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이 쨩, 미안한데 오늘만 카구라(神楽) 대타 들어가 줄 수 있어?」 「으······ 나중에 아이스크림 사 주세요,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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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생각을 하는지 서로 알고 있다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을 네가 감당할 수 있기나 해? 마시로의 표정이 일순간 굳어졌다가 빠르게 복귀한다. 굳게 다문 입은 미동이 없다. 상대는 아마네다. 으레 봐왔던 남학생들처럼 성인 남성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성숙함으로 남자답게 변모하긴 했어도, 저를 야단치며 화내고 애달파하는 와중에도 여전히 습관적 다정을 뱉는 아마네다. 성장기를 건너 뛴 만남과 서로를 필요로 하던 시간 동안 결코 닿지 못했다 하더라도, 아무리 깊은 시간을 함께 한 사이라 해도 결국 타인이란 얼마나 모순적이며 낯선 존재인지를 깨달았더래도 망각해선 안 되는 거다. 나의 소중한 소꿉친구. 하지만 섞인 불순물을 게워내지 못한 소년 소녀는 서로가 마냥 불투명하다.
“선 넘어, 자꾸.”
본인도 마찬가지면서, 그걸 알고 있으면서 그럼에도 아오는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어. 그가 내민 큼지막한 손을 지그시 바라보다 어이없다는 듯 혀를 내민다. 달란다고 진짜 주면, 그때는 도망갈 거야? 또 어떤 표정을 지어 주려고 그래.
“그게 귀엽잖아.”
그 말대로 제멋대로에,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글러 먹은 인간. 저 자신을 간단히 정의해 버리고 마는 몇마디의 말에 웃음이 난다. 긍정인지 부정인지 알 수없는 미소로 능청스레 넘겨 버린다. 아무리 그래도 아오를 미워하고 싶진 않다. 배신한 건 나잖아.
맥 빠진 얼굴로 주저 앉아 버리는 아오를 새초롬한 눈으로 주시하더니 마시로 역시 손으로 무릎을 짚어 앉은 키의 아오의 시선에 맞춰 허리를 숙이고 선명히 눈을 내려 맞춘다.
보폭은 딱히 신경쓰이지 않았다. 그게 말이지, 이미 너무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보폭 맞추어 걸어가는 일이. 다만 이렇게, 보폭을 맞추는 것을 의식하면서 보폭을 맞추는 일은... 두 번 다시는 안 해도 되겠다고, 두 번 다시는 할 수 없을 거라고, 소년은 그렇게 생각했었지만, 결국 또 이렇게 상냥한 손에 잡혀 거절도 하지 못하고 또 끌려가고 있다.
어딘가 가슴이 욱신거리는 느낌이 든다. 소년이 향유할 수 없는 어떤 행복이 소년에게 물리적인 손끝만을 내민 채로 너는 절대로 이 너머에 발들일 수 없다고 조롱하는 기분이 들어서다. 사람을 약올리는 조롱이 아니라,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종류의 그런 조롱.
키리야마 스즈네는 절대로 그런 의도가 없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가쿠모 미카즈키가 이 순간을 이렇게나 고통스럽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미카즈키가 보통 사람이라면 상처를 입을 이유가 없는 곳에 상처를 입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상처를 입을 이유가 없는 곳에 상처를 입었다는 소리는 그만큼 내가 애초에 모나있었던, 어디가 잘못된 놈이라는 소리겠지. 내가 이상한 놈인 거야.내 잘못인 거야.
그래서 미카즈키는 별도로 항의하지 않고, 이 폭신폭신한 고통을 어떤 항의도 하지 않고 그냥 수긍하기로 했다. 그래서 소년은 후드 아래로 그저 적당히 고양이와 사람의 만담에 답사하는 희미한 미소를 띠며 발걸음을 옮길 뿐이다. 스즈네가 이따금 다른 곳으로 발을 틀어도 미카즈키는 키리야마 가택이 어디 있는지 모르니 그러려니 하고 따라가다가(스즈네가 들어서려던 길이 해안가로 일방통행인 길임에도 불구하고), 링링이 먁 하고 스즈네에게 육탄 태클을 걸 때에야 아아 그런가 하곤 스즈네가 아니라 링링을 따라 걷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다 보니, 이 토키와라에서 그나마 세월의 흐름을 따라가보려고 발버둥치는 부분을 지나, 어느샌가 주변의 풍경은 진짜배기 토키와라- 자신들이 살아온 그 세월에 그대로 머무르기로 한 것 같은 동네로 접어든다. 그리고 마침내 도달한 키리야마 가 주택.
지금 자신이 머무르고 있는 할아버지네 집과 비슷한, 하지만 훨씬 규모가 크고 가지런히 정돈된 주택. 반질반질하게 닦여 깔린 조경석 위를 폴짝폴짝 뛰어가는 스즈네의 손에 이끌려, 미카즈키는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발걸음을 휘청휘청 끌려간다. 여기에서 그대로 꽈당 넘어져 조경석에 턱이나 코나 이마가 깨지지 않은 것은 천부의 운동신경에 덕을 입은 발군의 균형감각과 반사신경 덕분이겠다.
그제서야, 미카즈키는 스즈네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미카즈키는 스즈네를, 스즈네의 따스한 색의 눈동자를 직시했다.
새하얀 후드 아래 이상하게 짙게 낀 그늘 너머로 보이는 것은 흐릿한 윤곽뿐. 명확히 보이는 것은 스즈네를 직시한 채로 겨울에 멈춰있는 한 쌍의 파르스름한 눈동자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