오직 저 뒤를 쫓고 싶었다. 그래서 달렸다. 벌어지는 한계도 걱정도 모두 잊고서. 그때의 열중은 강렬했던 만큼 그 부재마저도 선명한 빈 자리를 남겼다. 그날의 감각과 직감을 다시금 붙잡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나다레는 에니그마의 반듯한 미소를 묵묵히 응시하다 트랙의 저편으로 눈길을 돌렸다.
“적어도 4주 휴식은 지키고 있어. 괜찮아.”
트레이너와의 합의하에 계획한 일정이었지만, 최소한의 휴식은 가능하다곤 해도 이 주기로 출주를 반복하는 전제라면 다소 촉박한 일정이다. 그렇기에 이번 경기 뒤에는 반드시 지금까지보다 긴 휴식기를 가져야 한다며 타이르던 트레이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했다. 트레이너는 아직 기회는 많으니 조바심 내지 않아도 된다 말해 주었으나⋯⋯ 그 말은 즉, 지금 이기지 않으면 앞으로 몇 달 간은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제게는 이번 레이스에서 이기는 것이 최선이다. 저편을 망연히 바라보던 눈길 제자리로 돌아왔다. 무언가를 결심하듯 푸르른 눈동자 느릿하게 감기고 뜨였다.
보통의 십대들은 친한 친구가 레이스를 앞두고 있다 말했을 때 응원하거나 힘내라는 말을 건네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다레에겐 그토록 살가운 사교성이 없었던고로, 그 대신 전해진 것은 뚝뚝 끊어지는 짤막한 말 뿐이었다.
“⋯⋯2주 뒤, 츄쿄 1400m. 코스는 다르지만⋯⋯ 어때?”
중요한 구성 성분이 군데군데 빠져 불친절하기 그지없는 문장이다. 짐작하자면 앞은 자신이 곧 나갈 레이스의 이야기이고, 뒤는⋯⋯ 당연하지 않은가. 같이 달리잔 뜻이다.
에니그마는 나다레가 마음에 들었다. 그녀의 심성이나 귀여운 외관 역시 그 마음의 한 축을 담당한 것 역시 사실이지만 그런 것 보다도 그녀의 안에 내재되어 있는 끝을 알 수 없을 정도의 강함에 본능적으로 매료 되어 있었다. 태어나서 단 한번도 누군가에게 앞을 양보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에니그마에게 있어 나다레는 처음으로 만난 강적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어쩐지 묘한 느낌을 풍기고 있다는 것을 어느정도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이유가 자신과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작은 열망이었다. 대지를 박차고 울리는 발굽 소리에 맞춰서 나란히 선 은빛의 그림자. 레이스란 수도 없이 죽어가는 작업이다. 레이스에는 기사회생의 한 수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죽음을 조금이라도 뒤로 미루는 수와 지금 바로 죽는 수 뿐이다. 에니그마가 레이스에 대해 좋지 않은 시선을 가지고 있던 것 역시 이것 때문이었다. 아름다운 눈의 소녀가 남긴 그 손톱자국이 그녀의 마음에 불을 지핀 이후에도 그녀는 필사적으로 레이스를 하면서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수를 찾아서 수천 수만 번의 죽음을 들여다봤다.
한번의 부상으로 생애의 목표를 잃어버릴 수 밖에 없던 이들의 숫자가 하나씩 늘어갈수록 그녀는 뛰어가는 것이 두려웠었다. 허나 멈출 수 조차 없었다. 적이 없었기에.
그곳에서 멈춰버리는 순간 자신의 삶의 가치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기에.
그녀는 절망 속에서 계속 죽어갔다. 절망에 절망을 더할 때마다 마음이 꺾이려 했다. 나다레 스노우와 만나기 전까지는. 에니그마에게 있어 그녀는 이미 또 하나의 우상이 되어있었다.
“한달에 하나 꼴인가요…”
정상적인 템포는 아니었다. 에니그마 본인에 이르러서는 아직 데뷔전 이후로 제대로 된 레이스는 하지도 않았으니까. 물론 에니그마 역시 나다레 수준의 우마무스메가 클래식조차 뛰지 못하고 op급 레이스를 전전하게 되는 것은 바라지 않았기에 그 이상을 캐묻는 것은 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한계가 아슬아슬한 수준의 출주기록. 그마저도 주니어는 이제 3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너무 여유를 부리기에는 촉박했고 그렇다고 급해지기에는 여유롭다고도 할 수 있는 정도. 다만 클래식 신청을 감안한다면 적어도 이번에는 이겨야만 했다.
“추쿄의 1400m… 에에 좋아요. 마침 할 일도 없던 참이라 잠깐이지만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역시 말을 마친 후에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추쿄, 1400m. 지금 당장 단거리를, 그것도 나다레 스노우와 병주하며 달리는 것은 조정에 악영향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좋은 기회를 발로 차버릴 수는 없었다. 다만 추쿄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최종직선전의 오르막. 나카야마나 룽샹보다는 작고 엡섬에 이르러서는 말조차 꺼낼 수 없을 정도로 부족하기야 하다만 그렇다고 그것이 편한 코스라는 뜻은 아니었다. 그 세개의 코스가 기형적일 정도로 높을 뿐.
몸을 푸는 것을 마친 그녀는 가설 게이트에 섰다. 타이밍은 언제든 정할 수 있으니 아직 조금 더 이야기할 수 있을것이라 생각한건지 여유로운 얼굴로 나다레를 바라보며 말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다레씨라면 단거리는 도주만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따라와보시겠어요?”
3번의 도전과 실패. 그러나 시기는 아직 9월, 늦지만은 않은 때다. 몇 번이고 도전하는 것은 그리 부끄럽거나 뒤떨어지는 경우도 아니다. 세상에는 데뷔전을 통과하지 못하고 끝없이 도전만 하다 잊히는 우마무스메도 존재한다. 화려한 이력을 남긴 우마무스메들조차도 처음은 보잘것없는 성적을 내는 사례도 많았고, 경험을 쌓다 시니어 시즌이 되어서야 잠재력을 폭발시키는 경우도 종종 있어 왔다. 적성을 찾지 못해서, 훈련법이 잘못되어서, 건강의 이상으로 인해, 심리적인 문제 때문에, 느린 본격화 탓에⋯⋯. 이유는 다양했고 때로는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때도 있었다. 그러니 사람들은 말하곤 한다. 너무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다고. 나다레 역시도 그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나다레 스노우’이기에 여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만은 끝내 이해해주지 못했다. 기대의 하한이 너무도 뚜렷해서, 처음으로 열렬히 사랑하게 된 것조차 가족과 배경에 밀려 의미가 퇴색되어 버리는 것이 끔찍하게 싫었는데도.
이번에도 승리하지 못한다면 한동안은 출주 예정이 없다, 그런 말은 구태여 꺼내지 않았다. 지고 나서의 만약이라는 가정은 할 생각도 없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나다레의 시선이 짧게 에니그마에게 고정되었다. 흔쾌한 승낙에 반갑다는 듯 꼬리가 살살 흔들렸다. “⋯⋯다음에는 에니그마가 달리자고 말해줘.” 하지만 그 와중에도 에니그마가 제게 맞춰주는 것이 조금 미안한지 소심한 말 슬쩍 붙인다.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는 해도 좋고 안 해도 그만이라는 여유일까. 아니면 에니그마에게도 맞붙고 싶다는 마음이 있는 걸까. 짧게나마 활기차게 흔들리던 꼬리의 움직임도 점차 느려졌다. ⋯⋯나다레는 마음 속으로 에니그마의 마음이 자신과 같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 마음이 제가 헤매는 사이에 실망해서 떠나가지 않기를.
곧이어 출발선의 안쪽, 에니그마의 곁에 선다. 시작 타이밍을 정할 수 있으니 실전과는 달리 이야기를 할 여유는 있었다.
“⋯⋯그럴까.”
그러잖아도 트레이너로부터 제안 받은 적 있던 이야기였다. 나다레로선 갑작스레 주법을 바꾸기보단 기존 방식에 능숙해지는 편이 낫다 생각했기에 우선은 거절했지만, 시도해 보더라도 나쁘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 더군다나 츄쿄는 끝자락에 가파른 언덕이 있는 코스다. 추입으로 달리기엔 다소 짧은 거리까지. 아무리 강하게 스퍼트를 건다 해도 타이밍이 조금이라도 어긋난다면 따라잡지 못하기 십상이다. 물론 단거리를 추입으로 승리한 사례도 있으나 페이스 분배와 심리전이 미숙한 자신에겐 아직 요원한 이야기겠지만.
코스에 출발 직전의 고요한 긴장감이 맴돌고, 나다레는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이다 잠자코 앞으로 몸을 숙였다.
하지 못했던 말은.
따라가는 게 아니라 앞지를 수도 있어.
그런 대답이 불쑥 떠오른 것이다. 그 호승심 넘치는 말 끝내 입 밖으로 내지는 못하고.
“⋯⋯갈게.”
다만 달리기로 보일 뿐이다. 가는 다리 속의 속근이 일순 부푼다. 시작과 동시, 퍼붓는 듯한 속도로 질주한다. 쏟아지는 사태눈의 기세와 같이.
에니그마 론도는 이번 레이스에서 진심을 다할 생각이 없었다. 아이비 스테이크스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정규 레이스라면 전력을 다해 이기는게 당연하지만 오늘은 예정에도 없던 병주훈련. 그마저도 방금 개인훈련을 시작한 나다레 스노우와는 다르게 이미 체력이 조금 빠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1400m를 상정한 레이스이니 과하게 뛴다면 지금까지의 미세조정이 어그러질 수도 있다는 판단 하에 한 일이었다.
도주로 뛰어보라고 한 것 역시 그때문. 나다레 스노우는 전형적이라면 전형적인 추입 우마무스메로 일전의 데뷔레이스에서는 마지막 코너를 도는 것과 동시에 스퍼트를 올려 끝끝내 대차로 달리던 에니그마를 코끝까지 따라잡은 파워계의 우마무스메다. 추쿄의 난점이라고 한다면 일본내 2위를 자랑하는 급경사. 그를 위한 파워트레이닝과 스태미너를 늘리는 것을 일반적인 훈련에서 중점으로 두고 있지만 나다레 스노우에게 있어서 그런 트레이닝은 필요 없을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이다.
나다레 스노우의 패배의 원인은 에니그마 역시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 같은 팀에 속한 우마무스메이기도 하니 레이스의 기록은 쉽게 찾을 수 있어 몇번정도 그녀의 레이스를 돌려보았던 것이다. 첫번째 미승리전. 무언가에 쫓기는듯 가끔씩 달리는 폼이 무너지는 모습이 있었으나 재능인지 아니면 노력의 결과인지 그런게 신경쓰이지 않을 정도로 잘 달렸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착차가 점점 벌려지기 때문이기도 했으나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괜히 그런 것을 보고 어중간한 동정심을 가지게 된다면 나다레 스노우라는 최고의 우마무스메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오만함.
그렇기 때문에 이번 레이스도 진심이 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슬럼프에 빠진 친구를 위해 적당히 달리다가 자신감을 얻게 해줄 생각이었지만.
'...빨라'
스타트가 좋았다. 두 사람은 순풍에 돛을 단 배처럼 한치의 오차도 없이 동시에 달려나간다. 선두를 차지한 것은 나다레 스노우. 그 뒤를 에니그마 론도가 1마신차로 바짝 쫓아 따라붙는다. 추쿄의 1400m는 제2코너에서 스타트 직후 백스트레치까지 오르막. 백스트레치 중반부터 제 4코너까지 내리막이 지속된다. 그 직후 직선에서 다시 오르막을 올라야하는 상당히 터프한 코스. 장거리를 주력으로 삼은만큼 에니그마 론도는 체력에 있어선 누구에게도 꿇리지 않는 굴지의 우마무스메중 하나였으나 그럼에도 오르막과 내리막이 급하게 바뀌는 코스에서는 주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일부러 선두를 내어준다. 트레센의 트랙은 제법 많은 경기를 예상하고 만들어져있어 여러가지 상황에 대비한 훈련을 할 수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그럼에도 온전히 해당 레이스장의 트랙을 재현하는 것은 이런저런 이유로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같은 1400m라고 해도 진짜 추쿄나 나카야마에 비한다면 비교적 오르막과 내리막의 급경사가 적고 발을 온존할 수있도록 잔디역시 최적화를 마친 상태. 그렇기에 구태여 앞으로 나아갈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순전히 빼앗긴 것이다. 데뷔전에서의 에니그마 론도는 아웃코스에서 시작한 그대로 그저 달렸다. 나름대로 배워왔다는 우마무스메들을 기교조차 섞지않은 달리기로 최종직선 전까지는 대차를 벌리며 고고하게 선두를 유지했던 것이다. 이치나 작전이 통하지 않는 달리기. 그렇기에 최강 후보라는 이름이 붙어진 것이다. 아무 기술도 섞지않은 초장거리 스퍼트로 달린다.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것도 잠시. 그녀는 첫 코스를 돈 직후부터 가속을 시작했다. 특기인 장거리 스퍼트. 타이밍은 최적이었기에 그대로 비어있던 인코스를 파고들어 나란히 서서 달린다. 첫 코너를 도는 것과 동시에 한번 더 가속한다면 근소한 차이지만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그녀가 이 페이스로 영원히 달린다면.
그리고 다시 한 번 가속한다. 재차 말하지만 에니그마 론도는 애초에 주특기를 꺼낼 생각이 없었다. 그저 나다레 스노우에게 자신감을 주기위한 레이스. 그렇기에 처음 생각한 것은 선입. 애초에 나다레와 자신이 처음부터 전속력으로 달린다면 같은 세대에서는 따라올 수 있는 이들이 더 드물다. 백중세가 될게 뻔하니 일부러 속도를 늦춘채 시작하려 했지만 나다레 스노우는 에니그마의 예상을 기분좋게 뛰어넘었다.
그래, 레이스는 개인전. 그것도 나다레와는 앞으로도 부딪힐 일이 더 많을 것이다. 에니그마는 마치 자신이 아끼는 인형이 영원히 망가지지 않기를 바라는 어린아이처럼 그녀를 아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보아라. 인형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자신의 곁에 설 자격이 있는 누군가였다. 함께 달리고 싶다는 생각은 우마무스메라면 가져서는 안된다.
그렇기에 부순다. 더러워진 인형이야말로 비로소 가치를 지니는 법이니. 이 정도도 따라오지 못하면, 다른 우마무스메들과 같아. 레이스에 설 자격조차 주지 않겠다.
에니그마는 달렸다. 전력을 다해 레이스의 페이스 배분따위는 이미 잊어버린 채. 마지막 코너에 들어가기전 코스 바깥에서 보고있는 다른 우마무스메들을 보고 이것이 레이스가 아니라 병주라는 것을 떠올리지 못했다면 아마 한달은 쉬어야할 정도로.
그제서야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는 버릇이 되어버린 주행법. 원래라면 이대로 자세가 무너져 땅을 굴러도 이상하지 않았겠지만 나쁜 버릇을 더이상 지워낼 수가 없었다. 텅비어있는 공간. 어둠의 장막이 내려앉은 트랙 위에서 고독만이 그녀의 친구가 되었다.
최종직선 420m. 입술을 깨문 그녀는 다시 앞을 바라본다. 그리고 옆에서 느껴지는 한기에 고개를 돌려보니
1. 에코의 캐치프레이즈 의미 오레이아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산의 님프를 뜻하는 말인데, 오레이아데스/오레아데스(복수형), 오레아스, 오리아드, 오레아드라고 부르기도 해. 메아리의 어원으로 유명한 그리스 신화의 '에코'가 이 오레이아스 중 하나야. 어떤 캐치프레이즈를 붙일까 고민하다가 이름의 에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지! 거기에 숲과 산의 요정이라는 싱그러운 이미지와 짧은 시간 동안만 울리다 사라지는 메아리의 심상을 이렇게 저렇게 엮어서 만들었어. 하지만 빛나던 시절은 찰나에 불과했을지라도 그 순간의 에코는 누구보다도 찬란했다는... 그런... 그런 이미지를 어필하고 싶었어....(표현력 떨어짐)
2. 나다레의 형제자매들은 후부키 빼고 전부 강한 곱슬! 엄마는 쫙쫙 펴진 직모였지만 유일한 예외인 후부키마저도 반곱슬이라 아빠 유전자가 많이 힘냈음... 언니랑 오빠는 펌한 것처럼 모양 잘 나오는 예쁜 곱슬이지만 나다레만 북슬북슬 뻗치는 느낌의 곱슬이야. 마치 하야히데상처럼... 시트 이미지도 이 정도면 꽤 덥수룩한데 이것도 나름대로 정리한 거야.
나다레는 아직 도주로는 실전에서 달려 본 적이 없었다. 다른 전법을 선택하지 않고 추입으로 달리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선행과 선입은 달리던 도중 다른 우마무스메에게 쉽사리 시야가 가로막히다 집단에 갇히곤 하여 포기했다. 도주는 시작부터 끝까지 격렬하게 달려야만 하는 주법이 체질적으로 맞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후방의 맹렬한 달음박질 소리와 존재감에 신경이 곤두섰다. ‘도주’란 가장 빠르게 앞서 나가는 모습이 마치 도망치는 것 같기에 그런 명칭이 붙었다 했던가. 이른 선두 포지션은 나다레에게 앞서 나간다는 상쾌함보다도 뒤쫓기는 사냥감이 된 듯한 불안을 안겨주었다. 목 뒤에 송곳니가 닿은 것만 같은 감각. 거리를 벌리기 위한 초반 스퍼트라고 해도 나아가는 기세가 불안정하리만치 빠르다. 시작과 동시 세차게 튀어나가는 달리기는 무언가에 뒤쫓기듯 다소 조급해 보였다. 아직 도주의 페이스를 제대로 익히지 못한 것도 원인이며, 뒤를 노리는 다가오는 에니그마를 지나치게 의식한 것이다.
나다레는 십수 초를 그리 달리다 정신을 차렸다. 이성을 찾자 곧장 체력을 보존하기 위해 달려나가는 힘을 조금 줄였다. 그러자 과한 스퍼트마저 차분하게 뒤쫓아 온 에니그마에 의해 기다렸다는 것처럼 빼앗긴 선두. 추월당하더라도 괜찮다. 나다레 스노우는 앞에 누군가를 두는 것이 익숙했고, 아직 그가 진가를 발휘할 곳은 저편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거리를 내어주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코너를 돌며 한껏 몸이 기울어진다. 그 틀어진 세상의 틈새를 묵직한 편자의 쇠로 짓밟으며 뛰쳐나간다. 잔디가 짓이겨지고 흙이 튀었다. 나다레 스노우의 강점은 작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폭발적인 힘. 기교가 부족하여 미숙한 코너링은 힘으로 찍어누르며 속도를 유지한다. 평소의 페이스를 돌려낸 나다레는 에니그마가 그러했듯 그 등을 주시하며 뒤에서 대기하기 시작했다. 에니그마가 가속을 거듭한 결과 떨어진 거리는 약 3마신. 이미 도주 주자로서의 페이스는 놓쳐 버린지 한참이며, 본능은 어느새 익숙한 작전을 절로 구사하고 있었다. 선두를 빼앗겼을지언정 언제라도 다시 되찾겠다는 집념은 강해질 뿐이다. 이제 뒤쫓는 역할은 이쪽의 차지였다.
─사실, 나다레는 레이스가 두려웠다. 계속해서 실패하고 마는, 완벽하지 못한 자신에게 자부심을 갖지 못한 탓이다. 하지만 동시에 달리기는 두렵지 않았다. 에니그마와의 대결은 늘 그랬다. 너와 함께 달리면 모든 게 명확해지는 것만 같아. 언제나 어디에서나 가장 빠르기에 무아지경으로 쫓게 되는 뒷모습. 그것은 처음으로 레이스를 사랑하게 된 날 느꼈던 두근거림만큼이나 아름답고 눈이 부셔서⋯⋯.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다.
츄쿄는 잊는다. 각질도 잊는다. 다음 레이스를 위한 준비와 체력 온존 따위의 문제도 이 순간에는 모두 잊었다. 꿈이나 이상 같은 것도 쫓을 겨를이 없다. 지금은 그저 이를 악물고, 잔디를 박차며 심장이 터지도록 달려나가라.
최종코너를 돌아나가자 마침내 눈앞이 트였다. 완만하게 기울어 있던 상체가 앞으로 한껏 꺾였다. 박차를 가하고자 높이 들린 다리가 땅을 강하게 구르며─ 하얀 형상이 쏜살같이 쏘아진다. 나다레에겐 도망이 맞지 않았다. 나다레 스노우는 천부적인 추격자였다. 그러나 그림자에 도사려 사냥감의 뒤를 노리는 포식자도, 섬광처럼 등을 찌르는 암살자도 아니다. 단지 설붕일 따름이다. 자신을 전부 쏟아내어 눈앞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자 하는 재난이, 결승선을 덮치려 쇄도한다.
소녀들은 달렸다. 이후의 일도 지금 당장의 목적도 잊은 채로 자신의 각질, 자신의 페이스. 자신의 체력, 자신의 주행. 지금 이순간 모든 것은 의미를 잃어버렸기에 그녀들은 전력으로 달렸다. 단순히 곁을 달리는 이 사람에게만큼은 패배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모든것을 내던져야만 낼 수 있는 '지금의 우리들의 최고 속도'. 남은 거리 300m. 코너를 돌아 최종직선. 내리막도 오르막도 없는 활주로. 경사없는 일직선 루트에서 에니그마를 이길 스프린터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랬어야했다.
압도적인 광경은 주변의 모두를 들러리로 만든다. 분투를 넘어서 두사람의 얼굴에는 무슨 표정이 비춰지고 있었을까. 고뇌인가? 분함인가?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에 두사람의 얼굴에 뜬 것은 희열 뿐이었으리라.
"아하하하하하!!!!!!!"
에니그마 론도는 더욱 가속한다. 대도주마라는 각질의 한계. 처음부터 라스트 스퍼트에 들어간듯한 페이스로 질주하기에 뒷심이 부족하다는 편견을 일방적으로 무시하듯이 들어간 스포트가 끝없이 가속해서 멈추지 않는다. 기이할 정도로 징그러운 주행방식. 그녀의 달리기는 낮았다. 지면에 거의 밀착해있는 것은 아닐까 착각이 들게 할 정도로 몸을 앞으로 극단적으로 기울인채 달리는 우마무스메. 극도의 유연성과 탄력을 자랑하는 하반신으로 반동을 극단적으로 줄이며 광기에 가까운 2단 스퍼트를 만들어냈다. 우마무스메의 전력질주는 통상 60km이상의 초고속 주행. 거기에 더해 전문적으로 레이스에 투신한 우마무스메라면 최고 70km의 속도로 달린다. 극단적인 경우라면 84km의 기록이 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초단거리. 400m의 직선주행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스포트를 할 경우에만 해당된다.
에니그마 론도의 최고속도는 평균을 살짝 상회해 72km. 약 100~200m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릴 수 있었다. 이미 클래식으로 간다해도 성적을 낼 수 있을거라 불릴 정도. 단 한번의 경주가 지금 그녀가 가진 커리어의 전부였으나 모의레이스 등에서도 보여준 실력과 평소 트레이닝을 기반으로 트레센의 관계자들에게는 어느정도 알려진 상태. 그렇기에 몰려든 관중들 역시 그녀의 속도에 대한 것은 이상해하지 않았다.
허나 그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으면 시선은 쏠리고 만다. 에니그마 론도의 주특기는 코너에서 가해지는 급격한 가속. 마치 애초에 싸워주지 않겠다는 듯 무리해서 인코스를 노리지도 않는 주제에 코너를 넘을수록 빨라지는 속도는 타인을 우롱하는 듯 했다.
이번 레이스에서도 그러했다. 애처에 달릴 생각이 없는듯 선행의 위치에서 시작한 경기가 어느새 도주로 바뀌더니 3마신, 4마신까지 차를 벌려놓았다. 모두가 이대로 끝날거라 생각한 순간 안에서부터 뛰쳐나온 것이다.
트레센에 눈보라가 몰아친다.
"말도 안돼..."
남은 거리 200m, 일반적인 스퍼트로는 따라갈 수 없을 것이 분명했던 전장에 바람이 분다.
누군가의 입을 빌리자면 천재는 있다. 분하지만.
"시, 시간은!!!" "아니 이렇게 모였는데 아무도 잰 사람이 없어?!" "목차, 목차로..."
나다레 스노우의 승리다.
"하아... 하아..."
태연한 표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불과 10분도 되지 않았다. 에니그마 론도는 몰려든 인파를 돌려보내느라 레이스가 끝난 것과 동시에 사람들이 사라질때까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며 나다레에게 다가가려는 이들을 하나하나 돌려보냈고 더이상 캐낼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된 다른 우마무스메나 다른 팀의 트레이너들이 돌아가기까지 정확히 10분이 걸렸다. 일부러 전혀 소모되지 않았다는 것 처럼.
평소였다면 이런때에도 품위를 지킨다며 트레이너에게 의자를 가져오라고 했을 에니그마 론도였으나 이번에는 그녀를 더울 트레이너도 없었고 무엇보다 당장에 복기를 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한 것인지 사람들이 사라진 트랙위에 뻗어서는 준비해놨던 스포츠 드링크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있었다.
"어떠...셨나요? 후우... 조금은 감이 잡히나요?"
조금 긴 호흡이 있었지만 언제나와 같은 목소리. 평소에도 아버지에게 제왕학을 배웠다며 자랑했던 그녀답다면 그녀 다웠지만 모든 것을 쏟아내고 드러누운 상태에선 딱히 제왕의 위엄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겨우겨우 몸을 일으킨 그녀는 곧바로 허벅지를 가볍게 주무르더니 평소같은 웃음으로 입가를 숨기고는 입을 열었다.
"다음 레이스는 반드시 도주로 달리세요. 짧은거리라면 당신의 달리기에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은 미승리전에선 없을테니까."
다른 우마무스메들이 들었다면 성이나서 싸움을 걸었을지도 모를정도로 오만한 발언이었으나 에니그마 론도는 개의치 않는다는 것 같은 눈치였다. 그녀의 입장에선 나다레 스노우 같은 괴물이 미승리전에 남아있는 것 자체가 다른 이들에 대한 모독이라 생각했으리라.
나다레 비오면 털찌는구나... 비오는날 레이스에 유독 팬들이 사진기 많이 들고 올것 같은걸!!!! 에니그마는 반대로 어머니도 아버지도 전부 직모! 정기적으로 관리도 받고있고 평소에는 카렌쨩처럼 꼬리털 위주로 관리하고 있지 않을까~ 나다레 위닝라이브 하기전에 화장시켜준다고 데리고 가서 씻기고 털관리해주는 모습이 보고싶구나...
>>79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다들 털찌는 거 좋아하는 거냐구~ 여담인데 나다레라면 겨울이 아닐 때도 귀 털이 두툼폭신하지 않을까 생각중이야~ 에니그마는 머리카락도 꼬리도 찰랑찰랑하고 윤기 나겠지... 향기도 향긋할 것 같고🥹 맞다 그러고보면 레이스하면서 비 맞거나 흙 튀면 우마빨래도 한 번 해야겠네?? 나다레같은 무지막지 곱슬이라면 위닝 라이브 전까지 긴급 털관리 필요하겠는걸🤔🤔🤔
갱신이야~
답레는... 오늘 줄 수 있...으면 좋겠는데 지금 좀 절부조라서 일요일에 줄 수도 있겠어.... 으으 왜 항상 컨디션 난조는 쉬는 날에 절묘하게 찾아오는 걸까... 주말을 쌩쌩하고 산뜻하게 보내고 싶은데 말이지(›´꒳`‹ )
이 몸 부활😎✌🏻 곧 답레로 돌아오겠다구 그리고 좋은 소식도 하나 있지! 드디어 승부복 커미션 완성본 받았어!!
캐릭터 없이 옷만 있는 그림이라 입힌 버전으로 MD커미션을 더 넣으려고 했는데~ 문의를 넣었는데 아직 답이 안 와서 급한대로 일단 수제 낙서로 대체할게( •̀ ω •́ )✧ https://i.postimg.cc/fyBs0gyW/150-20241012061405.png 근데 넘 대충 그린 허접퀄이라서 좀 부끄럽구만...🫣🙄😵💫
어느새 주변에 몰려든 구경꾼들의 외침도, 넘치는 희열에 웃음짓는 에니그마의 목소리도, 거칠게 내뱉는 자신의 숨소리도,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마구잡이로 두방망이질 치는 심장의 고동만이 귓가를 가득 채우며 메아리쳤다. 쿵, 심장이 터져나갈 듯 강렬하게 뛰었다. 발끝으로 짓누른 땅이 죽 밀려날 때엔 황홀할 정도의 해방감이 몰아쳤다. 한 번의 박동마다 달리는 몸이 잔디 위를 날았다. 얼굴에 부딪치는 바람이 아리도록 매섭다. 부릅뜬 두 눈의 빛은 푸르다 못해 시리게 타오른다. 남은 것은 결코 잠재울 수 없을 광열과 끓어오르는 전의 뿐. 오직 곁에 선 상대보다도 조금이라도 더 앞서나가기 위해, 이 순간을 한없이 만끽하기 위해. 머릿속을 하얗게 태워 달리자─
결승선은, 이미 밟고 넘어선 지 오래였다.
한계선에 가깝던 가속이 멈추었다. 결승선을 통과하고도 속도를 줄이느라 걸은 거리가 길었다. 단번에 엄추지 못하던 다리가 마침내 멈추었을 무렵, 나다레는 그제서야 주변을 돌아볼 겨를이 생겼다. 승부에 몰두하느라 닫아두었던 귀도 서서히 제 기능을 다하기 시작했다. 즉 정신을 차리자 나다레의 입장에서는 인기척도 없이 구경꾼들이 우글우글 들이닥친 것이나 다름없었던 상황이 된 것이다. 가뜩이나 누군가가 가까이에 있는 것만으로도 불편을 느끼는 기질에,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미리 마음의 준비까지 해 두어야 안심이 되는 소심한 우마무스메가 전투적으로 달려드는 구경꾼들을 단호히 떨쳐낼 수 있을 리가 없다. 당연히 나다레는 그대로 질문 공세에 휘말리는 듯했으나⋯⋯ 능숙히 대처하는 에니그마의 덕택에 무사히 위기를 모면하게 되었다.
그렇게 10여 분의 시간이 지난 뒤.
“⋯⋯여기.”
드러누운 에니그마의 눈앞에 넓은 천 하나가 내밀어졌다. 한쪽에 둔 짐 가방에서 스포츠 타월을 챙겨온 것이다. 수건을 건네주고서는 나다레도 그 곁에 주저앉았다. 남아 있던 한 줌의 긴장마저 풀리자 질주의 피로가 뒤늦게 닥쳐왔다. 온 힘을 다해 달리는 도중보다도 멈춘 뒤의 휴식이 더욱 고된 법이다. 이번에는 나다레가 뒤로 폭 넘어가 버렸다. 북슬북슬 탐스러운 머리칼이 잔디 위에 하얗게 흐드러졌다. 그렇게 숨을 고르며 파란 하늘 가만히 올려다보던 때였을까. 나다레는 물끄러미 눈만 굴려 에니그마를 바라보았다.
“응, 고마워.”
사실은 이것을 감이 잡힌 것이라 해도 좋을지는 모르겠다. 그저 무언가를 계산하고 가늠할 겨를조차 없을 정도로 막강한 상대를 쫓다 보니 무아지경에 이르렀을 뿐. 나다레는 지금의 감각과 집념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는 확신하지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하게 해 준 것만으로도 기쁘기에⋯⋯. 대답은 짧았지만 머뭇거리는 기색이 보였다. 나다레는 푹신한 잔디를 짚고 몸을 일으켜 앉았다. 무언가 할말이 있는 듯한 눈치로 입을 연신 달싹거리다, “⋯⋯있지.” 다시 다물었다.
침묵이 조금 길었다. 세운 무릎 위에 손을 두고 손가락만 꼼질댄다. 그것이 곧 손깍지가 되었다가, 마침내 이 말을 꺼낼 때쯤엔 단단히 말아쥔 주먹으로 변했다.
“네가 좋아.”
그리고 잠깐의 정적. 늘 담담하게만 다물려 있던 입매에 힘이 잔뜩 들어가 어색하게 굳었다. 자신이 말 꺼내고도 적잖이 당황스러웠는지 나다레는 소심쟁이치곤 빠르게 손사래까지 치며 변명을 덧붙였다.
“아, 아니. 그런 의미는 아니고⋯⋯. 그냥, 너는 언제나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해 주니까⋯⋯. 그게 고맙고 좋아. 너랑 달리는 것도 정말 즐겁고⋯⋯.”
횡설수설 중얼거리고 나서는 슬그머니 파릇파릇한 잔디만 열심히 쳐다보았다. 그런 와중에 표정만은 침착하게 유지하고 있었지만, 아무리 담담한 척한들 얼굴빛 새빨개졌으니 알기 쉬운 우마무스메다.
나다레의 충격적인 고백에는 에니그마 억시 얼이 빠질 수 밖에 없었다. 당황한듯 살짝 붉어졌다가 이내 다시 평정심이 돌아온건지 아하핫, 하고 가녀린 웃음을 흘린다. 생각해보면 그렇게나 소심한 그녀가 고작 달리기 한번에 사랑을 고백할리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로서는 기꺼운 일이었다. 그녀가 지켜본 나다레는 어쩐지 조금 과할 정도로 오만함이 부족했으니까.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커다란 성장이었다. 무엇보다 라이벌이라고 생각한 상대에게서 그런 말을 들었다는 것은 자신이 인정받고 있다는 반증이었으니까. 아무리 특출난 한명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이외의 우마무스메들이 잘 달리지 못한다면 팬들에게 그 세대는 끼인세대라는 멸칭으로 불리며 레이스계에 암흑기를 몰고온 악의 축처럼 취급 받는다. 지금의 에니그마 론도가 딱 그런 상황이었다. 몇몇 눈이 좋은 팬들은 이미 그녀를 포함해 서너명 정도의 우마무스메에게 기대를 걸고 있었으나 그녀를 제외한 다른 우마무스메들은 아직 특출난 성적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상황. 그마저도 나다레 스노우에 이른다먼 데뷔전에 힘을 쓴 여파가 아직도 나오는게 아니냐는 말도 안되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말도 안되는 속도를 보여준 에니그마 론도와 추입으로 중거리에 가까운 단거리에서 그걸 따라잡은 나다레 스노우. 두 사람은 시즌 개시 당시 틀림없는 주인공이었고 지금도 그것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간의 평가는 별개였다. 에니그마로서는 본인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우마무스메가 저평가당하는 것이 썩 즐겁지 않았다. 본인을 포함해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주역은 많아야 네 사람 정도. 그중 여기 있는 둘을 뺀 나머지 둘은 주력은 좋지만 아직 개화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허나 나다레 스노우는 개화를 앞두고 있는 꽃이다. 막 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에게 압도적인 무언가로 찍어 누른다면 그저 망가질 뿐이다.
확실한 것은 단 한가지 뿐. 그녀는 에니그마 론도를 이겼다. 머리 하나 차이라고는 하더라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받은 느낌이었기에 되려 나다레에게는 감사한 마음뿐. 전력으로 달린 것은 자신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 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나다레에게 받은 스포츠 타월로 가볍게 땀을 닦아내고 반정도 남은 스포츠 드링크를 나다레에게 건넨다.
“아쉽네요. 저는 나다레 씨가 정말로 좋은데~”
누가 보기에도 연기하는 듯한 목소리로 눈물을 훔친다. 그녀도 나다레의 말에는 적잖은 공감이 일었지만 저렇게 귀엽게 있는 모습을 보고 나면 어쩐지 놀리고 싶어지는 법이다. 분명히 같은 나이였지만 발육의 차이는 무시할 수 없어서 이미 고등학생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육체인 에니그마에게 있어 그 나이대의 여자아이로 보이는 나다레는 손이 덜 가는 동생처럼 느껴졌다. 그런 감상이 아니었다면 이번 레이스에서도 알아서 하라고 하며 적당히 달렸을 것이다.
일반적인 경기라면 체격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다. 프로 수준의 운동선수라면 의외로 특출난 몇 명을 빼놓으면 요구받는 최저한을 넘기고 난 후엔 자신만의 기교로 승부를 짓는 경우가 많았으나 그럼에도 운동선수라면 적합한 체격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보디빌더의 근육과 레이스 선수의 근육이 다르듯이 레이스계에서도 선호 받는 체형은 쭉 빠지고 긴 다리에 전신의 근육이 균형 잡힌 체형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일반적인 달리기와는 격이 다르기에 단순히 체격만으로 모든 것을 결정지을 수 없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확실한 차이는 날 수 밖에 없었다. 당연하지, 보폭이 다르면 다른 사람이 한 걸음에 갈 거리를 한걸음 반은 나아가야한다. 체구가 작은 우마무스메는 약하다. 주지의 사실이었으나 간혹 그런 일반 상식을 무시해버리는 존재가 나오는 법이니 드림 저니가 그러했고 영웅이라 불리는 딥 임팩트가 그러했다.
그렇기에 에니그마가 나다레에게 거는 기대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나다레는 강하다. 본인이 신경을 쓰지 않더라도 최강의 자리에 오를만한 재목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 역시 마찬가지. 슬쩍 나다레의 뒤에 앉아 품에 안듯이 나다레의 목에 팔을 감은 채로 그녀는 웃으며 말한다.
“세상에는 가능성조차 없는 우마무스메는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저야말로 나다레양에게는 감사하고 있답니다.”
에니그마는 가히 최강이었다. 공식전에서는 무패, 지금에 이르러서는 G1우승 우마무스메인 어머니조차 뛰어넘을 것이라는 것은 팬들에게는 공공연한 사실로 알려지고 있었다. 허나 지금은 단순한 패배자. 단 한번도 가질 수 없는 그런 값진 경험이 그녀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쫓아가는 것은 패배자들의 특권이기에 지금은 그저 그 특권을 마음껏 만끽하고 싶었다. 다음에 진심으로 치고 받는건 언제가 될까. 아쉽게도 현 시점 출주 예정인 클래식 경기에서는 곂치는 것이 생각나지 않았기에 에니그마는 흥분을 뒤로 미룰 수 밖에 없던 것이다.아직 완숙하지 않았다. 자신도 나다레도. 그렇기 때문에 기대할 수 밖에 없다. 올곧게 성장한 그녀만의 달리기를.
“저도 나다레양이 좋답니다. 피하지 않고 정면에서 치고 받아 주는 사람은 나다레양이 처음이니까요.”
>>88 우워어어어... .플로럴... 하긴 에코라면 뭔가 꽃밭의 공주님같은 이미지니까!!!! 그보다 아직 3200m를 뛸 수 있다는게 더 신기한걸... 에코쨩 엄청나게 열심히 했구나... 하긴 더비 우마무스메니까 어찌보면 당연하려나(?) 포기하지 않는 집념은 연애에서도 변하지 않는거군...
그... 나다레 진짜 귀여워서 울었어... 막막 주변에서 엄청나게 신경쓰면서 일부러 나다레 피해다니다가 에니그마나 모브쨩이 우연찮게 말해버려서 알게된 이후에도 그렇게 뚝딱거리는거지...? 진짜 귀여워... 올해의 귀여움상 넘버 1이이야...
재팬컵!!! 아몬드 아이의 재팬컵에는 둘 다 감동이 있지!!! 첫 재팬컵은 사토노 다이아몬드에 크라운 사토노 일가, 슈발그랑에 키세키. 수아브까지 호화로운 라인업에 2분 20초 6의 초고속 레이스!!!! 반대로 은퇴전에서는 G1 9승이라는 큐컴버 전설에 마침표를 찍은 3관마 대전의 압도적 승자가 된건 진짜... 생각해보면 두사람에게도 인상에 남을 수 밖에 없는 레이스구나 어린 시절에 그런 미친 도파민을 봐버리면 참을 수 없지 응(?)
>>90 트레이너 본인이 몸으로 직접 해 보거나 시범을 보이면서 설명하는 게 가장 낫지 않을까 하는 집념만으로 계속 운동을 했으니까... 얘도 진짜 빡센 모범생 타입이구 어쩌면 에코 원본마도 알고 보면 고릴라무스메급으로 튼튼했을지도(?)
ㅋㅋㅋㅋㅋㅋㅋ아니 울 정도냐구!!!!! 헉 근데 일부러 피해다니면 '나 절교당했나...'하고 시무룩해 함(??) 모브쨩이 누설했다면 그런대로 모르는 척 유지는 될 것 같은데 에니그마가 말한 거라면 뚝딱도 실패할 것 같아...ㅋㅋㅋㅋㅋㅋㅋ 괜히 본인이 더 얼굴 빨개져서 난감해할 것 같고~
알고는 있었지만 익숙한 이름이 많이 보이니까 라인업이 짱짱하긴 하구나... 실장된 캐들도 천재 중의 천재들이라는 것도 새삼스럽게 와닿고 말이야!
그래서 데어링 택트는 언제 실장 아니 츠루짱은 몇년째 크아악
그나저나 처음으로 레이스에 반하게 된 경기가 마지막 경기였다는 것도 후지상과 폿케 같아서 좋은걸(오타쿠 웃음) 맞아맞아 실제 경마였어도 두근거렸을 텐데 애니판 수준의 감격까지 안겨줬다면... 우웃 나는 아직도 신시대의 문의 야요이상이 아른거려... 아직도 rttt 오프닝의에서 경기장의 열기와 환호성과 달리는 우마무스메들의 모습이... 나도 우마무스메 세계에 들어가고싶어🥺🥺
>>91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아저씨 도망치지 말라구욧!!!!!! 이 얘기 보니까 프록시마무스메들이 아조씨 따라다니면서 몰래 참견하고 감시해도 재미있을 것 같은걸~ 은혼 데이트편처럼(???) 쓰읍 자존심 박살이라니 맛...있는데... 가슴이.....😭 샴푸 아무거나 대충 쓴다는 것도 묘하게 생활력 간당간당한 느낌이라 좋다...😏 진단도 마침 떨이샴푸아조씨와 전문가 케어 받는 찰랑향긋 아기씨가 대조돼서 재밌는걸~ 저번에 나다레나 에니그마는 부잣집이니까 원정 갈 때 외제차도 지원해줄 것 같다는 말 했었잖아? 비슷하게 에니그마나 에니그마네가 아조씨 지원해주다 보면 반질반질하게 닦고 광도 내주려나(????)
갱신이야~ 크아악 답레 올리고 자려고 했는데 졸려서 안 되겠군..... 자고 일어난 다음에.... ....💤 오늘도 힘내서 보내자구~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 스스로의 내면 올바르게 관조하여 막연하게 뭉친 감정의 실타래를 말끔하게 풀어내는 일도, 그 가닥 하나하나에 옳은 이름을 붙이고 언어로써 자아내는 것도, 늘 그렇게 서투르기만 하다. 나다레는 얼른 제 몫으로 가져온 수건 위에 얼굴을 폭 파묻었다. 이건 땀을 닦으려고 하는 행동이다. 그리고 몸이 더운 것도 전부 거친 운동 탓이다. 그래야만 했다. 숨조차 참은 채로 그러기를 몇 초. 고개를 들자 빨간 얼굴은 여전히 수습하지 못했다. 나다레는 애써 담담한 척 에니그마가 내민 스포트 드링크를 받아들었다. 달린 직후에 목이 마르기도 한 참이라 방심한 것이다. 막 음료를 들이키며 삼키려던 차─
“푸흡.”
뻔히 놀리는 말에 그만 사레가 들렸다. 나다레에겐 다행스럽게도, 마시던 것을 추잡스럽게 뱉을 정도의 사고는 아니었다. 잔기침 몇 번 하고는 괜히 눈이나 홱 피했다.
“놀리지 마.”
어투는 짤막하니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 쌀쌀맞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다레를 잘 파악한 인물에게는 아마 속내가 뻔히 보였으리라. 가족들은 막내에게 유치한 장난을 치기보다는 다정한 애정 베풀기를 더욱 좋아했고, 사회에서는 ‘나다레 스노우’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간은 친구를⋯⋯ 잘 사귀지 못하기까지 해서, 살며 놀림을 받은 경험이 드물었던 것이다. 친구 사이의 소소한 장난이나 호의 담긴 말에도 긴 고민을 해야 할 정도로 말이다.
잔디 위에 늘어진 하얀 꼬리가 몇 번 팔락거리다 움직임을 멈추었다. 나다레는 어느 이른 과거의 풍경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본 경기의 여운을 품고 돌아와 자신 또한 레이스에 뛰어들고 싶다고 말했을 때, 모두의 눈에 어렴풋이 떠올랐던 어느 감정이 있었다. 누구도 어린아이에게 나쁜 말을 하지는 않았다. 허튼 꿈을 꾸지 말라 꾸중하지도, 이제 와 준비하기엔 시일이 빠듯하다는 지적도 없었다. 모두가 선뜻 나서며 어린 막내의 바람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그날 찰나, 말보다도 빠른 본심을 엿보았던 것이 문제였다. 믿음이나 지지보다도 걱정과 불안의 성질을 띠었던 시선들. 그 눈은 분명 가족을 향한 사랑과 온정을 뿌리로 두고 있었겠으나⋯⋯.
그렇기에 나다레는, 에니그마의 한결같은 믿음이 기꺼웠다. 한치 앞도 내다보이지 않는 어두운 물살 아래에 밟으며 버텨 설 수 있는 단단한 땅이 생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나다레는 여전히 형언치 못할 울렁이는 마음을 느끼며 등 뒤의 기척에게 가벼이 몸을 기대었다.
“몇 번이고 부딪칠게.”
시시껄렁한 장난질에 얼굴 붉히던 때와는 달리, 대적을 선언하는 목소리는 오히려 차분했다. 자신을 믿지 못하는 와중에도 그것만은 꼭 확신할 수 있다는 듯이. 언제나 그랬다. 연원 깊은 자괴와 연잇는 패배를 겪으면서도 나다레는 도전을 포기하지도, 포기할 미래도 그리지 않았다. 패배를 두려워할지언정 싸움에 뛰어들기를 피하지만은 않았다. 푸른 눈 느릿하게 감기고 뜨인다. 일순, 딱딱하게 굳어 있던 입꼬리가 느슨히 올랐다.
“⋯⋯따라갈 거니까, 앞에서 기다려 줘. ”
이 순간만큼은 레이스에서 보였던 기세가 다시금 돌와아 있었다. 퍼부은 폭설 뒤의 고요와도 기묘한 힘이 그 눈 안에 깃들어 있었다.
이래서 그만둘수가 없다니까요. 에니그마 론도는 그리 생각했다.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좋다. 하물며 자신을 이기는 것 역시 기껍다. 그녀에게 나다레 스노우는 라이벌이자 하나뿐인 친구이자 동시에 귀여운 동생이었다. 침착하게 내뱉는 진심을 담은 라이벌리도 좋았지만 그 이상으로 개인에 대한 호감이 어느정도 쌓여버린 상태. 그마저도 그렇게 뛰고난 직후에 그런말을 들어버린다면 그건 참을 수 없었다.
"아니 뭐... 위닝라이브 대신?"
침착하게 말하면서도 만지작거리는 손을 멈추지는 않았다. 하지만 멈출수 없는 이유도 분명히 있었다. 너무 진지해져버리면 안되니까. 이러니저러니해도 우마무스메의 다리는 유리로 되어있다고 해도 될 정도로 가녀리다. 하물며 나다레 스노우의 강력에 버틸 수 있기 위해서는 그에 수반되는 반동과 힘을 버틸만한 하체가 반드시 필요한 상태. 그녀역시 나다레 스노우의 파워가 비정상적으로 강하다는 것과 레이스의 출장빈도로 따져 그녀의 신체능력이 체구로는 믿지 못할정도로 우수하다는 것 정도는 이해하고 있었으나 그녀의 성격상 과하게 불이 붙는다면 멈추지 못하고 다 타올라버리는 것은 아닐지 하는 걱정이 섞여있던 것이다.
모든 사람이 노력의 여하에 따라 공평한 결과를 부여받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는 결국 벽에 부딪히게 될 것이고 사람들은 그것을 재능이라고 부른다. 다행스럽게도 에니그마 론도는 여신에게 축복받았다고 해도 무관할 정도의 재능이 있았고 불행스럽게도 그런 재능으로 인해 일반적인 교우관계를 맺는것에 큰 어려움이 있었다.
압도적인 누군가를 마주하게 되면 대개 함께 뒤던 사람들은 그 사람의 노력에 감탄하기 보단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게 되기 마련이었다. 그것에 걸어온 시간이 타인보다 월등하다면 더더욱. 마치 화면너머의 천재를 보는듯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진심을 다할 수 있는 중학생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기에 그녀는 압도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녀가 동경하던 우마무스메와는 완전히 다른 길. 힘으로서 열고 압도함으로 이어져가는 패왕의 길. 많은 이들을 절망의 구렁텅이에 처박고 홀로 고고하게 빛나는 길을 택한 자신을 무너뜨릴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 그렇기에 망가지지 말아주기를 바랐다. 하는김에 자신의 욕망도 채우고.
"기다리고 말고요. 고작해야 대차정도 나다레씨라면 문제없을테니까."
흑심을 채운 반동인지 평소와 달리 에니그마는 깔끔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점차 트랙에서 거리를 벌렸다. 어쩐지 불안정한 표정으로.
"어...저기 나다레씨?"
평소 잘 뜨지도 않던 눈을 두려운듯한 얼굴로 뜨고는 좀 먼곳을 바라본 그녀의 시선 끝에는
"트레이너씨가..."
화가 난 얼굴의 히로시가 서있었다. 너무 길어지기 전에 일단 여기서 한번 끊고 가보는건 어떨까 싶어서 일단 또레나를 등장시켰는데... 괜찮을까...?
위닝 라이브 대신? 황당한 이유에 잠시 뾰로통한 얼굴을 해 보였으나 표정은 금세 풀렸다. 잠자코 만져지고 있자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이거 은근히 기분 좋은 것 같기도 하고⋯⋯. 민감하고 섬세한 부위에 따뜻한 체온이 닿자 여태까지도 잔열처럼 남아 있던 근육의 긴장이 풀려 간다. 대번에 노곤해져서는─용케도 표정만큼은 여전히 무덤덤했지만─, 하마터면 그대로 넘어갈 뻔했다. 나다레는 더 늦기 전에 정신을 차렸다. 하얀 귀를 파르르 털며 귀 마사지의 마수에서 벗어난 뒤, 재빨리 두 손을 위로 들어올렸다.
”⋯⋯오늘은 내가 1착이잖아.”
여전히 에니그마의 품에 있었던 탓에 팔로 동그라미라도 그리듯 손만 위로 휙 뻗고 있다. 재빨리 몸을 빼지 않는다면 서로 몸싸움이라도 하듯 우스꽝스럽게 얽히게 되리라. 나다레는 보이지 않는 에니그마의 머리 위를 더듬더듬 건드리며 자신도 기어이 귀를 만지고서야 손을 내릴 기세였다. 한동안 그렇게 유치한 짓에 몰두했을까, 미래의 선전포고까지 오간 것이 무색하게도 어느새 긴장마저 완연히 풀려버렸다. 가쁘던 숨과 뻐근해진 몸도 조금은 회복되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나다레 역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트랙을 너무 오래 점거하고 있기에도 무엇하고, 격하게 움직였으니 그럴수록 마무리 운동을 빼먹지 말아야 했다. 다시금 다리를 가볍게 풀며 고개를 돌렸다. 에니그마에게 더 달릴 생각이 있느냐 물으려던 그때. 나다레는 친구의 얼굴에서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감정을 읽어내었다.
황급히 시선을 향한 그곳에는⋯⋯.
”⋯⋯.”
한다 트레이너의 만면에 흘러넘치는 것은 명백한 노기다. 이유 모를 상황에 잠깐 의문이 들었던 것도 잠시, 곧 짐작 가는 것이 하나 떠올랐다. ⋯⋯방금의 모의 레이스 때문일까. 상대는 아직 말조차 꺼내지 않았건만 이미 성난 기세에 절로 풀이 죽은 상태다. 귀는 축 처지고 두 손이 불안스레 맞잡혀 꼼질거린다. 나다레는 다가온 히로시에게 이렇다 할 말 없이 조용히 고개 숙여 인사했다. 시선은 당연히 잔디밭 한구석에 내리꽂힌 채였다.
이번달 끝나기 전에 남은 크레딧도 쓸 겸 간만에 AI 좀 돌려 봤다! https://postimg.cc/gallery/Dvfnhxr
나다레 평소 패션은 아가씨 계열다운 로리타 스타일~이긴 한데, 1번처럼 러블리한 계열보다는 2번이나 3번처럼 약간 더 단정한 느낌을 더 선호해. 이런 패션을 정확히 뭐라 불러야할지 모르겠어서 늘 대충 퉁쳐서 오죠사마 룩이라고 부르고 있음... 그나저나 LD가 아니라 SD 프롬프트로 돌리니까 왠지 모르게 우마무스메가 아니라 켄타우로스무스메 같은 게 나오는 빈도가 더 높아지더라? 으윽... 켄타우로스...? 말...?이 뭐지...?
한다 히로시는 빈말로도 좋은 어른은 아니었다. 월세를 내는 것이 귀찮다는 이유로 얼마 남지 않은 재산을 털어서 싸구려 집을 구매하는가 하면 사고가 나더라도 그것을 처리하기까지 몇 달이 걸리는 등 전체적으로 둔하다고 할지 묘하게 현실감각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트레이닝에 있어서는 폼으로 중앙의 트레이너가 아니라는 듯이 전문적인 모습을 드러내니 어떤 의미에서는 특출난 인재중의 한 명이라고 할 수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는 하지만 그는 부상에 대해서는 타협을 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노기를 가라앉힌 히로시는 천천히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오래된 결제판으로 자기 어깨를 툭툭 치면서 몇 분째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두 사람을 보고 정말로 긴 한숨을 내쉬더니 지친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에니그마.”
“…네? 네!”
“너 다음 레이스가 뭔지는 알지.”
“…아이비 스테이크스죠.”
“안다는 녀석이 몇 주 남기고 그렇게 소모를 해?”
딱 하는 소리가 크게 나도록 히로시는 에니그마의 머리를 결제판으로 쳤다. 그 이후로는 하지 않은 것을 보면 가벼운 훈육의 뜻인 듯 보였다.
“다음, 나다레 스노우.”
물론 나다레에게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너도 임마 안 그래도 하드워크중인데 이렇게 힘 빼면 다음 레이스는 안 뛰어?”
요즘 녀석들은 너무 혈기가 왕성해서 피곤하다느니 하는 쉰내 나는 이야기가 조금 길게 이어졌지만 그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거였다. “병주는 상관 없지만 이런 거 할거면 녹화라도 하게 미리 말이나 하고 해라. 그리고 레이스 몇 주 안 남기고 전력레이스는 금지.”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에니그마 론도도 나다레 스노우도 당장 얼마 남지않은 레이스를 앞두고 급격한 소모를 해버렸으니 담당 트레이너로서는 위가 안 아플래야 안 아플 수가. 그마저도 담당들에게는 자율연습을 시켜놨더니 다른 트레이너들의 입으로 진검 승부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가 얼마나 헐레벌떡 뛰어왔는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약한 히또미미의 속력이 어디가는 것은 아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