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금을 모티브로 하고있지만 잘 모르셔도 상관없습니다. ※상황극판의 기본 규칙과 매너를 따릅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먼저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집시다. 모니터 너머의 이용자도 당신처럼 '즐겁고 싶기에' 상황극판을 찾았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오고 가는 이에게 인사를 하는 자세를 가집시다. ※상대를 지적할때에는 너무 날카롭게 이야기하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아' 다르고 '어' 다릅니다. ※15세 이용가이며 그 이상의 높은 수위나 드립은 일체 금지합니다. ※특별한 공지가 없다면 스토리는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7시 30분~8시쯤부터 진행합니다. 이벤트나 스토리가 없거나 미뤄지는 경우는 그 전에 공지를 드리겠습니다. ※이벤트 도중 반응레스가 필요한 경우 >>0 을 달고 레스를 달아주세요. ※계수를 깎을 수 있는 훈련레스는 1일 1회로, 개인이 정산해서 뱅크에 반영하도록 합니다. 훈련레스는 >>0을 달고 적어주세요! 소수점은 버립니다. ※7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 경우 동결, 14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경우 해당시트 하차됩니다. 설사 연플이나 우플 등이 있어도 예외는 아닙니다. ※기존 모카고 시리즈와는 다른 흐름으로 흘러갑니다. 따라서 기존 시리즈에서 이런 설정이 있고 이런 학교가 있었다고 해서 여기서도 똑같이 그 설정이 적용되거나 하진 않습니다. R1과도 다른 스토리로 흘러갑니다. ※개인 이벤트는 일상 5회를 했다는 가정하에 챕터2부터 개방됩니다. 개인 이벤트를 열고자 하는 이는 사전에 웹박수를 이용해서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벤트를 진행하는 이는 계수 10%, 참여하는 이에겐 5%를 제공합니다.
날강도 갈매기가 떨군 새X깡 봉지가 물결에 떠밀려 멀어진다. 저거 안 건지면 바다에 쓰레기 던진 꼴이잖아;;;;; 그렇다고 이 날씨에 뛰어들 엄두는 안 나고. (바다 입수는 폰 찾느라 그랬던 걸로 이미 차고 넘친다!!!) 수박씨가 추위 면역인 사람처럼 이 날씨에도 바다 수영을 한다니, 수박씨가 건지길 바래 볼까?
수박씨가 들었다간 욕할 상상이 스쳐가는 사이 새봄이가 멋쩍게 웃어 보였다. 언제 있을지 모르는 사태에 대비한다. 새봄이는 건강하네. 난 이래나 저래나 내 손 밖의 일이라고 외면하고 있었는데. 했다가 이어지는 말에 덩달아 실소가 나와 버렸다.
" 에이~ 니 능력은 장애물이 무생물이기만 하면 손쉽게 녹차로 만들어 주잖아~ "
플레어 몰래 잠입할 때 새봄이가 입구를 열어 준 걸 떠올렸다.
" 팔팔 끓는 시럽으로 콧구멍을 막는 공격도 가능하고. "
콧구멍의 이물질(아마도 코딱지...겠지?;;;;;)에 능력을 사용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창의적이기도 하지!!
" 나야말로 잉여 인력인걸? 인제 뭐 알아낼 것도 없잖아. 유니온하고 접촉이라도 하면 모를까. " " 근데 유니온한테 사이코메트리 써 봤자지. 아니, 거꾸로 내가 읽히고 말걸? "
그나마 리라가 총을 만들어 준 덕에 손놓고 있는 것만은 면했지만, 리라가 스턴건만 쏘는 인형을 만들었대도 그 정도 쓸모는 있었겠지. 이제는 그렇게 전력 외인 게 오히려 부담을 줄여 주기도 한다만.
착잡한지 후련한지 헷갈리는데 새봄이가 도시락을 먹잔다.
" 웬 도시락? 언제 만들었어? 커리큘럼 대신이야?? "
매번 얻어만 먹네, 소리가 절로 나오고 머쓱하지만 반갑다. 날강도 갈매기한테 과자 빼앗겼더니 확 출출해진 것도 같고. 하여 손뼉을 치며 반색하는 서연이었다.
" 고마워! 잘 먹을게 >< "
그러곤 새봄이 펴 놓은 돗자리를 향해 종종걸음을 걸었다. 자리 잡고 앉으니 군침이 절로 넘어간다.
>>35 우와ㅏ아아 진짜 미쳣다 개마싯다... 아 ㅋㅋ 진짜 렐루 마싯다 광공즈 갠벤에서 못죽이니 이걸로라도 해소(광공즈: ???) 갠적으로 혜우우 인어는 약간 그... 나뭇잎 해룡?처럼 날개 하늘하늘하니 진짜 이뻤음 좋겠당... 글고 태오인어는 좀 몽총하다 생각하고 잇서 사람 말을 잘 안 하려 드는데다 밍맹몽한 인어 < ㄹㅇ 멍청
아 근데 진짜 도파민이... 크아앙 넘 조아!!!!🥺🥺🥺🥹🥺🥹🥺🥺🥺🥺🥺🥹🥹🥹🥹🥹
나 근데 인어랑은 상관 없는데 은우네 섬에서 몽...하니 밤바다 보는 현뱜미도 생각남 오빠 뭐 하고 있어? 하면 밍맹몽...하니 바다 보다가
"물고기나 갈매기 말... 알아들을 수 있는지... 테스트..." < 레벨5 이딴 곳에 써먹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올리고나서 이건 좀? 싶었는데 너무 좋아하잖아 ㅋㅋㅋㅋㅋㅋㅋ 아휴 맛나게 자셨습니까 뱜르신 (샤바샤바) 맞음 혜우인어는 인어계에서도 미모 탑급으로 뺨쳤을거임 머리카락도 비단같고 꼬리도 반투명한 겹지느러미 살랑살랑 하지만 그 누구보다 인어의 삶에 신물을 느껴 탈주해버린
쬐금 더 나간 적폐망상으로는 박제/세꼬시된 인어가 태오인 걸 알아보고 더 분노했지 않을까 인어답지않게 밍맹몽해서 어휴 이 맹추 하고 물속 살적 자주 같이 다녔는데 어느날 사라짐 안그래도 싫증난 인어의 삶+태오 없어짐으로 인간행 결정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나와서 겨우 태오의 실마리 잡았는데 이노므 광공즈가 그만
아니 휴가중 태오 왤케 귀여움 밍맹몽 태오도 마구마구 찍어버려야만 이렇게 형부들에게 비틱할 거리가 늘어가고 혜우 담요 덮고 나왔을 테니까 옆에 앉아서 덮어주고 "그래? 뭐가 좀 들려?" 하고 같이 밤바다멍 해야지
하지만 갠이벤으로 죽일 수 없자나. (진지) 머 삼진아웃 당하면 더 조언 없이 진행하긴 하겠다마는 그럴 확률 적게끔 루트 짜둔 것도 있어서... 마싯서요~ 여기 집은 늘 별점 1억개 주게 되더라 >;3!!!
하... 적폐 성공 행복🥰 미인이자 인어... 겹지느러미에서 행복해짐... 남색이지만 명암은 약간 물빛에다가 암튼 그 이쁜보석 그거...(이름을 모르는 바보의 말로)
대박 넘조하. 인어답지 않은 현뱜미... 그냥 이따금 유람선 나타나면 스르르 그 주변 다니다가 폴짝 뛰어서 인간 구경(인간 입장에서는 오 인어다)하고 왜 인간을 그렇게 봐? 하면 인간이라서... 하거나 가끔 파도소리 들리는 소라 껍질 주워서 인간이든 갈매기든 인어에게든 선물로 주는(일단 인어에겐 엄청 흔할 텐데도) 이상한 인어였겠지... 그런 애가 광공에게 잡혀선😒
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형제들 현실에서도 고통 받냐고~!! 담요 덮으면 따뜻해서 잠깐 졸 뻔하지만 혜우 질문에 꾹 침묵하다 "쟤, 내일 아침에도 새우깡을 던져주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고 있어……." 하고 이 밤에도 쫑쫑대며 모래사장 통통 새발로 튀어다니다 파다닥 날아가는 갈매기 하나 가리킬듯
근데 진짜 이상한 말이지만 현뱜미 동물 생각도 읽을 수 있다면 여름철 진짜 고되겠다... 맴맴맴맴씁씁씁씁 이 소리가 실은
혜우인어가 화려한 미인이었다면 태오인어는 단아한 미인이었을듯 머리부터 꼬리 끝까지 투명한 백색톤에 색감도 연한데 달빛 비치면 특유의 비늘무늬랑 지느러미 줄기 막 보석같이 반짝이는거 인어들 디폴트가 물속이니까 티가 거의 안 나는데 유람선 구경 폴짝 할때만 찰나의 순간 반짝- 하는거지
ㅋㅋ혜우인어도 하나쯤 받았을라나 소라껍질 받으면 얘 이런게 모가 좋다고 자꾸 주워오니 핀잔하지만 진주나 산호로 꾸며서 머리에 달거나 해초에 걸어서 허리에 메고다닐듯 태오인어 머리에도 하나 달아주고 너 그거 잃어버리면 혼나 해야지(?)
새우깡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혜우 재밌다고 좀 웃다가 그럼 쟤는? 하고 다른 갈매기 가리킨다 낮이었으면 물고기도 보자고 물가로 끌고가서 풍덩(?) ㅋㅋㅋㅋㅋ굼벵이나이트 미쳤냐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ㄹㅇ고통이긴하다ㅋㅋㅋㅋㅋㅋㅋ
>>53 살려놓고 빚 ㅋㅋㅋㅋㅋㅋ 사실 루트가 쪼끔 많아서 그 부분 추리고 있긴 한데 부상루트 당연히 존재합니다 그런데 광공즈만 부상이라고 하진 않았다(?)
색감 연하고 투명한 인어인데 약간 자개 느낌 있는 비늘이라 생각하구 있었지롱 >:3!! 특유의 무늬랑 줄기가 빛 받아서 찰나의 순간에만 반짝- 하고 옥빛이요 연한 분홍빛 나면 으흐흐 아마 혜우우가 박제에서도 인어 비늘을 보고 특정했을지도 모르고 인어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먹어치워 영생 얻은 사람은 그 인어의 비늘이 하나 돋았다는 설정 넣으면 그 역린의 빛 보았을지도 모르고
당연히 줬지! >:3 이거 봐, 이거 귀를 기울이면 소리가 좋아. 하고 그 흔한 바다소리 계속 듣는 현뱜미인어(?) 잃어버리면 혼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뱜인어 안 잃어버려야지... 하고 소중하게 간직하겠지... 그물에 잡혀 끌려가도 그랬음 좋겠다 수조에서 자랄 적에도 소중하게 구석에다 숨겨놓고 욕조에서도 늘 안고있지만 결국엔 so sad
부원들이 새우깡 잔뜩 던져주리라 믿어(?) 아 ㅋㅋㅋㅋㅋㅋㅋㅋ 다른 갈매기 가리키면 고개 기울이면서 소리 들어보다가 "점심에 본 바다를 떠올리고 있는 것 같은데……." 하고 눈 감고 집중하더니 "바다가 더 넓은 남쪽으로 내려갈 계획을 짜는 것 같아요. 제주도일까." 이러지 않을까~ >:3 으아악 현미역이다(?)
여름만 되면 오빠 기가 80% 소진된 채 사는 이유가 있다니까 맴맴맴맴씁씁씁씁찌르르르 크아악
해볼 수 있으려나? 대충 그 파란머리 녀석을 달콤하게 만들었을 때 거리랑 엇비슷한 것 같은데. 더 멀어지면 애매할 지도. 급한 대로 파도결에 넘실거리는 과자봉지를 향해 정신을 집중하고 연산했다.
.dice 1 2. = 2 성공: 과자봉지는 소금물이 되어 녹아내렸다. 실패: 그 사이 파도가 치는 바람에 과자봉지는 가위에 잘린 듯이 반만 소금물이 되었다.
"헤헤, 그렇게 들으니 앞으로도 무슨 일 있으면 놀고 있을 수 없겠는데요?" "그치만 앞으로의 일은 모르죠! 우리가 또 어디 잠입하면 서형한테 많이 의지해야 할 거예요. 낯선 곳에서 정보 캐내는 건 서형이 전문이잖아요~"
그런데 그 생각도 있다. 어차피 그 놈에게 놀아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안다면 리버티의 그 퍼클도 유니온을 적대할 거고, 그러지 않아도 반을 훌쩍 넘는 퍼클들이 유니온을 적대하는데다 레벨 4~5 되는 멤버들도 있고, 무엇보다도 레벨 5도 부럽지 않은 두뇌의 소유자 철형도 있는데 뭐, 우리가 지겠어?
"에이, 유니온 앞에서는 퍼클들 빼고 거의 모두가 평등할걸요? 몇주전의 그 양심인가 뭔가 하는 애 하던거 보면, 제가 아무리 달콤하게 만들어도 도로 옷 입고 너흴 죽일거야~ 다 날려버릴거야~ 이럴 텐데요."
아, 상상하니 꽤 재수없어졌다. 그래도 그 놈이나 본체랑 싸워야겠지? 그나마 본체로 추정되는 놈은 싸울 때는 조용한 것 같아서 다행이긴 한데. 의욕이 도로 빠지려던 차에, 서형이 도시락 소리에 반색한다.
"히히, 엊그제부터 셀프 커리큘럼 삼아서 식사 만들어놨는데 그거 좀 싸왔어요!" "에이, 뭘요! 저야말로 서형이 부실에 채워둔 음식으로 몇 끼니를 떼웠는데요~"
재잘거리며 돗자리로 다가가, 수저통에서 수저를 꺼내 서형에게 건네고, 도시락 통 세개를 차례로 열었다. 도시락통 두개 안에는 요 전에 만든 밥과, 새로 구운 반숙 계란과 감자, 돼지고기, 당근 등이 들어간 카레소스, 장조림, 호두강정 등이 들어있었고, 나머지 한 통에는 딸기 생크림 케이크와 바닐라 밀푀유가 두 조각씩, 그리고 남은 칸엔 사브레 쿠키가 가득 들어있었다.
"짜잔~! 이번 건 수돗물 냄비에 받아서 만들었어요." "아, 여기 커피도요!"
서형에게 시원한 아메리카노(역시나 수돗물로 만들었다)가 든 물병 하나를 건넸다. 서형은 얼죽아 파인 모양이고, 카레랑 밥이 뜨끈하니까 괜찮겠지.
떠내려가는 봉지를 새봄이가 응시하는가 싶더니, 봉지의 크기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과자 봉지를 마실 것으로 바꾸려던 모양이다. 저 거리에서도 가능했구나. 좀 더 가까웠다면 손 안 대고 치울 수 있었을 텐데. 아쉽네. 그래도
" 니 능력이면 어디서든 환경 오염은 걱정 없겠다~♬ "
음쓰나 일반 쓰레기는 물론, 핵폐기물까지 먹거리로 바꿀 수 있잖아. 깨끗한 지구 쌉가능이다~☆ (같이죽자 떡에 제법 익숙해졌어도 핵폐기물이 원재료인 음식을 먹을 엄두는 솔직히 안 난다만;;;; )
거기에 이어 새봄이는 의욕이 솟은 듯하면서도 격려도 빼먹지 않는다. 내가 뱉은 말이 자조적으로 느껴져 신경 쓰였을까. 잉여라 불만인 건 아니지만(오히려 반대다. 있으나 마나인 존재면 뭔 헛짓거릴 해도 저지먼트에 해가 되진 않을 테니 속 편하다.) 그 마음이 고마워 웃었다.
그래도 유니온 얘기엔 한숨이 나왔다. 그 정도가 아니라 초능력을 되받아쳐 새봄일 달콤하게 만들어 버릴지도, 아니, 그 정도로 끝내면 감지덕지해야 할 강자니.
" 그러게. 그렇게나 능력이 대단한데 왜 그러고 살까? "
모든 초능력을 퍼클 수준으로 쓸 수 있는 능력자. 인첨공이 시궁창이래도 제 능력 이거저거 조합하다 보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았을 텐데, 어쩌다 '인간이 죽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친환경이다' 수준(진짜로 웃자고 보는 짤 수준이지;;;)의 발상에서 못 벗어나게 됐는지, 원. 그래 놓고 여태 잠잠한 것도 영문 모를 일이다. 당장이라도 모조리 죽이지 않고는 못 배길 눈치였고, 제로 시리즈는 물론 리버티도 배후에서 조종 중인데 이케 조용하다고? 뭔가 일을 진척시키고 있는데 우리가 까맣게 모르고 있는 건가...?
아아, 생각하니 또 골치 아파졌다.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른다고 불안해해 봤자, 해결되는 건 1도 없이 스트레스만 받는 거 겪었으면서. 도시락이나 먹자. 하고 살펴보니 진수성찬이다. 반숙란에 카레에 장조임에 호두 강정에... 후식에 아아까지 완벽하다. 수돗물로 만들었단다. 와, 지저스 크라이스트!!! 아니지, 지저스 새봄이스튼가?
" 대박!!! 예수님도 포도주로까지밖에 못 바꿨는데, 니가 예수님을 이겼어!!! "
아아를 들이켜자 목구멍에 가득 찬 싸늘한 기운이 혈관 구석구석까지 퍼지는 기분이다. 그렇게 마른입을 축인 뒤 카레를 밥에 비벼 먹기 시작했다. 맛있다~☆
" 너네 연구소 사람들은 배고플 일 없겠다. 니 커리큘럼 결과물만 먹어도 빵빵할 거 아냐~ "
반숙란도, 장조림도, 호두강정도 다 맛있어. 입에 가득가득 채우고 먹으니 여기가 천국이다~♡ 행복하게 먹다 보니 언제 기분이 꿀꿀했나 싶다. 그래서일까? 가벼운 호기심이 일었다.
아침에도 보니까 이 날씨에 수영하던데. 안 치우면 뭐 언젠가 인천 앞바다에 닿으면 내가 먹을 걸로 만들던가 하면 되겠지. 그러던 중, 유니온 이야기에 서형이 한숨을 내쉬며 한탄하듯 묻는 말에 나도 모르게 곰곰히 생각하게 됐다. 그러게, 그놈은 대체 왜 그러고 살지?
"그러게 말이에요. 애초에 걔가 왜 인첨공을 부수고 초능력자들 다 죽이고 싶어하는 지도 이해가 안 가요. 초능력자들이라면 외국에도 쎄고 쎘을텐데 우리만 죽이고 살자 리버스한다는 것도. 거창한 척 하지만 죽고는 싶은데 괜히 혼자 죽기 억울해서 저러나 싶기까지 하다니까요."
애초에 우리가 살든 죽든 세상이 뭐 그렇게 달라진다고? 아, 뭐 정부 입장에선 곤란하기야 하겠지. 초능력자 양성도 큰 국력일 테니까. 근데 그건 세상이 좋아지는 거랑 거리가 있지 않나? 아휴, 모르겠다. 밥이나 먹자. 그런 와중에 서형이 내가 만든 도시락을 보고, 수돗물로 만들었다는 소리에 하는 감탄에 쑥스러워져서 웃음이 났다.
"고마워요! 제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역시 이명을 神 셰프로 했어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긴 해요~."
우쭐해하는 사이, 서형은 내가 만든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 표정을 보니 이번에도 성공한 것 같다. 하긴 도시락 싸기 전에도 혹시나 덜 된 곳은 없는지 휘저어보고 맛도 봤는데도 멀쩡했지! 다행이다. 나도 카레소스에 밥을 비벼 와구와구 먹기 시작했다. 허기졌던 배가 든든해지는 가운데, 서형의 말에 리버티의 테러 당시 임시 연구소에서의 생활이 생각났다.
"실제로 커리큘럼 대신으로 쓰레기를 갖다가 음식을 엄청 많이 만든 적이 있었는데요, 서형이 준 책 덕분에 우리 연구소 사람들 맛있는 거 배부르게 먹었어요~>< 대공황 레시피북에 나오는 미트로프 만들어서 배식했거든요!"
생각난 김에 한번 만들어볼까? 이미 먹을 게 많으니까 너무 크게는 말고 조그맣게... 옳지, 이게 딱 좋겠다. 모래사장에 있던 조약돌을 두개를 주워다가 미트로프도 만들어서 도시락통 뚜껑에 놓아두었다. 젓가락으로 찔러보니 푹 들어가는 걸 봐서는 이번에도 성공인 것 같다. 그러려니, 서형이 묻는다. 어쩌다 저지먼트에 들어왔느냐고. 내 몫의 커피를 한모금 넘기며 곰곰 생각하다 대답했다.
"저요? 저는... 솔직히 꿀빨면서 커리어 쌓으려고 들어왔었어요. 화단에 물 주고 쓰레기 줍기만 해도 활동이 인정되잖아요~. 그랬는데 처음으로 참여한 전투에서 생각보다 재밌게 놀아가지고 매주 사서 고생하게 됐지 뭐예요~." "서형은요? 어쩌다 저지먼트 들어왔어요?"
수박씨가 헤엄치는 데로 떠내려가길 바래야 하나? 모르겠다. 그렇든 아니든 내가 주워서 처리할 수 없는 이상 내 손을 떠난 문제니 어쩌겠어? 신경 끌 밖에.
그나저나 새봄이도 유니온이 노 이해이긴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구구절절 니맴내맴이다. 인첨공의 각종 어두운 면들이 문제다? 박형오의 기록에 따르면 현 대표이사 측이 문제가 많았던 모양인데, 그럼 그네들을 끌어내리면 되잖아. 상황을 정부에 알려 보자는 정하의 제안이나 인첨공을 개혁하자는 부부장의 제안은 충분히 타당한 얘기였는데 그걸 안 보여 안 들려 하니 노 이해. 초능력자가 이 세상에 있는 한 무슨 짓을 해도 문제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게 맞다손 쳐도 초능력자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게 아니고 인첨공이 사라져 봤자 우리나라에서 초능력자 양성을 포기하지 않는 한 비슷한 데가 또 생기는 건 시간문제일 테니 역시 노 이해다.
" 그러게. 아버지의 임종이 다가오니 삶을 비관해서라면, 살인이 최고 재밌는 싸패라서 그런다면, 하다 못해 다 죽이고 다 파괴하라는 명령만 입력된 봇이라면, 동기를 파악하긴 차라리 더 쉽겠다. 책임감을 느껴서 벌이는 짓이래도 노 이해이고, 다 깽판 치고픈 거면 착한 척 유감인 척하는 게 이상해;;;;;;;; "
굳이굳이 억지로 머리 굴리다 보면 닿는 추측. 본인이 앞으로 문제의 원인만 아니게 되면, 몇십만 명이 죽든 말든, 그 뒤에 무슨 문제가 터지든, 본인 책임이 아니라 상관없다는 발상인가? 근데 그럼 이후의 문제야 본인 책임이 아니라도 몇십만 명을 살해한 히틀러급 학살은 빼박 본인 책임인데?? 그게 아무렇지도 않다면 자기가 그렇게 나쁘게 여기는(박형오의 기록에 유니온이 현 대표이사는 왜 나쁜 짓만 하냐고 물은 적이 있다고 되어 있었으니 아마 맞겠지;;;;) 현 대표이사랑 뭐가 다르담? 사람을 전쟁용 병기로 보나 자기 찌꺼기로 보나...;;;;
아이고, 모르겠다. 타인의 맘은 내 맘 같지 않으니까. 내 머리, 내 감성, 내 계산으론 도저히 헤아릴 수 없고, 그쪽도 날 이해시킬 필요는 1도 없겠지. 그렇게 신경 끄고 살 수 있으면 피차 편하련만. 하필이면 그쪽의 궁극적인 목적이 나 포함 모두를 몰살시키는 거라 이러고 있다. 어휴, 수박!!!!
새삼 진저리를 치다 새봄이의 말에 픽 웃었다. 일리 있다. 예수님의 기적 중에 오병이어가 유명하지만, 음식 만들기만큼은 새봄이의 능력이 예수님보다 나으니까. 새봄이의 성이 '신'이기도 하고
" ㅋㅋ 신셰프랑 봄셰프 놓고 갈등 때린 거 아냐? "
둘 다 새봄이 이름자가 들어가긴 하네. 둘 중에 봄셰프를 고른 이유는 뭐려나? 어쨌거나 셰프는 셰프다. 맛있어 >< 볼이 빵빵해지게 먹고 있는데 꽤나 보람찬 얘기가 들려 왔다. 입 안에 잔뜩 넣은 걸 열심히 씹어 삼키고 아아로 입을 헹궜다.
" 아, 진짜? 연구소 사람들한테 싹 다 돌렸어? "
그렇게 대량으로 음식을 만들기도 했구나. 하긴 울 학교 급식도 만들었으니 연구소 사람들한테 돌릴 만큼 만드는 거 정도론 대량이라기도 뭣한가? 하는 사이 새봄이는 조약돌을 주워다 미트로프로 바꾸어 보였다. 접때 울 점포의 쓰레기를 온갖 초콜릿으로 바꾸는 걸 목격했었는데도 새삼 신기하다. 김도 모락모락 나서 후 불어 먹었다. 따끈따끈한 고기 완자 맛이다.
그러면서 들은 얘기는 소소하다면 소소하고, 신기하다면 신기했다. 동기는 소소했는데 전투에서 재밌게 놀았다는 건 신기했다. 내 첫 출동은...... 스킬아웃이 울 점포를 습격했던 악몽이니까;;;;;; 그때 수경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자신도 모르게 반문한 그는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다. 지금 상황에서 그에게 말을 거는 건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이지만, 저 학생이 하는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다른 나라의 말을 들은 것처럼 귀에 들어오지만 도통 머리로 이해할 수 없다. 비현실적인 감각이 물밀듯 쏟아져 들어왔다. 저 학생이 레이브라니! 말도 안 돼! 레이브가 학생이라는 것도, 그리고 자신의 미술관에 아주 오래 다녔던 사람이란 것도 믿을 수가 없었다. 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레이브는 쐐기를 박았다.
"많이…… 어려보이지요." "정말 레이브, 인가요? 정말?"
레이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잔뜩 벌게진 얼굴로 동경과 감탄, 경외의 시선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맙소사! 정말 레이브라고? 아무리 봐도 고등학생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아무리 많아도 초등학생일 때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 아닌가! 사람들은 레이브를 띄워주기 위해 각종 찬사를 올렸지만 레이브는 그 찬사를 부정해왔다. 하지만 단 하나는 명료하다. 레이브는 세기의 천재다. 미술사에 길이 남을 천재를 눈앞에서 보다니, 그야말로 꿈만 같다. 그는 애써 표정을 가다듬고 악수를 하자는 듯 손을 내밀었다.
"이,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대단히 기쁩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아, 말을 더듬어버렸다! 그렇지만 레이브는 잔잔하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잡고 두어 번 흔들었다. 배려심 깊은 사람이구나! 그는 재차 감동을 받았다. 손에서 식은땀이 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손을 쥘 적, 레이브의 손바닥에선 도톰한 흉터가 느껴졌다. 안드로이드를 다루다 다친 걸까? 지금과 같은 5세대 안드로이드면 모를까, 레이브가 자주 다루는 1세대부터 3세대 안드로이드들은 신소재가 아닌 철로 이루어진 것도 많다 보니 충분히 그럴 법도 했다.
"저야말로, 만나주셔서…… 감사합니다."
레이브는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그렇지만 오히려 그 편이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특유의 신비로운 외모 때문인 걸까? 그는 여러 질문을 쏟고 싶은 충동을 애써 참았다. 언제부터 안드로이드를 만졌죠? 몇 살인가요? 이름을 여쭤도 될까요? 예술적인 영감은 어디에서 얻죠? 공적이고 사적인 질문들이 머리에서 마구 떠오르고, 레이브는 잠시 그를 빤히 쳐다보다 천천히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그는 핸들을 꺾으며 1학구로 향하는 터널로 진입했다. 잘 빠진 모양새의 포르쉐는 터널을 매끄럽게 달렸다. 조수석에는 레이브가 앉아있었고, 두 사람은 4학구에서 출발해 3학구 갈림길 터널로 진입하는 지금까지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았다. 레이브에게서 들었던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레이브가 무려 독심술사였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엔 그 사실이 무슨 상관이냐는 듯 레이브를 마주했다가, 머잖아 그 말의 의미를 깨닫곤 얼굴이 이미 져버린 태양처럼 새빨개졌다. 자신이 방금 전까지 했던 모든 말을 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불편한 침묵은 그가 먼저 입을 벌리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저, 선생님." "네에." "…나이가, 정확히 어떻게 되시나요?"
그는 어른이기 때문이다. 레이브가 타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것에 부끄러워하며 기껏 성사된 만남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운전을 하다 보니, 그는 속을 정리하며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기도 했다. 레이브가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면 지금껏 많은 것을 마주했을 것이다. 누군가의 비평도 사실은 악의가 담겨있을 수 있단 것도 깨달았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웠다. 레이브는 창밖만 하염없이 쳐다보다, 잔잔하게 미소를 지었다.
"열아홉이요. 고등학교 3학년입니다." "그러면 데뷔를 대략 열네 살에 하신 거네요." "정확히는, 13살에 했습니다. 그때는 올리자마자 삭제해서 데뷔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실례가 아니라면 어디 학교에 다니는지 알 수 있을까요?" "3학구의 목화 고등학교입니다." "아, 에어버스터가 있는 그 학교군요." "……네." "그쪽 저지먼트가 되게 힘들다고 들었어요. 샹그릴라 때도 그렇고, 4학구가 리버티에게 테러를 받았을 때도 그렇고……. 최근에는 뭐, 공연 도중에도 사건이 있어서 해결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정말 감사할 따름이죠!" "그리 말씀해 주시니 기쁘군요……." "네?" "저도…… 저지먼트거든요."
그는 터널을 빠져나가기가 무섭게 차가 밀리기 시작하자 천천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리고 정체된 차 사이에서 시선을 힐끔 돌려 레이브를 쳐다봤다. 레이브는 여전히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고, 정체된 거리를 구경하는 것 같기도 했다. 저지먼트라고 했지? 이것도 꽤 의외다. 그리고 참 앳되단 생각이 들었다. 또래 치고는 성숙한 태도지만 아직 자신이 보기엔 한참 어렸다. 학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외관도, 생각도 성숙한 편이지만 자신과 같은 액면가 높은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솜털이 보송보송하다. 이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학생이 사실은 세간의 평가와 찬사를 모조리 휩쓴 신원 미상의 예술가라는 걸 사람들은 믿어줄까? 그리고, 그 예술가가 평범한 삶 속에서 저지먼트가 되어 비일상에 휘말리게 된 존재라면? 당사자인 레이브는 어떤 기분일까? 저지먼트와 레이브라는 삶을 양립하기 힘들진 않을까? 고민이 거듭되자 레이브는 그제야 시선을 떼고 그를 향해 눈을 돌렸다. 뱀을 닮은 듯한 동공은 마주칠 적 잠시 몸이 움찔 떨렸지만, 불쾌할 정도는 아니었다.
"많은 영감을 얻습니다. 영감은 찰나고, 고된 건 순간이니까요……. 작품은 영원할 테니 저는 찰나를 택할 뿐이지요……." "아, 들렸나요?" "제가 들어버린 것이지요,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뇨, 뭐가 죄송해요! 그것보다 음." "……."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저지먼트 일이 많이 힘들 텐데, 너무 무리하면 몸 상해요. 젊을 때 잘 챙겨야지요." "관장님도 젊으신 것 같은데……." "에이, 제가 10년이 젊어져야 선생님과 나이가 똑같아져요."
레이브는 그를 향해 눈을 굴렸다. 그는 발목을 덮는 길이의 치마와 재킷 차림의 단정한 사람이었다. 굽 높은 하이힐은 엑셀과 브레이크를 번갈아 밟으면서도 한 번도 삐끗하지 않았고, 커리큘럼을 받지 않았는지 히피펌의 검은 머리카락과 갈색 눈동자는 나이를 짐작하기 쉽지 않았다. 그야말로 자신만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액면가와 실거래가를 대충 셈하던 레이브는 누군가를 떠올렸는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젊으신 거죠……." "세상에나, 띄워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네." "성함은, 알 수 없는 거겠죠?"
레이브는 한참을 침묵하더니 창밖으로 다시금 시선을 옮겼다. 그는 마침 정체가 풀리기 시작한 도로 상황을 보며 다시금 액셀을 밟았고, 출발하기 전 침묵하는 레이브를 향해 아주 잠깐 시선을 던졌다. 찰나였지만 레이브의 표정은 체념한 것 같기도 하고, 낙담한 것 같기도 했다. 레이브는 느릿하게 입술을 벌렸다.
"제가 어떤 존재이든…… 사람들은 레이브만 기억할 겁니다.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그는 단조로운 어조의 문장이 예술적인 의미를 담은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차라리 자기 자신마저 예술 작품으로 보고 평가하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는 듯한 목소리는 잔잔했고, 매끈한 도로를 달리는 편안한 승차감 만큼이나 감정의 변화가 없었다. 그는 핸들을 잡은 손에 조금 힘을 주었다. 레이브는 스스로 새장 밖으로 나가길 소망했고, 동시에 사람에게 질려 물어뜯으라는 듯 몸을 던진 것 같았다. 본인의 삶을 예술에게 먹히는 것과, 예술이 본인의 삶이 되는 것은 다르다. 레이브는 전자와 후자가 공존하는 듯했고, 그 균형이 일정하지 않은 것 같았다. 어째서인지는 묻지 않기로 했다. 레이브가 침묵하다 입을 열었기 때문이다.
"다만, 어차피…… 모두가 알게 되겠죠. 제 다른 이름은 이시미입니다." "이시미?"
성이 이고 이름이 시미인가? 예쁜 이름인데. 그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라 생각하며 몇 번을 곱씹다가, 갑자기 끼어드는 차 때문에 브레이크를 밟았다. 동시에 욕설을 콱 집어삼켰다. 그리고 다시 엑셀을 밟으며, 차만큼이나 번뜩 치고 들어오는 생각에 핸들을 손아귀가 새하얘질 정도로 움켜쥐었다. 맙소사, 이시미! 들은 적 있다! 연구원으로 일하는 친구가 3학구 목화고 저지먼트에는 퍼스트클래스인 에어버스터 말고도 레벨 5 학생이 다수 있다며 마틸다와 힐베르트, 파나케이아, 애스트라, 레소난티아에 대해 열변을 토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 그 대열에 합류한 학생이 있는데, 그 학생의 이명이 이시미고 데 마레의 연구원에게 길들여지기 전까진 무시무시한 악명이 있었다며 불만을 줄줄이 늘어놓던 것을 그가 잊을 리가 없었다.
"오, 들어본 적 있어요. 정말 대단하신 분이었네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닙니다. 평판이 좋은 사람도 아니고요." "아무리 좋게 살아도 나쁘게 말하는 사람들은 있는걸요." "어여삐 봐주시는 것 같아 기쁘군요……." "그리고, 제가 깊은 사정까지는 알지 못하지만…… 많이 부담스러울 것 같기도 하네요." "부담스럽다?" "네. 사람들은 좋으나 싫으나 누군가를 어떤 시선으로 보니까요. 이시미라는 이름도 있는데 레이브라는 이름까지 알려지면 저라도 많이 버거웠을 것 같거든요."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이시미와 레이브가 동일 인물이라면." "열등생이든 엘리트든 할 것 없이 난리가 나겠죠. 각종 질투에, 동경에, 원치 않는 소문에, 연구원들은 여러 이론을 대며 천재와 레벨의 상관관계를 밝히겠다고 무례하게 굴 거고요. " "흠……." "오, 제가 좀 가볍게 생각했을까요?" "아니요, 모든 이론은 회색입니다." "인간은 애석하게 그러지 못하니, 저라도 색채가 뚜렷하고자 한답니다." "명문이군요." "선생님 또한 명문이지요."
어느새 1학구 검문소에 도착한 두 사람은 창문을 내리고 안티스킬의 지시에 따라 ID 카드 스캔에 협조했다. 두 사람 다 나란히 손목을 내밀 적, 잠시 멀뚱멀뚱 서로를 마주 보더니, 그가 먼저 소리 내어 웃었다. 세상에나, 서로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잘 맞고, 이런 것까지 같다니. 그는 스캔이 진행되는 동안 농담을 던졌다.
"예술 하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여기에서 사실이 되는군요?" "부디 정신적인 문제가 없길 바랍니다." "이런, 저는 1950년대에 통용되던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서요." "저 또한 그 문제로 자주 병가를 냅니다."
당사자들만 할 수 있는 재치 있는 농담에 그는 다시금 웃음을 터뜨렸다. 레이브도 결국 웃음을 흘렸고, 조금 무겁게 흐르는 것 같던 분위기는 금세 녹아버렸다. 두 사람은 인첨공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레스토랑에 들어서면서도 한결 편한 분위기로 대화할 수 있었다. 그는 레이브의 겉옷에 대해 깊은 관심을 표했고, 레이브는 그의 긴 치마에 깊은 관심을 표하는 등 서로 잘 맞는 면이 있었다.
"치장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표면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이죠. 그렇지 않나요, 선생님?" "지당한 말씀입니다…… 아무렴요. 직접 대화하지 않고도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지요."
그는 지난 시간 동안 수도 없이 잠을 설친 걱정이 무색할 만큼 레이브를 편안하게 느꼈다. 동시에 아직 어린 학생인 레이브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던 이유를 더 깊이 이해하며 곱씹을 수 있었고, 새장 밖으로 나오는 것을 대견하게 여길 수 있었다. 레이브는 대담하고, 큰 도전을 하는 것이다. 어른인 자신이 생각해도 거세고 버거운 세상의 시선을 알면서도 나선다니. 그 어린 나이에도 결심을 행했다는 것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곁에서 응원하고 돕고 싶단 결심을 세우다가도, 세이브가 앉을 수 있게 의자를 당겨주자 감사를 표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는 웨이터가 다가오자 엄선된 식재료와, AI나 기계가 아닌 오로지 사람의 손으로만 이루어지고, 사람이 서빙하는 코스요리를 주문했다. 와인은 주문하지 않았으나, 학생임을 일찍이 깨달은 셰프가 직접 와인 대신 과일로 이루어진 산뜻한 음료를 내어주기로 했다.
"입맛엔 좀 맞으시나요?" "몹시도요. 감사합니다."
과즙만 추출해 새롭게 모양을 낸 연어 알 모양의 자몽 알갱이가 얹힌 애피타이저를 시작으로, 그는 레이브와 긴 대화를 나눴다. 최근 인첨공에서 유행하는 AI 작업에 대한 예술적인 판단이나, 4학구에서 유행하는 문화적인 양식, 그리고 그가 가진 3학구에 대한 개인적인 궁금증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음식과 대화를 천천히 곱씹고 즐겼다. 레이브는 꽤 매력적인 사람이다. 더불어 3학구보다는 1학구에 어울리는 사람이란 생각도 들었다. 정확히는 차에서 내릴 적의 자세나, 제 곁에 서서 대화할 적의 느릿한 손짓, 부촌이라 불리는 1학구에서도 기죽지 않는 자세, 레스토랑에 들어설 적 익숙하다는 듯한 태도, 지금 보듯 까다로운 테이블 매너를 아는 모습이 그랬다. 그 나이의 객기라기엔 절도 있는 모습이 사적인 궁금증을 부추겼다. 귀하게 자란 걸까? 그의 속을 읽은 건지, 아니면 눈빛에서 뚝뚝 묻어 나온 건지, 레이브는 정적인 태도로 관자 위에 레몬 소스를 얹은 요리를 썬 나이프를 내려놓고, 대화가 가능한 순간에 맞춰 입을 열었다.
"도올 선생님께 따로 교육을 받았습니다." "도올 선생님이라면야……."
그가 기억하는 도올은 예의를 중시하는 사람이었고, 몹시도 정중한 사람이었다. 그런 도올에게 교육을 받았다면 이런 태도는 쉽게 납득할 수 있었지만, 새로운 의문이 샘솟았다. 도올과 대체 무슨 관계인 걸까? 가족이라기엔 닮지 않았고, 문하생이라기엔 주차장에서 봤던 게 신경 쓰였다. 연인? 지금이야 가장 유력한 후보 중 하나라지만 도올 선생과 연애라는 단어는 많은 거리감이 있었다. 그가 아는 도올은 연애를 한다고 하면 드디어 극야의 서 등장인물이 연애를 하는구나 받아들일 만큼 독종이기 때문이다. 레이브는 속을 간질간질 치고 올라오는 생각에도 답하지 않고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남은 관자 조각을 매너 있게 포크로 찍어 입에 가져다 댔다. 천천히 음식을 씹으며 애를 태우는 레이브 탓에 괜히 음료로 목을 축이던 그는 레이브가 음식을 삼키고 손을 모으자 자연스럽게 시선을 집중했다.
"다만 지금 당장 도올 선생님이 중요한 건 아니지요. 실은…… 만남을 요청한 이유가 따로 있기에……."
그는 잔을 내려놓았다. 레이브는 셰프가 마지막 메인 요리를 가지고 오기 전 마지막으로 자신이 뱉을 단어와 문장을 곱씹으며 점검하듯 입술을 꾹 다물더니,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마주했다. 세로로 길게 찢어진 동공이나 인천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색은 인간답지 않은 면이 많이 묻어 나왔지만, 이렇게 서로 마주하는 자리에서는 몹시도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장님께서는 저를…… 이곳까지 끌어올려 주신 은인이나 마찬가지지요……." "과찬입니다." "아니요, 관장님이 아니었더라면… 저는 아마 스쳐가는 존재가 되어 그 어떤 것도 해내지 못했을 겁니다. 제게 제안을 주셨던 그 순간은…… 인생의 전환점이니, 어찌… 감사하지 않겠는지요. 하여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안이라면……?" "저는 이번에 열리는 어텀 세레니티 인천은 알고 계시겠지요." "물론이죠, 인첨공 15주년을 함께 한 미술 경매니까요! 작가님께서 참여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요." "다행이군요. 저는 그 경매에서 제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고자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제 작품과 저를 만나게 되겠지요……." "잠깐, 그렇다면 그 말씀은……." "관장님."
레이브는 손가락에 깍지를 끼며 눈을 휘었다. 흰 속눈썹이 아래를 향해 긴 호선을 그리고, 입술은 상향세를 그렸지만 방금 전 지었던 잔잔한 미소와는 결이 달랐다. 호수 위에 걸린 달처럼 가느다란 레이브의 미소는 어딘가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면이 있었지만 공포와 부정적인 감각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레이브가 내놓을 말이 무엇인지 본능은 이미 알고 있었고, 그 발언이 사실이 된다면 이성은 격한 감정에 휩싸일 것만 같았다. 제발 아니라고 해주길! 그렇지만 레이브는 아주 잔인한 사람이었다. 그의 바람과 달리 레이브는 배려하지 않고 쉼 없이 말을 이었다. 어쩌면 사람이 아니라, 그를 시험하고자 인세에 내려온 거대한 이무기일지도 모르겠다는 착각이 들었다.
"맞아요, 게다가 그렇게 유감이고 미안하고 그러더라도 마음을 바꿀 생각이 없었으면 왜 우리한테 나타나서 의미없이 고장난 녹음기마냥 같은 말만 반복한 건지도 도통 이해가 안 가구요. 대체 뭘 바란 걸까요? 우리가 알아서 그 자식 뜻을 찰떡같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오냐 죽어주마 하기라도 바랐나?" "그리고 그놈 애비도 이해가 안 가요. 아들 친구는 초능력자여야만 한다고 인첨공을 세우는 데 앞장섰다니. 물론 그놈 능력이 괴물같은 건 사실이지만, 은우선배 인기를 생각해보면 백안시하는 사람만큼이나 팬도 많이 생길 것 같은데 말이에요. 게다가 걔 말하는 거 봐서는 솔직히 초능력이 강한 게 문제가 아닌 것 같던데."
영문을 알 수 없는 건 여전하지만, 그래도 서형이랑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니 좀 속이라도 풀리는 기분이다. 생각해보면 그 고장난 녹음기 녀석, 유니온에게 짜증을 느꼈던 건, 똑같은 대화가 계속 되풀이돼서 답답했던 것도 있었던 것 같다. 역시 박형오자식처럼 그녀석도 AI였던 거 아냐? 내가 생각해도 묘한 가설을 머릿속으로 펴려던 것도 잠시, 서형의 농담에 나도 키득키득 웃었다.
"좀 갈등하긴 했어요! 그래도 봄 셰프가 좀 더 뜻을 풀이했을 때 좀더 제 정체성에 부합하는 것 같아서 봄 셰프로 했지만요. 착한 사람들한텐 봄같지만 진상들에겐 폭탄! 이라는 의미에서요, 히히." "그러고보니 서형 이명은 현이죠? 설마... 철형 이름의 현이에요?"
짓궂게 묻던 차에, 서형이 놀란 듯 반문하자 괜히 뿌듯해져서 히쭉 웃으며 재잘거렸다.
"네! 원래는 매 끼니마다 야채죽만 먹었는데, 매 끼니 그것만 먹다간 다같이 우울해질 것 같아서 특식으로 넣었어요. 한동안은 야채죽에다 미트로프까지 더해서 만드느라고 개고생해서 후회할 뻔도 했는데, 다들 맛있게 먹어주니 보람차더라구요~."
서형이 먼저 미트로프를 들자, 나도 포크로 내 몫을 찍어 한입 배어물었다. 너무 날것이지도 않고, 퍼석하지도 않고,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잘 익었다. 다행이네. 내가 처음으로 개시한 특식도 이런 맛이었지~. 추억에 잠겨 미트로프를 오물거리려니, 서형이 내 말에 빵터진 듯 웃다가, 첫 전투에서 놀았다는 말에 놀란 얼굴로 하는 말에, 멋쩍게 웃어보이며 대답했다.
"헤헤, 실은 처음에는 전투라고 하니까 긴장했었는데요. 철형이 꽤 긴장을 풀어줬어요. 크리에이터 아저씨랑 싸우러 가는 날이었는데, 농담따먹기를 엄청나게 했거든요. 크리에이터 아저씨 밥에 말린 미역을 섞는다 어쩐다 하면서요."
지금 생각하면 묘한 농담이다. 그 아저씨가 우리 편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으니까. 그리고 그 아저씨가 우리편이 되고 나서는 나 혼자 또 묘한 상상을 했었지. 은우선배가 유부남 취향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야. 그러고보니 그 아이돌, 레드윙은 은우선배를 좋아하는 것 같던데, 은우선배는 어떨까? 실없는 생각이 스쳐지나갈 찰나, 서형이 이야기하기 시작하자, 귀를 기울였다. 서형도 나랑 비슷했구나.
"그거 좋은 생각인데요? 부장 선배 완전 유명인사잖아요! 앞으로 더 유명해지실거고, 그럼 서형네 편의점도 대박나겠는걸요!" "게다가 서형도 대능력자잖아요~ 대능력자가 하는 편의점이니 이미 유명해지고도 남을 지도요!"
그러다, 서형이 뒤 이어, 들어오길 잘했다고 생각한다는 말에 마음이 놓여 씩 웃었다.
"나도요. 주말마다 빡세긴 하지만, 서형도 만나고 철형도 만났으니까요!"
//에이 내용이 길어지다보면 그만큼 걸릴 수도 있지! 나도 손 디따 느린걸>< 그나저나 그랬구나! 이명 이야기 나오는 거 대환영이야>< 새봄이는 얼레리꼴레리 해버리긴 했지만 히히
가을이긴 가을인 게, 숲에 단풍이 많이 들었다. 노란물도 꽤 들었는데도 은행 특유의 구리구리한 냄새는 별로 안 나는 게, 은행나무는 별로 없나 보다. 노란 잎들을 보니 동글동글한 잎에서 은은하고 달큰한 향이 났다. 뭔 나문진 몰라도 은행보다 훨씬 좋은데? 떨어진 잎을 주워도 보고 밟아도 보는데 어디선가 앙칼진 거 같으면서도 불쌍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 방향이 맞나 긴가민가하며 소리를 따라가 보니 내 손보다도 쬐그만 고양이였다. 다가가도 달아나거나 하지 못하고 삑삑 우는 게 완전 아깽이다. 왜 혼자 있대? 무심코 사이코메트리로 확인해 보려다 멈칫했다. 사이코메트리를 쓰려면 손을 대야 하는데, 아깽이한테 손대면 사람 냄새 묻어서 어미가 안 데려간댔어. 곰곰 궁리하다 아깽이 옆의 돌출된 나무뿌리에다 사이코메트리를 써 봤더니... 어미랑 형제들 따라가다 바람결에 굴러다니는 나뭇잎에 한눈을 팔아 버린 모양이다. 나뭇잎 붙잡고도 한참 데굴데굴했네. 그러고 나니 어미도 형제들도 안 보여서 어쩔 줄 모르나 본데... 어쩌지? 냅두면 어미가 찾아오려나? 어민 어딨지? 아깽이가 여기까지 이동해 온 경로랑 어미 고양이의 은신처를 사이코메트리로 마저 확인했다. 그러고 어미 고양이를 유인할 방도를 마련해 보고자 길냥이가 먹을 만한 걸 검색해 봤더니, 고양이 전용 사료가 없으면 차라리 물이 낫겠더라. 하여 쓰레기장에 쌓인 패트병의 뚜껑을 잔뜩 챙겨다가 씻고, 아깽이가 있는 위치부터 어미 고양이의 은신처 근처까지 하나하나 놓으면서 생수를 부어 두었다. 마지막 뚜껑에 생수를 부었을 때 아깽이가 제자리에 있는 거 확인했으니...어, 어미 고양이가 잘 찾았으면 좋겠다??
그야 당연히 이해할 필요가 없죠. 애초에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이해할 수도 없는 문제이고 특히 이 경우는 더더욱 말이에요. 저지먼트 입장에선 당연히 유니온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유니온은 그렇게 행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 그걸 이해하려고 들면 사실 끝이 없다고 보는 입장인지라!
>>224 캡 유니온이 태풍이나 지진이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였다면 서연이도 저런 의문을 안 가졌겠죠? 사람이 수십만 명을 죽이겠다니까, 그런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동기가 있으리라는 생각이 앞선 거죠 뭐 ㅎㅎㅎ 유니온한테 자기 이해 따위 필요없다는 거 정도는 파악했고, 자기가 유니온의 동기를 파악한대 봤자 넵 하고 죽어 줄 수도 없지만, 본인이 궁금하니 저러는 거죠 뭐 ㅎㅎㅎㅎ
>>226 혜우주 이해를 하나 안 하나 서연이의 대처는 비슷할 거 같긴 해요. 이해한다고 유니온 편을 들겠어요 나부터 죽어 줄게 하겠어요? 유니온의 목적이 하필이면 다 죽자여서 네 영역 간섭 안 하겠다 하질 못하고 대체 왜 그러는데??? 이러고 있는 거죠, 뭐 ㅎㅎㅎㅎ
훈련 올렸고 뱅크도 수정했으니 이만 자러 가 보겠습니다. 계신 분들은 즐거운 시간 보내시고 들어가시는 분들은 편히 쉬세요. 주중 얼마 안 남았어요!!! (꼬르르르)
"......" "...아, 이제야 받네. 여보세요?" "그럼 내가 아니라 누구겠어요. 정신 차리세요. 통화하게." "선생님한테 전화하는데 쓸 시간이 지금 밖에 없는 걸 어쩌라고요. 오늘도 오빠가 남자방에서 자서 겨우 낸 건데." "빨리 끊고 싶으면 정신 바짝 차리고 통화에 집중하세요." "아 거 시끄럽긴. 그렇게 떠들어도 돼요? 지금 혼자 아니잖아." "풉, 큭큭. 찔러 본 건데 진짜인가 보네. 야- 아예 저 가기 전에 사고까지 치지 그러세요. 저 가면 당분간 바빠서 못 할 텐데." "아, 아- 알았으니까요. 시끄럽다니까. 그럼 일단- 공사 진척은 어때요?" "흐음, 그래요. 꼼꼼하게 해서 나쁠 건 없죠. 워낙 이것저것 많이 들어가니까." "그래도 역시 인첨공은 인첨공이네요. 벌써 거기까지 올렸다니." "다음은, 음, 혹시 진 씨가 작업하는 거 봤어요? 진행도 대충 들은 건?" "오- 거기도 벌써 그만큼. 이따 일어나면 모델링 보내라고 전해주세요. 자세한 디테일은 중간에 전달하기로 했었으니까." "그리고 뭐가 있더라. 씁- 음... 아!" "그거 말인데요. 오빠한테 일단 부탁할 거니까 아직 아무데도 맡기지 마세요." "아마도 해줄 거에요. 싫다 하면 그 때 가서 업자 찾으면 되니까." "글쎄요. 여기서 말하는 건 좀 그런데." "놀러와서 일 얘기 하는거 아니랬어요. 지들 못 논다고 나까지 못 놀게 하려고 하네. 얌생이." "네- 네- 어, 해 뜬다." "와- 새해맞이도 아닌데 해돋이라. 부럽죠?" "아하하! 알겠으니까 더 자든지 아침부터 열일하시든지 하세요. 더 할 말 생각나면 톡으로 남겨둘테니." "좋은- 아니다, 뜨거운 아침-"
"……이 시간에 웬 전화냐니요." "주무시지 않는 건 알고 있었으니…." "어찌 되었든 연락이 늦었습니다. 나리. 보고 올립니다." "몸 상태는 생각보다 양호합니다. 활동의 잡음 또한 없으며, 정신적인 수복 또한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겨울 중에는 온전히 회복될 듯합니다." "선지자 말고, 저, 말입니까?" "……." "늘 그렇듯이 안온합니다. 복귀하는대로 상납 일정을 조정하겠습니다. 여독이라 하면 될 테니까요." "……도망친 제사장의 소재는 저 또한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스트라페와 선지자가 추적을 시작했습니다만, 제사장이 파장과 신호를 바꾸는 경지에 이른지라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솔리스의 간부와 접선한 결과, 이들 또한 칩으로 통신하는 듯하여 명확한 소재는 찾을 수 없으나 2학구와 4학구를 번갈아 다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ID 카드와 능력으로 타인 신분을 일회성으로 도용하는 듯합니다." "바즈라에 접선을 유도한 제 실책입니다. 벌은 달게 받겠습니다." "……하해와 같은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예. 보고 마칩니다." "……그러면 이제 사적인 이야기겠지요. 왜 그렇게 불만일까요, 형님." "아, 처제가 제 시간을 다 뺏었다니요……." "저도 개인적인 시간을 가져야죠. 그동안 욕심 내셨으면서." "그거랑 이거랑 다르다니요." "아, 감상……이요." "……여전히 덧없단 생각이 든답니다." "인간의 삶은 무상하고, 섞이지 못할 것 같단 생각만 명료해지지요. 나는 저 사람들과는 몹시도 다르구나, 저 사람들이 나를 이해할 일 없듯이 나 또한 이해할 수 없었구나…… 형님께서 옳았답니다……." "그들이 네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어도 미워하지는 않노라 하는 연유라 함은…… 이해하지 못했으니 미워하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다만 이제는 거부감 들며 목줄 차는 것 두려워 영영 기어 들어가느니…… 형식적인 목줄 차고 내 의지대로 끊으면 될 일이지요." "네에, 깨달음이지요." "……대견하세요?" "응." "나도, 사랑…… 한다고 하진 않을래요." "한결이 형 있을 때도 하고 싶어." "질투하지 마요, 좀. 형제끼리 나눠 가질 수도 있…… 돌아와서 깨물 생각도 말아요. 내가 여기 올 적에도 자국 가리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제발. 나 끊을 거예요." "아, 제바알."
>>0 오늘은 사장님의 시험 아닌 시험(케이크 열개 똑같은 품질로 만들기)을 연습해볼겸, 바닷물을 길어다가 카페 블랑 엣 느와르의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열 판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양동이 열개를 빌려다가 바닷물을 채우는것도 제법 일이었는데, 동일한 계량으로 한 번에 굽는 것도 아니고, 균일하게 한 판씩 열 판을 굽자니 제법 빡세다. 결국 오랜만에 코피를 봤다. 두 판은 반죽이랑 크림이랑 바닷물이 섞인 슬라임같은 실패작이 나와버렸고. 차라리 몸으로 떼우고 말지 능력으로 꿀빨려는 생각은 버려야겠다...
고생 많으셨어요!!! 1대 대표이사가 유니온의 친아빠이자 ai제로의 조종자고, 인첨공은 유니온 같은 능력자를 양성하기 위해 세워졌고, 유니온은 자기 포함한 능력자를 다 죽일 계획으로 리버티를 배후에서 조종 중이고, 플레어 포함 퍼클은 저지먼트에 협조하기로 했고, 위크니스의 폭탄 칩은 해제하되 퍼클의 폭탄 칩읃 해제 안 하기로 해서 진엔딩 루트래요. 캡피셜 이번 토요일에 리버티가 뉴트로미니컬 에너지를 탈취하려는 걸 막는 걸로 스토리 재개할 예정이라셨어요...는 이미 다 읽으셨겠지만 후레로나마 요약요^c^;;;;;;
※ 전지적 스트레인지 시점 - 개인이벤트 기간 동안, 진행자 태오주의 모든 서술이 경박해집니다. 서술은 여러분의 편이지만 가끔가다 npc를 과도하게 비꼬거나, 동조를 요구합니다. 단, 흔들리지 마십시오. 상황을 이끌기 위해 의도된 경박함이 몇 파트 존재합니다. - 불쾌할 경우 진행자를 호출해주시면 바로 조율 버전으로 제공하겠습니다.
※ 캐조종 묘사 - npc 윤찬혁, 백서휘, 류시원이 지닌 능력의 특수성으로 인해 경우에 따라 캐조종 묘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본 진행에서 불쾌하지 않은 선에서 행동할 계획임과 동시에, 윤찬혁의 능력은 다이스로 저항할 수 있음을 미리 고지합니다.
예시 1. 캐릭터는 서휘의 시선을 마주치자 오한을 느낍니다. 레벨 5의, 오로지 사람을 죽이기 위해 개발된 능력. 그 사실을 깨달은 이상 본능의 공포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말할 입은 남아있겠지요. 2. 캐릭터는 찬혁의 눈을 마주치자 적개심이 일순 흔들립니다. 무한한 자비, 사랑, 그리고 경외…… 그 모든 것이 느껴지려 합니다. 아, 저 사람은 나의 구원자이다! (다이스로 저항 가능, 1에서 100까지 다이스를 굴려주세요. 30 이상의 경우 저항에 성공합니다!)
※ 다이스 전투제 - 다이스는 원활한 진행을 위해, 턴 누적 및 일부 명중 시스템을 차용했습니다.
예시 - 진행자는3턴 동안 다이스의 총합이 500을 넘겨야한다. 단, 2턴째에선 명중과 빗나감 다이스를 굴려야 한다와 같은 제시를 합니다. - 캐릭터들은 3턴 동안, 다이스식을 사용하셔서 공격 묘사를 넣으시면 됩니다. 또한 캐릭터들이 '특정 행동'을 취할 경우 다이스 값에 보정이 들어갈 수 있음을 미리 고지합니다. 이 특정 행동은 힌트로 제공됩니다.
- 전투에서 적으로 나오는 npc 중에서는 다이스를 굴려 무작위로 선별된 캐릭터의 공격을 회피하거나, 역으로 받아치고, 발악으로 hp를 회복하는 패턴이 있습니다. 이 또한 파훼가 가능합니다. - 해당 다이스가 어렵다 싶으면 그냥 명중 빗나감 돌려서 명중 n개 이상으로 바꾸는 극단적 행위도 가능한데 이걸 하면 그... 빗나감 파티가 될 것 같아서... 이건 조율중인데 암튼간에 응애!
인첨공 구역에 있는 은우의 섬은 오늘도 평화로웠다. 파도가 철썩이고, 폭포가 떨어지고, 새 소리도 들리지만 시끄러운 소음소리는 없는 평화로움은 쉽사리 깨질 일이 없었다. 인첨공이 상당히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이 마치 거짓말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섬의 뒷편에선 살벌한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사라져! 사라져! 타버려! 다 죽어!"
플레어. 본명 고은별. 어쨌건 지금 그녀는 울상을 짓고 여기저기로 붉은색 레이저를 마구 난사하고 있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하니, 그녀의 주변에는 벌들이 앵앵거리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저지먼트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것이 어색해서 그녀는 이곳에 와도 주로 혼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섬 반대편에 있는 작은 숲에 들어간 것까진 좋았는데, 하필 거기에는 말벌집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을 미처 보지 못한 그녀는 근처까지 다가갔다가 말벌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이다. 하필 가을철이라 말벌의 독이 강하게 올라온 시기. 쏘이면 위험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은별은 발을 동동 굴리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말벌을 하나하나 정확하게 요격하며 불태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말벌은 물러나지 않고 오히려 공격할 틈을 노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어 그녀는 단번에 뒤로 물러서더니, 오른손을 위로 올렸다. 그러자 그녀의 손가락 위에 모든 것을 불태워버릴 것 같은 붉은 빛이 강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아마 이대로 공격을 날리려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랑이 근처에 있었다면 사이렌이 울리다 못해 섬이 불바다로 흽싸이는 이미지를 느낄뿐만이 아니라, 식은땀이 줄줄 흘렀을지도 모른다.
인첨공은 뭘 해 봤자 노답이니 다 없애 버리겠다? 묻지 마 살인을 홀로코스트급 규모로 벌이는 짓이지만 동기가 파악은 된다.
아버지의 바램이 인첨공 소멸이었으니 이루겠다? 소원의 상태가 옛날옛날에 왕이 죽으면 아랫사람들까지 생으로 묻어 버렸다는 수준(이거 뭐라고 부르더라??)이지만 동기가 파악은 된다.
다 죽이겠단 소리 듣고 겁에 질리고 절망한 꼴 구경하기를 즐긴다? 흰머리 싸이코 같은 싸패라고 쌍욕이 나올지언정 동기가 파악은 된다.
단번에 모조리 죽여 버리는 게 희생을 최소화하는 길이라 믿는다? 진짜로 그렇게 믿는다면 지능 장애가 의심스러워 어처구니없지만(초능력자한테 지능 장애가 있을 수 있을 거 같진 않다만 세상 일은 모르니까;;;;;) 그래도 동기가 파악은 된다.
근데, 그렇게나 한참 얘기했는데도 어느 쪽인지 모르겠다. 대체 왜 수십만 명을 다 죽이고야 말겠다는 건데? 자연 현상이라 그저 랜덤인 자연재해가 아니고, 개발자가 입력한 대로만 작동하는 봇도 아니면 동기가 있을 거 아냐, 동기가!!! 근데 그 동기가 파악조차 안 된다;;;;;;;;;;;;; 아니, 잠만. 설마...
" 인첨공에 온 25만 명은 이미 망한 인생이라 죽어도 할 수 없지만, 앞으론 인첨공에 오는 사람이 없도록 인첨공을 없애겠단 발상일까? "
그거면 동기가 파악은 되네. 더는 피를 안 흘리네 어쩌네 하던 거랑도 어찌어찌 아귀가 맞는 것도 같고. 그래 봤자 끔찍하긴 똑같다만. 수박!
" 그런 거면, 남의 인생 망했고 말고를 뭔 자격으로 지가 판단하나 몰라. 인첨공의 설립 목적이 자기 짭 만들기라고 여깄는 수십만 명이 모조리 자기 찌꺼기로 보이나 봐. 인첨공식 능력지상주의의 표본스럽다, 아주 그냥;;;;; "
질색팔색을 하던 중 불쑥 당시 세은이의 해석(???)이 떠올랐다. 월이 말마따나, 기회를 줄 테니 막아 볼 테면 막아 보란 의도랬나? 그 말이 맞다 쳐도 이상한 점은 생긴다. 그렇게 한참 떠들어 댔던 녀석은 분신이고, '오리지널'한텐 상대가 안 되는 듯했으며, 분신이 우리한테 떠들어댄 건 오리지널이 바라지 않았던 일인 듯했다. 근데 오리지널은 자기 의도와 달리 우리한테 시간이 생겨 버렸는데도 아무 조치도 안 하고 있으니, 이상하다. 당최 뭔 상황인지 모르겠네;;;;;;
하긴, 이런 거 생각해 봤자 다 뻘짓이다. 유니온의 동기가 뭐든, 지금 가만있는 이유가 뭐든 알 반가? 중요한 건 죽기 싫으면 유니온을 막아야만 한다는 거지.
생각이 어디까지 가는지 모르게 뻗치다 잠잠해지는 동안에도 새봄이의 한탄은 끊이질 않았다. 듣고 보니...그러게? 부장은 선망의 대상인데? 울 사장님도 부장이 손님으로 오니까 팬심이 끓어넘치는 듯 히죽히죽이셨고. 남의 신발에 쥐 넣었던 수박처럼 고렙이면 질색하는 사람도 없지야 않지만, '에어버스터' 하면 우러러보는 사람이 훨 많잖아?? 하물며 '유니온'일까? 하고 썩소가 나오다 멈칫했다. 선후 관계가 바뀌었다. 부장 같은 사람이 선망의 대상이 된 건, 인첨공이 생긴 뒤다.
" 추측이지만 인첨공이 생기기 전엔,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당했을지도 모르겠어. 태오 선배처럼 능력을 쓰고 말고를 선택 못 하는 지경이 아니었다면 배척당한 원인이 순전히 초능력이라고 보긴 어렵겠지만. " " 글고... " " 인첨공의 특성상 인품, 취미, 가치관 이전에 능력으로만 접근하거나 배척하는 사람이 생겼다면, 본인을 있는 그대로 봐주지 않는다는 느낌에 벽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들고... "
말하면서도 사실 잘 모르겠다. 그럴 수밖에. 이건 추측이라기도 민망한 내 망상인걸. 그나저나, 새봄이 지금 꽤 빡쳐 보이는데? 이 판국에 유니온 얘길 하면서 즐겁고 편안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만, 그래도 뭐랄까, 감정 표출이 평소에 비해 격한 느낌이다. 글고 보면 자연공원에서도 박형오가 목소리를 내자마자, 혜성 선배의 에코로케이션이라도 구현할 기세로 아주 샤우팅을 했었지.
" 새봄아, 어... 너, 유니온이랑 박형오한테 치를 떠는 이유가 혹시 더 있어? "
말해 놓고 보니 완전 무례한 질문이다. 새봄이와 눈이 마주칠세라 황급히 아아를 드링킹했다. 그새 컵이 다 비었다...
" 미안!! 안 들은 셈 쳐도 돼!!!;;;;;;;; "
하고는 냉큼 이명 얘기로 넘어갔다. 봄에 폭탄이란 뜻도 있었나 보네. 건 영어래 한자래? 그랬다가 제 이명이 화제에 오르자 머릿속에 김이 가득 올라 버린 서연이었다.
" 어, 어, 어...;;;;; " " 한자 달라! 한자 달라!! "
선배 이름자를 이명에 붙이고팠던 건 맞지만;;;;;
" 선배 이름 자는 어질 현 자고~ "
돗자리 옆 모래에다가 賢을 써 보인다. 몇 번을 써도 이 한잔 완전 복잡해 @ㅁ@;;;;;;;;; 그래도 인제 획 안 틀리고 곧잘 쓴다. 히히~☆
" 내 이명은 나타날 현 잔데~ "
賢 옆에 기세 좋게 쓰려다 멈칫했다. 나타날 현 자 어케 쓰더라??;;;;;;; 모래에 꽂았던 손가락은 움직이지도 빼지도 못하고 고개만 푹 숙인 서연이었다.
" ...까먹었어. 어케 쓰는지;;;;; "
쪽팔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새봄이네 연구소 얘기가 나온 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는데, 나오는 내용은 뭔가뭔가다. 매 끼니 야채죽이라니? 뭣하러? 커리큘럼상 레시피를 완벽하게 익히도록 시켰대도, 무슨 난민도 아니고 끼니마다 야채죽을 먹었다고?
" 너희 연구소, 무슨 일 있었어? 그, 기숙사 망가진 거 보상하는 거 말고도?? "
생각해 보면 울 연구원도 리버티가 기승 부릴 때 피난 갔었고, 청윤이네 전 연구원은 아예 살해까지 당했으니, 다른 연구소라고 별 일 없었으리란 법이 없구나...;;; 뒤늦게 제 둔감함이 실감 나는 서연이었다.
한편 새봄이의 첫 전투 얘긴 얼떨떨하면서도 묘했다. 난 크리에이터를 처음 만났을 때 쩔부터 받았는데, 새봄이는 적으로 처음 만났었구나. 그 와중에 선배가 농담 따먹기로 긴장을 풀어 줬다니, 어떤 상황일지 상상이 가 절로 웃음이 났다. 혜우가 납치당했을 때도 새봄이가 납치범들한테 말린 미역 케이크를 맥이쟀는데, 그게 누구한테서 유래한 농담이었는지 알 만하다.
" ㅎㅎㅎㅎㅎ 진짜로 저질렀으면 크리에이터가 식고문이라고 질색했겠는데? "
그렇게 웃어넘기려니 새봄이의 표정이 묘하다. 아까처럼 살벌하진 않은데, 심경이 복잡미묘해 보인달까?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물을까 말까 하던 찰나, 새봄이가 부장의 사인이 홍보 효과가 있을 거라며 맞장구를 쳐 줬다. 그 사인을 처음 받았을 때의 야심찬 계획(???)을 되새겨본다. 에어버스터 버전은 점포 입구에 잘 보이게 붙이고, 최은우 버전은 계산대에 눈에 띄게 붙여 놔야지~ >< 그러나 제 능력 언급에는 찔끔하고 도리질을 치는 서연이었다.
" 아니 아니, 내 능력은 비밀!!! 새봄이 너처럼 맛난 걸 만드는 능력이면 판촉 행사라도 하겠지만, 내 능력은 잘못 썼다간 사생활 노출당한다고 손님 뚝떨할 각이야;;;;;;;;;;;; " " ...... " " 내 얼굴 신상 다 가려지는 사주 카페 부스는 따로 마련해 보고 싶지만 "
성하제 때 집사 메이드 카페에서 제법 쏠쏠히 써먹었으니까. 그 정도로 가벼운 노가리는 사람들에게 활력을 줄 수 있으면서도, 대하기 빡센 사람은 덜 만날 수 있을 것도 같고. 그러면서 길벗 상담 센터의 커리큘럼이나 간간이 하는 정도면... 상담심리사가 되지 않고도 그럭저럭 보람 있지 않을까? 지금 생각은 그렇다.
그리고... 새봄이가 선배는 물론, 날 만난 것도 저지먼트에 잘 들어온 이유로 꼽아 주는 건 감동이다. 어쩌면 이렇게 날 잘 따라 주는지. 이제는 새봄이의 시그니처 디저트 같기도 한 생크림 딸케를 한 입 가득 넣고는 행복한 맛을 만끽했다.
" 나야말로. 늘 잘 따라 줘서 고마워!!! "
/ 이거저거 넣다 보니 별 내용도 없이 분량만 노답으로 불어나 버렸어요!!!8989ㅁ9898 (머리싸쥠) 편하신 만큼 쳐내시고 이어 주세요오오오(털푸덕) 곤란하시면 당근 흔들어 주셔도 좋아요!!!!(뻘뻘)
※ 전체적인 흐름 - 이벤트의 흐름은 '수색 및 심문' 1챕터와, 본격적인 전투를 2챕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1챕터의 경우 과거 행했던 춘치자명 이벤트와 동일하게 '불규칙한 시간에 이루어지는 개인 진행'을 채택하고 있으며, 저번과 달리 턴 제한이 없습니다. - 단, 캐릭터들의 원활한 활약을 위해 '단서'를 찾으면 턴이 자동적으로 종료됩니다. - 일정 개수의 단서가 모이거나, 캐릭터가 진행자가 의도한 것을 찾을 경우 '키 포인트 단서'가 등장하며, 이 포인트 단서로 하여금 다음 챕터로 넘어갈 수 있는 '명분'이 생깁니다. 누구도 명분을 찾지 못할 경우 npc 찬스를 단 1회 사용할 수 있습니다만, 혼자서도 찾아낼 수 있도록 진행자가 최대한 조율하겠습니다. - 2챕터의 경우 타 스토리 진행과 동일한 '체크 후 정해진 시간 진행' 요소를 채택했습니다. - 전투는 모두 취합하는 방식이나, 다이스를 굴리기 때문에 빗나갈 수 있다는 점 참고 바랍니다. - 바로 기절시키려 했다...와 같은 원턴킬 방식을 그렇게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예? 빠르게 끝나면 좋은 거 아니냐고요? 에이. 설마요. 여기는 세이브도, 로드도 없는 낙장불입 세계관인걸요. 본 진행은 플레이어 우선적인 시스템이 적용됩니다. 타 진행보다 더욱 우호적인 보정이 들어간 판정을 내리고, 판정에는 여타 긍정, 부정의 구분이 없이 모두 잘 들어갑니다. - 레벨 3은 권총, 레벨 4는 잘 훈련된 병사. 명심하십시오. 레벨 3만 해도 권총입니다. 지금껏 여러 사건이 오가면서 인명피해는 적었지만, 명분 없이 단번에 끝내려다간……. 에어버스터의 도움을 받아야 할지도 모를 겁니다. 은닉을 도와주긴 할진 모르겠지만.
때 아닌 광란의 파티. 라고 보일 만한 상황이 섬 반대편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허공을 가르는 얇지만 선명한 붉은 색 광선, 누가 광선 쇼라도 하나 싶은 그런 모습을 쳐다보던 랑은 섬 뒷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당연히 쇼 같은 게 아닐 테니까.
얼마쯤 걸었을까, 아직 정확한 위치는 특정하지 못했지만 이 근처에서 누군가가 광선을 쏴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서는 이런 일을 할 사람이 한 명 정도밖에 없다는 것도. 아마 플레어일 것이다. 최근 정상으로 돌아와 같이 섬에 들어왔지만 주로 혼자 시간을 보냈기에 거의 마주치지 않았던 그 녀석이 섬 뒷편에서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일까? 그런 의문이 피어오를 즈음, 랑은 섬에 들어온 뒤에는 거의 느끼지 못했던 위기감이 강렬하게 머리를 강타하는 듯하자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근처에서 나무 사이로 강렬한 붉은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으니... 랑은 재빠르게 나뭇가지를 헤치며 나아갔다.
"...느껴진 그대로군."
플레어, 거기에는 플레어가 있었다. 뭔가에 질색하며 섬 자체를 날려버리려는 듯한... 어마어마한 출력의 빛이 모이는 걸 확인한 랑은 풀숲에서 튀어나가 플레어의 팔을 붙잡고 수풀로 잡아당기려고 했다.
자신의 팔을 붙잡고 수풀로 잡아당기려는 움직임에 플레어는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붉은 빛이 반짝이는 손을 그대로 그녀에게 내려치려는 듯 하다가 멈칫했다. 이어 은별은 능력을 해제한 후에, 가만히 랑을 바라봤다. 누구? 기억에는 없지만, 여기에 있으니까 저지먼트겠지. 그렇게 납득하며 은별은 랑의 별에 대답했다.
"...그럴 생각 없어. 그저 나를 해치려는 저 사악하기 짝이 없는 벌레놈들을 불태워서 없애버리려고 한 것 뿐이야."
어떻게 보면 상당히 무시무시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으며 은별은 평소와 다를바 없는 감정이 섞여있지 않은 무덤덤한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이내 어딘가에서 앵앵 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깜짝 놀라 꺄아악 소리를 지르며 바로 몸을 아래로 숙였다. 그리고 몸을 파들파들 떨면서 그녀는 오른손만 위로 향한 후에 또 다시 무차별적으로 하늘을 향해 레이저를 난사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랑을 향해서 쏘지 않는 것은 그녀가 그만큼 능력 사용이 익숙하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아, 아무튼 떨어져! 이 녀석들이 있으면 너희들도 최종적으로는 위험해져. 이거 알아? 말벌에게 쏘이면 아나필락시스 쇼크가 일어날 수 있어. 최악의 경우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아주 무시무시한 증상이야. 그래. 그런 위험 요소를 없애버리기 위해서는 이딴 숲 따위, 하나 없어져도 어쩔 수 없는 희생이야."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면서 은별은 으으...소리를 내더니 고개를 들어올리다가 다시 어딘가에서 앵앵 소리가 들리자 화들짝 놀라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자신에게 겨눠지던 붉은 빛이 사라지고, 플레어 자신을 해치려던 사악한 벌레를 불태워 없애버리려고 했을 뿐이라는 말에 그제야 랑은 말벌을 확인했다. 말벌 때문에 이런 짓을 하려고 한다고? 퍼스트클래스들은 다들 뭔가 있나? 같은 생각을 하다가 앵앵거리는 소리에 플레어가 화들짝 놀라 몸을 아래로 숙이는 것을 보곤 눈을 조금 크게 떴다.
"그러니까, 말벌 때문에 여길 싸그리 날리려고 했단 말이지."
그리 중얼거리던 랑은 플레어가 다시 하늘로 레이저를 난사하자 움찔했지만 자신에게 향하는 광선은 없었기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와중에 말벌에게 쏘이면 생길 수 있는 위험한 일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며 스스로의 행동을 합리화하던 플레어를 보고 그냥 두고 갈까 잠시 고민했지만 그랬다간 정말 숲이나 섬이 날아갈 수도 있었기에 여기서 해결을 해야 했다.
랑은 떨어지라는 플레어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주변을 둘러본다. 분명 근처에 말벌들이 공격할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떨어진 말벌집이라든가 말이지.
"퍼스트클래스라더니 말벌만 골라서 없애는 건 어렵나."
말벌집을 찾으며 그리 지나가듯 말을 던진 랑은 말벌집을 찾았다면 플레어를 보며 말을 이어갔을 것이다.
말 끝을 흐리면서 그녀는 마치 자기 탓이 아니라는 식으로 변명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올리지 못하고 계속 소리가 나는 곳으로 레이저를 발사했다. 말벌들은 일부는 불타버렸지만, 일부는 또 어떻게든 피하면서 위협하듯 앵앵 소리를 더욱 크게 일으켰다. 물론 랑에게도 다가오는 소리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랑은 자신의 능력으로 아주 가볍게 회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어쨌건 랑의 말을 듣고서 은별은 겨우 고개를 위로 올렸다. 한 곳에 모이면 굳이 다 태울 필요는 없겠지? 그 말을 들으면서 플레어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그렇긴 하지만... 그보다 왜 계속 반말이야. 너 고등학생. 나. 20살. 내가 연상이야."
자신이 아무리 못해도 최소 1살 더 연상이라는 것을 어필하듯이 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가볍게 툭툭 쳤다. 이어 말벌집을 바라보더니 그녀는 그곳을 향해서 붉은색 레이저를 마구 난사했다. 이내 뜨거운 불꽃과 함께, 말벌집은 흔적도 없이 소멸하듯 사라졌다.
"...임무 완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하긴 했지만, 이미 볼 것을 다 본 랑에게는 별 의미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게 말이에요, 인첨공 들어와서 좋은 순간만 있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잘 사는 사람들도 있는데! "
서형의 가설이 진짜라면 생각보다 더 한심한 자식이겠는걸. 한참 박씨 부자에 대해서 찧고 빻던 중, 인첨공이 생기기 전 유니온에 대해서 추론하던 서형이 문득 물었다. 유니온이랑 박형오에게 치를 떠는 이유가 더 있느냐고. 그 녀석들에 대한 미움을 많이 내려놨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쌓인 게 있었구나.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좋을까 고민하는 사이, 서형은 안 들은 셈 쳐도 된다며 사과하고는 이명 이야기로 넘어가버렸다. 한자는 다르구나. 근데 당황하는 걸 봐서는 철형 이름자를 의식하긴 했나본데? 얼레리 꼴레리 놀리려는 찰나, 서형이 모래 위에 철형의 이름에 있는 현 자, 어질 현을 써보이다, 자기 이명을 쓰려던 와중 멈칫했다.
"아, 이건 제가 알아요! 이렇게~" 왕 왕자 옆에 볼 견을 좁다랗게 그리면 現자가 되지. 나타날 현 자를 그려보이고는 씩 웃어보였다. "왕이 쳐다볼 정도로 갑자기 나타났다! 하면 외우기 쉬울 지도요! 그나저나 어질 현자가 더 복잡한데, 서형 역시 철형 엄청 좋아하네요~."
난 정인쌤 이름 한자도 모르는데. 아니다, 명함에 있으려나? 아니다, 잊자. 잊어야 한다. 선생님께 내 마음은 그리 달가운 것이 아니니, 확실히 접어야지. 질척거리지 않게. 지갑속에 있는 명함의 존재를 애써 잊어보려 애쓸 찰나, 한동안 야채죽만 먹었다는 소리에 서형이 놀란 듯이 물었다.
"아아, 피난 가는 과정에서 급식 담당해주시던 선생님들도 대부분이 휴직하셨거든요. 그래서 제가 급식을 다 만들어야 했는데, 효율 문제 때문에 야채죽을 대량생산했었어요, 히히. 백여명을 먹여야 해서 바리에이션을 치기가 쉽진 않았거든요." "ㅋㅋㅋㅋ 그쵸? 왠지 이럴 것 같지 않아요? '이 아저씨가 그렇게 큰 잘못을 했니...?'ㅋㅋㅋㅋ"
그러고보니 그 아저씨는 아저씨 아니랄까봐 말할 때마다 이 아저씨 이 아저씨 한다니까. 우리 입장에서야 아저씨 맞지만서도.
"앗,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래도 어쩌면 사이코메트리스트가 점장이니 물건 슬쩍할 생각은 마라! 의 효과도 있을지도 몰라요!" "그나저나 사주카페도 아이디어 좋은데요? 서형 정도면 손님의 문제가 뭔지에 대해서만 정보를 뽑아낼 수 있을 것 같구요!"
서형 얼굴 신상 다 가려지려면... 철형이 납치당했을 때 썼던 가면이랑 비슷한 물건이 있어야 하려나? 음성변조되는 가면. 그런 궁리를 해볼 찰나, 서형이 내 말에 감동한 낯으로 건네는 말에, 뿌듯해져서 히쭉 웃었다.
"뭘요! 그만큼 서형이 따를만한 멋진 선배니까요~." "흠흠, 그런 의미에서... 아까 유니온이랑 박형오에게 치를 떠는 이유가 더 있냐고 물어봤잖아요." "좋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서형한테는 해도 될 것 같다고, 아니, 터놓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뭐냐면... 제가 인첨공에 들어오기 전부터, 들어오고 나서도 붙어다녔던 절친이 있었어요. 이름은 주선하. 중학교 때까지 같이 붙어다녔는데... 커리큘럼을 받다가 죽었어요. ...그, 머리 여는 걸로요." "그 때 이후로 굉장히 많이 방황했었어요. 연구소를, 연구원 선생님들을 원망하기도 하고. 아마 리버티가 제가 중학생일 무렵에 활개를 쳤다면, 그 녀석들한테 혹했을 지도 모를 정도로요." "지금은 선하의 죽음이 사고였고, 누군가의 악의로 인해 죽은 게 아니라고 겨우 생각할 수 있게 됐었는데, 유니온을 만났을 때 본 문서의 내용 중에, '공명'에 대한 이론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게 되어버렸어요. 능력을 발전시키는 방법은 따로 있었는데, 박형오가 그 연구를 공개하지 않는 바람에, 그 전에 그 자가 앞장서서 세운 이 인첨공이라는 도시의 시스템으로 인해 내 친구는 개죽음을 당했구나, 하고요. 그 이론이 널리 알려졌더라면 머리를 여는 방법보다 더 효율이 좋은 커리큘럼 방식이 개발되었을 거고, 선하는 죽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 같더라구요. 지금 와서는 부질없는 망상이긴 하지만요." "그리고 유니온의 경우에는... 짜증나기도 짜증나지만, 두려웠다...는 거에 가까운 것 같아요. 그 녀석은 터무니 없는 이유로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포함한 인첨공의 25만명을 모조리 학살하겠다고 선언했고, 실제로 그럴 만한 힘도 가지고 있는 것 같으니까." "그리고 그놈이 여태껏 미적거릴 줄은 그땐 몰랐죠!"
"그러니까 종합해보면... 쫄았던 것 같아요. 선하를 잃었던 것처럼, 형들이랑 모두를 잃게 될까봐요." "그래서 그런 생각도 했지 뭐예요. 가능하기만 하다면 둘다 제압하는대로 죽여버리고 싶다고." "지금은... 모르겠어요. 유니온의 경우에는 죽일 수 있을 지 없을지도 모르겠고, 박형오는 그냥 관짝에서 골골거리고 있는 반 시체잖아요. 죽인다고 선하가 살아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좀 부질없어졌지 뭐예요, 히히."
// 나야말로 엄청 길어져버렸다...>< 마찬가지로 쳐낼 부분은 편히 쳐내고 이어줘! 당근도 좋아><
이 말벌들은 생각보다 사납긴 했다. 주변에서 동료가 광선에 격추당하는데도 공격을 포기하지 않고 빈틈을 노리는 걸 보면 이런 외딴 섬이라 강해진 게 아닌가 싶을 정도. 그래도 보통 사람도 아니고 플레어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걸 보고 있자니 조금 재밌다. 그 와중 자신을 노리는 말벌도 있었으나, 랑이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는 걸 가만히 두고 볼 만한 위인도 아니었고 피할 만한 능력도 충분했기에 랑은 벌에 쏘이지 않았다.
"지금 그게 중요해?"
갑작스레 왜 반말이냐는 은별의 말에, 연상이면 연하에게 반말해도 되나 생각했지만 그보다는 지금 말벌을 처리하는 게 우선이었기에 말을 꺼내진 않는다. 자기가 한 살 더 많다고 강조하는 듯한 몸짓도 그렇고, 아마 실제 확인 가능한 나이를 제외하고는 플레어가 연상으로 보일지 의문이다. 아무튼, 말벌집을 발견하고 일거에 소탕해버린 뒤에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임무 완료라고 중얼거리는 플레어를 빤히 쳐다보던 랑은 입을 열었다.
지금 그게 중요하냐는 랑의 말에 은별은 살짝 움찔하더니, 괜히 토라진 표정으로 그렇게 이야기했다. 내가 언니인데. 그런 말을 작게 중얼거리긴 했지만, 그 말이 전해졌을진 알 수 없었다. 애초에 전해지라고 하는 말도 아니었고. 어쨌든 랑이 말벌집을 발견했고, 은별은 아주 그것을 가볍게 태워버렸고, 남아있는 말벌도 깔끔하게 처리했다.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은별은 입을 꾹 다물고 시선을 회피했다. 하지만 딱히 숨길 생각은 없었는지 그녀는 애써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면서 그녀의 물음에 대답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어. ...그냥 그물침대를 만들려고 했는데 거기에 말벌집이 있었을 뿐이야. ...내 잘못 아니야."
누가 봐도 은별의 잘못 100% 였지만, 절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듯이, 은별은 토라진 목소리를 자신도 모르게 냈다. 이전 감정이 없어서 무덤덤한 목소리와 공허한 눈빛만 보이던 그녀와 동일인물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만큼 감정을 어느 정도 되찾은 은별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눈빛만큼은 여전히 공허한 느낌 그 자체였다.
situplay>1597049759>913 여름과 달리 물은 차갑고, 해가 진 밤이었기 때문에 해변에 있는 것은 우리 둘뿐이었다. 육지와 바다의 경계선을 지우며 몰려드는 파도가 철썩이는 소리, 망망한 보랏빛 바다 위에 아주 천천히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나는 사탕 나비들. 어둠 속에서도 우리 주변에는 모닥불로 오렌지빛이 가득히 깃들어 있었고, 차가운 공기 속에 둘러 맨 이불 안에선 서로의 체온이 스며 들었으며, 이 모든 것에 금의 심장은 쿵쿵 뛰었다. 아름다운 장관을 당신과 함께 바라보고 있는 이 순간에는 감상적이지 않은 금이라도 조금은 감상적인 마음이 될 수 밖에 없다. 어쩌면 당신으로 인해, 앞으로 바다를 좋아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고 금은 생각했다. 당신의 그런 비명에 금은 미소 지었을까. 번쩍 안아 들고서 성큼성큼 물가로 걸어가는 것에 망설임은 없었다. 이런 연인의 듬직함에, 그런 당신의 기분이 착각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종종 당신과 나누던 문자에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냐는 물음에 운동 중이라던 답장을. 찍어 보낸 사진에서 웃고 있던 금의 트레이닝복 차림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었다. 걸음을 멈춘 채, 고민하던 금은 당신의 그런 호칭에 눈을 살짝 크게 뜬 채 당신을 바라봤다. 이내 입매를 끌어 올리며 못된 웃음을 지은 채, 살짝 고개 숙이며 당신에게 작게 속삭이듯 말한다.
"왜 그래 혜성아?"
싫어? 은근슬쩍 그렇게 당신을 부르며 키들거리던 표정이었던 금은 자신에게 매달리는 당신을 더 단단히 품에 안는다. 여기까지 하고 돌아설까 했던 마음은 다시 조금씩 당신과 물에 들어가자는 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는데. 문득 당신이 팔을 아래로 내리며 휘파람을 불면 금은 의아스럽단 시선을 던지다 탄성을 낸다. 직접 두 눈으로 돌고래를 보는 것도 처음일뿐더러, 이렇게 할 수 있음이 너무나도 신기할까. 그 속삭임에 별안간 당신의 볼에 입 맞추고서 떨어진다. 속삭임에 덧붙이듯 금 또한 속살거린다.
"응."
천천히 돌아서며 물 밖으로 나서는 금의 볼엔 차가운 물 때문인지, 다른 이유인지 붉은 빛이 엷게 묻어난다.
들어와서 나름 잘 사는 사람을 손에 꼽으라면 단연 나 아닐까. 바깥이었다면 빼박 갈 곳 없는 처지였는데 들어와서는 이러니 저러니 해도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연구원을 만났고, 잘 곳도 일할 곳도 얻고, 만물에게 도움받는 초능력도 생기고, 귀신은 안 무서워도 사람은 무섭다는 세상에서 신기하리만치 무던한(적어도 내겐 무해한) 사람들만 골라 만났다. 그리고 선배까지.
암튼 새봄이가 모래에다 써 주는 한자는 태인이가 보여 줬던 그 글자가 맞다. 외우긴 힘든데 까먹는 건 순식간이라니깐. 이명 제출할 때 쓰고 안 썼더니 그새 낯서네;;;;;; 했다가 새봄이의 설명에 눈이 말똥해진 서연이었다. 왕이 쳐다봐? 그럼 왼쪽이 왕이고 오른쪽이 쳐다보는 건가? 그럼 저게 한자 두 개라는 거야? 두 갠데 하나야?? 뭐가 뭔지 모르겠네;;;; 하다가 이어지는 얘기에 새봄이의 눈길을 피했다. 바닷바람 분명 선선했는데, 언제부턴가 더워진 거 같애... 그래도 사실은 사실이라 고개는 확실히 끄덕였다.
" 응... 엄청 "
글고 보니 새봄이는 그 뒤에 어떻게 했을까? 고백... 했을까?
" ...넌 그, 저... 어때? 리라네 연구원님이랑? "
이런 거 물어도 괜찮나? 그치만 고백할지 말지를 고민한 지도 꽤 돼서 어떻게 했는지 궁금한걸! 그런 얘길 했던 만큼 진척이 있었다면 먼저 알려 줄지도 모르지만...그래도!!
한편 새봄이네 연구소도 리버티 땜에 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연구소 전체가 피난까지 갔었구나. 그래서 급식을 담당했다니. 인원이 무려 백여 명이었다니!! 새봄이네 연구소, 커!!!
" 그때 강제적으로 훈련 많이 됐겠네... 빡셌겠다;;;; "
했다가 새봄이의 크리에이터 흉내에 그만 빵 터진 서연이었다. 새봄이한테 크리에이터가 빙의했어!!!(???) 뭐 먹고 있었으면 큰일 날 뻔했네.
그러던 중 내 능력은 숨기고 싶다니까 새봄이는 수긍하면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새봄이 말대로면 인간 CCTV가 가동 중인 점포인 셈일까? (CCTV 개발 커리큘럼도 하긴 한다만;;;) 아니면 다른 쪽으로...
" 재료 원산지랑 유통 경로 인증해 주기도 가능은 하겠다 ㅋㅋ " " 사이코메트리가 나한테만 보이니 내 말 안 믿으면 망이지만 " " 응응. 심각한 건 전문가랑 상담하래고 난 가벼운 화제만 던져서 딱 기분 전환만 하려구~ "
칸막이 너머에서 손금 본다고 손 잡으면 얼굴 노출은 안 될 거고, 목소리는... 역시 음성 변조기가 필요하려나? 성하제 때 선배가 썼던 퍼리메이드용 같은 거면 딱 좋겠는데~☆ 아직은 내 점포도, 점포 살 돈도 없는 주제에 꿈만 부풀었다.
그때 새봄이가 나더러 멋진 선배라며 히쭉 웃고도, 이전까지에 비해 차분하게, 아니, 착잡하다는 말이 더 어울리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자기 얘길 시작했다.
" ............ "
충격적인 사연이었다. 바깥 세상에서부터 함께해 온, 가장 소중한 사람이 커리큘럼 도중 사망. 난 어느새 인첨공에 익숙해졌던 걸까. 머릴 쪼개는 건 당연히 엄청 위험한 일이고 바깥 세상에서였다면 듣기만 해도 식겁했을 거면서, 그 커리큘럼 도중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고는 상상도 못했다. 새봄이 역시 이따 보자 웃으며 인사했을지도 모른다. 근데, 그게 마지막...? 나였다면 그 자리에서 실성했겠다... 허망하고 기막히고 다 끔찍했을 텐데도 스스로도 남도 망가뜨리지 않고, 밝고 쾌활하게, 저지먼트로 활동했구나. 그러기까지 얼마나 애썼을까. 사별의 상처는 모르긴 해도 평생 안고 갈 수밖에 없는 것일 텐데.
그랬기에 이 인첨공이 생긴 것도, 하필이면 머릴 쪼개는 커리큘럼이 생긴 것도,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나 보다. 그 원망의 이면은, 친구가 살았더라면 누릴 수 있었을 삶에 대한 안타까움과 다신 만날 수 없기에 더 짙어지는 그리움이리라. 너무나 안타깝고 그립기에, 부질없다 하면서도 이랬더라면 살았을 거라고 절로 곱씹게 되는 거겠지.
다 지난 일이라 치고 싶어도 박형오의 아들인 유니온이, 박형오도 바랬던 일이랍시고 다 죽여 버리겠다 선언했으니, 그 치 떨리는 존재가 하필이면 모든 초능력을 퍼클급을 사용할 줄 아는 신적인 능력자니, 황당하고 원통하고 응징하고픈데 무섭고, 속 터지지! 인첨공에 별 유감 없던 나도 해까닥했었는걸. 근데 사별을 또 겪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마저 느꼈다면, 그야말로 눈이 뒤집히고 피가 거꾸로 솟는 심정이었겠다...
" 그랬구나... "
그래서 죽이고 싶었구나. 그럴 수밖에 없었겠구나. 이럴 땐 무슨 얘길 하면 좋을까? 침묵이 나을까? 어렵다. 생각은 정리가 안 됐는데 말이 앞서 나간다. 어느새 몸도 새봄이에게 바짝 다가붙어 어깨동무를 하고 토닥이고자 하고 있었다. 새봄이가 내키지 않는 기색이거나 피했다면 바로 그만뒀겠지만
" 완전 사적인 질문이고 가볍지도 않은 일인데 대답해 줘서 고마워. 나나 선배를 잃기 싫은 사람으로 여겨 주는 것도 고맙고. 그리고, 어... 친구 일은 정말 안타깝고 유감이야. 어떤 말도 위로는 안 되겠지만... 그케 큰일을 겪었는데도 씩씩하게 지낸 거 진짜 대단하다고 생각해. " " 놀랐고, 또 감탄했어. "
인첨공에 울적한 사연 없는 사람이 오히려 드물다고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새봄인 평소 모습이 워낙 밝아서 정말 몰랐다. 내가 그런 일을 겪었다면 저럴 수 있었을까. 상상은 관두자. 소름 끼치니
" 친구 일만으로도 이 갈리고 현타 올 텐데, 유니온까지 행패니 진짜 진절머리 나겠다. " " 나와 내 주변 사람의 안전을 확보하길 바라는 건 당연하다 생각해. 특히나 나한테 해코지할 거 같으면, 모기나 바퀴벌레 없애듯 죽여서라도 안전해지고 싶지. 나도 그래. " " 근데, 난 유니온을 죽이지 않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 "
앞뒤 안 맞는 희망사항이지만 정말로 그렇다. 서연은 빈컵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 유니온이 모기나 바퀴벌레, 혹은 안드로이드 같은 거면 상관없겠지만, 인간이잖아? " " 그니까 걜 죽이면 우리도 인간이니까, 동족이니까, 찝찝함이 남을 거잖아? " " 그게 싫어. 그런 자식 때문에 누군가 살인의 기억을 떠안는 게 "
그 자식의 깽판에 휘말린 것도 빡치는데 두고두고 괴로울 기억까지 안게 되는 건 너무 억울하잖아! 그거도 그거지만 더 중요한 건
" 내가 진짜로 바라는 건, 나도 내 주변 사람도 안전하게 사는 거기도 하고 " " 그럴 수 있는 방도가 유니온을 죽이는 거뿐이라면 수박이지만... " " 유니온은 넘사로 쎄니 다른 수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 " 유니온이 자기 외의 타인에게는 영향을 전혀 못 끼치게 만들 수만 있다면 " " 무조건 살려 놓고 싶어. " " 나랑 내 주변 사람의 안전만 확보되면 " " 걔가 맘 고쳐 먹고 자기도 잘 살려는 노력을 하든 " " 깽판 못 친 것만 분해 하다 잘 살 기회 셀프로 차 버리든 " " 알 게 뭐야? "
짐짓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밀푀유를 입에 넣는 서연이었다. 정말로, 유니온 따위 알 게 뭐냐고 신경 끄고 이렇게 달다구리나 먹을 수 있으면!! 달달하고 부드럽고 크리미하고 꼬수운 맛으로 힐링한 뒤 말을 이었다.
" 죽이고 싶은지 모르겠고 부질없게 느껴지는 건,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살인은 아니었어서가 아닐까? " " 모두를 잃을까 봐 쫄았다는 건 반대로 말하면, 모두가 안전해지길 바란다는 거 같은데 " " 잘못된 커리큘럼 때문에 봉변당하는 경우도 없애고 싶을 거 같고 "
가능만 하다면 그 친구를 다시 살리고도 싶겠지만, 그 얘긴 굳이 하지 않았다. 이루어지지 않을 바램은 제끼고 새봄이를 응원하고 싶었다.
사이코메트리로 책을 안 읽고 내용을 알아낼 수는 없을까? 그럼 공부를 좀 덜 해도 될지도 모르는데. 사실 책 미리 보기(???)는 처음이었다. 원체 책이랑은 담을 쌓고 살았고, 모의고사 때 써 봤더니 인쇄 과정이랑 잉크에 관한 정보만 잔뜩이라 김 샜는걸;;;; 그래서 큰 기대 없이 일단 비교적 만만한 만화책에다 사이코메트리를 써 봤다. 그러자 대강의 줄거리며 그림체가 굳이 정독 안 해도 되겠다 싶게 감이 왔다. 놀라서 만화책을 펼쳐 보니 실제로도 큰 차이가 없다. 뭐야? 이제 인쇄 공정 제작 공정 말고 인쇄된 내용도 알아지는 거야?? 신기하면서도 안 믿겨서 선배랑 읽던 책에도 사이코메트리를 써 봤더니 순식간에 옛날 이야기를 들은 듯했다. 만났다 하면 싸우더니 둘이 커플 되는구나. 옛날 소설이랬는데 완전 로설이네. 검색 결과 내용도 얼추 맞다. 세상에, 이게 된다고? 반가우면서도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거 연구원이 알면... 문제집이란 문제집은 다 가져와서 사이코메트리로 풀라고 들볶을 게 뻔하다. 에비에비!!! 딱 입 다물어야지.
잔뜩 수줍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시인하는 모습에 흐뭇해졌다. 역시 놀리는 보람이 있다니까. 내년이면 철형이 졸업하긴 하지만, 크게 걱정되진 않는다. 둘 다 좋은 사람들이고, 서로를 저렇게 좋아하니까 오래오래 잘 만나는 게 그려진달까. 내겐 미래 예지 능력은 없긴 하지만. 그도 잠시, 서형이 물었다. 정인 쌤이랑 어떻게 됐냐고. 차였을 때, 그리고 임시 훈련기간이 끝났을 때를 생각하면 조금 마음이 아려왔지만, 대답하는 데 오래 걸리진 않았다.
"아아, 그렇지. 얼마전에 정인쌤한테 고백했었어요. 제가 전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서 제대로. 차였긴 하지만 고백하길 잘 한 것 같아요. 고백도 못 해보고 뵙기 어렵게 됐으면 정말 많이 후회했을 것 같거든요." "서형이 해준 조언 덕분에 결심이 섰었어요. 고마워요!"
생각해보면 그 때도 서형이랑 철형 덕분에 후회하지 않는 방향으로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철형의 조언 덕분에 내 마음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고, 서형 덕분에 제대로 고백하고 정인 쌤의 의사를 확인하고, 최대한 미련 없이 마음을 접을 수 있었으니까.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간 끝에,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선하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들에게도 터놓지 못했던 일들이었다. 매년 돌아오는 성하제 때도. 편지는 항상 검열당하고, 인첨공 외부 사람인 엄마들이 그 일을 알았을 때 위험해질까 두려웠었으니까. 전혀 좋은 이야기라고 할 수 없을, 오히려 무겁고 부담이 될 수 있을 만한 이야기를 듣고도, 서형은 한참을 침묵했다. 서형도 이제 열여덟살인데. 많이 놀랐겠다. 무어라 화제를 바꾸면 좋을지 고민하던 찰나, 어깨가 따스하게 감싸이더니 다독이는 손길이 느껴졌다.
순간 울컥했다. 선하의 일을 말하면서도, 선하를 잃었던 상처가 헤집어졌었던 일을 말하면서도 눈물이 나지 않았는데, 울 것 같아졌다. 서형의 품에 기대다시피한 채로 숨을 죽이고 눈을 질끈 감으려니, 서형이 조곤조곤 건네는 말에,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이 흘렀다. 혼자서도 잘 지내야 한다고,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버텨왔는데, 마음 한 구석에서는 서형처럼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털어놓고,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나보다. 그래도 울기까지 하면 서형이 놀라겠다 싶어 숨을 삼키고 눈물을 닦으려니, 뜻밖의 말이 들려왔다. 유니온을 죽이지 않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서형의 말을 들으며 곰곰히 생각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뭐였는지를.
확실히, 살인은 수단에 불과했다. 내가 원하는 건, 서형과 철형, 단풍이, 선생님들 등 내가 마음을 준 사람들이 안전한 거고, 다른 사람들이 선하같은 죽음을 맞는 일이 없어지는 거다. 그것만 이뤄진다면, 박씨 부자가 죽든 말든, 어떻게 살든 상관 없다. 그렇다면, 죽이는 게 아니라, 죽이지 않고도 제압이 가능하도록 협력한다면, 내 바람도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정리되자, 마음도 진정이 됐다. 눈물을 닦고, 고개를 가만히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서형 말대로예요. 유니온을 죽이고 싶었던 건, 그 녀석을 막을 방도가 그것밖에 없을 지도 몰라서라고 생각해서였고, 박형오를 죽이고 싶었던 건... 솔직히 선하를 잃은 울분을 풀 만한 상대라고 생각했던 것도 큰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은, 서형 말대로 유니온이나 박형오를 죽이지 않고 완벽하게 제압할 방법만 있다면, 그놈들이 죽든 말든 아무래도 좋을 것 같아요." "제가 원하는 건, 모두가 무사한 거고, 선하처럼 죽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거니까요. 그리고 확실히, 그런 녀석들 때문에 살인자가 되는 건 손해인 것 같아요."
사실, 모르겠다. 박형오는 그렇다 쳐도, 유니온을 죽이지 않고 제압하는 방법은. 그렇지만, 방법은 있지 않을까? 그녀석이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존재였다면 그렇게 족쇄를 차고 있지도 않을 거고, 철형이 확보한, 레벨 0 이상의 초능력자라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캐퍼시티 다운도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제법 기운이 났다. 그래서 서형을 향해 웃어보였다.
"나야말로 고마워요, 서형. 이야기 들어주고, 서형 생각도 들려줘서요." "덕분에 마음이 개운해졌어요!"
나보다 딱 한살 많을 뿐인데, 서형은 속이 참 깊다. 이런 점 때문에 철형도 서형을 좋아하게 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멋진 사람이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모카고에 오기 전에 서형은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화제도 바꿀 겸, 나도 밀푀유를 포크로 잘라 한조각 먹으며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고보니 서형은 언제부터 인첨공에서 살았어요? 저는 여덟살 때였나, 초등학교 입학할 때 인첨공에 들어왔어요."
//잇기 빡세긴! 덕분에 편하게 이었어>< 서연이가 조언해준 보람이 있는 반응이었으면 좋겠는걸! 그리고 현생 화이팅이야!
살아만 있다면 된다는 지극히 일차원적인 생각... 하긴, 동월이라면 죽더라도 지옥을 깽판쳐서 되살아날 것 같다는 묘한 느낌이 들었다.
" 음... 그치만 네가 힐러면 그거대로 죄책감이 강했을지도. "
먼 과거를 회상해본다. 회복 능력자였지만, 커리큘럼의 부작용인지, 아니면 타고난 체질이 그런것인지... 능력을 사용할 때 마다 두통을 호소하던. 무리하면 코피까지 흘리던 아이가 생각났다. 너무 큰 상처가 아닌 이상 혜우의 치료를 피하려던 이유는, 그것에서 시작된 것이다. 지금 와서야 이미 없는 사람이고, 이제는 그저 추억일 뿐이니. 동월은 가감없이 죄책감의 이유를 애린에게 설명했다.
"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만드는 수 밖에 없나... "
인첨공이니 청어를 구하기는 쉬울 것이다. 하지만 그 고약한 음식을 대체 어디서 만드느냐가 문제인데...
" 윽.... 후우..... 후아..... "
머리를 쥐어싸매자, 그보다 더 위에서 느껴지는 손의 감촉. 동월은 최대한 그 감촉에 집중하며 심호흡을 하고, 이내 공포를 어느정도 떨쳐냈다.
자의식 과잉이라고 매도해봤자 어쩔 수 없다. 동월은 저지먼트에 한해, 그리고 애린에 한해 특히.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앞뒤 안재고 달려올 것이라는 확신감과도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애린은, 괴이부기도 하지 않은가. 자신 다음으로 괴이라는 것과 긴밀하게 지내온 것이다.
은별의 중얼거림이 작게나마 들리긴 했지만 거기에 반응하는 대신, 은별이 벌집을 태워버리고 남아 있는 말벌들도 태워 없애는 것을 쳐다보았다. 어찌어찌 상황이 정리된 뒤, 뭐 때문에 이러고 있었냐는 질문에 뭔가 켕기는 게 있는 듯 입을 꾹 다물고 시선을 피하던 은별이 그물침대를 만들려고 했으나 그 쪽에 말벌집이 있었을 뿐이라는 말을 했다.
"그럼 딴 데다 만들면 되는 거 아니었나...?"
그보다 퍼스트클래스가 그물침대를 직접 만들고 싶어한다는 건 또 신선한 느낌이다. 볼 때마다 죽일 듯이 싸웠던 사람이 이러는 걸 보고 있으니 더욱. 그 와중에 자신이 굳이 긁어 부스럼을 냈다는 걸 알고는 있는지 묘하게 토라진 듯한 목소리를 내는 은별을 빤히 쳐다보던 랑은 여전히 공허한 그 눈빛을 보며 잠시 무슨 생각을 하다가 말벌이 없어졌으니 이제 다시 그물 침대를 만들 거라는 말에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일단 능력으로 주변에 말벌 같은 위협이 없는지 살펴 보고는 있는데...
뭔가 그에 로망이라도 가지고 있는지, 은별은 그물침대를 만들고 싶다는 의지를 확실하게 보였다. 물론 꼭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만들고 싶은 욕망은 퍼스트클래스라고 해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사실 정확히는, 같은 숙소에서 자고 쉬는 것이 조금 불편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물론 자신의 뜻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자신은 저들을 죽일 뻔 했었으니까.
일단 랑은 더 이상 위험 요소를 느낄 수 없었다. 적어도 당장은 위협이 될만한 벌레는 이곳에 없는 모양이었다. 사실 그도 당연했다. 그렇게나 레이저를 쏘아대고 말벌집과 말벌이 다 타 죽을 정도로 뜨거운 열기가 있었으니, 어지간한 벌레는 다 도망치지 않았을까? 어쨌든 그 사실을 알리 없는 은별은 랑의 말에 잠시 생각하더니 싱긋 웃었다.
"괜찮아. 다 태우면 돼."
그럼 벌레도 존재하지 않게 돼. 그렇게 말을 하는 순간, 또 다시 랑은 섬의 숲이 이글이글 불타는 이미지를 얻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못해 아주 제대로 사이렌이 머릿속에서 울리는 것도 느끼지 않았을까? 순수하게 웃고 있지만, 그 웃음 너머의 광경은 그야말로 지옥불이었다.
말하는 걸 들어 보니 그물침대에서 잠을 자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런 환상을 가지려면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어야 한다는 게 개인적인 랑의 생각이었으니까. 물론 경험상 별로더라도 이번만 그런 것일 수도 있다며 다음 번을 기약하고 다시 시도하는 것일 수도 있긴 하지만은... 아마 아닌 것 같다.
"...주변에 남아있는 게 거의 없으니까 태울 필요 없다."
있어봤자 근처 나뭇가지에 앉아 쉬거나 할 나방이나 낮은 수풀 사이를 뛰어다닐 풀벌레 정도겠지. 아까처럼 공격적으로 나설 곤충은 아마 남아있지 않은 것 같다고 말을 덧붙인다.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정말 다 태워버릴 것 같았으니까. 분명 세뇌는 푼 것 같은데, 어째서 행동에 브레이크가 거의 없는 것일까 잠깐 고민도 해 본다. 역시 뭐든지 할 만한 힘이 있어서 그런가.
"그다지, 내가 왜 불편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군."
은별은 벌레에 호들갑(?)을 떨기는 했으나 일단은 조용한 편이었고, 뭔가 어울리지 않게(??) 소소한 것에 대한 로망도 가지고 있었다. 그다지 불편하지도, 두려워할 사람도 아니다... 라고 생각해 봤다.
딱 잘라 이야기하며 은별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고집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지금까지 그런 경험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이어 그녀는 눈을 조용히 감고서 '늘 임무만 수행하던 삶이었으니까.' 라는 말을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 말이 랑에게 전해졌을지, 아니면 전해지지 않았을진 오직 랑만이 알 뿐이었다.
"...모닥불 정도는 피울거야. ...안 그러면 너무 추워서 안돼."
물론 그와 동시에 근처에 구덩이 하나가 크게 파이는 이미지가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위협까지는 아니었는지 랑은 크게 위협을 느끼진 못했을 것이다. 대신에 어딘가에 있을 은우가 으아아악 하는 소리는 전해졌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확실한 것은 은별의 행동이 적어도 랑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왜 불편하지 않고 무섭지 않아? 불과 며칠전 때만 해도 너희를 전부 간단하게 죽여버릴 존재였는데. 생명체의 기본적인 공포는 자신을 죽여버릴지도 모르는 존재에게서 느끼는 법이야. 내가 여기서 손가락을 들어올려서 얍 하면 바로 죽을 수도 있는데?"
정말로 그 정도의 힘은 있다는 듯이, 그녀는 가만히 오른손을 들어올린 후에 검지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붉은색 빛은 조금도 모이지 않았고, 은별은 손을 아래로 내렸다. 이어 그녀는 눈을 감고 조용히 이야기했다.
"...그런 말은 아무도 하지 않지만... 느끼는 이는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게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고 억울하다는 것도 아니야. 단지 사람은 자신을 죽여버릴지도 모르는 존재는 불편하고 무서움을 느끼기 마련이야."
한동안 내가 만들어뒀던 과자집을 철거하는 걸 잊고 있었더니 상하고 썩고 상태가 말이 아니다. 급한대로 녹차로 만들어 싹 흘려보내고서야 한숨 돌렸다. 주변 생물들은 맛있게 먹었겠지만 미관상 좋지 않은데다 관리도 어려우니 이만 보내줘야겠다. 뭐, 그래도 멀쩡할 때는 나도 맛있게 먹었으니까. 그거면 됐지 뭐.
>>538 (흡족)(축축늑대털다이빙) 앗 체중 조절중이었구나! 체중 조절... 쉽지 않지......🫠 크악 힘내는 것이야 랑주는 할수있다! 너무 무리하진 말구...! (복복복복) 어제 낮잠을 좀 자둬서 괜찮은 것 같다! 오늘은 일 없기도 하고🤭 졸리면 보충할 수 있으니 아임파인댓츠오케이인 것이야~
헉 근데 언제 이렇게!!!!!!!!! 오늘 훈련 하실건가요 아니면... 이벤트에서...? (키패드를 반짝거리게 닦아두기)
보통은 없는 게 맞다. 그물침대라는 것이 보기보다 불편하고... 어디까지나 간이 침대니까. 제대로 된 잠자리가 있다면 거의 쓰지 않지. 그렇기에 은별의 말이 이상한 건 아니었으나 뒤에 이어지는 중얼거림에 랑은 눈을 감았다가 한쪽만 천천히 떴다.
"그 불꽃을 계속 켜두고 잘 수는 없나?"
모닥불이라는 요소도 어쩐지 그물침대와 같은 의미로 말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구덩이가 파이는 이미지에 내가 생각하는 모닥불이랑 저 녀석이 생각하는 모닥불은 아예 개념 자체가 다른가? 하고 다시 생각을 정리하려는 랑이었다.
"그건 지금도 똑같다고 네가 말했으니 됐고, 너는 우리가 널 상대할 때 두려움에 떨면서 아무것도 못 했다고 생각하나?"
물론 두려움이 없다고 단언하는 건 아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두려움으로 끝나는 것 역시 아니므로.
"안 할 거면서 그런 가정을 왜 하지?"
가능성을 떠올리고 그에 대비하는 것이 나쁜 건 아니지만, 미래란 것은 지나치게 부정확하기에 가능성을 찾다 보면 그 가짓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만다. 그리고 보통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예측을 하기 마련이고. 그렇다면 굳이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부정적 미래를 알아챌 수 있는 자신이라면 더더욱. 그리고는 이어지는 은별의 말에 자신의 허리춤에 손을 걸치며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며 입을 열었다.
"나도 앞에 선 사람을 죽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
너보다는 번거롭겠지만. 가볍게 그런 말을 던진 랑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간다.
"그렇지만 누구도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저 사람이 날 죽일지도 몰라 하고 불안해하며 살지 않지, 아닌 사람도 있지만 그 경우는 정상이 아닌 거고."
허나 퍼스트클래스라면 경우가 다르지 않나? 랑은 시선을 내린 은별을 빤히 쳐다보았다.
"너희가 자연재해라고 해도 나한테는 지나가는 사람과 별로 다를 게 없다. 휩쓸려 목숨을 잃으면 운이 나빴을 뿐이라고 생각하겠지."
"...그건 너희가 이상한 거야. 보통은 내 정체를 알면 덤비지 않아. 다가오는 이도 없고. 무엇보다... 상대해주는 이도 없어."
그 말은 이전 누군가가 이야기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물론 그것을 랑이, 더 나아가 저지먼트 멤버들 중에서 한 명은 그 이야기를 기억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물론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았다. 지금 와서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으니까. 안 할 거면서 그런 가정을 왜 하냐는 물음에 은별은 아무런 답도 하지 않고 아랫입술을 약하게 깨물었다.
이어지는 랑의 말에 은별은 특별히 더 무슨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자신에게는 퍼스트클래스건 뭐건 특별하지 않고, 그저 지나가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일까. 그 말이 조금 놀랍다는 듯, 은별은 말 없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조금 신기하다고 은별은 생각했다. 저렇게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 같은 이가 많았다면... 정말로 인첨공에 많았다고 한다면, 조금은 많은 것이 변하지 않았을까. ...딱히 그러지 못해서 아쉽다거나 억울하다는 것은 아니야. 그저 예감일 뿐이야."
물론 랑 같은 이가 많아진다고 해서 인첨공이 꼭 변한다는 법은 없었다. 어디까지나 이건 방금 은별이 말한대로 그저 예감일 뿐이었다.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다. 이어 은별은 다시 입을 꾹 다물고 가만히 시선을 회피하다가 가만히 고개를 홱 돌려서 아예 다른 곳을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고은별. 이게 내 이름. 내가 정말로 지나가는 사람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면, 그 이름으로 기억해줘. ...플레어라는 이름. 나는 별로 안 좋아해. ...물론 그렇게 더 많이 불리지만."
이어 그녀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괜히 발을 지면에 베베 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음. 으음. 음. 소리를 연달아내다가 그녀에게 이어야기했다.
인원이 많아진다고 해도 사실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퍼스트클래스와 다른 능력자 간의 격차란 그런 것이다. 지금은 5위지만 7위에 머물러 있던 에어버스터, 그러니까 은우를 상대한다고 가정해도 은우의 전력에 맞부딪히면 과연 멀쩡할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없다. 그럼에도 믿음이라는 것은 신기한 것이라, 동료들과 함께 했다는 이유만으로 플레어에게 맞설 수 있었다. 랑은 그렇게 생각했다. 애초 목적이 사살이 아니었으니 더 그런 것도 있었지만은.
"그건 네가 재미 없어서일지도 모르겠는데."
상대해주는 사람도 없다는 말에, 랑은 농담하듯 그런 말을 던졌다. 물론 진심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주변에 끼칠 수도 있는 피해의 규모가 커서 그렇지, 말벌을 상대로 쩔쩔매고 그물침대에 집착하며, 모닥불을 피우고 잘거라는 말을 하는 상대는 보고 있으면 재미있는 법이다.
"농담이다."
그러나 뭔가 지금 상태라면 은별이 오해를 할지도 모를 거라는 생각이었는지 굳이 농담이라는 말을 붙여주곤, 은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자신과 같은 사람이 좀 더 많았다면...인가.
"적어도 이 섬에서 자는 녀석들은 비슷할 거다."
그리곤 아예 시선을 돌려버린 채 스스로의 이름을 꺼내는 은별을 빤히 쳐다보던 랑은, 눈을 내리깔며 피식 웃었다.
"그러지, 기억해 두겠다, 고은별."
생각보다 재밌게 군다. 분명 아까 전까지만 해도 자기가 연상이라는 걸 강조하거나 하면서 뭔가 다른 느낌 아니었나? 지금은 발을 지면에 꼬고 있고...
"나도 대화를 잘 하는 편은 아니니까, 괜찮다."
그리 이야기하며 어깨를 으쓱인 랑은, 은별이 그물침대를 걸려고 한 듯한 쪽을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재미없다는 말에 은별을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안 그래도 공허한 눈빛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암울하고 침울하게 보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내 그녀는 표정을 원래대로 돌리면서 인정할 것은 분명히 인정하겠다는 듯, 굳이 더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농담이다라는 그 말에 그녀는 순간 움찔하더니, 볼을 약하게 부풀리다가 다시 볼을 집어넣었다. 조금 분하긴 했지만, 그래도 굳이 따지지는 않겠다는 듯, 은별의 입은 꾹 닫혀있었다.
"...그래서 신기해. 너희들 같은 부류는 잘 없어. ...그리고 그건 에어버스터도 비슷하게 생각할거야. 강한 힘을 지니면 많은 것을 얻지만 많은 것을 잃어. ...너희들과 같이 있는 에어버스터는 너희들과 있을 때 이런 이야기는 안하지? 그렇다면 언제 한번 에어버스터의 삶을 지켜봐. ...그 애도 필시, 주변에는 아무도 없을테니까."
친구로 지내는 있을지도 모르나 그마저도 필시 일정한 선 안으로는 들어오지 않고 멀리서 지켜볼 뿐. 그것이 퍼스트클래스의 삶이었다. 하물며 더 강한 이들은 그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절대로 덜하지 않았다. 외로움. 하지만 납득. 체념. 그 단어들을 조용히 이야기하며 은별은 가만히 고개를 하늘로 들었다. 그러다가 그녀의 말에 은별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꽤 잘한다고 생각해. ...너 그거지? 저지먼트 내부에서 큰언니같은 존재인거지?"
내가 볼 땐 그래. 전에 읽었던 만화책에선 대충 너 같은 애는 그런 포지션이었어.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은별은 맞춘 거 아니냐는 듯이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곧 또 다시 들려오는 랑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물침대를 잡은 후에 가볍게 걸었다.
"좋아. ...이렇게 한 후에 나중에 잘 때가 되면 자고... 불을 피워놓으면 감기도 걸리지 않아. ...아니면 그냥 작은 태양을 만들어놓고 잘까."
그 순간 랑은 섬의 80%가 싹 날아가버리는 대형참사를 예감하고, 머릿속에서 사이렌이 연쇄적으로 울리는 것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봐도 그쪽 계열인데? 그렇게 생각하며 은별은 가만히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당사자가 그렇게 이야기를 하니 은별은 그에 납득하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어쨌든 태양을 만든다면 어느 정도 크기로 만들면 좋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은별은 가만히 머릿속으로 연산을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가락에서 붉은색 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랑의 말. 운치가 있으려면 모닥불로 충분하다는 말에 은별은 가만히 연산을 풀고 랑을 바라봤다. 확실히 그도 그렇네. 그렇게 납득하며 은별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지먼트 멤버들은 모르는 사이에, 랑은 또 다시 저지먼트 멤버들을 구한 셈이었다.
"고마워. 도와줘서."
싱긋 웃으면서 그녀는 가만히 손을 풀었다. 그리고 긁어모은 나뭇가지들을 바라보다가 그녀는 근처에 있는 다른 나뭇가지들도 하나하나 모으기 시작했다. 어느덧 모닥불을 피울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쌓인 것을 바라보며 그녀는 후우 숨을 내뱉었다.
"좀 더 어두워지면 그때 피워야겠어. ...그보다 왜 그렇게 도와주는거야? 너도 여기서 자게?"
결국 고백했었구나. 후회가 덜 남는 방향이긴 했던 눈치지만, 그래도 실연이다. 마음이 좋기만 했을 리 없지. 나였다면... 정줄 잡고 처신하기 무척 힘들지 않았을까. 어쭙잖게 위로할 사안도 아닌 거 같고... 하여 그저 고개나 끄덕였다.
" 큰 결정 했었네. 쉽지 않았을 텐데, 고생했어. "
이래저래 무거운 화제만 던져 버린 거 같다. 어깨동무를 하고 토닥이는 게 오버는 아닌가 뻘했지만, 다행히 새봄이는 기대어 왔다. 기분 탓일까. 새봄이의 몸이 잘게 떨리는 것도 같다. 그렇게 있다 보니 새봄이의 체구가 작다는 실감이 확 났다. 이제 고1이고 이렇게 작은 아인데, 혼자 열심히 버텼다. 울음이 나면 편히 울어도 된다고 말할 뻔한 걸 꾹 참고 토닥이기만 했다. 울음 터진 걸 남이 눈치 채면 거북하고 민망할 수 있으니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새봄이의 호흡이 서서히 차분해지는 거 같았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느껴졌다. 이윽고 새봄이가 살짝 잠긴 듯한, 그래도 감정적이기보단 침착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유니온 부자를 죽이길 바랐던 이유, 자신이 정말로 바라는 것, 살인자가 되면 손해란 판단까지. 물론 새봄이도 나와 비슷한 걱정(유니온을 죽이지 않고 제압이 가능할지)이 들겠지. 그래도 새봄이 말마따나 저지먼트엔 강자가 많고, 퍼클들도 리버티인 웨이버 말곤 우리 편을 들어 주기로 했고, 유니온이 이 세계를 좌지우지하려도 내 걱정만큼 마음대로는 못하리라는 미신도 새삼 샘솟았다. 내 걱정만큼 마음대로 다 할 수 있었다면 인첨공을 이미 끝장냈거나 자기 입맛에 맞는 세상을 구축했을 거 같거든. 하여 웃으며 고맙다는 새봄이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새봄이는 물론(마음이 개운해졌다니 일단 다행이다) 나 스스로도 북돋고픈 마음을 담아
" 잘될 거야. " " 선배가 그러더라. 우린 함께 살 거라고 " " 난 그 말이 희망이 되더라. " " 살아남자. 할 수 있는 일들 차곡차곡 하면서 "
선배만큼 화끈한 효과를 내긴 역시 어렵지만, 그래도 그렇게 일단락하고 나니 속이 좀은 편해진 것도 같다. 새우깡은 다 먹었는지 뿔뿔이 흩어지는 갈매기들을 구경하는데 좀은 검연쩍은 질문과 뜻밖의 정보가 같이 왔다. 초1 때? 완전 꼬꼬마 때 왔네. 그럼 담당 연구원이 거의 주양육자에 가까웠겠는데?
" 나? ㅎㅎㅎ 얼마 안 됐어. 올해 초여름에 왔나? 원랜 보육원에서 살았는데 왜, 보육원은 나이 차면 나와야잖아. 달리 갈 데도 없어서 왔어. " " 근데 초1 때 왔다니 @ㅁ@;;;; 간도 크다, 너!! 연구원이 어린이라고 얕잡고 제멋대로 부려먹는 어른이었으면 큰일 날 뻔했잖아;;;;;; "
리버티 머저리 수박들. 뭐가 학생을 위하는 연구원은 없다여? 당장 새봄이 같은 케이스는 연구원 하나 잘못 만났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차일드 에러로 전락해서 마루타 됐겠구만;;;;;; 물론 연구원마다 다르기야 다르겠지만, 연구원 거르고 믿는 게 유니온 부자의 따까리라니, 노답 노답 핵노답이다. 으이구;;;;;;;
이 녀석, 좀 귀찮잖아. 그동안 보아 왔던 플레어의 이미지가 고은별이라는 이름과 함께 와장창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일단 그보다는 이 자리에서 태양을 만들어 섬을 날려버리려는 듯한 은별을 제지하는 게 먼저였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제안은 성공적으로 받아들여진 듯 했다. 이윽고 모닥불을 피울 만큼의 나뭇가지가 모이자 도와줘서 고맙다는 은별의 목소리가 들렸다.
"온 김에, 그냥."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섬을 날려버리려고 할 게 뻔해서, 라는 말을 차마 꺼내지는 못하고(예전이었다면 그냥 이야기를 했겠지만) 그냥 온 김에 도와준 거라고 이야기하던 랑은, 여기서 잘 거냐는 물음에 고갤 저었다.
랑의 생각과는 전혀 관계없이 은별은 랑을 착한 이라고 인식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역시 큰 언니 포지션이 맞다고 동시에 인식했다. 물론 랑은 분명하게 부정했지만 부끄러워서 그런 것이겠지. 혹은 둔감하거나. 그렇게 자기 멋대로 인식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남의 말에 참 귀를 기울이지 않는 타입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런 제 생각까지 은별은 굳이 랑에게 언급하지 않았다.
"그럴 생각이야. 나도 딱히 너희들이 노는 것을 방해할 생각 없어."
즉, 다른 이들이 있는 곳에는 굳이 가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물론 이제는 서로 돕기로 했다지만, 그래도 아직 은별에게 있어서 저지먼트는 조금 어색한 존재들이었다. 그와 동시에 가까이 가기에는 조금 망설여지는 존재. 그렇게 말을 한 그녀는 자신의 두 손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리고 어두운 표정을 지으면서 눈을 감았다. 이어 그녀는 그물 침대로 다가간 후에 그대로 점프해서 위로 뛰어들었다.
"...응. 편안해."
생각보다 힘들지 않게 올라간 그녀는 그대로 제대로 자리를 잡고 하늘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고개만 살짝 돌려 그녀는 랑의 얼굴을 바라봤고, 이어 그녀에게 물었다.
"헤헤, 고마워요. 그래도 이만하면 좋은 첫사랑이었던 것 같아요. 선생님이 제 고백을 안 받으셔서요." "좋아할 만한 사람을 좋아했다! 고 정리할 수 있었달까요!"
가능성은 낮지만 선생님이 내 고백을 정말로 받으셨다면... 어휴, 생각하고 싶지도 않네. 역시 어른을 좋아하면 차이는 게 복이라니까, 역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 싶은 걸 참으려니, 서형이 어깨를 톡톡 두드려주며 격려해줬다. 잘 될 거라고. 살아남자고. 그 말에 더욱 기운이 샘솟아, 활짝 웃으며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그럼요, 같이 살아남아요!" "나도 지금 할 수 있는 일들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해 싸울래요." "못된 놈들이 멋대로 활개치지 못하게요!"
기운 내야지. 다 잘 될거다, 우린 모두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 거다. 그렇게 믿으면서 뭐라도 하면 뭐라도 될거다. 여태껏 그래왔으니까.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일 찰나, 서형의 대답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서형, 보육원에서 자랐구나. 서형의 보호자를 상상한 적은 없지만, 뜻밖이긴 하다. 괜한 말을 꺼냈나 싶으면서도, 선선히 보육원 출신이라고 밝히는 서형의 태도가 담담해보여 말을 고를 찰나, 내 말에 서형이 더 놀라버리자, 멋쩍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히히, 그러게요. 어렸을 땐 뭣도 모르고 선하가 간다니까 따라서 왔는데, 초능력자가 되려면 그렇게 개고생해야 하는지 들어오고서야 알았지 뭐예요. 그래도 연구원 선생님도, 연구소 소장님도 좋은 분들이라 살았지만요." "서형이야말로 대단해요! 올해 초여름이면 몇달밖에 안됐는데도 직장도 있고, 레벨도 엄청 높잖아요. 생존력 쩌는데요!"
보고 들을수록 연상이라는 게 잘 믿겨지지 않는다. 저지먼트 내에 있는 순진한 후배들이랑 더 비슷한 것 같은데... 어쩌면 그 강함이 순수함을 유지하는 요소가 된 게 아닐까 잠시 생각해보던 랑은, 은별도 딱히 저지먼트가 노는 걸 방해할 생각은 없다는 말을 하자 어깨를 으쓱였다.
"다른 녀석들은 너랑 놀고 싶어 할지도 모르지."
어찌 되었든, 지금은 혼자만의 시간이 좀 필요하다는 거겠지. 랑은 그렇게 상황을 파악하고는 몸을 돌려 자리를 뜨려고 했다.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은별이 이름을 묻지 않았다면.
그 부분은 아마 랑과 은별의 생각이 평행선으로 지속될지도 모른다. 적어도 은별은 그럴리가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으니까. 오히려 자신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하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은별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만큼 자신은 너무나 멀고도 위험한 존재였으니까. 자신의 능력 한번이면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이 증발되니까.
"...외자구나. 기억해둘게."
나랑. 나랑. 나랑. 3번 정도 조용히 그녀의 이름을 부르던 은별은 미소를 머금었다. 기억하기 쉬운 이름이라서 좋네. 눈빛은 여전히 공허했으나, 표정은 상당히 밝았다. '나랑 같이 놀자' 같은 느낌으로 기억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약간의 덤이었다.
이어 랑이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자 그녀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리고 상반신을 들어올려 랑을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어리둥절해지고 만 서연이었다. 차여서 좋은 첫사랑? 이게 뭔 얘기래?? 자길 찼기 때문에 좋아할 만한 사람이라고 여긴 거야? 건 너무 자학적...
그러다 뒤늦게 나이 차이에, 정확히는 새봄이가 미성년자라는 점에 생각이 미쳤다. 미성년자의 고백을 냉큼 받는 성인이라면 신뢰할 수 없다고 여겼나 보구나. 짝사랑 중이면서도 냉철하네. 저 정도면 걱정 없겠다. 함박웃음과 함께 씩씩하게 끄덕이며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모습을 봐도, 굳이 걱정 안 보태도 알아서 잘하리라는 확신이 든다. 초1 때 외부와의 연락이 제한되는 곳에 들어와 버린 무모함이 되살아나지만 않는다면!
무모했음을 선선히 인정하면서도 새봄인 여느 때와 같은 텐션으로 발랄하게 재잘거렸다. 새봄이네 연구소도 커리큘럼 빡셌나 보네. 똥색약 같은 걸 과다 복용해 낭패 본 적도 있으려나? 제 커리큘럼을 되짚던 중 얼이 나가고 만 서연이었다.
" ......@ㅁ@;;;;;; " " 어, 그, 저... " " 알바는, 나도 연구원 덕 봤어. 연구원이 주선해 준 자리거든... " " 생존력 있어야지~ 먹고 살자고 온 건데 "
근데 레벨은... 글게. 왜케 빨리 올랐지;;;?? 진짜 박형오네 연구소에서 본 그 내용대로, 저지먼트에 들어온 덕인가? 부장이 퍼클이고 고렙들이 많아서? 죽기 싫으면 뭐라도 해야겠단 위기감에 빡커리큘럼 해서?? 그렇게 넘기기엔 구멍이 있다. 선배는? 부장은 물론 고렙 부원과 더 오래 같이 있었고, 커리큘럼도 나보다 더 열심히 하면 했지 대충 하진 않았을 텐데 레벨 0인 게 설명이 안 되잖아!! 박형오가 기록한 것 말고 다른 변수(운빨 같은 거)가 더 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겠다. 아님 선배의 진짜 능력(모르긴 해도 희망을 심어 주는 계열이리라 믿고 있다)을 알아내지 못하고 헛다릴 짚은 거거나!!
그러는 사이 새봄이는 컵에다 물을 따라 주더니 그 물을 다시 아메로 바꿔 줬다. 내가 다 마셔 버린 건 언제 봤을까. 세심하다. 고맙다고 인사하고는 아메를 한 모금 더 넘기고 사브레 쿠키를 먹었다. 우리 보육원 분위기?
" 그냥 보육원이지, 뭐. 어떤 이유로든 부모도 친척도 못 키우는 애들이 모여 사는. 먹을 게 엄청 부족하진 않은데 맛있는 걸론 전쟁(???) 벌어지고, 기상 시간 취침 시간 식사 시간 정해져 있고 빨래랑 청소 직접 해야 하고. 정에 고픈 입장들이지만 사람 마음이 곧잘 변한다는 건 알고 있고, 뭐 그 정도? " " 그런 환경이라선가? 어...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안 되겠다 싶으면 얼른 포기해라, 가지지 못한 거에 미련 갖지 말고 가진 것에 감사해라, 그런 얘길 주구장창 들었어. " " 글타고 우리끼리 끈끈하게 뭉쳤냐면 그렇진 않아. 누구한테 기댈 생각 말고 홀로서라며 갠플을 강조했거든. "
그런 방식이 다 좋게만 받아들여졌던 건 아니지민, 크면서 이해되는 부분이 늘어나긴 했다. 보육원 밖 사람들보다 포기하는 게 많을 수밖에 없고 퇴소하면 어쨌든 혼자 살아가야 하니, 혼자 아등바등하다 지치지 말고 약점 노출했다가 호구 잡히지 말라는 취지 아니었을까.
그나저나 답으로 충분하려나? 너무 티미는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멋쩍게 웃으며 아메를 마저 마시는 서연이었다.
울 학교 급식 엄청나다. 전엔 잔반을 원재료로 만든 음식을 제공한다고 공지해서 새봄이가 차력쇼(???)까지 벌였는데, 오늘은 곤충을 원재료로 만든 음식을 제공한단다. 미쳤나 봐;;;; 딴 거 먹을까 진지하게 고민하다 급식 줄이 확 줄어들었기에 걍 들어갔다. 만약 곤충의 원형이 보이는 음식이면 바로 버리고 나올 생각이었다. 새봄이 능력으로 조치했겠지, 설마 곤충이 그대로 보일라구?? 역시나 받아 보니 곤충이 들어갔다는 돈가스는 평범한 비주얼에 평범한 맛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입에 문 채로 사이코메트리를 써 봤더니, 애벌레 사체를 깔아 놓은 통에서 자라난 주황색 촉수(???)를 왕창 갈아 넣었다... 징그러!!! 사이코메트리 괜히 썼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내 밥벌이는 내가 해야 하고, 능력을 증명해야 먹고 살 수 있고. 그런 의미에서 레벨이 빨리 오르지 않았다면 곤란했을 것 같긴 하다. 카페에서도 월급은 후하게 받고 있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도 계속 연구소 숙소에 있을 수도 없고 말이지. 서형이 설명해준 보육원은 여느 미디어에 나오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모두가 사이좋은 곳도, 나쁜 원장이 휘두르는 지옥도도 아닌, 그냥 사람 사는, 어른이 될 준비를 빡세게 시키는 곳 같다고 해야할까.
"그랬구나... 이래저래 빡셌겠네요." "어떻게 보면 연구소랑 조금 비슷하기도 하네요. 많은 아이들이 모여 살고, 빨리 어른이 되게끔 키운다는 점에서요."
연구소마다 분위기는 다르겠지만, 우리 연구소는 서형의 보육원과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물론 보육원에서는 커리큘럼이라는 이름의 생고문은 없기야 하겠지만, 각자의 일은 각자가 알아서 해야 하고, 자주적인 부분을 강조하고. 나랑 선하처럼 삼삼 오오 친하게 지내기도 하지만 결국 기본적으로 혼자서 살아남아야 하는. 이야기하다보니 먹을 게 거의 다 떨어져간다. 배는 부른데 묘하게 입이 심심하단 말이지. 서형은 어떨까?
"그나저나 서형, 뭔가 더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저기 바닷물 퍼다가 만들게요!"
라고 말하고 보니, 슬슬 바닷바람이 차긴 하다. 서형이 출출하다면 좀 더 만들고, 배부르다면 슬슬 들어가자고 권해야지.
미성년자라도 성인 취급. 그러네. 난 보육원 퇴소하고 온 참이라 그런 식으론 생각 못 했는데, 바깥 세상보다 빨리 어른이 되어야 하는 환경이라고 볼 수도 있겠구나. 뒤이어 새봄이는 울 보육원에 대한 소감을 이야기했다. 가족이 있는 아이들한텐 상대가 안 되지만 울 보육원 정도면 좋은 곳이라(인첨공의 차일드 에러 같은 경우까지 생각하면 나 같은 처지엔 낙원에 가까웠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빡셌겠다는 얘긴 쑥스러웠지만, 연구소랑 비슷하단 얘기엔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 듣고 보니? 원가족이 보호자가 아니라는 점까지 완전 비슷한데? "
빨리 어른이 되도록 키운다, 울 보육원 방침의 핵심을 요약한 거 같다. 덕분에 기한을 다 안 채우고 퇴소하고도 인첨공에 비교적 빨리 적응했으니, 적어도 나한텐 울 보육원 방침이 성공한 셈이겠다.
그때 새봄이가 더 먹고 싶은 게 없냐고 물어왔다. 카레에 딸케에 밀푀유에 쿠키까지 먹었는데? @ㅁ@
" 배불러 ㅋㅋㅋㅋㅋㅋㅋ "
한껏 빵빵해진 배를 드러내듯 바닥을 짚고 몸을 젖힌 순간, 아이디어가 머리를 스쳤다. 아까 갈매기들이 새우깡에 환장했었는데~
" 모래 퍼다가 생선회 새우회로 만들면 갈매기들이 어쩔까? "
모래가 먹거리로 바뀌는 상황에 정신을 못 차릴까? 이게 웬 먹거리냐며 미친듯이 달려들까? 어느 쪽이든 볼 만할 거 같다.
배부르다며 배를 내밀어보이는 서형을 보며 덩달아 배를 통통 두드리며 웃으려니, 서형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꺼냈다. 모래 퍼다가 생선회 새우회로 만들면 갈매기들이 어쩌겠냔다. 듣고 보니 재밌을 것 같다. 마침 남은 과자를 노리려는지 주변에서 갈매기가 빙빙 날고 있기도 하고.
"그거 재밌겠는데요? 한번 해볼래요~!"
빈 도시락 통에 손으로 모래를 꾹꾹 눌러담았다. 회는 처음이긴 한데, 손질하는 과정을 요리라고 본다면 불가능할 것도 없겠지. 모래가 담긴 도시락 통을 노려보며 정신을 집중했다. 통은 말고, 모래랑 남은 음식물만... 그나저나 뭐가 좋을까, 새우랑 광어, 연어정도로 할까. 조금 비릿할 수도 있지만 어차피 새 먹이니까 레몬은 뿌리지 말고... 비늘을 긁어 제거한 다음에 뼈를 잘 바르고 먹기 좋게 자르면... 완성! 코앞으로 비릿한 냄새가 훅 풍길 찰나, 푸드덕거리는 소리가 가까워져서 눈을 떠보니, 아니나 다를까 주면을 맴돌던 갈매기떼가 엄청 늘어났다! 한줌 쥐어서 모래밭에 던져보니 맹렬하게 달려들어 낚아챈다. 으아, 물컹하긴 하다.
"ㅋㅋㅋㅋㅋㅋ 어떻게 만들어졌든간에 먹을거기만 하면 되나보네요." "서형도 해볼래요? 촉감이 엄청 좋진 않긴 한데, 은근 재밌어요~!"
//아이디어 좋다! ㅋㅋㅋㅋ 덕분에 훈련도 편하게 떼웠어! 고마워>< 곧 있으면 스토리니까 슬슬 마무리할까?:>
섬에서 돌아오고 또 며칠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아마 수능도 요 전에 치지 않았을까요? 그동안에 리버티의 작은 소동은 여러번 있었지만, 그래도 큰 규모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꽤나 귀찮지 않았을까요? 여기저기서 소동을 부리지만, 막상 출동하면 금방 사라져버리는 것이 참으로 이상하기 그지 없는 일이었습니다. 딱히 학구가 정해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2학구, 3학구, 4학구. 가끔 1학구에서도 소동이 나긴 했을 정도니까요. 다만 목화고 저지먼트는 3학구에서 일어나는 소동에만 출동했습니다. 그렇기에 그나마 피로도는 조금 나았을지도 모릅니다. 안티스킬 쪽은 아예 죽을 맛이었다고 하니까요. 어쨌든 그런 사정은 넘어가도록 합시다.
여기는 2학구입니다. 그리고 저지먼트 멤버들 중 시간이 되거나 여건이 되는 이들은 모두 2학구에 있었을 것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뉴트로미니컬 개발 연구소'에서 목화고등학교 저지먼트를 부른 탓이었습니다.
뉴트로미니컬 개발 연구소 뒤에는 인천바다가 푸르게 펼쳐져있었습니다. 여기저기에는 공장이 있었고, 마치 원자력 발전소처럼 커다란 원형 건물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아주 커다란 연구소가 주로 보였습니다. 셔틀버스가 움직일 정도로 부지가 넓었는데, 저지먼트 멤버들이 있는 곳은 바다 근처에 있는 하얀색 1층 형태의 작은 연구소 건물의 입구였습니다.
"아이고. 학생 여러분. 여기까지 온다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제가 바로 이 연구소의 소장입니다."
어림잡아 40대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 연구소 건물에서 나와 그들에게 모습을 보였습니다. 싱긋 웃는 것이 상당히 사람이 좋은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일단 에어버스터에겐 이야기를 하긴 했는데... 여러분들은 뉴트로미니컬 에너지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시나요?"
일단 그 부분을 확인해보려는 듯, 소장은 모두에게 질문했습니다. 아는대로만 답하면 되지 않을까요?
은우 선배네 섬에서 돌아오고도 며칠 째. 그동안은 제법 정신 없었다. 리버티가 여기저기서 소동을 일으켜댔기 때문이다. 하도 불려다녀서 이젠 무슨 소동이었는지도 기억이 희미하다. 그리고 오늘은 2학구에 있는 뉴트로미니컬 개발연구소에 와 있다. 무슨 일로 우릴 부른 걸까. 의구심을 품은 채 연구소장님께 인사하려니 처음부터 조금 어려운 질문. 뉴트로미니컬 에너지라... 거의 모르는데. 뭐, 모르면 모른다고 해야지. 무지는 죄가 아니니까!
2학구의 연구소에서 호출을 받았기에 도착했다. 한양은 입에 콜라맛 막대사탕을 문 채로 연구소를 보기 시작했다. 사탕을 다 먹은 한양은 다른 사탕을 먹으려고 주머니를 뒤지는데, 웬 구겨진 종이쪼가리 하나가 잡힌다. 그것의 정체는 9로 떡칠이 되어 있는 수능성적표. 한양은 그 성적표를 다시 구기고, 주머니에 넣고는 딸기맛 막대사탕을 까서 입에 집어넣기 시작한다.
" 바다... "
한양은 약속한 장소에서 푸르고 넓은 바다를 발견한다. 잔잔하게 파도치는 바다가 한양에게 무슨 영향을 줬는지는 모르겠지만, 한양은 멍하니 바다를 보고 있었다. 곧 연구원으로 보이는 여성이 나타나며 뉴트로미컬 에너지에 대해 아는 것이 있냐고 묻자, 한양은 고개를 돌리고 대답한다.
" 이름으로 추정되는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화학적 접근을 통해 얻은 에너지요~ '뉴트로' 와 '케미컬'의 합성어로 보이니깐요. 제 시점에서는 리버티한테 뺏기면 뭣 되는 에너지요~ "
같이 온 세은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혜우를 바라보며 말을 걸었습니다. 눈밑이 퀭한 것이 너무나 신경이 쓰인 모양이었습니다. 이어 은우는 소장의 물음에 조용히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다른 이들도 말했다시피 저희 쪽도 아는 것은 없어요. 설명해주시겠습니까?"
"그래야죠. 일단 어디서부터 설명을 하면 좋을까."
원자력보다 100배 강하다는 것. 새로운 화학적 접근을 통해 얻은 에너지. 리버티에게 뺏기면 안되는 에너지. 그 모든 것이 다 맞다고 이야기를 하며, 소장은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일단 뉴트로미티컬 에너지는 2학구의 자랑인 퍼스트클래스 제 2위의 '플레어'의 기술을 이용해서 만들어낸 새로운 개념의 핵에너지에요. 기존 원자력과는 다른 구조로 만들어지는 에너지인데... 이 부분은 아무래도 저희 쪽 기술의 핵심이기도 해서, 자세하게 말해주긴 힘들고... 방금 저 학생이 말한 '뉴트로'와 '케미컬'의 합성어가 맞답니다. 일단 이 에너지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 원자력과는 다르게 원폭이 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거예요. 그리고 기존 원자력 에너지보다 100배는 더 강력한 에너지이기 때문에, 이 에너지를 사용하면 대한민국은 더 이상 에너지를 수입할 필요가 없어요. 이 에너지만으로도 충분히 지낼 수 있기 때문에 전기비가 약 70~80% 정도 하락하는 효과가 있답니다."
긍정적인 요소를 먼저 이야기한 소장은 이어 부정적인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다만 폭발하게 되면 2학구 정도는 아주 가볍게 소멸할 정도로 위험한 에너지이기도 해요.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안전장치를 몇겹으로 해서 설사 터진다고 하더라도, 폭발이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철저하게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어요. 또한 물에 상당히 약한 에너지이기도 해요. 혹시라도 과열하면 그땐 저기에 있는 바닷물을 이용하면 바로 열을 내려서 안정시킬 수 있답니다. 즉... 터지게 되면 대형참사가 일어나지만, 그만큼 철저한 대비를 하고 있어요. 아무튼... 우리 2학구에서 준비하고 있는 신세대 에너지이고, 어제 막 그 연구 개발이 끝났어요. ...하지만 안티스킬에서 '리버티'가 노릴 가능성이 매우 크니까 주의를 하고.. 만일의 경우는 그..이름이 뭐였더라? 진민호라는 분이 여러분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도움이 될 거라고 하더라고요. 안티스킬은 지금 여러모로 여기저기서 터지는 사태를 대처하기도 바빠서 움직일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이어 그녀는 가만히 뒤로 돌아 연구소를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연구소를 가리켰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 연구소에서는 에너지를 모두 완성하긴 했지만... 리버티가 노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실제로도 며칠 전에, 이 연구소를 노리고 공격하는 이들이 있긴 했거든요. 그래서 그 데이터를 클라우드 서버에 백업하는 것과는 별개로.. 데이터 원본을 여러분들에게 맡기려고 해요. 그게 가장 안전하다고 저희는 판단했거든요. 부탁해도 될까요?"
그 물음이 나오자 은우는 가만히 모두를 바라봤습니다. 너희들은 어쩌고 싶냐는 무언의 물음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저지먼트가 나서기에는 조금 더 큰 일이었습니다. 받아들이고 말고에 대한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한편 혜우는 그와는 별개로, 저편의 바다 쪽에서 파도가 묘하게 약해진 것 같은 볼 수 있었습니다. 기분 탓일까요? 이거? 하지만 딱히 바다 쪽에서 특별히 보이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저 파도가 평소보다는 조금 약한 것 같아 보일 뿐입니다.
빼앗기더라도 백업 데이터가 있다면 다시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설사 본래 데이터가 유실되더라도 큰 손해는 아니지. 그게 유출되어 바깥으로 새어 나가거나 누군가가 사용하는 것만 아니라면 백업된 파일로도 충분히 연구를 진행할 수 있을 거다. 그러니까 백업본이 있는 이상, 원본 데이터든 백업 데이터든 빼앗긴다면 그 데이터 째로 없애버려도 된단 얘기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랑은 자신을 포함한 저지먼트를 바라보는 은우에게 고갤 끄덕였다.
"리버티가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부딪히게 되어 있다. 우리 쪽에서 상대가 취할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는 패를 쥐고 있다면 상대하기 편하겠지. 난 맡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그렇게 간단히 의견을 전달하곤, 평소처럼 주변에 혹시 위협적인 반응이 있는지, 없는지를 파악하듯 능력을 전개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강 들어보니, 그 뉴트로미니컬 에너지라는 건 제법 효율적이지만 동시에 아주 위험한 에너지인가보다. 그리고 그 에너지에 대한 연구 데이터를 빼앗기면 한양 선배 말대로 큰일나는 모양이고. 그런데 연구 데이터를 클라우드서버에 백업하는 한편 우리가 데이터 원본을 지켜야 한다는 모양인데, 백업본이 있다면 원본은 없어도 되지 않나? 가령 그 데이터가 든 장치를 달콤하게 만들어버리면 데이터는 클라우드 서버에서 안전하고, 빼앗길 원본도 없고. ...아니다, 그럼 우리가 여기 올 필요가 있을 리가 없지. 뭔가 이유가 있긴 하겠지. 그리고 리버티 손에 원자력보다 백배 위험한 에너지가 들어가는 건 사양이다. 그럼 유니온 손에도 넘어갈 가능성이 클 거 아냐.
"저는 찬성이에요!" "근데, 리버티의 손에 들어갔을 경우에는 원본 데이터를 파기해도 되나요?"
그러니깐 그냥 개쎄고 개쩌는 에너지라는 말이네. 딱히 이거 말고는 추가적으로 덧붙일 것도 없어. 에너지가 폭주할 것을 대비하고 있다고는 하지만..왠지 모르게 불안한 걸? 바닷물을 이용해서 열을 내리면 된다고는 하는 것에서 갑자기 신아라가 생각나는 걸?
" ........ "
" 백업 데이터를 없애는 게 어떨까요? 막말로 걔네들도 관계자나 소장님을 협박해서 클라우드의 보안을 뚫어서 데이터를 가져가면.. 아마 우리에게 뺏는 것보다 더 쉽게 가져갈 듯 싶은데요.. 백업 데이터가 있다는 가정은 녀석들도 쉽게 할 테니깐요. 그러니깐 우리에게 원본 데이터를 뺏기 전에 소장님을 먼저 습격하겠죠? 그게 훨씬 쉽고 간단하니깐요. "
" 설령 우리가 녀석들에게 원본을 뺏기기 직전이면 우리가 먼저 원본을 파기해버리면 될 것이고.. 녀석들의 손에 넘어가기 직전이면 아무도 못 쓰게 만들어버리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해서요. "
한양은 사탕을 우물우물 녹이며 말한다.
" 그냥 쇠뿔도 단 김에 뽑으라고, 지금 바로 여기서 지워버릴까요? 그리고 데이터는... 우리가 맡는 게 좋아보이네요. 최대한 안 뺏기게 노력해볼게요. "
혜우는 바다 쪽으로 간 후에 잠시 그곳을 지켜봤습니다. 역시 파도가 생각보다 낮은 상태입니다. 물론 파도가 낮을 수도 있지만, 일반적인 파도가 맞긴 한가 싶을 정도로 너무나 잔잔합니다. 아니. 그걸 떠나서 물이 조금씩 빠지는 분위기입니다. 지금이 썰물 때였던가요? 그건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마치 썰물인 것처럼 물이 천천히 뒤로 빠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끼룩 -끼룩 -끼룩
그리고 여기저기서 갈매기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근처 나무에선 갈매기 2마리가 혜우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기도 합니다. 새우깡 주는 것이 좋을까요?
"아하하. 백업데이터는... 그게... 대표이사님이 연구 성과를 올려야 한다고 닦달해서... 저도 개인적으로 없애고 싶지만 백업데이터는 대표이사님에게 보여줘야하는 자료라서 삭제할 수 없어요. 하지만 일단 올린 이상, 제가 아니면 데이터를 열람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썩을 자식."
소장이 난감한 목소리롤 웃음소리를 내뱉자 은우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습니다. 세은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은우의 옆구리를 손으로 콕콕 찔렀습니다. 조용히 하라는 듯, 찌릿 바라보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우씨- 하는 목소리가 은우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덤이었습니다.
"폭발만 해요. 방사능은 뿌려지지 않아요."
"물론 파기해도 괜찮아요. 어차피 에너지 자체는 이미 생산해서 2학구에 제공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데이터가 완전히 없어진다고 하더라도, 그 에너지를 다시 분석하면 조금 시간이 걸리지만 다시 만들 수 있거든요."
모두의 물음에 대답하며 소장은 저 편에 있는 구체 모양의 건물을 손으로 가리켰습니다. 아무래도 저기서 에너지를 생산하고 제공하는 모양입니다. 말 그대로 저기가 발전소인 모양입니다. 하얀색 연기조차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정말로 환경에는 조금의 악영향도 없는 모양입니다. 엄청난 에너지인 것이 아닐까요?
한편 랑은 뭔가 불길한 느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미지가 상당히 먼 곳에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정확하게 어떤 이미지인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확실한 것은 자칫 잘못하면 여기에 있는 모두가 '죽음'에 다다를지도 모르는 느낌은 닿을 수 있었습니다. 그건 혜우의 능력으로 대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숨을 쉬기 힘든 이미지. 그리고 움직일 수 없는 이미지. 더 나아가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벌어져 대처할 수 없는 '죽음'의 이미지가 랑의 머릿속으로 연출되었습니다.
대체 이건 무슨 의미인걸까요? 장벽을 조금만 뚫는다면, 조금만 더 나아간다면 잡힐 것 같지만 묘하게 잡히지 않습니다.
"물 빠질 시간? 아. 그러고 보니 아마 슬슬 빠지는 시간이긴 할 거예요. 매번 시간은 조금씩 바뀌긴 하니까요. ...그래도 1시간 정도 빠른 것 같은데. 음. 일단 쓰나미는... 글쎄요. 이 근방은 쓰나미가 오려고 해도 오기가 힘든 구조라서. 워낙 암석이 많고, 주변에 인공섬도 많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이 지대에 연구소를 만든 것이기도 하고요. 그래도 일단 체크는 할게요."
그 부분은 잘 모르겠다는 듯이 소장은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일단 쓰나미라는 말이 나오자 그녀는 작게 웃으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습니다. 쓰나미에 대해서는 일단 체크는 해두겠다고 하면서 그녀는 다시 연구소를 바라봤습니다. 그와는 별개로 갈매기는 혜우의 비스킷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계속 끼룩- 끼룩- 끼룩- 소리를 냈습니다.
"그럼 안으로 들어갈까요? 원본 데이터를 작성한 USB 장치를 드릴까 하는데... 만일의 경우가 있으니, 가능하면 데이터를 빼낼 때까지 여러분들이 제 주변에서 경비를 해줬으면 하는데."
랑은 은우와 세은이 대표이사의 이야기를 듣고 하는 일련의 행동을 지켜보다가 느껴지는 막연한 죽음의 이미지에 시선을 혜우에게 돌렸다. 그리고 혜우의 질문과 그에 대한 연구소장의 대답, 그리고 거기에 이어지는 혜우의 날 선 핀잔을 듣고 나서 뭔가 느끼는 바가 있는지 혜우 쪽으로 움직이며 입을 열었다.
"나도 남지, 오늘 처음 소장보다는 이 녀석 말을 더 믿고 싶거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렴풋하게나마 느껴지는 끔찍한 참상 때문에라도 랑은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그런 와중에 가장 눈에 띄는 일이 혜우에 의해 발견되었으니. 바닷가를 주의하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겠지.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을 주고받으면 될 테니까, 빨리 백업하고 빠지기나 해."
너무 먼 장소라는 것은 알 수 있었으므로, 랑은 지속적으로 능력을 전개하며 혜우 옆에 서서 바다를 빤히 쳐다보았다.
"웨이버? 그 웨이버 말인가요? 그건 몰랐는데." "그리고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거지만 생산 발전 장치는 인간이 가지고 갈 수 있는 무게가 아니에요. 무게가 3톤은 넘으니까요."
이건 조금 경계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소장은 혜우의 말에 깜짝 놀라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했습니다. 이어 그 부분은 확실하게 주의를 하겠다고 그녀는 이야기했습니다. 아무래도 웨이버가 저기에 있다는 것은 대외적으로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모양입니다. 사실 리버티에 누가 있는지 아는 이는 거의 없는 것 아닐까요?
어쨌든 은우와 세은은 마찬가지로 안으로 따라들어갔습니다.
[안] 이전 같았으면 당연히 연구소 지하로 내려가겠지만, 이번에는 그럴 일이 없었습니다. 그저 앞으로 나아가서 어떤 방으로 들어갈 뿐이었습니다. 참으로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여기로 들어와주세요."
이어 그녀는 어느 특정 방으로 들어섰습니다. 그 안은 꽤나 넓은 방이 있었고, 이런저런 서버장치가 놓여있었습니다. 그리고 방 한쪽에 커다란 컴퓨터가 놓여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데이터는 거기에 있는 모양입니다. 이어 그녀는 USB를 꺼낸 후에, 그 장치에 꽂았습니다.
"3분만 있으면 바로 다운로드가 가능하거든요. 이후에 삭제 처리하고 USB는 저지먼트에 인계할게요."
한편 걸어가는 도중, 새봄과 여로는 각각 노란 고양이와 검은색 고양이가 연구소 건물 한쪽에 자리를 잡고 나른하게 식빵을 굽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야옹- 야옹- 이런 소리를 주기적으로 내고 있습니다.
"아. 저 아이들은 노랑이와 검둥이에요. 이 연구소에서 키우는 고양이랍니다. 귀엽죠?"
[밖] -끼룩 -끼룩 -끼룩
갈매기들은 계속해서 주기적으로 소리를 내긴 했지만 혜우의 가운데 손가락에도 딱히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일단 철현은 주변을 둘러봤지만 특별히 보이는 것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요상하게 연구소 위에서도 갈매기가 날아다니는 것 같습니다. 끼룩- 끼룩- 끼룩- 소리가 상당히 시끄럽습니다. 이어 랑은 혜우의 옆에 서서 바다를 바라봤지만 역시 이미지가 제대로 잡히지 않았습니다. 뭔가가 부족합니다. 뭔가가. 조금만 더 하면 닿을 것 같은데. 하지만 묘하게 불길한 기운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불길한 기운은 이 일대 전체에서 느껴지고 있었습니다. 뭔가 엄청나게 거대한 충돌이 닥쳐올 것 같지만 대체 뭐가 충돌하는 것일까요?
한편 한양은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서 파도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려고 했습니다. 의외로 생각보다 물은 쉽게 잡혔고, 움직임이 멈췄습니다. 아주 손쉽게 해류가 역류했고 반대편으로 작은 파도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은 조금씩 빠져나가는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물론 아까전보다는 훨씬 더 느린 속도이긴 합니다.
그와는 별개로 바다 속에서 '돌고래' 한 마리가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렇게 얕은 바다 부근에서 돌고래가 나오다니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이내 돌고래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 물 속에서 물 밖으로 튀어나오면서 모습을 보였고 이내 특유의 소리를 강하게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점점 더 빠르게 물 속에서 튀어나오다가 다시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이내 그 돌고래의 움직임이 멈췄고 그대로 둥둥 떠올랐습니다. 기절이라도 한 것일까요? 대체 뭐인걸까요?
한양은 염동력으로 물이 빠져나가는 걸 느리게 만들다가, 갈매기와 돌고래의 이상현상을 보고 깨달았다. 큰 것이 온다고.. 보통 동물들은 인간보다 감각이 예민하기에 자연재해가 오는 것을 더 빨리 감지하고, 저런 신호를 보낸다. 아까부터 저 동물들은 우리보고 빨리 도망가라고 경고하는 거야.
" 큰 위기가 온다면... "
" 우리 쪽에서 먼저 위기를 일으켜서 상쇄하면 되는 것. "
서한양은 크게 쉼호흡을 하고, 온 신경을 넓은 바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서한양이 시도하려는 것은 바로.. 최대한 여러 지점들의 바닷물을 회전시켜서 바다회오리들을 만드려는 것. 바다회오리를 통해서 바다의 물리적인 에너지를 이곳저곳으로.. 능력을 쓰는 한양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분산시키면서, 혹시나 있을 웨이버가 이 바다를 컨트롤하기 굉장히 난해하게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오늘 돌핀이는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어릴 때 헤어진 엄마를 10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린 끝에 간신히 만날 수 있었죠.] [열심히 운동을 하고 아름다운 헤엄을 연습하며 엄마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고자 노력했습니다. [드디어 오늘, 엄마를 만나는 날입니다.] [그런데 오늘따라 해류가 이상합니다.] [파도가 이상하게 몰아치고 있습니다.] [속이 안 좋지만 어서 엄마를 만나러 가야합니다.] [건강한 돌고래인 자신도 이렇게 힘든데 엄마는 얼마나 힘들까요?] [무엇보다 오늘을 놓치면 언제 또 엄마를 볼 수 있을 지 모릅니다.] [아아...] [파도가 점점 거세지고 헤엄치는 것이 어려워집니다.] [돌핀이는 엄마를 부르며 열심히 헤엄을 치지만 힘이 점점 빠져나갑니다.] [돌핀이는 꿈에서나마 엄마를 만나기를 기도하며 천천히 눈을 감습니다.]
장난을 치며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던졌다.
"바다 안에 뭔가가 있어."
[그냥 모세의 기적 일으켜보는 건 어때? 아무리 강력한 수중 전함이라고 해도 물이 없으면 그냥 깡통이잖아]
만약 정말로 공격이 일어난다고 한다면 해야할 일은 간단했다. 예상 공격 지점의 물을 없애버리거나 건물과 사람을 공중으로 띄워버리거나
나랑 언니가 위험 요소를 잡아내려는 거 같지만 잘 안 되는 거 같다. 갈매기가 끼룩대는 것도, 물이 예정된 시간보다 너무 빨리 빠지는 것도 께름칙한데 잡히는 거마저 없으니 영 불길하다. 리버티는 뉴트로미니컬 에너지를 노리고 있고, 물을 마음대로 다루는 웨이버가 리버티잖아. 무슨 수작 부리는 중이면 어째? 바다에다 사이코메트리를 써 보면 뭔가 알 수 있으려나?
그때 돌고래가 나타났다. 직접 보는 건 처음이라 신기하다. 돌고래 특유의 묘한 소리도 뭔가 아련한 느낌이다. 물에 들어갔다 튀어나오는 게 무슨 공연이라도 하는 거 같네. 근데 들어갔다 나오는 게 점점 잦아지나 싶더니, 어느 순간 뚝 멈췄다. 이윽고 돌고래가 둥실 떠올랐다. 꼭 죽어 버린 물고기처럼.
황당하고 불길한 가운데 저 돌고래가 단서를 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라, 모르겠다. 최악의 경우라도 지금의 바다가 위험 구역이라는 거 정도는 알릴 수 있겠지.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 정도일 테고.
하여 서연은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온몸을 휩쓰는 바닷물에 무슨 조치가 취해지고 있는지를 사이코메트리로 알아내고자 시도했다. 만약 돌고래한테까지 다가갈 수 있었다면 돌고래를 붙들고 사이코메트리를 사용해서 돌고래한테 벌어진 일을 확인하고자 했을 것이다.
세상이 퍽 안일하다. 태오는 슬슬 뽀얗게 나오는 입김과 함게 주변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어텀 세레니티는 곧 다가오고 있고, 수능은 예상 외로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대학을 갈 생각은 없다. 그렇게 바쁜 듯 바쁘지 않게 살아가는 삶 속에서 리버티는 여전히 파괴만을 추구한 모양이다.
"……11월 중순인데도."
피의 크리스마스니 뭐니 했던 것을 리버티도 아마 알 터인데, 그런 건 개의치 않고 어차피 자기들이 죽일 테니 그것들이 무얼 하든 괜찮다는 양 계획을 추진하고 있으니 이걸 멍청하다 해야 할지, 아니면 그 정도로 몰려있어 가엾다 해야 할지.
"……."
> 조용히 나가기
태오는 단톡방을 알림이 뜨지 않게 나가버리곤 망막에 뜬 알림을 눈짓으로 스와이프해 지웠다. 동시에 파도가 치는 걸 가만히 바라보다 갈매기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돌고래를 향해서도 고개를 돌렸다.
바닷물이 빠지는 속도가 느려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흐름이 바뀐 건 아니었다. 정말 웨이버의 짓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양의 능력도 이미 상식의 범주를 벗어난 마당에 이 정도로 속도를 늦추는 것밖에 할 수 없다면야. 그리고 그 와중 바다를 헤엄쳐 오는 듯하던 돌고래가 갑자기 잠수하더니 움직임을 멈춘 채 둥둥 떠올랐다. 보통 저런 건 기절했거나 숨이 끊어진 해양생물들이 보이는 모습인데.
"바다에 독이라도 풀었나?"
아니면... 혜우가 무전하는 것처럼, 전기가 흐르고 있거나. 공교롭게도 리버티의 일원 중 가장 눈에 띈 두 사람의 능력이라면 딱 들어맞는 상황이다. 웨이버가 물을 끌어당기고, 그 물에 전기를 흘린다. 듣기만 해서는 완벽한 계획이다. 갑작스런 해일에 휘말려서 자기 보호도 할 수 없는 상태에 전류를 흘리면 그대로 끝이 나겠지. 그렇긴 하지만 떠오른 게 돌고래 하나뿐인게 조금 걸린다. 그 중에는 동물과 대화할 수 있는 녀석도 있었다고 했으니... 말이 잘 안 되는 것 같긴 하지만 기절을 연기하는 것일지도 모르지.
"설마... 시선을 끌려는 수작질은 아니겠지."
랑은 설마하는 마음에 계속해서 능력을 전개하면서 연구소 쪽을 쳐다보았다. 자신의 능력도 그동안 성장을 거듭해 왔으나, 여전히 막연하게 느껴지는 위협이 남아있었다. 어떻게 하면 벽을 넘어설 수 있을까. 그런 고민도 들었지만 지금은 그걸 탐구하기보다 근처에서 문제가 생길 만한 게 없는지 살펴보는게 우선이었다.
그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서연의 바로 앞 부분. 그리고 연구소의 입구 부분을 기점으로 해서 투명한 수정이 떠올랐습니다. 이 능력은 이전에 2학구에 수정이 생겼을 때 보였던 바로 그 능력입니다. 아주 거대한 수정이 연구소와 바다의 일부를 집어삼켰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한편 그와는 별개로 소장의 통신을 들어보면 딱히 전류가 잡히는 것은 없는 모양입니다.
[안] 새봄과 여로가 고양이에 집중하고 주변을 경계하는 사이, USB의 복사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한편 고양이들은 일제히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컴퓨터의 전원이 꺼졌고 연구소 전체의 전원이 내려갔습니다. 찍찍- 찍찍- 그런 소리가 조용히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폭발소리가 연쇄적으로 여기저기서 나기 시작했습니다.
"뭐야?!" "...!"
이어 세은은 바로 핸드폰의 손전등 기능을 켰습니다. 그리고 바로 책상 쪽을 확인했습니다. 이게 무슨 일일까요? 연구소 방 여기저기에 수정이 솟아있었습니다. 그리고 책상은 아예 수정 속에 담겨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방금 전까지 있었던 '컴퓨터'가 통째로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당연하지만 꽂혀있던 USB도 사라진 상태입니다.
창문이 없는 방이기에, 빛이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방 안에서 그들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사라져버린 컴퓨터'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애초에 왜 책상을 수정으로 감싼 것일까요? 아니. 애초에 컴퓨터를 어떻게 가져간 것일까요? 내용물이 꽤 크지 않았던가요?
"당했다! 대체 어디서 어느틈에?!"
은우는 깜짝 놀라 방 밖으로 나가 연구소 밖으로 나가려고 했습니다. 방금 전 폭발소리. 이건 연구소의 어딘가가 터진 것일까요? 그렇다면 그곳으로 도망친 것일까요?
확실한 것은 여로도 새봄도 딱히 누군가가 들어오는 발소리는 듣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밖] 한양은 바다 회오리를 만들고 있었지만 수정에 갇히면서 능력은 차단되었습니다. 그리고 철현이 주는 새우깡을 갈매기는 먹지 않았습니다. 그와는 별개로 갑자기 어딘가에서 폭발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소리가 나는 곳은 바로 발전기 장치인 '구체 건물'이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곳으로 달려갔다면 여전히 온 몸의 대부분을 기계 장치로 대체하고 있는 수연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상당히 어두웠습니다. 마치 이 일은 하고 싶지 않은 듯한 모습.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공중을 보더니, 자신의 손을 뻗어서 구체 건물의 기둥을 공격하고 있었습니다. 저걸 떨어뜨린다고 해서 들고 갈 수 있을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대체 왜 저걸 공격하는 것일까요?
자세히 보면 그녀는 몸을 약하게 떨고 있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요? 그와는 별개로 그녀의 주변에 있는 나무에는 독수리 한 마리가 앉아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0 여진히 잘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분명 아까보다 선명한 무언가가 느껴진다. 전에 한 번 맞부딪혔던 녀석들의 기운이라고 해야 하나. 지금 랑이 느끼는 것은 총 세 명의 기운. 그러나 그 외에도 분명 뭔가 더 있었다. 하지만 그걸 알 수가 없었다. 이 근처에서 대체, 뭘, 하려고?
"답답하군..."
이건 역시, 자신을 향한 직접적인 위협이 아니기 때문인가? 랑은 능력의 한계라는 것에 아쉬움을 표하듯 쓰읍, 하는 소리를 내다가 갑자기 등장한 거대한 수정이 연구와 바다를 통째로 집어삼키자 눈을 가늘게 떴다.
"선수를 뺏겼나, 쯧."
랑은 바로 시선을 돌려 연구소 쪽을 쳐다보다가 폭발 소리에 반응하여 그 쪽으로 달렸다. 그리고 그 곳에는 수연이 건물의 기둥을 공격하고 있었는데... 몸이 미약하게나마 떨리는 게 보였다, 게다가 근처에 있는 독수리 한 마리까지.
이런 때, 랑은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잠시 눈을 돌리기로 했다. 눈을 감고, 이어셋을 뺀다. 감각 그 이상의 무언가, 처음 자신이 느꼈던 그 때처럼, 랑은 다시 한 번 그 감각을 떠올리려 애썼다. 눈앞에 벌어지는 일들에 반응하는 것에 급급해서는 안 된다. 조금 더 멀리 봐야 한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향하는 길은 대체 뭐지? 지금까지 느껴졌던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랑은 다시 한 번 능력을 전개하며, 분명 느껴졌지만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둘뿐만 아니라 다른 무엇이든 찾아내 보고자 연산을 계속했다. 한계에 부딪히더라도 멈추지 않고.
갇혀버린 건가? 역시 리버티 녀석들의 짓이겠지. 젠장.. 그리고.. 랑의 위험예지대로 이곳에 수연이란 녀석도 있어. 아마 선혜와 붉은머리도 이곳에 있겠지. 일단.. 수정에 갇혔는데.. 이 능력은 퍼스트클래스들에게는 본 적이 없는 능력이니깐, 내구성에 한계가 분명히 있어.
" 어려운 길은 쉽게 가자. "
수연은 누군가가 처리하겠지. 한양은 염동력으로 양손에 서로 다른 에너지를 응축시키기 시작한다. 바로 인력과 척력. 이 서로 닿길 거부하는 두 에너지를 염동력으로 강제로 결합시켜서, 다시금 플레어를 상대했을 때 만들어낸 '불안전한 에너지덩이'를 생성했다. 이전보다 더 크게 말이다.
" .....! "
이어서 한양은 당장이라도 폭발할 법한 그 에너지덩이를 저지먼트를 가둔 수정의 바다 쪽으로 던졌다. 아예 뚫고, 바다까지 휩쓸버리라고.
내 능력의 최고 구멍은 아무래도 나 아닐까. 내 머리론 소음공해로 돌고래를 조져서 얻는 게 뭔지 감도 안 온다. 리버티가 이리로 온다면 그 잘난 거대 잠수함으로 오지 싶지만, 그게 수중생물을 조지는 거랑 무슨 상관이람?
그때 거대한 수정이 나타났다. 2학구에서 전기를 증폭시키던 그 수정이다. 또 그 수법이야? 엉겁결에 수정을 붙들었다. 뭔가 거창한 생각이 있는 게 아니었다. 그저, 이거에 에워싸이면 다 수박되니까. 그거만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무섭다. 여기다 벼락을 날리면 샤를리아처럼 삭제당한다. 그게 계획인가? 뉴트로미니컬 에너지를 다루는 이곳에 벼락을 날려서 삭제할 참일까? 그게 유력해 보이니 이럴 시간에 다른 일을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만, 서연은 수정에다 사이코메트리를 사용해 봤다. 이걸 만들어서 뭘 하려는 걸까? 나머지는 그걸 알아낸 뒤 생각하자.
불길한 수정. 리라의 시선은 주변을 살벌하게 뒤덮는 돌덩어리들에 한동안 머무른다. 그는 이것들의 위험성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 그의 정신을 큰 범위로 뒤흔들어 놓았던 샤를리아 연구소 테러 사건 때 본 것이니까.
당장 없애야만 한다. 하지만 어떻게? 리라의 시선이 반짝이는 수정 벽으로 향한다. 새봄이 있었다면 이것들을 전부 없앨 수 있었을까. 사탕으로, 빵으로, 초콜릿으로 만들어서 본질 자체를 뒤틀고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또는 아예 다른 물질로 만들어 버릴 수 있었을까. 크리에이터가 있었다면? 그는 이런 장벽 정도는 현실의 코드를 조작해 없던 것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 모든 가정은 이매지네이션 쿠킹 능력자나 퍼스트클래스가 아닌 이상 무의미한 망상일 뿐이다.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스케치북에 작은 포션이 그려진다. 연분홍빛의 크리스털 병은 작지만 강력한 설정을 포함하고 있다. 전부는 어렵더라도 가능한 많은 수정을 집어삼킬 변화의 물약. 그리고 또한— 랑이 감지해낸 검은 샹그릴라 복용자들을 막아낼 물질을 재창조할 물약이다. 이게 의도대로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는 아직까지도 레벨 4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불확실한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단 낫다. 리라는 포션을 수정 돔에 뿌린다. 이곳부터 시작해서 곧 이어진 모든 수정이 연보라색 꽃잎과 연분홍색 꽃가루로 변화하도록, 그리고 그 꽃가루를 들이마신 '검은 샹그릴라 사용자들' 이 연산이 어려울 정도의 울렁거림과 두통을 느끼도록.
>>936 헉 어떻게 알았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맞아용........ 이치 비트는 거 생각 안해봤어... 휴 둘다 끌리는 조건인데 이거 다만 리얼리티 매니퓰레이션의 특징이 아무리 강해져도 약점은 공고하다는 거니까🤔 그걸 꺾는 것도 맛나긴 하지만 아무래도 약점은 약점으로 남는 게 재밌을 거 같다! 나는 후자로 할게! 허공에 그려도 발동되는 걸로~
수정에 에워싸이는 걸 몸으로라도 막아 보려 했으나 내 피지컬론 무리였나 보다. 수정에서 알아낸 것도 우리 발을 묶어 놓는다는 거 말곤 없고. 바다에 뛰어들고 잠깐 매달린 것만으로도 지쳐 빠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는 걸 이런 식으로 실감하는 건 매번 겪어도 울적하다.
그렇게 돌아가는 상황이 막막해도, 선배의 미소엔 그나마 기운이 난다. 무모한 짓 하지 말란 말엔 그만 눈물이 날 뻔했다.
" 미안.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
앞으로 어째야 할지 막막하지만, 어떻게든 되길 바란다. 이 수정에 갇혀 있으면 안 된다는 건 확실한데, 저지먼트 중에 그 생각 안 할 사람은 없을 테니(그러니 내 사이코메트리가 더더욱 무의미한 거고) 어떻게든 되겠지.
[안] 새봄의 활약으로 컴퓨터가 없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습니다. 대체 무슨 원리인지 모르겠지만, 세은은 컴퓨터를 보자마자 바로 그녀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새봄아! 이거 빨리 다른 먹을 것으로 바꿔버려! 괜찮죠?"
"아? 네! 네! 어차피 뺏길지도 모른다면 지금 그냥 없애버리세요!"
아주 쿨하게 상관없다고 이야기를 하며 소장은 허락했습니다. 빠르게 이것을 없애버리는 것이 좋을지도 모릅니다. 리버티가 이걸 지금 즉각적으로 노리고 있다고 한다면 더더욱 말이죠.
[밖] 혜우는 다른 곳을 가만히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움직임은 머지 않아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디에서 데리고 온 것인진 모르겠지만, 들개들이 으르렁거리면서 하나둘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보이는 것은 다름 아닌 선혜의 모습이었습니다.
"꽤나 한가하네. 저지먼트." "...그러고 보니 너는 계속 치료를 할 수 있었나? 잘 됐네. 얘들에게 물려도 계속 회복할 수 있으니 말이야." "넌 내가 좀 붙잡아야겠어."
선혜는 확실하게 적대적인 눈빛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조금은 동요하는 듯한 눈빛도 가지고 있는 듯 했습니다. 어째서일까요?
리라는 자신의 능력을 사용했습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그림이 그려집니다. 그녀가 원하는 능력이 펼쳐집니다. 수정 돔에 뿌려지는 분홍색 포션은 주변을 분홍색으로 물들였습니다. 수정 자체를 바꿔버리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원하는 꽃잎은 그대로 세상에 펼쳐졌고 꽃가루가 퍼져나갔습니다. 아니. 그녀는 아마 확신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건 자신의 머릿속으로 그려진 이미지 그 자체라고. 그림으로 그려진 것과는 다르게 자신의 머릿속으로 그려진 느낌 그대로입니다.
그녀는 알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그대로 머리나 허공에서 그리는 것으로도 능력이 실현되도록' 이치가 비틀어졌음을.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가 그대로 구현되었음을. 실제로 수정은 조금씩 분홍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고, 작은 것들은 새로운 꽃잎으로 바뀌어가고 있었습니다. 큰 것은 조금 힘들지만 작은 것들은 그렇게 하나하나 형태를 바꿔나가고 있었습니다.
한편 한양은 자신의 에너지를 모은 후에 수정으로 던졌습니다. 이내 수정은 힘없이 박살나버렸고, 그것은 바다를 가르면서 쭈욱 날아갔습니다. 하지만 특별히 반응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갑자기 바다가 점점 더 뒤로 빠져나가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괜찮을까요? 수정이 박살난 거, 정말로 괜찮을까요?
그와는 별개로 철현은 독수리에게 돌을 던졌습니다. 그러자 독수리는 소리를 내더니 하늘 높게 날아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소리에 수연은 가만히 철현을 바라봤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다른 저지먼트 멤버를 바라봤습니다.
"...오지 마세요." "...오지 마세요..." "...오지 마세요!!!!"
이어 그녀는 비명을 지르듯 큰 목소리를 내며 손을 앞으로 뻗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능력인 자기장이 발동했습니다. 주변에 있는 철들이 일제히 떠올랐고, 저지먼트 멤버의 몸이 갑자기 아래로 가라앉으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이 능력은 이전에도 경험해보지 않았나요?
그와는 별개로 수연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주머니에서 손을 빼냈습니다. 주먹에 꼬옥 쥐고 있는 것은 대체 뭘까요? 그와는 별개로 떠오른 철붙이들이 총알처럼 빠르게 저지먼트 멤버들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거학의 너울이 영악한 자의 혓바닥처럼 천지를 감질나게 핥는다. 태오는 눈꺼풀의 살가죽으로 시야를 덮어 가렸다. 동물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금수 주제에, 진정 이시미를 흉내라도 내보겠다는 양 귀를 기울인다. 동시에 상념에 잠겼다. 대체 나는 무얼 하는 것인가, 이 행위의 연고는 무엇이며 저의가 무엇인가. 저지먼트가 어떻게 되든 말든, 나아가 인간이 어찌 되었든 알 바가 아니었지 않은가? 어차피 모든 삶은 유한하고, 찰나의 봄과 같아 무상하니 피고 지는 것에 어떠한 의미도 심을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나는 위험에 발을 들였나.
언제부터였나. 스트레인지 깊은 곳에서 목줄을 찬 채 제 사람의 발치를 도사리던 것이 어째서 양지로 나왔던가. 다시금 돌아갈 생각을 하면서도, 어째서 지금 당장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더라. 어째서 닿지 않는 것에게 능력을 쓰고자 하는가. 짐승에게 말을 붙이는 연유 무엇인가, 굳이 인간이 아닌 것에게 손대는 이유가 무엇인가.
"……."
살가죽이 접혀 올라가며, 새카맣게 물든 공막과 뱀의 눈이 자리한다. 동시에 팔뚝에 이식한 비늘이 서늘하게 옷깃 속에서 일어난다. 답은 명료했다. 자신이 짐승이기 때문이다. 짐승이 짐승에게 말 붙이는 것이 무엇이 잘못 되었던가. 태오는 동시에 피었다 지는 봄을 사랑했다. 정확히는 그 과정을 몹시도 아름다이 여겼던 것 같다. 태오는 한 걸음, 바닷가 막히지 않은 곳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저지먼트는 구원자다. 선지자의, 그리고 인간 사이에 섞여야만 한다 강박을 가졌던 자신의 구원자. 찰나의 봄과 같은 삶을 무엇보다 흐드러지게 피워내는 존재들. 그런 존재에게서 빛을 느꼈으니 굴 속의 짐승이 기어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빛무리 속에서 안정감을 얻었고, 빛무리가 영원히 이어지길 바랐다. 평생, 시련을 겪어 올라설 별자리가 되길 바라고, 그 별자리를 기억하는 것이 자신이 되길 간곡히 소망했다.
"바다의 동포로군요……."
정의와 거리가 먼, 정명한 의도가 아니더라도 이곳에서 살고자 하는 의지를 얻었다. 애초에 정의가 무엇인가, 이 비정한 곳에서 당최 정명함 어디 있는가. 태오는 바닷물에 손을 가볍게 담그며 고개를 들었다. 돌고래에게 목소리가 닿을까, 저 목소리를 들었으니 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읽을 수 있다면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갈 수 있다는 뜻 아닌가.
─ 당신은 바다를 더럽히고 괴롭히는 자에게 당하고만 있을 것인가요. 그대로 명령에 휘둘릴 거냔 말입니다.
새카맣게 물든 공막 너머로 뱀의 눈이 짐승을 향했다.
─ 당신과 당신의 동포, 바다의 모든 자는 저항할 수 있는 존재요 대항할 수단이 있을 터인데.
태오는 휘두르거나,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 단지 이치를 비틀어 생각을 비집고 들어가 제안할 뿐이지.
─ 물어뜯으면 될 존재를, 우리는 그저 호소하면 될 것이라 믿고 봐주고 있지 않나, 비단 그대만이 아니오. 이곳의 모든 동포에게 전하는 겁니다. 우리가 봐주고 있을 뿐이라고……. 바다를 지키는 건 당신들이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잔악합니다. 그물에 걸려, 작살에 꿰뚫려 죽던 동포를 떠올리시오. 당신이 본 그 존재들은, 이제는 이 모든 바다를 말려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그 분노를 퍼뜨리시오. 우리 또한 손 닿는 곳까지 도울 테니.
너른 거학과 너울질이 일구어내는 해로의 능선, 그리고 그 사이에서 천자의 자리를 갈망하는 이시미 한 마리가 비색 눈으로 세상을 굽어살폈다. 그리고 무전으로 사근사근 속삭였다.
"성공한다면 바다 안을 헤집을 거예요……. 이곳은 내게 맡기고, 그 기계 후배를 부탁해도 될까요."
"꼴 좋다. 어린 양아. 이젠 네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고, 인첨공의 모두에게도 일어나겠군요……? 때 아닌 불운이 아니라 네가 쌓은 업보랍니다. 네가 악하기에 벌어진 일이고, 네가 조언을 어기고 스스로 약한 것이 잘못이라 여기며 발악한 결과인 거죠…….* 어때요, 네 손으로 쌓아올린 세상이, 몹시도 예쁘죠."
들려오는 것은 동물의 울음소리. 하지만 그 너머에서 들리는 것은 동물의 생각입니다. 그가 짐승이 되어 짐승에게 말을 걸고 생각을 읽으니 그 모든 동물이 그에게 집중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물론 의사소통이 확실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동물은 그의 생각을 알아듣고, 그는 동물의 생각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것은 아니나, 자신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 당신과 당신의 동포, 바다의 모든 자는 저항할 수 있는 존재요 대항할 수단이 있을 터인데. ─ 물어뜯으면 될 존재를, 우리는 그저 호소하면 될 것이라 믿고 봐주고 있지 않나, 비단 그대만이 아니오. 이곳의 모든 동포에게 전하는 겁니다. 우리가 봐주고 있을 뿐이라고……. 바다를 지키는 건 당신들이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우리의 방식대로 해결하겠다. -인간이여.
그리고 들려오는 생각은 '마치 노인의 소리'에 가까웠습니다. 바다 너머에서 아주 큰 사념이 느껴집니다. 이내 바다 저 너머에서 보이는 것은 아주 커다란 지느러미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돌고래 따위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거대한 고래.
정신을 차린 돌고래는 그 뒤를 뒤쫓습니다. 점점 사라져가는 바다 속에서 거대한 움직임이 전달됩니다.
정신없이 수정을 없애다 당황했다. 뭐야, 저거. 아까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하지만 더 지체할 틈이 없다. 속도가 중요해. 난 세 사람에게 대답할 여유도 없이 바로 연산했다. 내가 성공했다면 USB와 컴퓨터는 통째로 폭신폭신한 마시멜로가 되어있을 것이다. 휴, 한시름 돌렸다.
정신은 없고 맥은 빠지고, 망연자실해 있는 사이 낯익은 사람, 4학구에서 자기력으로 우릴 꽤나 몰아붙였던 강수연이 발전기 장치를 공격하는 게 뒤늦게 눈에 띄었다. 선배가 던진 돌에 독수리가 요란스레 날아간 여파로 강수연도 이쪽을 알아본 눈치다. 그때처럼 능력이 증폭된 상태면 어쩌지? 찔끔 쫄아드는데 강수연이 오지 말라고 절규했다. 그러면서 주먹에 꼭 쥔 건... 설마!! 나랑 언니가 능력을 써 주지 않았다면 짐작도 못했었지만, 지금은 거의 확신할 수 있다. 검은색 샹그릴라, 6시간만 효력이 있는 빌어먹을 마약이다. 쇠붙이들이 이쪽으로 날아들지만, 서연은 코뿔소 팔찌를 꼭 움켰다. 이게 몇 번은 막아 줄 테니까.
" 그거 검은 샹그릴라죠? 샹그릴라 완전체라는!! " " 먹지 마요!! 그거 완전체긴 한데 바이오로이드 전용이라, 인간이 먹으면 6시간 안에 폐인 돼요!! " " 차일드 에러 5명이 실종됐다가 돌아왔는데 뇌가 파괴된 채라는 뉴스 봤어요? 그게 검은 샹그릴라의 실험 대상으로 쓰인 탓이에요!! " " 한번 뇌가 작살났으니 회복시켜도 폐인이나 다름없을 거예요!! " " 복수도 인첨공 박살내기도, 다 잘 살고 싶어서, 못 하면 내가 미치고 돌아서 못살 거 같으니까 하는 거 아녜요?? " " 6시간 시한부 인생을 택하면서까지 해야만 하는 일이에요? 지금 이 일이?? "
멍청한 짓이다. 이딴 소리 지껄일 시간에 리라표 총을 저 손에다 쏴 버리는 게 더 나은 선택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총을 들질 못했다. 총을 들어 버렸다간 지금 내가 하는 얘기가 상황을 모면하려는 거짓으로 여겨질 것 같아서였다. 암만 머저리 수박이라도 6시간만 누구보다 강력한 존재로 살고 남은 인생 쫑내는 건 밸붕 닥 손해잖아!! 그렇게까지 무모한 인간들은 아니길 바랐다.
한양은 수연이 능력을 발동시켰지만, 레벨 5의 출력으로 간단하게 가라앉으려는 에너지에 저항해서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려고 했었다. 이어서 수연의 무언가를 쥔 것을 보고, 한양은 염동력으로 정말 간단하게.. '짜버린다'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수현의 팔을 꽈배기처럼 비틀어버리려고 했다. 그녀가 얼마나 고통을 받고 말고는 한양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수연을 원거리인 염동력으로 무력화를 시켜서, 능력을 끊어내게 만들며 저지먼트에게 다가오는 철제들도 자연스럽게 멈추려고 한 의도였다.
한양은 기다란 철제 하나를 줍더니, 염동력으로 그 철제를 순식간에 깎고 깎아서 검으로 만들었다.
" ...... "
한양은 그대로 검을 쥔 채로 몸을 띄워서 바다로 날아가기 시작했고, 자신의 정신에너지와 생체전기를 바다에 퍼뜨려서 포세이돈이 있는 곳을 감지하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