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에 대해선 방송 만드는 이들이 걱정하면 되지 않겠어요? 그것까지 우리가 다 어떻게 맞춰주는 것은 힘들잖아요."
방송 분량. 그런 것은 일단 방송 편집자들이 알아서 할 일이고, 내용에 대해서는 기획이나 작가진들이 알아서 할 일이었다. 그런 일들을 하라고 월급을 주는 것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렇게 보자면 역시 다음 미션은 조금 더 위험한 것일 수도 있으려나.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괜히 작게 혀를 찼다. 하지만 그러다 아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순간 움찔했다.
"...따, 딱히 걱정.....까진 아니거든요? 뭐... 애초에 제가 이러쿵저러쿵할 수도 없는 거고... 아. 진짜. 애초에... 여기서 이런 것을 묻는 것은 반칙인 것 같은데..."
스스로도 조금 불안하긴 했는지, 그의 표정엔 약간의 불안함이 녹아있었다. 괜히 속으로 으으- 소리를 내며 혜성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다시 나희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그건 죄송해요. 프라이버시적인 문제잖아요. ...그때의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아서. ...뭐, 굳이 따지자면 제 쪽이 잘못이긴 한데... 그냥 그 정도로만 생각해주세요."
따지고 보면 결국 자신이 유학을 간 탓이었다. 그때 유학을 가지 말았어야 했다. 유학을 갔기에 아람이 힘들었던거고 이런 결과가 된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눈을 감고 한숨을 약하게 내뱉었다.
"...아. 말하는데 바람피거나 그런 것은 아니에요. 그냥 뭐... 조금 환경적인 문제 때문에. 단지 그뿐이니까."
혹시나 자신이 이상한 짓을 한 것처럼 오해를 받을 것 같았기에 그는 다급하게 그렇게 말을 덧붙였다.
/ㅋㅋㅋㅋㅋ 나는 아직 가본적이 없어서! 한의원. 근처에 있나...에잇! 아무튼 가게 되면 아람주에게 꼭 후기 말할게!
"아뇨. 아뇨. 뭐... 물어볼 수도 있죠. 대답하지 않는 것만 이해해준다면야. ...아니. 뭐... 애초에 지금이 연애상담 시간도 아니잖아요! 이 이야기 그만하죠! 이제! 슬슬."
뭔가 일방적으로 아람과의 관계 상담 시간으로 흘러가는 것 같았기에 그는 그런 분위기가 되지 않도록 괜히 머리만 긁적이면서 말을 돌렸다. 혹시라도 아람에게 부담이 되고 싶진 않았기에. 그리고 이 눈앞의 여성과의 지금 시간을 깨뜨리고 싶진 않았기에. 어쨌건 오늘 같이 미션을 수행하고 같이 시간을 보내는 파트너가 아니었던가. 적어도 그는 이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고 싶었다.
"...사진 찍기요. 햄스터요? 그럼 어디..."
이어 그는 가만히 그녀가 보여주는 골든 햄스터를 바라봤다. 코끝을 쫑긋거리는 모습이 상당히 귀엽다고 생각하며 그는 절로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너무나 귀여운 것은 둘째치고 사진도 꽤 잘 찍은 것 같았기에.
"칭칭이라니. 이름도 귀엽네요. ...사진은 조금만 빛을 살리면 잘 나왔을 것 같은데... ...그래도 이 정도면 잘 찍은 편인 것 같고요. 저는 동물은 따로 키우지 않아서 부럽기도 하고... 말했다시피 자주 해외에 나가는 편이라서, 동물을 키울래야 키울 수 없겠더라고요."
하루이틀 보내고 오는 것도 아니고 심하면 1달 정도 있다가 올 때도 있기에. 그런 사정은 굳이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서 그는 괜히 입꼬리를 올렸다.
"...이 아이는 몇 살이에요? ...혹시 괜찮다면 다음에 이 아이. 사진을 찍어봐도 될까요? 허락한다는 가정하지만요."
적어도 자신은 그랬다. 학생 시절부터 사진 찍는 것이 좋았고 그것을 그대로 직업 삼아 지금은 사진 작가로 활동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가능하면 계속 이렇게 살아갈 생각이었다. 조금 더 유명해지면 좋겠지만, 그것만큼은 자신이 노력하지 않으면 이뤄지지 않을 일이었으니 괜히 앞으로도 더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살며시 올렸다.
"...흐응. 그건 조금 부럽긴 하네요. 아무튼 1년이라. ...꽤 오래 키웠네요."
보통 햄스터를 키울 때 1년도 못 가는 이들이 많은 것을 생각해보면 나희는 꽤 오래 키운 것이 아닐까라고 혜성은 생각했다. 물론 그쪽 부문은 자신도 잘 모르기 때문에 뭐라고 하기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섬세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혜성은 가만히 나희를 바라보다 그녀의 말에 순간 움찔했다.
"아, 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집으로 가는 것은 조금... 어쩔 수 없으니까 포기할게요. 나희씨도...저기.. 밖의 남자를 함부로 집에 데리고 가는 것은 조금 그렇잖아요?"
뭐지. 저 짓궂은 표정. 또 뭘 말하려는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혜성은 살짝 경계하는 눈빛을 보였다. 그러다 괜히 스테이크를 더 잘라서 천천히 구웠고 입에 넣기 시작했다.
"시, 식사하죠. 식사. ...그.. 이야기도 좋지만 일단 식사가 메인이잖아요? 어쨌든 맛있는 것은 먹어야지."
주제를 바꾸려는 듯, 혜성은 조금 다급하게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스테이크를 다시 천천히 썰기 시작했다.
"...그것도 이해가 되네요. 동물을 키워본 적은 없지만, 죽게 되면 다시는 그 동물을 못 키운다는 말도 많으니까요. 뭐, 그래도... 그 애는 그만큼 사랑을 받았으니 적어도 행복한 기억만 가지고 가지 않을까요? 나희씨가 햄스터를 막 함부로 대하거나 불행하게 키우진 않을 것 같은데."
적어도 지금의 표정을 바라보면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며, 혜성은 나름대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나름 진지하게. 물론 자신을 속일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굳이 여기서 그런 거짓말을 해서 뭣하겠는가. 자신이랑 잘 되려는 것은 아닌 것 같고. 물론 아닐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그는 피식 웃었다.
"그러니까, 찍어준다고 해도 햄스터를 밖으로 데려올 때의 이야기에요. 저도 여자 혼자 사는 집에 막 갈 순 없으니까요. 이런저런 문제 여지가 생기면 곤란하기도 하고. 서로간에."
정말로, 정말로 만약에 자신과 그녀가 잘 된다고 가정한다면... 찾아갈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단계에서 그런 가능성을 엿볼 순 없었다. 그렇기에 딱 그 정도로 선을 약하게 그어두고 그는 마지막 고기 한 점을 먹었다.
이내 스테이크를 다 먹을 무렵, 마지막으로 디저트로 각각 치즈케이크와 커피가 하나 놓여졌을 것이다. 설탕이 필요한 이는 설탕을 넣어서 먹을 수 있도록, 각설탕도 각각 2개씩 준비된채로.
"...마, 말해두는데 진짜로 그런 생각으로 말한 것은 절대로 아니거든요. ...애초에 여자 혼자만 사는 방에...간 적은... 헤어진 이후로 한번도 없기도 하고..."
괜히 변명하듯 말을 얼버무리며 그는 작게 혀를 찼다. 뭔가 모르게 자신의 페이스를 자꾸 잃어가는 것 같지만, 적어도 대화가 불편하진 않았다. 묘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괜히 오른손으로 입을 막고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것도 가끔은 나쁘지 않네. 그렇게 생각하면서. 물론 아람만큼 완전 편안하다..라는 느낌은 아니긴 했지만.
"그런가요? ...알겠어요."
그럼 각설탕은 그냥 버리게 되겠네.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커피를 천천히 입에 담았다. 꽤나 향이 좋고, 진하고 쓴 맛이 일품이었다. 고급 커피인 것일까. 어떻게 끓인거지? 그렇게 생각을 하며 그 와중에 치즈케이크를 한 입 먹으니 보통 부드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게요. 직접 만들어보고 싶을 정도의 맛이긴 한데. 나희씨는 달콤한 것을 좋아하나봐요?"
지금 표정만 보면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그는 작게 웃음소리를 냈다. 이어 그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며 나름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아람이도 아람이지만... 제가 볼 땐 나희씨도 경쟁 굉장히 셀 것 같은데. 아직은 남자들이 매력을 잘 몰라서 그런 거지."
나희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식사는 맛있었고 대화는 편안했으며 꽤나 즐겁기도 했다. 그야 이런 소개팅 같은 자리에서 불편할 일이야 그렇게 많진 않겠지만. 서로 예의를 지키면서 대화를 한다는 게 사실 어려운 것도 아니고. 그럼에도 나름 즐거운 시간인 것 같아 좋았다.
“아, 좋아해요. 디저트 류는 다 좋아하고요. 그런데 막 달기만 하면 좋다기보단 쓴 건 쓴 대로 먹는 걸 좋아하고. 그러니까 커피는 쓰게 먹고 케익은 달게 먹고 라는 걸려나요~”
나름의 정의가 있는 것인지 나희가 커피를 마시며 답했다. 커피 향도 굉장히 좋아서 기분이 좋아진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그래도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순 없다는 거 아니까요. 각자의 취향도 있는 것이고요. 그렇지 않나요?”
눈을 사르르 접으며 하는 말이 진심으로 하는 말인 것 같다. 나른하고 말랑하고 부드러워 보이지만 나름 단단한 인간일지도 모른다.
"...좋은 조합이네요. 저도 그렇게 먹는 거 좋아하는 편이에요. 뭐... 굳이 말하자면 저는 디저트보다는 커피 파이긴 하지만."
지금만 해도 케이크보다는 커피에 조금 더 관심이 쏠리는지, 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커피로 향했다. 물론 커피를 바라본다고 해서 레시피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설사 알 수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은 바리스타가 아니었기에 이 맛대로 끓일 수 있을리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괜히 피식 웃으며, 그는 이번엔 조금 더 커피를 많이 들이마셨다. 그 향과 맛을 조용히 음미하다 그는 1/3 정도 남아있는 잔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아니 뭐... 그렇긴 하지만...그래도 그만큼 매력이 많다고 의미하는 거예요. 그냥. 단지 그걸 얘기하고 싶었던 것 뿐이고... 그러니까...뭐... 그런 상황이 되면 좋긴 하잖아요. 나희씨도. 마음에 드는 이가 하나는 있을테고, 그 마음에 드는 이와 잘 될 가능성도 높은 거니까."
물론 그녀에 대해서 정확하게 아는 것은 없긴 했지만, 그럼에도 잠깐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매력이 많은 여자라고 생각했다. 필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녀를 원해서 다가오는 이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는 나름 진지하게 이야기하다 미소를 지었다.
"...뭐, 서로 그런 상황이 되길 바라는 것도 좋을지도 모르겠네요. ...각자 마음에 드는 이와 만나는 것이 제일일테니까. ...사람 마음은 그 앞을 모른다는 것처럼... 나희씨가 말한대로 어쩌면 진짜 우리 둘이 최종에 같이 보고 있을지도 모르고..."
괜히 그런 말을 하면서도 스스로 무안했는지 그는 헛기침 소리를 내더니 살짝 표정을 관리했다. 이어 어깨를 으쓱하며 그는 마저 남아있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잔을 들었다.
"그러니까... 결론은 그냥 나희씨 매력적인 거 맞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그냥 대충 그런 것으로 알아들어요. 나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