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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저녁. 집으로 돌아온 나는 간단하게 씻고 샤워를 마쳤다. 수건을 두른채 얼굴을 문지르면서 나와, 방에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면서 의자에 털썩 기대어 앉았다. 아이스크림이라도 먹을까, 저녁도 슬슬 먹어야 하는데... 하아.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의자 뒤로 넘어가는 소리가 울린다. 어쩐지 찝찝한 기분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왔음에도. 학생회 일 만으로도 바쁜데, 집행부까지 하라니... 엔도 선생님, 정말 너무한거 아냐? 뭐어, 그래도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정말 좋을 것 같기는 하지만. 어쩐지 없는 꼬리가 살랑거리며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시선을 다시 창 밖으로 돌린다. 석양이 예쁘게 저물고 있었다.
'잠깐 드라이브라도 갔다 올까.'
주섬주섬 일어나서, 툭 하고 수건을 바구니에 넣고, 옷장 문을 열었다. 무슨 옷을 입을까. 오토바이를 타면 조금은 추울지도 몰라. 덥기는 하다만, 바람이 강하니까. 얇은 긴팔을 입을까. 검은색, 얇은 긴팔에 청바지를 입고 방 문을 열고 나섰다.
"형, 어디가?"
"어, 잠깐 드라이브 하고 올게."
"에에, 밥 안먹고?"
"응... 다녀와서 차려 먹을게."
유키에게 그리 이야기하고서는, 탁, 하고 문을 열고는 집을 빠져나와 차고로 향한다. 익숙한 발걸음, 익숙한 모양새로 차고에서 오토바이에 시동을 건다. 부릉, 하고 기분좋게 시동 걸리는 소리. 걸터앉고서는 느릿하게 출발한다. 헬멧 쓰는것을 잊지 않고.
'기분, 좋네.'
그렇게 동네를 얼마나 달렸을까. 슬슬 속도를 낼까, 싶던 차에, 익숙한 얼굴을 발견한다. 천천히 달리다 그 앞에서 멈춰서서는.
이 이야기는 옛날, 아주 옛날에 일어난 일이다. 강물이 수없이 흐르며 바닷물도 수없이 흐르니 이것이 때를 가리는 것이다. 하늘과 통하는 자들도 저 먼 하늘에 손이 닿지 않게 될 무렵에 사람들과 요물들이 여우를 어머니로 둔 음양사를 통해 서로를 알며 말이 통해 가까우나 구분되는 시대였다. 그 시대에 날개 달린 것이 머문 곳에 터를 잡은 이들이 있었고 그 중 한 소년이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르는 소년은 스스로를 나나시라고 칭했다. 사람들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물을 때마다 말이 달라졌는데 이를테면 이와 같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디 계시니?" "아버지는 강이고 어머니는 그 강에서 목욕하던 백로시랍니다." "얘. 네 어머니는 대체 누굴까?" "바다의 조개시고 저를 진주처럼 품으셨다고 하네요." 그런 것이 반복되자 사람들은 묻기를 포기하였고 그를 살짝 멀리하였다. 그러나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허드렛일을 도우며 먹을거리를 얻어 살았으며 아무도 가지않는 산자락에서 이름 모를 풀을 소일거리로 키우는 것처럼 보였다.
나나시가 청년에 가까워졌을 때에도 그는 소일거리를 하는 듯 싶었으나 무더운 날 가뭄으로 물을 얻기 위해 강가를 팠을 때 새하얀 백옥을 발견했다. 그것은 누구나 탐낼 법한 물건이었으나 그는 그것을 포기하는 대신 다 죽어가는 듯한 눈에 녹색기가 도는 작은 금빛 잉어를 원했다. 젊은 이들은 그를 어리석다 했으나 나이든 이들은 현명하다 하였던가?
잉어는 병에서, 그릇에서, 대야에서 무럭무럭 자랐고 대야가 가득 찰 무렵에 문득 나나시에게 말을 걸었다. (중략)(대략 내가 용왕 아들인데ㅠㅠ)
-나의 비늘이 물들 때까지. 물들 곳까지. 귀한 보물을 파헤칠 곳까지. 그 중 하나만을 그 곳이 내가 부름을 받을 곳이야. 청년은 날개 달린 것의 보호와 안락함을 떠나 산을 넘고 강을 건넜다. 산을 넘을 때 울고 있는 까마귀의 깃을 염해주었다.
(중략)(민담에 흔히 나오는 시련들)
파헤친 곳에는 보주가 두 개 있었으나 그는 단 하나만을 들고 왔고, 잉어에게 주자 그것을 물고 강으로 빠져, 한없이 올라가 붉은 구름이 휘감은 못으로 튀어올랐다. 그리고 땅에서 하늘로 올라갔으니 지상의 더러움을 씻어낸 것이다.
그리고 나나시는 제를 올려 남은 보주를 하늘에 바치니. 꿈에 비단을 두른 자가 내가 하늘에 올라 영광을 얻었으며 그대가 보주를 아끼지 않고 다시 보내 자신이 받은 보주를 인형으로 다시 내리니. 백 일의 가까워짐을 기다려야 한다. 붉은 비단을 머리에 쓰고, 보주를 눈에 담아 진실을 보는 자로 올 것이라 하였으니. 그러고 나서 정말 얼마 뒤 붉은 비단을 쓰고 녹색을 담은 여인이 매일 나나시의 풀밭의 경사에 서 있으니 백 일동안 마주보다가 손을 잡으니 붉은 비단이 머리카락에 녹아들어 물들었고 지상에 남아 결혼하였으니. 나나시는 잉어를 담은 성(錦鯉)을 짓고 후예를 이었으니 그들의 후예 중 간혹 붉은 비단을 쓰거나 여의보주를 담은 이가 나오곤 한다...
"이건 좀 오래된 판본이라서 차나무 재배가 아니라 약초 재배이긴 한데요." "이런 전설이 있어서 잉어요리는 안 먹는다고 하네요"
//이즈미주는 업무하러 가면서 잠깐 가볍게.. 판본이 꽤 되고 후일담이나 뭐 이것저것 있긴 한데.. 아무튼. 전설적으로 이런게 있다!(*예시 이해하기 쉬운 정도라면 파평 윤씨의 윤관이 잉어에게 구함받았다 급 or 박혁거세는 알에서 태어났대! 같은 그런거)
방학은 좋다. 매일 늦잠을 자도 히이쨩이 일어나라고 하지 않고, 엄마랑 같이 카페에 나가서 맛있는 토스트로 아침을 시작할 수도 있다. 오후엔 아빠랑 커피콩을 볶으며 재잘재잘 떠들 수도 있다. 저녁엔 골목 어귀에서 히이쨩을 기다리다가 가족 다 같이 모여 저녁을 먹고 집으로 가기도 한다. 매일매일이 가족과 함께 하는 나날이다. 그렇지만 그 시간만큼이나 토키와라의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도 좋다. 모두, 모두 좋은 사람들이니까.
"어머, 스즈, 어디 가니?" "나아~ 산책~" "그래? 잘 다녀오렴. 너무 멀리 가진 말구." "네에에~"
하늘이 빨갛게 물드는 시간, 줄곧 툇마루에서 링링과 뒹굴던 스즈네가 느닷없이 현관으로 도도도 나가자 뒤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붙잡았다. 산책 다녀온다는 솔직한 대답에 잘 다녀오란 엄마의 대답이 돌아오자 스즈네는 방긋 웃으며 밖으로 통, 하고 튀어나갔다.
거리를 타박타박 걷기 시작한 스즈네는 짧은 청반바지에 민소매 셔츠, 그 위에 기장이 긴 여름가디건을 걸치고 밑창 얇은 여름 샌들 차림이었다. 머리는 꽁지 아담하게 올려 반묶음을 하고, 폼폼이 달린 머리끈을 써서 걸음 때마다 하얀 폼폼이 뒷머리 위로 통통 튀었다. 마치 물 위를 걷듯, 퐁당퐁당 거리를 걷던 스즈네는 어느 오토바이가 자신을 앞지르자 걸음을 뚝 멈추었다. 오토바이를 보자마자 커진 눈동자가 그 헬멧 너머 얼굴을 보자 환히 웃는 얼굴로 바뀌었다. 타다닥! 부르지 않았어도 날듯이 뛰어가 아마네에게 팔을 뻗으며 반겼다.
"와아 세이쨩이다~ 세이쨩 세이쨩 안녕~ 나아 산책! 저어기 응 아무튼 산책~"
목적지를 정하고 나온게 아니니 산책이지만 어디까지 간다고 말해줄 것이 없었다. 그래서 스즈네는 저어기라며 두루뭉술하게 말했다가 아무튼, 이라며 마냥 꺄륵댔다. 그 와중에 아마네의 옷차림과 오토바이를 번갈아 보곤 재잘재잘 되물었다.
"세이쨩은 어디 가아? 세이쨩도 산책이야? 아니며언 배달이야아?"
말 한 토막 할 때마다, 고개짓 한 번 할 때마다, 히히 웃는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행여나 눈이라도 마주치면 둥글게 휘는 눈매가 마냥 순박해보인다. 스즈네는 그런 웃는 얼굴로 아마네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