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금을 모티브로 하고있지만 잘 모르셔도 상관없습니다. ※상황극판의 기본 규칙과 매너를 따릅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먼저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집시다. 모니터 너머의 이용자도 당신처럼 '즐겁고 싶기에' 상황극판을 찾았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오고 가는 이에게 인사를 하는 자세를 가집시다. ※상대를 지적할때에는 너무 날카롭게 이야기하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아' 다르고 '어' 다릅니다. ※15세 이용가이며 그 이상의 높은 수위나 드립은 일체 금지합니다. ※특별한 공지가 없다면 스토리는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7시 30분~8시쯤부터 진행합니다. 이벤트나 스토리가 없거나 미뤄지는 경우는 그 전에 공지를 드리겠습니다. ※이벤트 도중 반응레스가 필요한 경우 >>0 을 달고 레스를 달아주세요. ※계수를 깎을 수 있는 훈련레스는 1일 1회로, 개인이 정산해서 뱅크에 반영하도록 합니다. 훈련레스는 >>0을 달고 적어주세요! 소수점은 버립니다. ※7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 경우 동결, 14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경우 해당시트 하차됩니다. 설사 연플이나 우플 등이 있어도 예외는 아닙니다. ※기존 모카고 시리즈와는 다른 흐름으로 흘러갑니다. 따라서 기존 시리즈에서 이런 설정이 있고 이런 학교가 있었다고 해서 여기서도 똑같이 그 설정이 적용되거나 하진 않습니다. R1과도 다른 스토리로 흘러갑니다. ※개인 이벤트는 일상 5회를 했다는 가정하에 챕터2부터 개방됩니다. 개인 이벤트를 열고자 하는 이는 사전에 웹박수를 이용해서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벤트를 진행하는 이는 계수 10%, 참여하는 이에겐 5%를 제공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반문한 그는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다. 지금 상황에서 그에게 말을 거는 건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이지만, 저 학생이 하는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다른 나라의 말을 들은 것처럼 귀에 들어오지만 도통 머리로 이해할 수 없다. 비현실적인 감각이 물밀듯 쏟아져 들어왔다. 저 학생이 레이브라니! 말도 안 돼! 레이브가 학생이라는 것도, 그리고 자신의 미술관에 아주 오래 다녔던 사람이란 것도 믿을 수가 없었다. 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레이브는 쐐기를 박았다.
"많이…… 어려보이지요." "정말 레이브, 인가요? 정말?"
레이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잔뜩 벌게진 얼굴로 동경과 감탄, 경외의 시선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맙소사! 정말 레이브라고? 아무리 봐도 고등학생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아무리 많아도 초등학생일 때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 아닌가! 사람들은 레이브를 띄워주기 위해 각종 찬사를 올렸지만 레이브는 그 찬사를 부정해왔다. 하지만 단 하나는 명료하다. 레이브는 세기의 천재다. 미술사에 길이 남을 천재를 눈앞에서 보다니, 그야말로 꿈만 같다. 그는 애써 표정을 가다듬고 악수를 하자는 듯 손을 내밀었다.
"이,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대단히 기쁩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아, 말을 더듬어버렸다! 그렇지만 레이브는 잔잔하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잡고 두어 번 흔들었다. 배려심 깊은 사람이구나! 그는 재차 감동을 받았다. 손에서 식은땀이 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손을 쥘 적, 레이브의 손바닥에선 도톰한 흉터가 느껴졌다. 안드로이드를 다루다 다친 걸까? 지금과 같은 5세대 안드로이드면 모를까, 레이브가 자주 다루는 1세대부터 3세대 안드로이드들은 신소재가 아닌 철로 이루어진 것도 많다 보니 충분히 그럴 법도 했다.
"저야말로, 만나주셔서…… 감사합니다."
레이브는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그렇지만 오히려 그 편이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특유의 신비로운 외모 때문인 걸까? 그는 여러 질문을 쏟고 싶은 충동을 애써 참았다. 언제부터 안드로이드를 만졌죠? 몇 살인가요? 이름을 여쭤도 될까요? 예술적인 영감은 어디에서 얻죠? 공적이고 사적인 질문들이 머리에서 마구 떠오르고, 레이브는 잠시 그를 빤히 쳐다보다 천천히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그는 핸들을 꺾으며 1학구로 향하는 터널로 진입했다. 잘 빠진 모양새의 포르쉐는 터널을 매끄럽게 달렸다. 조수석에는 레이브가 앉아있었고, 두 사람은 4학구에서 출발해 3학구 갈림길 터널로 진입하는 지금까지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았다. 레이브에게서 들었던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레이브가 무려 독심술사였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엔 그 사실이 무슨 상관이냐는 듯 레이브를 마주했다가, 머잖아 그 말의 의미를 깨닫곤 얼굴이 이미 져버린 태양처럼 새빨개졌다. 자신이 방금 전까지 했던 모든 말을 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불편한 침묵은 그가 먼저 입을 벌리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저, 선생님." "네에." "…나이가, 정확히 어떻게 되시나요?"
그는 어른이기 때문이다. 레이브가 타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것에 부끄러워하며 기껏 성사된 만남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운전을 하다 보니, 그는 속을 정리하며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기도 했다. 레이브가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면 지금껏 많은 것을 마주했을 것이다. 누군가의 비평도 사실은 악의가 담겨있을 수 있단 것도 깨달았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웠다. 레이브는 창밖만 하염없이 쳐다보다, 잔잔하게 미소를 지었다.
"열아홉이요. 고등학교 3학년입니다." "그러면 데뷔를 대략 열네 살에 하신 거네요." "정확히는, 13살에 했습니다. 그때는 올리자마자 삭제해서 데뷔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실례가 아니라면 어디 학교에 다니는지 알 수 있을까요?" "3학구의 목화 고등학교입니다." "아, 에어버스터가 있는 그 학교군요." "……네." "그쪽 저지먼트가 되게 힘들다고 들었어요. 샹그릴라 때도 그렇고, 4학구가 리버티에게 테러를 받았을 때도 그렇고……. 최근에는 뭐, 공연 도중에도 사건이 있어서 해결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정말 감사할 따름이죠!" "그리 말씀해 주시니 기쁘군요……." "네?" "저도…… 저지먼트거든요."
그는 터널을 빠져나가기가 무섭게 차가 밀리기 시작하자 천천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리고 정체된 차 사이에서 시선을 힐끔 돌려 레이브를 쳐다봤다. 레이브는 여전히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고, 정체된 거리를 구경하는 것 같기도 했다. 저지먼트라고 했지? 이것도 꽤 의외다. 그리고 참 앳되단 생각이 들었다. 또래 치고는 성숙한 태도지만 아직 자신이 보기엔 한참 어렸다. 학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외관도, 생각도 성숙한 편이지만 자신과 같은 액면가 높은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솜털이 보송보송하다. 이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학생이 사실은 세간의 평가와 찬사를 모조리 휩쓴 신원 미상의 예술가라는 걸 사람들은 믿어줄까? 그리고, 그 예술가가 평범한 삶 속에서 저지먼트가 되어 비일상에 휘말리게 된 존재라면? 당사자인 레이브는 어떤 기분일까? 저지먼트와 레이브라는 삶을 양립하기 힘들진 않을까? 고민이 거듭되자 레이브는 그제야 시선을 떼고 그를 향해 눈을 돌렸다. 뱀을 닮은 듯한 동공은 마주칠 적 잠시 몸이 움찔 떨렸지만, 불쾌할 정도는 아니었다.
"많은 영감을 얻습니다. 영감은 찰나고, 고된 건 순간이니까요……. 작품은 영원할 테니 저는 찰나를 택할 뿐이지요……." "아, 들렸나요?" "제가 들어버린 것이지요,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뇨, 뭐가 죄송해요! 그것보다 음." "……."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저지먼트 일이 많이 힘들 텐데, 너무 무리하면 몸 상해요. 젊을 때 잘 챙겨야지요." "관장님도 젊으신 것 같은데……." "에이, 제가 10년이 젊어져야 선생님과 나이가 똑같아져요."
레이브는 그를 향해 눈을 굴렸다. 그는 발목을 덮는 길이의 치마와 재킷 차림의 단정한 사람이었다. 굽 높은 하이힐은 엑셀과 브레이크를 번갈아 밟으면서도 한 번도 삐끗하지 않았고, 커리큘럼을 받지 않았는지 히피펌의 검은 머리카락과 갈색 눈동자는 나이를 짐작하기 쉽지 않았다. 그야말로 자신만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액면가와 실거래가를 대충 셈하던 레이브는 누군가를 떠올렸는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젊으신 거죠……." "세상에나, 띄워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네." "성함은, 알 수 없는 거겠죠?"
레이브는 한참을 침묵하더니 창밖으로 다시금 시선을 옮겼다. 그는 마침 정체가 풀리기 시작한 도로 상황을 보며 다시금 액셀을 밟았고, 출발하기 전 침묵하는 레이브를 향해 아주 잠깐 시선을 던졌다. 찰나였지만 레이브의 표정은 체념한 것 같기도 하고, 낙담한 것 같기도 했다. 레이브는 느릿하게 입술을 벌렸다.
"제가 어떤 존재이든…… 사람들은 레이브만 기억할 겁니다.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그는 단조로운 어조의 문장이 예술적인 의미를 담은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차라리 자기 자신마저 예술 작품으로 보고 평가하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는 듯한 목소리는 잔잔했고, 매끈한 도로를 달리는 편안한 승차감 만큼이나 감정의 변화가 없었다. 그는 핸들을 잡은 손에 조금 힘을 주었다. 레이브는 스스로 새장 밖으로 나가길 소망했고, 동시에 사람에게 질려 물어뜯으라는 듯 몸을 던진 것 같았다. 본인의 삶을 예술에게 먹히는 것과, 예술이 본인의 삶이 되는 것은 다르다. 레이브는 전자와 후자가 공존하는 듯했고, 그 균형이 일정하지 않은 것 같았다. 어째서인지는 묻지 않기로 했다. 레이브가 침묵하다 입을 열었기 때문이다.
"다만, 어차피…… 모두가 알게 되겠죠. 제 다른 이름은 이시미입니다." "이시미?"
성이 이고 이름이 시미인가? 예쁜 이름인데. 그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라 생각하며 몇 번을 곱씹다가, 갑자기 끼어드는 차 때문에 브레이크를 밟았다. 동시에 욕설을 콱 집어삼켰다. 그리고 다시 엑셀을 밟으며, 차만큼이나 번뜩 치고 들어오는 생각에 핸들을 손아귀가 새하얘질 정도로 움켜쥐었다. 맙소사, 이시미! 들은 적 있다! 연구원으로 일하는 친구가 3학구 목화고 저지먼트에는 퍼스트클래스인 에어버스터 말고도 레벨 5 학생이 다수 있다며 마틸다와 힐베르트, 파나케이아, 애스트라, 레소난티아에 대해 열변을 토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 그 대열에 합류한 학생이 있는데, 그 학생의 이명이 이시미고 데 마레의 연구원에게 길들여지기 전까진 무시무시한 악명이 있었다며 불만을 줄줄이 늘어놓던 것을 그가 잊을 리가 없었다.
"오, 들어본 적 있어요. 정말 대단하신 분이었네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닙니다. 평판이 좋은 사람도 아니고요." "아무리 좋게 살아도 나쁘게 말하는 사람들은 있는걸요." "어여삐 봐주시는 것 같아 기쁘군요……." "그리고, 제가 깊은 사정까지는 알지 못하지만…… 많이 부담스러울 것 같기도 하네요." "부담스럽다?" "네. 사람들은 좋으나 싫으나 누군가를 어떤 시선으로 보니까요. 이시미라는 이름도 있는데 레이브라는 이름까지 알려지면 저라도 많이 버거웠을 것 같거든요."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이시미와 레이브가 동일 인물이라면." "열등생이든 엘리트든 할 것 없이 난리가 나겠죠. 각종 질투에, 동경에, 원치 않는 소문에, 연구원들은 여러 이론을 대며 천재와 레벨의 상관관계를 밝히겠다고 무례하게 굴 거고요. " "흠……." "오, 제가 좀 가볍게 생각했을까요?" "아니요, 모든 이론은 회색입니다." "인간은 애석하게 그러지 못하니, 저라도 색채가 뚜렷하고자 한답니다." "명문이군요." "선생님 또한 명문이지요."
어느새 1학구 검문소에 도착한 두 사람은 창문을 내리고 안티스킬의 지시에 따라 ID 카드 스캔에 협조했다. 두 사람 다 나란히 손목을 내밀 적, 잠시 멀뚱멀뚱 서로를 마주 보더니, 그가 먼저 소리 내어 웃었다. 세상에나, 서로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잘 맞고, 이런 것까지 같다니. 그는 스캔이 진행되는 동안 농담을 던졌다.
"예술 하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여기에서 사실이 되는군요?" "부디 정신적인 문제가 없길 바랍니다." "이런, 저는 1950년대에 통용되던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서요." "저 또한 그 문제로 자주 병가를 냅니다."
당사자들만 할 수 있는 재치 있는 농담에 그는 다시금 웃음을 터뜨렸다. 레이브도 결국 웃음을 흘렸고, 조금 무겁게 흐르는 것 같던 분위기는 금세 녹아버렸다. 두 사람은 인첨공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레스토랑에 들어서면서도 한결 편한 분위기로 대화할 수 있었다. 그는 레이브의 겉옷에 대해 깊은 관심을 표했고, 레이브는 그의 긴 치마에 깊은 관심을 표하는 등 서로 잘 맞는 면이 있었다.
"치장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표면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이죠. 그렇지 않나요, 선생님?" "지당한 말씀입니다…… 아무렴요. 직접 대화하지 않고도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지요."
그는 지난 시간 동안 수도 없이 잠을 설친 걱정이 무색할 만큼 레이브를 편안하게 느꼈다. 동시에 아직 어린 학생인 레이브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던 이유를 더 깊이 이해하며 곱씹을 수 있었고, 새장 밖으로 나오는 것을 대견하게 여길 수 있었다. 레이브는 대담하고, 큰 도전을 하는 것이다. 어른인 자신이 생각해도 거세고 버거운 세상의 시선을 알면서도 나선다니. 그 어린 나이에도 결심을 행했다는 것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곁에서 응원하고 돕고 싶단 결심을 세우다가도, 세이브가 앉을 수 있게 의자를 당겨주자 감사를 표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는 웨이터가 다가오자 엄선된 식재료와, AI나 기계가 아닌 오로지 사람의 손으로만 이루어지고, 사람이 서빙하는 코스요리를 주문했다. 와인은 주문하지 않았으나, 학생임을 일찍이 깨달은 셰프가 직접 와인 대신 과일로 이루어진 산뜻한 음료를 내어주기로 했다.
"입맛엔 좀 맞으시나요?" "몹시도요. 감사합니다."
과즙만 추출해 새롭게 모양을 낸 연어 알 모양의 자몽 알갱이가 얹힌 애피타이저를 시작으로, 그는 레이브와 긴 대화를 나눴다. 최근 인첨공에서 유행하는 AI 작업에 대한 예술적인 판단이나, 4학구에서 유행하는 문화적인 양식, 그리고 그가 가진 3학구에 대한 개인적인 궁금증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음식과 대화를 천천히 곱씹고 즐겼다. 레이브는 꽤 매력적인 사람이다. 더불어 3학구보다는 1학구에 어울리는 사람이란 생각도 들었다. 정확히는 차에서 내릴 적의 자세나, 제 곁에 서서 대화할 적의 느릿한 손짓, 부촌이라 불리는 1학구에서도 기죽지 않는 자세, 레스토랑에 들어설 적 익숙하다는 듯한 태도, 지금 보듯 까다로운 테이블 매너를 아는 모습이 그랬다. 그 나이의 객기라기엔 절도 있는 모습이 사적인 궁금증을 부추겼다. 귀하게 자란 걸까? 그의 속을 읽은 건지, 아니면 눈빛에서 뚝뚝 묻어 나온 건지, 레이브는 정적인 태도로 관자 위에 레몬 소스를 얹은 요리를 썬 나이프를 내려놓고, 대화가 가능한 순간에 맞춰 입을 열었다.
"도올 선생님께 따로 교육을 받았습니다." "도올 선생님이라면야……."
그가 기억하는 도올은 예의를 중시하는 사람이었고, 몹시도 정중한 사람이었다. 그런 도올에게 교육을 받았다면 이런 태도는 쉽게 납득할 수 있었지만, 새로운 의문이 샘솟았다. 도올과 대체 무슨 관계인 걸까? 가족이라기엔 닮지 않았고, 문하생이라기엔 주차장에서 봤던 게 신경 쓰였다. 연인? 지금이야 가장 유력한 후보 중 하나라지만 도올 선생과 연애라는 단어는 많은 거리감이 있었다. 그가 아는 도올은 연애를 한다고 하면 드디어 극야의 서 등장인물이 연애를 하는구나 받아들일 만큼 독종이기 때문이다. 레이브는 속을 간질간질 치고 올라오는 생각에도 답하지 않고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남은 관자 조각을 매너 있게 포크로 찍어 입에 가져다 댔다. 천천히 음식을 씹으며 애를 태우는 레이브 탓에 괜히 음료로 목을 축이던 그는 레이브가 음식을 삼키고 손을 모으자 자연스럽게 시선을 집중했다.
"다만 지금 당장 도올 선생님이 중요한 건 아니지요. 실은…… 만남을 요청한 이유가 따로 있기에……."
그는 잔을 내려놓았다. 레이브는 셰프가 마지막 메인 요리를 가지고 오기 전 마지막으로 자신이 뱉을 단어와 문장을 곱씹으며 점검하듯 입술을 꾹 다물더니,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마주했다. 세로로 길게 찢어진 동공이나 인천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색은 인간답지 않은 면이 많이 묻어 나왔지만, 이렇게 서로 마주하는 자리에서는 몹시도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장님께서는 저를…… 이곳까지 끌어올려 주신 은인이나 마찬가지지요……." "과찬입니다." "아니요, 관장님이 아니었더라면… 저는 아마 스쳐가는 존재가 되어 그 어떤 것도 해내지 못했을 겁니다. 제게 제안을 주셨던 그 순간은…… 인생의 전환점이니, 어찌… 감사하지 않겠는지요. 하여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안이라면……?" "저는 이번에 열리는 어텀 세레니티 인천은 알고 계시겠지요." "물론이죠, 인첨공 15주년을 함께 한 미술 경매니까요! 작가님께서 참여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요." "다행이군요. 저는 그 경매에서 제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고자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제 작품과 저를 만나게 되겠지요……." "잠깐, 그렇다면 그 말씀은……." "관장님."
레이브는 손가락에 깍지를 끼며 눈을 휘었다. 흰 속눈썹이 아래를 향해 긴 호선을 그리고, 입술은 상향세를 그렸지만 방금 전 지었던 잔잔한 미소와는 결이 달랐다. 호수 위에 걸린 달처럼 가느다란 레이브의 미소는 어딘가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면이 있었지만 공포와 부정적인 감각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레이브가 내놓을 말이 무엇인지 본능은 이미 알고 있었고, 그 발언이 사실이 된다면 이성은 격한 감정에 휩싸일 것만 같았다. 제발 아니라고 해주길! 그렇지만 레이브는 아주 잔인한 사람이었다. 그의 바람과 달리 레이브는 배려하지 않고 쉼 없이 말을 이었다. 어쩌면 사람이 아니라, 그를 시험하고자 인세에 내려온 거대한 이무기일지도 모르겠다는 착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