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육성의 요소가 있으나, 참가 시간대가 일정할 수 없으니 최대한 고려하여 지나치게 떨어지는 상황은 없게 조율할 예정입니다. - 스토리 플롯의 변화는 전적으로 플레이어에게 달려있어, 결과적으로 대립성향을 띈다거나 할 수 있습니다. - 매너를 지키며 즐겁게 플레이 합시다. 불편하거나 개선사항 같은게 있으면 얼마든지 캡틴에게 문의해주세요. - 이벤트는 보통 금-토 8시 ~ 로 생각해두고 있습니다. 참가자들이 진행을 잘 해 하루만에 끝날때도 있을거 같네요. - 각 캐릭터마다 주 1회, 의뢰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 하루에 한번, 훈련 스레에서 훈련 독백을 쓸 수 있습니다. - 10일내로 아무런 갱신도 없을 시, 시트를 일시 동결, 그 이후 7일 동안 해제 신청이 없을때 시트가 내려갑니다. (미리 기간 양해를 구할 시 제외) - 다이스 전투가 기본입니다. 그러나 상호 합의하에 다이스 제외 전투를 하는건 자유-☆ - 데플의 위험성이 존재합니다. 캐릭터의 자유에 걸맞는 책임감을 부탁드립니다. - 서브 캐릭터를 허용합니다. (설정상 일상을 돌리기 힘든 성향이라거나 여러 기타 사유를 고려해서.) - 매주 월요일에 웹박수를 공개합니다. 앓이나 응원, 호감표시등 자유롭게 해주세요. 공개되길 원하는 웹박수의 경우 말머리에 [공개]를 써주세요.
남운혁이 남긴것은 여러 서적들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남운의 모든 절기와 가문을 이끌기 위해 필요한 여러 정보들이 담겨져 있었죠. 그리고 자신이 나름대로 창천검법에 대해 해석한 내용도 담겨져 있었습니다. 아마 복원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되겠죠.
그리고 어째서인지 그저 평범한 글귀임에도. 당신을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지는건 기분탓일까요.. 한편 정보중에는 창천검이 초대 가주때부터 써왔던 신병이기라고 적혀있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그 힘이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튼튼함만은 여전해서 손질만 잘 해주면 계속 쓸 수 있다고도 하는군요.
🖝 혈화검 혈화검으로 더 유명한 천 소예. 그녀가 사심은 잠시 떼어놓고 당신에게 살아남을 힘을 전수하려 한다.
당신은 소예에게 배우는 이 시간만은, 그때 느꼈던 감정과 위압을 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압도적인 힘. 그녀는 현재 절맥 상태인 당신이 배울만한 기술들 위주로 알려줬고. 최후의 최후에 쓸만한 침술도 하나 알려줬습니다.
평소 당신을 졸졸 따라다니던 모습따위는 보이지 않고. 그저 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엄한 그녀의 모습. 하지만 그렇기에 더 무언가를 배우기에는 좋은 환경이었을겁니다. [권능 생성] 음기지체 : 빙공 관련 보정, 한기 체질 습득 | [P] 흡의 묘리 : 마력/기공계 스킬로 입은 피해의 30% 회복 | [Auto] [쿨 5] 남운의 리(理) : 상태이상 내성 증가 | [P]
>>28 바인딩 오브 스킬에다가 분석을 추가하고 그걸로 적의 스킬을 분석해서 마력/기의 흐름을 파악한 다음 핵심 부분을 핀포인트로 폭발시키면 스킬 자체를 깨버릴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 하나만으로... 훈련과 훈련과 훈련과 훈련으로... 만들어낸 스킬이에요... 개빡셌어요...
역시 나만 그런게 아니었다. 선배님의 말에 의하면 아카데미엔 워낙 다양한게 많기 때문에 길을 잃기 쉽다고 하셨으니까! 무려 나보다 1년을 먼저 다니신 선배의 말씀이니 믿음직하다. 나도 1년이 지나서 2학년이 되면 이렇게 스무스하게 후배들에게 길을 알려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겠지? 헤헤
" 앗 네! "
나의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느끼셨는지 책에 대해선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며 책을 옆구리에 끼웠다. 옆구리에서도 조금씩 움직이는 것을 보면 자아가 있는것 같은데 ... 책에 자아가 있다니 금서라도 되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격이 높은 마도서인걸까. 어느쪽이던 정말 흥미로운 것이다.
" 몇번이고 걸은 길인데도 아직 눈에 안익어서요 ... "
그래서 아카데미에 처음 왔을땐 강의를 들으러 교실로 가는 것도 꽤나 애를 먹었다.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서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어떻게 어떻게 수업을 듣고 기숙사로 돌아올 수 있었고 그쪽의 길은 어느정도 외웠지만 거기서 조금만 벗어나면 이렇게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어쩌면 나 길치일지도 몰라.
" 앗 안데르센 선배님이군요! 기억해둘께요! "
성이 없는 것을 보면 나와 같은 평민인것 같았다. 귀족이면 어떡하지, 하고 조금 마음 졸였는데 다행이다. 여기선 신분의 고하를 따지지 않는다고 하지만 나 같은 평민은 귀족들을 보면 조금 숨이 막히는 것이다. 특히나 대가문의 일원들을 보면 어디로 숨고 싶어질 정도가 되어버린다.
" 저도 성이 없었는데 록시아님이 아카데미엔 마리라는 이름이 많다고 성을 붙여주셨어요! "
나도 원래는 마리라는 간단한 이름이지만 마리는 흔한 이름인지라 특별히 마련해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내 이름은 마리 셀리아다!
" 동명이인이랑 헷갈릴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불러주세요! "
그리고 록시아님의 예상은 적중했던게 내가 아카데미에 와서 만난 마리만 해도 벌써 한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나 흔한 이름이라니! 하지만 평민들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 하지만 셀리아 양은 좀 곤란하니까 셀리아라고 불러주세요. "
그런 표현은 듣고 살지 않아서 좀 낯간지럽다고 해야할까. 선배의 옆에서 열심히 발걸음을 맞추며 걷던 나는 문득 궁금한게 생겨서 선배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평민 중에서도 가진 재주와 능력으로 큰 돈을 버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 이름높은 거상이나, 예술가와 같이. 나는 그 중에 속하지 않고, 평범한 농민의 자식에 불과했으니. 이런 커-다랗고 복-잡한 건물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그나마 책에서 읽은 것으로 내적 친밀감이 있어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지만...
"중간중간 교내 지도나 안내판 같은 게 있어서, 그걸 참고하면 좀 더 도움이 될 거에요."
마침 보이는 곳에 있는 커다란 교내 지도를 가리켰다. 현 위치까지 친절하게 표기된 지도는 길을 못차는 가련한 중생들을 구원하기 위한 등불처럼 보였다. 물론.. 어디에나 있는 건 아니어서 꾸준히 길을 잃는 사람은 나오지만...
"경험상 반년 정도면 길을 잃는 건 드물어질 거예요."
팔을 뻗으며 가리키는 중 힘이 풀린 것일까, 쑥하고 몸을 빼낸 '네로'가 부드럽게 비행하여 내 머리 위에 안착하였다. 나는 잠깐 발걸음을 멈추고 올려다 보았다가(아마 지금 내 표정은 '어쩌지..'하는 생각이 그대로 드러나있지 않을까?) 포기하고 그냥 걷기 시작했다. 무게가 느껴지지 않아서 다행이다.
"선배님..아, 편하게 불러도 괜찮아요."
-라고 말하지만, 선배님! 이란 호칭은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평범하게 모자라던 신입생이었던 내가 이제는 선배님이라니! 나는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또한 표정이 묘하게 들뜨기 시작했다)
"아- 그, 그렇네요."
본인이 먼저 언급했다지만, 처음 본 사람의 이름이 흔하다고 말하는 건 조금 실례가 되겠지? 그렇지만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도 '마리'는 좀 많았다. 3, 아니 이제 4학년인 선배 중에 한 분. 졸업 못해서 울던 선배 중에 한 분... 동기 중에도 있던 것 같은데. 그래도 처음에는 혹시 귀족인가? 싶었던 것이 아니게 되어 마음이 살짝 더 편해졌다.
"알겠습니다. 셀리아."
평민이라면 뒤에 '양'이나 '아가씨'가 붙는 것이 어색하겠지.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얼마 없는 귀족 친구가 뒤에 '영식'이니 뭐니 하면서 붙일 때 소름이-.
"저는 '레오넬' 출신이에요.
썩 좋지 못한 기억은 집어넣어 두고 셀리아의 호구조사에 답했다. 잠시 이곳저곳 돌아볼 때 카르마에도 가본 적이 있는지라 카르마의 풍경은 알았다. 생각보다 평범한 시골 마을들은 크게 다를 것 없었지. 특이점이라면, 종교에 대한 관심이 레오넬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
아버지 - 칼리토르 레인워커 / 고요한 호수같은 성격. 순한 눈매. 소탈하고 소박한 성정이 특징임. 어머니 - 밀리아 레인워커 / 평민출신. 활달하고 가정적인 성격. 고양이눈매. 특기는 요리, 좋아하는 건 애플파이(만드는 것도 먹는 것도) 장남 - 헬리안 레인워커 / 이름의 유래는 '해바라기', 가문의 후계자로 썩 명석하다. 아버지를 따라 소탈한 성정. 차남 - 렌지아 레인워커 / 생략 장녀 - 스테리아 레인워커 / 이름의 유래는 '등나무꽃', 남자가 많은 가문에서 딸로 태어나 유독 사랑받음. 당차고 자신감 넘치는 성격. 아카데미에 가고 싶어한다. 막내 - 니겔라 레인워커 / 이름의 유래는 '니겔라' 가장 어린 막내. 소심한 성격이나 유독 렌을 잘 따른다.
필리아 L. 호라이즌은 기사다. 엄밀히 따져 기사의 흉내를 내는 레오넬의 직계일 뿐이라 한들 스스로 기사임을 자칭하며 1년간 무리를 지었고 또한 그에 걸맞는 업적으로서 전장에 나가 살아돌아온 것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냈다. 레오넬의 편력기사. 홀연히 전장에 나타나 강함을 증명하라며 덤벼들곤 이기던 지던 상관없이 강자를 자신의 휘하에 두려 덤벼드는 광인. 귀족답지 않은 행동과 그에 반대되듯 엄격히 꾸며낸 예절 그리고 여성이라고는 믿기 힘든 단련량으로 세간에서의 평가가 이리저리 갈라지고는 했으나 그녀를 표현하는 것은 언제나 기인이라는 단어가 주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보시게."
당신이 그런 그녀를 만나게 된것은 분명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마치 짜기라도 한듯이 하나 둘씩 자리를 옮겼다. 도서관이기에 정적은 어느정도 당연한 일이었으나 그럼에도 너무 부자연스럽게. 그녀는 인재를 놓치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놓아줄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이미 한 번 일전에 만났을때부터 눈독을 들이고 있던 것인지 그녀의 눈은 인재에 대한 탐욕과 새로운 경지의 강함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그럼에도 자연스러웠다. 갖춰입은 예복은 공식적인 활동임을 의미하고 있었고 무장역시 풀지않아 임전태세를 갖추고 있었음에도. 그럼에도 그녀의 말투는 너무나도 평온하여 마치 오랜기간 만나지 않은 벗을 상대하듯 가벼웠다.
"이거 오랜만이구먼. 그간 안녕하셨는가?"
한껏 들뜬 목소리였다. 당연하리라. 한번 놓쳤다 생각한 물고기와 다시만난 것 뿐만 아니라 이전에 비해 괄목상대한 것을 눈으로도 느낄 수 있었으니. 팔짱을 낀채 턱 언저리를 쓰다듬고 있는 것은 분명히 그녀의 머리속에서 당신을 포섭하기 위한 여러 방책을 떠올리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그녀는 곧바로 손을 내밀었다. 갑주를 착용하지 않은, 장갑을 낀 오른쪽 손을. 아마 그녀 나름의 예절표현이었으리라. 무기를 먼저 내밀지 않았으니 자신은 우호적이라는 뜻일까.
"자네의 소식은... 음, 미안하군. 숨겨서는 안되겠지. 역시 자주 듣지는 못했네. 미안허이, 내 이리저리 바쁘게 다니다보니 정보를 모으는 것은 다른 이들에게 맡기고 있는 터라."
"허나 첫눈에 알 수있군. 이전보다 훨씬 안정되어 있는것을 보니 필시 피나는 노력을 하였겠지. 전보다 더욱 밝게 타오르고 있어. 아름다워."
기사문학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는 불호에 가깝다. 물론 나 역시, 스스로 입에 담기에는 부끄럽지만, 꿈 많은 소년인 만큼 고결한 기사의 일생을 어찌 사랑하지 않겠냐만은. 단순 유행을 넘어 범람에 가까운 시기가 있었고, 그 시기에 담긴 내용이 대체로 일관적이어서. 그 시기를 연 몇 대작을 제외하면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현재의 이야기이고 어렸을 적에는 탐독하곤 하였다. 당장 내가 처음 쓴 이야기인 '용사 아서의 모험' 역시 기사 문학에 가까웠다. 검을 들고 약자를 지키며, 거대한 악을 베고 가끔은 괴짜같은 기사. 그런 이야기 안의 주인공들은... 사실, 지금도 좋아한다.
사각, 황금 장식이 수놓아진 깃펜이 흔들리며 선을 긋는다. '네로'에게도 글을 남길 수 있는 새 깃펜이지만 바로 네로에게 잉크를 묻히고 싶지는 않았다. 고심 끝에 한 문장. 그렇게 문자의 수를 놓아보고 싶었다. 처음에는 불만인듯 내 머리위에서 떠나지 않던 네로도 이제는 조용히 책상 위에 누워있었다. 이해해준 모양이지. 아니면, 도서관이라서 그럴 수 있겠다. 신비할 정도로 화려하고, 살짝 과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황금색인 네로는 그 도서관에서 온 책이니까, 도서관의 예절을 잘 알았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린다. 여성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익숙하기도 하였다. 반갑냐 아니냐를 한다면, 상대에게 미안하지만 후자. 그래서 내 어깨도 흠칫! 크게 떨렸다. 주변의 사람들이 슬금슬금 자리를 떠나는 것이 보인다. 처음부터 언질을 받은 것인지 저 사람을 피하고 싶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깃펜을 쥔 손에 힘을 주고 삐걱이며 고개를 돌렸다. 여성이 보였다. 거친 금색 머리. 사자가 진하게 연상되는 단련된 기사를. ...기사, 보다는 투사에 가깝지 않는가? 하는 의문은, 처음부터 들었지만.
"그, 네. 오랜만입니다. 호라이즌 경sir. Horizon"
1년 간의 단련, 그리고 다소 긴 여행. '환상의 도서관'을 찾고, 또 돌아오는 길에서 만난 레오넬의 2대 사자왕. 정갈한 예복에 단단한 무장. 금방 전장에 서는 편이 더 어울리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역시 참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인물.
검은 들지 않았으나 주먹은 쥐어 약자를 지키고, 거대한 악을 베지는 않으나 때려눕히는, 가끔..보다는 자주 괴짜같은 기사. 금방 이야기에서 쏙 튀어나온 것 같은 투쟁의 선봉. 그리고... 왜인지는 모르지만, 농담이리라 생각하고 싶지만 농담과 거리가 먼 사람일 것 같아 아마 진심인듯, 나를 영입하려던 서부기사단의 장. 내게 장갑을 낀 손을 내민 '필리아 L. 호라이즌'. 기사 '호라이즌 경' 그녀를 부르는 내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솔직히 무섭거든!
"아-하하. 그야, 조금 돌아다녔을 뿐이니까요. 당연합니다."
악수를 해야하나? 조심조심 손을 내밀던 나는 먹이가 된 기분을 느꼈다. 앞으로 피식자의 마음은 제대로 묘사가 가능할 것 같았다. 심장이 꾹 말리는 듯 하다-고.
"칭찬은 감사합니다만, 그, 과분한 말씀 아니신지.."
슬금슬금 이리저리 도망칠 경로를 노렸다. 전에야 개활지였고 거리도 있었고, 호라이즌 경이 내 마법을 몰랐으니 허도 찌를 수 있었..던 것 같지만. 지금은 도서관 내에, 거리도 가깝고, 내가 뭘 할 수 있는 지도 안다. 도망..갈 수 있을까..
"호라이즌 경이라니. 고작해야 부모의 위광으로 얻어낸 자리일세. 그냥 편하게 부르시게나."
겉보기에는 강하게 쥐어지는 손에서는 악력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호의에서였을까. 미소로 화답하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묘한 온기마저 느낄 수 있으리라. 체형에서 오는 압도감, 그리고 독대하는 자리의 중압감. 그것을 느끼는 것은 비단 안데르센 만이 아니었다. 일전의 '사고'를 바탕으로 그가 가진 마법의 편린을 확인한 그녀였기에 언제 도망칠지도 모른다는 긴장감과 동시에 전에 없던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스승과 고모의 도움으로 마음을 조정할 수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못했다면 새로운 경지에 대한 본능적인 두근거림 텃에 당장에라도 일어서서 대련을 하자고 나섰을 것이 분명했다.
"이런 자리에서 말하는 것은 조금 그렇네만"
그녀는 재고를 요청하는 당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탁상을 가볍게 두들기며 조금 언성을 높였다. 마치 이곳에 있는 이들에게 모두 들으라는 듯 웃으며 말하던 그녀는 곧바로 손가락을 움직여 뒤에 있던 수행인을 불러 투박한 철제 잔에 식어빠진 차를 준비시켰다. 일련의 과정이 익숙하다는 듯이 수행인은 표정조차 변하지 않았으나 필리아는 이전과는 달리 조금 눈치를 주듯 웃고있었다.
"다 큰 사내가 여인의 권유에 겁을 먹고 도망치는 것은, 매너가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나?"
그녀는 당신의 눈을 응시한채로 아무말 하지않은채 1분여의 시간을 보내더니 이내 컵을 잡고있던 손을 치우고는 웃으며 펄펄 끓고있는 찻 잔을 당신에게 건내고 손짓했다. 웃고있는 그녀의 얼굴 뒤에서 당신은 무엇을 보았을까. 그것이 무엇이든 적어도 오늘 당신이 바라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만은 자명했다.
"뭐 자네의 이야기는 아닐세. 이 아카데미에서, 그 정도로 매너가 없는 이는 없을터이니. 문무양도가 아카데미 학생의 기본 아니겠나?"
그녀는 너스레를 떨며 자기앞에 있던 펄펄 끓는 찻잔을 들어올리고 단숨에 비워냈다 요컨대 이런 뜻이었다. 설마 도망칠 생각을 하고 있다면 희망을 버려라. 두번이나 까이는 경험을 할 생각은 전혀 없다는듯 그녀는 은근히 당신을 압박하고 있었다. 마치 그때 그런 식으로 도망쳤던 것은 없었다는 것처럼..
글쎄요. 투기장의 슈퍼스타로 우뚝 선, 새로운 레오넬의 사자왕이라는 소문까지 도는 걸 누가 부모의 위광이라고 폄하하겠습니까.
"아하하.. 아뇨, 제가 이 쪽이 편해서.."
..라는 생각을 직접 입에 담을 수 있을 리는 없었고, 나는 그냥 애써 웃기만 하였다. 으레있는 인사치레, 호감을 위한 겸손 정도로 생각하기로 하였다. 그런 인사치레를 좋아하는 분 같지는 않았지만. 그러는 중에도 손에 쥔 손은 나보다 훨씬 커다랗고, 무투파 특유의 거친 흔적이 남아있었지만 꽤 부드럽게 쥐어지는 것을 느꼈다. 크게 힘을 줬다면 아마 많이 아팠으리라. 그런 생각이 들자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그와 별개로 '호라이즌 경'이라는 호칭이 더 좋은 건 사실이었다. 안 그래도 이야기에서 툭 튀어나온 듯한 인물이다. 이런 사람에게 '경'이라는 호칭을 붙이는 건 뭐랄까, 일단 나에게는 꽤 로망을 자극하는 일이었다. 슬쩍 바라보자 웃음에서 온기가 느껴진다. 아무래도 자신에게 호의적인 것은 사실인 모양이었다. 동시에 순간 크게 소름이 돋아 몸을 쭉 펴게 되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방금 정말 위험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네?"
호라이즌 경이 살짝 목소리가 높였다. 그녀의 가벼운 움직임에 따라 수행인이 찻잔을 내오는 것을 보았다. 순간 여기서 차를 끓이는 것인가 싶어 눈가가 움찔했다. 도서관에서? 하지만 찻잔은 철이었고 안에 식은 차도 들어있었다 ...왜 찻잔은 철로 되어있을까. 수행인분들은 익숙한듯 보였지만 나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딱히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전과는 다른 묘한 웃음과, 잔을 쥔 호라이즌 경의 손을 번갈아가며 조심스럽게 살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저 찻잔의 의미를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설마 자칫 잘못하면 내 피가 저렇게 끓는다는 건가? 일전에 읽은 이야기에서 그런 류의 고문을 본 적이 있었다. 마법이란 실로 신비하여, 사람의 상상력을 안좋게도 자극하는 경우도 있었다. ...고어를 주력으로 미는 공포 장르라거나... 나는 펄펄 끓는 차를 단숨에 들이키며 너스레를 떠는 모습에 절로 튀어나오려는 한숨을 애써 삼켰다. 그러고보니 이 사람, 인재에 대한 욕심이 엄청나다는 소문을 들은 것도 같고.
"...죄송하지만 귀족의 예절에 대해 배우지 못한 평민이라 그런 매너에 대해서는 모르니 부디 관용을 베풀어주시기 바랍니다..."
일부러 호라이즌 경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슬쩍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다행히 얌전할 줄 아는 네로를 쓰다듬듯 만지면서 안정을 찾고 있자니 이번에는 또 다르게 압박한다. 그저 궁금해만 하는 모습이지만 내게 진한 압박감으로 다가오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나는 결국, 아주 연한 한숨을 살짝 뱉고 침음을 흘렸다.
"..으음, 글쎄요."
애매하게 피하기만 해서는 의미가 없겠지. 나는 천천히 고민했다.
"애초에 사람에게 어울리는 짐이라는 건 없겠지요. ...화를 내지 않으시리라 믿고 말씀드리자면, 딱히 진지하게 생각해서 드렸던 말씀은 아닙니다. 그저 저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뱉어낸 회피였습니다."
뺨을 긁적이고서는 슬쩍, 펜을 찻잔 위로 옮겼다. 차가움Cold. 그 문자가 적히며 찻잔 속의 펄펄 끓던 차가 차갑게 식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 사람에게 어울리는 짐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걸 짊어지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여 얹게 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저의 짐이 호라이즌 경과 함께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송구스럽습니다만 들지 않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듣던 그녀는 몇번 고개를 끄덕이고는 짧은 상념에 빠졌다. 당신이 찻잔에서 두려움을 느꼈듯, 그녀역시 식어버린 찻잔에서 무언가를 느꼈음이라. 난세는 찾아왔고 대적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 그렇기에 유능한 인재를 모으며 스스로의 강함을 시험하는 1년간이었다. 전쟁에, 결투에, 마수의 입에까지도 몸을 던지며 강함을 추구했고 더없이 폭력적일정도의 성장과 함께 어느 정도 걸출한 동료들을 손에 넣는것도 성공했으나 불안을 감출수는 없었다. 자기 안에 잠들어있던 본성을 깨닫고 맞서싸워 넘어서기를 결정했을 뿐 감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기에. 아직도 그날을 떠올리면 두려움인지 고양감인지 모를 떨림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손짓 몇번에 빈 찻잔이 채워졌다. 여전히 미지근했으나 이 정도가 적당했다. 그녀는 다시 한번 끓어오른 찻잔을 비우고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쉽군."
그저 그 한마디 뿐이었으나 그 안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었다. 내뱉는 말에는 약간의 아쉬움은 남아있었으나 불쾌감은 없다는 듯이 그녀는 다시 손가락으로 탁자를 툭툭 두들겼다. 이대로 놓기에도 그렇다고 두기에도 아쉬운 인재를 어찌하면 좋을까, 하는 생각역시 일순 그녀의 머리속을 스치기는 했으나 그리오랫동안 머물지는 못했다.
"허나 이전처럼 도망치지는 않았어. 그 잠깐사이에 또 성장했구만 자네."
그녀는 한 결 깔끔해진 듯한 표정이었다. 마치 짐을 털어냈다는 듯한 안도감 그리고 아쉬움을 여실없이 드러내며 웃고있었으나 그럼에도 여전히 어느정도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는 것 처럼 보이기도 했다. 당신의 행동 하나하나를 눈에 담아두려는 듯 행동하나하나에 시간을 들여가며 천천히 당신의 모습을 그녀는 눈에 새겼다.
"자네가 그리 말한다면 나 역시 그 이상 귀찮게 할 생각은 없다네. 애초에 오늘은 이전의 이야기에 대한 확답을 듣고 싶어서 온 것이었으니. 자네의 뜻이 그러하다면, 그것을 강제로 꺾어 얻는 손해는 레오넬에 돌아올테니. 이름을 가진 이상 그런 식으로 행동할 수는 없지."
가문에 누가 될 수 있기에 이 이상을 하지 않는다. 귀족적으로는 모범적인 답안이었지만, 그녀로서 어울리는 답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대가문의 편력기사, 기인, 투기장의 사자. 그런 식으로 불리는 것이 더욱 익숙한 그녀였기에.
"허면 벗으로는 어떤가. 군문에는 들어오지 않아도 되네만, 자네의 강함에는 역시 흥미가 있어서 말일세. 학생답게 서로 절차탁마하는 정도의 교류는 그대도 싫지 얺겠지?"
궁지에 몰린 수준은 아니지만, 도주로가 없어 들이 박은 것이다. 이걸 성장이라고 해도 되는 걸까? 체념에 가깝지는 않은가? 분위기가 가라앉은 것을 느낀 건지 슬그머니 떠오르려 하는 네로를 손으로 꾹 누른 뒤 호라이즌 경을 보았다. 그냥, 마법을 배운 뒤 예전에는 접하기 힘들었던 차가운 쪽의 음료가 좋아 식힌 것인데 무언가 크게 해석하신 것 같기도 하고. 상당히- 열정적인 분이셔서 그런가. 마주하고 있으면 여러모로 뜨거웠다.
다행스럽게도 호라이즌 경은 나를 영입하려는 시도를 포기..까지는 아니지만 접어둔 것 같았다. 아쉬움 틈새로 엿보이는 '그래도 나는 너를 인정하니 언제든 와도 좋다'라는 느낌은 착각이 아니리라. 나는 슬쩍 잔을 잡고 (과연 철제. 무거워서 두 손으로 잡아들어야 했다) 한 모금 살짝 들이킨 후에 호라이즌 경을 향해 눈짓했다. 현 레오넬에는 확고한 가주 후보가 있다고 들었으니, 그분에게는 꽤 실례가 되겠지만, 뭐랄까 '왕' 같기는 하였다. 인재에 탐욕스럽고, 호방하고. 먼 과거의 사자왕이 그렇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그래도 깔끔해진 표정을 보면 자신에게 더 과격한 권유는 하지 않으리라... 그리고 사실, 음, 조금, 불만스러운 권유이기도 하였다. 이번에는 특히.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거절하고 나서 바로 이렇게 말하니 좀 그렇습니다만, 만일 제 도움이 필요하시다고 한다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미력하게나마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악의가 있던 것은 아니고 나를 무시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좀 과하게 높은 평가를 낸 덕에 이런 상황이 일어난 것이니 나중에 내가 힘이 될 수 있다면 그리하고 싶다. 이야기에서 튀어나온듯한 인물이다. 멀리서 보는 쪽이 좋지만 가까이서 돕는 것도 기껍다.
"..학생답게.... 그, 제가 그리 강하지는 않습니다만,.. 네에. 그 정도야... 그렇다면 말씀을 좀 올려도 괜찮을까요?"
사실, 아까부터. 아니 처음부터 신경 쓰였던 것이 있다. 나는 고개를 들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적막한 도서관이 보였다. 본래 정적과 고요함이 미덕인 도서관이라지만 이번에는 유독 그것이 심했다. 책 넘기는 소리, 펜이 흘러가는 소리도 없었다. 지식을 나누거나 자그마한 즐거움을 위해 속닥거리는 목소리도 텅 비었다.
“퇴로가 왜 없겠나. 구하면 찾을 수 있는 법이지. 내가 자네를 강제로 끌고 가는 방법도 있는 것처럼 말일세.”
아니 그러한가? 그녀는 그리 되물었다. 도주가 여의치 않다 하더라도 제대로 된 도주 작전을 성립시키는 것이야말로 강함의 증명. 그 과정에서 교내의 비품에 문제가 생긴다고 한들 그 정도는 가문에서 내더라도 큰 문제는 없으리라. 그녀는 그런 생각으로 안데르센이 이번 대화에서 도망치더라도 그저 제 손으로는 담을 수 없는 강자이기에 풀어 두는 것이 낫다 생각하였을 것이다. 허나 안데르센은 도망치지 않았다. 되려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맞부딪힌 후에야 차라리 도망칠 것을 그랬다며 후회하고 있는 모습은 그녀의 마음에 들기에 충분했다.
어떤 결과가 나오던 간에 적어도 그 선택을 후회 할지언정 이미 일어난 상황에서 도피 할만한 인물은 아니라는 뜻이니. 조금은 허무 하지만 그렇다 하여 자신의 안목이 틀렸다는 것은 아닐 테니. 전장에 서야 인간의 깊은 곳을 볼 수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라면 충분히 만족할만한 결과였다.
“그리 말해준다면 나로서도 약속을 나눌 수 밖에 없겠어.”
전사보다는 문인에 가까운 인상이었다. 그 남자는. 연약하고, 마치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은. 마법사이기에 근육 단련에 큰 비중을 두고있지 않은 것은 둘째로 치더라도 지금까지 보아온 마법사들은 그렇다고 하여 일신의 물리력이 약하지는 않았기에. 특이한 인상이었지. 천천히 그를 해부하듯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관찰했다. 기사단의 인간은 모두 물리적인 방면에서는 어니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맹자였으나 아쉽게도 나의 부족으로 인하여 마법에 대한 것은 아직 특출 나다고 할만한 인재가 드물었으니 솔직한 심정으로는 당장에라도 싫다는 것을 억지로 기사서품이라도 하여 굴리고 싶었다.
아쉽다. 몇 번이고 느끼는 감정은 그것뿐 이었으나 스스로 선택한 이가 나아가야할 것을 비웃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 스스로를 대단치 않다 여기는 이 후배가 언젠가 파란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내 안에 남아있었다. 그런 이와 친분을 쌓을 수 있었던 거라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자네가 도움을 요청할 때. 자네가 사도를 걷고 있지 않다면 나 역시 자네를 최대한 돕도록 하겠네. 레오넬로서의 도움은 기대하기 어렵겠지만 부족하진 않을 거라 자부하지.”
그녀는 의자를 끄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망친 사람들이 슬슬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한 두 명정도 돌아와 몰래 이 장면을 관찰하고 있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이내 입가에 미소를 띄우고는 등을 돌렸다. 적막은 여전했다. 긴장은 더 말할 것도 없겠지. 본디 정적 속에서 지혜를 구해야 마땅한 도서관이었으나 거의 사라진 인기척도 그녀는 기꺼이 여기기로 하였다.
“으하하하!!!! 음, 그리 해야겠지. 하지만 오늘의 만남은 자네의 선택의 결과라고 생각하시게. 나는 자네가 투기장까지 나를 보러 올 거라고는 생각 하지 않았거든.”
마치 연극을 하듯 조금 과장된 듯한 모습. 누군가에게 들으라는 듯 한 층 더 커진 몸짓.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그런 당신의 곤란조차 즐기는 모습이라는 것을.
“내 오늘은 실례가 많았네. 다음 번에는 번듯한 곳에서 보도록 하지. 아, 잔은 가지시게.”
그녀가 조금만 더 막나가는 성격이었다면 자신은 정말 질질 끌려가지 않았을까? 최후의 대피수단은 있지만 그런 가능성이 있다는 것부터가 두려워진 안데르센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피했다. 필리아는 이번에도 그가 도망치는데에 성공한다면 잡지 않을 작정이었으나, 그 사실을 모르는 안데르센은 여기서 도망쳐봤자 다시 쫓길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대화 끝에서도 자신을 붙잡으려 한다면 모든 걸 다 써서라도 튈 작정이었던 그다. 우연인이 운명인지 도망치는 데에 좋은 권능도 가지고 있다. 그는 잠시 다분히 귀족혐오적인 자신의 친구 한 명을 떠올렸다. 여기 없어서 다행이다. 그러면 상대가 누구든 들이박았을 테지...
안데르센은 마법을 사용하는 인물들 중에서도 아마 독보적으로 유약해 보일 것이다. 본래라면 제나가 그 자리를 차지했겠지만 제급이라는 실력과 레오넬 가주 후보라는 직책은 만만한 게 아니라, 현재는 안데르센이 마법 사용자 중에서는 독보적이지 않을까. 농민의 자식으로 어렸을 적에 밭일을 조금 돕기는 했지만 최근 몸을 움직이는 게 최소한이 되다보니 실제 보는만큼 약할 것이다. 그나마 기초 체력만큼은 붙어 있는 정도. 그렇기에, 물리적인 힘을 자랑하는 서부 기사단 사이에서는 툭 튀어나와 보이겠다.
"...으음, 이 장면 어딘가 소설에서 읽은 적 있는 것 같은데.."
필리아가 자신에게 도움을 약속하는 모습에서 안데르센은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환상의 도서관에 틀어박혀 내내 책을 읽다가 나왔던 안데르센이다. 간접 경험이라고 하나 그 그림은 몇 번이고 공상하였고, 나름 익숙해질 정도이다. 심지어 책을 금지당하는 묘한 시험 덕에 뇌내 도서관까지 가지게 된 그는, 어느 이야기 속 편력기사가 이 비슷한 약속을 했던 것을 떠올렸다.
“언젠가 한 번 찾아가겠습니다. 꽃다발을 챙겨서요.”
무대 위에 서는 것이 아니라 관객으로서 찾아가겠다는 살짝 애둘러서 한 안데르센은 과장된 모습으로 말을 하는 필리아를 향해 이제는 대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귀족 특히 고위 귀족을 어려워하나 기본적으로는 담력이 강하다.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겁을 먹지 않는다는 뜻이다. 권력을 내려놓고 평범한 학우로 삼게 된 필리아를 대하는 태도 역시 그렇다.
“....다시는 도서관에서 뵙고 싶지는 않네요... ‘아서’, 부탁해.”
잔은 가지시게. 그 말을 들은 그가 생기가 살-짝 날아간 눈으로 철제 잔을 보더니 두 번째로 한숨을 내쉬었다. 붕- 날아온 네크로노미콘의 책등을 살살 쓰다듬으며 주머니에서 황금색 열쇠를 꺼낸 그는 누군가를 불렀다. 곧 어디선가 책 페이지가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이어 옅은 금빛과 함께 누군가 나타났다. 금색의 사내였다. 나이로 따지자면 열아홉 가량. 아직 앳된 기색이 남아있으나 키는 컸고 몸도 잘 단련되어 있었다. 그자는 금색 눈을 휘며 웃더니, 조심스럽게 철제 찻잔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안데르센의 곁에 자리했다. 금색 열쇠를 허공에 꽂아, 돌린 안데르센은 몸을 돌렸다. 아, 문이 열렸다.
가까운 곳을 갈땐 곳곳에 놓인 지도가 도움이 되었지만 멀리 떨어진 곳에 갈때는 딱히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가다가 다시금 길을 잃어버리곤 했으니까. 그럼 근처 지도를 찾아보는게 어떻냐, 싶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럴때마다 주변엔 지도가 보이질 않았다. 그러니까 길을 잃는 것은 내 잘못이 아니라는거야!
" 그럼 저도 금방 길을 외우겠네요! "
이렇게 넓은데 반년이라니 그게 가능한건가 싶었지만 선배가 가능하다니까 나도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지도를 전부 외운다기보단 포인트를 외워두는 식으로 돌아다니면 괜찮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선배의 옆구리에 끼고 있던 책이 갑자기 빠져나오더니 머리 위로 올라갔다! 신기한 광경에 시선을 뺏긴 나는 선배의 목소리가 들릴때까지 계속 책을 바라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 아니에요! 선배님은 선배님! "
동대륙에는 도리라는게 있다고 수업시간에 배웠다. 그러니까 이건 후배로써의 도리인 것이다! 선배님을 선배님이라 부르지 않으면 어떻게 부른다는 말이야.
" 저는 셀리아라는 성이 마음에 들어요. 마리도 좋지만 성이라는건 되게 특별한거니까요. "
선배님이 셀리아라는 성으로 불러주자 괜시리 기분만 좋아져서 텐션이 올라가버린 나는 발걸음이 좀 더 당차졌다. 성씨가 생긴 것만으로도 좋았지만 그것을 선사해준게 록시아님이라는 것이 더 좋았다. 아카데미에 들어오기 전에 딱 한번 뵈었지만 아직도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는 것이다.
" 앗! 레오넬이라면 제나님이랑 필리아님이 있는 가문이잖아요! 아카데미에 두분 다 계신다고 들었는데 한번도 못뵈어서 아쉬워요 ... "
이미 아카데미에 들어오기 전에 사전조사를 끝낸 나에게 모르는 귀족분들은 없었다. 특히나 제나님과 필리아님은 레오넬 가문의 직계로 가주 자리를 이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분들이었다. 제나님은 불꽃을 완전 잘 다루고 필리아님은 근접전의 귀재라고 하시던데 ... 언젠가 꼭 이 두눈으로 보고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 헤헤 저는 록시아님도 좋지만 제나님이 더 좋아요. 같은 여자로써 멋있으니까요! 싸인도 받을거라구요! "
혹여 록시아님이 들을까 주변을 열심히 둘러본 나는 누가 들을새라 선배님에게 작게 속삭였다.
지도를 보고서도 반대로 걷거나 같은 곳을 헤멘 전적이 있다보니 셀리아의 심정이 잘 이해가 되었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평민 출신끼리 대화를 하다보면 특별히 길눈이 밝은 사람이 아닌 이상에야 나오는 공통적인 푸념이었다. 이때문에 지각한 적이 몇 번 있다고 한숨을 죽죽 내쉬던, 유독 방향 잡는 걸 힘들어하던 아이가 떠올랐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번처럼 길을 모르겠으면, 주변 선배분들에게 부탁하면 대부분 도와줄 거에요. 아- 음, 대부분."
아카데미에 다니는 학생 중 인격이 비비 꼬인 사람이 흔한 것은 아니다 또 아예 없다기에도 그랬다. 세상 어디에나 이상한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또 악의같은 이유가 아니라 '도와주실 수 있겠군요!' '아니 나도 길잃었어'라는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도 없고. 사실 나도 아직 생소한 곳에서는 길을 찾기 쉽지 않았다. 그나마 최근은 네로가 길을 좀 알려주지.. 팔을 들어서 머리 위의 네로를 쓰다듬듯 툭툭 두드렸다.
"예에. 그러시다면야."
어째 동쪽의 예절이 떠오르는 답변이었다. 최근 (문예의 도움을 받아) 재미를 붙인 동쪽의 서적들에서 본 바로는, 서쪽보다 위계라고할까, 나이나 분배에 대한 구분이 확실하던 것이 떠올랐다. 같은 대륙이라 해도 역사에 따라 이 정도로 달라지는구나- 하고 신기해했었지-
"이름은 받는 것이나, 그 의미는 만드는 것이니."
셀리아가 자신의 성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모습을 보며 떠오른 문구를 읊었다.
"제가 전에 읽은 소설의 문구에요. 그냥, 음, 생각나서."
이저러런 내용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 어울리는 내용도 아니고, 그냥 셀리아가 자신의 이름에 자부심을 가진 것을 보고 튀어나왔을 뿐이다. '셀리아'란 이름에 어떤 의미를 담아 지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셀리아가 그것을 특별하다 여기면 그걸로 충분한 것 아닐까?
"아, 네. 제나님이랑.. 필리아 경."
제나 님에 대해서는 그렇다해도 필리아 경은... 귀족이라는 자태가 물씬 풍기긴 한다. 차를 즐기는 것도 그렇고(음미하기보다는 그대로 들이키지만) 가문의 이미지를 생각하는 것도 그렇고(조금 과격하지만). 다만 그보다는 편력기사의 이미지가 나한테는 강했다. 일전에 본 이야기 속에서 금방 튀어나온 듯한 이미지 덕분이다. 그도 아니라면, 과격한 전쟁군주. ..사실 이쪽 이야기는 좋아하지 않지만. 설마 이 작은 아이에게도 권유를 하진 않겠지?
"그으런가요? 록시아 님이 들으시면 슬퍼하시겠네요."
살짝 장난스럽게 말을 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필리아 경이 권유를 하면 그대로 잡혀갈 거 같은데.
뒤에서 발걸음이 느껴졌다. 하지만 우성은 신경쓰지 않았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고 그저 지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꽤나 오랜 기간 동안 안 들었기에 누구인지 아리까리한 그런 목소리. 우성은 뒤를 돌아보며 목소리의 정체를 보았다.
"...?"
분명 모습을 보면 누구인지 기억이 날 법도 한데..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그야 우성의 기억에 남은 제나는 단발머리에 피곤에 쩔고 날이 살짝 선 그런 인상이었으니깐 말이야. 지금처럼 여우귀에 9개의 꼬리, 백발의 긴 머리의 제나는 우성이 전혀 모르고 있었다. 1년 동안 거의 은둔을 했다고 할 정도로 수련에만 매진했기에 교류도 거의 없었고 말이야. 그래도 우성은 어색하게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를 받고, 곰방대를 뻐끔거린 다음에 말한다.
"싸울 때 불편해서.. 그런데 누구세요...? 저랑 구면이었나요?"
이와 동시에 보랏빛이었던 우성의 눈빛은 하늘색 빛으로 변하며, 제나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한 3초 정도 지났을까? 우성은 이제서야 알아본 듯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누구세요? 라니. 전혀 예상 못한 답변이 들려오자 그녀는 고개를 갸웃인다. 이 선배가 1년동안 은둔생활을 하더니 내 얼굴도 까먹은건가? 아니면 1년 사이에 내 인상이 못 알아볼 정도로 크게 변했나? 농담을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고갤 갸웃일 때마다 따라 쫑긋이는 여우귀가 꽤나 볼만할지도 모르겠다.
" 저 제나입니다 선배.. "
우성의 눈빛이 하늘빛으로 변하고, 그가 이제서야 알아본 듯한 표정을 지음과 동시에 제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자신의 이름을 밝힌다. 설마 이름을 듣고도 누구냐고 물어보진 않겠지.
" 인상 많이 변했다는 소리는 자주 들었지만 못 알아보는건 너무하잖아요 "
투덜투덜, 꼬리도 짜증스레 휙휙 흔들리고- 그때서야 그녀는 자기가 구미화 중이였다는걸 자각했을까. 아, 하는 표정을 짓는 걸 보면 말이다.
1년, 어느새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확실히 많이 강해진 이들. 아직 그들과 싸워서 무조건 이길거라는 보장이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다른 이들과 협력한다면 어떻게든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한편, 잠적했던 그들도 다시 세계의 표면으로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뚜렷한 목격정보도 없던 그들이 동쪽의 무너진 동굴 입구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입니다. 그들은 어째서인지 동굴 입구를 막고있는 잔해들을 치우고 있다고 합니다. 정보에 의하면 동굴은 뭐 특별한 장소도 아니었다고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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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에게는 모두 이 상황이 전달되었습니다. 그곳으로 갈지는 자유지만 그 외에는 할건 없어보이네요.
만약 상황판단 후 동굴로 갔다면 이미 잔해가 치워져 안으로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는 아라크네드의 흔적들과. 생각보다는 좁아보이는 동굴의 내부가 보일겁니다. 밖에서봐도 안이 전부 보일 정도로 정말 좁은데요. 그 대신 특이하게도 동굴 끝에는 손잡이가 달린 평범한 문이 하나 달려있었습니다. 물론 그게 동굴에 있으니까 누가봐도 수상하게밖에 보이지 않지만요..
세상을 저주하는 거미들이 다시금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동쪽 어느 즈음에 있는 무너진 동굴. 그 입구에서 잔해들을 치우고 있다는데,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내 불길했다. 특별하지 않다고 하나 그 특이성은 충분히 숨겨질 수 있는 것이고-예를 들자면 어느 가문의 요정의 핏줄이나, 어느 가문이 봉인하고 있던 것이라거나-정말 특별하지 않다고 하면 그건 그것대로 함정일 수가 있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지. 나는 미묘하게 신이 난듯한 네로의 책등을 쓰다듬어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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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은 이미 잔해가 모두 치워져있었다. 거미들이 열심히 옮긴 모양이지. 겉으로는 흔적이 보이지 않았고 동굴의 내부는 상상 이상으로 좁아, 밖에서도 내부가 훤하게 보였다. 그만큼 좁은 동굴 끝에는 손잡이 달린 문이 하나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와아. 수상해라..."
멍하니 혼잣말을 중얼거린 뒤 허공에 똑똑, 노크를 했다. 그러자 황금빛이 모여들어 뭉치고, 형상을 빚은 뒤, 땅애 내려왔다. 빛이 가시고 보인 것은 다섯 마리의 쥐. '도시 어귀의 친절한 가족'이라는 동화 속의 아이들이었다. 코가 좋고, 묘하게 인형과 같은 생김새로, 귀엽다.
아라크네드가 동쪽의 무너진 동굴을 치운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무슨 목적일까? 1년 뒤에.. 그러니깐 그 손이라는 것이 딱 봉인이 풀릴 시기에 맞춰서 나타났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드는데.. 어째서 괴물의 봉인이 풀리는 시점이 1년 뒤인 것을 예측한 것이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1년 전에는 생각없이 받아들인 정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라크네드도 아니고.. 왜 우리 쪽에서 1년이란 계산이 나오고, 그것을 확신하며 수련의 기간을 가지게 했을까?
일단 우성은 그곳으로 가보았다. 일단.. 치워진 흔적이 보인다. 아마 녀석들은 내부로 들어가지 않았을까? 무턱대고 들어가는 것은 위험한 방법이다. 내부에 문이 있는데, 저것을 바로 열고 들어가면 불리할 뿐이다. 녀석들은 이미 자리를 잡아서 반격할 준비를 끝냈을 확률이 높거든. 그렇기에 우리도 신중히 주변을 탐색해서 최대한 많은 정보와 준비를 해서 반격을 당해도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된다.
우성은 동굴 밖으로 나와서 잔해들을 분석하기 시작한다. 잔해들이 치워진 방식을 추론하면서 안에 들어간 녀석이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예측하는 것이었다.
망설임없이 문을 열고 들어간 이들에게는 서쪽, 동쪽, 어느쪽과도 다른 양식의 무언가의 입구가 나타났습니다. 등 뒤에는 아까 들어온 문만 덩그러니 있을 뿐이고. 앞에는 이상한 건물. 건물에는 문이 두개 달려있고.. 자세히 살펴보니 익숙하게도 느껴지는 건물의 양식입니다. 왜냐하면 이건.. 대륙의 어느쪽에도 속하지 않고 엄청난 기술력을 자랑하는 아카데미의 건물양식과 비슷했거든요. 마치 혼자서 몇세기는 앞서 있는듯한 그 자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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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안데르센이 노크를 해보았지만 반응은 없습니다. 다른 이들은 지나간 시점. 쥐들을 이용해서 내부를 살펴보았음에도 문 이외에 특별한 부분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성은 밖으로 나가 잔해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다소 무식하게 잔해들이 던져져있는 느낌. 아마도 조심조심 옮겼다기보단 그냥 대충 힘으로 치웠다고 봐야할거 같습니다. 그러고보니 그런것치고는 동굴 내부는 깨끗합니다. 계속 막혀있었다고 보이지 않는 외관이군요.
"...이런 잔해들을 힘으로 써서 옮긴 건가..? 그렇다면 파워가 매우 강하다는 건데.. 파워만 강한 건지, 파워도 강한 건지.. 녀석들이니깐 후자일 확률이 높겠어.."
그렇다면 더 위험했다. 녀석들은 이미 들어갔고.. 이미 자리를 잡아서 대비를 했을 가능성이 높고, 우리가 여기에 이미 들어왔다는 것도 이미 인지했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는 것은 기습할 확률 역시 있다는 것이고.. 저 파워를 가진 녀석에게 기습을 당한다면 상황은 심각해질 것이다.
"....."
우성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간다. 안에는 마치 아카데미와 너무도 유사한 양식의 건물이 있었다. 어떻게 이리 좁은 문 밖에 그런 건물이 있는 거지? 혹시.. 이 동굴에 숨겨진 비밀이 있는 건가? 아니면 이 문은.. 다른 공간으로 연결하는 텔레포트 장치?
우성은 조심스럽게 왼쪽 문으로 옆으로 가고, 벽에 몸을 밀착한 상태로, 손에 무언가를 모으기 시작한다. 음양합일을 이루었다는 것은 음기와 양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다는 의미. 우성의 손에는 빛이 나는 양기가 모여서 뭉치기 시작하고. 과감하게 문을 열어서 바로 들어가지 않고, 문의 반대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양기를 안으로 던지면서 터뜨린다. 마치 섬광탄처럼 말이다. 혹여나 안에 적이 있다면 기습적으로 시야를 일시적으로 차단시키고 제압할 생각이었다. 빛이 터지고나서야 안으로 들어갔겠지.
동굴 안에 있는 인위적인 구조물, 그러고 보면 예전에도 비슷한 걸 본 거 같은데. 던전이라고 했던가?
" 그런 것 치고는 지금까지 함정은 없었고. "
그 거미 놈들이 지나치며 정리를 해 뒀다고 봐야 하나. 천은 두 개의 문이 보이는 곳에 서서 각각의 문에 룡성과 우성이 들어가거나 이것저것 시도하는 것을 쳐다보고 있었다. 여기선 굳이 나설 필요 없겠지. 만약 이 장소가 던전 같은 곳이라면 그 결과로 뭔가 보상이 주어지겠지. 아라크네드가 이곳을 급하게 찾아 들어온 게 맞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먼저 그 끝에 도착하면 된다고 여기는 모양이고.
" 다른 문 같은 건 없나. "
문이 아닐 수도, 저 구조물 자체가 일종의 허수일 수 있다고 생각하며 느긋하게 주변을 둘러보는 천이었다. 만약 진법과 유사한 게 펼쳐져 있다면 자신이 간파할 수도 있을 거고.
룡성은 오른쪽 문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매끈한 철문. 잠금장치가 되어있는걸까요.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 특별한 부분은 없고 단지 문에는 밤하늘의 달 그림이 작게 그려져있을 뿐입니다. 그에 비해서 왼쪽 문은 저항없이 열립니다. 어떻게 할까요?
천은 살짝 물러나서 건물을 살폈습니다. 구조물 자체는 진짜였고 대신 진법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 약 1200개 정도가요. 하나하나 확인하기엔 너무나도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당신의 수준으로도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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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은 남들보다 늦게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의아하게도 먼저 들어갔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밖에서 본것과 달리, 어째 건물이 조금 다른거같은 느낌도 듭니다. 전체적으론 비슷한데 덜 만들어진거 같달까..
우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룡성이나 다른 이들은 보이지 않고 문 밖에서 보았던것과 조금은 다른 건물을 앞에 둡니다. 문은 두개, 그리고 특이하게도 당신의 기술이 건물에 먹혀들지 않았습니다. 건물 자체가 기를 흡수한 느낌? 뭐라고 정의하기 힘들지만 어쨌든 그러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쪽은 문밖에서 보던것과 다르게 오른쪽과 왼쪽의 문이 다 열리는거 같습니다. 어느쪽으로 갈까요?
살펴보니 진법이 엄청나게 빽빽하게 설치되어 있다. 어림잡아 세더라도 1200개 가량, 이래서는 하나하나 다 확인하는 것도 일이고, 게다가 진법들이 독립된 게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건 잘못 건드렸다간 일이 나겠군. 하는 수 없이 진법의 흐름을 보며 주의할 수밖에.
" 결국 들어갈 곳은 문 뿐인가... 응? "
그렇게 중얼거리며 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던 천은, 룡성이 철문에 냅다 공격을 시도하자 부채를 펼쳐 혹시라도 날아들 먼지를 막으려는 듯 코와 입을 가렸다.
" 무식하기는. "
천은 룡성에게서 시선을 돌려, 자신이 들어왔던 문을 보고 다시 열어보려고 시도했다. 보통 이런 곳에 들어온 이상 돌아가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 것 같던데.
건물이 기를 흡수해버렸나? 기술이 전혀 먹히지를 않는다. 그렇다는 건.. 안에서 싸우면 백프로 우성의 기는 흡수될 것.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지금까지 단련한 육체와 창술의 외공을 믿고 싸우기, 건물이 기를 흡수하는데 한계가 있다면 기를 더욱 더 흡수시켜서 과부하를 유도하기, 세 번째는 건물에 있는 기를 흡수하는 '무언가'를 찾아서 파괴하기.
첫 번째는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결과가 극단적으로 갈린다.
두 번째는 이 건물의 한계를 모를 뿐더러, 혼화심법이 아무리 손실된 기를 순식간에 복구하기 좋다고 해도.. 이 건물에 우성이 흡수할 기는 없을 것이다. 건물이 이미 다 흡수했으니깐.
일단.. 가장 먼저 시도해보기 좋은 것은.. 세 번째 방법이겠어.
"....!"
우성은 '용잡기'를 시도한다는 생각으로 다리에 힘을 주고 크게 도약하여 건물의 꼭대기에 착지하려고 했겠다.
돌아가는 문이 멀쩡히 열린다. 열리지 않을거라고 생각했기에 이런 상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그것도 잠시, 천은 열린 문을 넘어가지는 않고 문을 활짝 연 채 그 너머를 살폈다. 자신이 온 길 그대로인가 확인하려는 생각이었다. 분명 바깥에 있던 녀석들도 있었고, 따라오는 것도 봤던 것 같은데 아직도 이 장소에 들어오지 않은 걸 보면 뭔가 있는 것도 같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을 닫으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기분이다.
" 어이, 뒤따라오는 녀석들이 있지 않았나? "
그렇게 룡성에게 물어보려고 했으나 이미 왼쪽 문으로 들어가고 있는 모습에, 천은 돌아나가는 문과 두 개의 문을 번갈아 보다가 자신이 지나온 문, 그러니까 이곳에 들어오게 했던 입구이자 지금 보기에 가장 가까운 출구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룡성과 록시아가 왼쪽 문으로 들어가자 평범한 건물의 내부가 드러납니다. 길게 이어진 복도. 여기도 뭔가 아카데미랑 비슷한 느낌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아카데미 내부와 같은 형태란건 아니고 그냥 건물을 구성하고 있는 기술력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복도에는 홀로그램의 사람들이 보입니다. 건드려도 반응은 없고, 아카데미에서 가끔 사용하던 기술이군요. 복도 끝에는 문이 하나 있고, 그 옆에도 홀로그램으로 보이는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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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은 백화안으로 건물을 살폈습니다. 살짝 무리가 가는듯 했지만 안구가 터지거나 할 정도는 아닌거 같습니다. 하지만 건물의 '본질'이라는게 참 애매한 문제였기에 그렇게 특별한 정보가 많지는 않았습니다. 이 건물이 시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것. 그리고 신전의 용도라는것 정도를 알 수 있지만. 이 정보만으로는 뭔가 결론에 도달하기는 힘들거 같습니다.
한편 안데르센은 문을 살펴보려 했습니다. 문을 밖에서 열었을때는 딱히 안이 보이지 않습니다. 어둡다거나 그런게 아니라 필터라도 낀듯이 밖에서 보이지 않는거라고 하는게 맞겠죠. 결국 직접 들어가지 않고서는 내부는 확인할 수 없을듯하고. 문의 재질은 아주 매끄러운 철문입니다.
여우 자매들은 소환이 자꾸 풀리려하자 그냥 자신들의 힘으로 현계에 현현했습니다. 그러나 뭔가 알고있는건 없는지 캬웅! 하고 말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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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은 일단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까의 동굴과 같습니다. 만약을 위해서 밖에서 대기하던 인원들도 보이는군요. 별 다른 특별한 문제는 없습니다. 문도 열어둔채로 똑같습니다.
그러니깐 이 건물은 '시간'과 연관이 되어 있다라.. 생각해보니깐.. 덜 지어진 느낌이 들 뿐, 완전 아카데미의 구조인데? 이와 더불어서 신전이라고? 그러니깐.. 이 건물이 아카데미를 모방해서 지어진 게 아니고.. 아카데미가 이 건물을 모방해서 지었을 확률이 높다. 왜냐고? 아카데미의 기술력은 우리가 부르는 '오버 테크놀로지', 동쪽과 서양에 비해 과하게 발달된 기술력이라는 것.. 이 기술을 어떻게 모방했게? 외계인 고문? 아니.... 이 건물을 보고 지은 거야.
그렇다면 이 존재를 처음부터 알았던 자일 테고..
"아카데미의 설립자가 누구지..."
안데르센이 안을 살피지만 무언가가 보이지 않는 듯한 반응.. 그렇다는 건 건물내부의 시간 역시 다르게 흐르기에 안 보이는 것이 아닐까?
"...셋이 동시에 들어가야겠네요.. 이 건물.. '시간'과 연관이 있어요.. 저는 일단 오른쪽으로 들어갑니다. 동시에 들어가지 못하면 우리 모두 서로 다른 시간대의 건물내부로 들어갈 수도 있어요. 다 찢어지는 것이죠. 전부 다 같이 손이라도 잡고 들어갈까요?"
잠시 황금 열쇠로 환상의 도서관이 열리는가에 대한 실험까지 하려 했다가 그만두고 뒤를 보았다. 번-쩍 올라갔던 선배님 한 분은 다시 돌아왔고, 어..... 레오넬의 유력한 가주 후보님도 계셨다... 움찔거리는 걸 숨기지 못하고 품에 안겨있는 두 여우자매만 슬쩍슬쩍 바라보았다.
우성은 안데르센에게 우선은 조용히 관찰하자는 신호를 보냈다. 일단.. 확실하게.. 시공간이 뒤틀린 공간인 것은 맞다. 그렇기에 이렇게 전혀 다른 공간이 나타나는 것이지. 이곳은 아마 과거일 확률이 높아. 그렇다는 건.. 아라크네드 녀석들 역시 미래나 과거를 보기 위해서 들어간 것이 맞다고 해야 될까?
제나 님은 다른 문으로 향한듯, 이곳에는 나와, 우성이란 이름의 선배 한 분만이 있었다. 그다지 만난 적도, 대화를 나눈 적도 없지만 이름같은 것은 퍽 익숙했다. 그야 여러 소문의 주인공이니까. 일전 진룡파 사건 때도 그러하였고, 그것을 제하더라도 외모나 태도로 아마 저학년들 중에서 팬클럽을 자처하는 무리도 있다던가 없다던가-?
여하튼, 유목 마을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차피 시공이 비틀렸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으니 공간이 바뀐 건 놀랍지 않았다. 문제는 여기서 뭘 할 수 있느냐가 아니려나? 일단 이곳에서도 같은 규칙이 적용되는가를 실험해보기 위해 바닥에 '색칠'이란 문자 마법을 몇개 적어보았다. 그 효능을 확인한 뒤, 조용히 관찰하자는 신호를 보내는 선배에게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가..
"..아, 잠시만요."
소곤소곤, 말을 중얼거리고 '흰비둘기'한 마리를 불러다 가능한 자연스럽게 마을쪽으로 날려보냈다. 목소리를 물고오렴!
지금으로썬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분명 다른 녀석들도 들어갔지만 자신은 보지 못했으니. 천은 라디온의 말에 그리 중얼거리고는 다시 여닫은 문 너머가 똑같은 풍경이자 혀를 찼다. 한번 들어간 사람에게는 그 모습만 보이나? 아니면 이 모습이 기본인 건가.
" 다시 들어갈 수밖에 없나. "
이미 이런저런 걸 확인하느라 시간을 많이 지체했다, 이번엔 망설임 없이 문을 넘어가 아까의 그 두 문 앞에 선 천은, 잠금장치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철문을 살폈다. 아까 전 룡성의 공격에도 끄떡하지 않은 걸 보면 물리적으로 파괴할 수 있도록 만든 게 아닌 모양이니... 뭔가 열 방법 같은 게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뭣보다 잠금장치로 보이는 게 있으니까 말이다.
룡성의 질문에 홀로그램의 인물은 그렇게 답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카르마 가문에 대한 질문에.
"카르마 가문은 현재 xxx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현 가주는.. xxxx...."
카르마 가문에 대한 정보를 늘어놓는데. 뭔가 이상합니다. 과거의 정보입니다. 가주의 이름도 레이나스가 아니었고.. 그러나 일단 그 인물은 문으로 들어가도 되냐는 질문에 미소지으며 그렇게 하시라는듯 손으로 문을 안내하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막을 생각같은것도, 문에 잠금같은것도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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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분위기 자체는 매우 평온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이에 당신은 어딘가 눈에 익은 소녀를 보았을겁니다. 백화안을 아직 사용하고 있다면 확실하게 그 소녀가 유진이란걸 알 수 있었겠죠. 물론 그냥 대충봐도 감이 오는 분위기입니다만. 소녀는 부모로 추정되는 인물들에게 매달려 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대화로 미루어보자. 이 마을은 여러 이유로 배척받는 이들끼리 모여서 만든 마을인듯 합니다.
"그래도 근처의 진룡파에서 받아줘서 참 다행이야." "그건 그래. 나는 대가문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역시 진룡파는 소문대로 협을 아는거 같더라고!"
안데르센의 흰 비둘기로 인해 목소리도 조금 더 선명하게 들리는거 같습니다. 그리고 색칠 마법은 평범하게 바닥을 색칠했습니다. 이 공간 자체가 뭐 파괴 불능이라거나 그러한 구조는 아닌거 같네요.
"어라? 여기까지 어쩐일로.."
그러나 곧 진룡파의 장로들이 마을에 도착한게 보였습니다. 특이하게도 멀리서부터 걸어오는건 느끼지 못했습니다. 마치 특정 경계를 기점으로는 공간이 잘려나간것처럼 갑자기 나타난겁니다. 마을 사람들이나 장로들은 그런걸 생각하지 않는거 같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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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술력을 우습게 보면 안 돼. 나는 인조로 만들어진 복제품이거든."
케이론은 당신의 물음에 작게 웃고나선 답했습니다. 아주 여유로운 태도를 유지하며.
"나는 몇명이나 있거든~"
그러나 이런 대화를 길게 이어나가긴 힘들어 보입니다. 스산한 기운이 느껴졌거든요. 곧 케이론도 아차, 이럴때가 아니었지. 하면서 다시 쇠사슬을 잡고 전투 태세를 잡았습니다.
"...."
그리고 스산한 기운의 근원으로 느껴지는 비쩍마른 남성이 기둥 뒤에서 나타납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케이론은 아까부터 싸우고 있던건지 근처에 묘하게 흔적이 남아있군요.
"아가씨도 조심하는게 좋을걸, 이 녀석 아무나 다 공격하거든.."
??? / HP : 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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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이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가자 무언가 다른 감각이 느껴집니다. 아까와 달리 약간은 울렁거리는 불쾌한 느낌. 그리고 곧바로 당신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아까의 건물 앞이 아니었습니다.
절벽. 당신 앞에 보이는건 절벽이었습니다. 그리고 한눈에 들어오는 거대한 도시의 모습. 도시는 흡사 아카데미의 기술력으로만 만들어진거처럼 처음보는 형식의 건물이나 구조물들이 눈에 띕니다. 아무리봐도 동쪽이나 서쪽의 기술력을 아득히 뛰어넘은 거대의 도시. 말 없이 움직이는 마차라던가..
"이게 뭐야..?"
그 모습에 소예마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음? 그러고보니 저 도시 중앙의 건물.. 아까는 일부만 보여서 좀 햇갈리지만. 문을 열고 처음 봤던 그 건물인거 같습니다.
" 아무래도 ... 여긴 과거에 멈춰있는 느낌이네요. 지금 말한 사람은 한참 옛날의 사람이니까요. "
지금 이 홀로그램이 말해준 가주는 레이나스보다도 한참 전의 가주였다. 역대 가주들이 모두 액자로 걸려있는 가문 내부의 홀에서 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는데 ... 그 사람이 현재의 가주라니. 어떤 구조물인지는 모르지만 수상쩍기 그지 없었다. 자신이 알아낸 정보를 룡성에게 전달한 록시아는 문을 막지 않는 홀로그램을 잠시 쳐다보았다가 이내 문으로 다가갔다.
" 들어가면 뭐라도 있겠지. "
어쩌면 아까 열람을 제한 당한 정보에 대한 것도 있을지 모르니 일단 들어가자고 생각한 록시아였다. 그렇게 그는 아무런 잠금장치도 되어있지 않은 문을 천천히 열고 들어갔다.
이건, 자신의 마법이랑 약-간 닮은 것 같았다. 어느 특정한 장면, 상황을 재생하여 보여주는 것. 어쩌면 직접 다가갔더라도 저들은 우리를 눈치채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며 나는, 갑자기 등장한 인물들을 보았다.
"..."
불안, 한데. 꿈 많은 아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고, 아직도 종종 그런 얘기를 듣지만. 다른 사람의 생각보다 나는 꽤 잔인한 일을 알고 있다. 이를 책에서 읽었다고 하면 많은 이들은 비웃겠지만.. 역사서 역시 책이니, 거기서 배우지 못한 이유가 없다. 배신과 탐욕, 타인을 향한 저주. 권력이나 힘에 대한 집착. 그런 것들을 소재로 삼은 이야기가 얼마나 넘쳐나는가. 그래서 말이지, 조금, 불길했다.
"...으으음..."
슬쩍, 옆에 있는 진룡파의 우성 선배를 살폈다. 안색이, 좀 안좋아지는 것 같기-..?! ...살짝 넘어지려던 걸 네로가 받아줘서 살았다. 소리도 나지 않았어!
다시 문을 열고 들어서자 뭔가 울렁거리는 듯한 불쾌함이 찾아오는가 싶더니,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아까와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눈 앞에 보이는 건 절벽, 그리고 거대한 도시의 모습.
" 이게 무슨... "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으로 뭔가 바뀔 것이라는 예상은 했지만 바깥에서 보았을 때 그대로였기에 단순한 기우였나 했건만, 눈 앞에 펼쳐진 생소한 광경에 천은 절벽 쪽으로 몇 걸음 걸어가 희한한 것들을 내려다보았다. 말도 없이 움직이는 마차 같은 것도 있고, 분명 도시인 것처럼 보이나 그 전체가 아카데미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 아무래도 동시에 들어가지 않으면 같은 장소로 갈 수는 없나 보군. "
아니, 같은 장소가 아니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야... 저 멀리, 분명 아까 전 보았던 그 건물의 형상이 보이지 않는가.
원래라면 복제품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들어봤자 뭔 헛소리야.. 하고 넘길 그녀였지만, 케이론의 여유로운 태도가 묘하게 그녀의 말에 신뢰를 주었을까. 고갤 갸웃이던 그녀는 갑작스레 느껴지는 스산한 기운과, 그 기운의 주인으로 보이는 비쩍 마른 남자가 나타나자 살짝 눈살을 찌푸린다. 적이였던 자랑 같이 싸우게 되다니. 그닥 마음에 들진 않는 모양이다.
" 싸우던 중이였으면 바닥은 왜 바라보고 있던 겁니까? "
전투의 흔적으로 보이는 것들을 흘끗이며 툭 말을 던진 뒤, 동생 여우와 링크하며 남자를 향해 손을 튕긴다
예상대로 흘러가는 모습에 침음성이 나왔다. 이유는 모르지만 저 진룡파 사람들은 저 유목민들에게 아주.. 나쁜 짓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저들이 무인을 해할만한 힘이 있어보이지는 않았으니까. 그저, 저들의 말이 괜한 트집으로만 다가왔으니까. 나보다 경험이 많을 우성 선배는 뭔가 다를까. 나는 흘깃흘깃, 우성 선배를 훔쳐보면서 상황을 살폈다. 그러는 중에,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
어느샌가 옆에 나타난 사람을 보며 입을 꾹 다문 채 어깨를 크게 튀었다. 누구, 누구? 일단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저런 사람이 없었다! 그를 향해 뭔가 질문이라도 던지려는 찰나- 뭔가 휘둘러지는 소리가 났다. 비명도.
"....아."
...대체 왜 저러는 걸까? 이유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무슨 이득이 있나? 갈 곳 없는 사람들을 죽이는 게? 상황 자체는, 이리 흘러갈 것 같다고 진작 짐작하여서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그저 입안이 꺼슬거릴 뿐이었다. 저것이 과거의 광경이라면 개입할 수 없고, 개입 하더라도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바꿀 수 있다면.. 여러모로 '문제'가 생길 것이고. 하지만, 우성 선배는 바로 달려들었다. 자세히 보지 않더라도 그 분노를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한숨을 폭 뱉고서는 슬쩍 옆을 보았다. 내 주변을 돌아다니는 네로를 손 위로 가져오고 깃펜을 쥐었다.
절벽을 조심스레 타고 내려가던 도중 목표로 삼은 건물이 빛의 기둥에 잠기는 게 보였다. 헌데 그 빛이라는 것이 물리력이 존재하는 듯, 주변의 땅까지 삼키면서 소멸시키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 별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는군. "
만약 저게 정말로 닿는 주변을 소멸시키는 거라면 이대로 내려가는 것은 의미가 없지 않은가? 허나 천은 내려가는 것을 멈추지는 않은 채 머리를 굴렸다. 정말 저것이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가? 그렇다면 저 빛의 사이에서 보이는 손은 정체가 뭔지? 손이 빛의 주체라고 보아야 하나, 아니면 손 역시 쏟아져 내리는 빛에 영향을 받는 건가?
" 일단은 빛이 닿지 않는 곳까지 이동해야겠다, 나머지는 그 뒤에 생각하자. "
소예의 물음에 그리 대답하곤, 빛이 넓어지는 속도를 대강이나마 계산해 보려고 했다. 또한 그 아래, 빛에 삼켜지는 땅 위에 있을 만한 사람들의 모습 역시 살펴보려는 것 같다.
가면을 쓴 여자는 록시아의 목소리가 들리자 고개만 비틀어 당신을 바라보고는 킥킥 웃었습니다. 마치 상당히 늦었네~? 하는듯한 반응입니다.
"어떤 장소인지 아니까 들어왔겠지. 생각보다 머리가 안 돌아가는구나?"
그녀는 별로 당신을 경계하지 않은채로 제단에 앉으며 말을 이어갔습니다.
"어쩌나, 이 곳이 유지될 시간이 그렇게 많이 남지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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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녀석, 화끈하네."
우란기아의 말을 뒤로하고, 마을에 나타나 장로들의 앞을 막아선 우성. 당신을 보는 장로들의 눈은 이건 또 뭐냐는듯 했습니다.
"이건 진룡파의 일이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비키거라." "그래, 외부인이 끼어들 일이 아니다."
본질을 알려주는 백화안 덕인지. 장로들의 생각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애초에 이 안에 마공을 익힌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는것도 아니고, 이들을 의심하거나 해서 이 일을 벌인게 아니란것을.
그리고 늑대를 타고 안데르센이 마을에 도착했을때는, 장로들의 개인 병력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뒤에서 나타나 마을 사람들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장로쯤 되는 인물이면 개인적으로 그들을 따르는 이들이 있는거 자체는 이상할게 없습니다. 그러나 이건...
"이들은 은혜도 모르고 진룡파에 해를 끼친 이들일세, 그리고 우리는 죽은 제자들을 위해 '올바른' 일을 하는걸세."
장로는 표정하나 바뀌지 않은채로 그렇게 말했고, 그것은 안데르센이나 우성에게도 너무나 또렷히 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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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속에서 감지에 걸린 그. 제나는 적을 그대로 얼려버리려 했습니다. 그러나 마법은 시전되긴 했으나 정확한 상태를 알 수 없습니다.
"된건가?"
그러나 이번엔 기둥뒤에서 남자가 나타납니다. 공격은 맞았는지 반신이 얼어있긴 했는데. 검은 마력이 그것을 다시 집어 삼키고는 회복하는 모습이 보이는군요.
그리고는 아까와 같이 검은 마수의 손이 당신들을 공격합니다.
.dice 600 1300. = 1082 ??? / HP : 9,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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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범위는 점점 넓어지고는 있었지만 그 속도 자체가 빠르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범위 자체가 넓다보니 일반인이 피할 수 있는건 아니었지만. 당신이나 소예의 움직임이라면 큰 문제는 없겠죠. 물론 저 속도 그대로 유지된다는 가정하에 말입니다.
그리고 적당한 위치에서 도시를 살펴보자 평범한 사람들은 빛에 휘말려 사라지는 모습이 보입니다. 저들에게는 그저 재해였겠죠. 다만 그게 전부가 아닌것이. 빛속에서 드러난 흰 손과 이어서 나온 그 본체까지 더해져 안 그래도 엉망인 도시를 뭉개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현재로선 상반신밖에 없었고, 그 크기는 가히 대저택 몇개를 층층이 세운 정도는 되어보입니다.
그리고 그 나무와 같은 질감. 전에 보고받았던 레오넬에서 나타난 거대한 손과 굉장히 흡사합니다.
도발성 짙은 말에도 록시아는 어깨만 으쓱할 뿐이었다. 어차피 여자의 목은 그가 딸 생각만 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다만 지금은 때가 아닐뿐. 그나저나 여기가 어딘지 아는 모양인걸 보면 꽤나 정보력이 좋은 모양이었다. 아니면 관련된 스킬이라도 가진 사람이 있는 것인가 싶었다.
" 저번에도 그렇고 어차피 무서워서 스르륵 사라질 생각 아닌가? "
얼마 안남았다는 말에도 록시아는 딱히 관심이 없었다. 어딘지도 모르는 공간을 탐색하는게 상당히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도 했고, 먼저 들어온 자들이 어떤 짓을 해놨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 아니면 귀찮게 하지 말고 꺼지시던지. "
딱히 공격할 의사는 없어보였기에 록시아는 주변을 둘러보기 위해 천천히 이동하며 말했다. 제단이 있는 것을 보면 무언가 의식을 위한 공간인듯 싶긴 했는데 ... 어떤 힌트도 없어서 유추하기가 힘들었다.
나는 외치는 동시에 회랑에서 책을 한 권 꺼내 펼쳤다. 그 즉시 수많은 문자가 그 안에서 와르르 쏟아져내리며 병력들을 막아세웠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페이지, 그리고 함께 쏟아지는 문자. 그 뒷편에서 나는 묘하게 불만스러워 보이는 네로를 무시하고 입으로 손가락을 가져갔다. 그리고
휘익!
휘파람을 부른다. 그러자 뒷편에서 하얀, 날개달린 말이 튀어나와 거센 바람과 함께 달려나갔다. 그 격풍은 병력을 몰아붙이고, 이어진 녹빛 순풍이 도망치는 사람들의 등을 부드럽게 밀어줄 것이다.
"이해가 안가네요! 진룡파가 이런 일을 해서 어떠한 이득이라도 얻습니까?!"
병력이 너무 많다. 그야 귀족이라고 생각하면 이상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문파'는 내가 아는 귀족과는 다른 개념이라고 들었다. 그에 가까운 것은 '세가'쪽이라지. 그럼 이들은 대체? 심지어 이런 학살을 따른다니?
훈련할 시간이 많이 났다라.. 확실의 가주의 업무는 바쁘긴 바쁘지. 우성의 경우.. 수련..오직 또 수련이었다. 왜냐고? 할 게 수련 밖에 없었거든. 그야.. 장문인부터가 은둔하고, 룡성과 우성은 문파에서 이탈하니깐 일이 없을 수 밖에 없었다. 학교에 대놓고 얼굴을 드러내고 무언가를 하기도 꺼려지니, 그냥 수련만 주구장창 하게 되는 것이었다.
"으음- 소환수였구나.. 어쩐지 키우는 동물이 더 늘어났더라고요. 나도 살짝은 관심이 가는데."
의외로 테이밍이나 소환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하우성. 그러나 우성의 능력의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차가운 웃음과 동시에 검은 포탈을 열고 거대하고 무서운 마수를 풀어서 싸우는 것이 생각날 수도..
이어서 제나의 아버지와 무슨 대화를 했냐는 말에 다른 손의 손등으로 건체리를 먹는 청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냥.. 아무래도 그 괴물의 봉인을 시도한 사람들이니깐.. 아는 것이 있나해서 찾아갔어요. 사실 그것도 원래 괴물은 아니고, 사람이었지만."
"그리고 제나씨랑 필리아씨가 혹시 남자 만나냐고 물어보던데, 안 만나고 있다고 말했어요. 사실이니깐."
가면을 쓴 여자는 그렇게 답하고는 지금 당장 공격할 마음이 없어보이는 록시아를 한번 훑어본뒤. 제단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별 방해가 없다면 그대로 다음 문을 열고서 나갔겠죠.
한편 주변을 둘러보던 록시아의 눈에는 제단과 내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람 한명 정도가 올라갈법한 크기의 제단. 그리고 그것을 사용한 흔적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고. 기도실처럼 꾸며진 내부의 풍경도 특별할건 없었습니다. 다만 제단에 뭔가 쓰여있었는데.
- 신과 인간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라고 적혀있습니다. 아마 제단을 만들고 난 이후에 새긴듯한 글귀인데. 그 이상의 정보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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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이 병력을 꺼냈지만, 어디까지나 그 병력은 안데르센 본인의 마력이나 전투력을 기반으로 하고. 당연히 술자의 역량을 뛰어넘지는 못합니다. 뭐 나중에 더 강해지면 다르겠지만 아직은 무리였죠.
그렇기에 병력 수만 따지면 비슷해졌을지라도 진룡파 하나하나의 힘이 강했기에 완벽하게 막아내진 못하고 있었습니다. 다행인건 아직 술자인 안데르센 본인을 공격하진 않고 마을 사람들을 죽이는데 그쳤다는걸까요. 마을 규모 자체가 작았기에 지킬 사람들은 이미 거의 남지 않았고, 어느새 부모를 잃은 소녀는 시체 사이에 껴서 엉엉 울고 있었습니다.
우성은 장로들의 생각을 어렴풋이 알고 있어서인지 더욱 기분이 좋지 않았을겁니다. 그리고 이어진 공격. 일대를 쓸어버리는 기운이 장로들과 다른 진룡파의 사람들을 밀쳐냈습니다. 물론 이걸로 다 죽였다거나 한건 아니었지만..
"큭.. 어째서 진룡의 기운이...."
장로들 하나하나의 실력은 우성보다 떨어져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수였고, 모두 같이 사활을 걸면 우성이라고 해도 승리를 장담하긴 힘들죠. 하지만 장로들은 자신의 목숨이 귀했는지, 싸움이 아닌 도주를 선택하려 합니다.
"멍청한 것들, 너희가 아무리 방해하든 우리가 정의다! 이런 작은 마을이 사라지는데 누가 신경 써줄거 같으냐?"
그러나 도주하는 와중에도, 입을 터는 기술이 예술적입니다.
"너희 둘! 어딜가더라도 진룡파가 쫓을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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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화구를 남자의 등뒤에서 나온 검은 마수의 손들이 막아냅니다. 얼어붙긴 하지만 결국 남자의 움직임을 멈추기에는 무리가 있었죠. 그러나 다시 바닥으로 들어가려 하는 남자의 동체에 쇠사슬이 감겨 남자를 지상으로 끌어 올립니다.
"드디어 잡았네~"
그로인해 바닥으로 꺼지지 못한 남자가, 입에서 검은 마력 다발을 쏘아내긴 했지만. 지금이 기회란건 변함 없습니다.
현실인지 아닌지, 지금 이 곳에서 일어난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인지 그저 하룻밤의 꿈처럼 사라질 것인지. 확신은 없다. 가만히 두고보기 싫어서 나선 것 뿐이며, 사실 그 어느것에도 확신 역시 없었고. 그래도 거의 남지 않았다 한들 사람이 몰살된 것은 아니니 그나마 다행인가. 나는 부모를 잃은, 이름 모를 소녀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으음."
...이상한 인물들이다 싶었다. 방해하는 사람이 있음에도 명령을 우선하여 검을 휘두른 것은 왜일까? 그렇게 정해져있는 이야기여서? 그게 아니면 원래 그런 존재들인가? 몇가지 '클리셰'가 떠올랐다. 어릴 때부터 세뇌를 병행하며 키워, 자아를 버린 검으로 만들어버린다는 그런 이야기.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머뭇거리다가 울고 있는 아이에게 조심조심 다가갔다.
"...괜찮.. 아니, 음..."
선 채로 뭔가 말을 하려다 멈칫하고, 느릿하게 몸을 숙였다. 그리고 황금빛의 나비들을, 아이의 근처로 보내었다. 애도를 표하듯, 맴돌게 하였다.
"...힘내세요.
의미없는 말일지도 모르지만, 뭐 어떤가. 이 정도는 해도 괜찮겠지. 그 뒤에는 도망치는 장로들을 지켜봤다. 뭔가, 되게 삼류 악역처럼 도망가네요.
어떤 식으로든 상대를 할 방법이 있다는 것으로 지금은 충분하다. 저게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직므이 상황에서는 속절없이 목숨을 잃는 것은 아닐 거라는 관측이 희망적이지. 천은 소예의 대답에 만족스러운 듯 고갤 끄덕이곤 괴물이 도시를 완전히 초토화시킨 뒤 상체뿐이지만 도시 바깥으로 나가자 눈을 가늘게 떴다.
" 도시는 싸그리 사라졌군, 남아있는 게 하나도 없어 보이는데. "
빛의 기둥이 괴물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라면 초토화 된 도시의 흔적을 밟아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천은 일단 괴물이 이동하는 경로를 살피곤, 빛의 기둥이 괴물을 따라 움직인다면 초토화된 도시로 향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빛의 기둥이 닿지 않는 장소를 조금 더 둘러보려고 했겠지.
가면녀는 나가려는 와중에 룡성에게 공격을 받자 피식 웃으며 손에 두른 기로 공격을 막아내며 밀려났습니다. 어째, 전보다 조금이지만 약한 느낌이 드는데요.
그리고는 록시아가 제단위에 앉는 모습을 보곤, 두 사람을 향해 전과 같이 붉은 마력을 뻗었습니다.
"나는~ 이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네 동료 탓해라?"
.dice 700 1100. = 1048 가면녀 / HP : 23,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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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의 위로는 닿았을까요, 한순간에 마을 사람들과 부모를 잃은 소녀에게 그 어떤 위로가 통할지 모르겠습니다. 우성의 공격은 명중은 한거 같았지만 잘라진 공간을 넘어 어떻게 되었는지까진 보이지 않는거 같습니다.
.... 곧 허공에 문이 생기고, 뒤에 있던 우란기아가 걸어왔습니다.
"뭐 너무 실망하진 말고, 진룡파 뿐 어디라도 똑같아."
그는 덤덤하게 그렇게 이야기하곤 주변을 한번 살폈습니다.
"흠, 뭐 딱히 얻어갈건 없어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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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창염의 폭발과 함께 남자의 몸이 너덜너덜 해집니다. 이번에는 쉽사리 회복하지 못할거 같은데요. 그래서인지 여전히 쇠사슬에 묶여있던 남성은 반격을 포기하고 축 늘어졌습니다.
... 아니, 부풀고 있습니다.
??? / HP : 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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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보는 물건들도 있어서 좀 보고 싶었는데 말이지.."
소예가 그렇게 말하는 사이 빛의 기둥은 사라졌습니다. 괴물은 여전히 어디론가로 움직이고 있었지만요. 당신이 예정대로 초토화된 도시로 향했다면 그야말로 지면밖에 남지 않은 도시의 모습이 보였을겁니다. 일단 지상에는 뭐 조사하고 싶어도 조사할게 없어보입니다. 그 대신 전에 본 문과 똑같은것이 허공에 당당히 서있는게 보이긴 합니다.
분명 앞에서 이것저것 살피느라 걸린 시간도 어느 정도 영향을 줬을 거라고 생각하며 초토화된 도시에 도착한 천은, 도시가 세워지기도 전... 아니 그보다 훨씬 과거, 아무것도 생기지 않은 땅덩이를 쳐다보았다. 이래서는 건질 것도 없겠는데.
" 땅 속은 어떨까... "
천은 청요에서 창천검을 꺼내, 검집 째로 땅을 툭툭 두드렸다. 속이 꽉 들어차 있는 땅덩이인지, 아니면 지하로 여길 만한 부분이 남아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초토화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너무 깔끔하게 변해 버린 모습이었기 때문일까. 지하가 없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 아까 그 괴물 말이다. 빛 속에서 빠져나온 것처럼 보였었지. 정말 빛에서 나온 걸까... 아니면 그 요상한 건물에서 빠져나온 걸까. "
저항을 포기한 것인지, 쇠사슬에 묶인 채로 축 늘어진 남성을 보던 제나는 내가 잘못 보고있나- 싶어 케이론에게 물어봤을까. 설마 터지는건 아니겠지.. 하고 중얼거리던 그녀는 잠깐 고민하다, 몸 주변에 불꽃으로 된 보호막을 두른 뒤, 창염의 구체를 만들어 남성을 가두려 한다.
혹시 남자가 펑 터질 가능성을 감안해, 구체의 두께를 최대한 두껍게 하는 식으로.
공격- [흑염의 감옥] 사용 .dice 1690 2120. = 2068 회피- [불의 손길] 사용.
어느 강대한 권력, 힘에게 자신의 소중한 것이 짓밟히고, 세상을 저주하며 복수를 맹세한다. 종종 있는 이야기이며, 종종 읽을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의 생각을 아주 대충 알 수 있었다. 물론 '어느 정도'. 그러니 이해같은 말을 함부로 입에 담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 위해 세계멸망도 두고 볼 수 있다고 한다면, 나는 뺨을 긁적이며 슬슬 우성 선배 근처로 갔다.
오자마자 조금 후회했다. 연초 냄새는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슬그머니 네로를 들어 앞을 막자, 네로가 화가 난듯 흔들리다가 내 머리 위에 앉았다.
"...여러분은 다른 시간에서 얻을 것이 있는 듯합니다."
슬쩍, 사내를 보며 말을 했다. 딱히 대답은 기다리지 않았다. 뭐, 이곳을 알고 온 이상 당연한 정보니까. 문제는 무엇을 얻으려 하느냐. 정보인가?
정확히 말하면 누구도 죽지 않겠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공격들을 전부 막아냈습니다. 붉은 기가 비눗방울마냥 얇게 만들어져 공격을 막아냈죠. 완전히 피해가 없는거 같진 않지만요.
이어 록시아도 전투 준비를 하는걸 보며 가면녀는 그저 작게 웃고 있을뿐입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주변을 아직 탐색중이던 록시아에게는 여자의 공격 때문에 부숴져서 드러난 제단의 파편의 단면이 보였는데. 어째서인지 그저 검은 광석 제질로 보였던 파편에서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방어> 가면녀 / HP : 15,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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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이 왔지."
그는 연초를 받아서 입에 물고는 스파크를 이용해서 불을 붙였습니다. 그리고는 그냥 가해자라고 덧붙인뒤에 문을 열고 나가려 했습니다.
"다른 시간이라... 뭐 그렇긴 하지."
우란기아는 안데르센의 말에 애매하게 답하며 문을 통해 나갔고.
만약 둘이 동시에 따라서 들어왔다면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을겁니다. 그곳은 신전과도 같은 모습의 대강당으로 보입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번엔 여러분은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무슨 연설중이었는지 맨앞에는 대주교로 보이는 사람이 보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더 이상 신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대주교로 보이는 이는, 더 이상 인간은 신의 간섭을 받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강해졌고. 인간과 신의 차이는 '신격'의 유무일뿐. 그렇다면 인간이 신의 신격만 가진다면 신조차 초월할거라는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오, 이건 나도 직접 보기는 처음인걸."
우란기아는 그렇게 말하며 흥미를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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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나는 속은걸 눈치채고선 분함을 삭히며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러자 곧 문이 나옵니다. 딱히 주변에 별것도 없고, 들어가면 될거 같습니다.
들어가는게, 좋을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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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굴삭기가 아닌데~"
소예는 사뿐히 점프해서 착지했습니다. 단지 그것뿐인데 지상이 무너지며 그대로 건물 내부까지 들어가게 됩니다. 생각보다 깊지는 않았기에 당신도 충분히 내려갈 수 있어보입니다.
"응?"
그러나 그 안은 꽤나 끔찍했습니다. 몇명의 피인지 가늠할 수 없을만큼의 피가 제단 위에서 흐르고 있습니다. 제물을 바치는 장소일까요, 검은색의 제단위에는 사람 한명 정도가 누워있던 자국이 남아있고. 이 피들은 아마 같이 바쳐진거 아닐까요. 그리고 주변에는 피로 된 글귀들이 바닥, 벽 가릴거 없이 적혀있었는데.
- 우리는 신을 만들었다. - 이제 신에게 지배받지 않아도 괜찮다! - 신이다! - 신? - 저것이 신인가?
그냥 일반적인 제단으로 보였던 곳에선 왜인지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냥 돌로 이루어진 제단이 아니라는 것인가? 록시아는 가면녀를 경계하며 제단의 파편이 떨어져나온 곳으로 가까이 다가가서 결계가 있는지 확인하고선 그대로 와이어를 만들어 제단을 감싸고선 조각내기 위해 힘을 주었다.
대답이 애매한데. 일단 나는 그의 뒤를 따라서 문을 건넜다. 대답은 애매했지만 아주 트린 건 아니라는 것 같았고. 어쩌면 이런 공간을 생성하는 특수한 '물건'이 있을 지도 몰랐다. 자신을 가해자라 딱 잘라 말한 것을 생각하면, 미묘한 회의감 정도는 있을지 모르지만 목표를 뒷전에 둘 정도는 아니려나. 여러 생각을 하며 들어온 문의 건너편은, 그러니까.. 사이비 같은 느낌이었다. 아까와는 달리 우리를 인식하지도 못하고.
"신이라.. 카르마쪽일까요?"
일단 자신이 아는 대가문 중에서 신과 가장 가까운 가문은 카르마였다. 카르마에서 신에 대한 탐구를 하다가 비틀린 것 같다. 아닐 수도 있지만. 나는 신전과 같은 내부를 빙 돌아보았다.
"묘한 예상이 듭니다. 인간이 '신격'을 가지는 방법에 대한 연구. 그 중에 하나는 인간을 이용한 실험, 이라거나요."
룡성의 공격이 방어막을 깨버립니다. 그 공격에 크게 밀려나는 가면녀였지만 여전히 여유가 넘쳐보이네요. 다만 그 대신, 이 공간에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지진때문에 갈라지는 땅처럼 공간이 갈라지기 시작했죠.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그러자 그녀는 두 사람을 공격하는게 아닌 움직이기 힘들게 촘촘한 마력의 실을 사방으로 뿌렸습니다. 마치 여기서 나가지 못하게 하려는듯.
한편 록시아는 제단을 와이어로 조각내려 했는데. 제단이 조각나는 감각이 돌이나 광석을 베는것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살아있는 살덩이를 자르는 느낌. 그리고 제단이 조각나고나서 바닥을 보니 바닥에 올려져 있는게 아닌. 좀 더 지하까지 연결되어서 박혀있는 모양새입니다. 얼마나 깊게 박혀있는진 모르겠지만요. 심지어 이 제단. 숨쉬는것마냥 꿈틀거리는 모습까지 보이며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우란기아는 친절하게도 안데르센의 물음에 대답해주며 반대편으로 연기를 뱉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대주교의 연설은 계속되고 있었는데. 드디어 계획의 실현이 코앞이고 신을 죽여 신격을 뺏을거라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 세계는 진정 인간이 주인인. 인간의 세상이 될거라며 좋아하고 있군요.
"흠, 그거랑은 조금 틀리지. 이미 저 목적은 이뤄져있으니 그걸 이용하려고 할 뿐이야."
애초에 우리 목적은 인간이 주인이 되는게 아니라, 그냥 세계의 멸망인걸? 우란기아는 우성의 말에 그렇게 답하고선 갈라지기 시작하는 공간을 보고 오늘은 벌써 타임리밋인가. 하며 중얼거렸습니다.
"아무래도 더 이상 머물러도 얻을건 없겠군."
그는 어느새 생긴 문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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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나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주 캄캄한 어둠속으로 빠져버립니다. 하필이면 무너진 공간의 틈새로 떨어졌습니다. 물론 당신은 지금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겠지만요.
- 후에 이 봉인이 풀리면 어쩌지?
그러나 몸도 가눌 수 없는 어둠속에서 모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 그때의 후손들을 위해 열쇠를 남겨놔야겠지.
- 그래 하나는 이 '암월검'에. - 하나는 우리가 앞으로 만들 네개의 가문이 힘을 합쳤을때 드러나게 하자. - 마지막 하나는... 마지막으로 남은 혀ㄴ....의 .....산.... 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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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라, 그러면 신도 꽤 해볼만한 존재일지도."
소예는 현대의 고수들이 다 모여서 상대하면 충분할거 같은데. 그렇게 말하며 웃었습니다. 뭐 직접 싸워봐야 알겠고 저 괴물도 숨겨둔 비장의 수가 있을지도 모르니 아주 진지한 이야기는 아니었겠죠.
일단 당신은 제단을 조사해봤습니다. 바싹 말라서 여기저기 박살난 제단. 마치 용도를 다해버린 느낌입니다. 사람이 누워있던걸로 추정되는 자리를 제외하면 거의 다 피로 듬뿍 적셔져 있습니다. 무언가 술식의 흔적들도 있기는 하지만 이미 박살나버려서 뭔지 알아보긴 힘들군요.
가면녀가 이렇게까지 공격 당하는데도 역공할 생각이 없어보인다는 것을 깨달은 록시아는 눈을 찌푸리며 어떤 꿍꿍이길래 저런 행동을 하는지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하지만 와이어로 잘라낸 제단이 마치 살덩이를 잘라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기에 관심은 삽시간에 제단으로 향했다. 하지만 공간에 금이 가는 것을 본 록시아는 자신들을 방해하려는듯한 가면녀의 행동에 슬쩍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깐.. 저것은 과거의 일이고, 인간은 신을 죽여서 신격을 사용하는 시대가 과거라고? 혹시.. 저 신격이 이어지고 이어져서.. 지금의 마력이나 기와 같은 에너지의 원천이라도 되는 건가...? 지금까지 이론을 공부했을 때.. 정작 이런 에너지의 확실한 기원은 본 적이 없었어.
환상의 도서관에서 나는 소설 말고는 찾을 수 있는 게 없지만. 먼 과거에서 쓰인 이야기에 뭔가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구역에 가는 방법도 고심해봐야겠다. 생각을 계속하며 인간의 세상을 찬야하는 무리를 보았다. 아마, 나는 내 눈을 볼 수 없지만 썩 한심해하고 있지 않을까.
"보통 저런건 좋게 흘러가지는 않던데."
실제로 좋게 흘러가지 않았을 듯 하고. 먼 과거의 종교라고 하는데, 저것이 성공했다면 지금 어떤 형태로라도 남아있지 않겠는가. 어쩌면 인류 문명의 발전을 확 날려버린 사건이 저것일지도?
그러는 중에 세계는 깨져나가고 있었다. 나는 '네잎클로버'를 '책갈피'로 만들었다. 그리고 품에 네로를 안은 채 셋 중에서 가장 늦게 나가려고 했다.
룡성은 벗어나지 않고 공격을 시도했지만. 그 검은 닿지 않았습니다. 움직임이 느려지면서 갈라진 공간 사이로 떨어져버리고 만겁니다. 한치앞도 보이지 않고 몸이 서있는지 떠있는지도 알 수 없는 공간.
- 두 가지의 길이 있어.
그 공간속에서 알 수 없는 이의 목소리만이 들려옵니다.
- 느리지만 모두와 함께 걸어가는 길 - 빠르지만 누군가의 희생으로 걸어가는 길 ┴┬┴┬┴┬┴┬┴┴┬┴┬┴┬┴┬┴┬┴┬┴┬┴┬┴┴┬┴┬┴┬┴┬ 록시아도 마찬가지로 공격을 시도했지만, 그 공격이 닿았는지 확인하기도 전에 갈라진 공간속으로 빠지며 쑤욱 꺼지고 말았습니다. 칠흑과도 같은 공간, 한 줄기 빛만이 들어오는 기분 나쁜 공간입니다.
- 가문 이름? 음, 카르마! 카르마로 해야겠어. - 왜 하필 카르마냐고? 글쎄, 후손에게 우리가 해결하지 못한 업보를 남겨주는거니까 말이야. 기억해두고 원망하라고?
누구의 목소리?
- 이 신기들만은, 절대로 잊혀지지 않게 전수될거야.
┴┬┴┬┴┬┴┬┴┴┬┴┬┴┬┴┬┴┬┴┬┴┬┴┬┴┴┬┴┬┴┬┴┬
"그래, 그 결과물을 너희는 이미 봤잖아?"
우란기아는 아직 이해하짐 못한듯한 우성에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당신의 뇌리에는 어째서인지 저번에 본 괴물의 손이 생각났습니다.
다만 그것도 잠시, 문을 통해 나가려고 한 당신은 밖이 아닌 어두운 공간안에서 눈을 뜹니다. 여러 기운이 소용돌이치는 한 가운데, 폭풍의 눈과 같은 공간입니다.
- 너무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지 않아도 좋아. - 주변에 너를 도와줄 아이들은 많을테니까.
그 안에서, 당신에게 누군가 말을 걸어옵니다.
- 슬라임, 친구, 창, 겉보기엔 작아보이는게 도움이 될때가 있단다.
┴┬┴┬┴┬┴┬┴┴┬┴┬┴┬┴┬┴┬┴┬┴┬┴┬┴┴┬┴┬┴┬┴┬ "그래, 좋게 흘러가지 않았다고 하더라고."
우란기아는 안데르센의 말에 대꾸하곤 문을 통해 나갔고, 당신은 가장 늦게 나가려다 그만 갈라지는 공간속으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어두운 공간, 그러나 주변에 황금의 문자들이 떠다니는 이상한 공간. 비록 문자들은 읽을 수 없지만..
- 이 세상 모든 이야기를 모아둔 장소? 그런걸 만들어서 뭐하게? - 아니, 후세에 남길거면 역사서를 모아야지 왜 소설만 모으는데?
무언가의 의문을 표하는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 넌 진짜 언제 들어도 이해하기 어렵네. 소설을 통해 전달할 필요가 있는거야? - 그게 재밌으니까..? 진짜 또라이구나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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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속에서 아주 작은 불씨들이 타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저 불빛이 보일 뿐 이 공간이 드러나진 않았죠.
- 언젠가 있을 봉인이 풀릴 그 시기를 위해. 우리가 만들 가문들은 항상 협력하는거야!
그러나 그 이야기는 현대에 와서는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협력은 커녕 이런 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서로서로 별 연관점도 없었으니까요.
- 그건 괜찮을까? 신의 껍데기 말이야. - 글쎄, 그것까진 어쩔 도리가 없었으니까. 신을 죽이는 힘을 믿을 수 밖에..
신을 죽이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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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 나랑 있으면 안심이지?"
소예는 농담을 하며 내민 손을 덥썩 붙잡고 나가서 문을 통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다음순간 당신은 어두운 공간에서 눈을 뜹니다. 둥실 둥실, 묘한 자유로움을 느끼는 이상한 공간입니다.
- 응? 창천검? 뭐냐 그 웃기는 별호는. 뭐? 나? - 우웩, 진짜 이상한 별호구만. 애초에 나는 순수 검사도 아닌데 말이야.
발을 헛디뎠다. 아니 네잎클로버도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결국 내가 덜렁거린 탓이니 누군가를 원망할 수도 없고- 나는 결국 틈새에 빠지고 말았다. 어디로 통하는 걸까? 아득한 공허? 시간의 틈새? 현재가 아닌 그 어딘가? 많은 이야기에서 읽었던 온갖 상상의 산물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내가 도착한 것은 그 어느 것도 아닌 공간... 아니, 굳이 따지자면 시간의 틈새 같은 그런 곳.
어두운 세상에, 황금빛 영문 모를 문자들이 떠다니는 곳. 그러는 중에 목소리가 들린다. 의문을 품은 목소리. 세상 모든 이야기를 모아둔 장소를 만들고자 하는 이에게 질문하는 목소리. 그는 굳이 소설을 통해 후세에 전해야할 필요가 있으냐며 어이없어하고 있다. 하지만, 그래서 좋은 것이다.
사람의 상상. 마음 속에 품은 꿈. 어른이 되고나서도 잃어버리지 못한, 어쩌면 철이 덜 들었기에 할 수 있는 다종 다양한 망상. 별을 좇고 과거를 되새기고 미래를 바라는 마음들. 그 이야기들은 각자의 언어로 조합되어 세상에 발을 내딛는다. 오늘 날의 이야기가 미래에 닿는다는 보장은 없다. 커다란 변화를 초래하는 것은 드물다. 하지만 그것들은 분명 의미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즐겁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누구나 소설을, 이야기를 찾는 것이다.
오늘도 누군가는 아이에게 동화를 읽어주고 숲에 들어가면 안되는 이유를 즐겁게 꾸미고 마음에 드는 소설을 밤을 새가며 탐독하고 같은 작품에서 느낀 바로 서로 토론을 하고 감동을 받고, 즐거움을 얻고, 가끔은 이게 무슨 졸작이냐며 고개를 젓다가도 새로운 책을 향해 손을 뻗고 그리고 그 중에는 나 역시 있다.
어둠 속에서 타오르는 아주 작은 불씨, 무심결에 손을 뻗어 그것을 잡아보려 하던 제나는 다시 들려오는 목소리에 조금 씁쓸하게 웃는다. 항상 협력이라. 이런 일이 있기 전까진 동쪽과 서쪽은 서로 관심조차 없었으며, 서쪽의 두 가문도 협력은 커녕 연관점조차 없었다. 아무 일도 없었더라면, 지금도 각각의 가문들은 협력과는 거리가 멀었겠지.
그런 와중에 다시 들려오는 다른 이야기. 신의 껍데기.. 설마 본가 앞에 나타났던 그것을 말하는 걸까. 그리고 신을 죽이는 힘은 또 뭘까. 내 목소리가 저들에게 닿을진 모르겠지만,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입을 열어 물어본다
무슨 이야기일까요, 당신에게 들리는 목소리는 아직은 이해하기 힘든 소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 하지만 . . - 그 때, 네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어쩔 수 없긴하지. - 기억해. 자기 자신의 선택에 책임질 수 있다면.. 그거면 돼.
┴┬┴┬┴┬┴┬┴┴┬┴┬┴┬┴┬┴┬┴┬┴┬┴┬┴┴┬┴┬┴┬┴┬ 엘펜하임은 록시아의 말을 듣고는 고민하듯이 잠잠히 있다가 뒤늦게 말했습니다.
[아닐거야. 그것들 아닐까? 성창이나 여신의 방패같은 스킬들 말이야.]
신기. 확실히 신기같은 이름의 스킬들이 있기는 했지만..
- 신기만으로 신을 어떻게 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그 괴물같은 육체의 신격을 일시적으로 약화시킬 순 있겠지. - 결국 후세에게 맡기기만 하는거지만.. 어쩔 수 없어.
그 목소리는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며, 유감을 표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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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계의 실체라.. 세계의 실체란 무엇을 말하는거니? 네가 보고 자란것이 곧 실체인걸 - 개개인이 지키고 싶은것, 개개인의 생각. 그 모든게 충돌하고 또 아우러져서 세계란게 만들어진단다.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었습니다.
- 그저 그뿐이야. 세계의 멸망이라던가 그런 거창한 이유 앞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큰 의욕을 내지 못하더구나. - 그때도 그랬어. 그들은 오히려 자신의 가족을 위해, 사랑하는 이를 위해. 친구를 위해. 그런 사소한 이유들로 한계를 넘었지. - 너무 넓게 보려고 하지말렴. 너 자신이 믿는 하나의 길을 잊지 마.
- 우리는 너희에게 세상을 구해달라고 하는게 아니란다. ┴┬┴┬┴┬┴┬┴┴┬┴┬┴┬┴┬┴┬┴┬┴┬┴┬┴┴┬┴┬┴┬┴┬ - 결국 환상의 도서관에 대해 모든걸 이해했을때, 그 책이 나타날거야!
목소리는 한번 바뀌어서, 아마도 환상의 도서관을 만든 사람으로 추정되는 이가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 물론 그 책을 또 해석해야겠지만. - 그거야말로 즐거운거 아니겠어?
책, 책이라.. 어쩐지 당신과 좀 맞을거 같은 목소리는 점점 작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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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목소리는 전달되지 않는듯 했지만, 우연히 그들의 대화의 초점과 맞춰졌습니다.
- 내가 만들 레오넬의, 비기로서 전수할거야. 그 힘을 견딜만한 후손이 있길 바래야지. - 너무 낙관적인거 아니냐고? 그럴지도.. 하지만 우리한텐 시간이 얼마 없잖아.
초대 가주? 하지만.. 초대 가주와는 다른 목소리입니다. 성별적으로요.
- 그래, 지금까지 도와줘서 고마웠어. 아그니. ┴┬┴┬┴┬┴┬┴┴┬┴┬┴┬┴┬┴┬┴┬┴┬┴┬┴┴┬┴┬┴┬┴┬
- 창천.... 은 초대 가주가 신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려고 했던 기술을 내 나름대로 완성시킨거야. - 그래, 완벽하게 베는 동작, 주먹을 뻗는 동작. 하나 하나의 개념이 곧 창천.... 이고. 그 개념을 모든것에 녹아내는게 진짜 목적인거지.
그렇게 됐을때, 창천... 은 신의 개념마저 건드릴 수 있다며 톡톡튀는 목소리는 말했습니다. 창천의 뒷부분은 뭐라고 말하는지 여전히 들리지 않지만. 역시 당신에게 말하고 있는건 아닌거 같습니다.
"그 절기는, 창천... 과는 달랐다. 너무 개념에 얽매이지 말거라." "너희 아버지는 자신이 완벽하게 기술을 복원하는건 무리라는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모든것을 녹여 새로운 창천을 만들어냈다."
"너는 어찌 생각할지 몰라도, 대단한 남자였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어느샌가. 당신을 향해 있었고, 지금까지 들리던 방식과는 달라져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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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동굴 앞에서 눈을 떴습니다. 특이하게도 동굴은 완전히 무너졌군요. 밖에 남아있던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갑자기 동굴이 무너져서 어쩔 수 없이 나왔는데. 그 직후에 당신들이 뿅하고 나타났다고 합니다....
루루가 먼저였고, 그 다음이 여우자매였지. 건체리를 먹는 청요의 꼬리를 만지작거리던 제나는 소환수에 관심이 간단 말에, "선배가요?" 하고 의외란 듯 되물었을까. 어찌 보면 당연한 게, 눈 앞의 선배는 소환수나 테이밍 쪽에는 관심이 전혀 없을 것 같이 보였으니까.
" 아카데미 내부에도 소환사나 테이밍이 가능한 학생들이 좀 있던 걸로 알아요. 선생님 쪽으론.. 잘 모르겠지만요. "
그녀가 계약한 여우 자매의 경우에도 마카롱 선생님에게 소환식을 받아 계약한 것이지만, 이건 선생과 제자로써라기보단 가문의 비기 쪽으로 넘어가는 거였으니. 알려줘봤자 큰 도움이 되진 않을 테지. 그러곤 우성의 대답을 듣던 제나는 괴물이 사람이라는 말에 '예?' 하고 되물었고, 뒤이은 말에 잠깐 미간을 짚는가 싶더니 크게 한숨을 쉰다. 아버지....
" 그래서 선배가 왔다 가니까 아버지가 그렇게 기분이 좋으셨던 거구나... " " 그것보다, 괴물이 사람이였다는게 대체 무슨 말인가요. 위압감 때문에 그 괴물 제대로 보는 것조차 힘들었는데.. "
의외라는 듯한 제나의 표정에 살짝 뻘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하긴.. 본인이 봐도 지금까지 마수를 부린다는 것과는 꽤나 먼 이미지였으니깐 말이야. 다만 제나처럼 교감을 한다기 보다는.. 정말 부하처럼 부릴려는 생각이었지. 어느정도 강한 마수를 죽이지 않고, 우성의 생각 이상으로 많은 걸 삼키는 쇼콜라에게 마수를 보관시키는 방식으로 말이야.
"그렇구나. 이제 마음대로 돌아다녀도 되니깐, 먼저 풀어야 될 과제부터 다 풀고 알아봐야겠네요."
최근 창과 우성의 합이 잘 안 맞는 듯, 창술에서 간혹 미묘한 어긋남이 발생해서 말이지. 분명 신창합일의 경지까지 올랐음에도... 마치 창이 의지라도 가진 듯, 우성의 움직임에 조금씩 안 따라주는 느낌이 들었다.
우성은 청요에게 건체리를 다 먹이고, "맛있었어?" 라는 말과 함께 턱을 쓰다듬었다.
"아..그러니깐..."
우성은 자신의 하늘색 눈을 보이며 말한다. 평소의 보랏빛 눈이 아니었다.
"이 눈은 본질을 볼 수 있는 눈이거든요. 제나씨도 이 눈을 통해서 알아봤고요. 그것이 정체든, 숨겨진 술식이든.. 이상한 생각이든.. 제 눈으로 간파할 수 있죠. 금기를 버렸더니, 눈이 이렇게 변하더라고요."
"그래서 이 눈으로 괴물을 봤거든요. 하지만 저와 그 괴물의 격차가 커서 눈에서 피가 났고, 정확히 무엇을 봤는지 기억도 잃었어요. 원래 사람이었던 것만 기억이 났지요. 사람이었지만 모종의 이유로 괴물이 되어버린 존재..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왠지 모르게, 마수와 교감을 한다기보단 말 그대로 주인과 부하의 관계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는 문득 테이밍이건 소환수건 원래대로라면 주인-부하 관계가 맞는 거고 나처럼 혼래빗한테 엄마 소리를 듣는다거나, 소환수들한테 언니 소리를 듣는게 특이한 경우가 아닐까? 라고 생각했을까. 그리곤 뒤늦게 "혹시 테이밍 성공하면 저한테도 보여 주실 수 있나요?" 하고 덧붙인다. 선배라면 어떤 마수를 데리고 다닐지 궁금했으니까.
" 아 맞아, 늦었지만 복귀 축하드려요 선배 "
애초에 왠만한 이름난 가문 사람이라면 소문에 대한 진상을 다 알고 있었을 테지만, 알 사람만 아는 것과 모두가 아는 건 명백히 달랐으니까. 풀어야 할 과제라는 말에 궁금한 눈치를 보이던 그녀였지만, 굳이 물어보진 않은 채 청요가 우성의 손에 대고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다가 얼굴을 부비는 것을 귀엽다는 듯 쳐다본다.
" 그건 좀 무서운데요 "
하늘색 눈을 빤히 보며 우성의 말을 듣던 제나는 툭 던지듯 내뱉는다. 눈에 관한 건지, 괴물에 관한 건지, 아니면 둘 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곤 입가에 손을 가져다 대며 잠깐 생각에 빠졌을까
" '격'에 대해서는 저도 들은 게 있어서 어느 정도 알고 있긴 한데.. 사람이였던 것을 그렇게 만들 정도면 대체 어떻게, 왜, 한 건지가 궁금해지긴 하네요. 봉인을 한 것도 그렇고.. "
궁금해해봤자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을 테지만. 하는 뒷말은 구태여 덧붙이지 않으며 청요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자신의 부탁에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며 눈을 빛내던 제나는 눈웃음을 짓는 우성을 보더니 무심결에 '이러니까 교내에 팬클럽이 있지..' 하고 중얼거린다. 저렇게 이쁘장한 얼굴에 청아한 눈웃음까지. 왠만한 여학생들은 한눈에 반하게 만들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 본인이 원해서 그렇게 된 것인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건지.. "
어느 쪽이건간에, 봉인해야 할 대상이라는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지만. 얼굴을 감싸던 손이 떼어지자 작게 뀨- 소릴 내는 청요를 안아 제 목에 두르던 제나는, 뒤이은 말에 뭔가 짐작가는게 있다는 표정으로 고갤 끄덕인다. 봉인서에서, 어머니의 사념체한테 들은 것이 있었으니까. 그러곤 우성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응? 하고 고갤 갸웃였을까
" 금기였다면 제가 지금 여기에 태연하게 있을 수가 없었겠죠. "
무슨 말을 하려나 했더니.. 작게 키득인 제나는 손을 펼치더니, 위에 작은 불꽃을 피워올린다.
" 악마랑 계약을 한 거에요. 금기에 손을 댄 게 아니라. 그러니까 대충.. 이게 제 영혼이라고 치면 "
- 이런 느낌? 하고 덧붙인 그녀는 손 위에 피워올린 홍염을 정확히 절반만 흑염으로 바꿔 보인다.
우성의 슬라임에 말이지. 마치 자신의 몸을 아공간처럼 쓰는 걸 보니..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특이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지도 몰랐다. 아무리 슬라임이라도, 그 많은 혈석들을 단숨에 삼켜서 보관할 줄은 몰랐거든. 교내에 팬클럽이 있다는 말에 몸을 살짝 떨며 "오글거려.."라는 말과 함께 잠시 질리는 표정을 보였다.
"아마 후자겠죠..? 그런 모습으로 변하고 싶은 사람은 없지 않을까요.."
물론 단편적인 추측일 뿐이고.. 진실은 나중에 가봐야 알 수 있겠지.
"아아- 그렇구나.. 그렇다면 완전히 악마가 되는 것과는 거리가 머네요? 악마와 계약을 했다라.."
무슨 사정이 있어서 악마와 계약을 한 것일까. 우성은 다시금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굳이 말 안 해도 알고 있겠지만, 컨트롤을 잘 하셔야 될 거에요. 금기 그거, 정말로 발을 들이게 되면 계속해서 갈구하게 되더라고요."
아카데미에 들어와서는 적응부터 해야한다는 생각에 기숙사 주변이랑 강의실이 모여있는 건물들만 왔다갔다하면서 길을 익혔다. 대뜸 너무 멀리 나가서 길이라도 잃으면 곤란하니까. 그리고 평소 다니던 길이 익숙해졌다는 느낌이 들어서 휴일인 오늘! 아카데미의 다른 곳도 가보자고 생각해서 길을 나섰는데 바로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 다들 좋은 분들이라 다행이네요! "
그래도 다들 안데르센 선배님처럼 친절하시면 길을 잃었을때도 걱정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다음부턴 좀 더 멀리멀리 다녀봐야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히죽대고 있으니 선배님이 소설의 문구라면서 좋은 말을 들려주셨다.
" 그럼 제 성은 제가 직접 유명하게 만들면 되겠네요?! "
록시아님이 지어주신 이 성은 지금은 비록 하나도 유명하지 않지만 내가 엄청 유명해지고나서 록시아님이 지어주신거에요! 라고 하고 다니면 덩달아 평판도 올라갈테고 그럼 또 칭찬을 해주실거라 생각된다. 아직 이루어질지도 모르는 일인데도 괜시리 신나서 표정이 풀어진 나는 선배님의 말에 머리를 살짝 긁적이며 말했다.
" 록시아님은 분명 엄청 좋으신 분이지만 ... 어째서인지 조금 무서워서요. "
엄청 자상하시고 잘 웃어주시는데다 교내 평판도 엄청 좋지만 저번에 만났을때 어째서인지 무섭다는 느낌을 받아버렸다. 무섭다고 느낄 부분이 하나도 없었지만 갑작스럽게 느껴진 감정에 나는 엄청 당황했지만 그때의 그것 때문인지 록시아님은 가까이 다가가기엔 어렵다는 인상을 받아버렸다. 그렇다고 싫거나 그런건 아니다! 록시아님 최고!
" 제나님이랑 필리아님은 만나본적 없지만 분명 좋으신 분들일테니까요! 레오넬의 뒤를 이을 자격이 있으신 분들이고. "
직계라는건 정통성에서도 최상에 있으니 말이다. 거기에 실력도 출중하시니까 두 분 중에 한분이 레오넬을 잇는 것은 확실한게 아닐까. 물론 지금은 제나님이 가주를 잇게 되는게 거의 확실시 된 상황이지만 말이다.
급한 대로 장례식과 함께 가문의 수습을 하던 어느 날, 천은 아주 잠시동안 생긴 여유를 만끽하는 대신 다시 한 번 몸의 상태를 확인했다.
" 미쳐버리겠군.... "
분명 단전에 자리잡은 기가 느껴지지만, 딱 그뿐이다. 끌어낼 수가 없다. 기를 원활하게는 커녕 아예 순환케 할 수조차 없다. 순환을 시도하면 신체가 굳는 느낌이 들면서, 선을 넘으면 그대로 몸이 굳어 죽을 날만을 기다려야만 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기까지 했다. 단순히 기가 흩어지는 것이라면 산공독에 당한 것이니 시간이 지나 배출되기를 기다리면 된다. 세가의 의원도 그리 이야기했다, 그저... 자신이 당한 독이 산공독이라는 전제 하에 내린 처방이긴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천은 시간이 많지 않다고 느꼈기에, 제자리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계속해서 방 안을 서성이다가, 아무래도 안 되겠다는 듯이 자리르 잡고 앉아 억지로라도 일주천을 시도했다.
" 흐읍... "
그러나 그게 실수였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으니, 방 안에서는 둔탁하게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신음 섞인 외침이 들렸다.
기맥이 뒤틀리는 듯한 감각을 느끼며 바닥에서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던 천은 복도 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진동으로 소예가 오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이를 악물었다. 다행히 기절하기 전에 방에 도착한 소예가 기맥을 안정시키고 양기를 불어넣었고 그 결과 한 결 나아진 듯, 기침을 몇 번 한 천은 자신을 보고 괜찮냐고 묻는 소예를 흘겨보곤 버력했다.
" 이게 괜찮아 보이냐! 죽을 뻔 했다! "
제기랄... 그런 소리를 흘리며 이를 빠득 하고 간 천은, 땀을 손등으로 훔치곤 호흡을 골랐다.
" 대체 뭘 하고 있었길래 이리 늦었어? 조금만 더 늦게 오지 그랬냐, 그럼 아무것도 못 하고 숨이 넘어갔을 텐데! "
설마.. 농담이겠지.. 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진심 같아서, 제나는 순간 굉장히 할 말이 많아 보이는 표정을 짓는다. 아니, 크기도 크기일테지만.. 슬라임 안에다 넣어두면 먹히지 않을까? 애초에 그거 들어가긴 하는 거야? 잘못하다간 슬라임이 터질 것 같은데?- 까지 생각하던 그녀는 어느 새 마음속으로 선배에게 잡힐 마수들과 슬라임에게 미리 애도를 표하고 있었을까. 어느 쪽이건 불쌍해.. 라고 생각하면서
" 어차피 가서 이런 팬클럽 싫다고도 말 못할거 같은데요, 선배는 "
아닌가? 아니면 말고요. 하면서 짓궂게 웃던 그녀는 괴물이 됐단 게 중요하단 말에 동의하듯 고갤 끄덕인다. 어찌됬건간에, 그 괴물이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것은 거의 확실한 사실이였으니까. 1년전에 봉인을 깨고 나오려는 것을 모두가 힘을 합쳐 다시 봉인하긴 했지만.. 그때 나온 것은 괴물의 손 하나뿐이였으니. 완전히 봉인이 풀렸을 때는 차원이 다르겠지.
" 흐음.. 팬클럽이 생긴 이유를 하나 더 알거 같네요 "
우성을 빤히 쳐다보다 키득인다. 잘생긴데다 배려심까지. 이쯤 되면 생기지 않는게 이상한 것 아닐까. 물론 지금 이건 배려심이라기보단, 진짜로 안 궁금하다는 것에 더 가깝겠지만. 아무튼.
의외일 수도 있지만, 우성은 무언가를 수련하거나 익힐 때는 실험정신이 꽤나 강했다. 이미 누군가가 개척해놓은 길을 걷는 것보다는 자신이 길을 개척한다고 해야 될까? 이와 더불어서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해도, 일단 해보고 진짜로 안 되면 그만두자는.. 간단히 말해서 일단 찔러보자는 마인드가 강했다.
"아뇨, 이거는 말할 수 있어요. 아니, 이거는 당장 해체하라고 말해야 돼요."
아무래도 이런 것과는 꽤나 안 맞는 듯. 사람이 사람을 동경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교내에서 팬클럽까지 있다는 것은 너무 오글거렸다. 도대체 소설에서나 나올 그런 짓을 누가 했는지.. 찾아보고 싶군. 만약 해체를 안 한다면 회장부터 해체ㄹ...
"팬클럽은 이제 그만.. 어지러워요.. 도대체 누가 그런 걸 만든 거야..."
팬클럽이라는 단어를 듣기만 해도 기겁하는 듯했다. 더불어 배려심보다는 진짜로 안 궁금했던 것이 훨씬 크기도 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