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금을 모티브로 하고있지만 잘 모르셔도 상관없습니다. ※상황극판의 기본 규칙과 매너를 따릅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먼저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집시다. 모니터 너머의 이용자도 당신처럼 '즐겁고 싶기에' 상황극판을 찾았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오고 가는 이에게 인사를 하는 자세를 가집시다. ※상대를 지적할때에는 너무 날카롭게 이야기하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아' 다르고 '어' 다릅니다. ※15세 이용가이며 그 이상의 높은 수위나 드립은 일체 금지합니다. ※특별한 공지가 없다면 스토리는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7시 30분~8시쯤부터 진행합니다. 이벤트나 스토리가 없거나 미뤄지는 경우는 그 전에 공지를 드리겠습니다. ※이벤트 도중 반응레스가 필요한 경우 >>0 을 달고 레스를 달아주세요. ※계수를 깎을 수 있는 훈련레스는 1일 1회로, 개인이 정산해서 뱅크에 반영하도록 합니다. 훈련레스는 >>0을 달고 적어주세요! 소수점은 버립니다. ※7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 경우 동결, 14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경우 해당시트 하차됩니다. 설사 연플이나 우플 등이 있어도 예외는 아닙니다. ※기존 모카고 시리즈와는 다른 흐름으로 흘러갑니다. 따라서 기존 시리즈에서 이런 설정이 있고 이런 학교가 있었다고 해서 여기서도 똑같이 그 설정이 적용되거나 하진 않습니다. R1과도 다른 스토리로 흘러갑니다. ※개인 이벤트는 일상 5회를 했다는 가정하에 챕터2부터 개방됩니다. 개인 이벤트를 열고자 하는 이는 사전에 웹박수를 이용해서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벤트를 진행하는 이는 계수 10%, 참여하는 이에겐 5%를 제공합니다.
아침에도 보니까 이 날씨에 수영하던데. 안 치우면 뭐 언젠가 인천 앞바다에 닿으면 내가 먹을 걸로 만들던가 하면 되겠지. 그러던 중, 유니온 이야기에 서형이 한숨을 내쉬며 한탄하듯 묻는 말에 나도 모르게 곰곰히 생각하게 됐다. 그러게, 그놈은 대체 왜 그러고 살지?
"그러게 말이에요. 애초에 걔가 왜 인첨공을 부수고 초능력자들 다 죽이고 싶어하는 지도 이해가 안 가요. 초능력자들이라면 외국에도 쎄고 쎘을텐데 우리만 죽이고 살자 리버스한다는 것도. 거창한 척 하지만 죽고는 싶은데 괜히 혼자 죽기 억울해서 저러나 싶기까지 하다니까요."
애초에 우리가 살든 죽든 세상이 뭐 그렇게 달라진다고? 아, 뭐 정부 입장에선 곤란하기야 하겠지. 초능력자 양성도 큰 국력일 테니까. 근데 그건 세상이 좋아지는 거랑 거리가 있지 않나? 아휴, 모르겠다. 밥이나 먹자. 그런 와중에 서형이 내가 만든 도시락을 보고, 수돗물로 만들었다는 소리에 하는 감탄에 쑥스러워져서 웃음이 났다.
"고마워요! 제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역시 이명을 神 셰프로 했어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긴 해요~."
우쭐해하는 사이, 서형은 내가 만든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 표정을 보니 이번에도 성공한 것 같다. 하긴 도시락 싸기 전에도 혹시나 덜 된 곳은 없는지 휘저어보고 맛도 봤는데도 멀쩡했지! 다행이다. 나도 카레소스에 밥을 비벼 와구와구 먹기 시작했다. 허기졌던 배가 든든해지는 가운데, 서형의 말에 리버티의 테러 당시 임시 연구소에서의 생활이 생각났다.
"실제로 커리큘럼 대신으로 쓰레기를 갖다가 음식을 엄청 많이 만든 적이 있었는데요, 서형이 준 책 덕분에 우리 연구소 사람들 맛있는 거 배부르게 먹었어요~>< 대공황 레시피북에 나오는 미트로프 만들어서 배식했거든요!"
생각난 김에 한번 만들어볼까? 이미 먹을 게 많으니까 너무 크게는 말고 조그맣게... 옳지, 이게 딱 좋겠다. 모래사장에 있던 조약돌을 두개를 주워다가 미트로프도 만들어서 도시락통 뚜껑에 놓아두었다. 젓가락으로 찔러보니 푹 들어가는 걸 봐서는 이번에도 성공인 것 같다. 그러려니, 서형이 묻는다. 어쩌다 저지먼트에 들어왔느냐고. 내 몫의 커피를 한모금 넘기며 곰곰 생각하다 대답했다.
"저요? 저는... 솔직히 꿀빨면서 커리어 쌓으려고 들어왔었어요. 화단에 물 주고 쓰레기 줍기만 해도 활동이 인정되잖아요~. 그랬는데 처음으로 참여한 전투에서 생각보다 재밌게 놀아가지고 매주 사서 고생하게 됐지 뭐예요~." "서형은요? 어쩌다 저지먼트 들어왔어요?"
수박씨가 헤엄치는 데로 떠내려가길 바래야 하나? 모르겠다. 그렇든 아니든 내가 주워서 처리할 수 없는 이상 내 손을 떠난 문제니 어쩌겠어? 신경 끌 밖에.
그나저나 새봄이도 유니온이 노 이해이긴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구구절절 니맴내맴이다. 인첨공의 각종 어두운 면들이 문제다? 박형오의 기록에 따르면 현 대표이사 측이 문제가 많았던 모양인데, 그럼 그네들을 끌어내리면 되잖아. 상황을 정부에 알려 보자는 정하의 제안이나 인첨공을 개혁하자는 부부장의 제안은 충분히 타당한 얘기였는데 그걸 안 보여 안 들려 하니 노 이해. 초능력자가 이 세상에 있는 한 무슨 짓을 해도 문제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게 맞다손 쳐도 초능력자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게 아니고 인첨공이 사라져 봤자 우리나라에서 초능력자 양성을 포기하지 않는 한 비슷한 데가 또 생기는 건 시간문제일 테니 역시 노 이해다.
" 그러게. 아버지의 임종이 다가오니 삶을 비관해서라면, 살인이 최고 재밌는 싸패라서 그런다면, 하다 못해 다 죽이고 다 파괴하라는 명령만 입력된 봇이라면, 동기를 파악하긴 차라리 더 쉽겠다. 책임감을 느껴서 벌이는 짓이래도 노 이해이고, 다 깽판 치고픈 거면 착한 척 유감인 척하는 게 이상해;;;;;;;; "
굳이굳이 억지로 머리 굴리다 보면 닿는 추측. 본인이 앞으로 문제의 원인만 아니게 되면, 몇십만 명이 죽든 말든, 그 뒤에 무슨 문제가 터지든, 본인 책임이 아니라 상관없다는 발상인가? 근데 그럼 이후의 문제야 본인 책임이 아니라도 몇십만 명을 살해한 히틀러급 학살은 빼박 본인 책임인데?? 그게 아무렇지도 않다면 자기가 그렇게 나쁘게 여기는(박형오의 기록에 유니온이 현 대표이사는 왜 나쁜 짓만 하냐고 물은 적이 있다고 되어 있었으니 아마 맞겠지;;;;) 현 대표이사랑 뭐가 다르담? 사람을 전쟁용 병기로 보나 자기 찌꺼기로 보나...;;;;
아이고, 모르겠다. 타인의 맘은 내 맘 같지 않으니까. 내 머리, 내 감성, 내 계산으론 도저히 헤아릴 수 없고, 그쪽도 날 이해시킬 필요는 1도 없겠지. 그렇게 신경 끄고 살 수 있으면 피차 편하련만. 하필이면 그쪽의 궁극적인 목적이 나 포함 모두를 몰살시키는 거라 이러고 있다. 어휴, 수박!!!!
새삼 진저리를 치다 새봄이의 말에 픽 웃었다. 일리 있다. 예수님의 기적 중에 오병이어가 유명하지만, 음식 만들기만큼은 새봄이의 능력이 예수님보다 나으니까. 새봄이의 성이 '신'이기도 하고
" ㅋㅋ 신셰프랑 봄셰프 놓고 갈등 때린 거 아냐? "
둘 다 새봄이 이름자가 들어가긴 하네. 둘 중에 봄셰프를 고른 이유는 뭐려나? 어쨌거나 셰프는 셰프다. 맛있어 >< 볼이 빵빵해지게 먹고 있는데 꽤나 보람찬 얘기가 들려 왔다. 입 안에 잔뜩 넣은 걸 열심히 씹어 삼키고 아아로 입을 헹궜다.
" 아, 진짜? 연구소 사람들한테 싹 다 돌렸어? "
그렇게 대량으로 음식을 만들기도 했구나. 하긴 울 학교 급식도 만들었으니 연구소 사람들한테 돌릴 만큼 만드는 거 정도론 대량이라기도 뭣한가? 하는 사이 새봄이는 조약돌을 주워다 미트로프로 바꾸어 보였다. 접때 울 점포의 쓰레기를 온갖 초콜릿으로 바꾸는 걸 목격했었는데도 새삼 신기하다. 김도 모락모락 나서 후 불어 먹었다. 따끈따끈한 고기 완자 맛이다.
그러면서 들은 얘기는 소소하다면 소소하고, 신기하다면 신기했다. 동기는 소소했는데 전투에서 재밌게 놀았다는 건 신기했다. 내 첫 출동은...... 스킬아웃이 울 점포를 습격했던 악몽이니까;;;;;; 그때 수경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자신도 모르게 반문한 그는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다. 지금 상황에서 그에게 말을 거는 건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이지만, 저 학생이 하는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다른 나라의 말을 들은 것처럼 귀에 들어오지만 도통 머리로 이해할 수 없다. 비현실적인 감각이 물밀듯 쏟아져 들어왔다. 저 학생이 레이브라니! 말도 안 돼! 레이브가 학생이라는 것도, 그리고 자신의 미술관에 아주 오래 다녔던 사람이란 것도 믿을 수가 없었다. 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레이브는 쐐기를 박았다.
"많이…… 어려보이지요." "정말 레이브, 인가요? 정말?"
레이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잔뜩 벌게진 얼굴로 동경과 감탄, 경외의 시선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맙소사! 정말 레이브라고? 아무리 봐도 고등학생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아무리 많아도 초등학생일 때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 아닌가! 사람들은 레이브를 띄워주기 위해 각종 찬사를 올렸지만 레이브는 그 찬사를 부정해왔다. 하지만 단 하나는 명료하다. 레이브는 세기의 천재다. 미술사에 길이 남을 천재를 눈앞에서 보다니, 그야말로 꿈만 같다. 그는 애써 표정을 가다듬고 악수를 하자는 듯 손을 내밀었다.
"이,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대단히 기쁩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아, 말을 더듬어버렸다! 그렇지만 레이브는 잔잔하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잡고 두어 번 흔들었다. 배려심 깊은 사람이구나! 그는 재차 감동을 받았다. 손에서 식은땀이 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손을 쥘 적, 레이브의 손바닥에선 도톰한 흉터가 느껴졌다. 안드로이드를 다루다 다친 걸까? 지금과 같은 5세대 안드로이드면 모를까, 레이브가 자주 다루는 1세대부터 3세대 안드로이드들은 신소재가 아닌 철로 이루어진 것도 많다 보니 충분히 그럴 법도 했다.
"저야말로, 만나주셔서…… 감사합니다."
레이브는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그렇지만 오히려 그 편이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특유의 신비로운 외모 때문인 걸까? 그는 여러 질문을 쏟고 싶은 충동을 애써 참았다. 언제부터 안드로이드를 만졌죠? 몇 살인가요? 이름을 여쭤도 될까요? 예술적인 영감은 어디에서 얻죠? 공적이고 사적인 질문들이 머리에서 마구 떠오르고, 레이브는 잠시 그를 빤히 쳐다보다 천천히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그는 핸들을 꺾으며 1학구로 향하는 터널로 진입했다. 잘 빠진 모양새의 포르쉐는 터널을 매끄럽게 달렸다. 조수석에는 레이브가 앉아있었고, 두 사람은 4학구에서 출발해 3학구 갈림길 터널로 진입하는 지금까지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았다. 레이브에게서 들었던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레이브가 무려 독심술사였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엔 그 사실이 무슨 상관이냐는 듯 레이브를 마주했다가, 머잖아 그 말의 의미를 깨닫곤 얼굴이 이미 져버린 태양처럼 새빨개졌다. 자신이 방금 전까지 했던 모든 말을 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불편한 침묵은 그가 먼저 입을 벌리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저, 선생님." "네에." "…나이가, 정확히 어떻게 되시나요?"
그는 어른이기 때문이다. 레이브가 타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것에 부끄러워하며 기껏 성사된 만남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운전을 하다 보니, 그는 속을 정리하며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기도 했다. 레이브가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면 지금껏 많은 것을 마주했을 것이다. 누군가의 비평도 사실은 악의가 담겨있을 수 있단 것도 깨달았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웠다. 레이브는 창밖만 하염없이 쳐다보다, 잔잔하게 미소를 지었다.
"열아홉이요. 고등학교 3학년입니다." "그러면 데뷔를 대략 열네 살에 하신 거네요." "정확히는, 13살에 했습니다. 그때는 올리자마자 삭제해서 데뷔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실례가 아니라면 어디 학교에 다니는지 알 수 있을까요?" "3학구의 목화 고등학교입니다." "아, 에어버스터가 있는 그 학교군요." "……네." "그쪽 저지먼트가 되게 힘들다고 들었어요. 샹그릴라 때도 그렇고, 4학구가 리버티에게 테러를 받았을 때도 그렇고……. 최근에는 뭐, 공연 도중에도 사건이 있어서 해결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정말 감사할 따름이죠!" "그리 말씀해 주시니 기쁘군요……." "네?" "저도…… 저지먼트거든요."
그는 터널을 빠져나가기가 무섭게 차가 밀리기 시작하자 천천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리고 정체된 차 사이에서 시선을 힐끔 돌려 레이브를 쳐다봤다. 레이브는 여전히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고, 정체된 거리를 구경하는 것 같기도 했다. 저지먼트라고 했지? 이것도 꽤 의외다. 그리고 참 앳되단 생각이 들었다. 또래 치고는 성숙한 태도지만 아직 자신이 보기엔 한참 어렸다. 학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외관도, 생각도 성숙한 편이지만 자신과 같은 액면가 높은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솜털이 보송보송하다. 이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학생이 사실은 세간의 평가와 찬사를 모조리 휩쓴 신원 미상의 예술가라는 걸 사람들은 믿어줄까? 그리고, 그 예술가가 평범한 삶 속에서 저지먼트가 되어 비일상에 휘말리게 된 존재라면? 당사자인 레이브는 어떤 기분일까? 저지먼트와 레이브라는 삶을 양립하기 힘들진 않을까? 고민이 거듭되자 레이브는 그제야 시선을 떼고 그를 향해 눈을 돌렸다. 뱀을 닮은 듯한 동공은 마주칠 적 잠시 몸이 움찔 떨렸지만, 불쾌할 정도는 아니었다.
"많은 영감을 얻습니다. 영감은 찰나고, 고된 건 순간이니까요……. 작품은 영원할 테니 저는 찰나를 택할 뿐이지요……." "아, 들렸나요?" "제가 들어버린 것이지요,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뇨, 뭐가 죄송해요! 그것보다 음." "……."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저지먼트 일이 많이 힘들 텐데, 너무 무리하면 몸 상해요. 젊을 때 잘 챙겨야지요." "관장님도 젊으신 것 같은데……." "에이, 제가 10년이 젊어져야 선생님과 나이가 똑같아져요."
레이브는 그를 향해 눈을 굴렸다. 그는 발목을 덮는 길이의 치마와 재킷 차림의 단정한 사람이었다. 굽 높은 하이힐은 엑셀과 브레이크를 번갈아 밟으면서도 한 번도 삐끗하지 않았고, 커리큘럼을 받지 않았는지 히피펌의 검은 머리카락과 갈색 눈동자는 나이를 짐작하기 쉽지 않았다. 그야말로 자신만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액면가와 실거래가를 대충 셈하던 레이브는 누군가를 떠올렸는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젊으신 거죠……." "세상에나, 띄워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네." "성함은, 알 수 없는 거겠죠?"
레이브는 한참을 침묵하더니 창밖으로 다시금 시선을 옮겼다. 그는 마침 정체가 풀리기 시작한 도로 상황을 보며 다시금 액셀을 밟았고, 출발하기 전 침묵하는 레이브를 향해 아주 잠깐 시선을 던졌다. 찰나였지만 레이브의 표정은 체념한 것 같기도 하고, 낙담한 것 같기도 했다. 레이브는 느릿하게 입술을 벌렸다.
"제가 어떤 존재이든…… 사람들은 레이브만 기억할 겁니다.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그는 단조로운 어조의 문장이 예술적인 의미를 담은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차라리 자기 자신마저 예술 작품으로 보고 평가하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는 듯한 목소리는 잔잔했고, 매끈한 도로를 달리는 편안한 승차감 만큼이나 감정의 변화가 없었다. 그는 핸들을 잡은 손에 조금 힘을 주었다. 레이브는 스스로 새장 밖으로 나가길 소망했고, 동시에 사람에게 질려 물어뜯으라는 듯 몸을 던진 것 같았다. 본인의 삶을 예술에게 먹히는 것과, 예술이 본인의 삶이 되는 것은 다르다. 레이브는 전자와 후자가 공존하는 듯했고, 그 균형이 일정하지 않은 것 같았다. 어째서인지는 묻지 않기로 했다. 레이브가 침묵하다 입을 열었기 때문이다.
"다만, 어차피…… 모두가 알게 되겠죠. 제 다른 이름은 이시미입니다." "이시미?"
성이 이고 이름이 시미인가? 예쁜 이름인데. 그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라 생각하며 몇 번을 곱씹다가, 갑자기 끼어드는 차 때문에 브레이크를 밟았다. 동시에 욕설을 콱 집어삼켰다. 그리고 다시 엑셀을 밟으며, 차만큼이나 번뜩 치고 들어오는 생각에 핸들을 손아귀가 새하얘질 정도로 움켜쥐었다. 맙소사, 이시미! 들은 적 있다! 연구원으로 일하는 친구가 3학구 목화고 저지먼트에는 퍼스트클래스인 에어버스터 말고도 레벨 5 학생이 다수 있다며 마틸다와 힐베르트, 파나케이아, 애스트라, 레소난티아에 대해 열변을 토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 그 대열에 합류한 학생이 있는데, 그 학생의 이명이 이시미고 데 마레의 연구원에게 길들여지기 전까진 무시무시한 악명이 있었다며 불만을 줄줄이 늘어놓던 것을 그가 잊을 리가 없었다.
"오, 들어본 적 있어요. 정말 대단하신 분이었네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닙니다. 평판이 좋은 사람도 아니고요." "아무리 좋게 살아도 나쁘게 말하는 사람들은 있는걸요." "어여삐 봐주시는 것 같아 기쁘군요……." "그리고, 제가 깊은 사정까지는 알지 못하지만…… 많이 부담스러울 것 같기도 하네요." "부담스럽다?" "네. 사람들은 좋으나 싫으나 누군가를 어떤 시선으로 보니까요. 이시미라는 이름도 있는데 레이브라는 이름까지 알려지면 저라도 많이 버거웠을 것 같거든요."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이시미와 레이브가 동일 인물이라면." "열등생이든 엘리트든 할 것 없이 난리가 나겠죠. 각종 질투에, 동경에, 원치 않는 소문에, 연구원들은 여러 이론을 대며 천재와 레벨의 상관관계를 밝히겠다고 무례하게 굴 거고요. " "흠……." "오, 제가 좀 가볍게 생각했을까요?" "아니요, 모든 이론은 회색입니다." "인간은 애석하게 그러지 못하니, 저라도 색채가 뚜렷하고자 한답니다." "명문이군요." "선생님 또한 명문이지요."
어느새 1학구 검문소에 도착한 두 사람은 창문을 내리고 안티스킬의 지시에 따라 ID 카드 스캔에 협조했다. 두 사람 다 나란히 손목을 내밀 적, 잠시 멀뚱멀뚱 서로를 마주 보더니, 그가 먼저 소리 내어 웃었다. 세상에나, 서로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잘 맞고, 이런 것까지 같다니. 그는 스캔이 진행되는 동안 농담을 던졌다.
"예술 하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여기에서 사실이 되는군요?" "부디 정신적인 문제가 없길 바랍니다." "이런, 저는 1950년대에 통용되던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서요." "저 또한 그 문제로 자주 병가를 냅니다."
당사자들만 할 수 있는 재치 있는 농담에 그는 다시금 웃음을 터뜨렸다. 레이브도 결국 웃음을 흘렸고, 조금 무겁게 흐르는 것 같던 분위기는 금세 녹아버렸다. 두 사람은 인첨공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레스토랑에 들어서면서도 한결 편한 분위기로 대화할 수 있었다. 그는 레이브의 겉옷에 대해 깊은 관심을 표했고, 레이브는 그의 긴 치마에 깊은 관심을 표하는 등 서로 잘 맞는 면이 있었다.
"치장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표면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이죠. 그렇지 않나요, 선생님?" "지당한 말씀입니다…… 아무렴요. 직접 대화하지 않고도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지요."
그는 지난 시간 동안 수도 없이 잠을 설친 걱정이 무색할 만큼 레이브를 편안하게 느꼈다. 동시에 아직 어린 학생인 레이브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던 이유를 더 깊이 이해하며 곱씹을 수 있었고, 새장 밖으로 나오는 것을 대견하게 여길 수 있었다. 레이브는 대담하고, 큰 도전을 하는 것이다. 어른인 자신이 생각해도 거세고 버거운 세상의 시선을 알면서도 나선다니. 그 어린 나이에도 결심을 행했다는 것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곁에서 응원하고 돕고 싶단 결심을 세우다가도, 세이브가 앉을 수 있게 의자를 당겨주자 감사를 표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는 웨이터가 다가오자 엄선된 식재료와, AI나 기계가 아닌 오로지 사람의 손으로만 이루어지고, 사람이 서빙하는 코스요리를 주문했다. 와인은 주문하지 않았으나, 학생임을 일찍이 깨달은 셰프가 직접 와인 대신 과일로 이루어진 산뜻한 음료를 내어주기로 했다.
"입맛엔 좀 맞으시나요?" "몹시도요. 감사합니다."
과즙만 추출해 새롭게 모양을 낸 연어 알 모양의 자몽 알갱이가 얹힌 애피타이저를 시작으로, 그는 레이브와 긴 대화를 나눴다. 최근 인첨공에서 유행하는 AI 작업에 대한 예술적인 판단이나, 4학구에서 유행하는 문화적인 양식, 그리고 그가 가진 3학구에 대한 개인적인 궁금증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음식과 대화를 천천히 곱씹고 즐겼다. 레이브는 꽤 매력적인 사람이다. 더불어 3학구보다는 1학구에 어울리는 사람이란 생각도 들었다. 정확히는 차에서 내릴 적의 자세나, 제 곁에 서서 대화할 적의 느릿한 손짓, 부촌이라 불리는 1학구에서도 기죽지 않는 자세, 레스토랑에 들어설 적 익숙하다는 듯한 태도, 지금 보듯 까다로운 테이블 매너를 아는 모습이 그랬다. 그 나이의 객기라기엔 절도 있는 모습이 사적인 궁금증을 부추겼다. 귀하게 자란 걸까? 그의 속을 읽은 건지, 아니면 눈빛에서 뚝뚝 묻어 나온 건지, 레이브는 정적인 태도로 관자 위에 레몬 소스를 얹은 요리를 썬 나이프를 내려놓고, 대화가 가능한 순간에 맞춰 입을 열었다.
"도올 선생님께 따로 교육을 받았습니다." "도올 선생님이라면야……."
그가 기억하는 도올은 예의를 중시하는 사람이었고, 몹시도 정중한 사람이었다. 그런 도올에게 교육을 받았다면 이런 태도는 쉽게 납득할 수 있었지만, 새로운 의문이 샘솟았다. 도올과 대체 무슨 관계인 걸까? 가족이라기엔 닮지 않았고, 문하생이라기엔 주차장에서 봤던 게 신경 쓰였다. 연인? 지금이야 가장 유력한 후보 중 하나라지만 도올 선생과 연애라는 단어는 많은 거리감이 있었다. 그가 아는 도올은 연애를 한다고 하면 드디어 극야의 서 등장인물이 연애를 하는구나 받아들일 만큼 독종이기 때문이다. 레이브는 속을 간질간질 치고 올라오는 생각에도 답하지 않고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남은 관자 조각을 매너 있게 포크로 찍어 입에 가져다 댔다. 천천히 음식을 씹으며 애를 태우는 레이브 탓에 괜히 음료로 목을 축이던 그는 레이브가 음식을 삼키고 손을 모으자 자연스럽게 시선을 집중했다.
"다만 지금 당장 도올 선생님이 중요한 건 아니지요. 실은…… 만남을 요청한 이유가 따로 있기에……."
그는 잔을 내려놓았다. 레이브는 셰프가 마지막 메인 요리를 가지고 오기 전 마지막으로 자신이 뱉을 단어와 문장을 곱씹으며 점검하듯 입술을 꾹 다물더니,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마주했다. 세로로 길게 찢어진 동공이나 인천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색은 인간답지 않은 면이 많이 묻어 나왔지만, 이렇게 서로 마주하는 자리에서는 몹시도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장님께서는 저를…… 이곳까지 끌어올려 주신 은인이나 마찬가지지요……." "과찬입니다." "아니요, 관장님이 아니었더라면… 저는 아마 스쳐가는 존재가 되어 그 어떤 것도 해내지 못했을 겁니다. 제게 제안을 주셨던 그 순간은…… 인생의 전환점이니, 어찌… 감사하지 않겠는지요. 하여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안이라면……?" "저는 이번에 열리는 어텀 세레니티 인천은 알고 계시겠지요." "물론이죠, 인첨공 15주년을 함께 한 미술 경매니까요! 작가님께서 참여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요." "다행이군요. 저는 그 경매에서 제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고자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제 작품과 저를 만나게 되겠지요……." "잠깐, 그렇다면 그 말씀은……." "관장님."
레이브는 손가락에 깍지를 끼며 눈을 휘었다. 흰 속눈썹이 아래를 향해 긴 호선을 그리고, 입술은 상향세를 그렸지만 방금 전 지었던 잔잔한 미소와는 결이 달랐다. 호수 위에 걸린 달처럼 가느다란 레이브의 미소는 어딘가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면이 있었지만 공포와 부정적인 감각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레이브가 내놓을 말이 무엇인지 본능은 이미 알고 있었고, 그 발언이 사실이 된다면 이성은 격한 감정에 휩싸일 것만 같았다. 제발 아니라고 해주길! 그렇지만 레이브는 아주 잔인한 사람이었다. 그의 바람과 달리 레이브는 배려하지 않고 쉼 없이 말을 이었다. 어쩌면 사람이 아니라, 그를 시험하고자 인세에 내려온 거대한 이무기일지도 모르겠다는 착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