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읏... 나, 나도...." "유우가가 좋아. 유우가가 아닌 사람은 싫어..." "쭉 같이 있을래.. 같이 있어줘...!!"
내 손을 꽉 쥔 유우가의 손은 예전처럼 크고 따뜻했다. 꽉 쥐어진 손 하나를 빼서 유우가의 손을 덮었다. 눈물로 흐려진 시야지만 그래도 너를 담는다. 유성우가 떨어지던 밤에도, 목도리를 두고 나오던 밤에도, 연락이 닿지 않아 애달프던 날에도, 마지막 편지와 담배 반 갑을 두고 나오던 새벽에도.... 늘 그립고 보고싶었던 너를.
"응... 돌아가자..." "이제 계속 같이 있자...."
실감이 안 난다. 어쩌면 꿈일지도 모른다. 눈을 뜨면 너는 없고, 쌀쌀한 단칸방에서 눈을 뜨고 너를 그리워하면서 하루를 시작하게 될지도 모른다. 눈을 감았다가 뜨면, 정말로 그렇게 될 것 같아서 무서워. 하지만 아무리 감았다가 떠도, 눈물이 떨어져 맑아진 시야엔 네가 뚜렷하게 잡혀서. 역시 이건 꿈이 아니구나 하고 안심하게 돼.
한참을 훌쩍거리면서 울고, 조금 진정된 후에야 문득 생각났다. 유우가, 날 어떻게 찾은 거지... 나와서 돌아다니는 동안에도 계속 위치를 알려줬던건 에리쨔밖에 없던 거 같은데... 그것도 매번 알려준 건 아니고 좀 불규칙해서, 그것만으로 찾긴 어려웠을지도 모르는데.
"근데 유우가.. 어, 어떻게.. 찾은거야...?" "나... 그때 전화로도 아무 말도 안했었는데..."
한참 훌쩍거리는 메이사를 품에 끌어안고 달래주다 보면 옛날 생각이 난다. 클래식 시즌, 유성우 아래에서 펑펑 울면서 고백하던 메이사. 시니어 시즌 마지막 날, 나한테 뺨을 맞고 눈물짓던 메이사. 그리고 얼마 전만 해도 강제로 토해버리고 물맺힌 눈으로 노려보던 메이사까지. 전부 이렇게 꼬옥 안아서 달래줬었지.
가슴이 쿵쿵 뛰었다. 부끄러울 정도로. 그래서 하늘만 바라보면서 애써 진정하지만 쉽지 않았다. 꿈결만 같다. 내가 이런 인생을 살게 될 줄은 꿈에도 그리지 못했지만.
그러다 훌쩍하며 묻는 말에, 심장이 그대로 쪼그라든다. 어떻게 찾았냐니. 그야 온갖 개고생을 해서... 그걸 전부 말하면 기분나빠할 게 당연한데... 또 내 특유의 말실수가 넘쳐나왔다.
"...메론빵 트럭 노래가 들렸거든. 그 메론빵 트럭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인터넷에서 찾아서, 트럭의 루트 따라서 돌아다녔..."
센다이에서는 그 트럭의 루트를 3번 정도 도보로 걸어다녔다. 여기서도 그 정도는 해야하리라 생각했는데 운 좋게도 역 바로 앞에서 찾은 셈이고. ...어라, 이거 좀... 기분 나쁘지 않아?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어서, 입을 달싹거리다가 불안해하며 물었다.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싫나?"
그리고 꼴사납게 변명까지.
"그치만 처음 얻은 단서라 나, 그, 놓칠 거 같아가 이럴 수밖에 없었다... 미안타 근데, 아, 그, 그게......" "보고 싶었다..."
메론빵 트럭 노래?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이다. 어, 어라? 에리쨔가 알려준 게 아니라고? 저번에 전화를 실수로 받았을 때, 그때 들은 노래로...?
"....에...? 헤...???"
노래를 듣고, 그 노래를 쓰는 메론빵 트럭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인터넷에서 찾아서, 그 트럭의 루트를 따라 쭉 돌아다녔다...고... 그, 그게 가능한가? 어떻게 알아낸거야!? 뭐야 굉장하잖아.... 잠깐 벙쪄서 눈만 꿈뻑거리다가 정신을 차렸다.
"에, 그 어, 그렇구나아..." "응?"
나름대로 감탄했던건데, 유우가는 어쩐지 불안해보였다. 목소리도 좀 떨리고 있고... 귀를 쫑긋하고서 유우가에게 머리를 툭 기댔다.
"아니 별로... 좀 놀라긴 했지만." "그랬구나... 저번에 통화...했을때....."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걸 통화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때였다니.
"....그때 이후로 전화 더 안해서, 그냥.. 이제 나 같은 건 잊었나보다 했는데... 아니었던거네." ".....괜찮아, 유우가.. 응."
변명같은 말을 꺼내는 유우가의 등을 작게 토닥였다. 놀라긴 했지만 싫진 않다. 그만큼 필사적으로 날 찾아다녔다는 거니까. 방법은 좀 의외긴 하지만. 그렇게 토닥이다가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유우가, 수염 많이 길었네. 머리도... 살짝 손을 뻗어 머리카락을 쓸고, 점점 내려오다가 수염이 가득한 턱에 멈춘다. 내 기억 속의 얼굴에 비해 꽤 수척한 느낌이 든다.
괜찮다고 말은 하지만, 그저 말 뿐인 건 아닌가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다. 그래도 작은 손이 토닥거리는 걸 받고 있다보면 조금은 가라앉아서, 계속 받고 싶다 생각했는데 손이 떨어졌다. 아쉽다.
하지만 손은 내 머리를 만지기 시작해서, 만지기 좋게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머리카락을 복슬복슬 만지작거리다가 쓸어내리고, 귓전과 턱을 따라내려온다. 뺨에 닿은 손바닥의 온기가 좋아서 얼굴을 비볐다. 처음 받아보는 스킨십인데 싫지 않았다. 더 받고 싶었다.
손이 움직이지 않아서 감았던 눈을 뜨고 메이사를 바라보다가, 걱정하는 말에 눈을 깜박였다. 나오는 건 동문서답.
"키스해도 돼?"
그리고 허락을 받지도 않고선 메이사의 뺨을 감싸쥐고 입을 맞췄다. 문지르고 떼고, 문지르고 뗐다가, 메이사의 시선을 마주보고 눈을 감았다. 그냥 이대로 계속 키스만 하고 있으면 안 되나. 아쉬운 마음을 담아 입술을 살짝 깨물어 당겼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 한숨에도 담배냄새가 묻어나오겠지 분명. 요즘은 하루에 한 갑씩 피워댔으니까. 젠장... 진한 키스는 당분간 무리겠다.
애끓는 충동을 삭히지 못하고 입술을 떼고, 다시 어깨에 이마를 처박았다. 메이사의 아랫배에 닿아서 살짝 몸을 뺀 채로.
대답으로 돌아올 말은 아니지 않나? 의문을 표하는 짧은 소리만을 남기고 입이 막힌다. 문지르고 떼고, 문지르고 떼는 애매한 키스. 입술끼리만 잔뜩 부비는, 하지만 확실하게 열이 느껴지는 키스였다. 진득하게 느껴지는 아쉬움에 내가 더 달뜨고, 길게 내쉬는 한숨에서 훅 끼치는 담배냄새가... .....애달프다. 마음만 같아선 나도, 떠나오기 전에 하던 것처럼 진하게 입을 맞추고 싶었는데. 갈등하게 된다. 아이한테 안 좋을 것 같다는 생각과, 딱 한번일텐데 문제 없겠지 하는 충동이.
".....응. 그럴까." "아, 나... 지금 일하는 곳, 도시락집인데... 거기라도 갈래...?"
갈등이 채 마무리 되기도 전에 내 어깨에 이마를 폭 박은 유우가를 다시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도시락 말고 다른 걸 먹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좀 들긴 했지만... 슬프게도 수중에 돈이 그리 많지 않은 상태라. 이리저리 이사를 많이 다닌 탓이다. 씁쓸하지만 어쩔 수 없지.
"자, 가자... ....왜 그렇게 서있어.."
왜 그렇게 엉거주춤한거야. 살짝 웃으면서 유우가를 안은 팔을 풀었다. 그리고 팔을 살짝 잡아당기면서, 병원으로 왔던 길을 그대로 되짚어서 걸어간다.
조금 걸어가다보면 나오는 도시락집. 나이가 지긋한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다. 이시노마키에 도착했을때, 미처 집을 못 구해서 어쩌지 하고 곤란해 하고 있을 때 감사하게도 도와주신 분들이다. 도시락집에서 일을 하면서, 가게 위쪽 작은 방도 빌릴 수 있었다. 좀 좁고, 어둡지만 그래도 몸 뉘일 수 있는 곳이 있어서 다행이지... 일단은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방은 좁아서 뭘 먹기 힘들테니까, 아래 테이블석에서 같이 먹고 올라가는 쪽이 좋겠지. 익숙하게 유우가를 데리고 테이블로 향했다. 아, 어쩐지 하야나미가 생각난다. ....그립네.
"다녀왔습니다." - 어서와요. 병원은 잘 다녀왔고? "네.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대요." - 다행이네~ 그런데 같이 온 일행은... "아...."
사모님과 인사를 나누다가, 유우가를 보고 묻는 말에 손을 꼬옥 잡았다. 조금 망설이다, 배시시 웃으면서 말한다.
"아이 아빠에요. ...저희, 뭐라도 먹어야 할 거 같아서.. 도시락 좀 살게요." - 뭐?! 아, 아니 사긴 뭘 사요~ 그냥 편하게 들어요. 그리고 당신 잠깐만, 잠깐 앉아있어봐요 왜 그래 정말.
- 아니 저 !@#!#$# - 밥은 먹어야죠! 일단 앉아있어요!
아이 아빠라는 말을 듣자 저 구석에서, 아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신문만 들여다보던 사장님이 자리에서 일어나는게 보였지만.. 사모님이 후다닥 달려가서 다시 앉혔다. 그리고 찰싹하는 등짝 때리는 소리도 들리고. 아아... 평소에도 약간, 그, 내 얘기 듣고선 '애 아빠는 대체 뭐!%$!#@$^$#@' 같은 말 하셨으니까... 이번에도 그러셨겠지. 나도 슬금슬금 유우가를 테이블에 앉히고, 도시락 세 개를 들고 돌아왔다.
아니 그치만 임신한 메이사를 어케 참아요... 큭... 이제 임산부여서 헐렁하고 배가 편한 옷을 입어서 예전만큼의 엄청난 존재감은 아니겠지만 볼륨 자체가 틀리고 커텐으로 인해서 더 티가 날 수밖에 없겠지... 메이사...풍채가 대단해졌다고...어머니는 대단해..어머니는 쩔엇... 으곡...🙄🙄🙄🙄🙄🙄🙄🙄🙄🙄🙄🙄
사모님이랑 같은 말을 하게 된다. 유우가, 너무 호쾌하게 먹는다고. ..그 중화풍 야채볶음, 꽤 매울텐데. 예전에 가끔 심술부려서 더 맵게 만들고 유우가의 눈물을 쏙 빼놨던 일이 생각난다. 그때도 지금처럼 얼굴이 좀 벌겋고 눈에 눈물이 핑 돌고 있었지... 반찬으로 만들 때마다 생각나서, 몇 번인가 울음을 못 참고 결국 양파를 썰면서 얼버무리는 일도 있었다. 이제 다신 못 만나겠지, 안 만나러 오겠지 하고 그랬었는데.. 이제와서 생각하니 좀 부끄럽네.
"자 녹차. 천천히 마셔. 뜨거우니까."
도시락 세 개, 그것도 오오모리-히또미미 기준이지만 꽤 많은 양을 순식간에 해치우다니. 유우가.. 대체 얼마나 배고팠던거야. 평소에 어떻게 먹고 지냈길래... 조금 안쓰럽게 보다가 녹차를 따른 잔을 건넸다. 그리고 그릇을 치우다보면 뭔가 묘한 시건이 느껴져서, 슥 고개를 들면 유우가가 내쪽을 보고 있었다.
나를 보고 있는 건 맞는데, 특정 부위만 열심히 보고 있군 이자식. 아니라고 둘러대도 솔직히 다 안다니까. 그리고 그렇게 보는 이유도 조금은 알 것 같고. 그... 임신하고나서 더 커졌으니까.
"....좀 커졌지?"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들어서— 배를 슥슥 어루만진다. 이제 확실히 티가 날 정도니까.
"담배를 빨리 못 끊어서 좀 걱정했는데, 그래도 잘 자라고 있대."
...아니, 사실 배가 아니라 다른 곳을 보는 건 알지만. 여기서 그랬다간 사장님이 신문 찢고 달려올걸.....
저 그런 망상을 해요... 쓰레기 기둥서방이자 또레나 유우가를 먹여살리다못해 용돈까지 주는 멧쨔를......... 이녀석 한 번 쓰레기 on하면 바닥까지 보여줄 거 같다고... 그래서 마음고생하는 멧쨔를 상상하면 마음이 아프긴 하픈데 행복하기도 하네요 나의 진짜 마음은 뭘까...🫠
야호 이제 주말이다🫠 이제.. 이제 원없이 쉴 수 있겠어요... 히다이주는 아직도 바쁘실지.. 요즘 너무 바쁘신 거 같아서 걱정되네요🥺 휴식과 식사 잘 챙겨주시길.. 답레도 썰도 느긋하게 이어가면 되니까요 혹시라도 여기에 너무 부담 안가지셨으면 좋겠어요.. 바쁠땐 그것도 스트레스가 될 수 있으니까요 오늘도 화이팅입니다...
커졌지? 하는 말에 시선을 들어올린다. 티 안 나게 보려는 시도도 하지 않긴 했지... 하지만 시야에서 그만한 존재감이 흔들거리고 있으면 최면에 걸린 것처럼 보게 되는 법이다. 조금은 부끄럽지만, 도망치기 이전의 우리 생활을 생각하면 굳이 부끄러울 것도 없다. 이것보다 더한 추태도 부려댔으니까. 토한다던가, 병원에서 훌쩍훌쩍 운다던가...
"나도 담배... 끊어야겠지." "끊기 싫어..."
무심코 중얼거리다, 😾 하는 표정에 "끊을게, 끊을게." 하며 얼버무렸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끊게 될 줄이야. 역에서 담배가 적다고 새 갑이라도 샀으면 후회할 뻔했다.
녹차를 호록 마셨다. 마지막 모금까지 끝장을 내니 몸도 따듯해지고 배도 든든해지고 노곤해진다. 이대로 낮잠이라도 한 번 때리면 좋겠지만, 요즘은 내 뜻대로 잠을 못 잔 지가 오래. 별로 기대는 안 되는 채로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 을 해야... 하...
손에 잡고 있던 녹차잔이 떨어질 뻔해서 정신을 차렸다. 반사적으로 받아들긴 했는데. 우와, 먹고 졸다니 무슨 어린 아이나 할 법한 일을 했다. 깜짝 놀라기도 잠시, 다시 노곤해지자 메이사가 졸리냐고, 자기 방에서 눈 붙이겠냐고 묻길래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앞장선 대로 계단을 올라서, 복도에서 왼쪽 첫번째 방으로 들어서면 다다미 넉장은 되려나 싶은 비좁은 방이 보인다. 넉장 반도 아니고 넉장이 못 되는. 창고와도 같은 방이다. 세로로 길게 하나 난 창문에는 빛이 영 들질 않고, 먼지냄새가 풍기는데다 이불을 개켜놔서 망정이지 펴기까지 하면 발디딜 틈 없이 좁겠다. 거기에 앉은뱅이 책상 위에 온갖 파일과 서류들이 얹혀져 있어 생활하기 좋은 곳은 아니다 싶은 생각부터 든다. 노곤했던 것도 순식간에 쫓겨가고 어쩐지 서글픈 기분이 됐다.
누가 보더라도 번듯한 집이라고는 하기 힘든, 아니, 집이 아니라 방 조차도 되지 못할 공간이긴 하지. 좁고 먼지가 가득한 창고의 일부를 부랴부랴 치워 공간을 냈다고 해도 믿을법한 좁은 방. 창문도 좁고 세로로 나서 햇빛도 잘 안 들어온다. 처음 나왔을 땐 그래도 작은 아파트 셋방 하나를 빌려서 살았는데, 윗집이고 옆집이고 죄 이상한 사람들뿐이라 급하게 이사하고, 다음으로 간 집도 비슷한 일을 겪고 이사하고.... 이사에 이사를 거듭하다보니 돈은 없고, 아이는 있고, 날은 춥고. 그래서 여기저기 서성이다가 이 도시락집 사모님한테 발견돼서 주워졌다(?) 당장 몸 뉘일 곳을 찾아서 그냥, 감사하기만 할 뿐. 돈을 보태줄테니 다리 뻗을 수 있는 방이라도 빌리라고 연거푸 말씀하시긴 하지만 내가 매번 거절했다. 이 정도로도 충분하니까.
"이사를 자주 다니니까 돈이 금방 없어지더라고." "그래도 여긴 거의 공짜로 묵고 있어. 이런 방인데 돈은 못 받겠다고 하시기도 했고." "....더 넓은 방을 얻어서 살아도, 또 이사가게 될 거 같아서 그냥, 여기서 쭉 지내고 있지..."
그리고 잠시 침묵. 가만히 바닥의 다다미결을 보다가 확 고개를 들었다.
"이불 펴줄게, 잠깐 누워. 아까 찻잔도 떨어트릴 뻔했잖아. ...조금 쉬자. 나도 병원 갔다오니까 피곤하고."
잠깐만, 하고서 유우가를 거의 문 밖까지 밀어내고 이불을 편다. 좁은 방이라서 어쩔 수 없다. 이불을 펴면 꽉 차버리니까. 그리고 베개는 하나지만... 일단 유우가한테 양보하자. 많이 피곤해보이고.
"자, 누워도 돼. ...둘이 눕기엔 좀 좁을라나."
유우가가 누우면 내가 뒤이어 눕는다. 배가 나와서 불편할 수 있을테니, 유우가를 등지고 몸을 딱 붙인다. 좁은 방에서는 이렇게 밀착할 수밖에 없다. 어쩐지, 예전에 좁은 침대에서 같이 자던 기억이 나 눈물이 찔끔 나올 것 같았다.
"왜 이사가?" "왜 이사가게 될 것 같아...?" "내가 없는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해..."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배인 겨울바람 냄새. 바깥을 많이 돌아다닌 걸까, 이번 겨울은 많이 추웠는데. 머리카락에 코를 묻은 채, 메이사의 목소리를 들으며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메이사는 눈물을 글썽이며 뺨을 문지르고 있다. 내가 때렸다. 멍한 눈으로 날 올려다 보던 메이사는 이내 결심을 했단 듯이 안방을 나가, 탁자에 편지를 쓰고 더플백을 들고 집을 나선다.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에 나는 황급히 달려나가 메이사의 손목을 붙잡는데, 내 손아귀를 쓱 빠져나가는 감촉이 너무 생생해서.
번뜩 눈을 뜨자 나를 등지고 살그머니 문을 여는 메이사가 보여서 손목을 거칠게 잡아챘다.
"가지마." "다시는 실망시키지 않을 테니까, 애도 내가 잘 기를테니까, 메이사 그러니까 제발..."
복도의 불빛이 비춘 표정에 깨닫는다. 이제는 현실이라고. 함께 돌아가기로 약속했단 것도 떠올랐다. 그럼에도 두쿵거리는 가슴이 가라앉질 않아서, 아쉬운 마음을 꾸득꾸득 다시 밀어넣으며 손을 놓았다.
유우가의 팔을 베고 누우면 등 뒤로 맞닿은 온기가 따듯했다. 조금 쌀쌀한 방도 따듯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리고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별 거 없는 얘기지만. 그냥, 집주인이 이상한 사람이었다던가, 옆집 사는 아저씨가 이상한 사람이었다던가. 참고 살려면 살 수야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속옷 도둑맞고 나선 바로 떠야겠다 싶어서 이사했었다던가. 뭐 그런 이야기들. 이상하게 떠나려고 하면 기차가 연착되거나 운행중단이 되거나 해서 지체되는 일도 많았다는 소소한 얘기도 곁들여서. 그러다보면 등 뒤의 숨소리가 점점 규칙적이 되고, 나도 조금씩 졸음이 찾아온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하다보면....
- 메이사.... - 가지 마..
그런 소리가 들려서 귀가 휙 뒤를 향한다. 안 간다고 대답하려다가, 아 잠꼬대인가 싶어서 그만뒀다. 잠꼬대에 대답하면 안된다는 말도 있었고.. ....조심스럽게 유우가의 손을 쓸었다. 꿈에서도 내가 떠난 걸까. 그래도 이제.. 떠날 일 없으니까.
그 뒤로도 몇 번인가 유우가는 잠꼬대를 하고, 나는 손을 쓸어주며 꾸벅꾸벅 졸았다. 얼마나 그랬을까, 졸음을 살짝 깨게 만드는 감각이 들었다. .....화장실, 가고 싶네... 추워서 그런지 아기 때문인지 화장실 너무 자주 간다니까.. 유우가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문을 살그머니 열었다. 역시 복도는 좀 춥네. 빨리 갔다와야지. 그렇게 문을 열면, 갑자기 손목이 잡혀 뒤로 살짝 끌려갔다.
"으헷!?"
손목을 잡은 건 유우가였다. 아, 깨워버렸나... 그냥 잠깐 화장실에 가는 거라고 설명하려고 했는데, 유우가의 표정도, 말도, 손목을 잡은 힘도 심상치가 않아서. 잠시 멍한채로 듣다가, 마음이 아파서 잔뜩 찡그렸다. 유우가.....
"....괜찮아, 유우가. 나 잠깐 화장실 가려고..." "밖은 추운데, 금방 갔다 올 게. ....그래도 혼자 있기 싫어?"
그래도 같이 가겠다고 하는 유우가를 살짝 끌어안고, 손을 꽉 잡았다. 마음이 안 좋았다. 내가 떠난 것 때문에 유우가가 이렇게 됐으니까. 그대로 손을 잡고 화장실로 향한다. 그리고 문을 열기 전에 손을 놓았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화장실 안 까지 같이 들어가는 건 좀.
껴안는 메이사의 머리에 뺨을 기대고 문질렀다. 껴안아주는 게 좋아서, 가까이 있으면 풍기는 메이사의 체향이 좋아서 그대로 있다가, 끌어주는 대로 같이 화장실에 갔다. 익숙하게 같이 들어서려던 때. 제지당했다.
"...여기?" "알았어..."
뭔가 서운했다. 우리 같은 칸에 자주 들어갔던 거로 기억하는데 어쩐지 선이 그어진 느낌이라. 그래도 쭈굴한 채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등을 벽에 미끄러뜨리고 웅크려 앉은 채로 눈을 감았다.
메이사가 깨우는 목소리에 손을 잡고 일어나서 중얼거렸다.
"...다음엔 들어갈래. 나와있는 거 싫어..."
그동안 부족했던 잠이 긴장풀린 뇌에 잔뜩 쏟아부어져서,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잘 모르는 채로 메이사의 손을 잡고 안방으로 갔다. 그리고 문을 닫고나서 메이사를 바라봤다. 묵직한 배를 가누기 위해 오랜시간을 들여 이불에 눕는 메이사를.
뒤이어 나도 메이사 옆에 앉았고, "잘 자 유우가아..." 하고 중얼거리는 메이사의 입에 허리를 숙여서 홀린듯이 키스했다. 아니, 홀린 게 맞지. 잠에 취하면 몸에 익은 루틴대로 하게 되는 법이다. 배 때문에 뿌리치지 못하는 메이사의 얼굴 옆에 팔로 딛고서는 그대로 눅진한 소리가 나게 입맞췄다. 어쩌면 아까 선 그은 데에 대한 화풀이일지도 몰랐다. 잠들려다 말고 봉변을 당한 메이사 옆에 누워서, 나를 등진 몸과 배를 이쪽으로 돌려놓고 계속 키스했다. 다행이도 잠에 취했다고 무뎌지진 않았다.
끝내고 나오자 벽에 기대 웅크린 채로 자는 것 같은 유우가가 보였다. 많이 피곤한 거 같은데 그냥 이불에 누워있지...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얼른 들어가서 재워야지..
"유우가, 들어가서 자자." "에.... 응.. 알았어. 일단 일어나. 자."
화장실도 같이 들어가자니.... 그, 그래. 잠꼬대처럼 하는 말일라나. 아까 잠꼬대도, 깨서 날 붙잡고 한 말도 그렇고... 내가 또 없어질까봐 걱정인 거겠지. 이제 그러지 않겠다고 했는데도. ....나도 예전엔 유우가가 다시 떠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도, 늦게 들어오거나 연수받으러 가면 또 두고 간 건지 불안하고 그랬으니까. 어쩐지 알 것 같아. 그래서 화를 내거나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조심스레 유우가를 데리고 방으로 돌아와, 묵진한 배를 잡고 천천히 누웠다. 아직 만삭까진 아니어도 예전처럼 벌렁 눕거나 하는 건 좀 걱정이 돼서.
"엇차.... 유우가도 얼른 누—?!"
눕지 않고 옆에 앉길래, 얼른 누우라고 하면서 가볍게 이불을 두드리다가.... 갑자기 키스해서 깜짝 놀랐다. 아까처럼 가벼운 키스가 아니라 서로 얽고, 눅진한 소리가 방에 울릴 정도로 진한 키스. 조금 당황스러웠다, 꽤 오랜만이었기도 하고. 옅어지긴 했지만 은은하게 풍기는 담배냄새가 그리움을 마구 자극해서, 눈을 슬며시 감았다.
유우가가 누운 뒤에도 우리는 한참을 키스했다. 등지고 누웠던 아까와 다르게, 부푼 배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면서. 오랜만인데도 키스만큼은 예전하고 똑같아서, 아니.... 아....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머리가 녹아서 진득하게 흘러내리는 느낌이었다. 나쁜 게 아니라 좋은 의미로.
"하...아..... ....응...." ".....잘 자, 유우가..."
돌아가서도 이렇게 하자며, 그대로 품에 고개를 묻고 잠든 유우가. 조심스럽게 머리칼을 쓰다듬고 나도 눈을 감았다. 거의 매일 혼자서 웅크리고 훌쩍이며, 유우가를 그리워하면서 잠들던 방이지만... 오늘은 따뜻하고 그리운 냄새에 푹 감싸여서.. 행복한 기분으로 잘 수 있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