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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파 뭐? 권외지역 그건 또 뭔데? 이거 그냥 들고 다니면 알아서 전화 되는거 아니었나?? 마치 인간들 만담토크에 귀를 쫑긋이는 강아지처럼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뭔가 또르르 수신호가 가자마자 꺼진다는건 대충 알아들었지만. 뭐가 이렇게 복잡한데? 그딴건 모르겠고 지금 대형사고 터지기 일보직전이라고. 문에 손을 턱 올려놓고 허리를 숙인다. 아아, 낭랑 18세에 동네 아는 여자애 앞에서 굴욕적인 흑역사를 갱신해버리는건가..
“절대 안돼!!! 이대로 가면 야스라 아카네의 방송소재가 돼버리고 만다!!!”
그래, 야스라(‘네모토’다.)!!! 이제서야 대놓고 자기 정체를 밝히는구나. 이런 캄캄하고 낡은 창고에 갇혀 아무렇지 않게 느긋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하는 것도. 공포 크리에이터에게는 이런 상황 따위 하찮은 시추에이션 따위로밖에 느껴지지 않을거라고. 그걸 왜 몰랐지?! ‘낡은 폐창고 안에서 실제로 벌어진 충격적인 분뇨사건’따위 제목으로 조회수의 희생양이 될 순 없다고. 퍽, 퍽퍽. 문을 반사적으로 두드린다.
“물건한테 말 걸어봐야 답이 나오겠냐!? 안되겠어.. 도저히 못참겠다. 이제 나도 몰라! 전부 말도 안하고 문 잠그고 가버린 녀석들 잘못이니까.. 어이 네모토(‘야스라’다.)! 문을 부숴버리자!! 이딴 폐건물 문따위 녹슬대로 녹슬어서 몇번 꽝꽝 패버리면 금방 박살난다고!”
후에 징계를 받든 뭘하든 ‘화장실’이라는 단어로 가득찬 머리로는 도저히 이성을 붙잡을 수 없었다. 뭐 빠루나 망치 같은거 없나 어두컴컴한 선반이나 바닥에 굴러다니는 잡동사니를 우악스럽게 훑으며 외쳤다. 여기서 나가면 일단 급한 것부터 해결하고 이 사태를 만든 범인 녀석. 절대로, 절대로절대로절대로 잡고 말거다!!
시체- 어쩌면 아주 틀린 말도 아니긴 하겠다. 물 위로 부서지는 햇살, 딱 알맞은 수온, 피곤에 절어있는 몸, 감정의 폭풍에 스트레스가 쌓일 대로 쌓인 정신,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랫소리까지. 시체는 아니지만 시체처럼 잠들었다는 말 정도는 써도 괜찮을 듯하다. 옅게 기미가 낀 눈을 한 채로 잠들어있던 그 소년은 하나요가 치맛자락을 조심스레 들어올리고 물속에 발을 들이는 참방 소리에도 잠에서 깨지 못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 있었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서면 다가설수록, 하나요의 기억 한켠에 자리해 있던 추억은 점점 분명해진다. 햇살 아래에도 그을리지 않고 빨갛게 화상을 입기에 항상 선크림을 바르던 하얀 피부, 보기 좋게 곱슬곱슬 굽이치던 검은 머리카락, 선명한 이목구비와 오똑한 콧대... 그러나 달라진 부분도 있었다. 더 성숙해진 얼굴 비율, 눈가에 내려앉은 옅은 기미, 그리고 하나요가 마지막으로 잡았을 때와는 조금 많이 달라진, 왠지 사람의 손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섬뜩한 모양새가 되어있는 새하얀 손아귀.
그러나 평온히 잠들어있는 그 얼굴과, 미키 군- 하고 나직이 불렀을 때 게슴츠레하게 흔들리며 뜨이는 눈꺼풀 사이로 하나요의 얼굴이 고스란히 비쳐보이는 파르스름한 눈동자는 하나요가 기억하던 미키 군 그대로였다. 마치 어제까지도 같이 놀던 친구를 오늘 다시 마주한 듯이 정겹게.
그가 어쩌다 이 연못까지 도달했는지, 그때까지 어떤 상태였는지 감안하면 그는 결코 이런 눈빛을 할 수 없었을 것이나, 아니 그는 이런 눈빛을 잃어버린 지 오래되었으나, 얼핏 잠든 그 짧은 쪽잠 가운데 미카즈키는 잠시 미키 군이 되어 다시 하나요와 재회하는 꿈을 꾸었고, 그 머리가 잠에서는 깨었으되 아직 꿈에서는 채 못다 깨어난 상태였다. 그래서 그는 아주 잠깐 동안 미키 군이 되어 있었다. 미키 군은 입을 열어 "응." 하고 대답하면서, 물에서 몸을 일으키며 손을 들어올렸으나...
그 순간, 자신의 목에서 흘러나온 예전보다 굵어진 목소리며, 자신의 눈에 들어온 굳은살투성이의 흉하기 그지없는 유령 거미 같은 자기의 손의 모습이 미키 군에게 너는 미키 군이 아니라 나가쿠모 미카즈키라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그 다음 순간 미카즈키의 얼굴에 어린 것은 아연실색한 무표정, 그리고 어떠한 깨달음, 그리고... 경악이었다. 그렇잖아도 하얀 미카즈키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는 게 고스란히 보였다.
소년이 두려워하는 것은 정말로 많았다. 그러나 그 두려움을 거슬러올라가 보면 그 결은 항상 같았다. 소년은 행복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 행복을 감당할 수 있을지도 두려워했고, 그 행복에 천착하려다 자기 자신을 더 망가뜨릴까도 두려워했으며, 이 행복이 자신을 떠나가거나 자신을 쫓아낼 것까지도 그는 두려워했다.
모든 좋은 것들은 항상 그를 매몰차게 뿌리쳤으므로.
그것이 미카즈키를 웃게 했다. 너무 많은 것을 읽혀버리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이렇게 다쳐있기에 베풀어지는 당신의 호의. 결국 이것에도 끝은 있겠지. 부러진 날개가 낫고 나면 그것으로 끝일 테다. 그 끝을 잊고 싶어서, 미카는 웃었다. 다시 시작될 기약없는 쓸쓸한 비행을 모른 체하고 싶어서다.
그러니까, 지금뿐이라면... 지금뿐이라면, 조금 바보같이 굴어도 될까. 그런 마음으로, 미카는 바보같이 말을 꺼냈다. 일 도와드려도 괜찮겠냐고. 바보같은 소리도 스즈네는 유쾌하게 받아넘겨주었고, 미카는 잠깐 꿀먹은 벙어리가 됐다. 에- 하고 멍때리는 사이에 스즈네는 참으로 가볍게도 사뿐 일어나서는 다과상을 쟁반에 차려서 가져온다. 그 사이에 미카는 손을 뻗어 링링의 정수리를 삭삭 쓰다듬고 있었고(고양이라는 동물 털 엄청 빠지는구나), 스즈네가 쟁반을 내려놓을 때 늦은 대답을 내어놓았다.
"좀 늦어져도 가서 차라도 한 잔 얻어먹고 오나 보다 하시겠죠. 할아버지도 찻집 간다고 나서시면 鉄砲玉*이셔서."
애초에 그 영감쟁이, 이걸 의도하고 이런 게 뻔하다. 문득 교활한 영감 장난질에 놀아났다는 기분이 들었다. 왠지 그게 짜증이 난다기보단 우스워서, 또 웃음소리가 흘러나갈 뻔했다. 그래 당신은 참 현역시절부터 상대 선수와 볼배합 갖고 야바위질하는 게 특기셨더랬지.
"괜한 말씀을 드렸네요. 차는,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하며 미카는 찻잔으로 손을 뻗어 찻잔을 살며시 쥐었다. 그러나 미카는 그것을 바로 입가로 가져가지 못했다. 찻잔보다 더 따뜻한 게 미카의 손등을 감싸왔기 때문이다. 볼썽사납게 불거진 뼈마디며, 흉물스럽게 두드러진 근육골들이 말랑하고 따뜻한 것에 감싸이는 감촉이, 생경했다.
"......"
미카는 물끄러미, 자신의 손을 감싸쥔 스즈네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많이 남으면 많이 남을수록 떠올릴 때 아플 텐데.
미카는 조심스레 잔을 들어올려 한숨 식히고는, 찻물에 입을 댔다. 쌉싸름하고 고소한 향이 입안에 차분히 퍼진다. 미카는 앉는 자세를 좀 더 편안히 했다.
"......좋네요."
무어라 주어를 붙이고 싶었으나, 미카는 그냥 그렇게 말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무언가 구체적으로 주어를 붙여버리면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냥 그렇게, 뭉뚱그려버리고는 센베를 집어들고, 전혀 생각지 못했던 티타임을 기꺼이 즐기기로 한 것이다.
* 텟포다마. 총알마냥 나가서 안 돌아온다는 뜻으로, 우리 나라의 '함흥차사'에 대응하는 일본 속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