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운, 여명은커녕 하늘 한 켠 푸르러지지도 않은, 어둠이 완연한 토키와라. 화려한 도시의 야경은 저 지평 너머에서나 그 끄트머리를 조금 반짝이고 있고, 모두가 잠든 토키와라를 비추는 것은 길을 따라 드문드문 늘어선 가로등들뿐이다. 그 어둠을 애처로이 가로지르는 하얀 가로등 아래에, 소년 하나가 길을 잃고 서 있었다.
급히 꿰어입은 트랙팬츠와 운동용의 딱 붙는 반팔 티셔츠. 제대로 옥죄지도 못한 운동화 끈은 진작에 풀어져 발목에 널부러진 꼴이 되어있고, 까치집을 겨우 면한 머리는 딱한 꼴로 늘어져 흐트러져있다.
누가 보더라도 확신할 수 있는, 그래, 흉몽에 쫓겨 도망나온 꼬락서니. 어디로든 나왔으나,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머물지도 못하는, 그래,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
나는 왜 길을 잃은 걸까. 여기는 내 고향. 내가 나고 자란 곳. 우리 동네인데. 한시도 잊지 않았던, 내 기억에 무엇보다도 뚜렷이 남아있는, 지금까지 내내 돌아오고 싶었던, 내가 돌아올 곳, 분명히, 이제 집으로 돌아왔는데. 토키와라로. 계속 그리던 집으로 돌아온 건데......
─낯설다 역시, 낯설다
분명히 변한 것은 하나도 없는데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골목 모퉁이의 잡화점도 여름의 녹음도 매미 소리도 집 뒷편 오솔길 따라 올라가면 있는 작은 연못도 책가방 메고 자박자박 걷던 마을 길도 그 위로 뜨겁게 내리쬐던 태양도 마치 자신을 기다리고 있기라도 했었던 것처럼 자신이 기억하던 자신이 나고 자란 토키와라 그대로였는데
마치 여기에 처음 발을 들이는 이방인이나 되기라도 한 것처럼 낯설다
마치 자신을 두고 모든 것이 변하기라도 한 것만 같은, 그런 기분에 미카즈키는 문득 공포에 질렸다
어리석기도 하지, 변한 것은 미카즈키 자기 자신뿐인데- 그 풍경이 소년을 책망하는 것만 같아, 소년은 자기도 모르게 입을 열어서는 입 밖으로 단말마처럼 변명을 내뱉어버리고 만다
이렇게 크고 작은 소통에서의 불편은 마이에게 있어선 자주 있는 일. 하지만 자랑스러운 일도 아니었기에 쑥쓰러운 듯 자신의 귓볼을 만지작거렸다.
미야마 마이는 조용히 카나타의 말을 들었다. 작은 1학년 친구, 후배겠지? 이름은 호리이 하나요. 기억했다. 아마. 휘파람 소리에 골든은 자리에서 일어나 카나타의 곂으로 간다. 부럽네. 마이도 강아지를 기르고는 싶었지만, 캠핑장인 만큼 어떤 손님이 올 줄 몰라 섯불리 기를 수 없었다. 그리고 휘파람 부는 것도. 미야마 마이는 휘파람을 불 수 없다.
"음~ 내가 소원을 빌 기회가 올 지는 모르겠어서, 잘 생각 안 해 봤어. 분명 나보다 간절히 소원을 바라는 사람들이 있을테니까."
신님이 소원을 들어 주신다면, 자신보다는 다른, 그러니까 더 절실한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 주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무엇보다 소원까지 필요한 일이 현재 마이에게는 없기도 했고.
"딱히 상관없잖아. 한 사람의 소원만 들어주는 만화도 아닌걸. 다른 사람의 소원이 어떻건, 소원이 있으면 그냥 빌면 돼."
지금 자신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은 오직 한 명의 소원만 들어주는 세계가 아니었으니 소원을 품고 비는 것은 개인의 자유라고 카나타는 생각했다. 물론 자신의 소원을 빌지 않겠다는 이는 그 자체로도 딱히 상관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 또한 개인의 의지였으니까. 말을 마친 그는 살짝 무릎을 굽힌 후에, 골든의 턱을 살살 만져줬다.
"...있어."
어떻게 보면 상당히 이기적이고, 일부 마을 사람들은 정말로 싫어할지도 모르는 그런 소원이 그에겐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그 소원을 품는 것을 그는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 이기적이면 어떤가. 자신의 바램인걸.
"...일부 사람들은 싫어할지도 모르는 소원이지만, 하나 있어. 뭔진 비밀이야."
소원을 말하게 되면 소원이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카나타는 그녀에게 물을 때도 소원이 뭐냐고 묻진 않았다. 있냐고 물었을 뿐이지. 이어 잔잔한 미소를 머금던 그는 다시 다리를 편 후에 마이를 제대로 마주했다.
"대신 소원까지는 아니지만, 불꽃놀이는 보고 싶어. 올 여름 축제 때."
이나리 신님을 본따서 만든 불꽃이 터졌으면 좋겠다. 그런 말을 하면서 그는 저도 모르게 밝은 미소를 머금었다.
굳이 더 캐묻지 않는 것에 카나타는 조용한 목소리로 감사를 표했다. 물론 말해도 상관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소원이 혹시라도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면 위험부담은 피하고 싶었다. 이건 자신의 다른 친구들, 혹은 소꿉친구들, 부모님이 물어도 마찬가지였다. 제 소원에 자물쇠를 다섯 개 걸어잠근 후, 카나타는 그 비밀을 다시 마음 속으로 살며시 묻었다.
"...그러게. 미야마에게 소원이 생긴다면, 그 소원도 포함해서 말이야."
굳이 미야마가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이 토키와라의 유명인사 '나가쿠모 텐이치로'의 손자라는 이, 그리고 자신이 티는 안 내지만 밀고 있는 보컬인 '카이다 미나토'도 포함해서 자신이 아는 이들이 모두 소원이 있다면 다 이뤄졌으면 하고 카나타는 가슴 속으로 빌었다.
한편, 골든이 슬슬 산책을 가고 싶다는 듯 자신의 옷깃을 물자 카나타의 시선이 살며시 골든에게 향했다. 이어 그는 골든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은 후에 마이에게 말했다.
"슬슬 산책을 재개해야겠어. 골든이 걷고 싶대. ...같이 갈래? 아니면 가던 길을 마저 갈거야?"