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이 쨩, 미안한데 오늘만 카구라(神楽) 대타 들어가 줄 수 있어?」 「으······ 나중에 아이스크림 사 주세요,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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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키리의 넓은 차밭에 관심이 없는 토키와라 주민이 있을 리가? 라고 생각하지 않는 피톤치드가 곧 도파민인 도파민 추구자가 있을 리가. 히라무는 피톤치드가 곧 도파민인 도파민 추구자였다. 유튜브 알고리즘에 뜬 요즘 세대가 이혼하는 이유 베스트 10! 문제는 성격차이가 아니다! 라고 빨간 글자가 썸네일로 박힌 동영상을 틀어놓고 토키와라의 잔잔한 숲속 길을 산책하듯 걸어 오는 것만으로 즐겁다.
이즈미네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여름의 풀냄새가 가득하다. 체력을 몽땅 갖다 쓴다면 걸어 올라가도 좋겠지만, 오늘은 아르바이트를 하러 온 거니 등반을 동반하기는 뭐했다. 약간 걱정하며 약속 장소에 도착해 보니 골프장에서나 쓰는 전동 카트에 이즈미가 앉아 있다. 히라무는 막 불륜과 황혼이혼의 상관관계를 역설하며 예시를 들기 시작하는, 동영상의 하이라이트조차 포기하며 이어폰을 뺐다.
스즈네가 몸을 돌이켜 현관 너머로 사라졌을 때, 미카즈키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숨을 고르는 것인지 한숨을 쉬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나직한 숨소리였다. 그리고 그런 미카즈키를 아랑곳하지 않고, 밋밋한 사각 방석을 하나 물고 와서는 현관과 접한 마룻바닥 모퉁이에 놓아주는 고양이. 손님 대접을 핑계로 자기 잇속을 챙기려는 무빙임이 자명하다.
잠깐, 그렇게 햇살을 등지고 서서, 링링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미카즈키는, 한 발자국을 내딛었다. 두 발자국, 세 발자국 내딛고는, 몸을 돌려 마룻바닥 모퉁이 링링이 깐 방석 위에 걸터앉아서는 링링의 목덜미를 잡고 뒷다리를 받쳐서 슥 들어올리곤 무릎 위에 얹어버렸다. 복복복복복!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 날 이후로 항상 그랬다. 자신을 둘러싼 것들은 항상 그랬다. 그 어머니가 그랬고, 어머니를 데려간 운명이 그랬으며, 아버지가 그랬다. 오사카의 사람들이 그랬으며, 그 아이가 그랬고 그 여자가 그랬다. 그리고 이제는 스즈네와 이 고양이다. 얼마나 휩쓸려왔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생각할 기력도 남지 않았다.
소용없다. 자신과 함께해 마땅한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그 사실에 이 토키와라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까르르 웃는 듯한 풍경소리가, 그 뒤를 따르는 복도 저편에서부터 울려오는 자박자박 소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은 어떨까, 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 쪽이나 저 쪽이나, 바라는 대로는 조금도 되지 않는다. 내가 무언가를 바라거나 원하는 게 가당찮다는 것은 안다. 그러니까 포기만큼은 마음편하게 하게 해주었으면 하는데.
미카즈키는 조금 심술이 났다. 미카즈키는 링링의 머리를 마저 슥슥 쓰다듬어주곤, 다시 링링의 목덜미를 집어들어 옆의 바닥에 내려두고는 벽면을 짚고 일어섰다. 그리고 뒤돌았다. 아직도 후드를 쓰고 있었다는 게 생각나서 소년은 후드를 머리 뒤로 휙 던져버렸다.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 소년의 얼굴에 드리운 그늘은, 바깥의 작열하는 열양과 대비되어 생긴 키리야마 가택의 현관 복도의 옅고 상냥한 그림자뿐.
"이건 조금 일찍 여쭈어봤어야 했는데."
어쩌면 그 날 이후로 한 번도 이런 질문을 한 것 같지가 않아서. 그래서 미카즈키는, 스즈네가 내민 물건들을 받아드는 대신에 조금 지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니시키리의 차밭도 차밭이지만 약간 유기농적인 측면에서의 농법을 통해서 친환경적으로도 재배를 하고 있으니까요. 이즈미는 기다리다가 히라무가 보이자. 히라무 군. 이라고 말을 걸며 인사를 하려 합니다.
"그렇죠. 이걸 타고 올라갈 거에요." 전통 카트라 인력거일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다행히도 전동 카트라서 시동을 걸면 엔진.. 같은 게 돌아갑니다. 옆에 타실 건가요. 아니면 짐칸에 타실 건가요? 라는 물음을 건네긴 했지만 짐칸은 아무리 숲같은 게 있어도 볕이고 차광막이 있는 옆자리를 추천한다고 생각하는 이즈미입니다..
"시급은.. 대충.. 1천.. 얼마겠네요." 3시간 일하면 5천엔 정도라고 하니까(이런 걸로 이즈미도 적당히 벌어서 용돈을 타기도 하지만 오늘은 이즈미는 쉬고 대타를 구한 거나 다름없기는 합니다...) 라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아마 히라무도 전달받았을지도?
아마 인력거였어도 히라무는 눈빛을 반짝였겠지만, 다 올라가고 나서는 마루에 드러누워 아르바이트 포기 선언을 했을지도 모른다. 니시키리의 차밭에서 일당으로 용돈까지 받으면서 말차 채취 체험이라니 이보다 더 보람찬 방학이라면 열쇠의 비밀을 밝혀내는 방학을 제외하고는 없겠다. 전통 카트가 아닌지라 일하고 돌아갈 수 있으니 매우 다행!
차양막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미사토가 하도 잔소리를 하는 바람에 히라무는 볼캡과 선크림으로 무장하고 온 상태다. 올라가서 일하다 보면 더워서 모자는 벗어버릴 게 틀림없다면서 엄마는 가방에다 선스틱도 낑겨 넣었다. 힙색 안에는 그렇게 담아 온 선스틱, 보조배터리, 충전기와 매달린 에어팟 케이스. 히라무는 뺀 이어폰을 케이스 안에다 집어 넣으며 바로 이즈미 옆에 앉았다.
"근데 짐칸도 재밌어 보인다. 저기 이즈미상, 우리 내려올 때도 이거 타요?"
짐칸을 내다보느라 기울인 히라무의 목에서 열쇠가 달랑였다. 열쇠는 햇빛을 받아 흔들릴 때마다 반짝거렸다.
"어차피 방학 동안 공부나 책 읽기나..."
히라무는 가슴께에서 흔들리는 열쇠를 살짝 잡았다 놓았다.
"이거 말고는 없는데. 오늘 완전 유잼 컨텐츠라구요."
돈 주고도 할 체험을 돈 받고도 한다? 간식도 있다? 개이득인 점 인정하는 부분이다. 거기다 전동 카트 부가 서비스까지 있을 줄은 몰랐다. 히라무는 다시 제대로 앉아서 한쪽 팔을 들었다.
"짐칸에 타면..." 흠. 차양막이 있으면 속도감은 더 느낄 걸요? 라는 농담같은 말을 하는 이즈미. 하긴.. 바람에 노출되면 속도감이 높아지는 건 당연하잖아요.
"음.. 내려올 때에는 길 닦여 있는 걸로 차타고 내려올수도 있고요?" 형이나 누나나.. 부모님이 이즈미를 별가까지데려다 주는 김에 히라무도 태워줄 수도 있으니. 그것도 괜찮고, 혹은 이걸 탈 수도 있다는 말을 합니다. 운전은 이즈미가 합니다. 처음 가는 길은 좀 어지러우니까 몇 번 돌아보고 나서 가겠지만 이 길은 처음은 아니니까요. 면허는 이미 있으니.(물론 조금 급하게 준비해서 찍신을 살짝 빌리긴 했지만)
그렇게 도착한 본가는 꽤 큽니다. 간단하게 일할 준비를 하고, 설명을 해주고는.. 차양막이 있는 곳으로 다시 카트를 타고 가면 차밭이 펼쳐집니다. 가장 무성해보이는 차나무를 가리킵니다.
"이 나무는 꽤 오래 전에 심은 거라. 몇백년의 수령을 지니고 있답니다." 따로 구분되는 곳에 옹기종기 심어진 것들은 오늘의 목표가 아니니까 차양막 쪽으로 갑니다..
>>848 으아~ 그렇군요 꽤 맵네요 >:3... 그치만 이런 알싸한 맛도 가끔은 좋단말예요, 먼지아시죠 이런 걸 보면 야구에 강요당하지 않고 토키와라에 남은 평안한 얼굴의 미카즈키를 상상해버리고 말아요,,, 으 흐 흑 맘은 아파도 결핍을 마주하는 게 또 성장에 중요한 요소라고 하니깐요, 아무쪼록 미카가 이 결핍과 고통을 딛고 잘 일어설 수 있기를.. ^ ^ b
이즈미의 말대로다. 어차피 에어컨을 틀어놓을 만한 구조가 되지 않는다면 바람을 느끼며 달리는 것도 좋은 선택일 수 있다. 지금은 올라가서 힘을 써야 하는 판국이니 해를 쬐어서 체력을 낭비하긴 그렇지만, 내려올 때는 특별히 체력을 보존하지 않아도 되니 짐칸을 체험해 보고 싶다. 왜 자기가 고민하는지는 모르겠으나 히라무는 고민했다.
"그렇구나...끝나고 나면 힘들어서 그 편이 편할 수도. 그치만 내려올 때도 이거 짐칸에 타보고 싶다. 이거 재밌어요."
바람이 다 통하는 좌석에 타서 바람결을 그대로 느끼는 기분은 차의 에어컨 바람과는 비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야외라는 느낌도 살고. 히라무는 오르막을 올라가며 스쳐 지나가는 광경들을 연신 두리번거렸다. 이쪽엔 느티나무, 저쪽엔 물푸레나무. 그리고 슬슬 피어나기 시작한 길가의 해바라기들.
"이즈미상 운전 잘한다. 대단해요."
히라무는 제법 약오르게 엄지를 들어 보였다.
커다란 니시키리 본가를 보는 히라무의 입은 다물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넓은 차밭에서 숨만 쉬어도 향기가 맡아진다. 히라무는 이즈미를 따라 차양막 쪽으로 가서, 수령이 오래되었다는 참나무를 만났다. 이제부터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대체로 예상이 가능할 것이다.
"몇백 년...그럼 몇백 년 동안 여기서 차를 생산해 온 거예요? 이 나무가? 언제부터 있던 거지, 그럼?"
갑자기 말이 많아진 히라무였으나 이즈미의 설명대로 손놀림도 똑같이 바빠지기는 했다. 일은 성실하게!
하여간 가차없는 허스키다. 칭얼대는 소리에 한치 머뭇거림 없는 츳코미 한 방을 바로 떨어뜨린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리소자임은 만능 소독제가 아니니까. 이러나저러나, 연고 발린 면봉은 이마에서 떨어져나가고, 거즈가 이마에 내려앉고, 찰딱 하고 반창고 한 장이 거즈 한모퉁이를 고정시킨다. 앞머리 라인이 가까우니까 이쪽은 사방을 다 붙이진 못하겠다. 이마가 무릎마냥 접혔다 펴졌다 하는 부위도 아니니 양옆만 붙여도 괜찮을 것이다. 그러면 이제 약속했던 음료수를 갖다줄까. 날씨가 더우니 공 찾아보는 건 포카리 한 캔 하고 나서라도 괜찮을─
그러나 미카즈키는 앉아있는 마시로 앞에 굽힌 무릎을 펴지 못했다. 그야 마시로가 딱 잡고 안 놔주고 있거든.
또렷히 기억하고 있던 그 까만 새끼고양이 같은 얼굴. 그때도 퍽 고양이같았던 표정. 얄궂은 고양이가 아니라,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아깽이. 그 어느 여름날, 같이 즐겁게 놀았던 어느 하루가 그때보다 훨씬 까만 고양이다워진 소녀의 얼굴 위로 겹쳐지는 것만 같다. 그때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마시로는 떠올린 모양이다.
이제는 떠올려봤자 쓰라리기만 해서, 그 때 그 기억들을 마지막으로 이제 내 몫의 행복은 없겠지 하고 제쳐둔 기억들인데. 참 얄궂다. 또 공을 흘렸고, 또 그 공 때문에 누군가 넘어졌고, 그 넘어진 누군가가 또 너다. ...그때 그대로 그 얼굴로 오랜만이야 하고 인사해줄 수 있으면 참 기쁠 텐데. 미안해. 그때 지었던 표정, 어떻게 짓는지 잊어버렸어.
그때, 마시로의 두 손이 미카즈키의 두 뺨을 뿌닛 하고 눌렀다. 미카즈키의 안면이 짜부됐다.
"야."
미카즈키의 미간이, 누가 봐도 마시로의 손길이 불러온 효과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선명히 구겨졌다. 하지만 그도 잠시, 미간을 구긴 채로... 미카즈키는, 아니 미카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소리를 흘려버렸다.
"아후후후후."
아주 잠깐, 마시로의 눈 앞에도 그때 그 여름날이 다시 한 번 더 선명히 스쳐지나갔다. 한 호흡 웃고 나서야, 미카즈키는 표정을 다시 차분히 가라앉힐 수 있었다.
"...나가쿠모 미카즈키."
그리고 그제서야 마시로는 그 소년의 이름을 온전히 귀에 담을 수 있었다. 멀리서, 매미소리와 아이들 왁자한 소리에 묻혀 입모양만 겨우 기억하는 소리가 아니라, 그 소년의 이름 전부를. 미카즈키라서 미카였었던 걸까. 그때, 미카의 양 뺨을 잡고 있는 마시로의 손등 어느 한 쪽을 무언가 서늘한 게 톡톡 두드린다.
"놔줘. 너 다음에 만나면 물어볼 거 있었단 말이야."
다시 무표정한 눈으로 마시로를 바라보는 미카. 하지만 그 눈은 뭐라고 해야 할까. 약간이지만, 긴장이 풀려있다. 그리고 마시로가 미카의 양뺨을 놓아주면, 미카는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853 방금 마시로한테 써준 답레를 보면 알겠지만, 생각보다 쉽게 볼 수 있다구. 단기스레라서 빙하기(?)를 너무 길게 가져가면 안될 것 같고. 사쿠라라면 더 쉬울 거야. 물론이지. 나는 미카즈키가 미카로 돌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작년과는 다른 미카즈키가 되는 과정을 다른 참치들과 나누고 싶어서 여기에 왔어.
그래. 무슨 생각 하는지 서로 모르겠지. 하지만 적어도 넌 알텐데. 내가 이런 식의 재회를 원하지 않았다는 걸. 그리고 너 역시 마찬가지라는것 쯤은 알 수 있어. 내 눈에 슬픔이 담겼다는것도 알 수 있겠지. 봐, 우리는 아직도 이렇게 말하지 않고도 알 수 있는게 많아. 오랜 시간동안 만나지 않았더라도. 그러니까, 모르는 부분은 서로 묻고 알아가면 돼. 너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데. 멋대로 감당할 수 없다고 단정짓지 말고 내게 말해주지 않을래.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체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하지만 소년의 굳게 다문 입은 도통 떨어지지 않았다. 사춘기이기 때문일까. 무뚝뚝함 때문일까. 어쩌면 이런 상황에서 어떤 말을 건네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걸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을 마주해 본 적이 없을테니. 네 표정이 일순간 굳어졌다 빠르게 복귀한다. 너 역시 마찬가지로 굳게 다문 입 미동 없다. 어렸을땐 그토록 장난기 많고 상냥했던 네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소년은 그것이 알고 싶었다. 그리고, 소년은 믿었다. 네 안에 그 어린시절의 상냥함이 남아있으리라고. 내 소중한 소꿉친구. 허나 우리 사이는 희끄무레한 담배연기처럼 너무도 불투명했다.
"그럼 알고 있다는거네."
소년의 입에서 원하지 않던 무뚝뚝한 말이 튀어나온다.
"네가 선 넘고 있다는것도."
"남에게 권하지 못할 걸 왜 하는데?"
소년은 슥, 하고 오토바이를 가리킨다.
"나는 헬멧도 쓰고 타. 규정 속도도 지키고. 사고는 커녕 트러블도 생긴 적 없어."
"네가 탄다고 하면 기꺼이. 나이가 되고 면허를 따고, 안전하게만 탄다면 그걸로 괜찮아."
"피어싱, 그래. 딱 그정도야. 내가 변한건. 그런데, 마시로 너는..."
소년은 채 말 다 하지 못하고. '뱉고 싶던건 이런 말이 아니었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안될까?' '만나서 반가워, 마시로. 묻고 싶은게 참 많아. 잘 지넀어? 얘기나 좀 하러 갈래?' 뱉으려던 말은 소년의 입에서 담배연기 대신 짙은 한숨이 되어 새어나온다.
"..."
그게 귀엽다라. 그는 대답하지 못한 채로 가만히 바라보다. 새초롬한 눈이 소년을 응시한다. 내 시선에 맞춰 너는 허리를 숙이고, 선명하게 눈을 내리 맞춘다.
'나도 먹고 싶어.'
소년은 담배연기 배지 않은 왼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다시금 짙은 한숨을 뱉는다. 소년의 눈가엔 어느새 눈물이 맺혀있었다. 무슨 의미일까. 더이상 알 수가 없어졌고. 소년은 천천히 일어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