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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대충 알아들었으니 OK 아니겠어?! …시꺼 이 자식들아!! 저 녀석들은 하필 왜 여기서 어슬렁거리는거야? 정신 사납게…”
까오, 까오- 너머로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다른 곳에 신경이 쏠려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조차 듣지 못했는데. 마치 귀에 대고 지저귀듯이 떼로 들려와선 신경을 긁어댔다. 대체 어디서 몰려온거냐, 이 넓은 숲에 진수성찬을 뿌려놓기라도 했나.
“그 느긋함은 잠시 내버려두고 협조좀 해달라고오!! 되든 안되든 일단 부딪쳐보기라도 해보자니까?! 문은 내가 망가뜨렸다고 얘기할테니까!”
문을 열고 싶은 건 아래쪽도 마찬가지였는지 인내의 벽이 실시간으로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다. 제대로 부르지 못한 이름도. 저 밖에서 시끄럽게 울어대는 까마귀 녀석들도. 진짜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만큼 한계라서.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필터링 없이 나오는대로 말을 내뱉는다. 물론 지금 평판으로는 문이 자기 혼자 망가졌다고 해도 네가 부셨냐는 소리 듣기 충분하겠지만.
“어이 야스라! 네 이름 제대로 말했으니까! 비켜!!”
자그마한 바퀴벌레도 궁지에 몰리면 순식간에 아이큐가 상승한다고 했던가. 이 무심한 근육뇌도 드디어 안주인의 이름을 제대로 부를 수 있었다. 초 간격으로 방파제를 휩쓰는 뱃속의 파도에 이젠 정말 이판사판이라며 등으로 문을 쾅! 쾅! 들이 받기 시작한다. 팔이 아픈 것보다 ‘니가 뭘 할 수 있는데?’라고 비웃는듯한 생리현상에 갑작스러운 자신과의 싸움이 되어 전력을 쏟아낸다.
행복이 항상 좋은 결과만을 가져다주진 않는다. 모든 행복이 진실된 것도 아니다. 사람마다 잘 맞는 행복의 형태가 있고. 그게 무엇인지 알아가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있다. 마냥 상냥하지만은 않을 그 과정에 스즈네는 그저 등을 받쳐주고 싶었다. 다쳤다면 나을 때까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 앞이 보일 때까지. 지쳤다면 충분히 쉬일 때까지. 언젠가 웃으며 안녕을 말하게 되는 날까지.
날개가 부러진 새는 언젠가 나아 다시 여행을 떠날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동료 혹은 라이벌 등등을 만나며 새로운 여행기를 써내려가겠지. 멈췄던 시간이 흐르고. 아팠던 시절 홀로 날개짓하던 시절이 어느샌가 아련해지고. 그 즈음에서야 떠올릴 지도 모른다. 머물렀던 모두가 떠나가도 오도카니 남아있던 그 곳을. 모두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던 어느 누군가를.
"헤에~ 하긴~ 나도 잇치 할부지 오면 한참 노니까아~"
링링이는 누운 채 미카즈키의 쓰다듬을 만끽했다. 기분이 좋은지 고개를 들어 무는 시늉을 하지만 이빨이 닿지는 않는다. 그 사이 쟁반을 들고 온 스즈네는 뒤늦은 답에 맞답을 하며 웃었다. 어르신들이 의례 그렇지만 스즈네에게 잇치 할부지는 조금 더 의미 있었다. 다른 아이들과도 잘 놀아주시고 같이 차를 마시며 얘기하는 건 정말 즐겁다. 스즈네가 가끔 엉뚱한 소리를 해도 연륜답게 스즈네와는 다른 관점으로 현명한 답을 해주시니 배울 것도 많았다. 잇치 할부지 덕에 스즈네 또한 정원을 가꾸는 재미를 알게 되었기도 했다.
"응~"
일련의 과정을 거쳐 찻잔을 건네준 스즈네는 웃으며 작게 끄덕였다. 태연히 빈 손으로 제 몫의 찻잔을 들어서 정원을 바라보았다. 정갈하게 깔린 자갈과 그 주변으로 살랑이는 댓잎을 보고 있으면 식힐 것도 없이 찻잔의 김이 줄어든다. 그럼 느긋하게 한모금 마시고 다시 한모금 머금은 후에 우히~ 하고 늘어지며 중얼거린다.
"좋네~" "애웅~"
소년과 소녀에게 박자를 맞추듯 링링이도 작게 울었다. 그 모습을 힐끔 보고 키득 웃은 스즈네는 눈을 나른히 내려뜨곤 조잘조잘 떠들었다.
"미카즈키 군은~ 방학 동안에만 여기 있는 거야~ 아님 졸업할 때까지 있는 거야~? 졸업 후에는 뭐할 거야~?"
호로롭. 천천히 식어가는 차를 마시고 또 조잘댄다.
"얼마나 있든~ 여기 자주 와도 돼~ 아~ 맞다~ 미카즈키 군~ 예전에 살았으니까~ 아는 애들도 있겠다~ 걔들은 다아 만나봤어~? 친구는 소중한 거야~ 나는 이번에~ 축제 집행부에 뽑혀서 말이지~ 집안일이랑 같이 하느라~ 어~ 그래도 차 마실 시간은 있으니까~"
약간. 이 아니라 아예 의식의 흐름대로 떠오르는 걸 말하는 듯 했다. 스즈네는. 긴장도 경계도 없이 마치 오래 만난 지기 사이처럼 떠들다가 동그란 눈을 슬쩍 뜨더니 미카즈키를 보며 히히~ 웃었다. 함뿍 접힌 눈동자가 흠결 하나 없이 맑았다.
까마귀들의 울음소리가 가까워지는듯한 착각이 든다. 어디 그것뿐일까, 보이지 않는 이질적인 시선들까지 늘어나고 있다는걸 온몸으로 느끼고 있으니··· 믿건, 믿지 않건 그러한 기운은 누구나 느낄 수 있을테다.
"그거야··· 요깃거리가 근처에 있으니까 그런 거겠지이···~"
『까─악, 까──악.』
결국 타케루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랐는지, 소용이 없다 해도 여러번 부딪혀보면 열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온 힘을 다해 문에게 몸을 내동댕이치는 모습이 보였다. 물론 그녀 또한 그런 모습을 보면 얼른 이곳을 빠져나가는데에 도움이 되어야 할것 같지만···
점점 더 안색이 어두워져갔다.
『까─악, 까──악.』
메슥거리는 속을 억누르며 문을 향해 몸을 던지듯 부딪혀보았다. 말 그대로 문을 부술만한 도구같은 것도 딱히 보이지 않는 것이, 좀처럼 쓸 일이 없었던 힘까지 써야 하는 걸까?
『까─악, 까──악.』
가려진 시야에선 카카오 매스처럼 까만 새들이 지저귀고, 그들에게선 체리시럽이 흘러내린다. 바라보는 시선은 마냥 차갑고 채 익지 않은 무화과를 베어물듯 씁쓸함이 감돈다. 모든게 상상이며 망상이라 해도 여전히 선명했다. 갇혀있는 것은 내키지 않는다. 갇혀있는 것은 내키지 않는다.
결국 힘이 빠진 건지, 금방 의욕을 잃은 것인지, 그녀는 도통 열리지 않는 문을 잡고 밀거나 당기기를 반복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