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일본이고 여긴 한국이잖아. 나 참. 애초에 얼굴일 붉어지면서까지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뭐야. 안 부끄러워?"
자신의 말에 웃으면서 반박을 하면서도 얼굴이 붉어지는 아람의 얼굴을 혜성은 놓치지 않았다. 스스로 말하고도 부끄러워하는 것 같은데... 역시 이런 부분에선 아람은 분명하게 할 말을 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혜성은 괜히 그녀의 성격이 조금 부럽다고 느꼈다. 자신도 저렇게 부끄럽더라도 태연하게 말할 수 있으면 좀 더 아람에게 이런저런 말을 할 수 있을텐데. 그런 아쉬움이 아주 살짝, 정말로 살짝 그의 표정에서 묻어나왔다.
어쨌든 아람이 초콜릿을 먹자 그는 괜히 기분이 좋아 하나를 더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먹는 것도 맛있고 좋지만, 역시 여자친구가 먹는 것을 보는 것도 맛있었다. 어릴 적, 부모님이 늘 말하던,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라는 말을 이제야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겠다고 혜성은 생각하며 괜히 초콜릿을 하나 더 손으로 집으려고 했다. 그 순간, 아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뭐래. 맛이 갑자기 확 변하겠어? 하지만... 나도 네가 먹여줘서...그러니까..음..어..음... 더 맛있던 것 같아."
나름대로 제대로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서 혜성은 살며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오늘따라 얼굴이 왜 이리 더 붉어지는지. 차가운 바람이 빨리 열기를 식혀주기를 바라면서 혜성은 괜히 하얀 입김을 내뱉었다. 이어 아람이 집어넣으라고 이야기를 하자 혜성은 알았다고 이야기를 하며 상자를 다시 닫았다. 그리고 초콜릿을 확실하게 챙긴 후, 다시 아람을 바라봤다.
"초콜릿 정말로 고마워. ...그건 그렇고, 역시 날씨가 많이 추워질 것 같은데... 핫초코라도 사줄까? 김에 나도 따뜻한 음료나 마실까 싶어서. 대신 카페에서 먹지 말고 테이크아웃해서 나오자. 음료를 먹으면서 사진 찍을 포인트를 찾고 싶어서 말이야."
/ㅋㅋㅋㅋㅋㅋ 내가 없어지면 큰일난 상황인거야? 그런데 확실히 그렇겠다 싶네. 어지간하면 난 사라지지 않으니 말이야. 정말로 갑자기 아프거나 죽었거나 죽기 직전이거나, 혹은 도저히 들어올 수 없는 긴급한 상황이 된 것이 아니면 매일매일 상판은 들어오고 있기도 하고! 달리 말하자면 어지간하면 나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이야기지만 말이야!
아람은 툴툴거리면서 고개를 훽 돌렸다. 민망한 듯 입술을 오물거리면서. 그런 삐진 척도 길게 가지는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혜성도 민망한, 조금은 부끄러운 말을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람은 혜성이 툴툴거리며 아닌 척을 하든 부끄러워하며 솔직하게 말하든 둘다 좋았다. 아마 혜성을 좋아하니까 그렇겠지. 생각하니 나름 납득이 되기도 한다.
”핫초코 좋지~ 하지만 그 전에 내 눈사람도 좀 봐달라구. 오늘 일찍 나와서 혼자 만든 거라니까?“
아람은 혜성에게서 눈사람에 대한 칭찬을 꼭 듣고나서야 움직이겠다는 듯이 혜성의 옷자락을 꾹꾹 잡아당겼다.
/봐~ 혜성주도 부정 못하잖아 ㅋㅋㅋㅋ 나는..... 바쁘면 사라져......() 보통 일 이슈 아니면 못 올 이유는 없지....?
평소에 너는 모른 척 안하면서! 그렇게 가볍게 따지듯 이야기를 하면서 혜성 역시 가볍게 툴툴거리는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 혜성은 오른손으로 입을 가리고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분위기가 정말로 자신과 그녀가 연인이구나. 누구보다도 특별한 사이로구나. 그런 것이 잘 느껴졌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한편, 핫초코 이야기를 하자 아람은 혜성에게 눈사람을 좀 봐달라고 이야기를 했다. 당연하지만 혜성은 아직 눈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딱히 하지 않았다. 자신의 옷자락을 꾹꾹 잡아당기면서 평을 꼭 듣고야 말겠다는 아람의 얼굴을 바라보며 혜성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피식 웃음소리를 냈다.
"나 참. 이런 서프라이즈를 위해서 눈사람까지 만들고 말이야. ...나중에 사진을 찍으면서 말하려고 했는데... 그렇게 듣고 싶다면 뭐... 못할 것도 없지."
이어 그는 가만히 아람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눈사람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두 사람을 번갈아보면서 아람에게 이야기했다.
"잘 만들었어. 나중에 눈사람 옆에 서봐. 사진 찍어줄테니까. 그런데 왜 토끼 형태인거야?"
특별한 이유는 없을 것 같지만, 그럼에도 이유가 궁금했는지 그는 그렇게 물어봤다. 그리고 그는 가만히 아람을 바라보면서 말을 조금 더 이었다.
"...나도 조금 있다가 옆에 만들어볼까. 원하는 형태 있어? ...없다면 그냥 내키는대로 만들고. 내가."
/ㅋㅋㅋㅋㅋㅋ 그건 그렇긴 한데...그렇긴 한데!! 아무튼 아람주는 그래도 분명히 말하고 다시 돌아오잖아! ㅋㅋㅋㅋㅋㅋ 그러니까 사라지는 것과는 다르다!!
당연히 토끼를 생각하고 만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것에 혜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쩌다보니 토끼가 만들어졌다는 것일까. 그의 고개가 자연히 오른쪽으로 살며시 기울었다가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왔다. 그녀의 말에 공감하는 듯, 혜성은 이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눈사람이 상당히 귀엽게 만들어지긴 했으니까. 특히 저 귀라던가 눈이라던가.
"그렇다면 나는... 고양이로 해볼까."
혜성 역시 딱히 의도하고 제안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뭔가 토끼 모습을 닮은 것이 살짝 아람의 이미지를 닮은 것 같기도 했기에, 그는 자신을 이미지화 했을 때 가장 많이 친구들에게 거론되던 고양이를 떠올렸다. 물론 스스로는 자신이 고양이라는 것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어 혜성은 두 손을 올린 후에 양 손의 엄지와 검지로 사각형을 만들어서 가만히 눈사람과 근처의 모습을 바라봤다. 마치 사진이라도 찍는 것처럼. 이어 그는 고개를 끄덕인 후에, 두 손을 아래로 내렸다.
"눈사람 만든 후에, 네가 가운데에 서서 사진을 찍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조금 있다가 그렇게 찍을까?"
이어 그는 아람의 손을 덩달아잡았다. 카페에 가자고 이야기를 하면서 손을 잡아끄는 것에 혜성은 그러자고 하면서 근처에 있는 카페로 향했다. 공원 근처에는 자연히 많은 카페가 있었고, 그 중 제일 가까운 곳으로 그는 갈 생각이었다. 오 분도 되지 않아 근처에 있는 카페에 도착한 그는 자연스럽게 카페 안에 있는 키오스크 근처에 섰다.
"그럼 나는..."
평소라면 카페에 왔으니 에이드를 마시겟지만, 지금은 겨울이며 안에서 먹는 것이 아니라 테이크아웃을 했으니 역시 따뜻한 것이 좋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카페라떼를 꾹 눌렀고 아람이 마실 핫초코도 꾹 눌렀다.
"더 필요한거 있어? 혹시?"
/마찬가지로 좋은 오후야! ㅋㅋㅋㅋㅋㅋ 바쁜 일은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아람주는 갑자기 사라진다고 해도 다시 돌아온다는 확신이 있어! 그렇기에 이렇게 계속 만나는 거 아닐까? 잠깐 밖에 나갔다왔는데 상당히 덥더라...에어컨을 켜고 뒹굴거리는 중이야... 진짜 너무 더워...8ㅁ8
카페 안은 밖과는 다르게 상당히 따뜻했다. 일단 아람이 사진을 찍는 것을 허락하자 혜성은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어떻게 해야 예쁜 사진이 나올 수 있을지를 구상했다. 발렌타인데이니까 기왕이면 좀 더 예쁘게 찍어주고 싶은데. 자신의 실력이 그것을 허락할지는 아직 자신감이 없었다. 그래도 최대한 예쁜 싸진을 찍고야 말겠다고 다짐하는 그의 표정은 상당히 진지하게 바뀌었다.
"그래? 알았어."
이어 혜성은 더 추가주문을 하지 않고, 바로 카드를 꺼낸 후에 결제했다. 따뜻한 공기가 가득한 카페에서 조금 기다리니, 음료가 테이크아웃 상태로 나왔다. 혜성은 우선 핫초코를 그녀에게 내밀었고, 자신은 카페라떼를 챙겼다. 이어 나가자고 이야기를 하며 그는 카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차가운 공기가 가득한 곳으로 나오자 절로 하얀 입김이 나오고 그는 몸을 약하게 떨었다.
"기분 탓인가. 오늘은 뭔가 모르게 좀 더 추운 것 같지 않아?"
실제로도 다른 날보다 온도가 조금 더 낮은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버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따뜻한 카페라떼를 한 모금 마시면서 방금 그녀가 만든 눈사람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돌아갔다.
"내가 눈사람의 몸통과 얼굴을 만들테니까, 작은 나뭇가지 같은 거 구해줄 수 있을까? 고양이 수염은 역시 그것을 꽂아서 만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아무리 그래도 고양이에게는 수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는 그녀에게 그렇게 부탁하듯 이야기했다.
/마찬가지로 좋은 저녁이야! 아람주는 하루 잘 보냈니? 나는 돌아오고 난 뒤부터 에어컨을 켜두고 계속 시원하게 방에 있는 중이야!
아람이 춥지 않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니겠냐고 생각하며 혜성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당장 자신도 그렇게 막 엄청 추운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아람이 조금 걱정이 되긴 했는지, 그는 아람을 한번씩 바라봤다. 추위에 약하다는 사실은 겨울이 되면서 수도 없이 봤으니까. 어쨌든 그도 따뜻한 카페라떼를 마시면서 몸을 천천히 녹였다.
그러는 와중, 아람이 장갑을 빌려준다고 하자 혜성은 가만히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자연히 그녀와 자신의 손의 크기를 비교했다. 일단 저 장갑에 자신의 손이 들어가긴 할까? 그렇게 생각하며 혜성은 아람의 말에 대답했다.
"그거 프리사이즈야? ...뭐랄까. 너와 내 손 크기 차이가 있으니까 그게 아니면 아마 내가 끼긴 힘들 것 같은데."
이어 혜성은 가만히 생각하다가 일단 벙어리 장갑을 받고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아람의 손을 잡은 후에 자신의 주머니 속에 쏙 집어넣었다. 그 안에서 깍지를 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음료가 있으니 바로 눈사람을 만들기는 힘들테니까 잠시만 이렇게 있자. 음료 다 마실 때까지만. ...마, 말해두는데 너랑 손 잡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손 시려울까봐 그러는 거야. ...아니... 아예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툴툴거리는 목소리를 내다가 끝 부분에는 괜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내며 혜성은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다른 곳을 홱 바라봤다.
/하루 잘 보냈다고 하니 다행이야! 아람주! ㅋㅋㅋㅋㅋ 나도 내일 출근일걸. 그러니까 이제 주말이 올때까지 버티자! 물론...나는 목요일부터 연휴이긴 하지만 말이야! 와아아아!! ㅋㅋㅋㅋ 하지만 4일 연휴 동안 목요일 밤과 일요일만 들어올 수 있을 것 같네. 아무튼 그때는 잘 놀다오겠어!
장갑의 사이즈는 .dice 1 3. = 2 (1. 아람이 손에 딱 맞음 2. 가까스로 혜성이 낄 수는 있음 3. 프리사이즈라 넉넉함)이었다. 아람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던 중 혜성이 자신의 한 쪽 손을 깍지 껴 잡아 주머니에 넣는 것에 작게 웃었다.
“히히. 따뜻하다. 네 말대로 손 하나도 안 시렵다.”
툴툴거리면서 부끄러워하는 혜성의 모습이 왜 이렇게 귀여운 건지. 아람은 혜성의 주머니 속에 들어가 있는 손을 꼼질거리며 웃었다.
뽀드득 뽀드득 눈을 밟으며 눈사람이 있는 곳으로 향하면서 아람은 뒤를 돌아봤다. 발자국들이 점점이 남아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혜성의 발자국과 아람의 발자국이 나란히 찍힌 모습이었다. 당연하게도 혜성의 발자국이 아람의 것보다 더 컸다. 아람은 괜히 그게 재미있게 느껴졌다.
“발자국 귀엽다.”
아람이 뒤를 돌아봤다가 혜성을 올려다보며 웃었다.
/오늘 하루도 고생했어~~~ 으앗 목요일부터 연속 휴일이라니 부럽잖아~~!!! 물론 나도 이번 목요일에 쉰다!! 교대근무 때는 몰랐던 공휴일의 즐거움....! 맘껏 누리겠어~~ 혜성주도 조심히 잘 다녀와야 하는 거야~
장갑의 사이즈가 어떤지는 일단 나중에 껴보면 알 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도 자세히 보니 아슬아슬하게 들어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적어도 아예 안 들어가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혜성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그녀의 손을 잡아 자신의 주머니에 넣고 깍지를 끼니 확실히 손이 따뜻했다. 반대편 손은 주머니에 넣지 않았지만, 그래도 음료를 들고 있었기에 당연히 그 열기로 인해 상당히 따뜻했다.
"...네가 정말로 작아질 수 있다면 주머니에 넣고 다녀줄게. ...뭐, 내키면이지만."
물론 사람이 그 정도로 작아지는 것은 불가능한 일. 당연히 그냥 하는 말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람이 작아져서 자신의 주머니 속에 쏙 넣고 다니면 그건 그것대로 상당히 귀엽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는 괜히 미소를 지었다. 이어 빨대로 따뜻한 라떼를 천천히 마시면서 차가운 자신의 몸을 조금씩 데웠다.
뽀드득. 뽀드득.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눈이 깨지는 소리가 들리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약간의 리듬을 타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다 아람이 뒤를 돌아보는 모습이 보이자 그는 자연스럽게 뒤를 돌아봤다. 뒤에 뭔가가 있는가 해서. 당연하지만 그의 뒤에는 발자국 모습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발자국이 귀엽다는 말이 나오자 혜성은 가만히 아람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사진으로 남길까? 저 발자국."
물론 그렇게 되면 자연히 카메라를 손에 쥐어야하니, 그녀에게 음료를 잠깐만 들어달라고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아람의 답을 기다리며, 그는 하얀 입김을 살며시 내뱉으며 아람의 손을 더욱 꼬옥 쥐었다.
"...고3 1년의 세월. 잘 버티고 나아갈 수 있겠지? 우리."
/아람주도 하루 고생했어! ㅋㅋㅋㅋㅋ 자. 이제 일근 근무의 달콤함을 맛 볼 차례야! 아람주! 공휴일에 푹 쉬고, 주말에 푹 쉬는 것이 당연해져서 다시는 교대근무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어버려라!!
나보다는 네가 더 귀엽거든? 그렇게 말하는 혜성의 목소리는 꽤 진지했다. 툴툴거리는 것조차 잊을 정도로 말하는 것으로 보아 혜성에게 있어서는 상당히 진지한 문제인 모양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아람의 말을 크게 반박하진 않았다. 대신 얼굴을 붉히면서 차가운 겨울바람으로 제 얼굴을 식히려고 했을 뿐. 어쨌든 아람이 음료를 받아주려고 하자 혜성은 음료를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걱정된다기보다는... 아니. 솔직히 걱정이 안 될 순 없잖아. 3학년. ...그... 집에서도 좀 들었는데, 진짜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하니까."
꽤 걱정을 많이 하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럼에도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3학년이라는 1년. 학창 시절의 최고의 악몽이자 꽃이라고도 불리는 그 기간은 역시 여러모로 걱정이 되는 루트였다. 하지만 아람의 말을 들으면서 자신이 그렇게 걱정을 했던가 싶어 그는 괜히 머리를 긁적였다. 이제 더는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는 듯, 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 후, 숨을 후우 내뱉었다.
그 대신 그는 카메라를 꺼냈고, 초점을 맞췄다. 언제나처럼 사진을 찍는 그의 모습은 상당히 진지했다. 눈빛이 바뀌고, 최대한 예쁜 초점을 찾기 위해서 거리를 조절하고, 그러다가 셔터 버튼을 눌러 최고의 샷을 만들어내는 모습은 아직 녹슬지 않았다. 그렇게 몇 번 사진을 찍은 후, 그는 카메라를 다시 목에 메며 그녀에게 말했다.
"찍은 사진은 집에 가면 데이터를 뽑아서 보내줄게. ...그건 그렇고..."
이어 그는 가만히 무릎을 굽힌 후에, 발자국 크기를 가만히 바라봤다. 이어 그는 피식 웃으면서 다시 무릎을 펼쳤다.
"확실히... 발 크기 차이가 있구나. 우리. 뭔가 신기하지 않아? ...같은 나이인데 이렇게 차이가 생기는 거 말이야."
/ㅋㅋㅋㅋㅋ 야근의 쓴 맛...야근했구나. 아람주...아니..그런데 목요일에도 일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회사님! 아람주를 놓아주세요!! 8ㅁ8
아람은 혜성의 말에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툴툴거리는 것도 잊고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더더욱.
“그런가? 사실 나는 그렇게까지 크게 변할 것 같진 않아서.”
아람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사실 지금까지도 꽤 열심히 공부해왔달까... 물론 친구 만날 시간도 아껴서 공부했다는 건 아니지만. 목표가 최고 대학 경영학과였다보니...?”
아람이 성적이 상위권이었던 것은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물론 지금은 목표가 바뀌어서 연극영화과로 가려고 진로를 틀었지만. 그래서 실기 준비로 학원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는 것이고. 물론 공부도 틈틈히 하고 있었다.
아람은 혜성이 사진을 찍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기다렸다. 확실히 사진 찍을 때 진지해서 그런가. 평소의 귀여운 모습과 달리 멋있게 느껴지기도 했다. 데이터를 뽑아주겠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어 발 크기를 이야기하는 혜성의 말에 아람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부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이. 남녀 차이가 있잖아. 같은 나이라도 그렇지...! 작년보다 키 더 컸다고 그러는 거지! 나는 1센치도 안 자랐는데...”
키가 더 크고 싶었던 모양이다.
/야근을 밥먹듯 하고 있어 히히 그래도 널널한 편이라 다행이지만 집에 가고 싶달까....? 내일 일하기 싫은데 일해야해...... 오늘은 일찍 퇴근했지롱~ 물론 집안일도 하고 해야할 것도 해야하는데......
"너는 그럴지도 모르지만 이쪽은 성적... 아니아니.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긴 하지만... 아무튼 그런 거야!"
뭐가 그렇다는 것인지 제대로 설명을 하지 않으면서 혜성은 괜히 툴툴거리는 목소리를 냈다. 아람과 같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 자신은 여러모로 각오를 하고 있다는 말을 굳이 여기서 하고 싶진 않은 탓이었다. 물론 이미 아람도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걸 굳이 입에 거론하는 것은 묘하게 부끄럽다고 해야할까. 아무튼 언제나처럼의 혜성의 모습이었다.
어쨌든 발 크기의 이야기가 나오자 부루퉁한 표정을 짓는 아람의 말에 혜성은 피식 웃었다. 키가 크지 않아서 조금 불만인 것일까. 하지만 아람은 지금의 키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혜성은 이야기했다.
"네 키가 뭐가 어때서. 나쁘지 않잖아. 나 참. 너보다 더 작은 애들이 들으면 배부른 소리를 한다고 한다고."
당장 자신의 반만 해도 150 정도밖에 안되는 아이들도 꽤 흔했다. 그런데 아람은 160은 넘으니까 여자애들의 평균 키보다는 크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며 혜성은 가만히 아람의 앞으로 간 후에 딱 그녀의 앞에 섰고, 가만히 고개를 내려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난 지금 이 정도 키 차이가....어..음..어.. 그...뭐냐...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해. 그... 뽀뽀하기도...으으. 아냐아냐. 그냥 조합이 좋다는 거야. 조합이."
뽀뽀하기도 좋은 차이 아니냐는 말은 차마 꺼내지 못하고 그는 괜히 라떼만 쪼로록 빠르게 빨아마시기 시작했다.
/...아앗...아아앗...하지만 아람주..주말에는 쉴 수 있을거야! 8ㅁ8 그때까지 쭉 버텨보자!! 으악..내일 일하는구나. 나는 나대로 내일 하루는 가족 여행을 간다! 조금 먼 곳에 가기 때문에.. 아마 밤에 돌아올 것 같지만... 어쨌든 오늘은 일찍 퇴근했다고 하니 다행이야!!
“난 진짜 너 안 만났으면 지금도 공부만 하고 있었을텐데 말야. 너랑 이렇게 얘기하고 연기도 배우고 하면서 엄청 행복한 기분이야.”
“물론 힘들긴 하지만.” 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헤헤 웃는다. 경영학과에 가려고 했었던 것은 다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서였다. 머리를 단발을 유지했었던 것도 어머니를 닮고 싶어서였고.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어머니와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연기도 공부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런 용기를 냈던 것은 다 혜성의 덕분이라고 아람은 늘 생각했다.
“하지마안.... 170 까지는 크고 싶었는데. 사실 키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멈추긴 했지만...”
하지만 여전히 아쉬운 모양이다. 키가 크면 사진에도 더 예쁘게 나오고 연기할 때에도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하는 모양이다. 물론 작지 않아서 다행이라고는 생각하지만. 기왕이면, 이라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앞에 딱 서서 하는 혜성의 말에 아람은 조금은 얼굴을 붉히며 웃었다.
“뭐야아. 나랑 뽀뽀하고 싶어?”
아람은 주변을 둘러보고는 “지금 주변에 사람 없기는 해.” 하면서 작게 키득거렸을 것이었다.
/맞아!!! 주말에는 쉴 수 있을거야!! 그리고 오후 출근이라 늦잠도 잘 수 있어~~ 혜성주는 가족 여행 잘 다녀오는거야~~!!! 재미있게 놀다오구 건강 조심하고!!
"혹시 모르지. ...내가 아니었어도 네가 지금처럼 갔었을지도. 사람의 일은 앞길을 모른다고 하잖아. 꼭 내가 아니었어도 넌 지금의 길을 걸었을 거라고 생각해. 난."
물론 계기나 방법은 조금 다를지도 모르지만, 결국 아람은 연기의 길을 가지 않았을까라고 혜성은 생각했다. 그게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흘러갔었을 수도 있으니까. 물론 아람의 말대로 지금도 공부만 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엄청 행복한 기분이라는 말에 혜성은 오른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소리없이 웃었고 그 때문에 몸이 가볍게 움찔움찔했다.
"170도... 나쁘진 않지만, 지금의 네 키도 나쁘지 않아? 그리고...뭐? 뭐?"
그녀의 아쉬움을 달래주기 위해서 말을 하는 도중, 그녀의 입에서 뽀뽀라는 단어가 확실하게 나오고, 더 나아가 주변에 사람이 없긴 하다는 그 말에 그는 화들짝 놀랐고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그의 눈동자가 마치 고장난 기계처럼 빠르게 데굴거렸고, 자신도 모르게 주변을 살폈다. 아마 가깝게 있었으니, 아람도 눈동자가 고장난 것을 쉽게 알아채지 않았을까?
"아, 아니거든?! 아니... 뽀뽀 하기 싫은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그런 의미로 말한 거 아니거든?! 나 참..."
괜히 말 끝을 얼버무리면서 그는 괜히 오른발로 땅을 콕콕 찔렀다. 그러다가 다시 한번 눈치를 가만히 살피다 그는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녀를 향해 팔을 벌렸다.
"이, 이쪽으로 와. ...그...다른 사람이 혹시라도 지날지도 모르잖아."
/으아...집에 돌아오니 이 시간이네.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서 6시에 출발했다가 이제 돌아왔다! 여기저기 많이 다녀서 그런지 조금 피곤하긴 하지만 알찬 하루였어! 내일은 진짜 오전에 나간 후에 일요일 자정에나 돌아올 것 같지만 말이야. ㅋㅋㅋㅋㅋ
물론 사람의 일이라는 것은 모르는 것이긴 했다. 하지만 이제는 혜성이 없는 미래 같은 것은 잘 상상이 안 되기도 했다. 물론 앞으로 어떤 일들이 펼쳐지고 어떤 상황이 닥칠지는 전혀 모르는 일이겠지만. 그래도 아람은 혜성의 웃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 이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아람은 혜성이 화들짝 놀라 얼굴을 붉히는 모습에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람은 혜성이 변명을 하다가 이내 우물쭈물하다 팔을 벌리는 것을 보며 혜성의 품에 폭 안겼다. 핫초코를 쏟지 않게 조심하면서.
작게 웃음을 터트리는 아람의 모습이 묘하게 얄밉다고 생각하며 혜성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그의 표정은 쉽게 풀렸다. 그리고 아람이 혜성의 품에 안기자 혜성은 움찔하더니 그대로 아람을 품에 가뒀다. 그리고 살며시 뒷걸음질을 치면서 근처에 있는 나무 뒤로 천천히 제 모습과 아람의 모습을 감췄다.
"...그러니까 더 키 클 거 없어. ...나도 안 크려고 노력해볼테니까."
물론 그게 어디 혜성의 마음대로 되는 일이겠는가. 이대로 키가 조금 더 클지도 모르지만 그대로 혜성은 굳이 그렇게 이야기했다. 이어 아람이 자신을 올려다보자 혜성은 자연스럽게 그녀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살며시 고개를 내려 정말로 빠르게 그녀의 입술에 제 입술을 겹친 후에 그는 입술을 떼어냈다. 그리고 그녀를 살며시 놓아주면서 시선을 회피했다.
"자. 슬슬...그..눈사람 만들자. 사진 찍어야 하니 말이야. 오늘은 일단 사진 찍을 목적으로 부른 것이기도 하고."
그렇게 아람에게 제안을 하면서 혜성은 괜히 근처에 있는 눈을 모아서 눈덩이를 만들려고 했다. 물론 그 행동이 묘하게 어색했다. 이를테면 같은 쪽에 있는 팔과 다리가 움직이는 형태로 걷는 느낌이라던가.
/물론 혜성이는 아마 조금 더 클 것 같지만...ㅋㅋㅋㅋㅋ 아람이가 배신자라는 눈빛으로 보려나? 아무튼 안녕! 아람주!! 진짜 여기저기 다녀서..정말로 알찬 하루였어! 덥지는 않았다! 강원도쪽은 생각보다는 좀 시원했고 동굴 갔다왔거든. 와...진짜 너무 시원하더라! ㅋㅋㅋㅋ
내가 집에 오는 타이밍을 어떻게 알아챈거지?! 아람주는?! ㅋㅋㅋㅋㅋ 안녕! 아람주!! ㅋㅋㅋㅋㅋ 아람이는 혜성이가 키가 더 크는 것을 좋아하는구나! 정말로 혜성이는 180을 찍을 것인가! 오늘도 신나게 놀다가 이제야 집에 왔어. 답레는...내가 지금은 뭘 더 이을 수 없기 때문에.. 내일 이을 것 같아. 동굴...ㅋㅋㅋㅋ 엄청 시원했지. 공기가 확 달라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주 잘 느낄 수 있었어!
물론 중요한 것은 자신이 크는 것이 아니라 아람이 크지 않는다는 사실이겠지만, 결과만 보면 비슷하지 않나 싶어 혜성은 괜히 투덜거리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도 역시 이쯤 되니까 조금만 더 크고 싶다고 생각하며 그는 괜히 까치발을 살짝 들었다가 다시 아래로 내렸다. 이 정도 키 차이면 더 안기 편하고 뽀뽀도 하기 편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니 얼굴이 붉어지긴 했으나, 지금은 추운 겨울이기에 살며시 바람 탓을 하며 그는 하얀 입김만 약하게 내뱉었다.
"알았어. ...나도 추운 것은 싫으니까."
이어 혜성은 아람이 준 장갑을 자신의 손에 꼈다. 조금 꽉 끼는 느낌은 있긴 했지만 그래도 못 낄 정도는 아니었다. 이어 그는 열심히 눈을 굴리고 굴려 커다란 아랫쪽의 눈덩이를 만들었다. 아람이 만든 눈사람 바로 옆에 놓아두고, 이제는 머리에 올릴 눈덩이를 천천히 굴렸다. 아래에 놓을 것보다는 조금 작게 맞추면서 눈덩이를 올리니 눈사람을 만드는 것이 크게 어렵진 않았다. 정말 정교하고 예쁘게 만드는 것이라면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단순히 눈덩이를 두 개 굴린 후에 위아래로 올리는 것 뿐이었으니까.
"이쪽은 다 만들었어? 너는?"
천천히 해도 돼. 그렇게 이야기하며 혜성은 아람의 대답을 조용히 기다렸다.
/ㅋㅋㅋㅋㅋㅋㅋ 제대로 뻗어버렸네..ㅋㅋㅋㅋ 진짜 간만에 푹 잔 것 같아. 재밌게 놀았지! 케리비안베이 갔다왔어! 사람이 엄청 많더라. 아무래도 그렇다보니 조금 못 타거나 포기해야 하는 것도 많긴 했지만 물 진짜 시원하게 맞으면서 보냈어! ㅋㅋㅋㅋㅋ 해골에서 떨어지는 물 진짜 완전 시원해!
아람이 웅얼거리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혜성은 오른손으로 입을 막고 피식 웃었다. 왜 저리 귀엽지? 뭘 먹었길래 저렇게 귀엽지? 그런 생각을 하는 그의 입꼬리는 좀처럼 아래로 내려올 기미가 없었다. 자신의 여자친구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봐도 누가 봐도 정말로 귀엽게 볼 거라고 생각하던 그는 이내 표정을 관리하면서 헛기침 소리를 냈다.
눈덩이를 두 개 쌓은 후, 몸통을 확실하게 만든 그는 혹시라도 머리가 떨어지지 않도록, 다시 한 번 머리를 살며시 조절했다. 이어 가볍게 툭툭 치면서 머리가 떨어지지 않는 것을 확인한 혜성은 아람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녀가 모아온 것을 와르르 쏟아내자 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좋아. 그럼 그렇게 해보자. 재료가 좋으니까 아마 예쁘게 나올 것 같아."
이어 그는 나름대로 머릿속에 그려진 이미지를 천천히 구현했다. 나뭇가지를 얼굴에 꽂아 고양이 수염으로 만들고, 돌을 이용해서 작은 눈을 만들거나 귀를 만들기도 하고, 그 외에 나뭇잎이나 다른 것들을 이용해서 몸통을 조금 더 꾸미는 등. 그는 나름대로 진지하게 이런저런 형태로 꾸미다가 마침내 완성했다.
"좋아. 됐다!"
토끼 귀를 가진 눈사람 옆에, 조금은 새초롬한 느낌의 고양이 눈사람이 완성된 것을 바라보며 혜성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람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어때? 제법 괜찮지 않아?"
/ㅋㅋㅋㅋㅋ 이러다가 영화 한 편 보러 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일단 영화 뭐하는지는 봐야겠지만! 오전에도 사람은 엄청 많았어. 역시 서울 쪽 워터파크라서 그런지 엄청나더라. 그래서 미끄럼틀이나 이런 것보다는 파도를 맞거나 떨어지는 물을 맞으면서 더위를 식히는 쪽으로 놀았었어. 음식이 비싸다는 거 빼면...진짜 재밌었어! ㅋㅋㅋㅋ
그래서 영화 보러 갔다왔어? ㅋㅋㅋㅋ 나는 쭉 뻗어있다가 오늘 열심히 월요팅하고 또 뻗었다.... 피곤햇.... 운동까지 했더니 기력이 없어.....(데구르르) 역시 서울쪽 워터파크는 사람이 무지막지하게 많은가보구나...?! 아니면 완전 주말 성수기라서 그런 걸지도? 진짜 재밌었겠다 나도 나중에 꼭 가봐야지 히히
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볼만한 것이 없었어! 그래서 그냥 집에 있었어!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돌아왔구나! 하루 고생 많았어! 아람주! (어깨 주물주물) 서울쪽 워터파크..사람 많더라. 진짜. 그런데 어딜 가도 어지간하면 많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ㅋㅋㅋㅋ 사실 지난주가 휴가 거의 마지막 주에 가까웠으니 말이야. 물론 내가 다니는 회사에선 오늘부터 금요일까지 휴가인 사람도 있지만 말이야! 언젠가 꼭 한번 가봐! 그래도 한번은 가볼만해!
아람은 혜성이 자신이 모아온 자질구레한 것들로 눈사람을 꾸미는 것을 히히 웃으면서 바라봤다. 점점 새초롬한 고양이가 되는 모습을 보니 혜성을 닮은 듯하다! 앗, 그렇구나! 그럼 이 토끼가 난가?
“멋진데? 귀여워!”
객관적으로 봐도 잘 만든 눈사람의 모습에 아람은 마음에 쏙 들었다.
“이거 어떻게 담아갈 순 없나? 나를 주머니에 넣을 게 아니라 이 눈사람을 넣어가고 싶은데.”
아람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물론 진심이기도 했다. 가능하진 않지만.
“일단 얼른 사진 찍자!”
아람이 웃으면서 눈사람 사이에 자리잡았다. 혜성과 사귀면서 사진 찍는 것이 전보다 더 많이 익숙해보였다. 연기를 배워서 그런가. 사진에 담기는 표정들도 전보다 더 다양하고 자연스럽기도 했다.
/집에 있었구나~~! 나는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집에 왔따..... 일근 근무로 바뀌니까 평일에 상판 할 시간이 없엇.... 슬프다....(주물당해서 녹아버림) 서울은 어지간하면 사람 많으니까 ㅋㅋ큐ㅠㅠㅠ 휴가철이기도 하고...! 혜성주 회사 이야기 들으면 이렇게 좋은 회사가 있을까 생각하기도 해..... 나는 이렇게 맨날 블랙이지만 박봉이라굿 크윽......
아람의 말을 들으며 혜성은 괜히 뿌듯해하며 눈사람을 바라봤다. 뭔가 이렇게 바라보니 눈사람에 자신과 아람이 담긴 것 같아 그는 괜히 오른손으로 입을 막으면서 입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손을 내리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표정을 관리했다. 물론 다른 사람이 보면 티가 아주 나다 못해 넘쳐 흐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혜성이 그 사실을 인정할 일은 없었다.
설사 물건의 크기를 줄일 수 있는 도구가 있다고 하더라도 눈사람을 주머니 속에 넣는 순간, 순식간에 녹아서 물이 될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결국 이 눈사람은 여기에 두고 볼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하며 혜성은 두 손으로 카메라를 잡았다.
"알았어. 잠깐만."
이어 혜성은 살며시 아람과 거리를 두었다. 그녀가 눈사람 사이에 자리잡는 사이에 혜성은 살며시 적절한 거리를 계산하고 그곳에 섰다. 또 다시 그의 눈빛이 상당히 진지하게 바뀌었다. 그리고 카메라 파인더 너머에 비치는 눈사람 두 개와 아람의 모습을 살며시 자신의 눈에 담았다. 초점을 조절하면서 숨을 죽인 후, 그는 셔터를 눌렀다. 찰칵, 찰칵. 정확히 두 장 찍고 눈에서 떼어낸 후, 그는 살며시 데이터를 열어 디지털 카메라에 담겨있는 사진을 확인했다. 아람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혜성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와서 봐봐. 아람아. 잘 담겼어. 사진."
/ㅋㅋㅋㅋㅋㅋ 원래 평일에는 다 그런 거 아닐까 싶어. 나도 퇴근 후에나 이렇게 접속하고 그러는걸! 음... ㅋㅋㅋㅋㅋ 아람주 회사도 언젠가 화이트가 될 날이 있을지도 몰라! 그리고 나도 월급 그렇게 안 높은걸! ㅋㅋㅋㅋㅋ 이직한 것도 있고 말이지. 어떻게든 월급이 높아질때까지 열심히 열심히 해볼테다!! 서로서로 힘내보자!
말은 이렇게 하지만 또 내년이 되면 내킨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혹은 어떻게든 다른 핑계를 대면서 혜성은 아람과 함께 눈사람을 만들 것이다. 결국엔 그녀와 함께 하는 모든 것을 다 함께 하고 싶었으니까. 그게 바로 그의 마음이었으니까. 물론 그 사실을 순순히 인정할 혜성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한들, 아람에게는 다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찍힌 사진을 바라보면서 혜성은 만족감을 느꼈고 아람 역시 만족감을 느꼈는지 배시시 웃는 모습이 혜성의 눈에 비쳤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혜성은 살며시 입꼬리를 올리면서 조용한 미소를 보였다.
"그러면 평생 나에게만 찍히던가. ...뭐, 나도 네 사진 정도면 찍지 않을 이유는 없으니까. 일단 모델이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낫기도 하고."
어? 평생? 순간 그는 자신이 한 말에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이어 그는 얼굴을 붉히면서 재빠르게 두 손을 휙휙 저었고, 이어 다급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아, 아, 아, 아, 아니. 평생이라고 했지만 정말로 말 그대로의 의미는 아니고...그, 그냥 내 사진이 좋으면 나에게 많이 찍히란 의미야! 무슨 말인지 알지?! 적당히 알아들어! 나 참."
괜히 투덜거리면서 그는 작게 흥 소리를 내면서 다른 곳으로 가자는 듯, 천천히 앞으로 향했다.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서, 이제 슬슬 좋은 포인트를 찾아야만 했으니까.
/ㅋㅋㅋㅋㅋ 대체 무슨 회사길래 화이트가 아예 가능성이 없는거야! ㅋㅋㅋㅋ 그렇지? 일근 근무를 하면 퇴근 후에는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니 말이야. 물론 일정이 생기면 그것도 힘들지만! 어쨌든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 아람주!
발렌타인데이가 가장 큰 타이틀이었으니 이 정도로 일단 해도 될 것 같아! 저렇게 일단 마무리를 짓자! 초콜릿을 받은 혜성이는 그 날 침대에 들어가서 마구마구 데굴데굴 굴렀다고 하네. 완전 좋아서 말이야. 아마 가기 전에 아람이 입에 초콜릿 하나를 기어이 먹여주고 가지 않았을까 싶어. 그 후에 "...내년에는 나도 내키면 만들어볼게." 이런 식으로 말했을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안녕! 아람주! 아람주도 수고했어! 오늘 내일 교육이라. 교육 받는 것도 중요한 법이지! 내일 교육도 화이팅이야!
ㅋㅋㅋㅋㅋ 이제 혜성이가 '내키면'이라는 말을 쓰면 아람이는 자동적으로 하겠다는거구나. 라고 인식하기 시작했구나! 물론 아주 정확한 해석이야! 아람이가 다음날 앓아누워? 맙소사.... 혜성이가 알면 엄청 미안해할 것 같은걸. 아마 병문안 찾아갈 것 같기도 하고! 아이고...앓는 목소리의 아람이라니. 아람이 푹 쉬어야 해!! 그래야 빨리 나아. 고3은 체력전인데!! 8ㅁ8 아마 이후에는 혜성이가 아람이를 겨울에 막 불러내는 일은 잘 없어지지 않을까 싶네. 그래도 볼 때는 보기야 하겠지만... 일부러 필요 이상으로 데이트하려고 막 시간 내서 부르진 않을 것 같은 느낌?
정확한 해석이라니 뿌듯하네 >< 혜성이 말 번역기 아람이 하지만 혜성이 잘못도 아니고 자기 몸상태 파악 못한 아람이 잘못인걸?! 혜성이 병문안이라니 이거 일상으로 꼭 보고싶은데?! 아니 혜성이 겨울에 안 부르면 아람이 엄청 억울해할것 ㅋㅋㅋㅋㅋ 나 그렇게 연약한 사람 아니라구? 아니 한 번 앓은 것 가지구 너무한거 아냐?! 하는 아람이
ㅋㅋㅋㅋㅋ 아람이의 목소리가 뇌내재생되는 것 같아! 막 투정부리는 듯한 목소리려나? 하지만 혜성이는 이미 한 번 보고 말았으니 이후로도 계속 걱정을 할 것 같은데? ㅋㅋㅋㅋㅋ 그래도 1년 뒤의 상황을 보고 또 부를 것 같기도 해! 어쨌건 지금 당장의 겨울은 아마 아람이를 부르는 것을 최소화할 것 같아. 부르더라도 실내 데이트 위주로만 할 것 같고!
분명 어제 집에 들어올 때만 해도 멀쩡하다고 생각했다. 뭔가 평소와 달리 들뜨고 춥지도 않고 이상하게 기운이 펄펄 나는 느낌이었는데... 그게 문제였던 모양이다.
피곤한 느낌에 일찍 저녁을 먹고 잠에 들었는데 새벽부터 갑자기 한기가 치밀기 시작했다. 추워서 잠결에 이불을 아무리 그러모아도 해결되는 것은 없어 몸만 둥그러니 말아낼 뿐이었다. 잠깐 잠에서 깬다고 하더라도 어지러워서 제대로된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감기 걸린 건가? 정도의 생각은 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집에 상비약이 있던가.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없는 것 같았다. 집에 사람은 없다. 그건 익숙한 상황이었다. 어머니는 출장 중이시니까. 마땅히 연락할 사람도 없다. 아침이 되면 좀 괜찮아질까 생각하며 혼자 끙끙 앓다가 다시 잠들었다.
다시 깬 건 전화벨 소리 때문이었다. 화면을 보니 혜성이다. 잠을 자느라 연락이 안 되니까 전화를 건 걸까? 나름 논리적으로 생각하며 전화를 받는다.
“으응.... 혜성아.”
하고 부르는 목소리가 잔뜩 잠겨져 있다. 목을 풀려고 하는데 대신 기침이 콜록콜록 나왔다. 앓는 소리를 내다가 이내 춥고 어지러워서 스피커폰으로 전환하고 휴대폰은 머리맡에 내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