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이 쨩, 미안한데 오늘만 카구라(神楽) 대타 들어가 줄 수 있어?」 「으······ 나중에 아이스크림 사 주세요,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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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색의 달은 때가 차면 다시 만월로 돌아가 기울고 차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겠으나, 스즈네의 앞에 놓인 파란 신월은 때가 기울어도 차도 신월 그대로일 모양이다. 그림자에 가리워진 것이 아니라 그 모양대로 뜯겨나간 것이기에. ...그 상처를 드러내어보이고 싶지 않다. 달이 있을 자리에 가리워서 보이지 않아야 할 별들이 반짝이는 모습이, 궁금한 걸까, 당신은.
여전히 소년을 물릴 생각도 소년에게서 멀어질 생각도 없이 그 거리에서 가만히 자신을 보고 있는 스즈네와, 두 사람 사이를 맴돌며 마치 무언가 읽어냈다는 듯 주인에게 무어라 강변하고 있는 링링. 그리고 가만히 입을 다물고 선 채로, 두 사람을 목도하고 있는 차가운 소년. 그리고 결국 스즈네는, 다시금 한번 그 비틀어진 달에게 손을 내밀었다.
"...미안합니다만."
그러나, 너무 지나치게 올곧게 내밀었다.
"말할 수 없어요."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향한 태도에, 미카즈키는 공을 스트라이크 존 밖으로 철저하게 뺐다.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아니 그것을 말할 용기가, 그것을 말할 강인함이 있었더라면 그 두려움을 떠안을 일이 애초에 없었겠지. 그래서 스트라이크 존을 정면으로 가로막는 스즈네의 스윙은 헛스윙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여기, 할아버지께서 맡기신 찻값입니다."
모처럼 선심을 써서 내민 두 손에 마주 내밀어져온 것은, 얼음장같은 손이 아니라 온도 없는 봉투였다.
내가 무슨 염치로, 무엇을 믿고 당신의 온기를 거머쥘 수 있을까. 분에 넘치는 것을, 그러므로 다시 떠나갈 것을. 고통은 두렵지 않으나 상실의 여지는 두렵다. 망가진 것을 보는 것이 그리 유쾌한 일도 아닐 것이요, 누구한테 그렇게 세세히 구경시켜주고 싶은 생각도 없다. 얼어붙은 대지는 일순간 스쳐갈 태양빛 정도가 아니라 봄을 바란다. 이 대지를 위한 봄을 생면부지인 사람에게 기대할 염치 따위 없다. 그러니 내 마음 속에 함부로 손가락을 집어넣으려 들지 말았으면 한다.
안에 들어오다는 것이겠지.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카나타는 어서 안으로 들어오라는 듯이 손짓했다. 안으로 들어오면 시원한 에어컨 바람은 물론이고 유리문 너머로 수많은 강아지와 고양이, 그리고 손님이 꽤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머. 코하네. 어서 오렴. 그의 어머니는 코하네를 바라보면서 반갑게 맞이했다.
"...확실히 시원해. 오늘도 강아지와 고양이들이 잘 지내서 좋아."
행복의 기준이 마치 고양이와 강아지에게 있다는 듯이 그는 유리벽 너머의 고양이와 강아지들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그렇게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에선 그야말로 꿀이 뚝뚝 떨어졌다. 너무나 귀여워서 죽을 것 같은 눈빛. 사랑스러움이 가득한 눈빛. 그 눈빛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보이다가 그는 살며시 표정을 원래대로 돌리며 코하네를 바라보면서 물음에 대답했다.
"글쎄. 주문은 아빠와 엄마가 하니까. 하지만 사료나 새로운 장난감이나 고양이 강아지 간식일 것 같은데. ...고생했어."
상자의 무게가 제법 되는 것은 자신 역시 상자를 들어봤기에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 애가 이걸 들고 여기까지 왔으면 확실히 고생한 것이 맞지. 그렇게 생각하며 카나타는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라는 듯, 그녀를 바라봤다.
"...실제로도 푹신하지만 쿠션처럼 쓰지 마. 어쨌든 자리에 앉아서 기다려. 음료 만들어줄테니까."
뭐 마실거야? 그렇게 물어보면서 그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아마 알려주면 직접 제조를 들어갔을 것이다. 그와는 별개로 골든 리트리버인 골든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안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정확히는 코하네를 향해서지만. 하지만 카나타는 안된다는 의미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고, 골든은 축 쳐진 표정으로 깨앵... 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섰다.
"...이 안은 들어오면 안돼. 음식을 취급하니까. ...그러니까 너도 이 안으로 들어오게 하면 안돼. 개나 고양이들."
어깨는 가볍고 코끝엔 카페 특유의 은은한 향이 맴돈다. 전신을 휘감는 시원함을 만끽하며 소녀는 양팔을 벌린다. 주변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러다 안녕하세요. 또 배달왔어요. 이외 잡다한 문장 몇 개 덧붙이며 아주머니를 향해 손 흔들며 인사한다.
"있잖아~ 그렇게 좋아?"
당신이 고양이와 강아지를 바라보는 동안 소녀는 그런 당신을 관찰했다. 귀여운 생물이라면 저 또한 좋아한다 자부하지만 당신에 비하면 결코 닿지 않으리라 싶었다. 언젠가는 그렇게까지 좋아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던 것 같으나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졌다. 저런 게 카나타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언급하지 말자는 의미는 아니었다.
"으응? 쿠션~? 그냥 귀여워서 않아주는 거 뿐이라구~ 얘들이 가까이 오는 걸 밀어낼 순 없잖아~"
실로 제 자신을 잘 알아주는 소꿉친구를 두었다. 정곡을 찌르는 단어 선택에 모르쇠하며 유리문에 찰싹 달라붙는다. 너머에는 온통 머리부터 발끝까지 푹신해 보이는 아이들 투성이다. 그리고 푹신함은 귀여움의 척도이다.
그녀의 물음에 그는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강아지가 좋고 고양이가 좋았다. 더 나아가 동물이 좋았다. 신도 여우신인 이나리 신이 제일 좋았다. 물론 여우는 어디까지나 사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만, 아무렴 어떤가. 여우이건, 여우를 부리는 신이건 중요한 것은 '여우'와 연관이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을 하는 카나타의 입가에 미소가 조용히 번졌다.
"그 정도면 괜찮아. 가끔 베개처럼 쓰려고 하는 이들도 있어서."
물론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면 대판 난리가 났다. 자신은 물론이고 카페를 운영하는 제 부모님도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알바생에게도 그런 케이스가 보이면 무조건 내쫓으려고 지시를 한만큼 동물을 베개처럼 쓰는 이들은 이 카페에선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다. 그리고 카나타는 코하네가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알았어. 메론 소다 만들어줄게."
여름에 가장 잘 팔리는 음료였기에 그 정도는 카나타도 충분히 만들 수 있었다. 이어 그는 손을 풀더니 음료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물론 음료를 제작할 땐 음료에 집중해야 했기에 코하네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분명히 들었다.
"코하네라면 산책까진 괜찮지만, 데리고 가는 것은 안돼. 우리 고양이와 강아지야."
절대로 안된다는 듯이 그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리고 메론 소다를 완성한 후에, 얼음을 3개 띄웠고, 빨대까지 꽂은 후에 그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에게 메론 소다를 내밀었다.
"주문한 메론 소다야. 값은 배달한다고 수고했으니 안 받을게."
이어 그는 그녀가 앉은 자리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아주 자연스럽게 쉬는 시간을 챙기면서 그는 그녀에게 말했다.
그림자가 드리운 스즈네가 두 팔을 앞으로 드니 언뜻 음영을 안은 것 같은 형상이 된다. 그대로 실체 없는 그림자에 현실감이 드리워졌다면 더할 나위 없었을 것이나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부드러이 내민 손에 얹혀진 것은 밋밋하고 파삭한 돈봉투 뿐이었다. 스즈네의 손이 공손히 봉투를 받아드는 것을 본 링링이가 애웅. 작게 울었다.
"응. 그러네."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 뒤에는 마찬가지인 중얼거림이 뒤를 잇는다. 링링이는 스즈네의 반응을 보고 슥 일어나더니 복도 안쪽으로 종종 걸어 사라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살풋 기울인 스즈네의 얼굴은 여전히 웃고 있었으나 구불진 머리카락이 마찬가지로 구불거리는 그림자를 일순 드리우고 멀어진다.
스즈네는 그 이상의 권유도 되물음도 하지 않았다. 바깥에서와 마찬가지로 스스로 생각하는 회갈색 눈동자가 두어번 깜빡일 뿐이었다.
이내, 봉투를 거둬들인 스즈네의 손은 조금 전과 같이 다소곳이 명치 언저리에 모아졌다. 그 때에서야 뒤로 한 걸음, 집 안으로 향하는 복도로 내딛어졌다. 햇살과 그림자 모두에게서 멀어진 스즈네가 웃는 얼굴로 미카즈키를 향해 말했다.
"찻잎이랑~ 가져올게~ 조금 걸리니까~ 앉아서 기다리고 있어~"
그리고 돌아서 안 쪽으로 들어가는 스즈네와 교대하듯 링링이가 돌아왔다. 밋밋한 사각 방석을 하나 물고 말이다.
"우웅."
링링이는 방석을 현관 가장자리에 놓고 미카즈키를 바라보았다. 앞발로 툭툭 두드리며 짧게 소리를 내는 것이 기다리는 동안 여기 앉으라는 의미 같다. 그 권유 아닌 권유에 응해 방석에 앉으면, 링링이는 다시 미카즈키의 무릎을 차지할 셈이었다. 과연 링링이의 속셈대로 되었을까.
미카즈키가 남겨진 키리야마 가의 현관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활짝 열린 문은 그대로. 문 밖의 타는 듯한 햇살도 그대로. 굳이 그 아름드리 나무 아래와 다른 점을 찾자면 여긴 실내이고 그늘이 드리워도 뜨끈한 벤치보다는 앉는 감이 좀 더 낫다 일까. 문득 열린 문 밖으로 미지근한 바람이 한 차례 지나갔다. 집 안의 어딘가에서 차라라랑. 풍령 소리 여럿 울리니 마치 웃는 소리 같다.
차라라랑... 차라라랑...
연달은 유리울림이 서서히 멎어갈 쯤. 긴 복도의 끄트머리에서부터 타박타박 걸어오는 발소리 있다. 돌아보거든 양 손으로 뭔가를 받쳐 든 하얀 형상이 나폴나폴 걸어온다. 형상은 곧 사람의 형태가 되고 복도의 절반을 넘어오자 얼굴의 미소도 희미하게 보인다. 이윽고 그 인형이, 스즈네가 현관 앞에 섰을 때, 하나로 말끔히 올려묶은 머리와 가디건 없이 드러난 흰 팔과 여린 어깨가 유달리 눈에 띈다. 그 팔이 곧게 뻗어 들고 온 종이 가방을 미카즈키에게 내밀었다.
"대금만큼의 찻잎이랑~ 오늘 대접하려고 했던 화과자 넣었어~ 이번에 신작 양갱이랑 도라야끼 가져와서~ 잇치 할부지랑 먹으려구 했던 거라서~"
찻잎 외의 것들에 대한 설명과 함께 건네주었을 종이 가방엔 작은 보온병도 하나 있었다.
"그리구~ 나아 이제부터 차밭에 가야해서~ 대접할 시간이 없어서 차는 따로 담았어~ 지그음 가서~ 할부지랑 같이~ 화과자랑 먹으면 딱일 거야~"
스즈네의 말은 미카즈키가 차를 거절한 것이 아닌 스즈네의 예고 없는 외출로 인해 대접을 하지 못 한 것, 이었다. 이대로 돌아가 왜 벌써 왔느냐는 질문을 듣게 되거든 써먹으라는 듯이. 그 의미는 명확했으나 스즈네가 거기까지 말하진 않았다. 그리 쓸 것인지 아닌지는 미카즈키에게 맡긴 듯이. 실내임에도 땀방울 살짝 맺힌 발갛게 익은 얼굴로 웃으면서 말이다.
하나 힌트를 주자면... 미카는 어장관리당하는 걸 순애라고 믿고 있다가 최악의 형태로 차인 끝에 상당한 인간불신에 빠져있어서, 한번에 훅 들어오지 않고 애매한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이 극단화되어있는 상태야. 스즈네의 구름같은 태도가 그 경계심을 내내 자극하고 있었고. 경계심을 풀어주려면 자기 자신을 명확하게 정의해주는 게 필요하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