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한 그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그에 비해 골든은 정말로 반가웠는지 꼬리를 크게 살랑살랑 흔들며, 카나타를 이끌려는 듯, 앞장서서 마이를 향해 걸어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카나타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순순히 골든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골든은 이내 마이의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달라는 듯이 고개를 숙이는 것은 덤이었다.
"보다시피. ...그러는 너는?"
적어도 자신의 눈에는 사람이 걷는 길이 아니라 야지에서 튀어나온 것처러 보였기에 그는 절로 의문을 갖고 마이에게 물었다. 물론 산책을 꼭 사람이 다니는 길로 가란 법은 없으니, 그녀가 산책을 하는 중이었다고 해도 그는 크게 이상하게 생각할 마음은 없었다. 조금은 신기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그렇고..."
거기서 말을 잠시 끊은 카나타는 가만히 마이를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이 애는 축제때 뭘 준비하는 것이 있나? 만약 있다면 그것을 돕는 것이 자신의 일이었다. 물론 의무는 아니라지만, 역시 이런 일이 있으면 그냥 도와주는 것이 적성에 맞다는 듯, 그는 다이렉트로 그녀에게 물었다.
>>799 니시키리네 어르신이랑 입씨름을 하는ㅋㅋㅋ 작은 이야깃거리도 좋은 일인걸요. 주책할배가 이리와가 팔 좀 주물러봐라 같은 말 하고(용돈주려는 목적) 이즈미가 주물러주려고 오는데 의외로 근육통이나 그런 아플 법한 부분을 귀신같이 찾아서 꾸욱 눌러서 주무르면 시원하게 느끼실지도 몰라요?
골든이 기분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카나타는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기분 좋아하는구나. 골든. 나중에 집에 가면 나도 긁어줄게. 거기. 그런 속마음을 굳이 내비치진 않으며, 그는 특유의 무덤덤한 표정으로 어느 순간 돌아갔다. 그 와중에 들리는 말. 고민. 뭔진 모르겠지만 고민이 있다고 하니 그 관련으로 들어보는 것이 좋겠거니 생각을 하던 그는 그녀가 일어서는 모습을 바라보며 입을 열려고 했다.
그러는 와중,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마이의 입에서 답이 나왔다. 집행부로 뽑혀서 뭘 해야 하나 고민 중이라는 말. 그 말에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집행부?"
집행부. 집행부라고 하면 역시 토키와라 고교 여름 축제 학생 준비위원회. 그것 밖에는 없었다. 이 아이도 집행부인 것일까. 그는 눈을 감고 잠시 생각을 하다가 눈을 뜨고 특유의 무덤덤하고 차분한 목소리를 이어나갔다.
"뭘 해도 상관없지 않을까? 여름 축제를 구성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물론 자신도 정확하게 아는 것은 아니었다. 집행부가 된 것은 자신 역시 처음이었고, 자신도 정확히 뭘 하면 좋은지에 대해선 알 수 없었다. 애초에 자신이 왜 뽑혔는지도 그는 알지 못했다. 자신이 이런저런 일을 불만없이 수행한다는 소문이라도 들은 것일까. 티 많이 안 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는 조금 씁쓸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 표정은 다시 원래의 표정응로 돌아갔다.
"네가 하고 싶은 부스가 있다면 일단 열어도 될테고.. 도움이 필요한 이가 있으면 도와줘도 된다고 생각해. 나처럼."
>>809 어제 동갑이 아닌 소꿉친구를 구했으니 이후엔 동갑인 소꿉친구도 구해보자! 라는 느낌으로 찾고 있었거든! 셋 다 좋으면... 다 섞어도 나는 상관없어! 맞아. 나도 토박이라는 거 보고 살짝 거론한 것이기도 해서! 반대로 카나타가 코하네의 잡화점에 찾아가서 언제까지 그렇게 잘 거냐고 넌지시 잔소리를 하는 그림도 그려지는걸! 막 졸고 있는 거 보이면 눈앞에서 박수 짝짝을 칠 것 같기도 하고!
둘 다 토박이라면 자연스럽게 가족들도 쭉 토키와라에서 지냈을테니까 부모님들끼리 아는 사이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 마을이 그렇게 큰 것이 아니니까 사실 어릴 때부터 놀았던 인연이 지금도 이어지는 것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으니 둘 다 합치는 것도 괜찮다!
가만히 생각하고 있는 카나타를 향해 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를 하는 시선을 카나타에게 두면서도 자신의 발밑에 있는 골든을 향해서 자꾸만 시선이 내려갔다. 동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종종 캠핑장에 오는 다른 사람들의 애완동물들도 쓰다듬고는 하는데, 오래 보아온 골든을 보면 그러한 마음을 억누르기가 특히 힘들다.
"뭐든지?"
저 북방의 초원에는 지평선의 끝부터 끝까지 탁 트인 밤하늘을 보고 온 세상이 자신의 것과 같다며 시원함을 느끼는 사람과, 그 무게감에 도망치고 싶은 사람 모두가 있다고 했다. 만약 마이가 갔다면 후자일 것이다. 평소에 하고 싶은 것이 많고, 의욕이 높은 사람이라면 이 집행부라는 직책을 통하여 자신의 꿈을 이루면 되겠지만. 마이는 오히려 그 광오함에 길을 잃었다. 잠시 스쳐가는 카나타의 씁쓸한 표정을 보았다. 하지만 금세 원래의 표정을 짓길래 마이 또한 잊으려 했다.
자신은 축제 관련으로 뭘 하던가. 특별히 기획하고 있는 것은 없었다. 누군가는 카페에서 관리하는 강아지와 고양이들을 데리고 나와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거나 쓰다듬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어떻냐고 말했지만 카나타는 그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카페에서 관리하는 강아지와 고양이들이 스트레스를 받도록 할 생각은 그에겐 없었다.
어쨌든 조금 더 조용히 생각을 하던 카나타는 뭔가를 떠올렸는지 마이에게 이야기했다.
"...축제 관련은 아니지만, 가끔은 카페에서 돌보는 강아지들을 나눠서 산책시켜줄 사람은 가끔 필요해. ...카페에서 일하는 알바생도 있긴 하지만, 아직 혼자 맡기기엔 조금 불안해서."
이름이 아마 호리이였던가? 같은 반 남자애들 사이에서 가끔 이름이 나오는 것을 듣기도 했고, 자신의 카페에서 실제로 알바를 하는 아이였기에 이름을 떠올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물론 그에게 있어선 아직은 불안불안한 알바생에 지나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 애와 함께 산책을 시키는 것을 부탁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카나타는 마이에게 이야기했다.
"강아지들은 산책을 시켜주면 좋거든. 엄마와 아빠도 하고, 나도 시키지만 역시 가끔은 손이 모자랄 때도 있어서... 그리고 미야마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많으니까. 축제 관련은 아니니까 집행부 일과는 상관없지만."
이어 그는 조금 길게 침묵을 지키다가 가만히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리고 마이에게 이야기했다.
>>825 좋아! 그럼 소꿉친구만! 그렇다면 반은 다르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래야 아무래도 다양한 관계성이 나올 수 있을테니까! 2년 내내 같은 반이었다가 올해는 다른 반이 되었다 루트 괜찮을 것 같아!
코하네가 날씨가 좋다고 수업을 빠지자고 하면 카나타가 한숨을 쉬면서 오히려 옷소매를 잡고 교실로 질질 끌고 가는 루트가 나올 것 같은데...ㅋㅋㅋㅋㅋㅋㅋ
"3학년이잖아. 공부해야지." "...나처럼 가업 이을 거 아니면 대학 가는 것이 좋잖아."
이런 느낌으로 말이야. 카페의 장식 구해줬다는 거 괜찮겠다! 그렇다면 강아지&고양이 카페에서 필요한 물건이나 애들 사료 같은 것을 코하네네 잡화점에서 아예 계약을 해서 구입을 하고 있다라는 느낌은 어떨까? 그래서 가끔 카나타가 물건 구입하러 찾아가기도 하고, 코하네 집 쪽에서 좋은 물건이 있으면 코하네에게 부탁해서 카페로 배달을 보낸다던가 그런 느낌으로!
미야마 마이는 조용히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야기를 듣는 마이의 얼굴은 무슨 생각이 그 안에서 흐르고 있는지 알지 못 할 법한 맹한 표정이었다. 사실 그 안에서 그 어떤 생각도 이루어지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 개인의 심상은 오롯한 개인의 것이고, 타인은 그것에 침범하거나 엿볼 수 없으니까. 허나 확실한 것은 마이는 마이 나름 대로 부탁 받은 것에 대한 생각을 해 보고 있는 중이였다.
"응?"
거절을 못 해서 도움을 준다니. 아 맞아. 예전에 친구중에 "너는 맨날 하겠다고만 하더라." 정도의 말을 한 것은 기억이 난다. 그러니까 카나타가 지금 하는 말은 그런 의미일까.
"잘 모르겠지만, 나 강아지 좋아해. 사람 도와주는것도. 도움을 받아서 카나타가 기쁘다면 나는 그걸로 좋아. 강아지도 산책 많이 하면 좋아하잖아?"
물론 못 본 사이에 카나타의 카페에 아주 아주 빨리 달리는 덩치 큰 강아지가 생겼더라면 마이로는 무리겠지만, 그런 소식을 들은 적은 없었다. 어차피 남는 것이 시간인 시람이 미야마 마이였다. 그렇지? 하고 다시 쪼그려서 골든에게 얼굴을 가까이 했다. 골든에게 의향을 물어본 것인데, 이야기를 알아 들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때에 맞추어 작게 짖는 소리를 내었다. 우후후 하고 웃으며 잠시 골든의 정수리를 긁어주고는 그 자세 그대로 카나타를 올려다 보았다.
마이에 대해서 그가 정확하게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가 부탁을 받았을 때 거절을 잘 하지 않는다는 것은 들은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저렇게 당사자가 직접 강아지를 좋아하고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좋다고 한다면 자신이 그쪽으로 더 생각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렇게 카나타는 결론을 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선에서 축제를 준비하는 이를 찾아서 도움을 주면 된다고 생각해."
자신은 그냥 개인적인 부탁이었지만, 축제를 준비하는 이들 중에선 잔심부름을 필요로 하는 이도 있을테고, 함께 하려는 이를 찾는 이도 있을 것이다. 자신도 자신이지만, 그녀 주변에서도 그런 이가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카나타는 넌지시 그렇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건 그거, 이건 이거였다. 도와주겠다고 했으니 이제 와서 괜찮다고 말할 생각은 카나타에겐 없었다.
자신의 카페 아이들이 좋아한다면, 자신이 마다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골든은 자신의 정수리를 긁어주자 괜히 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하지만 딱히 앞발을 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옆에서 카나타가 기다려. 기다려. 기다려를 3번 읊은 탓이었다. 말 그대로 기분이 좋아도 달려들지 말라는 신호였다. 그렇게 골든을 어느 정도 진정시킨 후에야 카나타는 자신의 앞머리카락을 정리한 후 차분한 목소리를 이어나갔다.
"네가 시간이 될 때라면 언제라도. ...여름방학이잖아. 지금."
즉, 네가 오고 싶을 때 오면 된다라는 의미였다. 물론 바쁘거나 일정이 있으면 오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말을 덧붙이며 카나타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이야기했다.
"...운이 좋다면 알바생도 볼 수 있을 거야. 그 애도 우리 학교 아이니까... 축제 관련으로 뭘 할지도 모르는 거고."
확실히, 집행위원의 일을 도와주는 것 또한 축제를 위한 일이겠다는 판단은 내릴 수 있었다. 스스로 멋진 무언가를 만들어갈 수 없다면, 그런 만듦을 해나가는 이들을 옆에서 돕는 것도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마이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표류하던 여름방학에 목적지가 생긴 것이다.
카나타가 기다리라는 말에 잠시 멈추었다가 골든을 향한 말이라는 확신이 들고 나서야 양 손을 탁 탁 털고 다시 일어났다.
"지금? 좋아."
주위를 둘러보며 다른 강아지들은 있나 찾아보았다. 언제라도, 여름방학이잖아, 지금. 이 말을 지금 도와 달라는 의미로 알아들은 것이다. 골든 하나 뿐이지만 길을 잃으면 찾아 줄 수는 있겠다며 덧붙였다. 사람의 말에서 문맥을 잘 짚지 못 하고 말머리나 말꼬리만 떼다가 이해해 버리는 것 또한 미야마 마이가 종종 보이는 행동이었으니, 카나타에게 아주 낯선 반응은 아니었을 것이다.
설마 여기서 지금이라고 말할 줄은 생각도 못했기에 카나타는 살짝 당황했다. 물론 낯선 반응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당황하는 것은 또 별개의 일이었다. 다음에는 좀 더 확실하게 날짜를 지정하는 것이 좋겠다고 카나타는 생각했다. 사실 지금 당장만 아니라면 언제 와도 상관없었기에 굳이 더 말을 하는 일은 없었다.
"한 달 정도 되었을거야. 내 기억에는 그래. 여자애고."
아직은 불안불안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일을 하는 애니까 언젠가는 조금 더 안심하고 맡길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을 하는 와중 카나타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피식 하고 웃었다. 애초에 지금 카페의 점장은 자신이 아닌데 왜 자신이 이걸 걱정하는지. 자신이 카페를 물려받은 후에도 그 애가 알바로 일하고 있다면 그때 걱정해도 괜찮을텐데. 그런 생각을 하니 웃음이 안 나올 수 없었다.
"덧붙여서 1학년. 호리이 하나요. 카페에 왔을 때 키 작은 여자애가 있으면 그 애야."
자신이 있으면 소개를 해주면 되겠지만, 자신이 없을 때 마이가 올 가능성도 충분했다. 그렇기에 그 정도로만 이야기를 하고 그는 휘파람을 불었다. 골든은 그 휘파람 소리에 귀를 쫑긋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카나타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러고 보니. 소원. 이루고 싶은 거 있어?"
여름 축제에서 어떻게 하면 소원이 이뤄진다라는 말은 학교에서도 꽤 유명했다. 과연 눈앞의 이 여자애는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을까. 그런 호기심이 들어 그는 뜬금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질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