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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들의 울음소리가 가까워지는듯한 착각이 든다. 어디 그것뿐일까, 보이지 않는 이질적인 시선들까지 늘어나고 있다는걸 온몸으로 느끼고 있으니··· 믿건, 믿지 않건 그러한 기운은 누구나 느낄 수 있을테다.
"그거야··· 요깃거리가 근처에 있으니까 그런 거겠지이···~"
『까─악, 까──악.』
결국 타케루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랐는지, 소용이 없다 해도 여러번 부딪혀보면 열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온 힘을 다해 문에게 몸을 내동댕이치는 모습이 보였다. 물론 그녀 또한 그런 모습을 보면 얼른 이곳을 빠져나가는데에 도움이 되어야 할것 같지만···
점점 더 안색이 어두워져갔다.
『까─악, 까──악.』
메슥거리는 속을 억누르며 문을 향해 몸을 던지듯 부딪혀보았다. 말 그대로 문을 부술만한 도구같은 것도 딱히 보이지 않는 것이, 좀처럼 쓸 일이 없었던 힘까지 써야 하는 걸까?
『까─악, 까──악.』
가려진 시야에선 카카오 매스처럼 까만 새들이 지저귀고, 그들에게선 체리시럽이 흘러내린다. 바라보는 시선은 마냥 차갑고 채 익지 않은 무화과를 베어물듯 씁쓸함이 감돈다. 모든게 상상이며 망상이라 해도 여전히 선명했다. 갇혀있는 것은 내키지 않는다. 갇혀있는 것은 내키지 않는다.
결국 힘이 빠진 건지, 금방 의욕을 잃은 것인지, 그녀는 도통 열리지 않는 문을 잡고 밀거나 당기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참가상에 동기부여를 받아 귀찮음도 이기고 노트북을 열었지만 생각나는 바가 없다. 히라무의 가을날은 어땠더라? 낙엽이 지기 시작하는 등교길이란 곧 10월 말에서 11월쯤, 즉 중간고사가 끝나고 기말고사가 남았지만 그 존재를 부정하고 느긋해지기 일쑤인 시기이겠다. 히라무도 지극히 평범하지만 주변 친구의 성비가 도통 맞지 않는 축복을 받은 남자 고등학생으로 기말고사의 존재를 애써 부정하며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두 주 전 이 시간에는 아오와 함께 중간시험 대비 공부를 했다. 이제 곧 고등학교에 올라가니 중학교 마지막 시험은 잘 치고 싶었다. 고등학교 입시를 하는 건 아니지만 예의를 차린 작별인사 삼아서. 그 때 간식으로는 가을을 맞이해 나온 햇사과를 먹었다. 상큼하고 맛있던데 가는 길에 좀 사가면 미사토도 기뻐하겠지. 낙엽 밟는 소리도 사각사각하니 사과 씹는 소리라고 해도 믿겠다. 결정했어! 사과를 사가는 거야!
지천에 깔린 낙엽은 생기기도 각양각색이다. 히라무 주변의 친구들처럼. 저기 커다랗고 정교한 플라타너스 잎이 아오 군이다. 이름은 몰라도 동그랗고 자그마한 꼬마 낙엽은 카요쨩. 빨갛고 특이해서 눈길을 확 잡아끄는 단풍잎은 이즈미상. 책갈피로 써도 될 듯 늘씬하지만 바람에 흐느적댈 것 같은 이파리는 마쨩이고, 스즈 누나는 파르페에 올라간 푸딩을 위에서 본 듯 아기 손바닥만한 둥근 잎. 히라무는...그러게?
길바닥 낙엽들마다 이름을 붙여주기는 어렵지 않다. 오랜 친구들의 이름도, 지금은 잃어버린 친구들의 이름도. 잊었다고 생각해도 잊지는 않는다. 다시 눈을 보면 생각나겠지만 그 친구들과 재회할 수 있을지 확신은 못하겠다. 그래서 이름을 갖다 쓰지 않았다. 가랑잎에 이름을 붙였다가 가랑잎처럼 날아가면 어떡해? 히라무는 언제든지 여기로 돌아오겠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으니까. 떠난 사람들 누구나가 토키와라를 사랑하는 건 아니니까. 그리워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억지고. 히라무는 언제든지 여기를 그리워해서, 이곳을 사랑해서, 아무리 넓은 데로 떠나도 돌아오게 되겠지만...히라무는 책갈피로 삼을 낙엽을 주우려고 몸을 숙였다. 목에 걸린 열쇠가 달랑 추락했다.
낙엽 위에서 흔들리는 열쇠가 시야에 들어온다. 히라무는 고양이 낚싯대 치듯 열쇠를 툭 건드렸다.
떠난 사람들 누구나가 토키와라를 사랑한 건 아니지만 이 열쇠를 가졌던 사람은 토키와라를 사랑하지 않을까? 할아버지는 그러셨을 거야. 그러니까 나한테 토키와라가 새겨진 열쇠를 주셨고, 이 열쇠를 소중히 했던 전 소유주에게 받았을 때에도 귀하게 여겼겠지. 버리려다 주신 것도 아니고, 언젠가 만나면 또 이야기하자는 증표로 주셨을 텐데. 그냥 히라무의 바람일 뿐일까?
히라무는 내년이면 고등학생이 된다. 아무도 히라무에게 벌써 11년이 지났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그런 말을 할 때가 되었는데도. 히라무는 그것이야말로 토키와라의 사랑스러움이라는 것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