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지긋지긋한 틱톡 소동에서 며칠이나 지났는지? 방송 다음날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온 몸에 꽂혔던 관심들은 그야말로 일생 잊지 못 할 기억이 되리라. 그럼에도 바득바득 속으로 이 갈면서 애써 무시하고 지내 왔다. 조금만 지나면, 앞으로 조금만 더 지나면. 방송 분량 뽑았다고 즐거워하던 그 얼굴이랑도.
......그리고 시간은 지나,
익숙한 듯 낯선 복도에 발소리 울린다. 느리지만 또렷하다. 뚜벅, 뚜벅, 뚜벅, 천천히 코너 돌아나온 남현우가 문 앞에 서면. 이어서 도어락 소리. 방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이 제법 지친 기색이다. 현우야 수퍼노바 춰 주면 안 돼? 하도 들어서 이젠 귀에 윙윙 울리는 것 같아. 하도 여기저기서 된통 당한 턱에 영 공부에 집중을 못 하겠다. 성적에 영향 가면.. 안 되는데. 방에 소민이 먼저 와 있었든, 아니든, 아랑곳하지 않은 채 똑바로 책상까지 걸어가 앉았다. 뭘 하는려는지 지켜본다면,
턱, 턱, 턱, 두꺼운 참고서며 공책들이 몇 권이고 나와 책상 한 켠을 채우고. 피로 몰아내려 미간을 잠시 내리눌렀다가 펜을 들었다. 카메라는 돌고 있는데 신경도 안 쓰는 양 사각, 사각, 종이소리만 한참.
>>339 방송실에서 한참 편집을 마치고 돌아온 유소민, 어김없이 카메라가 돌아가있는 것을 체크하고 들어왔다. 띠리릭, 하고 울리는 도어락 소리와 함께 가볍게 문이 열렸다 닫힌다. 안으로 들어가면 사각이기만 반복하는 남현우의 모습이 비친다. 이제는 지겹다는 듯 질린 낯빛으로 "에~~~" 하면서 건네는 한마디.
"남현우 학생~? 너무 공부만 하는 거 아닌가요? "
"우리는 방송을 하러 왔잖아요~! 방송을 해야죠! " 같은 말을 재잘거리며 가방을 제 침대 쪽에 내려놓고는 갖가지 "제발 노잼공부그만해라" 같은 결론인 말들을 늘어놓다가. 유소민은 씨익 웃으며 이렇게 말하기에 이르렀다.
"바깥 공기. 마시고 싶지 않나요~? "
"산책이나 가죠~! " 따위의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늘어놓는 유소민 되시겠다. 그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347 사각, 사각, 사각, 몇 장이고 문제지가 넘어가기를 한참. 도어락 소리 울리면 잠깐 현관에 눈길 줬다가 금새 다시 공부에 집중한다. 아니, 정확히는 집중'하려고' 했다. 또 다시 재잘거리는 그 목소리가 작은 방을 울린다. 다크서클 내려앉은 눈가가 미묘하게 움찔거렸다. 너무 공부만 하는 거 안닌가요? 안 들려. 우리는 방송을 하러 왔잖아요, 방송을 해야죠! 안 들린다고. 말대꾸 않고 스스로 세뇌하듯 풀리지 않는 문제만 노려보고 있었다. 한참 무어라고 소란스레 말 꺼내더니 바깥 공기 마시고 싶지 않냐느니, 산책 가고 싶지 않냐느니, 들리지 않게 한숨 쉰다. 삐거덕, 그제서야 의자 돌려 소민을 똑바로 쳐다봤다.
".....시간 없어. 진도 끝내려면 오늘은 안 돼."
안 그래도 촬영 때문에 공부 몰아서 하느라 죽을 맛인데, 오늘마저 별 소득 없이 끝내면 다음 모의고사 점수는 어떤 꼴이 날 지 모른다. 게다가 자기도 수능 앞둔 고3이면서 이리 태평스럽게 굴어도 좋은가. 안경 너머로 느껴질 지 모를 조금 따가운 시선.
"방송 분량 때문이라면 다른 팀도 있잖아."
앗차, 저도 모르게 말투에 은근한 날이 섰다.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사과하는 건 그림이 또 이상해질 것 같아서 그냥 그대로 다시 의자 돌려 앉으려는 찰나.
아니잖- 말도 안 되는 헛소리에 반박하려 훽 몸을 돌리는 순간 마주친 얼굴엔, ...웃어? 동공에 들이박히는 모습엔 분명 어떠한 힘도 없을 터인데 마치 날카롭게 잘 갈린 어떤 날붙이처럼. 몇 초간 눈을 마주치고 있다가 하, 먼저 실소가 튀어나온 건 이 쪽이다. 그래, 방송 분량. 지금 너한텐 그게 제일 중요하겠지. 도파민. 남들 이목 끌기에 좋은 자극적인 무언가. 잠시 말문 막힌 것처럼 시선이 허공을 맴돌았다. 뭔가 말하고 싶은데 차마 말이 나오질 않았다. 온 몸의 체온이 머리로 몰리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속에서 뭔가 부글거리는 느낌이. 토해낼 수도 없는 이것을 어떻게 해야? 아. 그래.
"너."
부르는 목소리가 대번에 바뀌었다. 이 악문 듯 웅얼거림처럼 들려오는 낮은 소리, 평소에 깔려 있던 희미한 부드러움조차 없고 어쩐지 차갑다. 이어지는 행동, 책상 위에 펼쳐 뒀던 참고서 탁 소리 나도록 덮어 두고. 의자 밀고 일어선다. 드르륵, 어쩌면 위협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다.
방송 분량이 중요하다는 말이 들려오자마자 바로 몰아넣듯 밀쳐진다. 체격의 차이는 생각 이상이었고, 유소민은 힘없이 바로 밀려져 나갔다. 어디로? 침대 있는 벽으로. 하필이면 카메라가 있는 사각지대 가까이다. 오......벌써부터 시청자들의 환호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다.......
"남현우 학생......... "
다소 놀란 듯 눈을 크게 띄우며 올려다보는 유소민이, 작게 남현우를 향해 이렇게 물으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