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초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사이에 유려한 동작들이 쏜살같이 눈 앞을 스쳐 지난다. 연습한 적 없다기엔 지나치게 능숙하다. 단순히 감상하는 입장이었다면 다음으론 춤 잘 춘다는 소리가 나왔겠지만, 이걸, 내가 춰야 한다고? 착잡한 표정 깨지고 미간에 미세한 금이 간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 몸뚱이가 유연하고 부드럽게 움직이는 모습이 전혀 상상되지 않는다. 뒤늦게서야 대뜸 그러마고 답한 자신이 원망스러워서 지끈대는 관자놀이를 눌렀다. 적어도 한 번은 보고서 하겠다고 했어야 했는데. 이 정도면 충분히 출 수 있겠죠? 해맑은 얼굴이 괜히 얄미워서 가볍게 흘기듯 내려다보고선.
"...........3일."
연습은 몇 번 필요하실까? 몇 번? 겨우 그 정도 연습량으로 괜찮을까보냐. 동아리에서 간단한 안무를 연습하면서도 영 몸에 붙지 않아 몇 날 며칠을 굴러 겨우 익는 몸뚱아린데. 받아들여지지 않을 걸 알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아 대뜸 무리한 답을 내뱉는다. 제법 퉁명스럽다. 눈을 들여다보려는 의도가 분명한 시선과 딱 마주치면,
".....몸치야, 나."
맞은 지 몇 초 지나지도 않아서 눈길을 슥 피한다. 목소리에 부담감과 부끄러움이 미세하게 섞여 있다. 딱히 의미는 없었으나 정면의 카메라 피해 등을 돌렸다. 뒷목이 가볍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름 부르는 소리에 잠깐 눈 맞췄다가 고개 돌려 창 밖을 바라본다. 알고 있는 줄 알았지. 대답보단 중얼거림에 가깝고. 가서 잔다는 소리에 다시 시선 돌려 당신을 향한다. 정확히는 당신의 손에 들린 커피 캔이다. 잘 거였으면 지금 마시면 안 되었던 것 아닌가? 뚫어지게 본 시선은 아주 잠깐이었으나 제법 노골적이라. 당신은 그런 의도를 알았을 수도 있고, 아니었을 수도 있고. 남은 커피 털어넣고 빈 캔 쓰레기통에 던져넣는다. 털그렁.
"그러게."
다시 시계 내려다본다. 별 생각 없어 보임은 아무렇지 않은 척이다. 슬슬 돌아가서 정리하던 걸 마무리지어야 너무 늦지 않게 잠들 수 있다. 별 미련 없이 떠나려는데. 덜컥 발이 잡아매인다. 잠깐 쳐다보다가 묘하게 머뭇대는 손길로 받아들어 바지 주머니에 밀어넣었다. 고맙다. 발걸음 옮기며 가볍게 두드리듯 어깨에 내려앉고서 떠나는 손길. 마지막으로 가볍게 얼굴 쳐다보고 떠나는 것 같더니. 뭔가 기억난 듯 다시 멈춰서서 몸 돌린다.
"일정 점수 안 넘으면 숙제 낸다고 했어."
...놀리는 것 같지만... 진정으로 악의는 없다. "내일 봐." 가볍게 손 흔들며 복도를 떠났다.
그의 얼굴에 스친 착잡함. 그리고 이를 덮어 가린 태연함에 자신도 못 본 척하기로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네가 난처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오늘이 지나고, 더 오랜 시간이 지났을 때, 지금 이 모든 시간이 너를 얽매는 그 무엇도 되지 않기를 바라기에. 우리에게 남은 후회가 아무것도 없도록.
"음... 그럼 나는—..."
괜찮더라는 말을 듣자 나쁘지 않은 곳을 고른 것 같아 다행이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간짜장 곱빼기, 하고 그가 고른 메뉴를 반사적으로 따라하더니 이번엔 자신이 무엇을 먹을지 고민했다. 동시에 노래들을 놓치지 않고 경청하며 하나씩 떠올려 보았다.
"내가 아는 건 여자아이들, 르세라핌, 아이브, 오마이걸... 악뮤도 귀여울 것 같은데?"
자신은 최신 유행에 발 빠르게 따라가는 편은 못 되었기에 여기저기서 자주 들어본 익숙한 그룹들을 나열하다 그가 말한 노래에 관심을 보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닿아오는 자연스러운 손길에 더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멈칫했다. 꼭, 그날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든 탓이었다. 아까와는 달리 무의식이 끌어온 행동임을 증명하듯 제대로 끝맺어지지 못한 말과 몸짓이 그의 당황스러움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살짝 몸을 일으켜 그를 바라보았다. 흔들리는 눈동자, 붉어진 귀, 미안하다는 말. 나는 그의 떨리는 눈동자를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았다. 네 안에 아직 내가,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이 남아있다고. 그 모든게 나쁘지 않았다고. 감히 그렇게 생각해도 되는 걸까. 머리가 그런 생각들로 복잡했지만 겉으로는 능숙하게 미소를 걸쳤다.
"말로만?"
화가 난 척 말은 했지만 이미 목소리에도 얼굴에도 장난기가 담겨 있었다. 천천히 손을 뻗더니, 그의 머리를 헝클일 목적으로 살짝 투박하게 몇 번 쓰다듬으려 하며 말했다.
"이걸로 봐줄게."
그러곤 혹시 모를 보복을 피하려는 사람처럼 핸드폰을 들고 당신이 앉은 반대편 쪽으로 몸을 기울여 멀어지려 했다.
강소호의 춤 실력은 어느 수준인가. 수련회 장기자랑 얼굴 마담으로 불려갔다가 이건 몇 주로 안 될 것 같다는 판단 아래 반품 당할 정도다. 그리고 태훈의 대답은 "너도 못 추는구나." 정말 관절이 문제만 없이 돌아간단 뜻 같다. 동지를 만난 강소호가 웃는다. 컨셉이나 이미지 맞는 거는 몰라도 강소호가 하나 잘하는 건 있었는데
"나는 어깨 위로만 찍는다면 뭐든 잘 어울릴 자신이 있지만" 조금의 잘난 척 없이 당연한걸 말한다는 듯한 어조와
"춤을 못 추거든."
잠시 말을 멈춘 강소호가 카메라를 힐끗 바라본다. 어쨌든 이게 연애 프로그램이긴 하지? 냅다 커플 틱톡 찍으라는 거 보면 권장하는 컨셉이 뭔지는 몰라도 이 쪽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래서 잘 춘다고하면 주태훈 원맨쇼를 해볼까 했는데…"
강소호는 원래 남의 사정을 크게 배려하지 않았고
"이렇게 된 거 쉬운 거 찍고 춤이라고 우기자."
시카노코노코노코 코시탄탄. 아*폰 12 미니가 송출하는 건 모 여자 아이돌 두 명의 챌린지다.
>>594 헉 도현주 늦게 봐서 미안 ㅠㅠㅠㅠㅠ 일단 전에 짜던 선관 정리해보면 지나가 우연히 다미 일기장을 보게 되고 그래서 도현이가 나쁜 놈임을 알게 된 상태 정도랄까. 그 때 도현이가 지나랑 같은 반을 할지 안할지 이야기가 나왔었던 것 같은데~~ 일단 다미 일기장의 도현이가 이 도현이라는 것은 아마 긴가민가 할텐데 이번에 페어 영상 보면서 확신 할 것 같긴 해~!
호랑은 짐짓 속좋게 웃어보인다. 호랑 쪽은 약한 이유가 있다. K-팝보다 영어권 음악을 더 즐겨듣는 음악편식 탓이다. 그러면 악동뮤지션 노래를 골라볼까─ 하고 생각하던 차에, 그 순간에 호랑은 자신의 손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챘다.
그리고 황급한 사과가 끌고 온 침묵. 이쪽을 바라보는 당신. 호랑은 당신의 눈을 마주본다. 당신이 얼굴에 다시 능숙한 미소를 걸기까지의 그 잠깐 동안, 미련과 죄책감 섞여 떳떳치 못한 눈빛이, 호랑의 눈에서 무언가를 찾아보려는 듯한 당신의 눈빛과 마주친다.
내가 네게 그토록 모자란 사람이었는데, 그래놓고도 너를 제대로 떠나보내는 것도 아니고 최악의 방식으로 널 떨치고 말았는데, 거기에다 지금 너한테 올바르게 사과도 못하는 주제에 머리는 깨져갖고 미련이 찔끔찔끔 새나오는 이 꼴은 대체 뭐하자는 거냐 정호랑... 다른 사람이 호랑의 이 한심한 작태를 보고 어떻게 여길지는 딱히 관심 없었으나, 그 이전에 우선 자기 자신 스스로가 호랑은 부끄러웠다.
너는 분명 연기를 해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서로를 진심으로 대하던 그 나날들이 자꾸 생각난다. 연기를 하는 것도 안하는 것도 힘들다. 호랑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다. 그럼에도 당신은 그 침묵을 넘어 이렇게 반듯하고 자상하게 아무렇지 않다는 얼굴을 해주는데, 호랑은 헛웃음밖에 짓지 못했다. 용기를 내고 싶다. 조금만, 시간이 조금만 더 있다면 그럴 수 있을까─
머리를 부바바바박 하고 헝클어버리는 당신의 손길에, 호랑은 눈을 질끈 감으며 "아잇." 하고, 익살스레 짜증내는 시늉을 했다. ...더 쓰다듬었으면 골골송이 나올 뻔했다.
애초에 더벅머리라서 당신이 손으로 머리를 얼마나 헝클어놓건 별로 티도 안 났지만, 자기 나름대로 머리 모양에 기준이 있는 건지 호랑은 손을 들어 당신이 헝클어놓은 머리를 정리했다. 그리고 나서 당신을 샐쭉하게 바라보았지만 당신은 이미 소파 반대편으로 도망간 뒤다.
"잘 먹을게, 저녁 각오하셔."
얻어먹는 주제에 조금 부루퉁한 대답이 나왔다. 호랑은 얼굴을 피고 자기 핸드폰을 들어 화면을 당신에게로 향했다.
"그러면 노래는 악뮤 노래 중에서 골라보자. Love Lee가 다른 사람들이 해둔 게 많은데, 어때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