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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무엇을 위해서 여행을 떠난단 말인가? 여행은 돌아갈 곳이 있는 이의 외유를 일컫는 말이다. 나는 돌아갈 곳이 없다. 아마 그 말을 미카에게 직접 했더라면, 미카즈키는 그렇게 반론했을 것이다. 어머니가 기다리던 토키와라는, 친구들이 기다리던 토키와라는, 이제 없는걸. 다 내 잘못이지만... 이미 벌어져버린 사실인걸.
그리고 그때, 스즈네의 질문이 미카의 귓전에 걸린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벌써부터 작별과 회상을 그리고 있는 스즈네의 마음을 대신하여 미카의 마음 속에 들어앉은 묵직한 질문을 다시 한 번, 채로 거대한 징을 치듯이, 지잉- 하고 울리는 것이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길은... 진작에, 그 날, 아버지라는 작자의 손아귀에 억지로 잡혀서 차에 끌려올라가 오사카로 끌려가던 그 날에 진작에 잃어버렸고, 그러고 나서 아직까지 못 찾았는데. 미카의 찻잔 표면에 파문이 인다. 옆에서 스즈네가 양반다리마저도 풀고 흐무럭 늘어져버리는데, 미카즈키는 그대로 굳어버린 석상처럼 찻잔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앉아 있다.
"...모르겠어요."
미카즈키는 찻잔을 가만히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아직 자신의 속에 한줌 남아있는 인간답고자 싶어하는 마음을 파랑새에 빗대었으나, 자신은 새가 아니다. 날개나 다리가 부러진 새마저도 되지 못한다. 야구공. 그래. 잘못 던져진 야구공.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의 관성을 그냥 그대로 따라가는 것뿐이에요. 던져진 공처럼. 그게... 저한테 남은 전부에요."
미카즈키는 착잡한 얼굴로 차를 마셨다. 그리고는, 한 마디 덧붙였다.
"모든 좋은 것들은 언제나 나를 참 빨리도 떠나가 버리더라고요."
...이상하게, 평소보다 말이 많아진 것 같다고 미카즈키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스즈네의 자주 와서 얼마나 있든 좋다는 장담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언젠가 더 이상 자신이 여기에 올 수 없게 될 순간이 올 것 같다고, 예의바르게 웃는 당신이 축객령을 내리는 날이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
스즈네가 친구를 언급하자, 미카즈키는 고개를 푹 떨어뜨려 버렸다. 얼굴 양옆으로 쏟아진 곱슬곱슬한 까만 머리카락이 미카즈키의 새하얀 얼굴을 가린다. 보이는 것은, 죄인의 생기 잃은 창백한 하관뿐이다. 아아, 이것은, 이것만큼은, 말할 수 없다.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버릴 것만 같아서. 당신이 이다지도 다정하기에, 더더욱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버릴 것만 같아서.
>>253 저질렀다기보단 스즈네선배가 스즈네선배했는데 너무 잘 스즈네선배해버린 거라고나 할까,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달까? 별 대단한 건 아니고, 자기불신에 심하게 매몰된 상태라서 자신은 친구를 다시 만날 자격도 없다고- 친구를 다시 만나봤자 결코 예전과는 같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스레 시작 시점보다 못해도 한 달쯤은 더 일찍 왔을 텐데 그동안 왜 아무도 못 마주쳤겠어, 미카가 제발저려서 피해다녔지.
정말로 그러할까. 정말로 여행은 돌아갈 곳이 있는 이 만이 향유할 수 있는 여유인 것일까. 소년의 반론을 스즈네가 들었다면. 그렇다고 해주었을까. 나누지 않은 대화의 앞은 알 수 없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스즈네는 미소 지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손을 뻗을 것이다.
지금처럼.
미카즈키가 허공에 손짓하다 스러지듯 대답을 하고 난 후다. 양해 따윈 구하지 않은 무례하다고도 할 수 있는 조용한 손길이 조심히 미카즈키의 머리카락에 닿고자 했다. 푹 숙인 얼굴을 반 이상 가려버린 검고 곱슬한 머리카락을 마치 봄바람 스치듯 어루만지려 했다. 들추어 얼굴을 드러내는 대신 그 사이로 밀어넣어 희다 못해 창백히 보이는 얼굴에 대어주려 했다. 방금 전까지 찻잔을 감싸고 있어 따뜻함을 한껏 품은 손바닥이 한없이 부드럽다. 일련의 행동을 하며 스즈네가 말했다.
"얘. 미카즈키 군. 나는 너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어. 내 눈에 비친 너는 홀로 한겨울에 머무르고자 하는, 이제는 왜 그러고자 했는지도 잊은 듯한 사람이야. 겨울의 북풍은 걸어온 길을 얼리고 눈으로 가려버리니. 돌아본들 왔던 길은 보이지 않고 순간의 망설임에 나아가려 했던 길도 없어졌겠구나. 그 와중에 모든 좋은 것들이 떠나 그 속에 홀로 남겨져 버린 거구나. 너는."
차분한 목소리는 귀 뿐만 아니라 맞닿은 곳을 통해서도 들릴 것이다. 나직하지만 또렷한 발음과 흔들림 없는 어조가 작은 체구답지 않게 우직하다. 혹여나 돌아보면 언제 늘어졌냐는 양 얌전히 다리를 모으고 허리를 곧게 세운 스즈네가 미카즈키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카즈키 군.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단다. 한 사람의 시야가 자기 앞 밖에 볼 수 없는 것처럼. 그렇지만 그 시야로 누군가의 뒤를 봐줄 수도 있어."
엷은 미소를 유지하지만 흐트러짐 없이 말간 얼굴이 그렇게 말했다.
"조금 주제 넘게 말해보자면, 내게는 네가 그 한겨울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처럼도 보여. 너의 모름은 그 방법을 모르는 것 같아. 그런데 있지. 사실 나도 잘 몰라. 나는 네가 아니니까 네 안의 한겨울의 형상을 몰라서 어디로 가야한다고 앞서서 이끌어 줄 수 없어. 그러니까 나는 네 뒤를 봐줄게. 네 길을 찾는 건 결국 네가 해야만 하기 때문에."
무슨 무책임한 소릴 하는 걸까. 하지만 스즈네의 말은 이어졌다.
"네 길을 찾는 과정에서 실수해도 괜찮아. 잠깐 잘못된 길로 들어도 괜찮아. 힘들어 멈춰서도 괜찮아. 이제부터 시작될 네 시행착오에 네가 무너지지 않게 받쳐줄게. 실수하면 무엇을 실수했는지 가르쳐줄게. 잘못된 길로 가려 하면 때려서라도 막아줄게. 힘들어 멈추면 너를 위한 쉼터가 되어줄게. 네가 언젠가 겨울바람에서 벗어나 봄의 새싹을 보는 그 날까지. 네가 다시 좋은 것들로 가득해져 활짝 피어나게 될 때까지. 약속할게."
약속하겠다 말하지만 내밀어지는 새끼손가락은 없다. 앞서 뻗은 손을 거부하지 않았다면 그 손이 조심히 움직여 얼굴을 쓸어줄 것이고. 거부하여 닿지 않았다면 둥글게 받치듯 펼친 손이 미카즈키 쪽으로 내밀어질 것이다. 한낱 손가락 하나가 아니라 손으로 잡아주겠다고 말하듯. 방긋 웃는 얼굴이 말한다.
"그러니까. 나와 함께 친구들을 만나는 것부터 해보자. 내가 항상 네 뒤에 있을 테니. 네 소중한 친구들을 마주보는 것부터 시작하자. 미카즈키 군."
이런 건 어때. 같은 되물음은 없었다. 스즈네는 미카즈키가 고개를 끄덕이기만 당장 일어나 같이 나가줄 것처럼 보였다. 오늘 줄곧 그랬듯이 작은 손으로 거침없이 소년의 손을 잡고 말이다.
한참을 들이받아도 꿈쩍도 하지 않던 문짝이, 마지막 발길질 한 번에 묘한 소리를 냈다. 까마귀 소리가 멎었다. 감금 상황에 목이 타던 두 사람은 이변을 알아차렸다. 대미지가 누적되어서인가? 아니면, 문지방 위에 걸려 있던 수상한 나무 상자 하나가 떨어진 것 때문에 문이 열리게 된 것인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거두절미하고 문을 열고자 손을 뻗는 순간 거꾸로 바깥에서 누군가가 경쾌하게 문을 열어젖혔다. 상쾌한 밤 공기가 단번에 쏟아져 들어왔다. 바깥은 초승달로 어스레했지만 창고 안보다는 훨씬 밝고 역광이 들이쳐서, 문간에 서 있는 사람의 실루엣을 알아보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여어───, 청춘남녀.” 그건, 니이모토 카나였다. 그녀는 하얗게 질린 둘과는 달리 여유로운 태도로 손가락을 흔들며 인사했다. “안색이 안 좋아 보이네? 보아하니 스캔들 기사는 기대할 수 없겠구만.”
신문부장의 머리 위에 앉아 있던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갔다. 아까까지만 해도 까악까악 소리가 온 대기를 메우는 듯하더니만, 이제 창고 주위에는 까마귀 깃털의 기색도 없었다. 모든 건 꿈이었던 걸까? 그런데, 만약 이것들이 전부 꿈이라면 니이모토 양도 그 환몽의 일부일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미닫이문을 쿵쿵 두드리는 사람이 있길래 ‘특종이다!’ 싶어서 서둘러 와 봤는데 이거 유감인걸.” 니이모토 양이 성큼성큼 창고 안으로 들어와서, 바닥에 떨어진 상자를 주워 타에미에게 내밀었다. 아무래도 오래되어 보였는데 낙하의 충격으로 경첩이 약간 뒤틀려 있었다. “아무튼, 어두운 데서 수고 많았어.”
‘그 녀석’이라 함은 키타토라 양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을까······. 니이모토 카나는 별다른 설명조차 덧붙이지 않고 숲길을 따라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돌아가는 길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래된 나무 궤짝. 감물로 어둡게 물들인 표면이 군데군데 긁혀 자작나무의 고른 무늬가 드러나 보인다. 떨어지면서 손상되어 경첩이 비틀리는 바람에, 함부로 열었다간 망가질 것 같다······. 모양새는 아무런 꾸밈도 없어 단조로운 편이고, 앞면에 작은 열쇠가 들어갈 만한 자물쇠 구멍이 나 있다.
〔수상한 상자〕 - 「파손된 수상한 상자」가 집행부의 공유 아이템으로 추가되었습니다. - 3일에 1번(자정 기준), 최대 5번까지 상자 열기를 시도할 수 있습니다. 5번을 초과하면 상자가 파손되어 열 수 없게 됩니다. - 상자 열기를 시도하기 전, 그리고 시도 횟수가 2번, 4번이 될 때마다 다음 중 한 곳을 골라 「수상한 상자」에 관한 힌트를 탐문할 수 있습니다. 이미 방문한 곳은 다시 찾아갈 수 없습니다. 토키와라 정청, 하네이 신사, 게임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