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10년도 더 전에 달에서 내려온 공주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늦게 자면 안된다며 이야기를 도중에 끊어 그 끝을 듣지 못한 5살의 하야시시타 나시네는 아침에 일어나 서재를 뒤지가다 어린이 문집에서 그 끝부분을 읽을 수 있었다. 대체 무슨 뜻인지 공주가 다시 달에 돌아간 걸 그저 안타까워하다 호기심을 해결하고서 까무룩 잊어버린 전래동화가 왜 지금 다시 떠오르는 것일까.
나시네는 오래 전에 가족을 잃었지만 아직도 그 때의 꿈에 사로잡혀 돌아갈 날이 올듯이 환각으로 그리며 현실에 유리되어 숨어있었다. 과거를 비추는 아스라한 달빛과 닮은 환영을 계속 바라보면서 그 날을 후회하고 계속 그리다 자기 자신도 과거에 붙박혀 현실을 거부하며 그 날의 연을 끝맺는 날만을 기다려왔다. 마치 달에 돌아가는 날만을 기다려온 그 옛 이야기의 공주처럼. 다채로운 빛을 띠는 푸른 눈이 자신을 붙잡는다. 예전에 죽어버린 자신의 것과 다르게 맑은 물이 푸른 하늘의 빛을 곧이 곧대로 투영하듯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눈이 흔들리며 저를 뒤따라 바라본다. 흔들리는 푸른 동공에 비치는 자신을 인지함과 동시에 불꽃놀이의 시작을 알리듯 울리는 폭죽소리가 온통 주위에 가득차 확 파도가 밀려오듯 현실이 온 감각으로 그녀에게 다가온다.
더 이상 머리가 아프지 않았다.
"왜 그런 표정을 지어요?" 맑은 미소가 그에 어울리는 살며시 지어진 눈웃음이 자연스레 흰 얼굴에 피어났다. 얼떨떨하고 어색하게 마음에 무언가 얹힌듯 표정을 짓는 알렌에게, 자신을 온전히 잠시나마 현실로 내려오게 한 그에게 말을 건내었다.
"정말 바보같아." 목표물의 위치를 전송하는 신호음이 삐삐 두근거리는 박동을 반영하듯 바삐 울리다 불꽃놀이가 진행되는 부둣가에 닿았을 때 사람들 틈바구니서 울려 그 주인이 누군지 모를 작은 웃음소리와 함께 소란에 묻혀 잦아들었다. 저 멀리서 멍하게 붙박혀 선 테크웨어를 입은 사람의 인영이 보였다. 아니 사람들의 인영이었다. 명백하게 마츠리의 분위기속에서 튀는 이질적인 테크웨어를 입은 남자가 유카타를 입은 여자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불꽃만 보고 그를 돌려보낼게요] 발신자가 누군지 모를 메세지가 알렌과 린 두사람의 챗에 전달된다. 연한 갈색머리를 한, 테크웨어의 남성 옆에 선 여성이 두 사람을 돌아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그의 다음 생이라도 만날 수 있었으니 이제 모든 염원은 마쳤습니다.] 환히 웃는 여자의 얼굴이 팟 하고 검푸른 밤하늘에 떠오르는 거대한 불꽃이 피어나자 그 빛에 드리워진 그림자에 가려진다.
[미래의 이방인이여 지금 이 순간을 그저 담을 수 있기를.] 하늘에 알알이 보석이 박히듯 불꽃이 번지며 수놓아진다.
아름다웠다. 아무런 미사여구를 갖다 붙이더라도 지금의 벅차오름을 대신할 말로 이 한 마디를 이길 수 있을까. 린은 하염없이 이 밤이 계속 될 것처럼 불꽃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불꽃이 잦아들고 검푸른 빛으로 물든 밤하늘이 옅어져 사라질 때까지 린은 그대로 서 있었다.
"모르겠어요. 본 적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잘 기억나지는 않아요. 아마 저 멀리서 하는 축제를 구경한 것 같기도 해요." 세월이 지나 켜켜이 망각이라는 이름의 먼지가 쌓인 추억은 바래어 오로지 그 당시의 두근거림과 기다림, 환희만을 아스라히 남기고서 정확히 그 형태가 어떠했는지는 제대로 비추지 못하였다. 머뭇거리는 듯 우물거리는 그를 옆에 두고서 여운에 젖어 있다 들리는 목소리에 다시 고개를 돌린다.
"...그거." 데이트 신청인거 알아요? 얼마 전이었다면 별 생각없이 장난스럽게 건네었을 말이 어째서인지 나가지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방금 알렌이 건넨 말이 진정으로 데이트 비스무리한 무언가가 될지도 모르는 미래의 약속이 되었기 때문이다. 입술을 몇 번 말을 꺼내려는 듯 달싹이다 그저 미소를 짓고서 눈을 아래로 잠시 내리깐다. 속눈썹에 흰 얼굴에 음영이 드리워지다 이내 눈이 떠지며 그 사이로 붉은 눈이 드러난다.
"좋아요. 정말로 좋을 것 같아요." 딴지를 거는 대신 끊어진 말을 이어 하고픈, 어쩌면 하고팠던 말을 해버린다. 앞으로 당신과 몇 번을 같은 불꽃을 볼 수 있을까. 속으로는 그런 계산을 자동적으로 하면서도 린의 눈은 알렌을 비추다 불꽃이 드리워졌던 허공을 바라보다 다시 알렌을 마주보았다. 두 사람의 차림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지만 여전히 사라진 불꽃의 여운이 남은듯 린의 얼굴에는 은은히 홍조가 맴돌고 있었다.
"그럴 수 만 있다면..." 현실을 자각하자 찬찬히 내려와 가라앉는 마음에 말끝을 흐리다 머뭇거린다. 만일, 만약에 자신의 욕심으로 그를 잃는다면 나는... 더 이상 말을 잊지 않고서 가만히 있다가 차분한 평소의 얼굴을 되찾는다. 여전히 가슴은 들뜸이 가라앉이 않아 무엇인지 모를 마음으로 콩닥거렸지만 그 작은 진심의 속삭임을 무시하고 미소를 그려내다 애매한 표정을 짓는다. 멍하게 서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소녀는 한발을 내딛어 갑작스레 와락 그를 끌어앉았다.
"고마워요." 긴 검은 머리가 나부끼고 소녀는 청년을 끌어안고서 품에 고개를 묻었다. 그렇게 잠시 있었을까 린은 우는듯 떨리는 목소리로 한 마디를 뱉고서 황급히 뒤를 돌아 달려나갔다. 너무나도 기쁜 동시에 슬픈 마음이 들어서 그 사이에서 그녀는 어떻게 해야할지, 근 몇년 만에 처음으로 감정을 다룸에 있어 길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