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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상에 동기부여를 받아 귀찮음도 이기고 노트북을 열었지만 생각나는 바가 없다. 히라무의 가을날은 어땠더라? 낙엽이 지기 시작하는 등교길이란 곧 10월 말에서 11월쯤, 즉 중간고사가 끝나고 기말고사가 남았지만 그 존재를 부정하고 느긋해지기 일쑤인 시기이겠다. 히라무도 지극히 평범하지만 주변 친구의 성비가 도통 맞지 않는 축복을 받은 남자 고등학생으로 기말고사의 존재를 애써 부정하며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두 주 전 이 시간에는 아오와 함께 중간시험 대비 공부를 했다. 이제 곧 고등학교에 올라가니 중학교 마지막 시험은 잘 치고 싶었다. 고등학교 입시를 하는 건 아니지만 예의를 차린 작별인사 삼아서. 그 때 간식으로는 가을을 맞이해 나온 햇사과를 먹었다. 상큼하고 맛있던데 가는 길에 좀 사가면 미사토도 기뻐하겠지. 낙엽 밟는 소리도 사각사각하니 사과 씹는 소리라고 해도 믿겠다. 결정했어! 사과를 사가는 거야!
지천에 깔린 낙엽은 생기기도 각양각색이다. 히라무 주변의 친구들처럼. 저기 커다랗고 정교한 플라타너스 잎이 아오 군이다. 이름은 몰라도 동그랗고 자그마한 꼬마 낙엽은 카요쨩. 빨갛고 특이해서 눈길을 확 잡아끄는 단풍잎은 이즈미상. 책갈피로 써도 될 듯 늘씬하지만 바람에 흐느적댈 것 같은 이파리는 마쨩이고, 스즈 누나는 파르페에 올라간 푸딩을 위에서 본 듯 아기 손바닥만한 둥근 잎. 히라무는...그러게?
길바닥 낙엽들마다 이름을 붙여주기는 어렵지 않다. 오랜 친구들의 이름도, 지금은 잃어버린 친구들의 이름도. 잊었다고 생각해도 잊지는 않는다. 다시 눈을 보면 생각나겠지만 그 친구들과 재회할 수 있을지 확신은 못하겠다. 그래서 이름을 갖다 쓰지 않았다. 가랑잎에 이름을 붙였다가 가랑잎처럼 날아가면 어떡해? 히라무는 언제든지 여기로 돌아오겠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으니까. 떠난 사람들 누구나가 토키와라를 사랑하는 건 아니니까. 그리워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억지고. 히라무는 언제든지 여기를 그리워해서, 이곳을 사랑해서, 아무리 넓은 데로 떠나도 돌아오게 되겠지만...히라무는 책갈피로 삼을 낙엽을 주우려고 몸을 숙였다. 목에 걸린 열쇠가 달랑 추락했다.
낙엽 위에서 흔들리는 열쇠가 시야에 들어온다. 히라무는 고양이 낚싯대 치듯 열쇠를 툭 건드렸다.
떠난 사람들 누구나가 토키와라를 사랑한 건 아니지만 이 열쇠를 가졌던 사람은 토키와라를 사랑하지 않을까? 할아버지는 그러셨을 거야. 그러니까 나한테 토키와라가 새겨진 열쇠를 주셨고, 이 열쇠를 소중히 했던 전 소유주에게 받았을 때에도 귀하게 여겼겠지. 버리려다 주신 것도 아니고, 언젠가 만나면 또 이야기하자는 증표로 주셨을 텐데. 그냥 히라무의 바람일 뿐일까?
히라무는 내년이면 고등학생이 된다. 아무도 히라무에게 벌써 11년이 지났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그런 말을 할 때가 되었는데도. 히라무는 그것이야말로 토키와라의 사랑스러움이라는 것을 알았다.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이 다가온다는 것은 이내 자신의 졸업이 머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겨울은 이별의 계절이고, 가을은 그 이별을 준비하는 계절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따지고 보면 자신과는 크게 상관이 없지 않나 싶어 카나타는 괜히 어깨를 으쓱했다. 자신은 졸업해도 이곳에 있을 것이고, 그저 학교만 떠날 뿐이었다. 자신과 자주 만나는 이는 어차피 졸업을 한다고 해도 자주 만날 것이고, 자주 만나지 못하거나 인연이 거기까지인 이는 졸업을 하게 되면 자연히 보지 않게 될 뿐이었다. 그것은 세상의 이치이고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친하게 지내고 싶은 이들이야 많지만, 그게 어디 자신의 마음대로 되는 일이던가.
바스락, 바스락. 부서지는 낙엽을 조용히 밟으며, 그는 시선을 살며시 땅으로 향했다. 너희들도 이별을 준비하고 거기에 내려앉았니? 답이 올 리 없는 물음을 조용히 속으로 보내며 그는 괜히 낙엽을 밟은 발을 땅에 비볐다. 잔잔히 알갱이가 되어 떨어지는 낙엽 조각을 눈에 담다 그는 다시 앞을 바라봤다. 딱히 의미가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 그저 있기에 밟았을 뿐. 그리고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좋아 그 소리를 조금 더 즐겼을 뿐.
이별의 계절이라고 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작년에도, 그리고 재작년에도 낙엽이 오면 이렇게 밟았으니까.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내년이 되면 또 다시 낙엽이 떨어지고 자신은 어딘가에서 그 낙엽을 밟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카나타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아마 앞으로도 변함이 없겠지."
이별의 계절이 다가오고, 낙엽이 떨어지고, 그 낙엽을 밟고, 그 낙엽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는 사실만큼은...
덜커덩 덜커덩-! 격렬한 소리가 이어지지만 문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움직임이 격렬했던 탓일까. 아랫배에서 또다시 구루룽- 🌩️ 벼락 소리가 울리자마자 앙증맞게 다리를 오므린 자세가 된다. 이번건 정말 역대급으로 몰려온다. 이대로 한발자국만 물러서도 게임 오버라고.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굳히기’에 들어간다. 성가신 까마귀 소리 때문에 자꾸만 집중이 흐트러질 것 같아 미간에 핏대가 쭈욱 올라선다. 다시 한고비를 넘기고 옆을 바라봤다. 표정이 왜 이렇게 어둡지? 설마…… 아니 말도 안돼… 내 굳히기는 완벽했다고.
“숨셔 숨!! 기분 탓이야! 아직 견뎌내고 있다고!”
기현상보다 무서운 생리현상에 정신이 팔린 타케루는 타에양의 사정을 전혀 알지 못하듯 격하게 해명해본다. ‘💥됐다… 이거 누가 봐도 ‘메스꺼워…’, ‘속이 좋지 않아…’ 얼굴이잖아.’ 하지만 도통 타에미의 표정이 풀릴 기미는 보이지 않아서. 이대로 가다간 남은 고교 인생 ‘응케루’가 될거라고 크아악- 내적 좌절에 빠져버린다. 이럴때 아버지라면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
「“이 바보 자식아!! 벼랑 끝에 몰렸다고 포기하려는거냐! 오히려 최고의 기회라고! 자신의 힘을 모두 쏟아부을 기회잖냐! 따라해라! 벼랑 끝! 고마워! 최고다아아아아!!!!”」
뭔가 아버지의 얼굴이 나를 향해 외쳐온다. 내면에서도 더럽게 침을 튀는건 여전하구만… 하지만… 의지가 됐다!! 좋아! 따라 외쳐보자!
큰일났다 상황 같이 생각해주시라고 하려고햇는데 ㅋ ㅋ ㅋ ㅋ ㅋ ㅋㅋ ㅋ ㅋ ㅋ ㅋ ㅋ같이 생각해주시면 안될까영......?? 저 지금 갑자기 비오는날에 비 긋다가 만나는 상황밖에 생각 안난단말이야 만약 센빠이가 젖어서 오면 히라무가 수달이라고 불러드리겟다(??????)
히라무는 보부상이다. 즉 웬만해서는 우산을 갖고 다닌다는 얘기다. 언제 비가 와도 책과 본인을 지킬 수 있도록 가방에 넣어 다니는 경량 우산이 있다. 투 머치 인포메이션을 주자면 젖소 무늬다. 우유맛이 날 것 같고 귀엽다는 게 히라무의 평가다.
그러나 오늘은 아니었다. 엄마 심부름으로 가게에 장을 보러 가느라, 보부상 히라에몽의 명성에 누가 되는 우산 누락 행위를 저지르고 말았다. 주머니 안에 장바구니만 넣고 휘적휘적 갔다오는데 아주 모호한 자리에서 비가 툭, 툭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금세 집중호우로 변하고 말았다. 예정에 없던 소나기에는 히라무도 젖소 우산을 꺼내기는커녕 비에 젖은 생쥐 꼴을 하고 가게 차양 밑으로 달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차양만 내린 꽃집에는 셔터가 내려져 있다. 귀여운 손글씨로 쓴 당일 휴무 공지가 바깥을 보고 붙어 있다. 히라무는 꽤 내릴 듯한 비에 장 봐온 바구니를 내려두고...어? 유리창에 비치는 인영이 하나가 아니다? 비 오는 날에 탐스러운 흑장발이라면 아무리 생각해도
"어..."
돌아보니 촉촉하게 젖은 여학생이 옆에 서 있다. 젖어서 쭈그러든 머리카락에서 물이 떨어진다. 아쉽게도 괴담은 아니었으나 어디서 많이 봤는데...맞다. 포스터에서 하나요 옆에 있던 그 소녀다. 흑장발에 미인인 건 닮았지만 왠지 분위기가 수달과 해달 급으로 차이가 나서 카요쨩에게 수달과 해달 구별법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