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피하는 걸까. 슥 눈을 굴려 쳐다본 얼굴은 자신도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빛을 띠고 있었다. 감정을 몰라도 너무 심각하게 모르는데. 보아하니 그는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도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듯 했다. 린은 더 추궁하는 대신 조용한 카페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녀 자신도 답지않게 널뛰던 감정을 가라앉혀 조금 진정할 시간이 필요했다.
"강산군께서 전에 많은 인파에 휩쓸린 적이 있다고 하셨어요. 저희의 활약에 관심이 많은 팬이라 그렇게 말하시던데." 사람이라고는 자리를 무료하게 지키고 있던 알바생 밖에 없는 작은 카페에서 마주보고 앉아 입을 연다.
"당신을 보러 온 거에요. 그 사람들은." 부러 별 관심이 없다는 듯 눈을 내리깔고 톡 던지듯 말한다. 다시 그 상황을 떠올리니 속을 무언가가 콕콕 찌르는 느낌이 들었다.
'얕고 피상적인 들불같은 대중의 관심에 불과하지만 그가 애정을 받는 건 분명 좋은 일일텐데.' 갑작스럽게, 사람들의 벽으로 벌어진 두 사람의 거리가 머리 한 구석을 저기압으로 만들었다.
"최근에 누명이 벗겨지고 전에 악신을 토벌한 공적이 합쳐져서 여명의 입지가 많이 올라갔어요." 여전히 새치름한 얼굴로 나온 음료를 마셔본다. 특별할 거 없이 프랜차이즈의 달달한 맛이었다.
"헌터넷에도 저희의 이름이 많이 거론되고 있어요. 그 덕에 신규 신도분들이 갑작스레 늘어나기도 하였으나 그런 만큼 신의 뜻을 받드는 자로서 여론에 비치는 언행을 조심을 하고 있던 터라..." 공적인 업적으로 인지도가 올랐다고 말하면서도 그녀의 머리 한켠에 다른 생각이 조금씩 떠올랐다. 단정한 외모에 그에 맞게끔 예의바른 태도의 그가 그를 잘 아는 사람이 아닌 타인이 보기에 어떨지.
컵을 쥔 손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알렌군은 대외활동을 많이 하시지 않으니 모르셨겠지만 저는 방금 전에 그 분과 같은 만남이 없진 않았어요. 가끔 교단에 신도인척 들어올 때도 있어 애를 좀 먹고 있기도 하고...저희를 좋아해서 하는 행동이라 매몰차게 거절하기도 그러니 알렌군도 앞으로는 야구모자 하나는 쓰고 다니세요."
흥. 바보용사 같으니라고. 금방이라고 비스듬히 비죽일듯 움직이려하는 입꼬리를 음료를 마시는 척 컵으로 가린다. 이미 모든 것이 괜히 싫어 빈정되는 나이는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컵을 내리고 언제 삐죽거렸는듯 정리된 매무새로 평소처럼 웃는다.
이 사람 진짜 바보인가? 신경쓰기는커녕 발화의 원인부터 결과까지 완전히 잘못 짚은 그를 보고서 린은 아연한 기분이 들었다. 그를 두고서 이런 저런 복잡미묘한 기분에 빠졌던 저 자신이 어이없어지기까지 하였다. 이러다가는 다시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때 '저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모두 훌륭하신 다른 길드원들 덕분입니다.' 같은 소리나 높은 확률로 할 것 같아서 이제는 다른 방향으로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이랬던 적이 한 두번도 아니고.' 같이 붙어 지낸지가 몇 개월인데 익숙해질 때도 되었건만 또 다시 제가 얽은 생각의 끈에 묶여서 휘둘리는 건 그녀였다.
"..." "알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마음에 둔 말을 조금이나마 답답함에 풀어놓으려는 찰나 딸랑, 하고 경쾌하게 가게의 문에 달린 종이 울렸다.
"흐아...느,늦지 않았다! 아이스아메리카노샷추가에시럽넣어서 한 잔이요...!" 급하게 뛰어온 듯 헝클어진 곱슬머리를 한 여자였다.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얼굴에 크고 유순한 눈망울, 옅은 체모까지 전체적으로 어딘가 어수룩한 강아지 같다는 인상을 주었다. 앉을 자리를 찾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녀는 두 사람이 앉은 자리를 보고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어...어어!" 놀란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입이 둥글게 벌어지다 이내 활짝 웃는다.
"특별반의 알렌! 맞죠? 아아, 그, 이상한 사람은 아니고요...팬입니다!" 고백을 하는 듯한 십대 소녀 마냥 얼굴을 붉히고서 양 손의 주먹을 꼭 쥔다.
"00길드의메딕강나라라고합니다!평소에만나고싶었는데. 아 내 정신좀 봐. 메모지, 메모지가!" 살짝 정신없는 타입인듯 허둥거리며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는 그녀를 앞에두고 린은 잠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만히 침묵을 한다.
화면으로만 보던 최애가 화면과 똑같은 모습으로 웃으며 말하는 장면을 목격한 오?타쿠는 금방 녹아내렸다!
"으아아 아니에요. 저는 맨날 사수한테 혼나는데, 알렌 씨는 너무 전투도 잘하시는데 말도 너무 예쁘게 하셔서 으헤헤헤...감사합니다." 최애가 나한테 웃어줬어! 얼굴을 붉히며 헤실헤실 웃던 여성은 드디어 찾던 물건을 찾았는지 기쁜 얼굴로 메모지를 조심스레 내민다.
"저, 사실 보육원 출신이거든요. 그런데 인터뷰에서 알렌 씨가 자주 봉사활동도 가시고 그 곳의 아이들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씀을 듣고 너무 위로가 되었어요. 앗, 또 말이 길어졌네. 죄송합니다! 사인 좀 부탁드려도...아니면 악수라도 한 번..." 린은 여전히 말없이 가만히 두 사람이 대화하는 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알렌이 눈치를 보며 린을 바라보았다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새침한 얼굴로 남은 음료수를 마셨을 것이다.
잘 웃는 상에 귀엽고 순해보이고 그와 비슷한 출신에다 당연히 하야시시타 나시네와 같은 복잡한 과거사는 없을터였다. 눈을 내리깔고 아래를 바라보다 다시 시선을 앞으로 옮겨 두 사람이 악수/사인(알렌주가 선택해줘)을 하는 모습을 바라본다. 다시 머리에 벌레가 가득 날아다니며 거슬리는 날개짓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이제 봉사활동을 간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기분 나빠.' 린이 다시 눈을 내리깔기 무섭게 행복한 기분에 빠져 일정을 잊고 대화를 이어가던 강나라의 헌터챗이 시끄럽게 울린다.
"으허헉 길드에서 온 전화다! 즐거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분명히 진동으로 해두었는데 이상하네..." 혼잣말로 중얼거리다가 허둥지둥 방치되어 있던 그녀 몫의 아메리카노를 받고 자리를 떠났다. 린은 빠르게 탁자 아래로 환청을 울린 의념의 잔상을 거두었다.
계산을 해봤는데, 오늘 일상 끝내고 추석에...가능하다면 병원일상 스타트를 끊고 다음주 일요일에 마무리 하면 이번 달 마지막 일요일에 고백일상을 할 수 있을것 같더라구. 그러면 딱 알렌 생일이랑 겹치더라. 그러니까 추석 당일에 스타트만 끊는거라도 가능할까요...? 넘 무리면 스루해도 괜찮아요. 언제나 현생이 먼저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