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리는 점 있는 자가 느끼기엔 꾸중 듣기 직전의 공기는 긴장감으로 팽팽했다. 말 없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불안감도 커져만 간다. 딱. 이윽고 불안스러운 정적을 흩어내는 소리. 그에 반사적으로 귀가 파드득 떨린다. 그리 아프거나 험악한 훈육은 아니었으나, 평생껏 언니에게도 꿀밤을 맞지 않고 살았던 나다레에게는 그것마저도 꽤나 큰 문화적 충격이었다.
빠듯한 일정 안에서 아슬아슬하게 체력을 온존하는 와중에 함부로 힘을 빼선 안 된다, 맞다. 마음대로 전력을 다하지 말고 사전에 알릴 것, 맞다. 레이스 전 지나친 무리는 금물, 모두 맞다.
격렬했던 열의와 의욕이 식은 자리에 뒤늦은 깨달음이 닥쳤다. 귀가 추욱 처진 것은 단순히 꾸중을 들었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돌이켜보면 처음부터 이 정도로 진심을 다해 뛰려던 건 아니었는데. 도주로 달리는 연습을 하느라 처음부터 과하게 힘이 들어갔고, 그 다음부터는 경쟁심리에 불이 붙어 체력을 모두 소진해도 상관없다는 기세로 달리고 말았다. 에니그마와 자신이 얼마나 미련한 행동을 했는지 따끔하도록 와닿아서─ “네⋯⋯.” 나다레는 시무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당연한 수순으로 결제판 꿀밤의 다음 타자는 자신이겠거니 절로 기죽은 채 기다리고 있었는데. ⋯⋯혼내는 말이 끝날 즈음까지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다레가 의아스레 고개를 들었다.
”⋯⋯안 때리세요?”
누가 듣기라도 한다면 오해 사기 십상인 문장인 것은 우선 차치하고, 눈치껏 넘어가면 본인에게도 좋을 상황을 굳이 짚는다니. 융통성은 영 부족해 보인다. 보드라운 속눈썹이 두어 번 오르내리다 히로시를 빤히 응시했다. 곧이어 당당히 든 것도 아니고 제 눈높이 정도로 슬며시 올라가는 오른손.
“⋯⋯저요.”
여전히 풀은 죽어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이겼다는 건 기분 좋았던 모양이다. 축 처져 있던 꼬리가 팔랑팔랑 흔들렸다.
한다는 어이가 없다는 듯 얕은 한숨을 내쉬더니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는 듯 들고있던 서류판으로 나다레의 이마를 가볍게 툭 하고 쳤다.
"임마 그러면 내가 매일 때리는것 같잖아."
"...저는 거의 매일 때리지 않나요?"
충분히 오해를 살만한 말을 해버리는 것은 어찌 그리 다른 두 사람이 그렇게나 똑같을까. 사실 에니그마의 경우는 딱히 거짓은 아니었던 것이 천성이 자만이 심하고 쉽게 오만해지다보니 한다와는 상극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방금 전처럼 자연스럽게 툭툭 치는 정도의 일이 많았고 무엇보다 많은 경우 반대로 한다가 역습을 당해 고통에 찬 신음을 내지르는 경우가 많았다. 즉 두사람 모두 자업자득. 나다레에게 하지 않는 것은 아마 죄책감 때문일 것이다. 저렇게 순수하게 물어보는 모습을 보라, 체구며 성격이며 나다레까지 그런 식으로 대하기엔 거의 다 닳아 버린 양심의 삼각형이 팽팽돌아버리는 것이다.
"역시 라고 해야할까요? 나다레씨의 달리기는 굉장했답니다. 짧다고는 하지만 체력이 마르지 않고 하물며 페이스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에요."
서류판이 다가오리란 것을 뻔히 알지만 이마를 툭 치는 순간에는 눈을 질끈 감게 된다. 나다레는 스스로 자처해놓고선 좋아해야 할지 시무룩해져야 할지 몰라 얼떨떨한 기색이 되었다가⋯⋯ 뒤늦게서야 이 대화가 제삼자가 듣기에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혹한 나다레가 주변을 황급히 둘러보았다. 다행히 에니그마가 앞서 인파를 물려 두었기에 이 대화를 주의깊게 듣는 사람은 없는 듯했다.
“그래도 아프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우마무스메는 귀가 좋고, 또 10대 여중고생은 한창 광기와 도파민에 미쳐 있는 생물들이다. 만일을 대비한 변명을 슬쩍 하며 히로시와 에니그마의 대화는 모르는 척하기로 한다. 만담 같은 시시껄렁한 대화가 오간 덕분일까. 레이스의 흥분은 물론이고 혼날지도 모른단 긴장감마저 모두 휘 날아가 버렸다. 방심하고 있던 사이 갑작스레 화두가 된 나다레는 눈이 동그래졌다. 아래로 휘휘 고민 섞인 꼬릿짓 하다 이내 답한다.
“한 번만에 무언가가 확실하게 나아졌다는 느낌은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기쁘지만요.”
압도적인 스피드를 내는 것엔 성공했고, 자신감도 조금이나마 얻었다. 하지만 역시나 전략적인 달리기가 아니라 작정 없는 질주로 이긴 상황. 약점인 전략적 측면이 나아졌는지는 모르겠다. 시선이 아래로 조금 낮아진다. 나다레는 어느새 제 턱을 짚고 고민 어린 기색이 되었다.
11월이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갔네... 나도 할로윈이라는 실감은 그다지 안나더라구!!!!!!!! 그저 게임들과 주변인의 대화로만 깨달았을 뿐... 나다레주는 오늘 하루 잘 지냈는지 모르겠네!!!!!! 일단 답레는 확인했고... 아마 내일쯤 올릴 수 있을 것같네... >>114 크아아ㅏㅏㅏㅏ!!!!!!!!
언성을 높인 것은 에니그마였다. 평소였다면 이렇게 급하게 소리친다거나 하는 일은 품위가 떨어진다며 하지 않았겠지만 이번에는 어째서인지 몸이 먼저 뛰쳐나가 버린 것이다. 그녀 역시 조금의 수치를 느낀건지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졌지만 무언가를 다짐한 듯이 나다레의 어깨를 붙잡은채로 소리치기 시작했다.
"당신의 특기를 버려가면서 도주로 뛸 이유는 없어요. 다만 이번 레이스는 단거리 수준이니 그리 달리는게 낫다고 생각했을 뿐."
단호하게 내뱉는 말에는 어쩐지 응원이 아닌 집념이 담긴듯 했다. 당신만은 그래서는 안된다는 일종의 소망이 담긴 말. 따를 필요는 없지만.
"...내가 막을수 있을만한 사안은 아니긴 하다만 이번엔 나도 에니그마의 말에 동감이다. 별 이유가 없다면 추입을 그만둬야할 필요는 없어."
한다는 들고있던 서류판을 나다레에게 건냈다. 무언가 끼워져있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아무래도 나다레의 훈련기록이었던 듯 그녀에 대한 자세한 정보들이 기록되어있었다. 다소 소름이 돋을 정도로.
"네 특기는 특유의 뒷심이다. 어중간한 놈들은 네가 평범하게 달리기만 해도 쫓아오지 못할테니 도주로 달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굳이 지금 몸에 익힌 주법을 버릴 필요는 없어. 자신감만 조금 채우면 금방 미승리전을 탈출했겠지."
한다는 한쪽 구석에서 잘했냐는듯이 우쭐해져있는 에니그마의 머리에 가벼운 꿀밤을 먹여버리고는 목을 가다듬었다. 대중들에게 보이는 모습과는 전혀 다르단 말이지.
"...뭐 할 말은 많다만 이번 승리는 귀중한 경험이야. 단 한번도 이겨보지 못한 우마무스메와 한번이라도 승리한 우마무스메 사이에는 메꿀수 없는 격차가 있으니까. 하물며 상대가 이번 세대 유망주라고 평가받는 저 녀석이라면 훨씬 가치있는 1승이다."
에니그마가 그간 좀처럼 보이지 않았던 격한 반응을 하자 조금 당황했다. 둥그런 눈 연신 깜빡이는 표정에서 벙벙해진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났을 테다. 그리고 이어지는 히로시의 말. 나다레는 귀를 앞으로 향한 채 트레이너가 내민 자료를 천천히 훑어 보았다.
“⋯⋯.”
하긴, 나다레 자신이 복기하기에도 방금의 레이스는 시작부터 문제점이 뚜렷했다. 낯선 주법에 아직 적응이 되지 않았다는 문제를 감안하더라도, 처음부터 빠르게 달려야 한다는 강박 탓에 조급함을 다스리지 못했다. 앞으로도 이번 레이스 같은 조건만을 노린다면 어쩌면 도주 역시 해볼 만한 작전일 수도 있겠지만⋯⋯. 레이스를 거듭할수록 라이벌들이 언제까지고 이런 위태로운 수에 당해 주지는 않으리라. 게다가 무엇보다도, 나다레의 궁극적인 염원은 마일과 중거리에 있지 않은가. 나다레는 곧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류판을 공손히 돌려주었다. ⋯⋯그리고 한발 늦게 얼굴에 열이 올랐다.
“⋯⋯그, 고마워요.”
나다레 스노우는 다분히 칭찬에 약한 우마무스메. 자신이 당연히 잘할 수 있으리란 확신 어린 말을 동시에 듣게 되자 쑥스러워진 것이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으려는지 짐짓 평온을 가장한 채 주변을 둘러보기나 한다. 표정을 관리할 자신이 없어 눈을 피한 것이란 뜻이다. 처음은 부끄러워져 딴 곳을 보려 한 이유였지만, 그러다 나다레는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면, 마무리 운동만 하고 끝낼까요⋯⋯?”
슬슬 코스를 이용하기 위해 찾아온 학생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조금 전의 구경꾼들과는 다른 면면이었다. 다들 일행의 풀어진 분위기를 보며 트레이닝을 재개하려는지 끝내려는지 근처에서 눈치를 살피려는 듯했다. 물론 둘은 트레이너에게 지도를 받는 중이었으니 달리지 않는다 해서 완전히 노닥거리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뭐랄까. 꿀밤부터는 지도보단 콩트가 되어 가는 것 같아서 말이다. 머리가 꿍 눌린 에니그마의 모습에 설풋 미소가 새었다. 나다레는 희미하게나마 웃어 버리고 말았다.
에니그마는 어쩐지 자신에게 느껴지는 시선을 느꼈다. ......아차! 상황이 시급했기 때문에 급하게 말을 하기는 했으나 자신의 평소 행동과는 정반대였기에 이상한 이미지가 씌워지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이미 어느정도에서는 끝장나버렸지만 고작해야 갓 중학생이 된 녀석이 생각을 하면 얼마나 한단 말인가. 모처럼 레이스에 관한 깨달음 같은 것을 얻고 있는 라이벌이 그저 좋기만 해서 웃고 있다가도 어느새 찾아온 다른 학생들을 보고는 크흠 하고 기침을 한 뒤에는 깔끔하게 정좌하고 앉은채로 기다리고 있었다.
"무리하기도 했으니 오늘은 마무리라도 과하게는 하지 말고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근육을 풀어주는게 좋겠네. 일정이 대차게 꼬여버렸으니까. 당분간은 병주는 하지 말고 회복에 집중해."
한다는 반대로 집중하는 듯 보였다. 갑작스러운 레이스, 그로인해 꼬여버린 기존의 출주 일정까지 신경써야할 것이 배로 늘어난 탓에 미간을 부여잡고 잠시 고뇌에 빠진듯 하기는 했으나 이내 무언가를 떠올린듯 마음을 다잡았다. 하드 트레이닝을 시킨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말하지만 다음에 이런걸 할거면 미리 말하고 해. 다시한번 사후통보로 들으면 두번다시 클래식은 못나가게 만들거다."
그렇게 말한 한다는 머리를 긁적이며 천천히 돌아갔다. 에니그마는 한참을 보고있다가 가벼운 한숨을 내쉬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클래식을 나가지 못하게 하겠다는 말. 다른 사람이 꺼낸 말이었다면 그저 겁주기 위해 무섭게 을러댄 것이라는 의심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이도 아닌 한다 트레이너가 꺼낸 말이었다. 그의 성정에 레이스로 실답지 않은 소리를 할 리가 없었다. 나다레는 천천히 멀어져가는 히로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결심을 다졌다. 그래, 무엇을 위한 훈련이고 무엇을 위한 레이스인가. 본말과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 되는 법이다.
검은 머리카락의 인영이 멀리 흐려질 무렵, 곁에서 들린 목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한 바퀴는⋯⋯ 응.”
나쁘지 않다. 나다레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리를 쭉 폈다. 이야기를 나눈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는데, 그사이 근육에 남아 있던 긴장이 어정쩡하게 풀려 있었다. 나다레는 옷과 꼬리에 붙은 풀을 툭툭 털어내며 말했다.
“⋯⋯이번에는 흥분 안 할게.”
그렇게 말하는 얼굴이 묘하게 딱딱했다. 에니그마의 페이스가 격해졌던 덴 본인의 책임도 있었으니 부끄럽기라도 하다는 걸까. 그렇게 말하고서는 공연히 몸을 숙이고 신발끈 묶기나 스트레칭에 몰두한다. 준비를 다시 마쳤을 즈음 나다레는 에니그마를 바라보았다. 말없던 응시 끝에 나다레가 등을 돌리고 다시금 코스를 향했다. 따라오는 친구를 구태여 확인하지는 않았다. 함께 달리는 것쯤이야 당연하다는 듯.
“⋯⋯끝나면 벌꿀 드링크 마실래?”
담담히 묻는 말을 끝으로 땅을 박찼다. 채 식지 못한 초가을의 느릿한 바람은 기분 좋게 몸을 감싸고 달려나간다. 내딛는 발끝이 가벼웠다. ⋯⋯조금은, 앞으로도 이렇게만 한다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조금은 들었다.
으아아아아악 좀 바빠서 이제야 갱신하네...! 일상 수고 많았어! 첫 일상을 무사히 마무리해서 뿌듯하고 기쁜걸~ 풋풋하고 두근두근한 시작이라는 느낌도 나고 말이지! 클래식에서 다시 맞붙을 때가 기대되면서도 순수하게 친한 지금을 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즐겨보고 싶기도 하다...😚
앗 그런데 미리 정해놓은 전개 상 다음 미승리전도 승리하면 안 되는데 이번에는 어떻게 실패했다고 해야 할까...🤔 단거리 도주라면 확실히 속도가 모자라서 질 것 같지는 않은데 컨디션 조절에 실패했다거나 막꾸잉처럼 진로방해라도 해야 하나(???)
갱신!이야! 어제는 진짜 죽는줄 알았어... 슬슬 직업상 바빠지는 시즌이다보이 짬내는 것도 쉽지가않네...!!!! >>133 뭔가 히로시쌤 얼굴에 마대자루같은거 씌우면 그대로 분위기 테이큰이지(?
생각해보니 우리애들중에 진짜 알거지는 히로시뿐이잖아(? 크아악 갑자기 오장이 뒤틀리는 기분이!!!!!! 아무래도 다들 우마무스메다보니, 심지어 한명은 더비우마무스메에 나다레에 에니그마는 일단 성장이 예정된 우마무스메이다보니 미래에 대한 고민은 의외로 크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은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