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알렌 잘있나 러시아에서 보러온 카티야가 린이랑 둘이서 걷고 있는거 보고 데이트로 착각해 충격먹어서 둘 앞에 나타났지만 아무말도 못하고 있는데 린이 대충 상황 눈치채고 두사람 다 놀리려고 애절한 표정으로 알렌 팔짱끼고 카티야는 그거 보고 우는(...) 그런 것도 생각한적이 있긴 한데...(망상)
가끔, 검이 무거움을 느낄 때가 있다. 갑작스럽게 느끼게 된다. 의념 각성자로써 한참을 강해졌을지언정 가끔 전투가 끝난 직후 검의 무게에 대해 인식하게 된다. 그것을 동료들에게 말해본 적은 없었다. 그들은 아마도, 내가 검을 사용하는 모습만을 지켜봤다. 그러니 내가 검이 무겁다는 이야기에 대해 추상적인 해석을 늘여놓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검이 무겁다는 것을 절절히 느끼고 있다.
검을 잡은 손에는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무게에 익숙해진 채 살아왔다 생각한 것이 벌써 수 년은 되었을텐데도 가끔 이렇게 몰릴 때에는 검이 무겁다는 생각을 가지곤 합니다. 그럴때면 항상, 검은 당연히 무겁다고. 그것도 이런 대검을 사용하는 것인데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넘기지만 사실은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장인어른의 추천으로 정신과를 찾아갔을 때였습니다. 이리를 잃은 날의 기억, 여전히 그것을 찾아야겠다는 본인의 생각. 그리고 무표정히 노트를 들고 무언가를 써내려가던 의사는 태식의 말이 끝나면 느릿히 물음을 던집니다.
“ 이미 답을 정해두신 것 같은데, 제가 말한다면 들으실 생각이 있나요? ”
그러면 태식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젓습니다. 의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 이상하지는 않습니다. 동료의 죽음, 가족의 죽음, 친구의 죽음 등. 이 사회는 죽음이라는 요소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다가오죠. ”
건조하게 답하는 의사의 표정에는 감정이 죽어있습니다. 그것이 공감하거나 듣지 않는단 표현이 아니란 사실을 알기까지도 꽤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언젠가는 화를 참지 못하고 멱살을 쥔 적도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 하지만 남겨진 사람들은 그렇게 느끼지 못합니다. 괴로움, 자책감, 불안감, 공포. 그런 불안정한 감정들을 닮은 것들에 살아가면서 그것을 극복하거나, 남겨진 채로 살아가게 되죠. ”
남겨졌다. 그 말을 들었을 때 태식은 눈을 감습니다. 마음 속 타오르던 불꽃은 이미 불씨를 잃었습니다. 이미 나라는 존재는 그 분노로 열을 유지할 뿐, 단지. 재로 남아있었다고.
“ 그래서 저라는 인간은 남을 어줍잖게 위로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약을 써서 차후를 보자, 긍정적인 생각을 해보자, 남은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보자. 그런 대답이 통하는 사람들도 있겠죠. ”
의사는 노트를 툭툭 두드리고 태식을 바라봅니다. 무감정한 눈동자에 태식의 모습이 비치고 있습니다.
“ 그런데 환자분은 그런 것 같지가 않거든요. ”
스스로를 되돌아보지 못해 중구난방으로 난 수염, 떡지고 거칠어진 머리카락, 잠을 못 잔 채로 수많은 자료들을 훝느라 실핏줄이 터져버린 눈. 어떻게든 삶을 인정하지 못해 한참을 참다가 들이키는 숨으로 살아가는 몸, 의념 각성자가 아니었다면 진작 무너졌을 근육과 신체들.
“ 환자분. 우리 인정할 건 인정합시다. ”
의사는 냉정히 태식에 대한 평가를 마칩니다.
“ 나아질 생각이 없다는 거. ”
그는 한숨과 함께 노트를 내려둡니다.
“ 이제 더 나오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환자분께서 치료를 거부하시는 이상. 저희는 그 어떤 치료도 지속할 수 없습니다. ”
기억이 떠오르는 까닭은 바뀌었기 때문일겁니다. 죽을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까닭입니다.
팔이 바들거리고 검을 들 수 없을 것 같으면서도 태식은 여전히 검의 손잡이를 놓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태식에게는 검을 붙잡아야만 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눈을 감으면. 집에서 낙서를 하고, 장모님이 차려주신 음식을 먹으면서 웃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지나갑니다. 태식이 보내준 장난감을 서로 가지고 놀다가 부름이 들리면 두고 일어나 밥을 먹으러 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리와, 자신이 남긴 흔적이 일부 날아듭니다.
한숨을 내쉬면 사람들이 보입니다. 복수에 미쳐있던 시절 도움을 받았던 고약한 마녀 할멈부터, 과거에 몸을 담았던 길드원들의 격려와 도움, 응원들이 보입니다. 여전히 그들은 태식의 길 위에서 태식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한참이나 나아간 태식이 쓰러진다면 받쳐주려는 듯, 등 뒤 먼 곳에서 태식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옆을 둘러보면 특별반이 보입니다. 다시금 지켜야 할 아이들이 생겼습니다. 보호하려 하고, 좀 더 옳은 길을 나아갔으면 하는. 자신이 걸은 어두운 길을 걷지 않길 바라기 때문에 더더욱 그 아이들을 옳은 길로 가도록 해야하기에.
여전히 재일 수는 없는 까닭일겁니다.
재는 바람에 날아가는 것으로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검을 들어올립니다. 재 속에 숨은 작은 불씨를 더듬습니다. 그것에 스스로가 불타고 있음을 알면서도 더더욱 그것을 끌어안습니다. 그 온기를 전해준, 한 사람이 웃으며 길 너머를 향하도록 손을 뻗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