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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아~ 그런거 그런거 조와~ 기대할게~~ (>ε<)ㅋㅋㅋㅋㅋ 왠지 고양이 키링 있어서 그거 링링이 닮았다고 뽑으려고 할듯~ 에~ 사쿠라가 인형 줘도 나는 키링 뽑았어~ 그건 네 거야~ 하고 안 받을거지롱~ ‧₊˚(˘ᵕ˘)˚₊‧ 노래 달달하다~ 음~ 혈당 오르는 느낌~
손을 잡았을지 안 잡았을지는 모르겠지만. 분기 엔딩때에 냇물을 보면 붉은 머리카락은 살짝 미소짓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가.... 다시 들면 이전 헤맬 때의 기묘했던 모습이 전부 사라지고 꽤 평소의 이즈미로 돌아왔겠군요. 그리고 엔딩 이후에 엔도 선생님의 트럭 앞에서 이즈미는 무언가 일어났던 거 같기도 한데... 같은 기묘한 것을 느낀 거 같다는 표정을 짓지만 헤매던 기억은 없지요. 하지만 다음날 좀 앓았을것 같은 느낌은 있어요.
포기만 하지 말라는 스즈네의 말에, 미카즈키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입을 열어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자기 이야기뿐이고, 오늘 더 이상 우울한 이야기를 하기에 소년은 퍽 지쳐 있었다. 다만, 그래서... 스즈네의 말에, 미카즈키는 문득, 정말로 문득 들어버린 생각을 지나가듯이 입에 올려보았다.
"...이미 포기했다고 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요?"
좌절, 우울, 절망... 모두가 익숙한 풍경들이고, 익숙한 계절들이다. 어찌 모르겠나. 누구라도 소년이거나 소녀였다면 한 번쯤은 겪어보는 이야기인 것을. 다만 이 순간, 소년은 소녀의 모습에서 그 다음의 한 발짝을 구차하게 물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미카즈키는 스즈네에게 손을 내어준 채로 몸을 일으키다가, 스즈네의 익살에 천장을 힐끗 올려다보았다. 점프를 해야 닿겠다만, 미카는 이번에는 어색하나마 조금 장단을 맞춰보기로 했다.
"조심할게요."
스즈네가 무엇을 시킬지도 모르는데, 미카즈키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로 스즈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간단한 일이야. 나는 바쁘니 나가쿠모 군에게 부탁하고 싶은데. 발파루크가 날개에서 갈겨대는 레이저를 아무렇지 않게 구르기로 쓱 피해버리는 헌터를 바라보며, 한 손에는 컨트롤러를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서류철을 책상 위로 슥 밀어주면서 엔도 선생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미카즈키는 서류철을 받아들었다. 가장 앞쪽에 끼워진 문서에 약도가 첨부된 축제 노점 배치도가 그려져 있었다. 엔도 선생은 손을 다시 컨트롤러로 가져가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보기에 많아보여도 둘이서 하는 일이니 쉬울 거야. 서류철을 잠깐 훑어보려던 미카즈키는 엔도 선생에게 반문했다.
"그러면, 누구와...?"
세이야 츠키 양, 알고 있나? 군과 같은 학년인데. 미카즈키는 고개를 저었다. 뭐야, 둘 다 이름에 달이 들어있어서 친척인가 했는데. 그러면 이 참에 같은 학년 친구와 친해져보면 되겠네.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야. 가봐. 미카즈키는 서류철을 옆구리에 낀 뒤에 엔도 선생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보이고, 엔도 선생을 뒤로 하고 상담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 저 사람인가. 자색의 색채를 한 눈과, 미카즈키의 파르스름한 눈이 마주친다. 아, 저 사람이.
어느 날 사진부에서 뒹굴거리던 중 엔도 선생님에게 걸려 업무를 해야한다며 끌려왔다. 노점터 조사라니. 배치도를 보면서 조사하라라..귀찮은 일이네 하아 그러던 중 한 남성이 다가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들려오자 그 쪽으로 시선을 올렸다. 어쩐지 겨울 밤에 뜬 달이 연상되는 푸른 빛 눈동자. 그리고 어쩐지 삶에 지쳐보이는 기운을 두른 것 같은 남성 어려보이는 여리여리한 얼굴에 반해 근육질인 그 몸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보면 원더풀하고 외쳤을까하는 실없는 생각이 드는 법이다.
"네, 제가 세이야 츠키입니다."
상대가 맞냐고 물어본듯하자 그리 답하거는 그녀는 무표정하게 당신을 올려다보며 묻습니다.
"그래서 그 쪽분이 동행하시는 분인가요? 으음 그러니까 이름이.."
들어본 것 같으면서 묘하게 이름이 생각이 안 나 되묻습니다. 나처럼 달이 들어가는 이름인 것 같긴한데..
몇 번 정도, 스쳐지나간 적이 있는 얼굴이다. 나가쿠모 미카즈키라는 소년은 타인에 대한 관심이 매우 저조한 편에 속했지만, 그런 미카즈키의 눈에도 이따금 한 번씩 아, 스쳐지나간 적 있는 얼굴, 하고 기억될 정도로 또렷한 인상을 가진 사람이 없지는 않다. 세이야 츠키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었고. (엔도 선생이 언급한 대로, 이름에 똑같이 달이 들어가 있다는 점도 한몫 했다) 그러나 평소와 같이, 말 한 번 섞어볼 일 없으리라 하고 데면데면 스쳐지나갈 사람이지 않겠나. 그렇게 생각했는데 막상 이렇게 통성명을 하게 되니 기분이 묘했다.
592 자캐는_요즘_유행하는_노래_1초_듣고_맞히기를_얼마나_잘하는가 노래 데이터가 비교적 부족한 편이어서 중하위권에 가깝지 않을까 싶네요. 들어본 노래는 딱 알아차릴 수 있지만 스치듯 들었다거나. 들어보지 않은 건 당연히 모르니까... 1초만 들어도 뭔가 정보는 많은데 그 정보를 말해봤자 제목이 나오지는 않으니까.
35 자캐는_남의_생일을_잘_기억하는_편_vs_잘_잊는_편 잘 기억하는 편이에요. 생일을 들었다면.
284 대중교통_환승1번에2시간_vs_환승4번에1시간_자캐가_고르는_루트는 시간을 정확하게 확인해서 동선을 짜고 4번에 1시간.
>>157 ...일단 1초만 듣고 정보가 나온다는 시점이 엄청나. 나는 내가 잘 모르는 노래 1초 듣는다고 해서 뭘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은데! 아무튼...생일은 잘 기억하는구나! 기억력이 좋아! 이즈미는! ㅋㅋㅋㅋㅋ 환승 4번에 1시간..우와...그거 생각보다 되게 힘든데..이즈미는 참을성이 대단하구나!
시종일관 떠들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말이란 건 우물 속 물과 같아서 일정 부분 퍼내면 다시 차오를 때까지 기다려야 그 위로 두레박을 던질 법 했다. 드물게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그게 스즈네였다. 그러니 소년이 이제부터는 입을 다문다 해도 자리가 조용해질 일은 없었다. 무엇보다 스즈네의 말 대부분은 영양가가 없기도 하니까.
그 속에서 의미 있는 답을 원한다면 직접 두레박을 던지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그러면 스즈네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대답한다.
"당연하지~! 네가 숨 쉬며 앞을 보는 한~ 얼마든지 다시 시작할 수도 있는 거야~"
탁한 물감 떨어뜨린 듯 흐려지는 눈빛이 그저 접힌 눈매 탓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테니. 그마저도 깜빡 내려지는 눈커풀에 가려져 찰나였겠지만은.
"응~ 조심해~ 나야 쪼그매서 뛰어다녀도 완전 괜찮지만~"
스즈네의 해맑은 목소리가 재잘거렸다. 통통통통. 가벼운 발소리가 목재 복도를 따라 걸었다. 아까의 툇마루가 나올 때까지 걸은 만큼의 복도를 한 번 꺾어가며 지나가니 문이 나온다. 아마도 뒷마당으로 나가는 문 같다. 그 앞에도 작은 현관이 있어서 스즈네는 거기 놓여 있던 작은 슬리퍼를 신었다. 그리고 미카즈키에게도 성인 남성용으로 보이는 깨끗한 일반 슬리퍼를 한 켤레 내주었다.
"그거 신구~ 별채로 갈 거야~"
설명이라기엔 많이 부족한 말을 한 스즈네가 문을 열자 잠시 잊었던 여름의 더위가 훅 끼친다. 흐악. 열기를 얼굴에 정면으로 맞은 스즈네가 숨 들이키는 소리를 냈다. 덥다~ 더워~ 그렇게 종알대며 제법 묵직해 보이는 문을 끼이익 열었다. 그러자 작은 놀이터 같기도 한 뒤뜰이 환히 보여온다. 좌측이 작은 연못과 정원수들로 꾸며진 조경이라면 우측은 연녹색 잔디가 보드랍게 깔린 넓은 뜰이다. 그 중간을 가로지르는 야외 통로가 있었다. 보도블럭처럼 밋밋한 돌을 쭉 깐 길 위는 천장이 있어서 그늘이 드리워 있었다. 아마 이 길의 끝이 일 하는 곳이지 않을까. 그 예상이 맞다는 듯 스즈네가 부지런히 걸음을 내디뎠다.
"요 끝에~ 토키와라에 공급하는~ 찻잎 만드는 작업장이 있어~ 오늘 할 일은~ 찻잎 갈기~"
주구장창 맷돌 돌리는 노가다지용~ 히히~ 하고 가는 동안 스즈네가 말했다. 그리고 마저 갈 동안은 제목을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기분 탓인지 스즈네의 슬리퍼 소리가 그 노랫소리의 박자에 맞춰진 듯 싶다. 이윽고 뒤뜰을 가로질러 약간의 대나무들을 지나간 그 끝에 저택과 마찬가지로 전통 가옥의 형태를 한 작은 별채가 나온다. 인기척 대신 은은한 찻잎향과 댓잎향이 감도는 별채로 다가간 스즈네가 역시나 잠금 없이 닫혀 있던 문을 열고 안으로 이끈다.
"자자~ 시간은 금이라구~!"
문을 열 적 어디선가 통! 하고 죽대 튕기는 소리가 들리고 사라졌다. 뒤뜰에 흐르는 물이라도 있는 것일까. 본 저택보다 훨씬 조용하고 적막한 별채 안은 바깥보다 진한 찻잎향이 감돌고 있었다.
길가를 메울 듯이 빼곡한 등롱의 행렬이 매달리고, 개시를 흥미진진하게 준비하던 매대들이 잇달아 막을 올렸다. 매미 소리를 뒤덮을 만큼의 떠들썩함이 거리마다 찾아왔다. 기온의 야마비코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화려한 오미코시가 신사에서 뛰쳐나왔다. 집행부원들은 순번을 정해 축제 운영본부에서 교대로 당직을 맡고, 비번인 동안에는 자유롭게 행사장을 돌아다니기로 했다.
“여어, 집행부.”
까만 카라스텐구 가면을 쓰고, 굽이 높은 나막신에 먹빛 유카타를 입은 소녀가 나타나 말을 건넸다. 유카타에는 엷은 색으로 벌집 무늬가 수놓였고 가면의 부리는 삐죽 솟았다. 누구인지 짐작하기 어려우리만치 꽁꽁 싸맨 차림새였지만, 목에 걸린 커다란 카메라를 보면 삼척동자라도 그게 신문부장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을 법했다.
표정이 굳은 사람에게는 “음? 붕붕마루 사절?” 하고 실없는 헛소리를 던졌겠지만, 살갑게 인사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딱히 친한 척을 되돌려 주지도 않는, 참으로 뜨뜻미지근한 태도였다. “그보다 오늘은 내가 좋은 정보를 나누어 주지. 「소원을 이루는 법」에 관한 내용이야. 잊고 있지는 않았지?”
또각또각, 나무 굽 소리를 내며 가까이 다가온 신문부장이 소맷자락 속에서 축제의 팸플릿을 꺼내 펼친 뒤 내밀었다. 축제장의 가판대 명단과 위치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약도였다. 그 중에서도 토키와라고의 학생들이 참여한 부스는 학교의 상징인 와인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그것을 받아들자, 신문부장은 품에서 붉은색 맛키를 하나 꺼내더니 지도 위의 몇 군데에 동그라미를 쳤다.
“여기, 여기, 그리고 여기. 아, 여기도. 내가 점찍어 놓은 수상쩍은 곳들이야. 전부 토키고 학생이거나 토키고 졸업생이 운영 중인 부스지. 아니, 아닌 경우도 있나······ 하여간 저 부스 관련자들은 대체로 전설에 대해 뭔가를 알 법한 사람들이거든. 그러니 너희가 가서 조사를 좀 해 줘. 그냥 노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착실히 소원을 향해 다가가는 과정이니까······ 스스로를 믿도록 해.”
스스로를 믿는다기보다는 니이모토를 믿으라고 하는 편이 더 이치에는 맞았지만, 신문부장은 자신의 신뢰감을 그다지 신용하지 않는 듯했다. “하나 충고해 주자면, 가면 쓰는 걸 잊지 마.”
코이케 카오루와 놀아주는 데도 집행부원들을 불러내 멋대로 이용한 것을 보면, 이 또한 무슨 꿍꿍이가 있지 않은가 하는 의심을 지우기 어려웠다. 하지만 대꾸할 새도 없이 신문부장은 손을 가볍게 흔들며 축제의 인파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활엽수 숲의 꼭대기에서 종류를 알 수 없는 새들이 활개 치는 소리를 내며 날아올랐다.
▶ 이벤트 테마 : 비행선(飛行船) - 미우라 다이치 - 토키와라초 여름 축제가 시작되었습니다. - 이벤트 기간 동안, 「축제」와 관련된 다양한 레스를 작성할 수 있습니다. 작성 시 >>0을 앵커 바랍니다. - 「축제」 레스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추후에 공지됩니다. - 이벤트는 8월 5일(월) - 8월 18일(일) 2주간 진행됩니다.
>>229 오~ 그 정도면 높지~ 상위권이네 상위권~ ദ്ദി ( ᵔ ᗜ ᵔ ) 스즈네도 나름 공부 열심히 하구 있어서~ 전교권 내에 드는 성적이래~ 그치만 대학은 생각 없대~ 이미 집에서 말차 관련 일 배우고 있구~ 졸업 후엔 토키와라 상권의 말차 공급은 스즈네가 맡을거래~
그 때문에 앞으로 일상 구하는 것도 조금 방식을 바꿔볼까 고민중이긴 해. 가급적이면 다양한 이들과 다양하게 돌려보고 싶었지만... 요즘은 일상을 구하려고 해도 다들 멀티라던가, 기존에 오래 돌리던 것들이 있다보니 일상을 찌르기는 힘들어보이고... 그런 이들을 기다리자니.. 뭔가 이러다가 진짜 이도저도 아니게 끝날 것 같고...
편파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못 돌리는 이들은 더 생각하지 말고 어쩔 수 없지. 하고 넘겨야하나 싶기도 하고...
아. 이거 잘못보면 탓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싶네! 그런 것은 아니고 그냥 앞으로는 걍 돌릴 수 있는 이들이 보이면 걍 내가 시간 되면 찌르고 돌리고 본다..느낌 정도로 바꿔볼까 정도야! 뭐... 말은 이렇게 하지만 또 비슷할지도 모르고! 조금 생각은 해보는 중!
쿠레비호의 산책로 인근과 등산로 일대를 병풍처럼 둘러친 가판대 사이에서, 어른들의 눈을 피해 은밀하게 벌어지는 음산한 집회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어둠 나가시소멘. 토키와라에 동고와 서고가 있던 시절, 대학 입학을 앞둔 수험생들이 소속 학교를 막론하고 모여서 서로의 불운을 기원하며 행했던 의식이 원조라고 전해진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피가 흘렀는지는 짐작할 수도 없지만, 그 전통은 지금까지도 가느다랗게 명맥이 이어져 임시로 가설한 무허가 부스의 형태로 계속되고 있었으니, 전승자들 간에 전해지는 단 하나 규칙이 있다면 「세간이 알지 못하게 하라」는 것. 토키고의 재학생이 아니라면 설령 졸업생이라 한들 그 누구도 어둠 나가시소멘의 연회장을 알아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선생들의 끄나풀’인 집행부에게도 쉬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도대체 어디서 정보를 입수했는지, 대나무 비계 설치를 끝낸 순간에 이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어른’이 들이닥쳤던 것이다. 토키고의 졸업생이자 쿠로사와 클리닉의 부사장인 의사 쿠로사와 히나였다. “고등학생들이 생각하는 것쯤이야 뻔하지.” 쿠로사와 씨는 이번 축제의 자원봉사자로, 위생 및 건강 관리 자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쿠로사와는 「자기가 배석하여 운영을 감독하고, 안전사고 및 식중독을 방지하겠다」는 조건을 달고서는, 어둠 나가시소멘의 영업을 남들 몰래 묵인하기로 했다. 이 때문에 몇몇이 안타까운 눈빛으로 각자가 준비해 온 ‘바늘 천 개’, ‘광대버섯’, ‘바삭바삭한 석회암’ 등을 거두어들여야 했지만, 적어도 기껏 설치한 대나무 미끄럼틀을 없애는 것보다는 나았으니 끽소리도 하지 못했다.
······집행부원은, 니이모토가 맛키로 표시한 동그라미 중 한 곳에서 지도에는 나와 있지 않은 가건물을 발견했다. 간판도 없이 검은 천막을 두른 텐트였다. 그 안에는 침울한 얼굴로 소면을 삶고 있는 낯익은 학생들과, 마왕성을 정복한 대마용사처럼 “와하하하” 하고 웃으며 재료를 하나씩 검사하고 있는 쿠로사와 선생님이 보였다. “응? 집행부잖아! 너희도 연루된 거니?”
- 「어둠 나가시소멘」을 개최 중인 수상쩍은 부스를 발견했습니다. 쿠로사와 선생님이 있다면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 어둠 나가시소멘에는 시원한 소면과 함께 특별한 재료를 흘려넣습니다. 8월 10일(토) 자정까지 웹박수로 어둠 나가시소멘에 들어갈 재료를 제출할 수 있습니다. (캐릭터 이름을 함께 기재 바랍니다.) 재료는 먹고 생명에 지장이 생길 만한 물건이 아니라면 무엇이든지 상관없습니다. 가령 타바스코나 편지 따위를 넣어도 됩니다.
- 재료 접수가 종료되면 무작위로 순서를 섞어, 각자에게 흘러들어간 재료를 공지합니다. 8월 10일(토)부터 8월 11일(일)까지 주말 동안 어둠 나가시소멘을 건져 먹는 레스를 작성할 수 있습니다. 레스를 작성할 때는 자신이 받은 재료를 투입한 주인이 누구인지를 추측해서 함께 기재하면 됩니다.
- 레스 작성 기간이 종료되고 나면 각 재료의 주인을 공시합니다. - 보상으로 레스를 작성한 모든 참가자에게 「라무네」 1개를, 주인을 맞춘 참가자에게는 추가로 「라무네」 1개를 더 지급합니다.
- 코르크총 사격 부스가 있습니다. 접수처에는 교토대생 카미노 렌이 뚱한 얼굴로 앉아 있습니다. - 이벤트 레스를 쓸 때 .dice 0 100. 판정을 동시에 3번 합니다. - 다이스 결과값에 따른 경품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획득한 경품은 일상 소재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 경품으로 얻은 라무네를, 동일한 사격 레스의 판정에 「운명력」으로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경품 목록〕 0: ?????? 1-9: 빗나감! 10-29: 밀크캐러멜 한 박스 21-34: 「라무네」 1개 35-49: 미니 다루마 50-59: 큼직한 다루마 60-69: 우지킨토키 두 컵 70-79: 작은 「사깅*」 인형 80-84: 가지 85-89: 「사깅」의 커플 키홀더 90-94: 「라무네」 2개 95-99: 거대한 등신대 「사깅」 인형 100: 「라무네」 5개
*「사깅」: 아케사기현의 지역 마스코트(유루캬라). 따오기를 모티프로 한 캐릭터로, 특유의 되바라진 표정과 극도로 단순화된 이목구비, 모티브를 짐작할 수 없을 만큼 길쭉하고 무성의한 모양새가 특징이다.
언제나 품위유지를 들먹이며 정장 차림을 고수하는 댄디 보이 엔도는, 난처한 얼굴로 손사래를 치면서 정청의 지역축제 집행계원(이쪽이 진정한 의미로 「집행부」였다)이 내미는 주홍색 핫피와 홍백의 네지리하치마키를 애써 거절하고 있었다. 그저 운영본부 텐트 구석에 숨어 네모네모로직을 풀고 있었을 뿐인데 ‘몸도 우락부락하니 힘 잘 쓰게 생겼는걸!’ 하며 끌려나와 가마를 들고 옮길 위기에 처한 것이었다.
천하의 엔도라 해도 시골 아주머니들의 기세를 앞지를 수는 없는 법. 울상이 된 눈으로 주위를 애처롭게 둘러보던 엔도 선생은 마침 구경이 난 집행부원들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거기 너희! 지금이라면 오미코시 옮기기에 참여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제공하마! 하토가와에도 들어갈 수 있고, 기념품도 받는다!”
힘든 일을 제자들에게 떠넘기는 수준급의 인간성을 보고 아주머니들은 아우성을 쳤지만, 그보다 난처한 것은 집행부원들이었다. “괜찮아. 여성과 어린이도 참여할 수 있으니까. 여고생이라고 해서 안 될 것도 없지 않지. 무엇보다 나 같은 아저씨가 우중충하게 가마를 옮기는 것보다도,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축제에 참가하는 게 그림이 좋지 않겠어?”
엔도 선생은 눈치를 보듯이 정청 계원을 흘겨보았다. 안 그래도 계원 아주머니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그래, 학생들. 해 볼래? 재미있단다! 아주머니도 소싯적에는 최전선에서 오미코시를 들고 옮겼는데, 원래는 장정들이 들어야 하는 건데도 남자들이 영 힘을 못 쓰는 걸 보고선 내가 ‘나와 봐!’ 해서 너끈히 들고 옮겼지. 그때부터 토키와라에서 오미코시는 성별과 무관하게 들자고 했는데, 옛날에는 다들 망측하게시리 훈도시 차림으로 부대꼈는걸. 오호호호······.”
계원 아주머니의 수다는 한없이 이어졌다······. 엔도는 지나치게 디테일한 옛날 이야기에 아연실색하더니, 요새는 훈도시 대신 발목을 끈으로 졸라맨 하카마를 착용하니까 맨살이 보일 걱정은 없다고 덧붙였다. 마치 남 일처럼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오십줄이 넘은 엔도가 반세기 넘는 일생 동안 축제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뜻일 터이다. 속는 셈 치고 자원해서 빚을 만드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겠지.
- 가마 옮기기를 권유받았습니다. 이벤트 기간 동안 가마를 들어 옮기는 레스 작성이 가능해집니다. - 이벤트 레스를 쓸 때 .dice 3 15. 판정을 합니다. - 모두의 다이스 값의 총합이 30의 배수를 넘길 때마다 스레의 전원에게 즉시 「라무네」 1개를 지급합니다. - 총합이 100점을 넘으면 참가자들이 원하는 설정/스토리 하나를 정사로 편입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어디로 던져야 할까. 왠지 문득 마운드 위에 올라섰는데, 안개에 뿌옇게 가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만 같은 상황이다. 왠지, 지금까지 마주해왔던 어떤 타석보다도 힘든 타석을 마주한 기분이다. 하지만 이럴 때에 응당 느껴지는, 등골에서부터 뒤통수까지 타고 올라오는 싸늘한 느낌이 없다. 저 너머에 있는 것이, 왜인지 지금 자신이 받아들이는 것과는 다른 무언가일 것만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미카즈키는... 무언가를 던져보는 대신에, 마운드를 벗어나, 지금껏 전혀 걸어가본 적 없던 방향으로 걸어가보는 것을 택했다. 뭐라도 나오겠지. 시합이 연기되었다고 말해줄 감독님 혹은 심판 선생님이나, 마찬가지로 안개 속에서 어리벙벙해하고 있을 상대방 타자, 어쩌면 자신과 마찬가지로 안개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
그러나 일단 더 나아가보아야 뭔가 알겠다.
미카즈키는 타석에서 내려와 슬리퍼를 신고는, 어디로 향하는지 모를 발걸음을 뻗어 스즈네를, 그녀의 자취를 뒤따라가기 시작했다.
"역시 따로 작업실이 있군요."
부족한 설명이라 할 수 있겠으나, 나가쿠모 미카즈키에게는 충분했다. 어디에를 가라. 무언가를 해라. 여기에다가 필요에 따라 시간이나, 함께할 사람 같은 조건이 붙을 뿐. 지금 같은 경우는 키리야마 선배와 함께 지금, 이라는 조건 정도일까. 그래, 미카즈키에게는 충분한 설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그 너머에 무언가 더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당장은 닿을 수 없겠지만.
"얼마나요?"
맷돌 돌리는 노가다라는 말에 미카즈키는 반문했다. 그렇군요, 하고 넘기는 것보다 좀더 대화를 이어가보자는 생각에 꺼낸 말이었다. 그러나 이런 일에 익숙지 않다. 그러다 미카즈키는 잠시, 코끝에 걸리는 낯선 향에 발걸음을 늦추었다. 그리고 문득 나직이 한 마디 했다.
"이 향기였구나."
별 것은 아니고, 외출하셨다 돌아오시는 할아버지는 항상 뭔가 향을-술냄새라던가, 바다 비린내라던가, 고기 냄새라던가- 묻히고 계셨는데, 종종 할머니와 함께 나갔다 오실 때면 이 향을 묻히고 돌아오시던 기억이 있는 것이다.
더할 나위 없이 군더더기없고 깔끔한 태도. 이 부분에서, 미카즈키는 묘하게도 안도감을 느꼈다. 오늘은 무언가 낯선 바람에 공연히 휘둘리지 않아도 될 모양이라고. 츠키가 그어두는 예의바른 거리감이 오히려 차분한 안정감이 되어, 미카즈키는 평소와 같은 덤덤한 얼굴로 낯선 동기를 대할 수 있었다. 오늘은 곤혹스러워하거나 갈피를 못 잡고 갈팡질팡하는 꼬락서니 따위 보여주지 않아도 될 모양이다. 미카즈키는 바닥의 그림자를 보고 지평선을 한 번 보더니 츠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해가 더 기울기 전에 왼쪽으로 가는 게 낫겠어요."
오른쪽은 널찍하게 탁 트여 있어 해가 더 기울더라도 그럭저럭 평소처럼 다닐 만하겠지만, 산골짜기를 접하고 있는 왼쪽은 해가 더 기울면 조명 없이는 곤란할 거라는 계산이었다.
어깨를 토닥이는 미키 군의 손길. 울음 섞인 목소리로, 에헷, 하고 웃는 하나요입니다. 하지만 그 손길이 따듯한 일은 없었습니다. 미키 군으로부터 본래는 느껴질 터였던 체온이 없는 듯이만 느껴집니다. 그러나 반가움에 눈이 먼 하나요는, 구태여 그 점을 짚자면, 미키 군, 시원하네- 정도의 감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돌아왔다면.......- 미키 군에게는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어지는 미키 군의 사과는, 그런 생각을 더욱 깊게 만듭니다. 하나요는 말없이 있는 듯하다가, 더이상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지 못하는 듯한 미키 군의 몸을 쓸듯 부드럽게 토닥이려 합니다.
"미키 군, 고생했네. 오사카까지 가서, 마음도 몸도 지치고 힘든 일도 많이 겪었을 텐데, 많이 노력했겠구나. 으응. 고생 많았어. 잘 돌아왔어. 하나요가 있는 토키와라초에."
작별에 슬퍼하고 아쉬워할 때도 있었지만, 자신이 미키 군과 떨어져 외롭고 아팠던 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미키 군이 외로웠을 것이란 사실을 방금 깨달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사과, 받아줄게. 그러니까 더 이상 미안한 생각 않았으면 좋겠어. 왜냐면 지금의 나, 미키 군을 봐서 좋을 뿐이니까....!!"
미카즈키는 생각했다. 지금 자신이 아주 괴상하기 짝이 없는 꿈을 꾸고 있던가, 아니면 지금까지 괴상한 꿈을 꾸다가 깨어났던가, 둘 중의 하나인 것 같다고. 그게 아니라면, 분명히 남자로 태어나고 자란 자신이 여성의 몸이 되어 있으며 할아버지, 할머니, 엔도 선생, 잡화점의 아저씨, 정육점 아주머니 등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애초에 여자였던 것처럼 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안된다. 그럴 자격 없다. 네게는 권리 없는 일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밀쳐내라. 끊어라. 잘 지내는 것을 확인했으니 그걸로 되지 않았나. 예의바르게 안부 인사를 건네고, 집에서 수건을 가져다준 다음에 원래대로 다시 멀어져도 되는 일이다! 네가 지금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은 더 이상 네가 누려도 될 네 삶 같은 게 아니다! 쓰잘데없는 욕심 부리지 마라!
알아. 안다고. ...하지만, 작별인사. 작별인사를 할 틈도 안 주고 빼앗아갔잖아. 이제 더 이상 지킬 수도 없게 된 약속이지만... 그것만은 해야겠어.
"...하나요. 하나짱."
소년은 힘들게 입을 떼었다.
"나 견뎠어. 그 어둠 속에서 견뎠어. 어느 날이라도 다시 돌아가서, 늦게라도 너랑 했던 놀러가자는 약속, 지키고 싶어서."
고개를 다시 숙이자, 차가운 연못물이 뺨을 타고 흘러 하나요의 어깨 위로 한 방울 톡 떨어졌다.
"...잘 안됐어."
그러나 소년은 어떻게든, 푹 꺼지려는 고개를 가누고는, 하나요가 살짝 놓는 움직임에 따라 마찬가지로 손을 떼고 살짝 물러서면서-
그런 과정이었구나. 오사카로 떠난다는 것은, 미키 군이 말했던 것처럼 트로피를 향해 나아가는 빛나는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어둠 속이었구나, 싶어서, 마음이 아파집니다.
"잘 했어. 미키 군, 잘 견뎠어. 고생 많았어..."
그렇게 차근차근 말해 가는 하나요의 목소리가 갈수록 울음기를 감추지 못하고 떨립니다. 자신과의 약속을, 어쩌면 자신보다 더욱 되씹고 되씹으면서 많은 시간을 지나왔을 미키 군이 안됐고 안됐어서, 어쩔 바를 모릅니다.
"나야말로 하나 짱을 계속 기억해줘서 고마워........"
웃는 얼굴이 일그러지나 싶더니, 연못의 물이 하나요의 뺨을 타고 펑펑 흘러내립니다. 억지로 얼굴을 펴려고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 맑고 푸른, 아무리 속에 강직한 심이 들어있다 하더라도 어린아이 특유의 연약함이 스며있던 미소의 미키 군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여기까지 오기까지, 어떤 것들을 견뎠을까..... 여기서 자신이 울어버리면 주인과 손님의 입장이 뒤바뀐 것이나 다른 바 없다고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잃은 무언가는 다른 무언가로 잊는다. 떠나간 사람은 새로운 사람으로 잊는 법이고, 지나간 좋은 추억은 새로운 좋은 추억으로, 행복을 잃은 고통은 새로운 행복으로... 상실을 치료하는, 가장 대중적이고 흔한 방법이다. ......미카즈키에게는 다른 무언가가 없었던 모양이다. 결국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까지고, 이미 지나버린 그날에 하나요와 만나기로 한 약속이 오래된 쪽지처럼 소중히 놓여있었으니까.
그러나 오늘은 그것을 두어야 할 자리에 두어야만 한다. 돌려달라고 울부짖었으나 돌려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나가쿠모 미카즈키는, 점점 떨리는 목소리를 하고 있는 하나요에게서 도망치지 않는다. 도망치는 건 실컷 했다. 끌려왔다는 사실에서 도망쳤고, 무언가 잃어버렸다는 사실에서 도망쳤다. 오사카에서 도망쳤고, 이제는 포스터 앞에서 도망쳤다.
마음만 같아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싶었다. 응. 이제부터라도 마음껏 놀러다니자. 못 갔던 시내도 가고, 수족관도 바닷가도 축제도 마음껏...... 그러나 미카즈키는, 미키 군은 오늘 작별을 하러 왔다. 그때 못다한 작별인사를. 저 허공으로 멀리멀리 던져버린 야구공처럼, 미카즈키는 미키군을 끝내려 한다.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있던 그 조그만 소년을 이제서야 옛날로 떠나보내주려고.
"...난 더 이상 네가 알던 미키군이 아닐 거야."
하나요가 손을 내밀었을 때, 손끝에 걸리는 것은 미키군의 하얗고 곱던 손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얗다, 그것만은 똑같았다. 그래 그것은 하얬다. 하지만 그것은 딱딱한 굳은살로 뒤덮여 있었고, 군데군데 변색되어 있었으며, 기다란 손가락은 마디가 툭툭 불거져 마치 거미와도 같았다. 손등이며 손가락에 살은 사라지고 근육과 핏줄만이 남아 피부로 꽉 조여져 그로테스크할 정도로 근육 결이 선명히 드러나 있어, H. R. 기거의 포트폴리오에서나 볼 법한 기괴한 형상이 되어 있었다. 그 차가운 것은 하나요에게 먼저 내밀어져오지 않았으나, 하나요의 손길을 피하지도 못했다. 미카즈키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젠 연못물이라고 변명할 수도 없는 눈물이 또록 굴러내린다. 그리고 미카즈키는 다시 눈을 뜨고는 하나요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내가 네 앞에서 미키군으로 있을 수 있을 때..."
그때 그 날 그 여름의 하늘이, 미키군의 마지막 여름 하늘이, 하나요를 바라보고 있다.
"말하게 해줘. 「안녕히」 라고..."
비어버린 그릇이 앞에 놓여 있다. 전에 없던 금이 크게 가 있다. 연못물을 다시 담아주는가, 아니면 그대로 두는가. 당신의 선택이다.
미카즈키가 뒤를 쫓는 스즈네는 어느새 구름 같던 그 모습이 되어있었다. 중력을 무시하듯 퐁당퐁당 걷는 몸짓이 그렇고. 동그랗게 뭉쳐져 정수리 살짝 아래 묶인 머리뭉치가 그렇고. 나른하게 늘어진 말투가 그렇다. 미카즈키의 말이 바람이라도 되는 양 매번 고개를 빙글 돌려 쳐다보면서 대답하는 것도 그랬다.
"당연하지~ 음~ 저어기 차밭의 작업장이~ 더 크으고 멋있지만~"
소년이 알 지 모르겠지만 키리야마 가의 말차는 교토 쪽에서도 명성이 자자했다. 특유의 향이 나는 키리야마 가의 말차와 이를 사용한 디저트를 주력으로 미는 카페와 말차 자체를 유통하는 영업점도 있었다. 전부 키리야마 가의 사업이었긴 하지만. 유명한 것은 분명했다. 그 모든 수요를 맞추기에 지금 가고 있는 작업장은 턱없이 작았다. 기껏해야 토키와라에 공급하는 물량을 채우는게 고작일 듯한 규모라고 할까.
"얼마나~ 아주 많이~? 미카즈키 군 체력 나름이지 않을까 싶구~"
체력보다는 요령이 필요한 작업이지만 미카즈키는 처음이니 말이다. 되는 만큼만 하면 된다고 말하던 스즈네는 문득 미카즈키가 걸음을 늦추자 따라서 타박. 멈춰섰다.
"향기~?"
고개를 뒤로 갸웃 기울이며 미카즈키를 본다. 처음 오는 걸 텐데 익숙한 향기를 접한 듯한 반응이다. 왜지? 하듯 차츰 기울어가던 스즈네의 고개가 아! 하고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떠나온 본 저택 쪽을 보며 말한다.
"잇치 할부지~ 오시면 저어기 뒤뜰 쪽 방으로 모시니까~ 그래서일 거야~ 뒤뜰 바람~ 여기 통해서 들어가니까~"
그렇게 분 바람은 저택을 휘감으며 지나가기에 저택 내에서도 그 은은한 향이 늘 감돌았다. 그 안에서 차를 우리면 향이 더욱 짙어지니. 다녀간 사람에게 묻어간 잔향이 누군가에게 흘러들어갈 법도 했다.
"미카즈키 군도 다음에 오면 그 방 안내해줄게~"
다음에 오면~ 히히~ 하고 웃은 스즈네는 별채 현관으로 쏙 들어갔다. 그리고 본 저택 현관에서처럼 슬리퍼를 휙휙 벗어놓았다. 한 짝은 옆으로 세워지고 한 짝은 뒤집혔지만 제대로 놓을 생각은 없어보인다. 목판 복도는 현관에서부터 관리가 잘 되어 반질반질하다. 안으로 들어오니 더 진해진 향이지만 편안하게 감싸올 뿐 불편한 과함은 없다. 그리고 둘 외의 인기척도 없었다.
"멧돌~ 멧돌~ 빙글빙글 멧돌방은 여기~"
혼자 참 떠들 말도 많다. 물에 빠지면 입만 동동 뜰 상이라는게 이런게 아닐까. 복도를 통통통통. 울리며 걸어간 스즈네가 종이 발린 장지문 하나를 휙 열자 갇혀 있던 공기가 화하고 흘러나온다. 갓 갈아낸 찻잎의 상쾌함과 목재 저택 특유의 향이 절묘하게 섞인 향이 형체 없이 쏟아지듯 흐른다. 그 흐름을 가르듯 방 안으로 쑥 들어간 스즈네가 방 한켠을 손짓했다.
"저기 앉아~"
방 안은 가운데 큰 작업대를 중심으로 그 위에 작은 찻잎용 멧돌이 여섯 구 놓여 있고 멧돌마다 좌석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양 옆의 벽으로 긴 작업대가 따로 있어 갈은 찻잎을 포장하거나 말린 찻잎을 가져다 놓는 용도로 보인다. 스즈네는 선반 따위가 놓인 긴 작업대로 가 달그락거리며 찻잎을 꺼내려는 듯 했다. 자리에 앉아 기다리면 곧 일감을 한바구니 든 스즈네가 오지 않을까.
해야만 하는 일에 대해선 빠르고 깔끔하게. 귀찮으니 빨리 끝내고, 두 번 일할 상황 만들지 않는다. 이런 부분에선 꽤 합이 잘 맞는 태도라고, 미카즈키는 생각했다.
"그 편이 좋겠네요."
물론 그런 태도에 동조하는 만큼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싶지는 않으니, 그런 기분이 싫지 않다는 티는 성실하게 일하는 것으로 내면 된다.
"두 번 일할 필요 없죠." 딱히 대충 하겠다는 것은 아니라는 츠키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하며, 미카즈키는 서류철을 한 손에 들고 서류 한 장을 뒤로 넘겼다. 노점의 배치도와 각 노점마다 매겨진 번호, 그 번호마다 어떤 점포들이 들어서는지 일목요연히 정리되어 있다. 그리고 서류를 한 장 뒤로 넘기면서, 미카즈키는 이 서류철에 들어있는 서류가 2부라는 것을 발견했다. 엔도 선생, 이렇게 배려심있는 사람이었던가? 아무튼, 둘 중에 한 명이 보블헤드마냥 서류철 쪽으로 고개 돌렸다가 노점 쪽으로 고개 돌렸다가 하는 신세는 면할 수 있을 것 같다. 미카즈키는 뒤쪽에 있던 서류를 뽑아 츠키에게 넘겨준다.
>>436 카나타가 무조건 반한다는 포인트? 이건 딱히 생각해본 적이 없네... 애초에 카나타를 연애를 한다라는 생각을 하고 만든 애가 아니다보니... 그렇다고 SL로 만든 아이는 아니긴 하지만!
아무튼 카나타가 반할만한 포인트라... 동물과 함께 있을때 그 특유의 조화로운 분위기에 카나타는 반하지 않을까 싶은걸. 이게 1순위고.. 2순위는 이야기를 나누거나 같이 뭔가를 할 때 피하지 않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생각을 같이 나누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는 분위기에서 상대가 진심으로 웃고 자신과 함께 있는 것을 즐거워할때 반하지 않을까 싶기도 해. 표현이 조금 어렵지만 아무튼 그렇다!
그럼 다행이고. 짧게 덧붙이면서 괜히 소년은 한숨 쉬었다. 능청스러워보이는 그 모습에 당장이라도 뺨을 주욱 늘려주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아내고서.
"그냥. 별거 없으면 됐고."
그러다가.
"마시로가 꼬맹이기는 해."
코로만 흐흥 웃는 너를 따라 피식, 웃어버렸지. 어느새 다 먹은, 비어버린 접시 위로 숟가락을 올려놓고서는. 네가 나를 바라보자, 나 역시 너를 바라보았다. 가끔씩 이런 것들을 느낀다. 그러나 소년은 말 하지 않았다. 툭, 하고 부딪히면 산산조각나는 유리같은 이런 것을, 굳이 손 대어 먼저 깨트리고 싶지 않았다. 그저 그 위로 조심히 앉을 뿐. 한 마리의 고양이가 되어 자신의 체온으로 그것을 덥혀줄 수 있기를 바라며.
"월급의 반은 저축하려고. 어차피 쓸 데도 많이 없을테고... 뭐, 여행 다니느라 이래저래 쓰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만."
"그거 말고는 딱히."
그리고는 딸랑, 하고. 네가 숟가락 놓는 소리를 들었다. 잘 먹었다는 말에 씩 웃어보이고는, 너와 내 접시, 수저를 챙겨 싱크대로 향했다. 팔을 걷고 설거지를 하기 시작하면서.
색을 빼고는 미키 군을 잃어버린 소년의 손은 감촉도 형태도 판이합니다. 하지만 하나요는, 그 손이 심지어 희다는 정체성마저 잃어버렸을지라도, 기꺼이 옛 친구의 손을 붙잡을 마음이었습니다.
그것이 미키 군에게 중요하다면,
"하나요도, 많이 바뀌었어....."
그렇지만 그것이 미카즈키에게 중요하다면,
"하나요, 미키 군에게 마지막 편지도 선물도, 아무것도 준 게 없는데.....!!"
심지어 마지막으로 같이 한 약속마저도 빼앗겨버렸으니, 하나요는 떨어지는 눈물을 숨기려고도 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것을 생각하지만, 저 멀리에 떨어진 화과자와 심부름 봉투 뿐입니다. 그렇지만 아쉬움을 이제는 놓아주어야 할 때라는 것을 압니다. 미키 군에게 고개를 뻗습니다. 어떤 신호라는 것을 눈치채고 숙여주었다면, 뺨에 가벼운 입맞춤을 작별인사로 남겨주었을지도 모릅니다.
어느새 축제날이 다가왔다. 쿠레비야마 산기슭에 위치한 하네이 신사에서 매년 여름 개최하는 축제. 익숙하고 정겨운 그 이름. 이나리 신을 모시는 그 신사. 과거, 여우가 쿠레비호에 뛰어들어 홍수를 막았다고 하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오던데. 진실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소년은 이런 정다운 것들을 좋아했다.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들. 히라무의 열쇠 같은 비밀들. 수수께끼들. 그렇기에 신사에 가면 기도하는 편이었다. 이따금씩 산책 겸 런닝을 나갈 때, 신사를 들러 기도하기도 했다. 학생회였기에 순찰 겸 점검을 나갈 일도 있었고.
매미 소리가 울린다. 느지막한 저녁이지만 아이들 뛰노는 정다운 소리도 들려오고. 오징어 구이의 달콤한 향기도 코를 간질인다. 올해 여름도 늘 그렇듯 오미코시를 들고 시가지를 순회한 다음, 하토가와에 띄워서 쿠레비호까지 옮기는 행사를 펼치겠지. 많은 가판대도 들어설 테고, 우리 학교의 학생들이 참여해 만든 부스도 절찬 영업중이리라. 소년은 흰색 반팔티에 청바지, 편한 런닝화 차림으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마네, 야키소바 먹고 갈래?"
"아냐, 괜찮아. 불 조심하고."
"회장님, 차 한잔 마시고 가세요! 저희 메이드복도 귀엽다구요!"
"하하, 다음에. 슬슬 밤 될테니까 너무 늦게 들어가지 않도록 하자."
그렇게 말하며, 흘러 내리는 땀을 손수건으로 슥 닦던 때에. 같이 돌아다니던 학생회 친구들이 말을 걸어왔다.
"회장, 이제 얼추 다 된것 같은데. 축제 좀 보다 가.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할게."
"응? 아직 남았잖아. 저기도 점검해야하고... 슬슬 밤이니까, 아이들 인솔도 해야 할텐데."
"괜찮아. 제일 먼저 왔잖아? 집행부기도 하고. 할 일도 많을텐데, 좀 쉬어. 안 쉬면 억지로라도 쉬게 할테니까."
"...그러면 조금만 쉴까. 고마워. 너희도 너무 무리하지 말고."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손을 흔들고. 조금 걸어 신사 입구 계단에 털썩 앉았다. 하아, 그럼 오늘 일은 여기서 끝인가. 목마르네... 소년은 그리 생각하며 눈을 깜빡였다.
아마네 아오와 같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축제의 정 가운데에 위치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 견고한 유대의 거품 밖에서 서성이는 사람도 있는 법이었다. 마이구나? 야키소바 먹을래? 응 먹을래. 짧은 대화 후에 미야마 마이는 야키소바를 먹고 다시 축제의 거리를 걸었다. 어이! 미야마! 이것 좀 사가! 응? 와아- 마침 마시고 싶었어. 그렇게 몇 번. 빠르게 탕진된 지갑, 양 손에는 2개씩만 판다며 구매한 슬러시를 들고 쭉 걷고 있었다.
5살 때 카페에서 기르던 어린 강아지를 산책시키려고 나갔는데, 장난을 친다고 줄을 놓고 집으로 가는 척 하고 먼저 건너편으로 걸어갔는데, 강아지가 자기 놔두고 가는 줄 알고 놀라서 뛰어가다가 그만 도로를 질주하던 차에 치여서 죽은 일이 있었어. 골목길이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잘못은 질주하던 차량에 있었지만, 카나타는 아직도 그때의 일을 후회하고 있고 자기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면서 은근히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편이야.
자. 상응하는 질문이다! 스즈네가 이번 축제에서 꼭 이루고 싶거나 하고 싶은 것을 육하원칙에 맞춰서 설명해줘.
이번 축제에서 이루고 싶은거나 하고 싶은거~ 스즈네는 올해도 모두 다같이 모여서~ 언니의 카페 부스가 매일매일 매진되고~ 축제도 즐기고~ 온가족이 다같이 모여서 마무리 겸 뒷풀이 술자리까지 무사히 끝났으면 한대~ 아~ 올 해는 뒷풀이 술자리에 껴서 술 마셔보고 싶은게 꼭 이루고 싶은 거라면 그런 걸까나~
>>655 후후 사격으로 라무네를 먼저 획득해서 가마 옮기기에 투자할 것인지, 가마 옮기기로 얻은 걸 사격에 투자할지 개인의 자유야
조사는 그냥 어디에 방문할 것인지만 밝혀도 상관 없고, 상자를 열 때는 어떤 방법을 시도하는지 알 수 있게 간단하게만 써도 돼. 다들 간단한 수수께끼 추리를 해 보라고 낸 건데, 더워서 아무도 관심이 없으니 역효과로구먼... 방법이 맞는지에 대한 판정은 내가 하거나, 너무 애매하다 싶으면 물어볼 테니까 토씨 하나 틀렸다고 실패할 걱정은 마 ヾ(•ω•`)o
주변의 풍경은 점점 기이하게 변화해 갔다······. 쏙독새 울음 소리가 간간이 들려 왔다. 두 사람의 걸음을 힐난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나아가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 같기도 했다. 모든 것이 토키와라의 평범한 산길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무엇이 「평범」이고 무엇이 기기괴괴인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흐려 놓으려는 듯이, 비상식적인 보랏빛으로 점멸하며 무릎까지 자란 무성한 풀숲.
분명히 기억나는 것 하나는, 오솔길은 그렇게 길지 않았고 석등이 이렇게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석등이 늘어선 사이를 지나갈 때마다 새하얀 빛이 하나씩 켜졌다. 저 멀리서는 낮은 울음 소리와 함께, 구근을 태우는 듯한 매콤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풍겨 왔다. 짐승의 울음, 아니면 사람의 울음? 맞은편에서 무언가가 무리지어 걸어오는 듯하지만, 눈에는 무엇도 비치지 않는다.
어느새 두 사람은 교토의 후시미이나리타이샤에 놓인 것과 비슷한, 무수히 길게 이어져 있는 센본도리이의 통로 앞에 다다랐다. 선선한 주황빛이 불처럼 형형했지만, 가까이서 바라보면 그 모습은 투명하다. 토리이의 붉은색은, 기괴하게 자란 보라색 수풀에서부터 난반사된 빛이었다······. 둘에게는 이 이상 걸어가면 안 된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인기척이 자꾸만 흘러들어 왔다. 바람보다 무겁고 슬픈 무언가가, 얼떨떨하게 선 두 사람의 몸을 그대로 뚫고 지나가는 것처럼 스쳐서 등줄기에 알 수 없는 감촉을 남겼다. 그때 길이 없는 풀숲에서 무녀복을 빼입은 키타토라 양이 튀어나왔다. 한참을 뛰어다닌 것처럼 숨을 헐떡이며 흙과 풀잎으로 어질러진 모습이었다.
“하아, 하아, 하아······! 겨우 찾았어요, 두 분!” 두 사람의 얼굴을 보자 키타토라 양이 한숨을 내쉬었지만,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것처럼 잔뜩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키타토라 양은 한껏 집중하는 얼굴로 주위를 주의 깊게 둘러보다가, 두 사람에게 서둘러 달려와서는 품에서 빨간 부적을 꺼내 내밀었다. “이거, 절대로 품에서 놓지 마세요! 신사로 돌아갈 때까지!”
어느새 주위의 이상한 풍경은 마치 꿈이었다는 것처럼 사라졌고, 새가 우는 어두운 숲길만이 펼쳐져 있었다. 키타토라 양은 말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아깝다는 듯이 서둘러 두 사람을 이끌고 숲길을 거슬러 돌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런 특이사항 없는 흙바닥과 익숙한 신사의 배전이 나왔다.
도대체 어디를 헤매고 있었던 걸까? 추측하기 위해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려 해도, 이제는 그 기이한 숲길이 어떤 구조로 되어 있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분기 ① 해금! - 보상으로 각자에게 「라무네」 1개, 「빨간색 부적」 1개 지급. - 이후로 이벤트 분기 ①에 도달하는 캐릭터도 모두 동일한 스토리와 보상이 적용됩니다.
방학이 되어 오히려 한적해진 게임센터에 들르자, 시원한 바람이 이마에 끼쳐 왔다. 사람은 얼마 없었지만 대신 익숙한 인물들이 보였다. 안쪽에서 엔도 선생과 니이모토 양이 태고의 달인 대전 모드를 플레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뭐 하는 녀석들이지?’라는 생각이 들 때쯤 저쪽에서도 인기척을 알아차리고 다가왔다.
적어도 니이모토 양은 아무렇지도 않게 바닥에 떨어진 이 상자를 내민 장본인이기도 하니, 무언가 짚이는 곳이 있지 않을까? 수상한 상자를 내밀자, 두 사람은 똑같은 포즈로 턱을 짚고(서로가 서로를 따라하면서 놀리려고 한 것 같은데, 누가 먼저였는지가 불명확했다)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입을 열기까지는 그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 그냥 오래된 상자잖아. 망치로 내리치면 열리기야 하겠네만, 요지는 내용물에 손상이 가지 않게 열겠다는 거지? 퍼즐을 풀이하려는 자세로군, 아주 바람직해.”
“「당신과 내가 만나면 태양이 떠오르리라. 바람이 불어오면 나의 마음을 알 수 있으리라.」 그러니까 마이크 구멍에다 입김을 불면 열리지 않을까요?”
니이모토 양이 아무렇지 않게 꺼낸 농담에 엔도 선생은 풉 하고 폭소를 터뜨렸다.
“이걸 50살 넘은 엔도 선생님이 알아듣는 것도 용하지만, 애초에 이런 닌텐도랑 관련된 매니악한 농담을 알아들을 만한 사람도 선생님밖에 없군요······.”
“아니, 아니! 참으로 적절해서 말이지! 이 세상 대부분의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은 레이튼 교수 시리즈에 나와 있지 않나. 게임을 참고하다 보면 무슨 미스터리든지 풀릴지도 모르는 일이지, 으하하하. 그나저나 나는 「역전검사」에 나오는 걸 생각했는데 말이야······.”
그 뒤로도 두 사람 사이에서 「레이튼 교수와 악마의 상자」를 비롯해 온갖 게임과 관련된 잡담이 길게 이어졌지만, 상자를 여는 법에 관련된 유의미한 정보는 전혀 얻을 수 없었다······.
본격적으로 부스를 시작하기 전, 카나타는 잠시 혼자서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그러는 와중 코르크 사격 부스를 발견했고 그는 그곳에 멈춰섰다. 그러고 보니 어릴 때는 많이 했었지. 언제부터 하지 않게 되었더라. 오랜만에 해볼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왕 즐기는 축제. 이것저것 다양하게 하는 것이 역시 제일이 아니겠는가.
물론 빗나갈 확률이 상당히 크긴 했지만 그 또한 하나의 재미였다.
이어 그는 영화나 만화에서 총을 쥐는 이들을 떠올리며 어설프게나마 따라했다. 어릴 때에는 이런 것을 생각하지 않고 했었는데 크고 나니 이런 자세를 취하는 모습이 스스로도 우스워 그는 피식 웃음소리를 냈다.
"...그래도 가끔은 나쁘지 않아."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그는 방아쇠를 당겼다. 통 통 통. 총알 3발이 각각 앞으로 날아갔다. 맞느냐, 맞지 않느냐. 그런 사실보단 오랜만에 이렇게 즐기는 사실이 좋은 듯, 그의 입가의 미소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사실 어둠 나가시소멘도 넣어서 알고 보니까 지금 내 라무네가 저걸 가져가면 총 10개거든? 저거 빼더라도 8개.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많이 라무네를 가지고 있어봐야 딱히 쓸데가 없을 것 같단 말이지. 마지막에 추가점수제 해서 카나타주 우승! 이런 것도 아닐테고 말이야...
0 - 비밀! 1-49 - 앗! 얇은 종이가 찢어지고야 말았다... 50-60 - 금붕어를 건졌다! 알록달록 예뻐 61-70 - 금붕어를 건졌다! 무려 두 마리나! 71-80 - 세 마리 째. 슬슬 사장님의 시선이 느껴져. 81-90 - 네 마리! 네 마리의 금붕어는 커다란 금붕어 인형이랑 교환할 수 있대! 91-99 - 다섯마리! 금붕어랑 인형 들고 갈 수 있다! 100 - 어라? 이 뜰채, 찢어지지 않잖아. 원하는 만큼 금붕어를 잡을 수 있...지만 사장님의 시선이 너무 강렬해.
손바닥 위에 손수건을 얹어주면 마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닦고, 아직 차가운 손으로 손가방 안에 고이 접어 그것을 넣었다. 천천히 돌려달라고 했기에 아마네가 이 손수건을 다시 받는 것은 며칠 지나고 나서가 아닐까. 그야 다시 빨고 들고다닌다면 금세 돌려주기는 좋지 않은 상태로 바뀔테니까.
"오백만배... 힘 내볼게..!"
마이가 성공한 커리어 우먼의 길을 걷지 않는다면 결코 갚지 못할 상환 계약서에 순순히 사인을 하며, 가자고 말을 하는 아마네를 기다렸다. 당신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그 뒤나 옆을 졸졸 따라갈 것이다.
문득 저 몽실몽실한 머리뭉치를 톡톡 건드려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만, 외면했다. 가장 먼저 실례인데다 민망한 행동이기도 하고, 어째 고양이나 할 짓 같아서 더 민망하기도 했다. 잠깐 링링이 만졌다고 고양이가 옮았나.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을 억누르는 건 미카즈키에게 익숙한 일이었기에, 미카즈키는 별말 없이 스즈네를 따랐다.
키리야마 가의 차야, 소년도 몇 번인가 들어 알고 있었다. 일단 조부모부터가 키리야마씨네 댁에 갔다오마고 하면 어련히 차 마시고 오겠다는 뜻이었고, 오며가며 키리야마 가 혹은 니시키리 가의 이름이 찍힌 차를 많이 보았던 참이다. 오사카에서도 문득 키리야마의 이름이 찍힌 차 상자를 보고 고향을 떠올린 적이 있었다. 야구에 문외한인 사람도 스즈모토 이치에몬이나 토라타니 료헤이 같은 유명 야구 선수의 이름 정도는 한 번씩 들어본 것과 같은 이치랄까.
"해 지기 전엔 돌려보내주세요."
나름대로 농담이다. 농담이라기엔 너무 덤덤한 얼굴이지만 아무튼. 향기라는 말에 스즈네가 반응하자, 미카즈키는
"할아버지께서 여기 다녀오시면 나는 향기가... 이랬거든요."
하고 응답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스즈네의 말. 다음에 오면. 다음이라. 다음... 다음이라는 것을... 믿어도 되는 걸까. 아직 갈 길이 멀다. 소년은 아직 토키와라로 다 돌아오지 못한 셈이다. 미카즈키는 자신의 슬리퍼를 벗어놓고, 자신의 것과 스즈네의 슬리퍼까지 함께 가지런히 정돈한 다음에 방 안으로 들어섰다. 이윽고 스즈네가 가져온 찻잎을 보고, 미카즈키는 잠깐 어? 심상치 않은데? 하는 생각을 했다. 그도 그럴 게 한 바구니가 참 많다. 농담이 농담이 아니게 될 것 같은 기분. 그러나 자기가 하겠다고 했으니, 미카즈키는 표정 하나 흔들리지 않고 맷돌 앞에 자리잡았다. 다만, 이 맷돌이란 게 상당히 생소한 연장이기에, 미카즈키는 이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오를 존경하지 않는다고는 생각하지 말아줬으면 한다. 가진 고민을 얼버무리는 이유는 아오에 대한 불신 때문이 아니다. 그 반대다. 아오가 무슨 말이든 진지하게 듣고 심각하게 고민해줄 테니까, 이 열쇠 이야기를 처음으로 들은 뒤처럼.
아오 군은 감도 좋다. 학생회장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이거지. 세심하고, 친구들에게 마음을 잘 써 줘서, 보기에 꺼림칙한 부분이 있으면 금세 눈치채고 상태를 물어 온다. 지금도, 히라무도 모르는 상태를 짚어낸다.
히라무는 대체 아오 군한테 무슨 불만이 있을까? 불만을 가질 이유가 하등 없는데. 아오는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토키와라에 돌아올 테고, 히라무와 영영 헤어지지도 않을 것이다...히라무가 있는 곳으로 돌아올 텐데, 왜 항상 히라무가 있는 곳으로 아오가 돌아와야 하지?
"잘 저축해둬. 나도..."
히라무는 저축에 소질이 없다.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내가 못 하니까, 그치만 놀러 갈 정도는 해 둘게."
딴 생각을 하던 동안 아오는 자연스럽게 그릇을 가져가 버렸다. 히라무는 뒤에서 쩔쩔맸다. 내가 할려고 했는데? 공부하자는 아오를 도와 테이블 세팅이라도 해 둘까 돌아서는데 아오가 열쇠의 안부를 묻는다. 히라무는 무심코 소원 쪽지를 적었던 일을 떠올린다.
"있잖아, 우리 집행부실에, 신기한 상자 생긴 거 알지. 거기에 꽂아보려고..."
조금 상기된 기색으로 말하면서도 히라무는 믿지 않았다. 열쇠구멍에 맞을지도 모르고, 이미 조금 망가졌다고 하니 괜히 뒤적이다가 예전처럼 망가뜨리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조심해야 한다. 히라무는 열쇠를 매만졌다.
"계속 찾아다니고 있어. 어쩌면 산속에 창고 같은 데 열쇠일지도 모르고. 나 쿠레비호 근처에 봐둔 데가 있어...나중에 같이 가자."
하나하나 노점이 제 자리에 있는지, 리스트와 대조해보며 노점의 명패며 노점에 부려놓은 물건들을 확인하기 시작한다. 엔도 선생의 말이 틀리지 않았는지 제법 쉽게쉽게 넘어간다. 이 정도라면 무리하지 않고 오늘 저녁 내로 다 끝낼 수 있을지도. 그때 무언가 떠올린 듯한 츠키의 짧은 감탄사에, 미카즈키는 한쪽으로 향해 있던 시선을 츠키 쪽으로 돌렸다. 무슨 일인가요? 하고 물어보려고 했으나, 츠키가 먼저 입을 열었기에 미카즈키는 츠키의 말을 경청했다. 츠키의 너머로 준비를 다 끝내가는 듯한 사격장이 보인다. 사격장을 보았다가, 다시 츠키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축제라. 잠깐 뭉클 하고, 사이오 학원에서의 어둠을 비집고 말갰던 지난 여름의 꿈들이 하나하나씩 방울방울 올라오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을 극적 혹은 시적으로 표현할 만한 문학적 능력이 미카즈키에겐 없었기에 그는 단순히,
"어릴 적에 친구들과... 여기서 즐겁게 놀았던 기억이 있어요."
하고 대답한다.
"...다시 그럴 수 있으면 좋겠네요."
다시 그럴 수는 없을 거에요. 원래 미카즈키가 해야 할 말이었다. 그러나 그런 음울한 판결 대신에, 미카즈키는, 어느덧 만약의 이야기를 입에 슬며시 올리고 있다. 그 스스로는 아직 이 곳은 내가 기억하던 토키와라가 아니라는 미시감에 사로잡혀 있었으나, 그러나 어느덧, 토키와라의 노을 한 자락은 소년의 눈에 걸리게 된 것이었다.
토키와라초는 있을 것은 다 있다고 하나 오사카, 교토, 도쿄등에 비하면 한없이 작은 마을이다. 오죽하면 직장인들은 교토로 출근을 하고, 지역 경제 대부분은 농·임업 중심이겠는가. 마을 사람들끼리 조용히 살기에는 좋지만 전체적으로 보자면 크게 화려한 것 없이 참으로 초라하고 소박한 마을이다. 물론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니, 토키와라초에 대해서 느끼는 것은 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런 시선이 아닐까하고 카나타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카나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에 대해서 카나타는 누군가에게 직설적으로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아마 제 소꿉친구인 츠키와 코하네 역시 그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없었을 것이다. 애초에 물어본 사람이 과연 있기야 하겠냐만. 누군가는 더욱 발전을 했으면 좋겠고, 누군가는 뭔가가 더 생기길 바랄 것이고, 좀 더 놀거리가 생기거나 일거리가 생기는 것을 바라는 이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카나타는 어느 것도 바뀌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뭐, 갑자기 바뀐다고 해서 큰일나는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도 알고 있다. 자신의 생각은 많은 이들에게 있어 그다지 긍정적인 느낌으로 다가올 것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이 마을은 언제까지나 이대로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니, 발전을 거부하고 언제까지나 이 시골마을 그대로 남아있길 바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국 젊은 사람들은 다 떠날 수도 있고, 남아있는 이들만 남아있다 서서히 사람이 줄어드는 그런 운명을 맞이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사실을 어찌 모르겠는가. 카나타도 고등학교 3학년이며 기본적으로 받을 교육은 다 받았고, 학교 성적도 괜찮은 편이었다. 자신의 생각이 정말로 실현되었을 때 나타날 부작용에 대해서는 그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카페에 찾아오던 이들 중 일부가 교토의 더욱 큰 카페로 향하는 것을 직접 목도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카나타에게 있어서 이 분위기는 너무나 익숙했고 마음에 들었다. 고요한 분위기. 시끄럽거나 정신없지 않은 분위기. 오사카는 시설이 좋지만 너무나 사람이 많고 길이 복잡하며 시끌벅적해서 다니기 너무 힘들었다. 덴노지에 있는 동물원이나 오사카코에 있는 카이유칸 부근은 그나마 한적하지만 이곳에 비하면 역시 사람이 많았다. 그런 시끌벅적하고 복잡한 분위기는 영 익숙하지 않았다. 다니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자신은 이곳 태생이고, 이곳의 분위기가 너무나 좋았다.
욕심이자 고집을 부려 이야기했던 자신의 소원은 무엇이었던가. 그 소원을 누군가에게 말했을 때 그것을 긍정할 이가 얼마나 있겠는가. 카나타는 쓴 웃음소리를 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으며, 그저 속으로만 품고 딱히 소원이 이뤄지는 것을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이 마음은 자신의 작은 소망이며, 자신만이 간직하는 작은 상자였다. 상자를 열 열쇠는 제 마음 속에 가뒀으니 열 이는 아무도 없었다.
"...역시 난 이대로가 좋아."
변화는 긍정적인 것이었으나 때로는 부정적으로 다가오는 법이었다. 소년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길 바랬다. 지금 이대로가 좋았다. 뭔가가 변하면 어떻게 대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조금 더 친해지고 멀어지고, 풍경이 조금 달라지고, 만나는 사람이 달라지는 것 정도는 괜찮았다.
뽀얗다, 가 아닌 허옇다. 하얀색은 잃지 않았으나, 그 하얀색의 결이 달라져 있다. 미카즈키가 가장 많이 깨어진 부분. 미카즈키에게 가 있는 모든 균열의 시작점.
"...그래서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하나요는, 그 균열을, 균열 사이로 빼짓이 내어다보이는 아직 남아있는 그 예전의 여름 하늘을, 예전처럼 꼭 감싸쥐었다. 그것은 하나요의 손에 잡혔다. 하나요는 그 시허연 손을, 예전의 뽀얀 손과 다름없이 잡아주었다.
"그래서 네가 가르쳐준 그 꽃 그림... 그림은, 그림은, 그림은, 그것은, 그것은 기억하고 있었어... 그래서 다시 만날 날을 기다려왔는데... 다시 만나서 한다는 말이, 이거네."
목이 메어서 미카즈키는 차마 뒷말을 다 잇지 못했다. 그래서 미카즈키는 뭐라 말을 하는 대신, 하나요의 사인을 받아들이고 고개를 숙였다. 이제 무언가를 끝맺을 때다. 그리고 마치 그때처럼, 뺨에 살짝 내려앉는 작은 입맞춤.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너는 여전히 하나요구나. 그리고 건네어져오는 작별인사. 이걸로 되었다. 이제 나는──── ...뭐?
뺨에서 눈물이 또록 굴러내렸다. 그와 동시에, 미카즈키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눈을 떴다. 엉뚱하기 짝이 없는 억지 소리 한 번에, 몇 년을 가슴 속에 품어왔던 사요나라가 웃길 정도로 순식간에 쟈네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오하요가 되었다. 하나요의 작별인사에 대답을 해주려고 했는데, 그럴 틈도 없이 순식간에 다시 만나버렸다. 진짜 너는 여전히 하나요구나.
"많이 바뀌었다며, 그대로잖아 하나쨩."
멍하니 뜬 눈으로 하나요를 빤히 바라보다가, 미카즈키는... 푸합 하고 웃어버리는 하나요를 따라, 마찬가지로 웃음을 터뜨려버리고 만다. "아후후후후후." 이제 와서 미키 군이라 부르다 말고 미즈 군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미키 군다운 웃음소리. 뺨에 눈물이 뚝뚝 흘러내리는 채로 웃어버리는, 요상한 모습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럴 거면... 그냥 부르던 대로 불러줘."
저기, 그러면 나. 지금이라도 다시. 그런 간절한 말을, 하나요의 익살에 맞춰 각색한 말이었다. 정말로 그 말을 고스란히 입에 올렸다가는 모처럼의 재회가 엉망진창 눈물범벅이 될 것 같았으니까. 그렇잖아도 둘 다 연못에 풍덩해서 물에 빠진 생쥐꼴인걸.
하나요는, 그릇을 때우는 것을 택했다. 비록 킨츠기 공예를 할 찬란히 빛나는 황금은 없었으나, 그 대신에 하나요에게는푸르르게빛나는여름이 있었다.
동네가 아직 낯설다던가, 자신이 있어도 될지 확신을 다 갖지는 못했다던가... 구구절절 쓸데없는 이야기 하다가 어디 벤치에 앉아서 노상 고해성사라도 하겠다 싶어 미카즈키는 말을 아꼈다. 그러나 미카즈키가 여기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는 단서는 확실히 츠키에게 던져졌다. 비록 직접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기억할 만한 일은 없지만, 오며가며 얼굴 정도는 봤을지도...는 미카즈키가 아직 미카짱이던 시절 워낙에 소녀같았던지라 연상하기 어렵겠다.
낮에 나다니기엔 폭염이 너무 뜨거우므로, 태양이 뉘엿뉘엿 퇴근각을 재고 있던 시기에 시작한 일이다 보니 자연스레 노을을 바라보며 하게 된 집행부 업무 되겠다. 그래도 확실히 엔도 선생이 최소한의 양심은 있었던지 저번 노점 비품 정리마냥 길을 잃을 정도로 오만상 깜깜해지기 전에는 다 끝날 정도의 일이다.
생각의 새싹이란 건 누른다고 눌리는게 아니다. 잠시 스쳐가는 현상도 때때로 길게 뇌리에 남곤 하는데. 눈 앞에서 이리 동동 저리 동동 하는 저 머리뭉치를 보며 생각을 계속 누를 수 있을까. 분명한 건 미카즈키가 단 한 순간이래도 그것이 신경 쓰였다는 사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동동동 돌아다니는 저 머리뭉치를 말이다.
"어레~ 그렇게 말하니까~ 돌려보내고 싶지 않아지는 걸~?"
누군가 듣기엔 농담 같지 않은 농담이었겠지만 스즈네는 개의치 않고 농담으로 받아쳤다. 그 말과 함께 히죽 웃는 얼굴이 순간적으로 농담 아닐 지도? 같은 느낌을 주었겠지만. 워낙 말을 가볍게 하니 농담이겠거니 싶다. 금새 표정이 바뀌어 헤에~ 그렇구나~ 하고 중얼거리는 것도 그렇고.
"좋지~ 이 향~ 바람 솔솔 불 때~ 저어기 누워서 낮잠 자면 진짜 최고지~"
다 때려치고 낮잠이나 자고 싶어라~ 작업실로 들어온 스즈네는 노래하듯 중얼거리며 찻잎 갈 준비를 했다. 먼저 큼직한 대바구니에 한 가득 말린 찻잎을 가져와 미카즈키가 앉은 자리 앞에 내려놓았다. 말 그대로 이걸 다 갈려면 밤새 갈아야 하지 않을까 싶은 느낌이 드는 양이다. 그러나 스즈네는 아랑곳 않고 똑같은 양의 바구니를 하나 더 가져왔다. 그건 옆자리 맷돌 앞에 놓더니 다시금 옆의 긴 작업대를 뒤적거렸다.
"응~ 잠시만~ 가르쳐줄게~"
잠시 동안 선반이 드르륵 탁. 하고 부스럭 부스럭. 자잘한 소리들이 났다. 흐흥~ 하고 작게 콧노래를 흘리며 야무지게 도구를 챙긴 스즈네가 찻잎이 아닌 물건이 가득한 바구니를 들고 돌아왔다. 그새 하얀 마스크를 쓴 채로 말이다. 그리고 미카즈키의 옆에 서서 소년에게도 흰색 일회용 마스크를 내밀었다. 동시에 하나 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러니까~ 일단은~ 에헴. 제일 먼저 이 마스크를 착용해 줘. 원래는 더 필요한데 오늘은 체험판이니까. 작업 자체는 간단해. 찻잎을 떠서 맷돌 가운데에 넣고. 맷돌을 돌려서 찻잎을 고운 가루로 만드는 거지. 이걸로 찻잎을 뜨는 거야. 맨손으로 하지 않게 주의해."
설명 도중 스즈네는 옻칠이 된 오목한 나무 주걱 같은 것을 보여주었다. 그걸로 미카즈키 앞에 놓인 찻잎을 한 주걱 떠서 마찬가지로 앞에 놓인 맷돌 가운데 구멍에 솔솔 부었다. 그 다음 주걱을 찻잎 위에 살포시 놓고 미카즈키의 뒤로 돌아가 섰다.
"양은 한 번에 하나면 돼. 너무 수북하게 담으려고만 하지 말고. 적당히 떠서 그 구멍에 살살 밀어넣고 나면 본격적으로 갈기 시작하는 거야."
스즈네는 말을 이어가며 미카즈키의 오른손을 들어올리려 했다. 가만히 따랐다면 스즈네의 손에 의해 미카즈키의 손이 맷돌의 손잡이에 감길 것이다. 아니라면 직접 쥐어도 될 것이다. 어쨌거나 스즈네의 손이 미카즈키의 손 위에 덮이는 것은 마찬가지일 테니.
"찻잎은 곱게 갈릴수록 밖으로 밀려나오니까 얼마나 갈아야 하나 그런 건 생각하지 않아도 돼. 중요한 건 힘과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거라서. 그렇지만 너무 힘으로만 밀어도 안 돼. 돌이 떠서 찻잎이 전혀 갈리지 않게 되니까. 처음엔 이렇게 천천히 돌리면서 갈려나가는 감각이 뭔지 아는 정도로 충분해."
겹쳐진 스즈네의 손이 살짝만 밀었는데도 맷돌이 도르륵. 구르기 시작했다. 감각을 알려주려는 듯 스즈네는 손을 얹은 채로 맷돌을 계속 돌렸다. 드르륵. 드르륵. 잔잔한 마찰음 뒤로 스즈네의 설명이 조금 더 이어졌다.
"돌이 헛돈다는 느낌이 들거나 가루가 밀려나오지 않는다면 멈추고 찻잎을 더 넣어. 가루는 받침대에 모이니까 직접 닿지 않게 조심하고. 재채기 특히 조심해. 하면 너 여기 청소만 밤새도록 시켜버릴 테니까. 음. 우선은 계속 가는 것부터 해 봐. 갈고 있으면 내가 보고 얘기해줄게."
1차 설명 끝! 하고 스즈네는 손을 뗐다. 그리고 옆자리에 앉아 미카즈키에게 알려줬던 것들을 몸소 시연했다. 라고 할까. 스즈네의 작업을 시작한 거긴 하지만. 이 집안 사람답게 능숙한 손짓으로 찻잎을 넣고 맷돌을 돌리기 시작했다. 도로록. 도로록. 어쩐지 경쾌한 맷돌 소리가 꼭 스즈네 같은 소리이지 않았을까.
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카나타의 그 상자를 열어서 뭐하려구!! 근데 진짜로 숨기는건 없어! 단기 스레라서 막 크게 이야기가 진행되긴 힘들 것 같아서 그냥 가볍게만 설정한 애다보니! 사실 저것도 아마 엔딩 전까지 카나타의 포인트가 일상으로는 풀리지 않을 것 같아서 그냥 적당히 끄적인 것이다보니 크고 막 그런 것은 없다!
애초에 소원도 '앞으로도 변하는 것 없이, 토키와라가 유지되는 것' 이기도 하고. 이쯤되면 말해도 상관없겠지! 그렇기에 카나타의 소원은 굉장히 이기적이고 많은 이들이 싫어할만한 소원이기도 하지!
말 그대로 발전하지 않고 쭉 이대로 유지되는 것을 원하는 거니까! 그리고 이건 동시에 카나타의 성향이기도 하고! (뒹굴)
>>809 단기물은~ 아무래도 그렇지~ 그래도 요런 소소한 거라도 있다는게 보는 참치로서는 맛있어용~ 냠냠~ ໒꒰ྀི ˶ᵔ ³ ᵔ˶ ꒱ྀིა 음~ 스즈네라면 그 소원에 긍정적이야~ 스즈네도 토키와라가 지금 이대로 계속 유지되고 이어졌으면 하거든~ 나만의 작은 토키와라~ 영원하라~!
힘 쓰는 일은 히라무에게 맡겨주시라. 왜냐하면 웬만해서는 쉽게 네 하고 짊어져 주니까. 사람 열댓 명을 한꺼번에 옮겨달라는 부탁 수준이 아니고서야, 가마꾼 노릇 한 번은 왕복으로도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
실은 축제가 있을 때마다 동원되지 않은 적이 없기는 했다.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오히려 머리 써야 하는 집행부 기획보다 몸 써야 하는 노가다가 마음만은 편했다. 육체 노동만으로 축제에 기여하는 셈이라 책임감도 충족된다. 그래서 히라무는 엔도 선생님의 떠넘기기를 꺼려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거, 그냥 자신이 하기 싫어서 적당히 집행부 학생들에게 떠넘기는 것 같은데... 라는 말을 굳이 카나타는 하지 않았다. 해봐야 별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탓이었다. 무엇보다 가마를 옮기는 것은 나름대로 재밌기도 했고. 작년에도 했었지.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아무런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으차!"
생각보다 그는 힘이 좋았다. 강아지를 산책시킬 때 자연히 체력을 써야해서 그런 것일까? 생각보다 무거운 것을 옮기는 것에는 나름 자신이 있었다. 조금 무게감이 느껴지긴 했찌만 이 정도라면...
"요이쇼! 요이쇼!"
뭔가 나름대로 기합을 넣으면서 그는 앞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아. 이건 소란부시였던가? 아무렴 어떠랴. 어차피 축제. 이렇게 즐기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는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지으면서 천천히 이동했다.
엔도 선생이 집행부 학생들에게 가마지기를 부탁 -이라 쓰고 권력남용- 하는 걸 보고 스즈네도 하겠다며 폴짝거렸다. 같이 드는 사람들에 비하면 키가 작아 맞추기 힘들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같이 해보는게 축제의 묘미 아니겠는가. 스즈네는 엔도 선생이 받지 않은 핫피를 대신 받아 휘릭 걸치고 가마꾼 중간에 섰다. 키에 맞춰 내려온 가마를 오른 어깨에 싣고서 히히~ 웃었다.
"소~레! 요이쇼! 요이쇼!"
모두와 기합소리를 맞춰 힘차게 외치며 함께 나아가기 시작했다. 구경꾼 중에 토키고의 역사 선생이자 키리야마 가 둘째인 히비키가 섞여 스즈네의 가마지기를 열심히 사진에 담고 있었다.
초코 바나나 맛있겠다... 물론 너무 달콤해서 많이는 먹긴 힘들겠지만! 헌팅...ㅋㅋㅋㅋㅋㅋ 친구들이 잘 막아줄거야! 그렇지? 1학년 친구들아. (어?) 하나요에게 부스를 맡긴다라... 하나요가 일이 능숙해졌으면 카나타가 조금은 생각해보긴 하겠지만 하나요는 기본적으로 카페 알바가 있어서 아마 타임 스케쥴을 맞추기가 힘들지 않을까? 부스도 보고 끝나고 알바도 하고...으악...나는 못해! (절레절레)
교토의 인기 찻집이자 카페인 [아후레루]의 특별 부스가 올 해 토키와라 여름축제에도 열렸다. 키리야마 가에서 교토에 카페를 낸 이후부터 매년 축제마다 내는 부스는 딱 이 시기에만 파는 한정판 디저트를 맛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덕분에 축제 기간이나마 토키와라에 많은 사람들이 오가게끔 해주었으니. 나름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면 되는 그런 영향도 있었다.
"어서오세요~ 감사합니다아~!"
키리야마 가의 막둥이 스즈네는 올 해도 이 특별 부스에서 열심히 일을 도왔다. 스즈네가 맡은 일은 접객이었는데 시종일관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인사하고 계산해주는 곱게 입은 점원을 보고 흐뭇하게 왔다 가는 사람도 제법 있었다. 덕분에 부스에 불을 켠 지 오래지 않아 당일 한정판은 동이 났고 스즈네에게도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치비링~ 오늘은 이제 됐으니까~ 가서 놀다 와~" "정말? 야호~!" "자~ 여기 용돈~ 돌아다닐때 앞 잘 보구 다녀야 해~" "네에~ 다녀오겠습니다아~"
앞치마를 벗고 유카타 단복 차림이 된 스즈네는 꽁꽁 묶어 올렸던 머리를 조금 느슨하게 풀었다. 단정히 올린 머리도 좋지만 역시 답답하니 말이다. 잔머리가 푱푱 나왔지만 편하니까 상관 없다. 손거울을 보며 머리를 매만지고 언니인 후우린이 챙겨 준 작은 복주머니 가방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게다 소리 달각거리며 부스를 나왔다.
"에헤헤~"
이제부터 놀 생각에 신이 난 스즈네의 얼굴은 마냥 해맑았다. 당장 뭐부터 할까 일단 간식부터 먹을까 즐거운 고민을 하던 찰나. 아! 하고 떠오른 생각에 부리나케 어디론가 향했다. 토도도독. 잰걸음 소리가 경쾌하기도 하다.
"카나쨩~ 카나쨩 있나요오~?"
바삐 찾아간 곳은 축제의 한 부스였다. 정확히는 호시노 가의 부스다. 뭐였더라, 이누네코 놀이터? 대충 그런 곳이었던 거 같다. 스즈네도 링링이를 키우니 놀러 온 건가 싶지만 개나 고양이가 아닌 카나타를 찾는 모습이 다른 용건이 있어보인다.
"카나쨩~ 같이 축제 돌자아~!"
혼자는 심심하니 같이 축제 구경 하며 놀자는 지극히 단순한 용건이 말이다. 몇 번이고 카나타를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면 폴짝 뛰며 반가워하는 스즈네가 보였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푸른 색감의 유카타와 단정한 듯 느슨한 올림머리를 한 스즈네가.
"호시노. 저기 저 고양이가 간식을 안 먹는다는데 어떻게 하면 돼?" "...리카가 간식을 안 먹을 땐 그냥 두면 돼. ...배고프거나 먹고 싶으면 알아서 달라고 할 거야."
반려동물 교류 카페 부스. 그것이 카나타가 연 부스의 이름이었다. 집행부 일도 하기야 하지만, 이렇게 작은 부스를 하나 만든다고 해서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자신과 친구들이 모여서 만든 부스는 오늘도 사람이 북적북적했다. 대부분이 반려동물을 데리고 왔고, 반려동물이 없어도, 귀여운 동물을 보기 위해서 들어오는 이들도 제법 많았다. 카나타가 입고 있는 시원한 남색 유타카에는 하얀색 고양이와 강아지 일러스트가 크게 그려져있었다. 따로 가게에서 파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용돈을 모아 주문제작한 것이었다.
옷깃을 손으로 정리하며 그는 가만히 쭈욱 기지개를 켰다. 슬슬 쉬는 시간이었지만, 바로 들어가진 않고 마지막으로 카페의 동물들을 전체적으로 둘러보며 문제가 없는지, 규율을 어기는 이가 없는지. 가만히 지켜보는 눈빛이 매우 날카롭고 재빨랐다. 가만히 눈으로 훑고 지나가던 와중, 부스의 입구가 열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낯익은 이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 같은 반 아이인 키리야마 스즈네. 손님으로 온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열려는 순간, 자신을 찾더니 냅따 축제를 돌자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스즈네에게 다가갔다.
학교에 다닐 때는 같이 이야기를 할 때도 많았지만, 방학이 되고 난 뒤로는 아무래도 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던가. 아무렴 어떤가. 집행부 일도 그렇지만 고등학교 3학년이라서 바쁜 것은 피차 마찬가지였다. 일단 가만히 생각을 하던 카나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겠지. 어차피 쉬는 시간이고, 자리를 비운다고 해도 급한 일이 있으면 연락을 할테니까.
"...좋아. 축제 분위기는 좀 보고 싶었으니까. 아..."
이어 그는 잠깐만이라고 이야기를 한 후, 카운터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서랍을 열고 부스를 열기 전에 땄던 밀크커러멜 2박스 중 하나를 꺼내고 다시 돌아왔다.
"...먹을래? 사격에서 딴 건데. 커러멜만 2개라서 하나는 어쩔지 고민 중이었거든. ...먹고 싶으면 가져가. 이거."
엄청 친한 듯이 들이닥치기는 했지만 사실 카나타와 스즈네는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다. 어릴 적부터 알았지만 묘하게 거리감이 있다고 할까. 스즈네는 카나쨩이라고 부르는데 카나타는 아직도 키리야마라고 부르는게 눈에 띄는 거리감이다. 그래도 스즈네는 상대만 잘 해주면 좋았다. 싫은 티 안 내면 상대도 괜찮은 거 아니냐는 조금 제멋대로인 생각이었지만.
"와~ 카나쨩이랑 축제 돈다~ 으응~?"
흔쾌히 얻어낸 동의에 기뻐하던 스즈네는 곧 카나타가 뭔가 가져와 내밀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것을 보았다. 그건 밀크캬라멜이었다. 단 것을 좋아하는 스즈네가 그걸 사양 할 리가 없다. 기쁨으로 눈이 반짝반짝해진 스즈네가 방긋 웃었다.
"먹을래 먹을래~ 고마워~ 카나쨩~!"
스즈네의 양 손이 카나타의 손과 밀크캬라멜을 같이 쥐고 파닥파닥 흔들려 했다. 그리고 박스를 열어 하나 입에 쏙 넣고 우물거리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부스에 있는 내내 팔기만 했지 먹은 건 없었으니 이 작은 캬라멜 하나가 참으로 달콤했다.
"카냐쨩도~ 자~ 놀기 전에 당충전이야~"
볼 한 쪽 볼록하게 오물거리는 스즈네가 캬라멜 하나를 더 꺼내서 카나타에게 내밀었다. 포장을 반쯤 까서 위로 들어 내미는게 입에 직접 넣어줄 셈 같아 보인다. 들어올린 손 뒤로는 마냥 헤헤거리는 스즈네가 있을 뿐이다.
카나쨩이라는 호칭은 이제 와서는 카나타도 굳이 무슨 말을 더 하지는 않는 호칭이었다. 물론 이 나이를 먹고 '쨩'이라고 불리는 것은 조금 부끄러운 것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부르겠다는데 그렇게 부르지 마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자신이 익숙해지면 되지. 라고 생각했던 것이 언제의 일이었더라. 소꿉친구인 츠키와 코하네만큼은 아니지만 이 아이와도 꽤 오래 알고 지냈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카나타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고맙긴. 두 개나 따서 내가 먹을 하나 빼고 다른 하나는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 중이었거든. 가져간다면 나야 고맙지."
물론 그대로 집으로 가져가거나, 같이 일하는 친구들에게 주는 방법도 있겠으나, 이왕 이렇게 된 거 달콤한 것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선물로 줘서 나쁠 것은 없었다. 저렇게나 좋아하니 줘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절로 하기도 하며 그는 괜히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응?"
그 와중에 자신에게 커러멜을 주려고 하는... 정확히는 마치 입에 직접 넣어주려고 하는 그녀의 행동을 바라보며 그는 두 눈을 깜빡였다. 그의 눈동자가 슬쩍, 아직 부스에서 일하고 있는 다른 이들에게 향했다. 헛기침 소리를 한 번. 그는 그녀의 손에서 커러멜을 챙긴 후에 자신의 입에 쏙 집어넣으려고 했을 것이다. 만약 실패했다면 그냥 순순히 입에 넣어주려고 하는 것을 받아들였겠지만.
"...가자. 그래서 어디에 가고 싶어? 일단 전체적으로 둘러보는 것이 나을까?"
부스를 열기 전에 대충 이곳저것을 둘러보긴 했지만 작년, 그리고 재작년과 크게 차이는 없다는 것이 바로 카나타의 생각이었다. 금붕어 잡기라던가, 사격이라던가, 혹은 먹거리 가득한 부스라던가... 하네이 이나리 신사에 가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앞서 말하기도 했지만 재차 남는 걸 준 거라는 카나타의 말에도 스즈네는 에~ 나 남은 거 처리반 아닌데~! 라며 히히 웃기만 했다. 남은 거 처리하려고 줬다기에는 아무렇게나 둔 것도 아니었으니까. 알고 지낸 시간이 있는 만큼 말은 저렇게 해도 속 생각은 다를 것을 얼추 아니 웃으며 가벼운 농담으로 넘길 수 있었다. 그래도 조금 얄미우니까 일부러 부스에 보는 눈이 있을 때 캬라멜을 내밀었지만.
"이히히~"
장난기 가득하게 웃은 스즈네는 캬라멜을 가져가려는 카나타의 손을 샤샥 피했다. 평상시 망충해보이면서 이럴 때 행동 하나는 누구보다 날렵하다. 기어코 직접 입에 먹여주고서야 뿌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음~ 나 아직 아무것도 못 해봐서~ 다 하구 싶은데~"
카나타는 이미 사격을 즐긴 모양이지만 스즈네는 오전부터 부스를 돕느라 아직 즐긴게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밤이 깊도록 다 돌고 싶지만 카나타의 일정도 생각해야 하니까. 잠시 축제 전경을 머릿속으로 떠올려보곤 몇 곳을 추려냈다. 머릿속으로만.
"그으럼~ 가볍게 한바퀴 돌구 신사에 가자~ 제일 먼저 금붕어랑 요요츠리 낚시~!"
가볍게라는게 스즈네의 기분이라면 카나타는 각오해야 할 지도 모른다. 알 지 모르겠지만 스즈네는 체구에 비해 체력이 철철 넘치는 타입이니까. 렛츠 고~! 한 걸음 타닥. 앞으로 나선 스즈네가 휙 돌아서더니 카나타를 보고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멋진 유카타 입었는데 잔뜩 놀지 않으면 손해라구~ 카나쨩~ 얼른 가자~"
조그만 가방 든 손을 붕붕. 흔들면서도 남은 손은 카나타에게 내밀었다. 잡으라는 것 같은데 안 잡아도 그만일 것이다. 어쨌거나 게다 달각거리며 낚시 부스로 향하는 것은 같을 테니.
선물이야. 선물.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카나타는 그와는 별개로 딴 커플 키홀더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서 고민했다. 두 개 다 자신이 가질까. 다른 하나는 누군가에게 줄까. 차후에 천천히 생각하면 되겠지. 그렇게 결론을 내리면서 커러멜을 받아가려는 순간, 그녀가 손을 피하자 그는 응? 하는 표정으로 가만히 스즈네를 바라봤다. 기어이 먹여주고 말겠다는 그녀의 행동에 그는 못 말리겠다는 듯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일단 받아먹었다. 딱히 어린애도 아니고 이 정도로 부끄러움을 타진 않았다. 물론 나중에 돌아온 후에 방금 그거 뭐냐고 묻는 질문공세는 받아야 할 것 같지만. 어쩌겠는가.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게 기어이 그는 또 적당히 결론을 냈다.
"...전부? 시간이 되려나. 휴식시간 끝날 때까지. ...뭐... 어떻게든 되겠지."
자신에게 주어진 휴식시간을 어떻게든 전부 활용하면 깊게는 아니어도 가볍게 전부 보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카나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그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내민 손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덥썩 잡아주며 천천히 앞으로 걸었다.
"...다음에는 비번일 때 이야기해줘. ...그쪽이 좀 더 여유롭게 볼 수 있잖아. 아무튼 금붕어와 요요츠리? ...좋아. 실력을 보여줄게."
자신만만하게 말을 하지만, 어쩌면 하나도 낚지 못하고 끝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일단 말이라도 자신감을 넣어보려는 듯, 그렇게 이야기하며 카나타는 미소를 조용히 지었다.
"아마 저쪽일거야. 가자."
부스를 열기 전에 대충 둘러봤기에 어디에 뭐가 있는지는 파악이 끝난 상태였다. 자연스럽게 낚시 부스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그는 가만히 근처에 있는 다른 부스들도 조용히 바라봤다. 참으로 이것저것 다양하게도 있다고 생각하며 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애초에 돌아가는 데 성공한 적이 있기나 한가. 항상 발을 들였다 하면 깊어지기만 하는 마음 속의 늪. 초점 잃은 눈과 히죽 웃는 얼굴. 일순간 흐르는 두 사람 사이의 정적. 농담을 주고받았다기엔 어두침침한, 어딘가 조금 비뚤어진 청춘의 찰나가 잠깐 스쳤다. 미카즈키는 다시 또렷이 스즈네를 바라보며 "그러면 곤란한데요." 하고, 무덤덤한 무표정으로 말한다. 농담의 반응이라기엔 심히 정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단 맞장구친다고 쳐준 거다. 끔찍하게 못 칠 뿐.
낮잠이라. 밤잠도 제대로 이룬 지 오래된 미카즈키에겐 꽤 낯선 단어다. 괜찮겠는걸, 하고 생각은 해보지만, 누구나 쉬이 하지는 못하는 그것. 어딘가 잘 가지 않는 길이나 초행길을 건너다가 저 식당, 저 가게 괜찮겠는걸, 하고 생각해보고는 그냥 지나치는 것처럼. 스즈네가 찻잎바구니를 들고 들어오자, 미카즈키는 자리에서 일어나 스즈네에게서 찻잎바구니를 받아들어주려고 했다. 스즈네가 내어준다면 어디 놔두면 되는지 물어보고 거기 두었겠고, 내어주지 않는다면 얌전히 물러났을 것이다.
그리고 미카즈키는 스즈네가 내미는 하얀 마스크를 얌전히 뒤집어썼다. 그리고 스즈네의 설명을 차근차근 들으며, 스즈네의 행동 하나하나를 주의깊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집중력과, 집중력을 발휘할 때 함께 발휘되는 관찰력은 미카즈키가 마운드 위에 올라서는 원동력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는 스즈네의 지시대로 손을 맷돌 손잡이 위에 얹었다. 그리고 그 손등을 포근한 손바닥으로 짚을 때, 스즈네의 손 안에 다시 한 번 느껴지는 우악스러운 손아귀.
"재채기는 걱정 마세요."
스즈네가 재채기를 언급하자, 미카즈키가 대답했다.
"외할아버지가 가르쳐준 게 있거든요. 재채기가 나올 것 같으면, 혓바닥을 입천장과 위쪽 앞니 뒤에다 붙인 뒤에, 입천장과 앞니를 당기듯이 빨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러면 재채기가 멈춘다고."
...? 이상한 재주다.
"혹시 재채기 때문에 투구 타이밍 놓치거나 하지 말라고, 가르쳐주셨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미카즈키는 스즈네가 시범을 보여준 대로 조심스레 주걱으로 찻잎을 퍼다가 맷돌 구멍에 소르륵 부어넣고는 스즈네를 따라 천천히 맷돌을 돌리기 시작했다. 도로록. 도로록.
스즈네가 돌리는 것과 정확히 똑같은 박자, 똑같은 느낌의 똑같은 소리를 내며 맷돌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미카즈키는 츠키의 옆모슾을 바라보았다. 거기에선 어떻게 보내셨나요, 라고 물어보기엔, 그 어딘지 모를 타향을 곱씹어보는 츠키의 모습이 왠지 씁쓸해보여서 미카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타향에서의 기억을 곱씹는 게 괴로운 일인 것은 자신도 마찬가지 처지였어서. 그래서 미카는 그 화제를 미루어두기로 했다.
운동하는 사람이라는 건 어렵잖게 알 수 있겠다. 일단 일본인으로서는 드물게 껑충하게 큰 키에, 딱 벌어진 어깨라던가, 운동복 아래로 드러나는 글래머러스한 몸매의 실루엣이라던가, 단서는 많았으니. 거기서 뭔가 더 알아봐야 할 이유가 없을 뿐.
그러나 다만, 이 때 츠키의 옆모습에서, 미카는... 아까부터 왠지 츠키에게서 느낀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문득 떠올렸다. 이 얼굴, 어디서 봤다. 그리고 그것이 떠오르자, 츠키의 얼굴을 어디서 봤는지도 금방 떠올랐다. 아.
"...그러고 보니,"
확인을 마친 서류를 받아들고, 엔도 선생에게 연락한 다음 갈라서면 되는데... 그 전에, 미카즈키는, 무심코 무턱대고 그렇게 말을 꺼내어버리고 말았다.
그때 엔도 선생의 눈에 띄인 게, 하필이면 미카즈키였다. 곱상한 얼굴과는 영 다른, 딱 벌어진 어깨와 잘 다듬어진 몸매. 엔도 선생 못지않게 우락부락한 '장정' 아닌가. 엔도 선생이 미카즈키를 축제에 끌어들이는 것을 그 할아버지인 텐이치로가 아주 탐탁하게 여겨 엔도 선생에게 오히려 권장을 하고 있는 판이기도 하고, 미카즈키는 지금까지 엔도 선생의 말에 큰 반항 없이 말을 다소곳이 잘 들어왔으니 이런 때에 부려먹기엔 딱인 일꾼인 셈이다. 다만 역시 그 핫피며 머리띠며 하는 것들에서는 미카즈키도 인상을 구겼다.
혹시 그렇지 않을까 싶었지만 역시나랄까. 카나타는 휴식 시간이 정해진 모양이다. 그럼 잔뜩 즐기는 건 힘들겠다고 가볍게 보고 지나갈 수 있는 건 그래야겠다고 스즈네도 비슷하게 생각했다. 지금 이렇게 생각해도 막상 놀다보면 제멋대로 굴게 될 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응응~ 열심히 돌아다니면~ 어떻게든 될 거야~"
스즈네가 쭉 내민 손은 무안하지 않게 카나타의 손과 맞잡아졌다. 체구 차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큰 소년의 손을 꼭 잡은 스즈네는 카나타의 옆에서 달각달각. 걸어갔다.
"비번일 때~? 그 때도 놀아주려구~? 카나쨩 상냥해~"
북적이는 축제 거리를 걸으며 스즈네가 꺄륵 웃었다. 그럼 비번날 또 놀아달래야지~ 라며 어린아이처럼 재잘거리고. 자신만만한 카나타의 말에는 우히~ 하고 얄미운 소리를 냈다. 어디 한 번 실력 좀 볼까~? 하고.
"응응~"
둘러보기도 못 했던 스즈네로서는 위치 파악을 한 카나타가 이끌어주는게 편했다. 손도 잡고 있으니 중간에 딴 길로 샐 염려도 적었다. 혼자면 당장 앞에 있는 곳부터 보느라 시간 낭비 제대로 했을 것이다. 이끌어주는 이가 있으니 편하다고 생각하며 지나치는 부스를 눈으로만 슥슥 훑던 스즈네는 카나타의 말에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그리고 히죽~ 하고 웃었다.
"헤헹~ 토키와라 토박이 앞에서 감히 낚시 내기를 하자는 거야~ 카나쨩~? 그렇게 자신만만하다가는 큰코 다칠 텐데~ 헤에엥~"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스즈네도 딱히 잘 하는 편은 아니었다. 어쩔 땐 하나도 못 낚아서 나중에 히비키나 시키루가 와서 요요 하나 건져주곤 했다. 그래도 오늘은 내기라니까 왠지 잘 할 것도 같다. 이유 모를 자신감에 고개를 크게 끄덕인 스즈네는 당당하게 말했다.
"이럴 때는 정석적인 소원권이지~ 안 되는 거 빼고 다 들어주기야~"
사실 뭘 걸어야 할지 모르겠어서 냅다 소원권을 걸어버린 거지만. 스즈네는 내기에서 이기는 것보다 그냥 같이 노는게 더 좋았기도 하고.
"재밌겠다~ 나보다 못 건지면 카나쨩 놀려야지~"
내기야 어찌됐든 이 상황 자체가 즐거운 듯 스즈네가 손을 크게 흔들거렸다. 걸음도 크게 크게 내딛었다가 다시 평소 보폭으로 돌아오며 이히히~ 웃기도 했다. 그렇게 가다보면 저 앞에 금붕어와 요요츠리 부스가 나란히 보인다. 마침 금붕어 앞이 비었으니 바로 가면 될 듯 하다.
"...어차피 논다면 비번일 때가 더 낫지 않을까라고 말한 것 뿐이야. ...나도 축제는 좋아하니까."
그땐 다른 이들도 같이 부르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카나타는 당장 떠오르는 얼굴들을 하나하나 수를 셌다. 니시키리는 이런 자리 안 좋아하려나. 다음에 물어볼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살며시 다시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다 그녀의 입에서 토박이라는 말에 그는 피식 웃었다.
"너만 토박이야? 나도 토박인데?"
태어날 때부터 쭉 토키와라에서 자랐고 지금도 토키와라에서 살고 있다. 토박이라는 조건은 비슷하지 않은가. 물론 토박이라는 것이 과연 이 내기에 얼마나 영향을 줄 지는 알 수 없었다. 애초에 그녀도 진지하게 말하는 것은 아닐테니, 적당히 그 분위기에 맞춰주며 그는 이내 한번 더 피식 웃었다.
여기서 졌을 때 과연 상대가 뭘 빌지는 알 수 없었기에 그는 강한 승부욕을 불태웠다. 물론 이렇게 한다고 해서 이긴다는 법은 없었지만. 어쨌든 자신도 금붕어잡기는 꽤 많이 했으니 쉽게 지는 일은 없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는 금붕어와 요요츠리 부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러다가 다시 스즈네를 바라보며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다가 네가 지면 그대로 돌려줘도 되는 거 맞겠지?"
물론 말만 이렇게 할 뿐. 실제로 놀린다고 해도 얼마나 놀리겠는가. 금붕어 앞이 비어있어 금붕어 쪽으로 간 그는 그녀의 손을 놓았고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깔끔하게 그녀 몫까지 계산한 후, 그는 자신이 먼저 하겠다고 이야기를 하며 종이 뜰채를 집어들었다. 이어 그는 가만히 물 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금붕어를 바라봤다. 꽤나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상당히 컨디션이 좋아보였다. 저런 것은 잡기 조금 어려운데.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가만히 타이밍을 눈여겨보다가 마치 고양이가 물 속의 물고기를 잡는 것처럼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이건 타마가 배고플 때 내 다리를 팍팍 치기 권!"
강하게 기술명 같은 것을 외치면서 그는 금붕어를 낚아채려고 했다. 과연 몇마리나 낚였을까? 그건 두고봐야 알 일이었다.
/ .dice 0 10. = 10 마리!
기술명까지 외친 이상 여기서 0마리가 나오는 것이 더 재밌을지도 모르겠다만 과연 어떻게 되려나!
안개 속으로 공을 던지는 일은 얼핏 보면 무의미한 행동 같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증기의 장막은 소리마저 삼켜버리니. 고심하여 던진 콩주머니가 조각난 돌조각이 되어 돌아올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 앞으로 나아가는 이에게 운무는 차근히 한 걸음씩 나아갈 길을 보여주었다. 무엇을 던져도 말간 유리구슬로 바꾸어 발치로 굴려 되돌려주었다. 어느새 손 안 가득 모인 구슬들이 잘그락거리며 웃을 만큼.
어색한 맞장구에 어레레~ 진짜 그래버린다~? 라며 키드득 웃어버리는 스즈네처럼.
미카즈키가 거들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자 작은 손이 단호히 까딱. 움직였다. 괜찮으니 앉으라는 신호가 분명했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너무 부산히 움직이면 주변에 먼지가 일어나니 말이다. 그 손짓만큼 단호하면서 간결하고 똑부러지는 설명이 그 뒤에 이어졌다.
설명 도중 스즈네는 미카즈키의 시선이 자신의 행동을 유심히 쫓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말보다 정확한 몸짓으로 설명을 보충했다. 찻잎 주걱을 들고 내려놓는 것. 한 번에 뜨는 찻잎의 양. 가까이 다가가서 맷돌 돌리는 감각을 알려줄 때는 작은 손을 한껏 펼쳐 소년의 손을 덮고 꼭 쥐어 돌리는데 드는 힘과 돌에서 손잡이를 통해 느껴지는 갈림의 감각이 조금 더 생생히 느껴지도록 했다. 그러는 도중에 필연적으로 미카즈키의 등과 어깨에 스즈네의 몸이 꾸욱 밀착하게 되었지만 스즈네의 태도는 한없이 진지할 뿐이었다. 충분히 움직여 감각이 전해졌겠구나 싶었을 때 스즈네의 손이 미카즈키의 손등을 톡톡 두드려주고 살며시 떨어졌다.
"으응?"
재채기에 대한 주의를 주며 옆자리에 앉던 스즈네는 미카즈키가 말한 희안한 비방에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생전 처음 듣는 방법이니 말이다. 당장 들은 대로 따라해봤지만 재채기가 나오려던 때가 아니라서 그런가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기억해두기로 했다.
"희안한 방법이네~ 나도 도중에 간질간질하면 해봐야겠다~"
그렇게 말하고 스즈네도 손을 움직였다. 먼저 도로록. 도로록. 맷돌을 돌리자 곧 옆에서도 같은 박자와 같은 감각으로 맷돌이 돌기 시작했다. 살짝 어긋나 있던 소리가 어느 순간 딱 맞춰 돌아가기 시작한다.
기묘한 이중주를 들으며 맷돌을 돌리던 스즈네는 옆을 힐끔 봤다. 처음인데도 버벅이지 않고 매끄럽게 맷돌을 돌리는 미카즈키를 보고 손을 까딱였다. 한 손은 계속 맷돌을 돌리며 보란 듯 남은 손을 뻗어 물 흐르듯 찻잎을 떠서 돌고 있는 맷돌에 넣는 것을 보여주었다. 어느 정도 맷돌에 익숙해진 사람에게 알려주는 요령인데 미카즈키는 감각이 좋은 듯 하니 바로 알려준 것이다. 그렇게 멈추지 않고 맷돌을 돌려가다가 문득 작은 발짓으로 탁. 탁. 탁. 탁. 박자를 탔다. 작은 흥얼거림이 박자에 맞춰 흘러나왔다.
"도토리를 따라가도 갈 수 없어요~ 숲 속의 자그마한 레스토랑~"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봤을 노래가사가 자근자근 이어진다. 작업 중에 부르니 약간 노동요 같기도 하다. 실제로 스즈네는 노래를 막힘 없이 부르며 작업에도 전혀 지장이 없었다. 맷돌이 구르는 소리마저 하나의 반주처럼 흥얼거림에 섞였다. 끝까지 다 부르고 나면 여운이 남은 듯 콧노래를 흥얼대며 작업을 계속해갔다.
"흐흥~ 그래도 아까 내가 놀자고 와줘서 기뻤으면서~ 카나쨩도 부스에만 있었으면 분명히 심심했을 걸~ 놀고 싶었을 걸~"
아니야아~?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여 자신보다 키가 큰 카나타를 올려다보며 말하는 스즈네. 악의 없는 장난기가 한가득인 얼굴은 지치는 일이 있을까 싶을 만큼 해맑게 웃고 있었다. 스즈네는 우히히~ 하고 철 안 든 아이 같은 웃음소리를 내곤 맞잡은 카나타의 손을 더 꼬옥 쥔다. 사실 네가 더 기쁜 거 아니냐고 되묻는다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응! 하고 대답했을 것이다.
"에~ 음~ 흥이야~ 카나쨩이 하두 자신만만하게 말하니까~ 아무튼 승부는 실력이야아~!"
토박이 운운한 건 분위기를 타서 해본 말이라 저렇게 태클을 걸면 맞받아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스즈네는 딱 봐도 할 말 없는데 괜히라는 것이 보이게 에이잇~ 하고 파닥거렸다. 그러다가 네가 지면. 이라는 카나타의 말에 안 져~ 안 질 거야~ 라며 스즈네 나름의 자신만만함도 내보이고 말이다.
티격태격 하다보니 금새 금붕어 잡기 앞에 다다라 스즈네도 요금을 내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하지만 카나타가 한 박자 빨랐다. 금새 계산해버리고 먼저 하겠다며 앉는 카나타를 보고 그 옆에 앉아선 우우~ 하고 조잘거렸다.
"먼저 하려고 내 거까지 계산해버리구~ 카나쨩 치사해~ 우우우~"
나름대로 방해공작이기도 했으나 카나타가 진지하게 금붕어잡기를 시작하자 스즈네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구경했다. 누가 더 많이 잡나 내기해놓고 카나타가 잡을 때마다 와 잡혔다! 라며 즐거워했다. 생각보다 팔팔하고 날쌘 금붕어들을 희안한 기술명까지 외쳐가며 잡는 모습에 파하하! 웃기도 했다.
"타마가 배고플 때 다리치기 권이래~~ 그게 뭐야~~ 아하하하!"
스즈네가 신나게 웃는 사이 카나타의 차례가 끝났다. 그 기술명이 도움이 되긴 했는지 자그만 그릇 안에 무려 열 마리나 담긴 금붕어를 보고 헤에에~ 하고 놀랐다. 그리고 질 수 없다며 유카타 소매를 둥둥 걷어올리고 종이 뜰채와 그릇을 받았다. 의기양양하게 수조 앞에 앉아 금붕어 잡기를 하는 스즈네는 카나타가 그랬듯 사뭇 진지했다. 그 모습만큼 그릇에도 금붕어가 착실히 담겼다. 하나 둘 셋 넷... 어느새 아홉 마리째를 담고 제법 큼지막한 열 마리째를 올려 그릇으로 옮기는 순간!
"잡았ㄷ, 아아앗~!"
순조롭게 옮겨지던 금붕어가 갑자기 팍 하고 튀어오르더니 꼬리 지느러미로 스즈네의 그릇을 내려쳤다. 그 반동으로 기울어진 그릇에서 물고기들이 주르륵 흘러 수조로 돌아가버렸고 종이 뜰채도 찢어졌다. 겨우 수습한 그릇엔 단 세 마리의 금붕어만 남아있었다. 그렇게 끝나버린 내기에 스즈네의 눈에 물기가 핑 돌았다.
"방금 거 잡았는데... 담기만 하면 됐는데... 열마리였는데..."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인지라 승부를 납득하기도 현실을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걸까. 찢어진 뜰채를 들고 금방이라도 울 듯한 눈으로 카나타를 보던 스즈네가 쩌그려 앉은 채로 카나타의 유카타 소매를 살짝 잡았다. 그리고 바로 옆의 요요츠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어 저걸루 한 번 더 하자아... 응? 저걸로 하면 이럴 일도 없으니까아~"
제안을 수락할 지 말 지는 카나타가 정할 일이다. 어쩐지 다시 한다고 해도 다시금 깔끔하게 지는 미래 밖에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재대결 하게되면~ 다이스 없이 이번에야말로 카나타가 완벽하게 이겼다~! 로 하면 어떨까 하구 써봤어~ 요런 전개 마음에 들면 이대로 이어줘~ 찡긋~ ( • ᴗ - ) ✧
딱히 그녀의 말을 카나타는 부정하지 않았다. 누가 되었건 일단 축제 때 같이 노는 것을 그는 나름 좋아하는 편이었다. 작년도, 재작년도 혼자서 즐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같이 즐겼었고. 축제가 끝나기 전에 최대한 이것저것 즐기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하며 카나타는 오른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정리했다. 그러면서 좁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지나갈 땐 먼저 앞장서서 살며시 길을 넓혔다.
"안 치사해. ...원래 이런 것은 누가 내도 상관없는 거잖아."
다음엔 네가 내면 되지. 그렇게 무덤덤하게 이야기를 하며 그는 이내 금붕어 잡기에 도전했다. 바로 옆에서 즐거워하는 목소리, 웃는 목소리. 모든 것이 들리긴 했지만 그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조용히 금붕어를 잡는 것에만 집중했다. 하나, 둘, 셋, 넷... 열. 깔끔하게 그 정도로 잡고 일부러 종이 뜰채를 물에 넣어 찢어버린 그는 가만히 통 속에서 헤엄치는 금붕어를 바라봤다. 이렇게 많이 잡아가도 키울 수 없는데. 역시 안에 넣는 것이 좋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조심스럽게 주인의 허락을 받아 물 속에 금붕어들을 집어넣었다. 놀라지 않게 천천히. 조심스럽게. 그리고 그제야 그녀의 웃으면서 하던 말에 대답했다.
"...실제로 이렇게 치는걸. 그 외에도 여러가지가 있지만 오늘은 이 정도로만 보여줄게. 이거 나름 유용해."
이어 그는 그녀가 금붕어를 잡는 것을 바라봤다. 생각보다 잘 잡네. 나보다 더 잡는 거 아니야? 그런 생각이 들어 그는 절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침을 꿀꺽 삼켰다. 딱히 진다고 해서 손해보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이런 내기를 하게 되면 승부욕이 불타기 마련이었고, 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마지막 열마리 째 금붕어가 팍하고 튀어올라 그릇을 내리쳤고 그 때문에 물고기들이 수조로 돌아가는 것에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두 눈을 깜빡였다. 세 마리만 남아버린 금붕어들을 가만히 바라보던 카나타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울지 마. ...열 마리로 칠테니까. 그 정도면 세이프야."
무승부라는 결과가 나왔지만 지지 않은 것으로도 그는 별 상관이 없었다. 소원권?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이었다. 애초에 딱히 소원으로 빌만한 뭔가가 떠오르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주어진다면 뭐라도 구상을 해보기야 하겠지만... 저편에 있는 야키소바라도 하나 사달라고 할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자신의 소매를 꼬옥 잡고 요요츠리를 가리키는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어차피 즐길만큼은 즐길 참이니까. 이번에는 네가 먼저 해. 아까는 내가 먼저 했으니까."
참고로 난 저걸 더 잘해. 그렇게 말하는 카나타의 표정은 상당히 여유만만했다. 그리고 그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실제로도 매우 잘하는 편이었으니까.
"...참고로 난 소원권을 얻으면, 야키소바와 초코바나나를 요구할거야. ...축제 요리니까 먹고 싶어."
매년 누군가와 축제를 즐겼던 카나타와 달리 스즈네는 되려 축제 때마다 얌전했다. 매 해마다 카페 부스에 앉아서 아는 얼굴이 보일 때마다 해맑게 웃으며 인사는 했으니 축제에 있었구나 싶지만. 그 해맑은 웃음소리가 축제 부스에서 울린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기껏해야 게임류 부스만 몇군데 도는 걸로 끝이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축제의 화려한 전경을 그저 멀리서 눈에만 담게 되었던 건.
그랬던 스즈네가 올 해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카나타와 같이 금붕어 잡기를 했다. 선뜻 내기까지 응해 지지 않을 거라며 큰소리 땅땅 쳤지만. 결과는 운명의 장난처럼 잡은 금붕어마저 놓치는 바람에 지고 말았다. 훌쩍. 아쉬움과 서러움을 담긴 소리를 내던 스즈네는 괜히 금붕어들을 향해 중얼거렸다.
"우우우... 니네 나빴어..."
그런다고 저 물고기들이 들을 리는 없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아쉬움 철철 넘치는 결과에 요요츠리로 다시 하자고 하니 카나타도 그러자고 했다. 게다가 선공까지 내어준다는 말에 방금 전까지 울먹이던 스즈네의 얼굴이 파아앗! 하고 밝아졌다.
"응! 고마워~ 카나쨩~"
에헤헤~ 금새 다시 웃게 된 스즈네는 남은 금붕어 세마리도 마저 물에 풀어주었다. 그리고 부스 주인에게 재밌었어요~ 하고 인사하고 옆 부스로 옮겨갔다. 카나타의 유카타 소매를 잡은 채였으니 자연스레 스즈네의 종종걸음을 따라가게 되지 않았을까. 바로 옆이니 멀리 갈 것도 아니었고.
"소원권인데 야키소바랑 초코바나나로 돼~? 카나쨩~ 남자애가 담이 작네~"
기분 풀리자마자 종알거리며 요요츠리 앞에 선 스즈네. 이번에 내가 낼 거야~ 라며 자신과 카나타 몫을 계산했다. 짤랑짤랑. 잔돈을 받아 손목에 건 주머니 가방에 넣은 스즈네는 카나타의 유카타를 놓고 다시 수조 앞에 앉았다. 아까 그랬듯이 이번에는~! 이라며 기운차게 갈고리를 물에 담갔지만...
"힝이야..."
이번엔 한 개를 건지기도 전에 갈고리에 건 종이가 뚝. 끊어지는 바람에 시작부터 지고 말았다. 연달은 두 번의 완벽한 패배 앞에 스즈네는 울먹이는 것을 엄어 풀이 팍 죽었다. 진 것도 진 것이지만 역시 한 개도 못 건진게 너무 아쉽기도 해서였다.
"저거어 한 개만 건졌어도... 우우... 이제 카나쨩 차례야~"
그래도 순서는 끝났으니까. 스즈네는 옆으로 꼼질꼼질 움직여서 카나타가 요요츠리를 할 수 있게 비켜주었다. 그러면서 눈으로는 방금 건지려 했던 흰색과 하늘색 요요를 보고 있었다. 카나타가 끝나면 한 번 더 할까. 같은 생각을 하면서.
담이 작다고 말하는 스즈네의 말에 카나타는 피식 웃으면서 그렇게 대꾸했다. 소원권이라고 해도 너무 큰 것을 바라는 것보단 적당히 소소하게 끝나는 것이 좋았다. 거기다가 야키소바와 초코바나나 맛있지 않은가. 반대로 그녀는 뭘 요구하고 싶길래 저렇게 말하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카나타는 스즈네가 계산하는 것을 바라봤다.
"...참고로 묻는거데, 넌 뭘 빌건데?"
스즈네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딱히 생각하는 것은 없지 않았을까. 그렇게 추측을 하며, 그는 물음을 마쳤다. 그리고 그녀가 요요츠리를 하는 모습을 바라봤다. 하지만 이번에는 하나도 건지지 못하고 뚝 끊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어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장난치듯 가벼운 목소리를 뱉었다.
"...시작 전에 토박이가 어쩌고 한 것은 어디로 간 거야? 봐. 이건 이렇게 하는 거야."
이어 그는 그녀가 자리를 비켜주자 그 자리에 섰다. 이어 그는 잠시 집중하는 듯 하더니, 아주 능숙하게 방금 그녀가 건지려다가 실패한 하늘색 물풍선을 끄집어냈다. 이어 빨간색, 보라색, 검은색, 파란색. 딱 그 정도 끄집어내자 자연히 종이가 뚝 끊어졌고 그는 숨을 후우 내뱉었다.
"이겼네."
무덤덤하게, 하지만 입가에 미소를 살며시 머금으며 승리를 선언한 카나타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맨 처음에 꺼냈던 하늘색 물풍선을 그녀에게 내밀었고, 다른 것들은 모두 반납하겠다는 듯이 물 속에 집어넣었다.
"...이거 노렸었지? 가져가. ...이번 거 돈을 낸 답례야. ...야키소바와 초코바나나는 별도야."
그 두 개는 확실하게 받아가겠다는 듯, 그는 장난스러운 목소리를 살짝 섞어 입가에 미소를 계속해서 머금었다.
한 마디도 안 진다고 해야 할까. 장단을 참 잘 맞춰준다고 해야 할까. 농담조의 말을 농담반 진담반으로 돌려주던 스즈네는 문득 돌아온 질문에 카나타를 향해 눈을 깜빡였다. 말할까 말까. 혹은 아직 생각 안 해봤는데. 같은 눈빛이었다. 그러다가 히죽 웃으면서 입술 위로 검지를 세웠다.
"내가 이기면 가르쳐주지~ 정 궁금하면 카나쨩의 소원권을 써야겠지만~?"
한 번 더 하자고는 했지만 스즈네 역시 이미 카나타의 승리를 인정하고는 있었다. 다만 상황의 아쉬움이 괜히 그런 말 하게끔 만들었던 것이다. 아니었으면 깔끔히 나버린 재승부에도 승복하지 못 하고 삐지거나 했겠지만. 그럴 일 없이 기세만 푹 꺾여선 히잉, 하는 소리만 냈다.
"우우우... 사실 잘 못 한단 말야~ 매년 히-쨩이나 시키쨩이 따주는 걸~"
볼멘소리로 투덜거리던 스즈네는 이번에도 연달아 물풍선을 꺼내는 카나타를 바라보았다. 제일 처음 하늘색 물풍선이 걸리자 으엥~ 하며 아쉬워했지만 그 뒤로도 연달아 올라오는 물풍선들을 보고 신기한 걸 보듯 고개를 왔다리갔다리 움직였다. 그렇게 다섯개 건지고 종이가 끊어지니 스즈네가 더 아쉬워했다. 그래도 재밌었으니까 내가 졌네~ 그럼 가자~ 하고 일어서는데.
"응? 진짜? 진짜 나 주는 거야~?"
카나타가 하늘색 요요를 주자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요요와 카나타를 번갈아봤다. 그걸 받고서도 햐아아... 하고 눈을 반짝반짝 빛내더니 활짝 웃으며 말했다.
잠시 생각하는 듯 했지만 그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만약 정말로 여기서 감추는 것이라면 자신이 물어봐야 실례되는 행동일테니 굳이 캐물을 필요는 없었다. 말하고 싶다면 어련히 알아서 말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카나타는 굳이 소원에 대해서 더 묻지 않았다. 애초에 소원권을 써서 상대의 소원을 듣는 것 자체가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자신에게 이득이 없었고, 그저 소원권 하나를 허무하게 날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카나타는 판단했다. 물론 야키소바와 초코바나나에 쓰는 것도 낭비가 아닐까 싶었지만.
어쨌든 이번 내기는 자신의 승리. 승부욕이 불탄 상태였기 때문에 카나타는 승리가 확정되자 자신도 모르게 뿌듯함을 느꼈다. 역시 이런 축제에서는 이런 식으로 노는 것도 재밌는 법이었다. 그와는 별개로 하늘색 물풍선을 주자 자신과 물풍선을 번갈아가며 바라보는 스즈네의 모습에 카나타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천천히 위아래로 끄덕였다. 저리도 좋을까. 눈이 빛나는 그녀의 모습에 그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으면서 입꼬리를 올렸다.
"...그렇게 많이는 못 먹어. 마음만 받을게. 야끼소바와 초코바나나로 충분해. ...굳이 돈을 더 쓰고 싶다면... 우리 부스에 와서 강아지 간식이나 고양이 간식을 많이 사 줘."
그럼 매상이 올라서 내 용돈도 올라가. 진심인지 농인지 모를 말을 가볍게 하면서 그는 손에 물풍선을 걸어 통통 튕기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다시 한 번 그리도 좋을까. 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고 보니 어릴 때에는 저렇게 많이 놀았지. 자연스럽게 그녀의 오른손을 잡으면서 그는 다시 천천히 앞으로 걸었다.
"일단 먹을 것을 사고 먹으면서 돌아다니자. ...야끼소바와 초코바나나 둘 다 걸으면서 먹을 수 있잖아. 그리고..."
그는 가만히 고개를 돌리면서 주변 부스들을 확인했다. 야끼소바와 초코바나나만이 아니라 정말 다양한 음식들을 파는 부스가 많았다. 빙수라던가, 타코야끼라던가, 링고아메 기타 등등. 어차피 돌아다니면서 뭔가를 먹을 것 같으면 지금 먹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부스에서 일하다가 이제 막 쉬게 된 만큼, 배가 조금 고픈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먹을 것부터 사자고 그녀에게 제안했다.
"...그러고 보니 되게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데.. 그 동안 어떻게 지냈어? ...많이 바빴어? ...아. 이렇게 묻는 것도 이상하긴 하네. ...방학 기간 조금 안 본 것으로 이렇게 묻는 것도 말이야."
처음부터 내기 승부 자체는 아무래도 좋았던 스즈네로서는 졌어도 크게 분하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이득 본 기분이다. 재차 오지 않아도 원하는 물풍선 요요를 얻었으니까. 매년 축제마다 이것 하나 만큼은 꼭 챙겨가곤 했던 스즈네였기에 내기에 졌어도 마냥 즐겁기만 했다. 무엇보다 이제부터 할 것도 많이 남았고 말이다.
"그럼~ 나중에 링링이 데리고 갈게~ 간만에 친구들이랑 놀게 해줘야지~"
서로의 부스가 오늘만 열리는 것도 아니니 갈 시간을 만들기만 하면 되었다. 내일이나 모레쯤 가겠다며 재잘거린 스즈네는 다시금 잡힌 손을 꼭 쥐고 종종 걷기 시작했다. 한창 인파 활발할 시간이니 여기저기서 만드는 음식 냄새들에 스즈네도 잠시 잊고 있던 허기가 되살아났다. 달콤하고 고소하고 짭짤하게 뒤섞인 축제 음식 냄새에 침을 꿀꺽 삼킨 스즈네가 고개를 파닥파닥 끄덕였다.
"그러자 그러자~! 나아두 배고팠는데 이제 생각났어~ 꼬치구이 먹고싶다아~"
숯불 화로에 바로 구워서 먹기 좋게 담아주는 닭꼬치는 그야말로 별미 중의 별미다. 지금이라면 큰 걸로 다섯 꼬치는 먹을 수 있겠다며 조잘거리던 스즈네는 근황을 묻는 질문에 잠시 음~ 하고 생각했다.
"학교에서 매일 보다가 안 보면 그럴 만두 하지~ 나도 오랜만인 기분이었구~ 나~ 뭐~ 일하구 놀구~ 먹고 자구~ 매일매일 충실하게 뒹구느라 바빴지~ 그리그 올 해는 집행부 일도 있으니까~ 그 왜~ 개울 청소할 때랑~ 산에 갔을 때~ 나도 있었다아~?"
아직 카페 일을 돕는 수준인 카나타와 달리 스즈네는 방학이면 본격적으로 차 관련 일을 도왔다. 토키와라에 공급되는 찻잎을 손수 갈아 포장하여 배달하거나 집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차를 대접하며 접대하는 요령을 키웠다. 하지만 스즈네가 하는 일은 딱 거기까지였다. 집에서 멀리 떨어지거나 토키와라를 벗어나 무언가를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토키고 방학 중 키리야마 가에 가면 십중팔구 스즈네가 사람들을 반겼다. 묵은 듯 신선한 찻잎향과 함께.
"아~ 저기 야끼소바 있다아~"
스즈네가 먼저 야끼소바 부스를 찾아 가리켰다. 맞은편에 꼬치구이 부스도 있었다. 번갈아서 사면 되겠다고 말하며 히히~ 웃던 스즈네는 이번엔 카나타 차례라는 듯 고개 들어 바라보며 물었다.
"카나쨩은 뭐 했어~? 입시 공부~? 카나쨩~ 대학은 근처로 가겠다고 했던 것도 같구~"
둘 다 3학년이었으니 자연스레 학생들 사이로 이런 저런 말이 오갈 법도 했다. 그 속에 들었을 수도 있고 말이다.
아무리 반려동물이 모이는 소통의 장이라고 해도, 사회성이 떨어지는 아이들이 오면 보통 곤란한 것이 아니었다. 친구하자고 다가가는데 공격을 하거나 이빨을 들이밀면 결국 싸움으로 번질 수밖에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피를 흘리는 일이 있을 수도 있었으니까. 그에 비해 링링이는 그런 문제점이 없었으니 카나타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리카가 좋아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절로 미소를 지었다. 조만간에 귀여운 고양이들이 나른하게 노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얼굴의 미소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면 넌 꼬치구이를 먹으면 되겠네. 야끼소바는 어느 정도 나눠줄 수도 있어. ...하지만 초코바나나는 작으니까 안돼."
한입을 줬더니 반이 사라졌다 같은 이야기는 겪고 싶지 않았는지, 그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러다가 기왕 이렇게 된 거, 자신도 돈을 써서 다른 먹을 것도 사볼까. 그렇게 생각을 하나 너무 많은 것을 들기는 또 힘들었다. 그렇기에 일단 먹은 후에 생각하기로 하며, 그는 스즈네의 근황에 대해 귀를 기울였다. 일하고 놀고 먹고 놀고 충실하게 뒹구느라 바빴다. 생각 이상으로 그녀는 꽤 바쁘게 지낸 모양이었다. 그 와중에 개울 청소와 산에 갔을 때라는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봤었어. 하지만 산은...글쎄. 나는 나랑 같이 내려간 호리이 이외에는 다른 애들이 내려가는 것은 못 본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그 날에 있었던 일은 영 기억이 애매하게 남아있었다. 뭔가 단체로 올라갔다가 2인 1조로 내려가야 한다고 해서 근처에 있던 호리이에게 가자고 이야기를 했고, 내려갔다가 뭔가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것을 기억하려고 하니, 또 기억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부적이 있었는데, 그 부적은 대체 뭔지. 영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꺼림칙하지는 않아 지금도 가지고 있는 그 부적을 떠올리면서 그는 괜히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가 다시 밖으로 빼냈다.
"입시 공부... 일단은 하고 있어. ...근처에 있는 대학을 간다고 하더라도 성적은 어느 정도 나와야 하니까. ...들어갈 수 있으면 들어가고, 아니면 안 들어갈거야. ...그리고 뭐... 하는 것이라고 해도 카페 일 가끔 도와주고, 공부 하고, 집행부 일을 하고, 돌아다니고, 애들 산책시키고 이것의 반복이야. ...딱히 기억에 남는 그런 일은 없었어."
뭔가 묘하게 조용조용하게 지나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에 그는 말을 마침과 동시에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아직 여름은 남았으니 그 사이에 이런저런 즐거운 일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야끼소바 부스를 찾아 발걸음을 조금 더 빠르게 옮겼다. 물론 그러면서도 스즈네가 따라올 수 있게 속도를 맞추는 것을 잊지 않았다.
"...졸업하면 슬슬 카페 일을 심화적으로 배울 생각이야. ...그 카페는 내 꺼야. ...그러니까 전부 배울거야. ...제대로 물려받으면 하루 정도는 서비스 해줄게. 공짜 이용으로."
그래서 카나타가 자신의 소원 관련으로 말했잖아? 이해받기 힘들고 누군가는 상당히 싫어할 소원이라고 말이야. 카나타도 그것을 알기 때문에 굳이 이루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딱히 남들에게도 말을 안한다고 말이야. 그냥 카나타가 개인적으로 조금 꺼리는 것 뿐이지... 변화가 일어난다고 한다고 해서 그것을 결사반대하고 그러진 않을거야! 결국 변하는 것은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카나타의 반응에 스즈네는 짐짓 뿌듯하게 말했다. 링링이의 사교성은 스즈네의 자랑거리 중 하나다. 누군가에게 버림 받아 죽어가던 아이를 누구에게나 살갑고 애교 많은 아이로 키우기까지 얼마나 열심이었던가! 원래 살가운 랙돌이라는 점도 있긴 했지만 링링이는 랙돌인 점을 넘어선 사교성과 사회성이 있었다. 그래서 가끔 호시노 카페에 데려가도 사고나 싸움 한 번 낸 적이 없었다. 스즈네 역시 호시노 카페의 아이들과 노는 링링이를 생각하며 히히~ 웃었다.
"초코바나나는 나도 먹을 거니까 그럴 일 없네용~ 그치만 나두 꼬치구이는 나눠줄게~"
낮부터 고생했다고 용돈을 넉넉히 받은 덕에 각자 하나씩 사먹는 건 문제 될 것도 없었다. 오늘은 큰 맘 먹고 초콜릿 더블로 해볼까~ 라며 나름의 결심을 하며 스즈네 또한 카나타의 얘기에 귀를 쫑긋 세웠다.
"음~ 나도 그렇긴 해~ 올라갈 때는 다같이였으니까~ 그런데 나는 내려갈 때도 누구 누구 있나 보고 마지막에 내려갔었거든~ 세이쨩이랑 내려가다가~ 이상한 일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분명 있긴 했지만 시일이 지난 지금은 정확한 맥락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어딘가에 발을 들일 뻔 했다는 감각은 아직도 선명했다. 붉은 빛을 넘어가면 그토록 염원하던 곳에 닿을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대부분의 토키와라 아이들은 일단 타지로 나가는 것을 진로로 정하곤 했다. 가장 대표적인게 대학이다. 예체능 특기가 아닌 이상 지역을 벗어날 때와 구실이 그것 뿐이니. 그러니 카나타의 단호한 카페 후계 선언은 스즈네라도 눈을 크게 뜰 수 밖에 없었다. 정작 자신도 나갈 생각은 없으면서 말이다.
"안녕하세요오~ 아끼소바 하나~ 포장해주세요~"
산행도 식후경이랬다. 어느새 다다른 야끼소바 부스에서 1인분을 포장 주문하곤 스즈네가 값을 치렀다. 주문을 받은 털털한 인상의 점주가 철판 위에 면과 양배추 등등을 소스와 함께 볶기 시작하자 스즈네가 다시금 말했다.
뭔가 있었던 것 같지만 정확하게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부적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이고, 왜 그때의 기억만 애매한 것인지. 정말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뭔가에 홀린 것일까. 하지만 그렇다기엔 딱히 다친 곳도 없고, 크게 해를 입은 곳도 없었다. 물론 자신이 자각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참으로 애매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하며 카나타는 눈을 조용히 감으며 한숨을 후우 내뱉었다.
"...그러게. 그건 조금 신기하긴 하네. ...하지만 마을이 마냥 작은 것은 아니니까..."
확률적으로 따져보면 아예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찌되었건 오늘 봤으니 된 것 아니겠는가. 딱 그 정도로만 생각하며 그는 이내 들려오는 그녀의 물음에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여기저기 다녀보고 놀고 싶지 않냐라. 그건 지금도 비슷하게 하고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채웠다. 실제로 그는 오사카도, 교토도, 가끔은 도쿄도 갔다오고는 했으니까. 대부분 동물을 보기 위해서였지만. 아. 그러고 보니 교토의 아라시야마 몽키파크. 오랜만에 다시 가고 싶다. 조만간에 다시 가볼까. 김에 이나리 신사도 보고. 그런 계획을 머릿속으로 세우면서 그는 미소를 지으며 닫혔던 입을 열었다.
"...지금도 여기저기 놀러다니고 있어. ...조만간에 도쿄나 오사카. 둘 중 하나는 또 가볼꺼야. ...아니면 벳푸도 괜찮을지도 모르겠네."
즉, 할 것을 하면서도 여기저기 놀러다니는 것은 문제없다는 발언이었다. 카페의 운영이 조금 걸리긴 하지만 알바생을 뽑아서 맡기는 방법도 있었고, 정식 직원을 뽑아서 휴가제로 돌아가면서 쉬는 방법도 있지 않겠는가. 생각해보면 직장인들은 다 그렇게 하고 있으니 자신도 별 차이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야키소바 부스에 도착하고 야키소바 주문이 들어가자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맛있어보이네. 면과 양배추를 볶고 있는 그 움직임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카나타의 눈동자는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던 도중 스즈네의 물음이 들려오자 그의 시선이 다시 그녀에게 향했다. 그 물음에 그는 그녀에게 대답했다.
"...여기에 있으면 다른 세상을 볼 수 없는 거야? ...볼 수 있어. 시간만 따라준다면야."
여기에서 산다고 해서 평생 이곳 안에서만 있을 것은 아니고 지금처럼 한번씩은 다른 곳으로 놀러갈테니, 지금과 별 차이는 없지 않나라는 것이 카나타의 생각이었다. 이내 다 볶은 야키소바가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에 담겼다. 나무 젓가락 하나와 함께 점주가 내밀자 그는 미소를 지으며 야키소바를 두 손으로 받았다.
"...잘 먹을게. 그럼 초코바나나 사러 가자. ...그보다... 왜 그런 것을 묻는 거야? ...여행이라도 길게 가려고 준비중이야? 너?"
만약 그렇다면 잘 다녀오고. 그렇게 무덤덤하게 이야기를 하며 그는 살며시 몸을 돌린 후에 초코바나나를 파는 부스로 향하려고 했다. 어서 가자는 듯, 턱짓을 하면서 앞을 바라보는 것이 평소의 무덤덤한 느낌의 카나타의 모습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