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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패였다. 집행부실에 입시 서류를 두고 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그야말로 난감하기 그지 없었다. 물론 카나타는 딱히 대입에 큰 뜻은 없었으나, 그래도 3학년인 이상 아예 안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거기다가 다른 친구들과 공유할 자료기도 하고. 일단 자신이 가지러 가자니, 카페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오늘은 알바생도 없고, 혼자서 가게를 좀 지켜보기로 한 날이었으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찰나... 그는 브레이크 타임에 잠깐 휴식을 취하러 나왔다가 히라무를 우연히 밖에서 만날 수 있었다. 나나를 좋아하는 후배 남자아이. 물론 친하냐, 친하지 않냐라고 한다면 그냥 대충 아는 사이 정도에 가까운 남학생이었다. 일단 고민을 하던 카나타는 히라무에게 그 서류를 가지고 올 수 있겠냐고 그에게 부탁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이른 것이었다. 당연하지만, 서류를 갖다준다면 맨 입으로 보낼 생각은 없었다. 최소한의 성의, 혹은 감사표시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그는 일단 문이 열리는 것을 조용히 기다렸다. 가능하면 빨리 왔으면 좋겠지만 그것까지 자신이 강요할 순 없는 것 아니겠는가.
카나타는 자주 가는 카페의 주인집 아들으로, 히라무와는 같은 학교 선후배 사이 정도? 즉 입시 관련 서류 심부름을 시킬 만한 사이까진 아니라는 이야기지만 그 이야기도 오늘로써 과거형이다. 히라무는 마침 카페에 가서 책이라도 볼까 하여 가방을 메고 호시노 이누네코랜드에 가던 길이었다. 그러다가 만난 카나타상이 평소에는 하지 않는 곤란한 얼굴을 하고 있던데...그런 사정이 있었더라.
"그럼 카나타상, 갔다올 테니까 괜찮으시면 이거 카페에 둬 주실래요?"
라고 감히 카나타를 가방 셔틀로 이용하고 자신은 서류 심부름을 다녀옴으로써, 둘의 관계도 이런 셔틀 심부름은 할 수 있는 사이로 한 단계 진일보했다고 히라무는 혼자 뿌듯해하고 있었다. 호시노 이누네코랜드의 문이 열렸다.
"카나타상."
문이 열리고 들어온 히라무가 노란 서류 봉투를 들어 보였다. 문자대로면 이 서류가 맞겠지?
히라무가 맡긴 가방은 카나타가 당연히 카페에 자리를 하나 맡아두고 갖다뒀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앉지 않도록 손님들을 안내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번거로운 일을 시켰으니 그 정도 일은 충분히 해 줄 수 있었다. 이 정도 일도 하지 않는데 어떻게 부탁을 하겠는가. 세상사 이렇게 돕고 돕는 사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어쨌든 방울소리가 딸랑딸랑 울리자 카나타는 자연스럽게 문을 바라봤다. 카페의 강아지와 고양이들도 관심을 가지고는 모두 일제히 유리문 근처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히라무의 얼굴을 보자 강아지들과 고양이들은 일제히 어서 이 안으로 들어오라는 듯이 팔딱팔딱 뛰거나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반기고 있었다. 왈왈- 야옹야옹- 등등. 다양한 울음소리가 퍼지고 있었다.
"...고마워. 호죠."
그가 내민 서류 봉투의 내용물을 확인하면서 카나타는 안도의 미소를 조용히 지었다. 어떻게 해야하나 걱정했었는데, 그 덕분에 다행히 문제가 해결된 참이었다. 이어 그는 가만히 히라무를 바라봤다. 그리고 무덤덤한 목소리를 이어나갔다.
"...덕분에 살았어. 꼭 필요했던 거거든. ...나도 일단은 3학년이니까. ...음료. 오늘은 무료로 서비스해줄게. ...뭐 마실래?"
이어 그는 아. 소리를 내면서 히라무를 바라봤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이어 히라무에게 넌지시 이야기했다.
방학 하고 몇 번 왔나? 히라무의 방문 빈도수와 무관하게 이누네코랜드의 동물들은 언제나 히라무를 반겨준다. 얘네는 500년 후에 와도 반겨줄 거야. 그런 점이 좋아. 그러려면 이누네코랜드도 500년 영업해야 하겠지만 잘 된 셈이지. 히라무는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달려드는 동물들을 쓰다듬었다.
"안녕~"
개중에는 나나쨩도 있다. 히라무는 바로 앞에 있는 나나쨩의 턱을 간질였다.
"나나쨩 하이~더 푹신해졌네."
실례되는 발언을 칭찬처럼 내뱉던 히라무에게 카나타가 다가와 서류를 받아들었다. 맞는 서류인 것 같고, 임무도 무사 완수고. 카나타에게 도움이 된 것만으로도 오늘은 수확이 알찬 날인데 카나타가 직권으로 음료수를 쏘겠단다. 히라무는 엄지를 치켜들며 외쳤다.
"아!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날씨도 덥고, 시원한 카페인이 필요하다. 가방이 있는 자리도 히라무가 자주 앉는 자리다. 알고 챙겨 주었겠지. 카나타의 세심함에 작게 감탄하던 히라무는 뜻밖의 물음에 눈을 댕글 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히라무의 말에 카나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음료를 제작하는 선반으로 간 후에, 그는 커피를 주문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가장 만들기 쉬운 음료였기에 그렇게 오래 걸릴 일은 없었다. 애초에 커피는 머신이 뽑아주고, 자신은 얼음만 준비하면 되는 것이니까. 물론 전문 커피숍은 좀 더 이런저런 작업이 들어간다고는 하지만, 여긴 전문 커피숍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고양이와 강아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동물 카페. 음료는 그저 덤에 불과했다.
달그락 달그락. 그런 소리를 내면서 카나타는 히라무를 슬쩍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머신 쪽을 바라보며, 그는 커피가 완성되는 것을 조용히 기다렸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그는 히라무에게 이야기했다.
"...캐릭터 상품 내고 있거든. ...나나 인형이 만들어졌어. ...가질래? 이것도 서비스."
서류를 챙겨줬으니 이 정도는 할 수 있어. 무덤덤한 목소리를 내며 그는 히라무에게 조용히 제안했다. 물론 받아들이고 말고는 어디까지나 그의 자유였다. 그와는 별개로 나나는 자신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는지 히라무가 앉아있는 자리로 다가간 후에 냉큼 히라무의 무릎에 올라타려고 했다.
이 자리에서는 카페의 캣타워가 잘 보인다. 창문 바깥도 보이고, 에어컨 바람도 적당히 시원한 명당이다. 히라무는 가방을 열어 가지고 온 책들을 꺼냈다. 오늘 읽을 여신들에 대한 신화학 책, 공부라도 할까 가져온 교과서, 그리고 문학 몇 권을 테이블에 올려두자 금세 탑이 하나 만들어진다. 그렇게 많이 안 들고 왔는데 두께가 있어서 그런가 보다고 히라무는 약간 의아해졌다.
"고맙습니다. 별 것 아닌데..."
더욱 놀랄 일은 오늘의 서비스가 공짜 음료수로 끝이 아니라는 점. 히라무는 무릎으로 뛰어들어오는 나나를 지켜보다가 위에서 떨어지는 서비스 공지에 고꾸라질 뻔 했다. 나나쨩 MD? 인형으로? 히라무는 여자아이들만큼 인형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지만 친한 강아지의 인형을 공짜로 준다는데 거절할 성미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