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이 쨩, 미안한데 오늘만 카구라(神楽) 대타 들어가 줄 수 있어?」 「으······ 나중에 아이스크림 사 주세요,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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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밭 체험을 해보실 분? 이라고 간단하게 말을 했는데 진짜 해보겠다는 분이 나올 줄 몰랐던 이즈미입니다. 하지만 체험을 하기로 한다면 나름.. 준비를 잘해줄지도 모르니까요.
다행히도 말차를 기르는 밭은 차광막이 있어서 생각보다는 땡볕은 아니니까요. 그냥 녹차를 따고 싶다면 땡볕이 맞지만 모자를 쓰는 등으로 차단은 잘 할 수 있습니다. 이즈미의 얼굴이 흰 걸 보면 차단 잘 해준 게 아닐까요?
이즈미는 만나는 장소에 온 사람을 바라봅니다... 일당.. 도 있고(차 세트와 만든 디저트류라던가) 따는 것을 간단하게 가르쳐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본가로 올라오는 길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이즈미는 전통 카트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전동 카트를 타고 올라가면 금방인데, 걸어가면 한참 걸릴지도.. 이기에 끌고온겁니다.
니시키리의 넓은 차밭에 관심이 없는 토키와라 주민이 있을 리가? 라고 생각하지 않는 피톤치드가 곧 도파민인 도파민 추구자가 있을 리가. 히라무는 피톤치드가 곧 도파민인 도파민 추구자였다. 유튜브 알고리즘에 뜬 요즘 세대가 이혼하는 이유 베스트 10! 문제는 성격차이가 아니다! 라고 빨간 글자가 썸네일로 박힌 동영상을 틀어놓고 토키와라의 잔잔한 숲속 길을 산책하듯 걸어 오는 것만으로 즐겁다.
이즈미네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여름의 풀냄새가 가득하다. 체력을 몽땅 갖다 쓴다면 걸어 올라가도 좋겠지만, 오늘은 아르바이트를 하러 온 거니 등반을 동반하기는 뭐했다. 약간 걱정하며 약속 장소에 도착해 보니 골프장에서나 쓰는 전동 카트에 이즈미가 앉아 있다. 히라무는 막 불륜과 황혼이혼의 상관관계를 역설하며 예시를 들기 시작하는, 동영상의 하이라이트조차 포기하며 이어폰을 뺐다.
스즈네가 몸을 돌이켜 현관 너머로 사라졌을 때, 미카즈키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숨을 고르는 것인지 한숨을 쉬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나직한 숨소리였다. 그리고 그런 미카즈키를 아랑곳하지 않고, 밋밋한 사각 방석을 하나 물고 와서는 현관과 접한 마룻바닥 모퉁이에 놓아주는 고양이. 손님 대접을 핑계로 자기 잇속을 챙기려는 무빙임이 자명하다.
잠깐, 그렇게 햇살을 등지고 서서, 링링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미카즈키는, 한 발자국을 내딛었다. 두 발자국, 세 발자국 내딛고는, 몸을 돌려 마룻바닥 모퉁이 링링이 깐 방석 위에 걸터앉아서는 링링의 목덜미를 잡고 뒷다리를 받쳐서 슥 들어올리곤 무릎 위에 얹어버렸다. 복복복복복!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 날 이후로 항상 그랬다. 자신을 둘러싼 것들은 항상 그랬다. 그 어머니가 그랬고, 어머니를 데려간 운명이 그랬으며, 아버지가 그랬다. 오사카의 사람들이 그랬으며, 그 아이가 그랬고 그 여자가 그랬다. 그리고 이제는 스즈네와 이 고양이다. 얼마나 휩쓸려왔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생각할 기력도 남지 않았다.
소용없다. 자신과 함께해 마땅한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그 사실에 이 토키와라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까르르 웃는 듯한 풍경소리가, 그 뒤를 따르는 복도 저편에서부터 울려오는 자박자박 소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은 어떨까, 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 쪽이나 저 쪽이나, 바라는 대로는 조금도 되지 않는다. 내가 무언가를 바라거나 원하는 게 가당찮다는 것은 안다. 그러니까 포기만큼은 마음편하게 하게 해주었으면 하는데.
미카즈키는 조금 심술이 났다. 미카즈키는 링링의 머리를 마저 슥슥 쓰다듬어주곤, 다시 링링의 목덜미를 집어들어 옆의 바닥에 내려두고는 벽면을 짚고 일어섰다. 그리고 뒤돌았다. 아직도 후드를 쓰고 있었다는 게 생각나서 소년은 후드를 머리 뒤로 휙 던져버렸다.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 소년의 얼굴에 드리운 그늘은, 바깥의 작열하는 열양과 대비되어 생긴 키리야마 가택의 현관 복도의 옅고 상냥한 그림자뿐.
"이건 조금 일찍 여쭈어봤어야 했는데."
어쩌면 그 날 이후로 한 번도 이런 질문을 한 것 같지가 않아서. 그래서 미카즈키는, 스즈네가 내민 물건들을 받아드는 대신에 조금 지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니시키리의 차밭도 차밭이지만 약간 유기농적인 측면에서의 농법을 통해서 친환경적으로도 재배를 하고 있으니까요. 이즈미는 기다리다가 히라무가 보이자. 히라무 군. 이라고 말을 걸며 인사를 하려 합니다.
"그렇죠. 이걸 타고 올라갈 거에요." 전통 카트라 인력거일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다행히도 전동 카트라서 시동을 걸면 엔진.. 같은 게 돌아갑니다. 옆에 타실 건가요. 아니면 짐칸에 타실 건가요? 라는 물음을 건네긴 했지만 짐칸은 아무리 숲같은 게 있어도 볕이고 차광막이 있는 옆자리를 추천한다고 생각하는 이즈미입니다..
"시급은.. 대충.. 1천.. 얼마겠네요." 3시간 일하면 5천엔 정도라고 하니까(이런 걸로 이즈미도 적당히 벌어서 용돈을 타기도 하지만 오늘은 이즈미는 쉬고 대타를 구한 거나 다름없기는 합니다...) 라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아마 히라무도 전달받았을지도?
아마 인력거였어도 히라무는 눈빛을 반짝였겠지만, 다 올라가고 나서는 마루에 드러누워 아르바이트 포기 선언을 했을지도 모른다. 니시키리의 차밭에서 일당으로 용돈까지 받으면서 말차 채취 체험이라니 이보다 더 보람찬 방학이라면 열쇠의 비밀을 밝혀내는 방학을 제외하고는 없겠다. 전통 카트가 아닌지라 일하고 돌아갈 수 있으니 매우 다행!
차양막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미사토가 하도 잔소리를 하는 바람에 히라무는 볼캡과 선크림으로 무장하고 온 상태다. 올라가서 일하다 보면 더워서 모자는 벗어버릴 게 틀림없다면서 엄마는 가방에다 선스틱도 낑겨 넣었다. 힙색 안에는 그렇게 담아 온 선스틱, 보조배터리, 충전기와 매달린 에어팟 케이스. 히라무는 뺀 이어폰을 케이스 안에다 집어 넣으며 바로 이즈미 옆에 앉았다.
"근데 짐칸도 재밌어 보인다. 저기 이즈미상, 우리 내려올 때도 이거 타요?"
짐칸을 내다보느라 기울인 히라무의 목에서 열쇠가 달랑였다. 열쇠는 햇빛을 받아 흔들릴 때마다 반짝거렸다.
"어차피 방학 동안 공부나 책 읽기나..."
히라무는 가슴께에서 흔들리는 열쇠를 살짝 잡았다 놓았다.
"이거 말고는 없는데. 오늘 완전 유잼 컨텐츠라구요."
돈 주고도 할 체험을 돈 받고도 한다? 간식도 있다? 개이득인 점 인정하는 부분이다. 거기다 전동 카트 부가 서비스까지 있을 줄은 몰랐다. 히라무는 다시 제대로 앉아서 한쪽 팔을 들었다.
"짐칸에 타면..." 흠. 차양막이 있으면 속도감은 더 느낄 걸요? 라는 농담같은 말을 하는 이즈미. 하긴.. 바람에 노출되면 속도감이 높아지는 건 당연하잖아요.
"음.. 내려올 때에는 길 닦여 있는 걸로 차타고 내려올수도 있고요?" 형이나 누나나.. 부모님이 이즈미를 별가까지데려다 주는 김에 히라무도 태워줄 수도 있으니. 그것도 괜찮고, 혹은 이걸 탈 수도 있다는 말을 합니다. 운전은 이즈미가 합니다. 처음 가는 길은 좀 어지러우니까 몇 번 돌아보고 나서 가겠지만 이 길은 처음은 아니니까요. 면허는 이미 있으니.(물론 조금 급하게 준비해서 찍신을 살짝 빌리긴 했지만)
그렇게 도착한 본가는 꽤 큽니다. 간단하게 일할 준비를 하고, 설명을 해주고는.. 차양막이 있는 곳으로 다시 카트를 타고 가면 차밭이 펼쳐집니다. 가장 무성해보이는 차나무를 가리킵니다.
"이 나무는 꽤 오래 전에 심은 거라. 몇백년의 수령을 지니고 있답니다." 따로 구분되는 곳에 옹기종기 심어진 것들은 오늘의 목표가 아니니까 차양막 쪽으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