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누군가를 위한 이야기의 소품이자, 단역이자, 조연이기도 하고 동시에 자기 이야기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 이야기는 비참할 수도, 행복할 수도 있고, 기승전결이 갖춰졌거나 이야기의 어떤 구성요소 하나도 제대로 된게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엉망인 이야기가 되는 한이 있어도 우리는 선택하고, 때로는 강요당하면서 우리의 이야기를 써낸다. 이야기의 악마 이프가 이제 마침표를 찍으라 권할 때까지, 죽음이 우리를 찾아올 때까지. 왜냐면 우리는 살아있으니까. 그 이야기는 우리의 삶이니까.
아쉽게도 이곳은, 뱀파이어에게는 전혀 친화적인 곳이 아닌가봅니다. 그래도, 술 한병 주며 나가라던 전날과는 다르게 더 이상 엘리를 쫓아내지 않고 엘리가 내는 돈도 소중한 한푼 취급하며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보니, 엘리가 꿈꾸는 삶이 한 걸음은 가까이 다가온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전날 하루종일 지하수로에서 랫킨, 고블린,식인종, 그외 기타등등 온갖 흉악한 것들을 죽이고 이단심문관의 피까지 들이켜가며 싸운 보람이 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엘리는 또다시 일주일간 머물 곳을 마련했습니다. 이번에는 일주일 동안 여관에 아무 일도 없길 기도해봅시다. 아니면 뭐, 또 사람 여럿 죽어나가겠죠.
샤토의 그 말은 약간의 어리광이자 장난이었지만, 테렌은 난색을 표하며 말고삐 잡은 손에 땀을 쥡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귀족가와 평민 사이에 정분이 났다거나 혹은 그랬다는 소문만 돌아도 평민 쪽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생이 피곤해지거나 심하면 죽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한 술 더 떠 왕녀와 수인 평민이라면... 진심으로 차라리 사형을 구걸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테렌은 샤토를 뒤에 태운 채 말을 재촉하고, 말어 움직임에 따라 두 사람의 몸이 흔들리며 달빛과 횃불을 따라 나아갑니다. 그러던 도중, 샤토가 묻자 테렌이 설명합니다.
"정확한 책을 읽으셨군요. 맞습니다. 알라릭의 세 손가락, 정말로 강력한 이들은 맞습니다. 그래서, 왕녀님을 이런 곳에 모셔오는게 과연 현명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테렌은 망설이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하다, 앞에서 보이는 무언가에 멈춥니다. 야간 검문입니다. 테렌은 샤토에게 묻습니다.
"검문은 기사 권한으로 통과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뭘 하러 가는지, 무슨 관계인지 정도는 지어내야 합니다. 생각해두신 게 있을까요?"
베스니의 반응은 생각보다 돌발적이였어요. 아마 제 말은 그녀에게는 닿지 못했을 거에요. 제대로 숲의 길을 살펴가는 것이 아니라 아무렇게나 가로지르는 것은 좀 부정적으로 될 수 있겠어요. 특히 그녀의 경우에는 더욱 심할 수도 있다는 것이 문제겠네요
그래요, 이렇게나 서로의 태도가 나뉘는 것도 어쩌면 다 삶의 방식의 차이겠네요. 가진 것도, 아는 것도, 그리고 느낌도 다를 것이니까요. 그녀가 대략적으로는 알아보는 것을 미루어보았을때 이런 행동의 화근은 어중간한 지식이려나요? 그나마 불행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적어도 그녀가 그들에게 놀라서 달아나려 했을뿐 그들과 싸워서 상처를 주려하지는 않았어요
저는 잠시동안 대치하게 된 그들의 의중을 조심스럽게 살펴보다가 그들을 향해서 정중한 표현으로 반응하고는 자리를 벗어나 베스니를 행방을 쫒으려 했어요
>>616 진심으로 곤란한 표정을 보니, 귀엽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그의 성격상, 아마 지금 이 말이 밖으로 새어나갔을 때의 영향을 생각해 본 걸 거야. 분명 난리가 날 테니까. 물론 신분이 맞지 않는 이들끼리의 결혼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대개 그러한 경우 합당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몰락한 귀족가를 부유한 평민이 먹여 살린다거나, 전공을 세운 평민이 작위와 함께 귀족 아내를 하사받는다거나..., 물론 내 경우엔 아버님께서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한, 그것조차 어렵겠지만. 게다가 귀족과 왕족은 또 입장이 다르니.
생각하다 보니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그만 두자. 지금은 모험을 떠나러 왔으니. 앞으로의 계획 쯤이야 그 텅 빈 방 안에서도 충분히 짜낼 수 있어.
그나저나, 어쩌면 테렌은 알라릭의 세 손가락과 직접 닿아본 적이 있는 걸지도 모른다. 단순히 위험한 조직이라는 것 뿐만이 아닌, 아주 확실히 그 조직이 내게 끼칠 위험성을 고려하고 있어. 분명 현명한 선택은 아니겠지, 하지만...
“하지만, 넌 날 지켜 줄 테니까. 어떤 상황에서든.”
단순히 띄워주기 위한 말도, 그를 유혹하기 위한 언사도 아니었다. 난 그저 그렇게 믿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설령 그 믿음이 배신당한다 할 지라도, 난 모두 받아들일 수 있어. 전부 내 선택이니까.
“윽.”
갑자기 멈춰 선 테렌. 그 등에 살짝 부딪혀 소릴 내고, 무슨 일이냐 물으려다 먼저 그에게 물음을 당한다. 잠시 생각해 봤다. 그리고 곧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주인과 하인.... 성 밖으로 출정을 떠나는 기사가, 하인을 데리고 길을 나서는 건 당연하지.“
마침 입고 있는 로브도 허름하기만 하다. 이것 역시 내가 부탁해 특별히 그가 가져다 준 것. 본래라면 이런 물건은 애초에 성 안에 들이지조차 않을 테니까. 나라는 사람을 가리기엔 이것만 한 것도 없지.
난 또 덧붙였다.
”의심 같은 건 전혀 받지 않을 거야. 되려 쉬쉬하겠지. 젊고 혈기왕성한 소년 기사가 나처럼 쓸모 없는 짐짝 같은 하인을 구태여 고된 여정에 데려가는 이유는, 정말 뻔한 이유니까. 안 그래?”
비록 견습이라 해도, 그는 일단 엄연히 왕실 소속의 기사다. 그런 자의 치부를 그가 바로 앞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들출 원칙주의 병사가 몇이나 될까.... 정말 완벽한 변명거리다. 단 하나, 억울하게 오해를 살 내 왕자님만을 제외하면.
@@ >>618 '이상해.' '근육이 전혀 딱딱해지지 않잖아.' 누누코는 단지 이빨에 닿는 촉감만으로 그정도의 정보를 가져온다. 마치 이대로 당기면 쉽게 물어 뜯길 것같은 물렁한 근육이다. 그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근육이 경직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가 죽음에 대해 전혀 공포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누코는 그것을 의아하게 여기며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다.
"...그렇군." 그리고 어쩌면, 그 즉시 그의 목을 몸에서 찢어서 떨어트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너는 돈에 찌든 종류의 인간이구나." "인간들은 항상 그렇게 행동하지..." 하지만 누누코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그에게서 송곳같은 이빨을 때고 고개를 뒤로 물리는 것을 선택했다. 입가에서 늘어지는 침의 실선을 손목으로 닦아내며 그를 그저 노려봤다. 인간을 증오하는 보팔토끼치고는 이례적인 판단이었다. 그러나 누누코로서는,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근거는 몇 가지 있었다. 왜냐하면 누누코가 돈의 가치는 알고있지는 못해도, 돈을 쫓는 자들은 보통 눈 앞에 있는 현실보다... 그 무엇보다도 돈을 숭상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있기 때문이었다.
'이 요한 브룬이라는 인간도 누누코를 사람으로 보고있지 않아.' '하지만... 누누코를 잡으려고 하지도 않겠지.' 아마도 당장은 말이다. 누누코는 돈이 아니니까. 그것이 누누코의 생각이자 논리였다. 이런 인간이라면 언제든지 죽여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기서, 누누코의 작은 두뇌가 굴러가 번뜩이듯 생각해 낸 또 다른 근거가 있었다. 여전히 그의 배를 깔고 위에 앉아있는 누누코는 그를 깊은 분홍색 눈으로 응시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누누코에게 돈을 줘." ―거래, 라기보다는 거의 협박에 가까운 통보식의 어투다. 200탈러? 150탈러?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 좀 더 살아야 할 것 같으니... 그에게서 돈을 뜯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럼 누누코가 말해줄거야. 인간이 찾고있는 보물이 어디에 있는지... 말이지." "후흥." 누누코는 어느새인가 몸에 두르고 있던 살기를 흩어내고 평소처럼 나른한 눈매가 되어서, 버릇처럼 소리내며 그렇게 말했다.
왕녀 자신조차도 부끄럽게 만들 침묵이 한참동안 이어지고, 그 시간 동안 테렌이 죽지 않았다는 것은 오직 흐읍, 하, 반복하는 숨소리와 그에 따라 들렸다 내려가는 어깨로만 알 수 있습니다. 샤토 왕녀가 제안한 바야 뭐 불 보듯 뻔하고, 테렌도 어깨 위에 달린게 머리고 그 머리에 딸린 짐승귀 두 짝이 정상이라면 못 알아들었을 리가 없습니다. 테렌은 몇번 헛기침을 하더니 말합니다.
"방금 말씀은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테렌의 입장에선 급히 왕가 일원을 탈출시켜야 하는 비상 상황도 아닌데 왕녀를 하인이라 둘러대는 것도 참 무례한 일이고, 그런 방향으로 생각하니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뇌를 뽑고 싶은 불충에 대역 같아서, 테렌은 다른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야간 검문소로 천천히 말을 몰고 나아가고, 경비병이 하품을 하면서 검문 목적으로 다가옵니다.
"통과 희망인원, 각 인원의 신원, 통과사유를 제시하십시오."
테렌은 투구를 벗어 수인 특유의 눈동자와 귀를 드러냅니다. 노란 불빛의 그의 검은 머리털이 윤기를 발하고, 그는 떳떳하게 자신이 생각한 가짜 신원을 이야기합니다.
"2명. 난 견습기사 테렌이고 여기 말에 탄 아가씨는 내가 잘 아는 사람의 딸인 베르니 세아, 다. 가족이 위독하다 하여 찾아온 후 내가 데려다주는 길이다."
그러자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경비병을 밀치고 경비대장이 투구를 벗습니다. 그 역시도 수인인데, 테렌과는 달리 말하는 동물 수준으로 수인화 정도가 높습니다. 그는 웃으면서 손을 흔듭니다.
"테렌! 나 알란이야! 기사가 됐다더니 몰라보겠구만! 그래. 빨리 가봐! 기사 됐으면 돈도 많을 텐데 술도 좀 사고 그래라!"
>>620 "물론! 드리죠. 하지만 확인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입장을 바꿔서 누누코씨라면 물건을 보지도 않고 돈을 받으려는 장사치를 죽이려 들지 않을까요?"
말 자체는 틀린게 아닙니다. 여기서 누누코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지는 엉뚱한 곳을 알려준 후 돈만 받고 째는 겁니다. 만약 미스터 스위트가 죽은 장소를 진짜로 요한이 찾아가 누누코에 대해 발설한다면 누누코를 쫓는 이들이 더 많아질 겁니다. 그러니 이 사람이 누누코에게 확인을 요하는 것도 당연하죠. 물론, 반대로 누누코 역시 거기까지 갈 이유가 없긴 합니다. 미쳤다고요?
"아니면, 저와 누누코 씨 모두 이 일을 잊고, 다시 가던지요. 저도 그 남자만 쫓는게 아니라 꽤 바쁘거든요."
이도저도 안될 것 같자, 요한이 제안하더니 한 마디를 붙입니다.
"돈은 못 줘도 공짜팁은 드릴수 있으니, 말씀드리죠. 후훙, 이라는 말투는 안 쓰시는게 좋을 겁니다. 그거로 구분하라고 추적자들 사이에서 정보가 다 돌았거든요."
>>623 엘리는 근처에 목장이 있나? 생각해봅니다. 일단 사람들이 목장, 하면 생각하는 마소와 양 따위를 부속한 목초지에 풀어놓아 사육하는 목장은 여기에 없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세스타우 성은 사람 살곳도 모자라 집이 빽빽히 찼으니 목초지가 있을 리 없고, 목초지가 없는데 목장이 있을리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 바깥으로 나가서 목장을 찾아봐야 하는데, 당장 나가서 이 뙤약볕 밑에서 한참 걸으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릅니다. 그래서 고민이 깊어가는데, 마침 누군가 문을 두들깁니다. 여관 주인의 목소리군요.
@@ >>630 남자의 입에서 말이 나오자, 누누코의 입이 별안간 사납게 벌어지더니 보팔토끼 특유의 뾰족한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맹수마냥 입김을 뱉으며 거칠게 말하는 것이었다.
"누누코를, 인간의 사고에 빗대며 모욕하지마. 기분이 나빠." "이 다음에 똑같은 실수를 하면 방금 전의 선택을 번복하겠어..." 물론 요한은 딱히 모욕을 하진 않았지만, 인간 특유의 교활한 사고방식이 누누코의 심기를 거스른 모양인 것일지. 요한이 알 일은 없을 것이다. 아무튼 그녀는 그렇게 위협하고 나서야 입술을 닫았다. 그제야 입술이 평소대로 시옷자가 되어 돌아왔다.
"그럼 이 거래는 결렬이네. 인간은 누누코를 못 믿고, 누누코도 인간을 못 믿어. 둘 다 시간만 낭비했네." "누누코도 신성한 들판에 맹세코 좋은 조언을 해줄게, 인간은 지금 누누코를 만나지 않은 걸로 해." "그렇지 않으면..." 그리고 침묵이 흘렀지만, 그 침묵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이 자리에 있는 둘 모두 잘 알고 있었다.
"...후흥, 이만 갈게. 날 쫓지마." 누누코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후드를 뒤집어쓰고 몸을 돌려 제 갈 길을 떠날 준비를 하고있었다.
도달하게 되는 곳만 제외한다면그녀는 거침없이 잘 이동하는 것 같아요. 저와 만나기 이전에도 이렇게 숲을 지나왔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네요, 그녀는 그때도 좋아해줄까요? 균형이 안맞아 잘 못걷게 될 수도 있어요"
저는 가말라시엘 님의 말에 수긍하면서도 길을 걸었어요. 그녀를 찾는 것은 속히 되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급하게 행동해서는 안될 거에요. 몇몇 사냥꾼은 목표를 적극적으로 쫒는 것 뿐만이 아니라 그 목표가 스스로 멈추도록 꾀를 짜네기도 해요, 저는 토끼를 쫒는 늑대와도 같은 느낌이 되려나요?
발자취를 뒤따르던 저는 이미 경험한 적이 있는, 어쩌면 익숙하다고 할 수도 있는 느낌에 멈춰섰서요. 또 다른 숲의 존재의 전조에요
"안녕하세요, 저의 일행을 보셨나요? "
숲의 얼굴, 그들에게 저는 고개와 상체를 가볍게 한 번 숙이며 정중한 태도로 인사했어요. 그들의 곁에 있을때는 특유의 효과 때문에 행동을 조심스럽게 조금씩 이어가며 가는 것이 좋아요
그것은 장난과 비슷해서 그들에게 따로 악의가 있지는 않을 것임을 알고 있어요. 베스니도 어쩌면 괜찮을지도 몰라요. 같은 곳을 빙글,빙글돌다가 지쳐서 멈춰설지도 모르지요
@@ >>640 '인간과 웃으면서 조우한다고?' '맹세코 그럴 일은 없어.' 누누코는 돌아가는 그를 유령처럼 흘려보내고는, 다시 도시에 들어가기 위한 궁리를 하기 위해 시야를 넓혔다. 고독과 증오, 철옹성처럼 느껴지는 평화로운 도시, 그 바로 바깥의 나무에 매달린 죽음의 열매들. 그리고 요한이 남긴 추적자에 대한 말들만이 누누코의 곁에서 맴돌고 있었다.
"움직이자." 누누코는 우선 도시에 들어갈 방법을 찾기 위해, 길을 따라 걸으며 가느다란 눈으로 도시의 겉면을 살피기 시작했다.
박다람쥐, 버섯 합창단, 타코이드 군체, 우파루파, 노새거미, 그 외 기타등등. 아앨라나가 바깥 세상은 몰라도 이 숲에서는 발이 꽤나 넓기에, 다른 이들은 친구가 한두명 있을 이보다도 친구가 여럿인 아앨라나의 친구를 찾는 것을 더 어려워했습니다. 하지만 아앨라나가 인상착의를 설명하자, 그들은 이해했다는듯 나뭇가지를 흔듭니다.
"아, 외말다리 사람."
"저기 갔어."
"아냐, 저리 갔어."
"여기 있어."
총체적 난국이군요. 서로 다른 나무들이,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동서남북의 방위 개념은 너무 어려우니, 이들은 자기 기준으로 말하는데... 이때 가말라시엘이 거드는군요.
'사도님. 내 힘을 써 보시죠.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어느 의미로든, 확실할 거거든요.'
>>641 누누코는 도시를 멀리서 한번 훑은 후 내려가면서 디테일을 눈에 담습니다. 도시에 딸린 작은 마을들, 아직 매달리지 않는 난민들, 줄 서서 밀죽 한 술이라도 타려는 이들의 행렬, 야위어 축 늘어진 살가죽과 갈비뼈가 선연한 젖소. 여기는 난민촌이라 봐도 믿겠습니다.
누누코는 한바퀴 빙 둘러보고, 어렵겠다고 직감합니다. 경비들은 지쳤지만 눈빛만큼은 삼엄하고, 기병 순찰대들이 계속 주위를 순찰하고 있습니다. 누누코의 싸움 실력이라면 지친 경비들이 지키는 검문 초소쯤은 식은죽 먹기지만, 그 다음에 어떻게 될지는 자신할 수 없습니다. 전투는 이겼으나 전쟁은 진 그녀의 운명이 경고하는군요. 그때, 사람들이 몰린 곳에서 말소리가 들립니다.
"이봐, 이거 진짜야?"
"어허, 쉿!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가까이 간 누누코는 어떤 여자가 하는 말을 듣습니다.
"찔러보기만 할 놈들은 꺼져. 도시에 들어가서 한 달 일하는 대가로 도시로 들어가게 뚫어줄테니까, 붙을 사람만 붙어."
//요한 브룬은 설정은 킹 슐츠 맞음! 이름의 유래도 추리에 성공한다면 그 npc 서사도 감이 잡힐듯
어쩔 수 없었다. 이별은 언제나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것이니라. 원하든 원치 않든 언젠가는 떠나게 되는 것이 인생이니, 짐의 사랑하는 이들이 이다지도 열심히 준비해준 것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것은 그들의 노력을 깎아내는 것이니라! 짐은 울지 않았느니라. 어쩐지 뭔가 이상한 것이 흐르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울지 않았느니라!!!
"음!!! 짐이야말로 그간 고마웠느니라. 허나, 오늘이 이번생의 이별이 될리는 없으니!"
먼저 잔을 들어올린 고드뢰를 따라 적당한 고기를 손에 들고 높이 들며 소리쳤느니라. 짐보다 먼저 잔을 든 것은 경을 쳐도 할 말이 없으나 저자가 저러는 것 역시 언제나 있던 일이 아니더냐! 왁자지껄해진 축제의 장에서 짐은 할멈과 할아범 사이에 자리를 잡았느니라. 이제와서는 고정석에 가까웠기에 그걸 막으려는 이들도 없었고.
"할멈, 할아범. 자식들은 어디에 살고 있더냐? 짐이 한번 만나서 꼭 혼이라도 내주마. 사람된 자라면 부모는 1년에 두번은 만나러 와야하는 것이거늘."
@@>>648 누누코는 도시 주위의 전경을 눈에 담았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후미지고 작은 마을이었다. 너무나 낙후된 곳이었다. 인간들이 말하길, '야만적'이고 '미개'하다고 하던 누누코의 고향, 신성한 들판보다 더. 그런 곳을 속으로 코웃음치며 지나가려고 하는데, 짧은 이야기가 공기를 타고 전해져 와 누누코의 발걸음을 멎게했다. 후드 속에 숨겨진 귀가 쫑긋대며 부스럭거렸다.
'도시에 들어갈 수 있다면.' '이용해보는게 좋을지도 몰라.' 도시를 정면으로 파훼하는 것은 힘들다. 아직 누누코의 몸에 머무르고 있는 피로, 자잘한 통증과 굶주림같은 것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물론 인간들을 위해 일한다는 것은 별로 마음에 드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어차피 도망치는 몸이기에, 틈을타서 도망쳐버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것만으로 그저 완벽한 계획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누누코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띄웠고, 조용히 걸어가 이야기의 주축이 되는 곳으로 가서 섰다.
>>649 사람들은 웃으면서 잔치를 즐깁니다! 솔직히 말해 제사는 알 바 아니고 젯밥에나 관심있는 놈들이 없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무시합시다! 그런 인간들 일일이 신경쓰면 고기맛 다 죽습니다. 동방을 가보기는커녕 동방 음악을 들어본 적도 없는 음유시인이 제 딴에 '신비한' 동방 음악을 연주하고, 그 사이에 노부부가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아들 웁제크는 보셴 시에 있는 행정관 순회출장소에서 서기로 일하고, 딸 레야는 저기 북쪽에 이름도 어려운... 노르드보티? 아무튼 그 항구에서 징수관보로 일한다는데... 영감. 그 항구 이름이 뭐였지?"
"노르드보티예체쉘링. 레야 이 년 머리가 굵더니, 지 애미애비도 보기 싫어서 우리 같은 늙은이들은 발음하기도 힘든 곳에 직장을 잡았어."
...라고 말하다, 힘레먼이 브우니크를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러자 브우니크 할멈은 동전 자루를 꺼내 히샤히메에게 줍니다.
"애들이 보낸 건데, 내가 자식 키웠지 언제 따박따박 돈 보내는 빚쟁이 키웠나. 난 이 돈 보기 싫다. 이샤힘 노잣돈 해라."
>>650 검문소 문이 열리고, 샤토 왕녀 일행은 별 문제 없이 검문소를 빠져나갑니다. 아까 전에는 경비병 때문에 일이 골치아파질 뻔 했지만, 알란을 만난 덕분에 일이 잘 풀렸습니다. 테렌을 오래 본 듯 자연스레 아는척을 하니, 왕녀가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알란 마누엘, 잘 아는 친굽니다."
테렌이 수인들치곤 높이 올라간 케이스긴 하지만, 하급병사와 노역 등에 복무하는 수인들 사이에서 진짜 유명한 건 알란 마누엘입니다. 기사만큼은 아니지만 왕도의 한 구역의 경비대장을 맡을 정도로 높이 올라갔고, 수인들의 어려운 삶을 고려해 합리적으로 치안 업무를 운영하고 개인적으로도 알고 돕는 수인이 많아 발이 참 넓다는 겁니다. 테렌의 견습기사 서임까지 어려울 때 이것저것 도와준 것도 알란이었다 합니다.
"그 빚은 잊지 않고 갚았지만, 더 이야기해보려는데 알란은 경비대장으로, 저는 견습기사로 바빠져서 잘 마주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테렌은 말을 끌고 가고, 바닥에 짜맞춘 네모난 돌을 말발굽이 두들기는 소리와 함께 밤의 불빛이 그들을 찾아옵니다. 밤에도 대낮같고 파티가 끊이지 않는 귀족가를 지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선 걷는 이보다 마차와 말을 탄 이가 훨씬 많습니다.
사람들을 불러모은 여자가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 즉 '사업 모델'을 설명하면서 사람들을 안심시키려고 합니다. 불법 체류자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이민자와 불체자 사이의 회색 경계 같은 도시인들이나 신경쓰는 헛소리를 죄 쳐내고 누누코의 지적 수준에 맞게 본론만 말하면, 나무통 안에 들어가 술통으로 위장해 들어가게 도와주는 비용이 5탈러 후불이고, 한달 동안 부자의 집에서 궃은 일을 하면 대충 5탈러가 나오니 고생 좀 하면 된다는 겁니다.
"고향에서 장작패기 안 해본 사람? 장원에서 노역 안 해본 사람? 딱 그런 것들이야."
그러자, 튀어나온 물배만 빼면 전부 홀쭉한 사내가 손을 들어 묻습니다.
"그럼 밥은?"
"머슴 하려면 귀족집 머슴하란 말도 몰라? 당연히 나오지! 저 도시는 말이지, 댁들이 살던 거지동네가 아니라고. 그래서, 할 사람?"
몇몇 사람들이 앞으로 나서고, 남은 이들은 눈치를 봅니다. 누누코가 끼려면 지금밖에 기회가 없겠군요.
힘없는 울음소리와 함께 닭의 목이 꺾이고, 엘리는 목 부위의 털을 뽑습니다. 인간은 생닭을 먹으면 탈이 난다고 알려져 있지만, 피만 쪽 뽑아먹는데다 인간도 아닌 엘리에겐 해당사항이 없으니 넘깁니다. 포도식초 병을 꺼내 털을 뽑아낸 부위에 부어 한번 닦아내면, 교양 있는 뱀파이어의 한끼 식사 준비가 끝납니다.
콰직
엘리가 이빨을 박아넣고, 송곳니를 견디기엔 너무 작고 연약한 닭의 경추까지 이빨이 닿습니다. 한번 목뼈가 꺾이며 목을 헤집었기에 피가 배어나왔고, 엘리는 닭의 하얀 살결에서 느껴지는 포도식초의 산미와 첫 피의 달콤함이 어우러진 새콤달콤한 맛을 음미합니다.
닭 등 동물의 피를 마시는 것을 보고 다른 이들은 궁상맞다 할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본인들도 잡아먹는 동물의 피를 빤다고 뭐라 하는 인간은 없고, 엘리는 계혈을 좋아합니다. 그러면 된 거죠. 아, 한가지 더 좋은 점을 떠올렸습니다.
툭
엘리는 바스러질 정도로 피가 빨린 닭을 바깥에 돌아다니전 도죽고양이의 머리 위에 던지면서, 닭은 죽을 때까지 빨아도 된다는 점이 좋음을 상기합니다.
@@ >>663 누누코는 후드 안쪽에서 웃는 여자를 향해 의미심장한 눈길을 한 번 주더니, 금방 눈을 감아버렸다. 그녀를 따라가면 술통을 마주할 수 있었다 잔뜩 쌓여있는 그것들은 이미 뚜껑이 모조리 열려있었다. 물론 그 안에는 무엇도 차있지 않다. 누누코는 고개를 돌려 이 일의 주선자로 보이는 여자를 한 번 쳐다보고는, 이내 술통 안으로 자신의 몸을 집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