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제 와서 그런 것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그때 그런 기사가 나왔을때도 해인 본인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향후 데뷔할 세나에게 영향이 갈까봐 강경 대응해달라고 요청한 것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인도 엄연히 소속사가 있다보니 이런 것에 관해선 처리하기 편해서 좋았다. 지금은 학업에 집중하고 싶다는 이유로 활동을 거의 안하고 있지만 말이다.
" 세나 정도면 내가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닌가? "
그렇게 말한 해인은 예전엔 잘 보여주지 않던 짙은 미소까지 지어보이며 말했다. 2학년 중간부터 활동을 크게 줄이고 학교 생활에 전념하고 있는 해인은 이전보다 좀 더 감정적인 부분을 많이 보여주게 되었다. 아무래도 아티스트 활동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줄어든게 한몫한게 아닐까 싶지만 말이다.
" 나도 못했지 뭐야. 개인 사정으로 파트너가 중도 하차하는 바람에. "
뭐할지 다 정해놨는데 못한게 내심 아쉬웠나보다. 세나만큼은 아니더라도 해인도 춤은 출 줄 아는 편이었다. 만약 사람에게 스테이터스가 있다면 예체능 계열로 몰려있는듯한 느낌. 덕분에 공부는 남들만큼 해도 잘 안오는 편이었지만 상식에서만 안밀리면 된다고 생각하는듯 했다.
" 밥 먹었어? 안 먹었으면 먹으러 나갈까. "
한국인은 밥심. 그리고 밥이 중요한 민족이니만큼 오랜만에 만난 자리는 식사로 이어지는 법이다.
세나의 목소리는 진지하게 지켜보겠다는 느낌보단 적당히 흘러가는 느낌의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가까웠다. 진짜로 마음에 드는 이가 생겨서, 정말로 저 사람이다 싶은 사람이 생겼을 때도 과연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정도의 '어디 두고 봐요~' 라는 느낌의 장난스러운 목소리는 그만큼 세나가 지금 이 상황을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나중에 놀려줘야지! 정도로 가볍게 생각을 하며 세나는 오른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작게 쿡쿡 소리를 내며 웃었다.
"아. 오빠 그거 못 췄어요? 그러고 보니 오빠 몫은 못 본 것 같기도 하고? 후훗. 뭐, 못한 것은 못한 것이니까 어쩔 수 없죠. 저도, 오빠도 말이에요."
조금 아쉬운 것은 자신이나 해인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그것에 얽매일 순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자신은 자신대로 지금부터라도 이 프로그램을 마음껏 즐길 생각이었다. 뭐가 되었건 최대한 즐겁게. 나중에 추억거리 중 하나로 남을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속으로 다짐하며 그는 속으로 아자! 화이팅! 을 크게 외쳤다.
한편, 해인이 밥을 먹으러 나가자는 말을 하자 세나는 가만히 두 눈을 깜빡이며 해인을 바라봤다. 그녀는 아직 밥을 먹지 않았다. 그야 이사하기 위해서 이것저것 준비를 하고 짐을 싸고 지금 막 왔으니 어떻게 밥을 먹을 시간이 있었겠는가. 상관없으려나?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배고프긴 했어요. 좋아요! 밥 먹으러 가요! 혹시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아. 칼로리 걱정은 하지 마시고요. 계속 적절하게 관리해서 하루 정도는 조금 이것저것 먹어도 괜찮거든요. 그렇다고 해도 디저트를 막 많이 먹거나 하면 그건 곤란하지만..."
그건 충분히 자신이 관리할 수 있다는 듯이 그는 자신만만한 목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슬슬 벚꽃 피는 것 같던데... 오빠는 벚꽃 구경했어요? 구경할 거면 지금 빨리 구경가야 할 것 같던데."
세나의 장난스러운 말에 해인은 마찬가지로 장난스러운 어조로 받아치고선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바라보았다. 아직 해가 지려면 시간이 꽤나 남았기에 나갔다 오기에도 충분했다. 물론 밤에 나가는 것도 밤산책을 즐기는 그에게는 꽤 좋은 일이었지만 세나가 싫어할지도 모르니 일단 해가 있을때 나갔다 오는게 좋아보이긴 했다.
" 그래도 이번 미션은 덕분에 수월했네. "
6행시를 지으라는 말에 대체 어떻게 지어야할지 감도 안오고 있었는데 세나가 준비해와준 덕분에 이번 미션은 별 탈 없이 넘길 수 있었다. 밥 먹으러 나가자는 말에 대답한 세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해인은 아이돌의 삶은 꽤 힘들어보인다, 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그녀가 부담없이 먹을만한게 뭐가 있을지 잠시 고민에 빠졌다.
" 그래도 기왕이면 탄수화물이 적은게 좋겠지. 스테이크는 어때? "
물론 스테이크도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냐? 라고 물어보면 엄청까지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스테이크 자체의 칼로리는 그렇게 높지 않았다. 물론 조리법이 꽤 자극적이긴 하지만 ... 곁들여 먹는 것들도 영양 밸런스적으로 보면 꽤나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하며 해인은 세나를 바라보았다. 물론 조금 부담이 될 수도 있겠지만 ...
" 미션 도움도 받았으니 저녁은 내가 사는걸로. 어때? "
이렇게 하면 명분도 있고 좋지 않을까 생각하는 해인이었다. 그러다 나온 벚꽃 이야기에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나 싶어 달력을 바라본 해인은 말했다.
" 그럼 저녁 먹고 근처에서 벚꽃이나 보고 올까? 아니면 시간내서 소풍 느낌으로 간다던가? "
"후훗. 그래도 적으면 좋긴 하죠? 스테이크도 좋아요. 대신에 야채도 조금 있으면 좋겠는데... 야채가 사이드로 나오는 좋은 집 혹시 아세요?"
물론 자신도 이곳저곳을 알긴 하지만, 해인이 아는 곳은 어떤 곳일까 싶어 세나는 굳이 그렇게 물었다. 스테이크 집은 정말 단순히 스테이크만 나오는 곳이 있고, 샐러드나 밑반찬 개념으로 야채가 많이 나오는 곳도 있었으니까. 둘 중 하나라면 역시 후자가 조금 더 좋을 것 같다고 세나는 생각했다. 한편 해인의 입에서 저녁을 자신이 사겠다고 하는 말에 어라?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두 눈을 깜빡였다.
"저야 사주면 좋긴 한데 돈 괜찮아요? 물론 오빠에게 돈은 많을 것 같긴 하지만... 스테이크 가격이 마냥 싼 것은 아니잖아요?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저도 어느 정도는 있으니까.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혹시나 부담이 된다면 얼마든지 이야기를 하라고 하면서 그녀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가격이 싼 것이라면 얻어먹는 것에 부담은 없으나, 가격이 비싼 음식의 경우는 사주는 사람도 부담이 될 수 있고, 얻어먹는 사람도 미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일단 이 부분은 해인의 답을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입을 가만히 닫았다.
"오빠가 저와 따로 길게 데이트 하고 싶다고 한다면 소풍 느낌도 좋지만... 지금은 저녁을 먹는 것이 우선이니까 식사 후에 가볍게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프로그램이 프로그램. 이거 방송으로 그대로 나가는 것일테니 그녀는 굳이 데이트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가볍게 웃었다. 어느 쪽이건 상관없다는 듯, 가볍게 대답하며 그녀는 쭈욱 기지개를 켰다.
"가요. 그건 그렇고 섬세하시네요. 스테이크를 제시할 줄은 몰랐는데. 후훗. 보통은 적당히 파스타 같은 거 이야기하지 않을까 했거든요."
라고 대답했다 뺨 맞은 이후로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이 유독 머리를 맴돈다. 문제의 썸녀는 강소호보다 10cm는 작았어서 안 아플 줄 알고 맞아줬는데 놀이터에 혼자 남겨졌을 때야 떠올랐다. 아 쟤 배구부였지. 그 때 이후로 트라우마가 남아 연애를 한 번도 하지 않은 건… 아니고. 물론 뺨에 멍자국 달고 일주일 살아보니 운동하는 여자애 함부로 만나면 안 된다는 진리를 깨닫기는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컸던 건
뺨에 희미하게 남은 푸른기와 집 앞에 울면서 찾아온 소녀 그리고 너도 언젠가 한 번쯤 그럴 줄 알았다는 눈으로 보는 아빠의 얼굴이…
끝내주게 재수없었던 게 그 이유다. 반성은 했을지언정 여전히 사람이 덜 된 강소호는 방송에도 "와 한 달도 안 돼서 두 명이랑 동거를 해보네." 라고 감탄할 뿐이다. 몇 안 되게 주기적으로 연락하는 대상인 할머니는 카카오톡 확인도 안 하니 산책이라도 할 겸 기숙사 문을 열었다가
"…안녕?"
강소호는 새 동거인이자 드물게 머리가 긴 남성을 마주친다.
- 멋대로 버들이가 기숙사 문 앞에 있다고 쓰긴 했는데 혹시 잇기 어려우시면 바꾸셔두 됩니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나는 오늘도 열심히 도서부 활동을 하고 있다. 요즘 지나는 굉장한 폭풍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바로 사랑의 방정식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그저 소호의 권유에 덜컥 참여하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인기가 많았다! 학교에서 이 프로그램을 안 보는 애들은 없어 보였고 시사야 놀자에서는 연애 특집으로 이 프로그램을 연일 다루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관심 처음이야. 음지(?)에서 조용히 살아가던 지나는 눈이 뱅글뱅글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열심히 도서부 활동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책 순서를 멋대로 뒤바꾸고 다니는 빌런 때문이다. 오늘도 부지런한 빌런이 책 순서를 엉망으로 해두었기에 그걸 제대로 바꾸어두고 있는 중이다. 그 빌런이 도서부 부원이라는데 사실일까? 걸리면 가만 안 둬.
“앗.”
그러다 누군가와 툭 부딪히며 등이 닿았다. 지나는 “미안해.”하면서 고개를 돌렸는데, 어라. 아는 얼굴이다. 아니 일방적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평소에 세나가 도서실을 자주 오냐고 하면 그건 아니었다. 책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도서실에 자주 갈 정도로 시간적 여유가 많은 것이 아닌 탓이었다. 아이돌 연습생 생활을 하면 자연히 포기해야 하는 것들도 여럿 있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이돌만큼 바쁘게 지내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오늘은 책이라도 한 권 빌려볼까 ㅡ정확히는 요리와 관련된 책이었다.ㅡ 그렇게 생각하며 세나는 가만히 책장을 두리번거리면서 요리와 관련된 책을 찾고 있었다.
"여기도 없고... 어디에 있으려나."
그렇게 천천히 둘러보면서 걸어가는 도중, 갑자기 누군가와 등이 살짝 닿았다. 앗. 죄송합니다! 라고 빠르게 말을 하면서 세나는 빠르게 고개를 돌려 부딪친 이를 바라봤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자신보다 키가 조금 작은 여성의 모습이었다. 베이지색 머리카락이 곱슬곱슬한게 상당히 결이 좋아보였다. 귀여운 사람이다! 그렇게 세나는 생각했다. 와. 뭐야. 완전 귀여워. 아이돌 권하고 싶어. 그런 생각을 잠시. 안녕이라는 인사가 들려오자 그녀는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며 꾸벅 허리를 숙였다.
"아, 안녕하세요!"
이어 허리를 다시 펼친 그녀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살살 정리를 하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죄송해요! 책을 좀 찾고 있다보니까 누가 오는 줄 몰랐거든요. 신입생이라서 아직 도서실에 익숙하지 않아서요. 아. 맞아. 맞아. 혹시 도서실에 익숙하세요? 익숙하시다면 책의 위치를 좀 묻고 싶어서요."
세나가 파트너로 왔으니 예전에 갔던 곳이 생각났기에 오늘이 아니면 내일이라도 데려가려던 곳이었다. 가격도 구성을 생각하면 그렇게 비싼 편은 아니었고 고기도 꽤 괜찮은 것을 쓰는지 맛이 좋았던게 기억에 남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야채도 아스파라거스나 시금치, 양파 같은 것들이 조화롭게 잘 조리되어 나오는 편이었다.
" 돈 안써서 많으니까 괜찮아. 그리고 그렇게 안비싸니까. "
해인은 자신에게 투자하는 것은 기타 말고는 그렇게 비싼 것을 고집하지 않았다.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노트북도 그냥저냥 쓸만한 것을 사용하고 있고 옷도 비싼 것을 고집하는 것보단 어울리는 것을 적당한 것 가격으로 사서 입는 편이었다. 여동생들도 용돈을 자주 요구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자신이 버는 돈은 족족 통장으로 꽂히고 있었다. 해외에 계신 부모님이 가끔 투자한다고 가져가시는거 말고는 말이다.
" 흐음 ... 그럼 나는 세나랑 '데이트'가 하고 싶으니까 저녁 먹고 간단한 산책은 다른 곳으로 가볼까? "
굳이 데이트라는 단어를 선택한 세나의 의도를 이해한듯이 해인도 데이트라는 단어를 강조하며 얘기하고선 슬쩍 웃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그가 말이 별로 없으면서도 어째서 나사 빠진듯한 사람이라는 평이 간간히 도는지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거기에 벚꽃 구경이라니, 연애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선 빠질 수 없는 이벤트였다. 그걸 해인도 잘 알고 있었기에 가볍게 넘기기엔 힘들었다.
" 여동생이 두명이야. "
집에서 뒹굴거리며 서로 조잘조잘 떠들고 있을 여동생들을 떠올리며 해인은 말했다. 세나는 유독 둘째와 많이 닮은 느낌이라 해인이 좀 더 정감이 가는 것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