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보더라도 번듯한 집이라고는 하기 힘든, 아니, 집이 아니라 방 조차도 되지 못할 공간이긴 하지. 좁고 먼지가 가득한 창고의 일부를 부랴부랴 치워 공간을 냈다고 해도 믿을법한 좁은 방. 창문도 좁고 세로로 나서 햇빛도 잘 안 들어온다. 처음 나왔을 땐 그래도 작은 아파트 셋방 하나를 빌려서 살았는데, 윗집이고 옆집이고 죄 이상한 사람들뿐이라 급하게 이사하고, 다음으로 간 집도 비슷한 일을 겪고 이사하고.... 이사에 이사를 거듭하다보니 돈은 없고, 아이는 있고, 날은 춥고. 그래서 여기저기 서성이다가 이 도시락집 사모님한테 발견돼서 주워졌다(?) 당장 몸 뉘일 곳을 찾아서 그냥, 감사하기만 할 뿐. 돈을 보태줄테니 다리 뻗을 수 있는 방이라도 빌리라고 연거푸 말씀하시긴 하지만 내가 매번 거절했다. 이 정도로도 충분하니까.
"이사를 자주 다니니까 돈이 금방 없어지더라고." "그래도 여긴 거의 공짜로 묵고 있어. 이런 방인데 돈은 못 받겠다고 하시기도 했고." "....더 넓은 방을 얻어서 살아도, 또 이사가게 될 거 같아서 그냥, 여기서 쭉 지내고 있지..."
그리고 잠시 침묵. 가만히 바닥의 다다미결을 보다가 확 고개를 들었다.
"이불 펴줄게, 잠깐 누워. 아까 찻잔도 떨어트릴 뻔했잖아. ...조금 쉬자. 나도 병원 갔다오니까 피곤하고."
잠깐만, 하고서 유우가를 거의 문 밖까지 밀어내고 이불을 편다. 좁은 방이라서 어쩔 수 없다. 이불을 펴면 꽉 차버리니까. 그리고 베개는 하나지만... 일단 유우가한테 양보하자. 많이 피곤해보이고.
"자, 누워도 돼. ...둘이 눕기엔 좀 좁을라나."
유우가가 누우면 내가 뒤이어 눕는다. 배가 나와서 불편할 수 있을테니, 유우가를 등지고 몸을 딱 붙인다. 좁은 방에서는 이렇게 밀착할 수밖에 없다. 어쩐지, 예전에 좁은 침대에서 같이 자던 기억이 나 눈물이 찔끔 나올 것 같았다.
"왜 이사가?" "왜 이사가게 될 것 같아...?" "내가 없는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해..."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배인 겨울바람 냄새. 바깥을 많이 돌아다닌 걸까, 이번 겨울은 많이 추웠는데. 머리카락에 코를 묻은 채, 메이사의 목소리를 들으며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메이사는 눈물을 글썽이며 뺨을 문지르고 있다. 내가 때렸다. 멍한 눈으로 날 올려다 보던 메이사는 이내 결심을 했단 듯이 안방을 나가, 탁자에 편지를 쓰고 더플백을 들고 집을 나선다.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에 나는 황급히 달려나가 메이사의 손목을 붙잡는데, 내 손아귀를 쓱 빠져나가는 감촉이 너무 생생해서.
번뜩 눈을 뜨자 나를 등지고 살그머니 문을 여는 메이사가 보여서 손목을 거칠게 잡아챘다.
"가지마." "다시는 실망시키지 않을 테니까, 애도 내가 잘 기를테니까, 메이사 그러니까 제발..."
복도의 불빛이 비춘 표정에 깨닫는다. 이제는 현실이라고. 함께 돌아가기로 약속했단 것도 떠올랐다. 그럼에도 두쿵거리는 가슴이 가라앉질 않아서, 아쉬운 마음을 꾸득꾸득 다시 밀어넣으며 손을 놓았다.
유우가의 팔을 베고 누우면 등 뒤로 맞닿은 온기가 따듯했다. 조금 쌀쌀한 방도 따듯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리고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별 거 없는 얘기지만. 그냥, 집주인이 이상한 사람이었다던가, 옆집 사는 아저씨가 이상한 사람이었다던가. 참고 살려면 살 수야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속옷 도둑맞고 나선 바로 떠야겠다 싶어서 이사했었다던가. 뭐 그런 이야기들. 이상하게 떠나려고 하면 기차가 연착되거나 운행중단이 되거나 해서 지체되는 일도 많았다는 소소한 얘기도 곁들여서. 그러다보면 등 뒤의 숨소리가 점점 규칙적이 되고, 나도 조금씩 졸음이 찾아온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하다보면....
- 메이사.... - 가지 마..
그런 소리가 들려서 귀가 휙 뒤를 향한다. 안 간다고 대답하려다가, 아 잠꼬대인가 싶어서 그만뒀다. 잠꼬대에 대답하면 안된다는 말도 있었고.. ....조심스럽게 유우가의 손을 쓸었다. 꿈에서도 내가 떠난 걸까. 그래도 이제.. 떠날 일 없으니까.
그 뒤로도 몇 번인가 유우가는 잠꼬대를 하고, 나는 손을 쓸어주며 꾸벅꾸벅 졸았다. 얼마나 그랬을까, 졸음을 살짝 깨게 만드는 감각이 들었다. .....화장실, 가고 싶네... 추워서 그런지 아기 때문인지 화장실 너무 자주 간다니까.. 유우가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문을 살그머니 열었다. 역시 복도는 좀 춥네. 빨리 갔다와야지. 그렇게 문을 열면, 갑자기 손목이 잡혀 뒤로 살짝 끌려갔다.
"으헷!?"
손목을 잡은 건 유우가였다. 아, 깨워버렸나... 그냥 잠깐 화장실에 가는 거라고 설명하려고 했는데, 유우가의 표정도, 말도, 손목을 잡은 힘도 심상치가 않아서. 잠시 멍한채로 듣다가, 마음이 아파서 잔뜩 찡그렸다. 유우가.....
"....괜찮아, 유우가. 나 잠깐 화장실 가려고..." "밖은 추운데, 금방 갔다 올 게. ....그래도 혼자 있기 싫어?"
그래도 같이 가겠다고 하는 유우가를 살짝 끌어안고, 손을 꽉 잡았다. 마음이 안 좋았다. 내가 떠난 것 때문에 유우가가 이렇게 됐으니까. 그대로 손을 잡고 화장실로 향한다. 그리고 문을 열기 전에 손을 놓았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화장실 안 까지 같이 들어가는 건 좀.
껴안는 메이사의 머리에 뺨을 기대고 문질렀다. 껴안아주는 게 좋아서, 가까이 있으면 풍기는 메이사의 체향이 좋아서 그대로 있다가, 끌어주는 대로 같이 화장실에 갔다. 익숙하게 같이 들어서려던 때. 제지당했다.
"...여기?" "알았어..."
뭔가 서운했다. 우리 같은 칸에 자주 들어갔던 거로 기억하는데 어쩐지 선이 그어진 느낌이라. 그래도 쭈굴한 채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등을 벽에 미끄러뜨리고 웅크려 앉은 채로 눈을 감았다.
메이사가 깨우는 목소리에 손을 잡고 일어나서 중얼거렸다.
"...다음엔 들어갈래. 나와있는 거 싫어..."
그동안 부족했던 잠이 긴장풀린 뇌에 잔뜩 쏟아부어져서,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잘 모르는 채로 메이사의 손을 잡고 안방으로 갔다. 그리고 문을 닫고나서 메이사를 바라봤다. 묵직한 배를 가누기 위해 오랜시간을 들여 이불에 눕는 메이사를.
뒤이어 나도 메이사 옆에 앉았고, "잘 자 유우가아..." 하고 중얼거리는 메이사의 입에 허리를 숙여서 홀린듯이 키스했다. 아니, 홀린 게 맞지. 잠에 취하면 몸에 익은 루틴대로 하게 되는 법이다. 배 때문에 뿌리치지 못하는 메이사의 얼굴 옆에 팔로 딛고서는 그대로 눅진한 소리가 나게 입맞췄다. 어쩌면 아까 선 그은 데에 대한 화풀이일지도 몰랐다. 잠들려다 말고 봉변을 당한 메이사 옆에 누워서, 나를 등진 몸과 배를 이쪽으로 돌려놓고 계속 키스했다. 다행이도 잠에 취했다고 무뎌지진 않았다.
끝내고 나오자 벽에 기대 웅크린 채로 자는 것 같은 유우가가 보였다. 많이 피곤한 거 같은데 그냥 이불에 누워있지...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얼른 들어가서 재워야지..
"유우가, 들어가서 자자." "에.... 응.. 알았어. 일단 일어나. 자."
화장실도 같이 들어가자니.... 그, 그래. 잠꼬대처럼 하는 말일라나. 아까 잠꼬대도, 깨서 날 붙잡고 한 말도 그렇고... 내가 또 없어질까봐 걱정인 거겠지. 이제 그러지 않겠다고 했는데도. ....나도 예전엔 유우가가 다시 떠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도, 늦게 들어오거나 연수받으러 가면 또 두고 간 건지 불안하고 그랬으니까. 어쩐지 알 것 같아. 그래서 화를 내거나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조심스레 유우가를 데리고 방으로 돌아와, 묵진한 배를 잡고 천천히 누웠다. 아직 만삭까진 아니어도 예전처럼 벌렁 눕거나 하는 건 좀 걱정이 돼서.
"엇차.... 유우가도 얼른 누—?!"
눕지 않고 옆에 앉길래, 얼른 누우라고 하면서 가볍게 이불을 두드리다가.... 갑자기 키스해서 깜짝 놀랐다. 아까처럼 가벼운 키스가 아니라 서로 얽고, 눅진한 소리가 방에 울릴 정도로 진한 키스. 조금 당황스러웠다, 꽤 오랜만이었기도 하고. 옅어지긴 했지만 은은하게 풍기는 담배냄새가 그리움을 마구 자극해서, 눈을 슬며시 감았다.
유우가가 누운 뒤에도 우리는 한참을 키스했다. 등지고 누웠던 아까와 다르게, 부푼 배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면서. 오랜만인데도 키스만큼은 예전하고 똑같아서, 아니.... 아....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머리가 녹아서 진득하게 흘러내리는 느낌이었다. 나쁜 게 아니라 좋은 의미로.
"하...아..... ....응...." ".....잘 자, 유우가..."
돌아가서도 이렇게 하자며, 그대로 품에 고개를 묻고 잠든 유우가. 조심스럽게 머리칼을 쓰다듬고 나도 눈을 감았다. 거의 매일 혼자서 웅크리고 훌쩍이며, 유우가를 그리워하면서 잠들던 방이지만... 오늘은 따뜻하고 그리운 냄새에 푹 감싸여서.. 행복한 기분으로 잘 수 있을 것 같아.
두 분께 아침식사를 받아먹으며 이제 돌아가보겠다고 말씀드렸다. 사모님께서는 마침 팔이 다 나았고 재활이 필요하던 참이라며 흔쾌히 수락하셨고, 사장님께서는 탐탁찮아 보였지만 메이사 얼굴을 보고 넘어가주는 느낌이었다. 얼마 없는 짐을 싸고 나와 함께 열차에 몸을 싣고 도쿄로 간다. 플랫폼에서는 어쩐지 실감이 안 나서 몇번이고 잡은 손을 내려다봤다.
차에 같이 앉고서도 나는 병든 닭처럼 졸다가 메이사를 따라 화장실까지 따라가는 것의 반복. 그렇게 중앙트레센학원앞역에 내렸을 때에야 떠올렸다.
"......그, 메이사..."
침대 협탁 위에서 말려지고 있는 거랑, 일주일 전에 한 빨래가 아직도 널려있는 건조대, 거실 테이블 위의 술병들과 컵라면 컵들... 빵 포장지랑 대충 버석거리는 채로 구겨져 있는 휴지들. 빨래통에 다 넣지도 않고 주변에 널려있는 양말들까지...
보게 된다면 메이사, 기겁해서는 '나 다시 돌아갈래' 할지도 모르겠다. 불안한 마음에 손을 꼭 잡고 그 자리에 멈춰서서 물었다. 머리가 완전히 정지해버려서 이게 타당하지 않은 말이란 것조차 몰랐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대서 바보가 돼버린 게 분명해. 어차피 가야 할 집, 더러워서 들키기 싫다고 이런 곳을 가자니.
다시는 올 일 없겠지, 그렇게 생각했던 역에 도착했다.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다. 기차에서 내내 졸던(그래도 화장실 갈 땐 귀신같이 깨서 따라왔다)유우가를 보니 역시 많이 피곤한가 싶어서,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는데. 그런데....
".....하?"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어디를 가자고...? 잠시 멍한 채로 유우가를 봤다. 내 표정 엄청 멍청해보이겠지.....
"헤...? 에?" "왜... 집에 안 가고...? 그, 나 짐도 있고... 들렀다가 가는 것보다 그냥 집가는게 좋을 거 같은데...."
왜냐면 돈 들잖아. ...그렇게 비싸진 않겠지만, 어쩐지 그동안 돈에 쪼들리는 생활을 하다보니 이런 걸 따지게 됐다. 슬픈 습관이 생겼다고 할까. .....물론 어제 키스만 해서 나도 좀 그런 기분이긴 하지만, 그래서 이해를 못하는 것도 아니지만(사실 왜 갑자기?라는 의문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좀...
메이사의 표정과 반응에 나도 멍하니 있다가 뒤늦게 깨달았다. 사정설명을 전혀 안하고 "호텔 가자"를 박아버렸다는 걸. 마치 의탁할 곳에서 다 빼왔고 도쿄까지 와서 돌아가기도 힘들테니 이제부터는 어울려줘야겠다, 그렇게 말하는 거 같아서 얼굴이 새파래졌다.
메이사가 끌고가는 대로 끌려가면서 뒤늦게 변명해대지만, 어쩐지 제대로 듣지 않는 태도에 말이 엄청 길어진다.
"아니 메이사, 내가 그, 그게 아니고, 그런 의미는 아니었어. 아니 너랑 그걸 그 나도 당연히 그런데 잠깐만 들어봐 메이사..." "아무튼 나 전혀 그런 거 아니었으니까? 응? 가자고 한 건 다른 게 아니고, 지금 내 집이... 씁... 더러워서..." "......여보가 뭘 상상하든 간에 더 지저분할 거야."
건성으로 들으며 앞장서는 메이사. 결국 집 앞까지 가고 나서, 조금은 주눅들은 기분으로 문을 열었다.
일단 현관 앞에 놓여있는 일반쓰레기 봉투 여러개. 반질반질하던 복도는 먼지가 뽀얗게 쌓여있고, 소파 앞의 커피테이블에는 맥주캔이 잔뜩 쌓여있다. 창문 너머 발코니 위에 놓인 재떨이에는 꽁초가 다육식물처럼 수북하고, 그 아래는 당연히 쓰레기봉투로 가득. 부엌 카운터에는 컵라면 컵들이 탑을 이룬데다 세탁실에는 밀린 세탁물들이 땀냄새를 풍기며 세탁기 위에 아무렇게나 얹혀져있다. 욕실의 줄눈에는 물때가 끼어있기까지. 무엇보다 질색인 건 현관문을 열자마자 정면으로 보이는 빨래건조대에 놓인 팬티들이다. 이 모든 것들이 엉켜서 현관문을 열자마자 쿰쿰하고 찝찝한 냄새가 난다.
내가 무턱대고 메이사를 데려올 때랑은 여러모로 딴판. 그때는 기껏 비싼 돈 주고 들어온 집이니까 잘 써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됐다.
"응응. 알았어." "나도 알아. 그러니까 괜찮아. 아이 참... 진짜 괜찮대두??" "......그, 그렇게 말할 정도야?"
근데 여보라니, 아, 아직 혼인신고서도 안 냈고, 결혼식도 안 올렸지만.. 그렇게 불리는 것만으로도 뭔가 기쁘기도 하고, 두근거려서... 후후... 기분이 좀 좋아졌을지도. 그렇게 조금 좋아진 기분으로 열린 현관문을 들여다 보는데.
상상 이상이었다 정말로. ...내, 내 기억 속의 집이 아닌데...? 집 잘못 찾아온 거 아냐? 아닌데.. 여기도 14층이고, 호수도 맞고, 유우가가 문도 열었고... ...이, 이상한데..? 이게... 집이... 이렇게까지 된다고...???
".......유우가...."
쿰쿰한 묵은 담배냄새, 찝찝한 냄새... 창가에 쌓인 담배꽁초와 테이블에 쌓인 맥주캔들, 일반쓰레기 봉투도 여럿 줄지어 있고, 빨래도 엄청 쌓인 거 같은데.... 저 컵라면 컵들은 뭐야? 유우가 저거만 먹고 지냈어!? 잠시 말을 잃고 집을 둘러보다가, 머리가 지끈거려서 이마를 짚었다.
"....응.. 치우자. 오늘 잘 수 있을 정도로는 치워야지.."
안으로 들어가 짐을 대충 내려놓고, 예전 기억을 더듬어 쓰레기봉투도 꺼내오고, 타는 것과 안 타는것, 페트병과 캔을 분리하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거 어쩐지 그리운데. 그래. 그때도 이런 적이 있었지. 한사코 자취방에 들이지 않으려고 하던 유우가. 알고보니 엄청 더러워서, 그때도 이렇게 같이 치웠던가. 하하, 엄청 예전이네... 정말...
"유우가, 어쩐지 옛날 생각나지 않아? 그 왜, 클래식 때. 유우가 자취방에 처음 간 날." "그때도 못 오게 막아서 뭐라도 있나 했더니, 이렇게 집이 엉망이었잖아. 그래서 같이 치우고. 저녁도 유우가가 차려주고. ...그때 생선구이 맛있었는데."
고개를 푹 수그리고 대꾸한다. 내 기억보다 더 지저분해서 정말이지 면목이 없었다. 눈을 잠깐 붙였다가 너무 깊게 자서, 기차 시간이 아슬아슬했던 탓에 그대로 뛰쳐나갔었지. 그래서 더 쑥대밭이 된 것도 있었다.
"그래도 잠은... 잘 수 있어. 침대는 멀쩡해."
협탁 옆에 그게 놓여 있고 구석에는 대충 벗어놓은 옷가지들도 있고 갈아입고 뛰쳐나간 실내복들도 놓여있지만 암튼 누우면 된다.
아무튼 나는 부엌의 컵라면통 정리를 맡게 됐다. 젓가락을 빼서 차곡차곡 쌓다가 메이사를 힐끔 보고, 봉투 부족하다는 핑계로 메이사한테 갔다가 봉투만 받고 쫓겨나고. 그리고 다시 슬금슬금 가까이 갔다. 메이사가 빨래를 개고 있으니 나는 건조대를 치운다는 핑계면 될 것 같다.
또 쫓아내려나 했지만 되려 말을 걸어줘서, 조금 기쁜 마음으로 더 가까이 붙었다. 허벅지가 맞닿아서 기분이 좋았다. 조잘거리며 스리슬쩍 손가락도 잡았다. 이렇게 메이사의 무언가가 손에 잡혀 있어야 안심이 된다.
"그래도 그때는 좀, 지금보다는 덜 더러웠지. 그 뭐야, 매트리스랑 옷밖에 짐이 없어서 오히려 쓰레기가 있어도 휑했고..." "확실히 지금이 더 심각하네. 젠장..." "밥은 그때처럼 내가 해주고 싶은데, 냉장고에 뭐가 없어서. 나가서 먹을까? 힘들 거 같으면 내가 포장..."
가뜩이나 말주변이 떨어져 더듬거리던 게 뚝 끊겼다. 잡은 손을 내려다보면서 생각한다. 포장해오는 사이 전처럼 도망가버리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 이렇게 잡아놓고 있는 편이 좋은데. 순식간에 불어난 불안감이 맥락과는 동떨어진 말을 내뱉게 만들었다.
그래도 싫지는 않아서, 잠깐 손가락이 잡힌 채로 가만히 있다가 손을 꼬물거리기도 하고, 맞닿은 허벅지의 온기에 슬쩍 웃기도 했다. 잠시 후에 손을 빼고 다시 빨래를 개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때는 정말 잠만 자고 나오나? 싶을 정도로 집이 휑했으니까. 지금처럼 이렇게 물건이 많지 않았지. 아아, 그러고보니 떠나기 전에 내가 샀던 러그나 물건들도 그대로네. 화분은.... ....응, 아까 현관에서 바짝 마른 채로 발견됐지 참. 불 붙이면 엄청 잘 탈 거 같단 생각이 들 정도로...
"괜찮아. 천천히 치우면 돼. 서두를 필요 없으니까." "담배꽁초는 제일 먼저 치워야 할 거 같긴 하지만. 하하.... 에?"
뜬금없이 들려오는 갈 거야?라는 물음에 유우가를 쳐다본다. 어, 어딜? 아, 포장하러 같이 갈 거냐고? 그리고 잠시 주변을 둘러본다. ...아직 뭔가를 먹기엔 좀 더러운 환경이니까, 역시 둘 다 가는 것보다는...
"음.... 한 명은 남아서 정리하는 쪽이 좋지 않을까?" "아니다. 나가서 먹고 들어오자. 그쪽이 좋을 것 같아."
사실 남아서 한 명이 정리해도 포장해오는 사이에 다 치울 수 있을 거 같은 생각도 안 들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냥, 괜히 떠났었나보다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서. 혼자 바보같이 착각해서, 유우가도 나도 힘들기만 했으니까. 후회된다. 할 수 있다면 그 날의 나에게 가지 말라고 전하고 싶을 정도로.
"그래. 밥 먹고 오면서 아이스크림도 하나 사올까. 나 가리가리군 먹고싶은데. ....엇차아..."
그렇게 말하면서 깔끔하게 개서 정리한 세탁물을 들고 일어섰다. 이제 그냥 일어서기만 해도 엇차...하는 소리가 입에 붙어버렸네.
스윽 빠져나가는 손가락에 가슴이 서늘했다. 그러다가 영문모를 대답을 하기에 멍하니 바라보다, 이내 헛 하고 깨달았다. 나 방금 엄청 멘헤라 같았네 하고. 자제... 자제해야 하는데. 성가시겠지, 자꾸 이러면...
메이사가 세탁물을 들고 일어나길래, 한 박자 늦게 일어나 나도 모르게 눈에 잡히는 것부터 잡았다. 문제는 그게 메이사의 꼬리였다는 거. 하지만 놓고 싶지는 않아서 잡은 채로 힐끔힐끔 눈치를 보다가 따라나섰다. 물론 꼬리를 놓지는 않았고, 슬금슬금 끝쪽으로 늦춰 잡은 채로.
"옷장에 자리는... 있으려나, 있을 거 같은데. 미안, 요즘 잘 안 열어봐서 모르겠어. 가서 공간 만들어줄게."
그리고 가서 옷장문을 열자 후두둑하고 쏟아지는 옷들. 옷걸이를 쓰지도 않고 대충 던져넣고 문을 닫아대서 그렇다. 속옷이나 수건은 서랍장을 쓰는 편이고, 옷들은 몬다이 시절처럼 빨아놓은 추리닝만 돌려입은 지 좀 됐으니까. 한숨을 푹 내쉬고 옷들을 침대에 일단 내려놓았다. 하나하나 살펴보다가 그 안쪽에서 물빠진 군청색의 코트를 발견한다. 이건 옷걸이에 걸어뒀는데, 옷들을 던져넣으며 떨어진 모양이었다.
"...아, 이거."
메이사에게는 못보던 여성복. 아직 상표도 떼지 않은 걸 손등으로 쓸어봤다. 어쩐지 그때 생각이 나서 눈이 찡해진다.
"너한테 주고 싶었는데... 가버려서 못 줬어." "겨울에 워낙 춥게 입고 다녔잖아, 이번엔 좀 따듯했으면 좋겠다 생각해서..." "근데 결국 겨울이 다 지나버렸네."
갑자기 꼬리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어깨가 들썩 크게 움직일 정도로 놀라버렸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유우가가 꼬리를 잡고 있었다. 아, 아아... 놀래라. ...같이 살 땐 장난으로도 꽤 잡았었는데, 떨어져있던 동안은 그럴 일이 없었으니까... 놀라버렸네. 하지만 이것도 금새 익숙해지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어쩐지 웃음이 나와서 피식 웃었다.
"정말... 놀랐잖아." "응, 고마워. 공간 있으면 이거 넣으면 되겠— 어....우...."
그리고 유우가가 옷장을 열자 그냥 옷이 쏟아졌다. 잠깐 고개를 위로 올려 시선을 돌린다. 아아, 옷장에 머쓱하게 걸려있는 옷걸이들과 바닥에 우르르 쏟아진 옷들.... 그냥 대충 던져넣으며 살았구나... ...예전에 자주 입던 정장도 무참하게 구겨진 채로 바닥에서 발견됐다. 어쩐지 마음이 안 좋았다. 유우가가 얼마나 힘들었는지가 느껴지는 거 같아서.
"일단 이것들 다 넣어둘게... 응?"
유우가가 옷들을 들어 침대에 내려놓고, 나는 슬쩍 옷장에 난 공간에 세탁물을 내려놓다가..이거, 라는 말에 돌아본다. 군청색의 코트. ...딱 봐도 유우가 사이즈는 아니고, 여성복같다. ...이게, 왜...? 내가 없는 사이에 다른 여자라도 왔던 걸까. 두고 간 거려나. 그런 불안한 생각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주듯, 유우가가 바로 설명을 덧붙였다. 나에게 주고 싶었던 거라고.
"....나, 한테...?" "...그랬...구나...."
내가 나가버린 날, 어쩌면 그 후에.... 사왔던 걸까. 나가기 전엔 본 적 없던 옷이니까. 어쩐지 울 것 같은 기분이 됐다. 유우가도 마찬가지인걸까, 표정이 그런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를 꼬옥 안고서 머리에 턱을 얹는다. 잠시 떨어져 있었지만 그래도 익숙한 온기. 팔을 뻗어서 유우가의 등에 손을 두른다.
"응... 고마워 유우가. 잘 입을게...."
그땐 못 입었지만, 앞으로는 닳아 없어질 때까지 입어버릴테니까. 유우가의 품에 고개를 부비면서 말했다. 겨울이 지나 봄이 되어가는 지금은 입기 어렵겠지만, 다시 찾아올 겨울에는 입을 수 있을 테니까.
옷방 정리하느라 하루종일 불초해진...🫠 내 휴일 다 어디로... 어디.. 어디에.... 하지만 날씨가 너무 쌀쌀해져서 안 하면 내일 얼어죽은채로 출근하게 될거 같았어요..
조금 걱정되네요.. 바쁘신데 날도 갑자기 쌀쌀해져서🥺 컨디션 안 좋아지기 딱 좋은 시기인.. 부디 몸조심하시길... 내일도 쌀쌀한 것 같으니 옷차림 신경써주시구요.. 그럼 저는 오늘 준비한 기력체력 전부 소진해서🫠 좀 일찍 들어가보겠습니다아... 저야말로 체력관리를 해야겠네요 히히... 앵바앵밤입니다~ 바쁘셔도 쉬실 땐 푹 쉬시길.. 내일도 저희 힘내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