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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어디로 던져야 할까. 왠지 문득 마운드 위에 올라섰는데, 안개에 뿌옇게 가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만 같은 상황이다. 왠지, 지금까지 마주해왔던 어떤 타석보다도 힘든 타석을 마주한 기분이다. 하지만 이럴 때에 응당 느껴지는, 등골에서부터 뒤통수까지 타고 올라오는 싸늘한 느낌이 없다. 저 너머에 있는 것이, 왜인지 지금 자신이 받아들이는 것과는 다른 무언가일 것만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미카즈키는... 무언가를 던져보는 대신에, 마운드를 벗어나, 지금껏 전혀 걸어가본 적 없던 방향으로 걸어가보는 것을 택했다. 뭐라도 나오겠지. 시합이 연기되었다고 말해줄 감독님 혹은 심판 선생님이나, 마찬가지로 안개 속에서 어리벙벙해하고 있을 상대방 타자, 어쩌면 자신과 마찬가지로 안개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
그러나 일단 더 나아가보아야 뭔가 알겠다.
미카즈키는 타석에서 내려와 슬리퍼를 신고는, 어디로 향하는지 모를 발걸음을 뻗어 스즈네를, 그녀의 자취를 뒤따라가기 시작했다.
"역시 따로 작업실이 있군요."
부족한 설명이라 할 수 있겠으나, 나가쿠모 미카즈키에게는 충분했다. 어디에를 가라. 무언가를 해라. 여기에다가 필요에 따라 시간이나, 함께할 사람 같은 조건이 붙을 뿐. 지금 같은 경우는 키리야마 선배와 함께 지금, 이라는 조건 정도일까. 그래, 미카즈키에게는 충분한 설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그 너머에 무언가 더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당장은 닿을 수 없겠지만.
"얼마나요?"
맷돌 돌리는 노가다라는 말에 미카즈키는 반문했다. 그렇군요, 하고 넘기는 것보다 좀더 대화를 이어가보자는 생각에 꺼낸 말이었다. 그러나 이런 일에 익숙지 않다. 그러다 미카즈키는 잠시, 코끝에 걸리는 낯선 향에 발걸음을 늦추었다. 그리고 문득 나직이 한 마디 했다.
"이 향기였구나."
별 것은 아니고, 외출하셨다 돌아오시는 할아버지는 항상 뭔가 향을-술냄새라던가, 바다 비린내라던가, 고기 냄새라던가- 묻히고 계셨는데, 종종 할머니와 함께 나갔다 오실 때면 이 향을 묻히고 돌아오시던 기억이 있는 것이다.
더할 나위 없이 군더더기없고 깔끔한 태도. 이 부분에서, 미카즈키는 묘하게도 안도감을 느꼈다. 오늘은 무언가 낯선 바람에 공연히 휘둘리지 않아도 될 모양이라고. 츠키가 그어두는 예의바른 거리감이 오히려 차분한 안정감이 되어, 미카즈키는 평소와 같은 덤덤한 얼굴로 낯선 동기를 대할 수 있었다. 오늘은 곤혹스러워하거나 갈피를 못 잡고 갈팡질팡하는 꼬락서니 따위 보여주지 않아도 될 모양이다. 미카즈키는 바닥의 그림자를 보고 지평선을 한 번 보더니 츠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해가 더 기울기 전에 왼쪽으로 가는 게 낫겠어요."
오른쪽은 널찍하게 탁 트여 있어 해가 더 기울더라도 그럭저럭 평소처럼 다닐 만하겠지만, 산골짜기를 접하고 있는 왼쪽은 해가 더 기울면 조명 없이는 곤란할 거라는 계산이었다.
어깨를 토닥이는 미키 군의 손길. 울음 섞인 목소리로, 에헷, 하고 웃는 하나요입니다. 하지만 그 손길이 따듯한 일은 없었습니다. 미키 군으로부터 본래는 느껴질 터였던 체온이 없는 듯이만 느껴집니다. 그러나 반가움에 눈이 먼 하나요는, 구태여 그 점을 짚자면, 미키 군, 시원하네- 정도의 감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돌아왔다면.......- 미키 군에게는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어지는 미키 군의 사과는, 그런 생각을 더욱 깊게 만듭니다. 하나요는 말없이 있는 듯하다가, 더이상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지 못하는 듯한 미키 군의 몸을 쓸듯 부드럽게 토닥이려 합니다.
"미키 군, 고생했네. 오사카까지 가서, 마음도 몸도 지치고 힘든 일도 많이 겪었을 텐데, 많이 노력했겠구나. 으응. 고생 많았어. 잘 돌아왔어. 하나요가 있는 토키와라초에."
작별에 슬퍼하고 아쉬워할 때도 있었지만, 자신이 미키 군과 떨어져 외롭고 아팠던 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미키 군이 외로웠을 것이란 사실을 방금 깨달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사과, 받아줄게. 그러니까 더 이상 미안한 생각 않았으면 좋겠어. 왜냐면 지금의 나, 미키 군을 봐서 좋을 뿐이니까....!!"
미카즈키는 생각했다. 지금 자신이 아주 괴상하기 짝이 없는 꿈을 꾸고 있던가, 아니면 지금까지 괴상한 꿈을 꾸다가 깨어났던가, 둘 중의 하나인 것 같다고. 그게 아니라면, 분명히 남자로 태어나고 자란 자신이 여성의 몸이 되어 있으며 할아버지, 할머니, 엔도 선생, 잡화점의 아저씨, 정육점 아주머니 등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애초에 여자였던 것처럼 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안된다. 그럴 자격 없다. 네게는 권리 없는 일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밀쳐내라. 끊어라. 잘 지내는 것을 확인했으니 그걸로 되지 않았나. 예의바르게 안부 인사를 건네고, 집에서 수건을 가져다준 다음에 원래대로 다시 멀어져도 되는 일이다! 네가 지금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은 더 이상 네가 누려도 될 네 삶 같은 게 아니다! 쓰잘데없는 욕심 부리지 마라!
알아. 안다고. ...하지만, 작별인사. 작별인사를 할 틈도 안 주고 빼앗아갔잖아. 이제 더 이상 지킬 수도 없게 된 약속이지만... 그것만은 해야겠어.
"...하나요. 하나짱."
소년은 힘들게 입을 떼었다.
"나 견뎠어. 그 어둠 속에서 견뎠어. 어느 날이라도 다시 돌아가서, 늦게라도 너랑 했던 놀러가자는 약속, 지키고 싶어서."
고개를 다시 숙이자, 차가운 연못물이 뺨을 타고 흘러 하나요의 어깨 위로 한 방울 톡 떨어졌다.
"...잘 안됐어."
그러나 소년은 어떻게든, 푹 꺼지려는 고개를 가누고는, 하나요가 살짝 놓는 움직임에 따라 마찬가지로 손을 떼고 살짝 물러서면서-
그런 과정이었구나. 오사카로 떠난다는 것은, 미키 군이 말했던 것처럼 트로피를 향해 나아가는 빛나는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어둠 속이었구나, 싶어서, 마음이 아파집니다.
"잘 했어. 미키 군, 잘 견뎠어. 고생 많았어..."
그렇게 차근차근 말해 가는 하나요의 목소리가 갈수록 울음기를 감추지 못하고 떨립니다. 자신과의 약속을, 어쩌면 자신보다 더욱 되씹고 되씹으면서 많은 시간을 지나왔을 미키 군이 안됐고 안됐어서, 어쩔 바를 모릅니다.
"나야말로 하나 짱을 계속 기억해줘서 고마워........"
웃는 얼굴이 일그러지나 싶더니, 연못의 물이 하나요의 뺨을 타고 펑펑 흘러내립니다. 억지로 얼굴을 펴려고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 맑고 푸른, 아무리 속에 강직한 심이 들어있다 하더라도 어린아이 특유의 연약함이 스며있던 미소의 미키 군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여기까지 오기까지, 어떤 것들을 견뎠을까..... 여기서 자신이 울어버리면 주인과 손님의 입장이 뒤바뀐 것이나 다른 바 없다고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