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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발 아래에서는 마른 나뭇잎들만 버석거렸고. 하얀 달빛, 그리고 익숙한 오솔길. 나무와 수풀 사이사이에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울고 있는 풀벌레 울음 소리 뿐.
"...정말...?"
여전히 눈물 맺힌 채, 그렁그렁한 눈으로, 미소 짓는 소녀를 올려다보는 소년. 머리카락 살짝 털어 정리해주자 눈을 지긋이 감고 있다가.
"너무해."
툭, 하고 뱉어버린 조금은 모진 말. 해맑은 대답에 화가 났는지, 입술 꾹 다물고는 내민 손 보며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손을 잡았다. 언제나처럼 따듯하고 말랑한 작은 손. 그러나, 소년은 움직이지 않았다.
"됐어. 내버려둬."
"하지 말라고 했는데. 겁 잔뜩 줘놓고."
부루퉁해져서는. 그저, 그 자리에 쭈그려 앉은 채로, 소녀를 째려볼 뿐이었다. 하지 말라고 했는데. 얼마나 무서웠는데. 그런데, 정말 무엇이었을까. 자신이 본 것은. 환상이었나? 그렇다면 스즈네는 아무것도 몰라야 정상일텐데. 대체 무슨 일을 겪은걸까, 우리는. 그리고 스즈네의 태도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것도 무서운게 없다는 듯. 평소엔 조금만 놀래켜도 그렇게 싫어하면서, 전혀 무섭지도 않았다는 듯 이상한 이야기나 하고 있었고. 지금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소년은 소녀의 손 꼭 잡은 채로, 다시금 천천히 시선을 들어 소녀를 바라보다가.
일단 답레는 고치고 있는데, 굳이 해설을 덧붙이자면... 지금이라도 다른 애들을 만나러 가자고 제안할 게 아니라 안정을 시켜줬어야 해. 날개가 부러져있는 새가 아무리 날고 싶다고 홰를 쳐도 날개가 나을 시간이 필요한 법이니까. 글도 더 둥글게 쓸 겸 이 부분을 분명히 해와야겠네.
누군가가 걸어가는 길을 여행이라 부르는 것은 그 부르는 이의 자유다. 그러나 그 걸어가는 이에게 그것이 여행일지는 그 부르는 이가 정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이 소년이 걸어가는 길을 여행이라고 부르는 것은 온당하지 못한 일일 것이다. 여행길에 무언가 버리고 싶은 감정을 여행짐으로 챙길 수는 있으나, 이런 뿌리깊은 절망을 챙기는 일은 없지 않은가. 차근차근 말을 내어놓으며 손을 뻗어 감싸쥔 소년의 뺨은 서늘하게 메말라 있었다. 그리고 그게 스즈네의 손끝에서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다정하시네요."
문득 미카즈키의 마음 한켠이, 아까 그렇게도 욱신거렸던 그 자리가 다시 욱신거린다. 자신에게 선의를 표하며 접근해온 이들에게 생긴 고약한 트라우마다. 자신을 가장 크게 상처입힌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에게 참 다정하게도 다가왔으니까. 나가쿠모 미카즈키라는 소년의, 아주 고약하게 비뚤어져버린 부분 중 하나였다.
"뭘 잃어버렸는지도 잊어버린 바보한테는 과분할 정도로요."
소년은 그저 이 집 단골 손님의 손자일 뿐인데, 소녀는 그저 할아버지가 자주 가는 다원 댁의 따님일 뿐인데. 그렇다기엔 나누고 나누어진 이야기들이 사뭇 많고 사뭇 무겁다.
"하지만..."
미카즈키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까 웃음을 흘렸던 얼굴이 거짓말같게도, 소년의 얼굴에는 착잡함이 내려앉아 있었다.
"전 아직 준비가 안 됐어요."
......이것은 어쩔 수가 없다. 어딘가 돌이킬 수 없이 꺾여버린 부분 중에는 의지도 있다. 나가쿠모 미카즈키는, 이대로 둔다면 여름 내내 만나야 하는데, 만나고 싶은데, 하고 되풀이하기만 하다가 결국 그렇게 청춘에게 예의바르게 작별을 고할 예정이다.
하지만 우연을 믿어보자. 토키와라의 여름을 믿어보자. 결국 이 소년은 토키와라에는 돌아왔고, 그것만으로도 이미 한 발 뗀 셈이 아닌가. 이 동네는 좁은 동네다. 굳이 강요하지 않더라도, 인연이건 우연이건 어떤 연이 닿기만 한다면... 소년은 어느샌가 자신의 눈 앞에 놓인 다음 발짝 놓을 곳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니. 그러니, 그저 지금은...
미카즈키는, 찻잔을 꼭 쥐고는 다시 차근히 입가로 가져간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것뿐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