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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두려워하는 것은 정말로 많았다. 그러나 그 두려움을 거슬러올라가 보면 그 결은 항상 같았다. 소년은 행복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 행복을 감당할 수 있을지도 두려워했고, 그 행복에 천착하려다 자기 자신을 더 망가뜨릴까도 두려워했으며, 이 행복이 자신을 떠나가거나 자신을 쫓아낼 것까지도 그는 두려워했다.
모든 좋은 것들은 항상 그를 매몰차게 뿌리쳤으므로.
그것이 미카즈키를 웃게 했다. 너무 많은 것을 읽혀버리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이렇게 다쳐있기에 베풀어지는 당신의 호의. 결국 이것에도 끝은 있겠지. 부러진 날개가 낫고 나면 그것으로 끝일 테다. 그 끝을 잊고 싶어서, 미카는 웃었다. 다시 시작될 기약없는 쓸쓸한 비행을 모른 체하고 싶어서다.
그러니까, 지금뿐이라면... 지금뿐이라면, 조금 바보같이 굴어도 될까. 그런 마음으로, 미카는 바보같이 말을 꺼냈다. 일 도와드려도 괜찮겠냐고. 바보같은 소리도 스즈네는 유쾌하게 받아넘겨주었고, 미카는 잠깐 꿀먹은 벙어리가 됐다. 에- 하고 멍때리는 사이에 스즈네는 참으로 가볍게도 사뿐 일어나서는 다과상을 쟁반에 차려서 가져온다. 그 사이에 미카는 손을 뻗어 링링의 정수리를 삭삭 쓰다듬고 있었고(고양이라는 동물 털 엄청 빠지는구나), 스즈네가 쟁반을 내려놓을 때 늦은 대답을 내어놓았다.
"좀 늦어져도 가서 차라도 한 잔 얻어먹고 오나 보다 하시겠죠. 할아버지도 찻집 간다고 나서시면 鉄砲玉*이셔서."
애초에 그 영감쟁이, 이걸 의도하고 이런 게 뻔하다. 문득 교활한 영감 장난질에 놀아났다는 기분이 들었다. 왠지 그게 짜증이 난다기보단 우스워서, 또 웃음소리가 흘러나갈 뻔했다. 그래 당신은 참 현역시절부터 상대 선수와 볼배합 갖고 야바위질하는 게 특기셨더랬지.
"괜한 말씀을 드렸네요. 차는,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하며 미카는 찻잔으로 손을 뻗어 찻잔을 살며시 쥐었다. 그러나 미카는 그것을 바로 입가로 가져가지 못했다. 찻잔보다 더 따뜻한 게 미카의 손등을 감싸왔기 때문이다. 볼썽사납게 불거진 뼈마디며, 흉물스럽게 두드러진 근육골들이 말랑하고 따뜻한 것에 감싸이는 감촉이, 생경했다.
"......"
미카는 물끄러미, 자신의 손을 감싸쥔 스즈네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많이 남으면 많이 남을수록 떠올릴 때 아플 텐데.
미카는 조심스레 잔을 들어올려 한숨 식히고는, 찻물에 입을 댔다. 쌉싸름하고 고소한 향이 입안에 차분히 퍼진다. 미카는 앉는 자세를 좀 더 편안히 했다.
"......좋네요."
무어라 주어를 붙이고 싶었으나, 미카는 그냥 그렇게 말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무언가 구체적으로 주어를 붙여버리면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냥 그렇게, 뭉뚱그려버리고는 센베를 집어들고, 전혀 생각지 못했던 티타임을 기꺼이 즐기기로 한 것이다.
* 텟포다마. 총알마냥 나가서 안 돌아온다는 뜻으로, 우리 나라의 '함흥차사'에 대응하는 일본 속어.
“그래도… 대충 알아들었으니 OK 아니겠어?! …시꺼 이 자식들아!! 저 녀석들은 하필 왜 여기서 어슬렁거리는거야? 정신 사납게…”
까오, 까오- 너머로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다른 곳에 신경이 쏠려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조차 듣지 못했는데. 마치 귀에 대고 지저귀듯이 떼로 들려와선 신경을 긁어댔다. 대체 어디서 몰려온거냐, 이 넓은 숲에 진수성찬을 뿌려놓기라도 했나.
“그 느긋함은 잠시 내버려두고 협조좀 해달라고오!! 되든 안되든 일단 부딪쳐보기라도 해보자니까?! 문은 내가 망가뜨렸다고 얘기할테니까!”
문을 열고 싶은 건 아래쪽도 마찬가지였는지 인내의 벽이 실시간으로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다. 제대로 부르지 못한 이름도. 저 밖에서 시끄럽게 울어대는 까마귀 녀석들도. 진짜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만큼 한계라서.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필터링 없이 나오는대로 말을 내뱉는다. 물론 지금 평판으로는 문이 자기 혼자 망가졌다고 해도 네가 부셨냐는 소리 듣기 충분하겠지만.
“어이 야스라! 네 이름 제대로 말했으니까! 비켜!!”
자그마한 바퀴벌레도 궁지에 몰리면 순식간에 아이큐가 상승한다고 했던가. 이 무심한 근육뇌도 드디어 안주인의 이름을 제대로 부를 수 있었다. 초 간격으로 방파제를 휩쓰는 뱃속의 파도에 이젠 정말 이판사판이라며 등으로 문을 쾅! 쾅! 들이 받기 시작한다. 팔이 아픈 것보다 ‘니가 뭘 할 수 있는데?’라고 비웃는듯한 생리현상에 갑작스러운 자신과의 싸움이 되어 전력을 쏟아낸다.
행복이 항상 좋은 결과만을 가져다주진 않는다. 모든 행복이 진실된 것도 아니다. 사람마다 잘 맞는 행복의 형태가 있고. 그게 무엇인지 알아가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있다. 마냥 상냥하지만은 않을 그 과정에 스즈네는 그저 등을 받쳐주고 싶었다. 다쳤다면 나을 때까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 앞이 보일 때까지. 지쳤다면 충분히 쉬일 때까지. 언젠가 웃으며 안녕을 말하게 되는 날까지.
날개가 부러진 새는 언젠가 나아 다시 여행을 떠날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동료 혹은 라이벌 등등을 만나며 새로운 여행기를 써내려가겠지. 멈췄던 시간이 흐르고. 아팠던 시절 홀로 날개짓하던 시절이 어느샌가 아련해지고. 그 즈음에서야 떠올릴 지도 모른다. 머물렀던 모두가 떠나가도 오도카니 남아있던 그 곳을. 모두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던 어느 누군가를.
"헤에~ 하긴~ 나도 잇치 할부지 오면 한참 노니까아~"
링링이는 누운 채 미카즈키의 쓰다듬을 만끽했다. 기분이 좋은지 고개를 들어 무는 시늉을 하지만 이빨이 닿지는 않는다. 그 사이 쟁반을 들고 온 스즈네는 뒤늦은 답에 맞답을 하며 웃었다. 어르신들이 의례 그렇지만 스즈네에게 잇치 할부지는 조금 더 의미 있었다. 다른 아이들과도 잘 놀아주시고 같이 차를 마시며 얘기하는 건 정말 즐겁다. 스즈네가 가끔 엉뚱한 소리를 해도 연륜답게 스즈네와는 다른 관점으로 현명한 답을 해주시니 배울 것도 많았다. 잇치 할부지 덕에 스즈네 또한 정원을 가꾸는 재미를 알게 되었기도 했다.
"응~"
일련의 과정을 거쳐 찻잔을 건네준 스즈네는 웃으며 작게 끄덕였다. 태연히 빈 손으로 제 몫의 찻잔을 들어서 정원을 바라보았다. 정갈하게 깔린 자갈과 그 주변으로 살랑이는 댓잎을 보고 있으면 식힐 것도 없이 찻잔의 김이 줄어든다. 그럼 느긋하게 한모금 마시고 다시 한모금 머금은 후에 우히~ 하고 늘어지며 중얼거린다.
"좋네~" "애웅~"
소년과 소녀에게 박자를 맞추듯 링링이도 작게 울었다. 그 모습을 힐끔 보고 키득 웃은 스즈네는 눈을 나른히 내려뜨곤 조잘조잘 떠들었다.
"미카즈키 군은~ 방학 동안에만 여기 있는 거야~ 아님 졸업할 때까지 있는 거야~? 졸업 후에는 뭐할 거야~?"
호로롭. 천천히 식어가는 차를 마시고 또 조잘댄다.
"얼마나 있든~ 여기 자주 와도 돼~ 아~ 맞다~ 미카즈키 군~ 예전에 살았으니까~ 아는 애들도 있겠다~ 걔들은 다아 만나봤어~? 친구는 소중한 거야~ 나는 이번에~ 축제 집행부에 뽑혀서 말이지~ 집안일이랑 같이 하느라~ 어~ 그래도 차 마실 시간은 있으니까~"
약간. 이 아니라 아예 의식의 흐름대로 떠오르는 걸 말하는 듯 했다. 스즈네는. 긴장도 경계도 없이 마치 오래 만난 지기 사이처럼 떠들다가 동그란 눈을 슬쩍 뜨더니 미카즈키를 보며 히히~ 웃었다. 함뿍 접힌 눈동자가 흠결 하나 없이 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