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금을 모티브로 하고있지만 잘 모르셔도 상관없습니다. ※상황극판의 기본 규칙과 매너를 따릅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먼저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집시다. 모니터 너머의 이용자도 당신처럼 '즐겁고 싶기에' 상황극판을 찾았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오고 가는 이에게 인사를 하는 자세를 가집시다. ※상대를 지적할때에는 너무 날카롭게 이야기하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아' 다르고 '어' 다릅니다. ※15세 이용가이며 그 이상의 높은 수위나 드립은 일체 금지합니다. ※특별한 공지가 없다면 스토리는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7시 30분~8시쯤부터 진행합니다. 이벤트나 스토리가 없거나 미뤄지는 경우는 그 전에 공지를 드리겠습니다. ※이벤트 도중 반응레스가 필요한 경우 >>0 을 달고 레스를 달아주세요. ※계수를 깎을 수 있는 훈련레스는 1일 1회로, 개인이 정산해서 뱅크에 반영하도록 합니다. 훈련레스는 >>0을 달고 적어주세요! 소수점은 버립니다. ※7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 경우 동결, 14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경우 해당시트 하차됩니다. 설사 연플이나 우플 등이 있어도 예외는 아닙니다. ※기존 모카고 시리즈와는 다른 흐름으로 흘러갑니다. 따라서 기존 시리즈에서 이런 설정이 있고 이런 학교가 있었다고 해서 여기서도 똑같이 그 설정이 적용되거나 하진 않습니다. R1과도 다른 스토리로 흘러갑니다. ※개인 이벤트는 일상 5회를 했다는 가정하에 챕터2부터 개방됩니다. 개인 이벤트를 열고자 하는 이는 사전에 웹박수를 이용해서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벤트를 진행하는 이는 계수 10%, 참여하는 이에겐 5%를 제공합니다.
문 밖에서 흘러들어오는 색채의 향연을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로 표출해야할지 모를 분노와 어디로 흘러가게 할지 모를 슬픔, 혹은 안타까움이 담긴 소음들이 색이 되어 흘러들어온다.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은 채, 제 무릎 위에 자리를 잡은 카오스 고양이만이 평온하게 고르릉거릴 뿐이다.
오랜만에 혜성은 비사문천 아지트에 머무르는 중이었다. 오자마자 한 일은, 언제나 그러했듯 일방적인 통보였다. 기한이 정해지지 않은 비사문천 활동 중지. 또한, 자신이 안티스킬 시험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예전처럼 대리인을 내세울 거라는 일방적인 선언. 대부분 제 결정을 존중하며 받아들이는 와중, 늘 그러하듯 반발하는 이 한명정도는 있을거라 직감했기에 혜성은 흘러들어오는 소리의 색채들이 어지럽게 흩어지고 퍼져나가는 풍경을 묵묵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한동안 스트레인지가 시끄러울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 소란을 무시로 일관하겠습니다. 그 어떤 소동에도, 그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하다못해 아지트 자체가 습격받는 최악의 상황이라도. 절대로 응전하지 마세요. 우리는 그들의 싸움을 방관합니다. 또한 지금부터 비사문천은 대외적으로 잠적하는 걸로 합니다. 꼬리가 밟힐 일이 없도록 제가 최대한 노력해볼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무기한 잠적기에 접어든 김에 정상적인 생활로 각자도생하는걸로.
고르릉거리는 고양이의 머리에 손을 대고 혜성은 천천히 쓰다듬으며 달큰한 향이 배어든 연기를 길게 뱉어낸다. 비사문천의 단원들이 소중하기에 어떻게든 그들의 안전을 우선시해야했다. 그들이 있어야 언제가 되더라도 비사문천은 부활할 수 있으니. 언젠가는 제 생각과 판단을 저들이 받아들여줄 거라고 혜성은 감히 그렇게 믿었다.
그러니, 제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철저하게 흔적을 지우고 숨죽이고 계세요. 때가 되면 제가 다시 여러분들을 불러들일테니.
남겨진 자리를 채우는 것은 왁자지껄한 쇼핑몰의 소음. 무수히 지나가는 기척과 발소리. 차갑게 비산하는 조명빛.
그 틈새를 가르고 다가온 한 행인이 그녀의 빈 옆자리에 앉았다. 검고 긴 머리가 벤치의 빈 공간을 채웠다.
손가락 틈새로 드러난 검푸른 눈동자에 검은 머리카락이 비쳤다. 긴 터럭을 따라 올라간 끝에 붉은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치자 손가락의 틈새는 사라졌다.
메마른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언제부터, 듣고 있었어요." "후배님이 가게에서 나왔을 때부터랍니다." "처음부터가, 아니고?" "네, 우연히 왔다가, 우연히 발견했을 뿐이에요. 믿지 않겠지만요." "...어련하실까."
한바탕 지나가는 교복 차림 여학생들. 두 사람은 안중에도 없듯이.
"그래서- 정말로 할 건가요?" "...뭘요." "뭐긴요. 후배님이 큰소리 친 계획 말이죠." "......" "전에도 말 했지만, 그 정도 규모로 건드리게 되면, 꽤나 귀찮답니다. 요즘도 뒷통수며 등이며 따가운 걸요." "...어쨌든 할 수는 있는 거, 잖아요." "그래봤자 되돌려지면 의미 없지 않을까요?" "그럼" "또 하면 된다, 라고 하겠죠. 당신이라면."
찌를 듯한 검푸른 시선이 옆을 향했다. 붉은 눈동자는 가만히 휘어 웃었다.
"그렇게 번거로운 과정 없이 깔끔하게 끝낼 방법이 있답니다." "......" "당신도 사실 알고 있죠? 그러니까 제게 그런 부탁을 했겠지요." "...하고 싶은 말이 뭐에요."
하얀 얼굴이 환한 조명빛을 받아 더욱 희어졌다. 동공 좁아진 눈동자는 미동도 없었다. 마주한 가는 입술이 미소지었다.
"바다를 보러 갈 거라면, 지금 가는게 좋지 않을까요? 곧 해가 질 테니까요."
그 말을 듣고도 하이얀 얼굴은 한동안 그 상태로 굳어 있었다.
또다시 몇 명의 사람이 스쳐지나가고 멀찍이 보이는 바깥이, 붉어질 즈음-
한 명이 먼저 일어섰다. 비틀거리며 걸어 쇼핑몰을 나갔다. 차고 비린 바람 불어오는 방향을 향해.
머물렀던 자리는 긴 머리를 올렸던 검은 리본 만이 남았다. 진청색 머리카락이 몇 가닥 얽혀 장식처럼 반짝였다.
조용히 웃는 그 앞으로 몇 명의 사람이 지나갔다. 단란하게 얘기하는 사람들 뒤로 빈 벤치 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빈 자리에, 언제 치워질 지 모르는 리본 한 가닥이 처량하게 식어갈 뿐이었다.
[...전원이 꺼져 있어 삐 소리 후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연결된 이후에는 별도의 통화료가 부과됩니다...] [...전원이 꺼져 있어 삐 소리 후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연결된 이후에는 별도의 통화료가 부과됩니다...] [...전원이 꺼져 있어 삐 소리 후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연결된 이후에는 별도의 통화료가 부과됩니다...]
또다시, 어떻게든 살아나왔다. 그러나 수중에서 올라와 밟은 뭍의 온도는 물속보다 더 차가웠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처럼 흐리멍텅한 하늘이 폐부에 건조한 잿빛 공기를 채운다. 예고된 종말까지 앞으로 3주의 유예가 걸렸고, 막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뒤로 물러난다는 선택지는 사실상 없다. 우리는 몰릴 대로 몰렸고, 무지했던 때로 돌아갈 방법조차 요원하며, 머리 뒤에는 직접적인 총구가 겨눠진 상태니까. 그렇기에 실질적으로 갈 수 있는 곳은 끝이 보이지 않는 협곡 아래 뿐이다. 살아남을 확률이 없다시피 한 건 피차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홀로 빠져나와 뻔한 확인사살을 맞는 것보다는 모두의 손을 잡고 미지의 변수를 따라 뛰어내리는 편이 낫겠지. 그렇게 믿고, 마음을 굳혔다.
하지만 그게 총구보다 협곡이 무섭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그래서 리라는 미뤄왔던 걸음을 옮겼다. 용기를 내는 데에도 마중물이 필요한 법이니까.
화단의 시든 꽃잎 위에 서리가 내렸다. 낙엽이 전부 떨어져 내린 탓에 고스란히 드러난 마른 나뭇가지가 찬바람을 따라 흐느적거린다. 그러나 겨울 특유의 침잠에도 불구하고 선 아녜스 아동 청소년 복지 센터는 여전히 따스한 분위기를 풍겼다. 담벼락 한구석에 새롭게 그려진 알록달록한 벽화와 연말을 기념하기 위해서 사방에 배치된 크리스마스 오브젝트들이 여기저기 감긴 작은 LED 전구의 빛을 받아 반짝거린다. 바깥이 추운 탓인지 앞마당에는 평소보다 아이들이 적었지만, 그 반작용으로 내부는 훨씬 붐볐다. 리라는 로비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교실을 찾아가는 어린이들과 서류를 들고 바삐 걷는 선생님들을 하나씩 훑다가 곧장 방향을 틀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목적지는 선경의 사무실이다.
"아, 죄송합니다. ......어? 야, 오랜만이다!" "......시현 선생님?"
띵. 문이 열립니다. 단정한 안내 음성과 함께 엘리베이터의 슬라이딩 도어가 열리고, 동시에 안쪽에서 길쭉한 인영 하나가 튀어나왔다. 졸지에 부딪혀 떠밀린 리라는 그대로 몇 발자국을 휘청휘청 물러나서야 상대를 알아볼 수 있었다. 반가운 얼굴이다.
"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불러, 조금 안 왔다고 그새 얼굴도 까먹었냐? 응?"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으악." "안색은 왜 이래? 퀭~ 하니 허~ 얘가지고 길 가다 픽 쓰러질 것 같네. 잠 못 잤냐? 아님 새 병원이 안 맞아?"
머리를 쓰다듬는 건지 흐트러뜨리는 건지 모를 투박한 손짓이 지나가면 명백히 다정한 관심이 어린 목소리가 건네진다. 그러니 눈시울이 시큰해지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다.
"......너 울어?" "아닌데요?" "아니, 왜 울고 그래?!" "안 운다니까요!"
하필 이런 건 또 귀신같이 알아보지. 리라는 몸을 숙여서까지 저를 들여다보려 하는 시현으로부터 한 팔을 들어 얼굴을 가리는 동시에 남은 쪽 손으로 상대의 얼굴을 쭉 밀어냈다. 어리광 부리려고 온 것도 아닌데 눈물샘이 주책이다. 그나마 지금 마주친 사람이 하나뿐이라 다행이지......
"......그래서 보급품이 더 필요해요. 이제 겨울이라...." "...렇군요, 그럼—... 아니, 차라리 같이..." "안 돼요. 위험하니까 저 혼자. 애초에 대부분은 저희 같은 일 하는 사람들을 안 반겨서요. 경 선생님까지 가시면 공연히 거기 사는 사람들 신경만 긁을 거예요." "번번히 혼자 맡겨두기 미안한데." "괜찮아요. 이 정도야 거뜬하고, 리스크 지는 거 감수하고 다니는 거니까... 응? 잠시만요, 선경 선생님. 저거... 어? 맞네! 리라야! 이게 얼마만이야! 놀러 왔...? ...잠깐. 뭐야? 울어?"
는 무슨. 와중에 익숙한 목소리가 다가오자 의지와 상관없이 눈물이 흘러내린다.
"...진짜 아닌데... 다미 쌤도 오랜만이에요..." "우는 거 맞잖아? 왜 울어? 시현 쌤이 뭐라고 했어? 어이구, 이리 와, 이리 와." "왜 갑자기 화살이 이리로 튀지? 나 아무 것도 안 했거든? 다미쌤아? 주다미야? 듣고 있냐?"
조금 작지만 단단한 손이 등을 두드리면 기어코 시야가 흐려진다. 직후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과 반사적으로 일그러지려는 표정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숙이면, 아. 또다시 익숙한 신발코가 시야에 들어온다. 단정한 단화.
"선경 선생님..."
대답은 따뜻한 포옹으로 대체된다. 백 마디 말보다 확실한 한 번의 온기에 리라는 결국 울음을 참지 못하고 쏟아낸다.
눈물젖은 만남 후 결성된 티타임에 꺼내기엔 다소 뜬금없는 주제다. 시현은 따뜻한 머그잔을 들어올려 입가로 가져가는 리라를 가만히 응시하다가 한쪽 눈썹을 까딱였다. 평소 같았으면 카페테리아로 갔겠지만, 이리라의 눈물샘이 예상치 못하게 터져버린 탓에 현재 네 사람은 선경의 사무실에 차곡차곡 앉아 직접 담근 유자차를 마시는 중이었다. 덕분에 필연적으로 주위는 고요했고, 툭 하니 던진 말 한마디는 귓속에 효과적으로 박혀 들어온다.
"갑자기?" "네. 갑자기 궁금해져서요." "......너 혹시 잠 덜 깼냐? 악몽이라도 꿨어?" "아니요. 그냥, 다들 이런 생각 한번씩은 하잖아요."
멸망이라. 멸망. 인류의 번영 이래로 주구장창 멀고도 가까운 단어이긴 했지만 이 상황에 적절한지는 역시 잘 모르겠다. 그런 이야기를 할 타이밍인가? 지금이? 근황 토크나 할 줄 알았더니. 차를 한 모금 넘긴 시현은 머그잔을 다시 테이블 위에 돌려놓는다.
"나는 뭐... 잘 모르겠다. 그냥 끝까지 할 일 하다 가겠지 싶은데. 다미쌤은?" "음, 아마 저도 그러지 않을까요? 많이 심란할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마지막 날이 확실하게 예정되어 있다면 그날엔 늦잠 자고, 맛있는 거 잔뜩 먹고 일찍 자고 싶네요." "경 선생님은 어떠십니까?" "글쎄요, 딱히 생각하고 싶지 않은 가정이라... 음, 어떨 것 같냐고 묻는다면— 슬프고 공허할 것 같아요. 하지만 역시 저도 제가 할 일을 하겠죠. 그래도... 다미 선생님 말씀대로 마지막 날만큼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어쩌면 바다를 보러 가는 것도 좋겠네요. 리라가 찾아다 준 것들과 함께."
움찔. 그 대목에서 머그잔을 감싸고 있던 리라의 손가락이 떨리는 걸 시현은 분명히 볼 수 있었다. 어쩌면 그의 동료들도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셋 중 그 누구도 섣부르게 입을 열지 않는다. 적어도 이리라가 다시 말을 시작할 때까지는.
"......경 선생님은 그간 괜찮으셨어요? 제가 그렇게 얘기한 다음에, 바로 병원도 바꿨어야 해서... 오지도 못하고, 아니, 사실 안 오려고 하고, 그랬는데..." "왜 안 오려고 했나요?" "......무서워서요. 진실을 아셔야 한다고 생각했고, 다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이 하겠지만 제 행동이 오히려 선생님 마음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한번 더 남겼을까 봐 걱정됐어요." "음, 확실히 아예 아프지 않은 일은 아니었죠." "......" "그게 오히려 나를 강하게 만들어줬지만요. 처음부터 괜찮았다고 할 순 없겠지만, 지금은 분명 괜찮아졌어요.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일상을 이어나가고 하던 일을 지속하는 게 그 애가 바라는 일일 테고, 애써 내가 모르던 걸 찾아내 알려준 리라를 위한 일이니까요."
두 사람 사이에서 묵직하게 오가는 대화를 듣던 시현은 문득 손목의 시계를 바라보았다. 디지털 숫자가 초 단위로 변화하며 시간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리라야. 들었지? 선생님은 그러시단다. 그러니까 눈치 보지 말고 오고 싶을 때 그냥 와. 에휴, 난 또 너무 안 오길래 별 생각을 다 했네." "무슨 생각이요?" "그냥 뭐, 새 병원이 너무 좋아서 안 오나? 이런 생각." "뭐야, 그런 건 아니었어요! 거긴 그냥 병원일 뿐이에요. 전 여기가 더 좋아요."
그새 머그잔 하나를 전부 비운 다미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라고 거들며 의자 뒤로 다가와 리라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는다. 각자의 잔 속에서 유자차가 줄어듦에 따라 다소 경직되었던 분위기도 점차 녹아내려갔다. 벽난로를 앞에 둔 고드름처럼 또다시 그렇게 평화로운 온기가 가슴 속에 퍼져나간다.
"그래서 아까 그 질문은 뭐야?" "어떤 거요? 아~ 멸망 이야기?" "그래 인마."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티타임은 선경의 다음 상담시간이 다가오기 전에 자연스레 마무리지어졌다. 엘리베이터 내부의 공기는 몇 주만에 더욱 차갑게 식었고, 실내에서도 겉옷을 챙겨 입어야겠다고 자각할 때마다 시현은 시간이 폭풍처럼 흘러갔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그 사이에 많은 것이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것들도 있다. 좋은 쪽으로나 나쁜 쪽으로나. 다만 1년간 그의 주변에서 일어난 변화에는 유독 이 꼬맹이가 많이, 또 깊게 얽혀있었다는 게 시현의 신경을 자극했다. 이리라. 사건을 몰고 다니며 그 자신도 급격하게 변해버린 어린애. 여름까지만 해도 그저 그런 혈기만 있는 애송이에 불과했는데.
"사실 뭐가 될 만한 질문도 아니었어요. 그냥 선생님들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실지가 궁금해서 여쭤본 거예요." "그러니까 그 질문을 갑자기 왜 했냐고." "비밀이에요." "참 내 어이가 없어서. 그래, 마음대로 해라. 대신 나도 하나 묻자." "뭔데요?" "만약 몇 주 뒤에 세상이 멸망한다면 넌 어떨 것 같냐?"
띵. 문이 열립니다. 단정한 안내 음성과 함께 엘리베이터의 슬라이딩 도어가 열리고, 리라가 걸음을 옮긴다. 먹구름 걷힌 하늘에서 쏟아지는 하얀 겨울 햇살이 로비의 통유리를 통해 들이치며 역광을 드리운다.
"글쎄요. 딱 어떻다고 말하긴 애매해요. 한없이 화가 나다가 우울해지기도 하고, 두렵다가도 근거 없는 자신감이 솟구치기도 해요. 하지만 확실한 건,"
구름이 걷혀서 아이들이 밖으로 나간 탓인지 로비는 조금 전보다 한산해져 있었다. 두 선생은 한 학생이 가는 길을 따라 걷다가 출입문 앞에서 멈춰섰다. 한껏 길어지고 더욱 풍성하게 굽이치는 머리카락이 빛을 받아 반짝인다. 아이의 얼굴은 여전히 핼쑥했지만 적어도 막 도착했을 때보다는 조금 더 나아 보였다.
"저도 끝까지 할 일을 할 거라는 거예요. 소중한 것들이 이 세상에 있으니까."
사실 질문에 대한 이리라의 답변은 이상했다. 그저 동문서답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실제하는 멸망 시나리오를 두고 하는 말 같기도 했으니까. 다만 장황한 감상을 매듭지은 결단은 여태껏 들어왔던 어떤 목소리보다 단단해서 시현은 굳이 더 말을 얹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